천국에 있는 성도의 집 (요 14:1~3)
본문
인생길에는 여러 가지 어려움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 중에 하나가 경제적인 어려움입니다. 그러나 경제적인 어려움에 있는 사람들이 새겨들어야 할 흥미로운 말이 있습니다. ‘가난이 실제로 오기 전에 먼저 오는 것이 있다. 그것은 가난한 마음이다.’ 가난하지도 않는 사람이 자기 스스로를 가난하다고 생각하는 마음, 자기는 너무 가난해서 다른 사람을 도울 처지가 되지 못한다고 생각하는 마음, 자기는 아직도 부족하기 때문에 무언가 더 있어야 한다는 마음, 이런 가난한 마음이 가난을 불러온다는 것입니다. 만약 그 사람이 정말로 아직 가난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이런 가난한 마음을 가지고 있다면 미후에 그 사람은 가난하게 될 것이고 기왕 가난한 사람이 자꾸 이런 말을 한다면 그 사람은 앞으로 더 가난하게 될 가능성이 많다.’ 라는 말입니다. 그런 가난한 마음이 가난을 불러올 것이기 때문입니다.
어떤 믿음이든지 모든 믿음에는 일반적으로 어느 정도 힘이 있습니다. 심지어 악한 믿음에도 나름대로 힘이 있습니다. 그러나 기독교의 믿음은 그런 것과는 비교도 되지 안될 정도로 강력한 힘과 능력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만일 너희에게 겨자씨 한 알만큼만의 믿음만 있어도 이 산을 명하여 여기서 저기로 옮겨지라 하면 옮겨질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실제로 기독교의 믿음은 이런 능력이 있습니다. 아마 여러분들 가운데에서도 이 능력을 체험하거나 실제로 여러분들의 것으로 경험하신 분들도 계실 것입니다. 그러나 그렇게 대단한 능력이 있는 믿음의 칼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너무도 많은 기독교인들이 보통 때는 꺼내 쓰지 않습니다. 칼집에 그대로 꽂아 두거나 장식으로 걸어두기도 하고 또 어떤 사람들은 너무 깊은 곳에 보관하기 때문에 내게 그런 큰 능력이 있는 믿음의 칼이 내게 있는지조차도 알지 못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믿음의 칼을 쓰지 않는 기독교인이라도 불가피하게 그 믿음의 칼을 꺼내 써야할 때가 있습니다. 그 때란 인간의 한계에 부닥쳤을 때입니다. 인간은 반드시 인간의 한계에 부닥칠 일이 있습니다. 때로는 모든 인간에게 있는 한계가 아니라 다른 사람은 그런 벽에 부딪히지 않을지라도 나이기 때문에 부닥칠 한계가 있습니다. 가장 일반적인 것으로는 내가 정말로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입니다. 이는 정말로 힘든 일입니다. 사랑하는 사람들이 한두 사람밖에 없는 사람도 있고 그런 사람이 좀 많이 있는 사람도 있겠지만 그런 슬픔, 그런 죽음의 이별을 당할 때는 정말로 힘듭니다. 그런데 이런 인간의 한계에 부닥쳤을 때에도 믿음이 있는 사람과 없는 사람은 판이하게 다릅니다. 힘들기는 하지만 믿음이 없는 사람은 그 슬픔과 아픔, 고통이 없어지지 않고 해결되지 않습니다. 시간이 지나면 망각되지만 그 망각은 망각이라는 창고 속에 그 아픔과 슬픔과 고통이 들어가 있을 뿐 없어지지 않습니다. 이것이 믿음이 없는 사람입니다. 어느 순간 때가 되면 그것이 튀어나와 다시 똑같이 괴롭게 하고, 똑같이 아프게 하고, 똑같이 힘들게 합니다. 그것이 내 망각의 창고 속에서 끊임없이 쓴물을 내보내기 때문에 내 인생을 얼마나 힘들게 하는지 모릅니다. 믿음이 없는 사람들의 경우입니다.
그러나 믿음이 있는 사람은 다릅니다. 평소에는 가지고 있는 믿음이 있는 둥 없는 둥 하지만 그런 한계상황에서는 얼마나 어마어마한 힘을 발휘하는지 모릅니다. 저도 그런 경험이 있습니다. 대학 1학년 그 어린 나이에 사랑하는 동생을 잃었습니다. 얼마나 슬펐는지 모릅니다. 그 아이가 죽으리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그 동생이 앓은 것이 추석 무렵이었는데 여름방학 때 고향에 갔을 때만해도 자전거를 태워주면서 같이 놀았던 동생이 추석에 갔을 때는 이미 죽었습니다. 어떤 위로도 위로가 되지 못했고 정말로 감당하기 힘들었는데 어느 날 하나님께서 천국에 있는 동생을 보여주셨습니다. 그것을 본 순간 그것으로 모든 고통이 끝이 났습니다. 그렇게 좋은 곳에 있는 동생을 본 후, 한 번도 꿈에도 나타나지 않았고 한 번도 아파해 본 적이 없었습니다. 그 어린 나이에도 그 속에 믿음이 있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위로를 해주셨는데 다른 것은 아무 것도 필요 없었습니다. 그 다음부터는 얼마나 편했는지 모릅니다. 그렇게 몸이 아파하면서 있는 것보다 차라리 천국에 가는 것이 낫다고 생각하였습니다. 하나님과 함께 있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믿음입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않을 것이다.’ 대단히 귀한 말씀입니다. 여러분, 평소에는 이 말씀이 별로 다가오지 않고 별로 관계없는 말처럼 들리겠지만 그러나 어느 날 죽음이라는 한계상황에 가면 이 말씀이 얼마나 귀한지 모릅니다. 이것보다 더 귀한 말씀이 없습니다. 이 자리에 계신 분 모두 다 누구든 예외없이 하나님 영원한 나라에 초청받아 가실텐데 그 때 이 말씀을 잘 기억해두면 얼마나 큰 힘이 되는지 모릅니다. 아마 어느 날 하나님이 부르실 때 당당하게 들어가는 멋있는 장면을 연출할 것입니다. 이것이 기독교 믿음의 능력입니다. 대단합니다. 제대로 믿지 않아 믿음이 있는지 잘 알지 못할지라도 예수를 믿기만 하면 잘 믿든지 못 믿든지 이 믿음의 능력은 나중에 아주 대단한 것으로 나타날 것입니다.
우리 예수님께서는 이제 그렇게 사랑하시던 제자들, 그 중에서도 몇 몇 제자들과 죽음으로 이별하는 순간을 맞이하게 됩니다. 그러면서 그 순간에 하신 말씀이 오늘 본문 1~3절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도다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일렀으리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거처를 예비하러 가노니 가서 너희를 위하여 거처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 말씀입니다.
대단히 귀한 말씀인데 이 말씀 중에 짚어보아야 할 것이 몇 가지 있습니다. 하나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는 말씀입니다. 언젠가 예수님께서 내일 일을 염려하지 말라고 말씀하신 것을 들으신 적이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내일 일을 어떻게 할 것인가? 현실적으로 내일 어음이 돌아오는데 어떻게 하라는 말씀인가? 예수님께서야 그렇게 말씀하시지만 당장 내일 일을 예비하지 아니할 수 없고 걱정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여기에 대한 의문이 있을 수 있습니다.
또 하나는 모든 인생은 남녀노소, 동서를 무론하고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가지고 있습니다. 죽는 것 자체가 두려운 것이 아니라 죽고 난 후 어떻게 될 것인가? 여기에 대해 모든 사람들이 무의식적으로 두려움을 다 가지고 있습니다. 이것은 우리나라의 장례 때 장례꾼들이 부르는 모든 향도가 속에 있습니다. 향도가 또는 만가라고도 부르는 이 노래는 죽은 사람의 입장에서 부르는 노래입니다. 내가 갈 곳이 없어 정처없이 떠돌아다니는 그 곳은 맑고 좋은 곳이 아니라 황천길인데 그 황천길을 여기저기 방황하며 떠돌아다닐 처량한 신세를 어떻게 할 것인가 라는 것이 향도가의 공통적인 가사입니다.
어떤 지방의 향도가에는 어찌 갈꼬 어찌 갈고 산도 설고 물도 설다 라는 가사가 있습니다. 처음 가보는 길이라 산도, 물도 모든 것이 다 낯설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미국 같은 곳에 여행을 하면 상대적으로 좀 쉬운데 영어도 통하지 않은 곳에 가이드 없이 가면 밥 한 그릇 얻어먹기 힘듭니다. 그런 것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죽음의 길은 산도 설고 물도 설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향도가는 산도 설고 물도 설다 내 못갈다 내 못갈다 노자없이 내 못갈다 라고 노래하고 있습니다. 요즘에야 웬만하면 ATM출금이 가능하지만 이런 것이 해당되지 않던 예전에야 충분히 이런 두려움을 가질 수 있습니다. 그래서 장례가 나면 상주들 특별히 사위들은 노자돈이라 하여 돈을 많이 준비했습니다. 두렵기 때문입니다.
우리에게는 모두 이런 어려움이 있습니다, 죽기 전에도 또 죽은 후에도 이런 두려움이 있는데 주님께서는 오늘 본문에서 그 의문에 대하여 하나님을 믿으니 나를 믿으라고 그 대답을 하셨습니다. 하나님을 믿으라 그리고 나를 믿으라고 우리 주님께서 말씀하셨는데, 우리는 여기서 예수님이 하나님 말을 하면서 마치 당신 자신이 하나님인 것처럼 자신만만하게 말씀하심을 느낄 수 있습니다. 맞습니다. 우리가 쉽게 십자가의 예수님을 보고, 그리고 기도할 때마다 부르는 그 예수님이 바로 하나님입니다. 너무너무 잘 알기 때문에 그렇게 자신있게 말씀하십니다. 당신이 책임지겠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곧 하나님이 책임지는 것이고 예수가 책임지는 것이라는 것이 본문 첫머리의 말씀입니다. 이 세상 살면서도 걱정하지 말고 죽고 난 후 어떻게 어디로 갈 것인지 걱정하지 말라고 말씀하십니다.
여러분, 북한핵 때문에 걱정 많으시죠? 만약 전쟁이 나면 어떻게 할 것인가? 또 우리 자녀들 때문에 걱정이 많습니다. 당장 내일모레 수능시험이 있는데 시험을 그르치면 어떻게 할 것인가? 결혼한 자녀들 때문에도 걱정이 많습니다. 내가 있을 때는 도와주기도 하고 위로도 해줄 수 있지만 내가 가고 나면 어떻게 할 것인가? 우리 힘으로는 어쩔 수 없는 일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주님께서는 너희들은 천국에 가더라도 내가 있지 않느냐? 하나님이 계시지 않느냐 걱정하지 말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 주님께서는 공중의 새를 보라 심지도 않고 거두지고 않고, 창고에 모아두지도 아니하되,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기르시나니 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 예배당 뒤에 뜰이 있는데 여기에 새가 대단히 많습니다. 지난봄에는 숲에서 장탉같은 것이 나오는데 꿩이었습니다. 그 뒤에 병아리 같은 새끼가 네 마리나 따라오는데 얼마나 예뻤는지 모릅니다. 세월이 지나면서 조금씩 조금씩 자란 그들이 어느 날 아빠가 되어서 나타났습니다. 꼬리가 길고 예쁜 장끼였습니다. 똑같은 놈이 두 놈이었는데 자세히 보니 일전에 보았던 새끼 중 두 놈은 암놈이었고 두 놈은 수컷이었던 것이었습니다. 우리 주님께서는 심지도 않고 거두지도 않고 창고에 모으지도 아니하되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기르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물며 너희들은 내 아들이고 딸이지 아니하느냐? 그 참새들보다 얼마나 귀하냐? 너희가 어찌 의복을 위하여 염려하느냐? 들의 백합화가 어떻게 자라는가 생각하여 보라고 말씀하십니다. 오늘 있다가 내일 아궁이에 던져지는 들풀들도 챙기시는데 내 아들 딸들은 오죽 챙기시겠는가 라는 것이 오늘의 말씀입니다. 잠시 지나가는 이 세상에서 여러분들이 먹고 입고 마시고 살 집을 챙겨주시는데 영원한 저 세상에서 살아가야 할 것은 오죽 챙기시겠느냐라고 말씀하시는 것이 바로 1절의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는 말씀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을 믿으십시오.
두 번째 우리가 볼 것은 2절 내 아버지 집에 거할 것이 많도다 라는 말씀인데 이 말씀은 유대인들의 관념, 생각을 바탕으로 하여 하신 말씀입니다. 유대인들의 생각은 우리의 생각과 많이 비슷합니다. 유대인들은 사람이 죽으면 저 세상에 가는데 저 세상에서 살아가는 삶에는 여러 단계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 단계는 이 세상에 살면서 어떻게 살았느냐에 따라 결정된다고 생각했습니다.
유대인들의 책 가운데 ‘에녹의 비밀’이라는 책이 있습니다. 그 책에는 앞으로 다가오는 세상에는 많은 주택이 마련되어 있다. 선에는 선, 악에는 악이 마련되어 있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 말씀은 선을 행한 사람에게는 선한 사람들이 살 집을, 악을 행한 사람에게는 악을 행한 사람들이 살 집이 따로 마련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하늘에는 궁전과 같은 어마어마한 곳이 있어서 그 곳에는 각각에게 합당한 방들이 마련되어 있는데 각자 합당하게 들어가서 산다고 그 책은 말하고 있습니다. 유대인들은 한국 사람들과 같은 셈족 계통이기 때문에 생각이 별 차이가 없습니다. 천국에는 성도들을 위해서 아름답고 훌륭한 집이 충분히 마련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오늘 2절의 말씀 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도다 중에 가장 엑센트가 주어지는 것이 '많도다' 입니다.
사람들이 농담 가운데 예수믿는 사람들이 너무 많아서 나중에는 천국에 들어갈 자리가 없다고 말하는데 농담만은 아니라 이 세상 삶을 반영시키는 것 같습니다. 집 한 채 사기가 얼마나 힘듭니까? 아무리 지어도 모자라는 주거 환경 속에서 늘 아쉬움에 사는 그런 마음을 비춰주는 것입니다. 그러나 천국은 아무리 많은 성도들이 들어와도 충분히 살 곳이 준비되어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빨리 가지려고 애쓸 필요도 없고 다 최고이므로 더 좋은 집 가지려고 애쓸 필요도 없습니다. 이 말씀이 바로 ‘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도다’ 입니다.
하나 더 생각해야 할 것은 마찬가지 2절의 말씀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일렀으리라 라는 말씀입니다. 이 말씀은 하나도 거짓됨이 없고, 과장됨이 없다는 것입니다. 정말로 훌륭한 집을 충분하게 마련해두었으니 내 말을 믿어도 된다고 말씀하십니다. 세상 사람들은 자꾸 과장하고 사람들을 끌기 위해서 거짓말을 합니다. 실제로 우리들도 많이 그렇습니다. 그러나 우리 주님께서는 항상 정직한 것만 말씀하십니다. 때로는 우리 주님께서는 힘들고 어려운 것을 강조하고 더 강하게 우리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믿는 사람들에게 복음을 받으라고 말씀하시면 좋겠지만 혹 우리들이 좋은 것만 받는 것으로 착각할 것이 염려스러워 우리 예수님께서는 복음과 함께 고난도 받는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누구든지 당신을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자기를 부인하는 일이 얼마나 힘든 일입니까? 어떻게 하든 간에 자기를 드러내려고 하는 세상인데 우리 주님께서는 예수믿는 사람들은 자기를 부인하는 사람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또 예수님께서는 당신을 따라오는 사람은 짐을 덜어주겠다고 말씀하시는 것이 아니라 자기 십자가를 다 지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 주님께서는 이렇게 정직하십니다. 심지어 성경은 신약 첫머리에 성경의 주인이신 예수님의 족보를 말씀하실 때 가장 부끄러운 일들만 골라서 말씀하셨습니다. 수많은 사람들 가운데서도 예수님이 가장 부끄러울 수 있는 사람들의 이름, 많은 사람들이 오해할 수 있는 사람들의 이름을 골라 써 넣으셨습니다. 그런데 이런 우리 주님께서 본문에서는 내가 천국에 여러분들의 집을 준비해 놓았다고 자신있게 말씀하십니다. 최고의 천국, 가장 멋진 천국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저는 바다를 좋아해서 바다를 자주 보고 싶은데 너무 멀어 잘 가지 못합니다. 그래서 때로는 빨리 다 정리하고 바닷가에 조그마한 집에서 살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주님께서는 우리가 이 세상에서 바라볼 수 있는 그 어떤 바다보다도 더 멋진 천국,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최고의 푸른 초장보다 더 멋지고 아름답고 평화로운 곳에 여러분의 집을 마련해두었다고 말씀하십니다. 찬송가 222장은 천국을 여러 가지로 노래하고 있습니다. 아마 모든 성도들이 소망하는 것일 것일진대 어쩌면 우리 하나님께서는 이것보다 더 좋은 천국을 준비해두셨을 것입니다. 보아라 즐거운 우리 집 밝고도 거룩한 천국에 거룩한 백성들 거기서 영원히 영광에 살겠네/ 앞서 간 우리의 친구들 광명한 그 집에 올라가 거룩한 주님의 보좌 앞 찬미로 밤낮을 즐기네/ 우리를 구하신 주님도 거룩한 그 집에 계시니/ 우리도 이 세상 떠날 때 주님과 영원히 살겠네/ 우리의 일생이 끝나면 영원히 즐거운 곳에서 거룩한 아버지 모시고 기쁘고 즐겁게 살겠네/ 밤낮으로 노래하는 곳, 우리가 이름을 불렀던 그 예수님과 함께 하는 그 천국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또 제가 제일 좋아하는 찬송가 290장 3절에는 참 좋은 내용이 있습니다. ‘날 구원하신 주 모시옵고 영원한 영광을 누리리라 그리던 성도들 한자리 만나리 돌아갈 내 고향 하늘나라‘ 여러분, 저는 만나고 싶은 사람이 참 많습니다. 그 중에는 우리 교회에서 신앙생활 함께 하다 먼저 가신 교우들도 있습니다. 제가 가면 그 분들은 벌써 왔노라고 말씀하실 것입니다. 천국은 천년이 우리의 하루도 되지 않습니다. 천국은 걱정과 근심이 없는 곳이라고 우리 주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또 이것은 틀림없는 일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은 바로 그 천국에 여러분들의 집, 우리 집을 마련해두셨습니다. 그 천국에는 아무것도 필요 없습니다. 단 하나 예수님을 믿기만 하면 됩니다. 나의 주님을 믿기만 하면 됩니다. 그것만 하면 됩니다. 이 시간 여러분 스스로 자신을 한 번 확인해보십시오. 여러분은 예수님을 여러분의 주님으로 믿고 있습니까? 혹시 아직 여러분 가운데 예수님을 나의 주님으로 믿지 않는 사람, 영접하지 못한 사람이 있다면 이 시간 ‘아멘’으로 예수님을 영접하십시오. 다른 것은 필요 없습니다. ‘저는 이제부터 예수님을 나의 주님으로 믿습니다.’ 이 고백만 하면 됩니다. 이 고백이 하나님의 생명록에 기록되면 그때부터 여러분은 하나님의 아들이 되고 딸이 되고 하나님께서,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해서 천국에 준비해두신 멋지고 아름다운 평화의 집이 여러분의 것이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