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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국 견문록 (계 21:1~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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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국 견문록 (계 21:1~22:5)



오늘날 세계를 가리켜 흔히 ‘지구촌’(Global Village)이라 부릅니다. 옛날에는 그렇게 부르지 않았는데, 지구가 작아졌다는 말입니까? 그게 아니라 교통의 발달로 많은 사람들이 세계 각처를 여행하고, 통신의 발달로 서로 긴밀하게 연락함으로써 서로 가깝게 느끼게 되었다는 뜻입니다. 심지어 안방에서 TV를 통해 세계 각처의 모습을 보기도 합니다. 마치 세계를 손바닥에 놓고 보는 것과 같습니다. 그런 점에서 보면 ‘지구촌’이란 말이 아주 적절합니다.

그런데 옛날에는 세계가 지금과 동일했음에도 불구하고 서방과 동방이 서로 전혀 모르고 살았습니다. 자기들만 최고이고 다른 세계는 없다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그런 가운데 14세기 초 유럽에 충격적인 사건이 있었습니다. 한 책이 출간되면서 동방 세계가 열린 것입니다. 그 책은 바로 마르코 폴로의「동방견문록」입니다. 그는 20년 이상 몽골, 중국, 인도, 티베트 등지를 여행하였고, 그 체험담을 기록했습니다. 거기 보면 동방의 문물들이 소개되어 있는데, 당시 유럽 사람들이 볼 때는 너무 신기한 것들이었습니다. 이 책은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고 성경 다음의 베스트셀러가 되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하도 신기하다 보니까 공상소설로 치부했고, 많은 유럽인들이 그 내용을 사실로 믿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마르코 폴로 같은 사람’이라고 말하면 사기꾼, 거짓말쟁이라는 욕설이 될 정도였습니다. 물론 세월이 흐르면서 모든 내용이 사실로 판명되었습니다. 유럽인들 중 앞서 믿고 동방으로 진출한 사람들은 크게 수지맞았는데, 그 대표적인 사람이 콜럼버스입니다. 그가 신대륙을 발견하게 된 것도 이 책을 탐독한 결과였다고 합니다.

여러분, 제가 왜 이런 말씀을 드립니까? 많은 사람들은 직접 가 보지 않는 곳은 믿으려고 하지 않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것은 아주 어리석은 태도입니다.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이 미국에 가보지 않았다고 미국이 없다고 우긴다면 얼마나 어리석은 일이겠습니까? 자기가 직접 가본 적이 없어도 먼저 보고 온 사람이 말하면 겸손히 받아들일 줄 아는 게 지혜입니다. 그래야 자기도 나중에 가볼 기회를 얻게 됩니다.

천국도 마찬가지입니다. 천국은 분명히 존재하는 또 다른 세계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자기가 가 본적이 없다고, 눈으로 불 수 없다고 천국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우깁니다. 아니면 막연히 죽으면 좋은 데가 있겠거니 하고 삽니다. 그런다고 저절로 천국에 가는 게 아닙니다. 천국이 분명히 존재하는데, 또 지옥도 존재하는데 그렇게 모호한 태도로 인생을 산다면 얼마나 어리석은 겁니까? 나중에 가서 후회해도 소용이 없습니다. 미리 알아보고 미리 준비해야 합니다. 그런 사람이 지혜로운 인생입니다. 그러기 위해 우리에게 제공된 책이 있습니다. ‘천국견문록’입니다. ‘요한계시록’ 중에서 특별히 21장~22장 부분입니다. 요한계시록은 예수님의 12사도 중 요한이 밧모섬에서 특별계시로 보고 들은 것을 기록한 책입니다. 21장~22장에 천국에 대한 이야기가 소개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이 대목을 ‘천국견문록’이라 불러봅니다. 마르코 폴로의 동방견문록을 믿지 않았던 사람들이 어리석었던 것처럼, 천국견문록을 믿지 않으면 어리석은 사람이 됩니다. 저와 여러분은 천국견문록을 잘 읽고 깨달아 천국을 확신하고 천국에 들어가는 복된 인생 되기를 축원합니다.

[1] 천국의 광경

천국은 어떻게 생겼을까요? 그 광경이 요한계시록 21장 1절부터 22장 5절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계21:1 보면 ‘새 하늘과 새 땅’은 언급하는데, 이 세상과 전혀 다른 새로운 세계를 의미합니다. “또 내가 새 하늘과 새 땅을 보니 처음 하늘과 처음 땅이 없어졌고 바다도 다시 있지 않더라” 그 중에 새 예루살렘 성이 있습니다. 이것은 지상의 예루살렘과 구별되는 ‘새’ 예루살렘으로 장차 성도들이 들어가 살게 될 거주지입니다. 얼마나 아름다운지 뭐라고 표현합니까? “ ... 그 예비한 것이 신부가 남편을 위하여 단장한 것 같더라”(계21:2) 그리고 그 성에는 하나님의 영광의 빛이 가득하고, 보석 같으며, 벽옥으로 쌓여 있고, 유리같이 맑은 정금으로 되어 있습니다.(계21:11) 그 성의 문은 열두 진주 문이고, 그 기초석은 열두 가지 보석으로 되어있습니다.(계21:19~21)

이런 모습을 나름대로 상상해 보면 새 예루살렘에 얼마나 화려하고 아름다운지 알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것은 천국의 실제 모습과 비교가 안 됩니다. 왜냐하면 인간의 언어적 한계 때문입니다. 전혀 새로운 것을 보았는데, 어떻게 기존의 사물을 표현하던 언어로 정확히 표현할 수 있겠습니까? 다만 인간 세계에서 가장 귀하고 아름다운 것에 비유해서 표현한 것에 불과합니다.

이런 예를 들어보면 이해가 되실지 모르겠습니다. 지금이야 비행기 하면 말하는 사람이나 듣는 사람이나 명확하게 이해하지만, 옛날 비행기가 처음 나왔을 때 그것을 본 사람이 어떻게 표현할 수 있었겠습니까? “쇠붙이가 큰 새처럼 날아다닌다.” 기껏해야 이 정도로 표현할 수밖에 없었을 겁니다. 마찬가지로 성경에 기록된 표현들 역시 한계가 있다는 겁니다. 그러므로 천국의 실제 모습을 그 이상 이상으로 아름답고 화려한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어떤 목사님이 학생들과 성경공부를 하다가 설명이 더 이상 안 되니까 이렇게 이야기했답니다. “천국은 하여튼 좋은 곳이다.” 정말 그렇습니다. 천국의 광경을 다 설명할 수 없지만 하여튼 좋은 곳입니다. 그리고 이 세상에서 아무리 아름답고 좋은 데가 있다고 할지라도 그곳과 비교할 수 없이 좋은 곳이 바로 천국입니다. 분당 신도시가 처음 조성되었을 때 이런 말이 유행했습니다. “천당 밑에 분당!” 분당에 사시는 분들은 좋으시겠습니다. 하지만 분당하고 천국하고 어디 감히 비교할 수 있겠습니까? 캐나다 밴쿠버도 살기 좋다고 하죠. 그곳에 아주 경치 좋은 데가 있는데, 천당에 버금간다는 의미로 한국 사람들이 ‘999당’이라 부른다고 합니다. 아무리 그래도 어찌 천국과 비교할 수 있겠습니까?

천국의 광경에 대해서는 더 이상 자세히 설명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도 그렇게 자세히 설명해 주시려고 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그냥 천국의 실재를 말씀하시면서 대충 이러 이러한 데라고 말씀해 주실 뿐입니다. 그러면 왜 그렇게 대충 말씀하실까요? 인간의 언어적 한계 때문에 해도 제대로 못 알아듣기 때문이고, 또 하나는 너무 자세히 알려주면 천국에 들어갈 때 감격이 줄어들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스펄전 목사는 이렇게 해설합니다. “하나님은 성도들을 위해 천국에서 깜짝 파티(Surprise Party)를 준비하고 계시기 때문에 천국에 관해자세하게 설명해 주지 않으셨다.” 장차 천국에 척 들어가면 그 광경이 너무 놀라워 저절로 입이 딱 벌어지고 “야~ ”하는 탄성이 나올 겁니다. 천국은 그토록 좋은 곳입니다.

[2] 천국의 생활상

그러면 천국에 들어가서 어떤 생활을 하게 될까요? 좋은 환경 이상으로 어떻게 생활하느냐가 중요합니다.
① 고통이 없는 생활 :
이 세상에서는 아무리 행복하게 사는 사람이라도 다 고통이 있기 마련입니다. 남 보기에는 그럴 듯해 보여도 뚜껑을 열고 보면 다 인생고가 있습니다. 그러나 천국에서는 모든 고통이 사라집니다. 계21:4 “모든 눈물을 그 눈에서 씻기시매 다시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니 처음 것들이 다 지나갔음이러라” 눈물도 고통도 질병도 사망도 없을 겁니다. 계21:25 보니까, 천국에는 밤이 없고 항상 낮입니다. 성문을 항상 열어 놓습니다. “성문들을 낮에 도무지 닫지 아니하리니 거기는 밤이 없음이라” 밤은 휴식을 위해 필요합니다. 밤이 없다는 것은 휴식이 필요 없을 정도로 피곤이 없고 안식만 있을 것이란 뜻입니다. 계22:3 에서는 “다시 저주가 없으며 ... ” 그랬고, 계22:5에서는 “ ... 저희가 세세토록 왕 노릇 하리로다” 그랬습니다. 아무 고통 없이 참 안식 가운데 왕처럼 산다는 말씀입니다.

② 영생 복락의 생활 :
계21:6 보면 생명수 샘물을 값없이 준다고 했습니다. “ ... 내(=예수)가 생명수 샘물로 목마른 자에게 값없이 주리니 ... ” 이것은 영생과 기쁨을 의미합니다. 천구에서는 목마름이 없습니다. 말하자면 불만이 없다는 겁니다. 계22:1~2은 또 이렇게 말씀합니다. “또 저가 수정같이 맑은 생명수의 강을 내게 보이니 하나님과 및 어린 양의 보좌로부터 나서 길 가운데로 흐르더라 강 좌우에 생명나무가 있어 열두 가지 실과를 맺히되 달마다 그 실과를 맺히고 그 나무 잎사귀들은 만국을 소성하기 위하여 있더라” 생명수 강이 흐르고 좌우 강가에 생명나무가 심겨져 있고 열두 가지 과실이 달마다 열립니다. 영생을 누리며 절대 기쁨, 절대 만족을 누리며 산다는 뜻입니다.

이렇게 말하면 어떤 분들은 이렇게 생각합니다. “혹시 그러면 천국에서의 생활이 너무 단조롭고 따분한 것은 아닌가?”하고 말입니다. 그건 몰라서 하는 말입니다. 이런 예를 생각해 보세요. 새장에 갇혀 사는 새가 있다고 합시다. 새장 속에 모이통, 물통, 인조 나무와 꽃 몇 가지, 사방을 둘러싸고 있는 창살, ... 그게 전부입니다. 그 안에서 짹짹거리며 푸득거리는 모습이 얼마나 궁색하고 답답합니까? 그런 새를 새장째 큰 숲으로 갖고 가서 새장 문을 열어놓고 풀어준다고 가정해 보십시오. 나무들이 가득하고, 꽃이 만발하고, 시냇물이 흐르고, 하늘은 높고 푸르고, ... 그 가운데 마음껏 날아다니면서 지저귀게 될 겁니다. 그런데 그 새가 “아~ 따분하다. 옛날에 살던 새장이 그립구나~” 이럴까요?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천국은 날마다 새롭고 날마다 신나는 곳입니다.

③ 하나님의 임재 체험의 생활 :
천국에서 가장 좋은 것은 하나님과 함께 한다는 사실입니다. 이 세상에서도 하나님을 만나는 것은 큰 감격입니다. 그러나 이 세상에서는 마음으로 느낄 뿐 눈으로는 볼 수 없습니다. 그러나 천국에서는 전혀 차원이 다릅니다. 계21:3 “내가 들으니 보좌에서 큰 음성이 나서 가로되 보라 하나님의 장막이 사람들과 함께 있으매 하나님이 저희와 함께 거하시리니 저희는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하나님은 친히 저희와 함께 계셔서 ... ” 하나님의 장막이 함께 있다는 것은 하나님이 그 백성들과 더불어 산다는 뜻입니다. 계22:4 보면 하나님의 얼굴을 뵙는다고 합니다. 그리고 계22:5 보면 하나님의 영광의 빛으로 비춰주신다고 합니다. 그 감격은 형언할 수 없는 것입니다.

한번은 신문에서 입양아 출신 여자 청년의 기사는 본 적이 있습니다. 그녀는 생후 9개월에 복지회를 통해 미국으로 입양되었습니다. 다행히 양부무가 잘 길러주셔서 줄리아드 음대를 졸업하고 음악인이 되었습니다. 한국에 와서 음악회를 하다가 알려져 생부와 만나게 되었습니다. 그 아버지는 고개를 숙인 채 말합니다. “얘~ 미안하다. 많이 고생했지. 잘 컸구나.” 사실 객관적으로 보면 그런 아버지를 뭐 그렇게 그리워하고 좋아할 수 있겠습니까? 그런데 그 딸은 이렇게 말합니다. “아녜요, 아버지. 나는 아버지를 만난 것만으로도 너무 기쁘고 행복해요.” 고작 4시간 만나고 미국으로 출발할 수밖에 없었지만 그렇게 좋아하는 모습이 너무 아름다워 보였습니다. 이것은 인간의 본능입니다. 아무리 양부모가 잘 해줘도 생부모를 그리워하는 마음이 있는 겁니다. 영적으로도 마찬가지입니다. 인간의 영혼은 창조주 하나님을 만나야 합니다. 그럴 때 진정한 만족이 있는 겁니다. 그 이전에는 참 만족이 없습니다. 그런데 천국에서 하나님을 매일 순간마다 만나고 그 임재를 체험할 수 있으니 얼마나 행복하겠습니까?

이처럼 천국에서의 생활상은 너무 아름답고 풍성한 것입니다. 이런 축복을 얻을 것이 분명하기에 천국을 확신하는 사람들은 이 세상 사는 동안에도 천국의 맛을 미리 봅니다. 비록 이 세상에 고난과 역경이 있지만 천국을 소망하는 가운데 위로받으며 승리하게 됩니다. 더 나아가 성결한 삶을 살게 됩니다. 천국에 들어갈 귀하신 몸을 함부로 굴릴 수 없기 때문입니다.

[3] 천국의 입국자격

가장 중요한 것은 그렇게 좋은 천국에 과연 내가 들어갈 수 있느냐 하는 문제입니다. 여러분 각자 자문해 보시기 바랍니다. “만일 오늘 밤이라도 하나님이 인생을 마감하라 하시면 내가 과연 천국에 들어갈 수 있는가?” 이 문제를 꼭 해결하셔야 됩니다.

어느 교회 주일학교에서 교사가 반 아이들을 데리고 성경공부 하는 시간이었습니다. 천국에 관해 가르치기 전에 아이들에게 질문을 던졌습니다. “얘들아! 천국은 너무 너무 좋은 곳인데 어떻게 하면 갈 수 있지?” 한 아이가 손을 들고 대답합니다. “예, 죽으면 갑니다.” 여러분, 어떻습니까? 그 아이의 말대로 죽으면 천국에 갑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천국은 죽으면 자동으로 가는 데가 아닙니다. 죽으면 자동으로 가는 데는 지옥입니다. 인간은 모두 죄인입니다. 원죄와 자범죄를 갖고 있는 죄인입니다. 예외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아무 조치를 하지 않고 그냥 살다 죽으면 자동으로 지옥에 갑니다. 말하자면 지옥 입국은 노 비자(No Visa)입니다. 하지만 천국은 아무나 들어갈 수 있는 데가 아닙니다. 죄인은 천국에 들어갈 수 없습니다. 계21:27을 보면 “무엇이든지 속된 것이나 가증한 일 또는 거짓말하는 자는 결코 그리로 들어오지 못하되 ... ”라고 분명히 말씀합니다.

그러므로 천국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먼저 죄 문제를 해결해야 됩니다. 그것을 천국 문에서 심사하게 됩니다. 계21:12 “크고 높은 성곽이 있고 열두 문이 있는데 문에 열두 천사가 있고 ... ” 천국 문 앞에 천사가 있다고 합니다. 입국을 통제하기 위함입니다. 계21:27 하반절 보시면 “ ... 오직 어린 양의 생명책에 기록된 자들뿐이라” 그랬습니다. 어린 양은 예수님을 가리킵니다. 예수님의 생명책에 그 이름이 기록된 사람들만 입국이 허락됩니다. 그러면 어떤 사람의 이름이 생명책에 기록될 수 있습니까? 예수 십자가 피의 대속을 믿는 사람의 이름입니다. 이것인 유일한 천국 입국의 심사기준입니다. 세상에서도 나라마다 입국 심사 기준이 다릅니다. 그 나라 나름대로 요구하는 게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천국에서도 입국 심사할 때 기준이 있는데, 그게 바로 예수님에 대한 믿음입니다. 믿으면 입국 허락, 믿지 않으면 입국 거절입니다. 그러므로 이 문제를 미리 해결해야 합니다. 천국 문에 가서 사정해봐야 어림없습니다. 오직 예수님의 십자가 피로 깨끗함을 받은 사람들만 천국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일단 예수님을 믿으면 천국에 들어가는 절차에 대해서는 걱정하지 않아도 됩니다. 천국이 정확하게 어디 위치하고 있는지 몰라도, 가는 길이 어디인지 몰라도 괜찮습니다. 요14:6에 보면 예수님이 유일한 길이라고 했습니다. 말하자면 예수님이 가이드가 되어주신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니까 전혀 염려할 필요가 없습니다.

여러분, 천국에 들어가기를 소원하십니까? 그렇다면 미루지 마십시오. 입국 비자를 미리, 당장, 즉시 받아두시는 게 좋습니다. 나중에 가서 후회해도 소용이 없습니다. 몇 달 전 새가족 환영회 모임에서 간증한 여 성도님이 생각납니다. 초등학교 6학년생 딸이 수년 전부터 전도를 하더랍니다. “엄마, 교회 가서 예수님 믿어야 돼요. 그래야 천국 갈 수 있어요.” 그 말이 마음에 걸렸지만 차일피일 미뤘답니다. “그래, 나중에 갈께.” 이런 식으로 여러 번 이야기를 했더니 어느 날 딸이 정색을 하면서 말하더랍니다. “엄마는 항상 그래. 아마 40세가 되어도 나중에, 50세가 되어도 나중에 그럴 거예요.” 그 말이 얼마나 마음에 찔렸는지, 그런 가운데 하나님께서 또 특별한 경험을 주셔서 교회가 나오게 되었다고 합니다.

사실은 이분만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늘 이런 식입니다. 나중에, 나중에 ... 그러나 나중에 예수 믿을 보장이 있습니까? 내가 내 인생을 마음대로 결정할 수 있습니까? 항상 기회는 지금입니다. 오늘 처음 오신 분들은 물론이고, 죄송하지만 그동안 교회 왔다 갔다 한 분들 중에 예수님을 정식으로 영접하지 않은 분들은 오늘 결정하시기 바랍니다. 안타까운 통계가 있습니다. 한국교회 교인들 중에서 25% 정도가 천국의 확신이 없다는 겁니다. 교회 안에도 불신자가 많다는 말이죠. 예수 십자가 대속을 믿고 죄 문제를 해결 받아야 합니다. 아무쪼록 오늘 여기 모인 저와 여러분 중에는 단 한 사람이라도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는 일이 없기를 바랍니다.

여러분!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문제가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여러분은 무엇을 위해 바쁘게 살아가고 있습니까? 이 세상에서 잘 먹고 잘 사는 문제입니까? 우리가 육신을 갖고 있기에 그 문제도 물론 중요하죠. 그러나 그보다 더 중요한 문제가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이 세상에서의 삶은 아무리 길어봤자 100년 안팎입니다. 너무 짧은 시간입니다. 반면에 내세는 영원합니다. 육신의 죽음에 잇대어 있는 영원한 내세에 내가 어떻게 될 것인가는 정말 중요하고 심각한 문제입니다. 부디 천국견문록을 통해 천국을 확신하시고 남은 생애 예수 믿는 신앙으로 승리하다가 장차 천국에 들어가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홍문수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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