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인과 노아의 믿음 (히 11:7)
본문
7믿음으로 노아는 아직 보지 못하는 일에 경고하심을 받아 경외함으로 방주를 예비하여 그 집을 구원하였으니 이로 말미암아 세상을 정죄하고 믿음을 좇는 의의 후사가 되었느니라<히브리서 11:7>
1. 시작하는 말
사람들은 과학적이라고 하면 정확한 것으로 여겨 신뢰하고, 신앙적이라고 하면 허구적인 것으로 여겨 신뢰하지 않는 경향이 있습니다. 세상적인 경험을 통해 얻은 교훈이라면 산 교훈으로 여겨 순종하지만,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하면 허구적인 신화로 여겨 순종하지 않는 경향이 있습니다. 더군다나 전문가들의 경험에 의한 지식이라고 하면, 더 이상 논할 필요가 없는 절대적 진리로 인정하여 순종합니다. 학자나 과학자를 비롯한 전문가라고 하면 현실적인 인물로 여겨 신뢰하고, 종교가라고 하면 비현실적인 인물로 여겨 신뢰하려고 하지 않는 경향이 있습니다. 이러한 경향이 초래하는 문제 중 가장 심각한 것은 생사화복과 영생을 주관하시는 하나님을 불신하게 하는 것입니다.
과학적 발명이란 새 것을 알고 만든 것이 아니라, 이러저러한 것에다 이러저러한 방법을 사용하면 이러저러한 것이 만들어질 것으로 가정하고 탐구한 결과입니다. 물론, 적지 않은 과학적 발명은 뜻밖의 결과나 실수의 산물이기도 합니다. 기존의 과학적 진리는 대개 새로운 과학적 발명이나 발견에 의해 뒤집어지곤 했습니다.
2. 노아의 믿음의 특징
노아는 과학 지식이나 과학 기술이나 경험적 지식이나 교훈을 맹신하는 대신에, 생사화복의 주관자이시며 영생의 구원자이신 하나님을 신뢰하여 순종하는 믿음으로 살았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노아가 과학 지식이나 기술이나 경험을 전적으로 부정한 것은 결코 아닙니다. 그 모든 것은 창조주 하나님께서 주신 두뇌와 노동력의 결실이며, 따라서 유한하고 불완전한 인간의 두뇌의 결실이므로 참조할 가치는 있으나, 전적으로 믿고 따를 절대적 진리는 아니라고 생각했습니다. 또, 과학 지식이나 기술은 어디까지나 하나님의 뜻을 실현하는 방편이 되어야 하고, 사랑을 위해 사용되어야 한다는 생각도 했습니다.
노아는 의롭다 하심을 얻은 사람답게 성령에 의한 믿음으로 하나님과 동행하는 생활을 했습니다. 창세기 6:5 이하를 보면, 하나님께서 땅 위에 사람을 창조하신 것을 한탄하시고 근심하실 정도로 사람들이 죄악을 엄청나게 행하고, 항상 악한 계획을 꾸몄다고 했습니다. 그러한 악한 사람들에 비해 노아는 완전한 자였습니다.
첫째, 그 노아는 과학 지식이나 경험, 육감이나 직관이 아니라, 하나님의 선물인 믿음으로 아직 보지 못하는 일에 경고하심을 받았습니다. 흔히 생각하는 것처럼, 우리가 본받아야 할 노아의 믿음이란 인간의 신뢰나 신념 같은 것이 아닙니다. 에베소서 2:8을 보면, “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라고 했습니다. 믿음도 구원도 다 하나님의 선물이라는 뜻입니다. 고린도전서 12:9에는 믿음을 성령의 은사라고 했습니다. 그 믿음이란 그리스도 안에 나타난 하나님의 사랑을 받아들인 인간의 전 인격적인 응답입니다. 머리로만 인정하거나 입술로만 고백하는 것이 아니라, 머리와 입술을 포함한 전 삶이 하나님께 부응하는 것입니다.
노아가 믿음으로 아직 보지 못하는 일에 경고하심을 받았다는 것은 인류의 죄악이 무르익어 터질 급박한 형편, 즉 하나님의 심판인 대홍수가 임박했다는 계시와 아무리 흉악한 죄인이라도 노아를 통한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방주에 들어가기만 하면 구원을 얻는다는 계시를 받았다는 뜻입니다.
둘째, 노아는 하나님의 계시인 경고의 말씀을 믿기만 하고 만 것이 아니라 그대로 순종했습니다. 하나님께 대해 두렵고 떨리는 공경심을 가지고 방주를 만들었습니다. 노아의 순종은 사람들의 머리로는 매우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노아 자신의 머리로도 납득하기 어려운 계시의 말씀이었지만, 하나님을 신뢰하는 믿음으로 말씀을 듣고 그대로 순종한 것입니다. 비가 오는 것을 보기는커녕, 비구름도 보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노아는 맑은 하늘 아래서 배에 관한 전문가들과 배를 만드는 기술자들을 동원해서 방주를 만들었습니다. 방주를 만드는 이유가 하나님의 심판의 경고 때문이라고 설명하는 노아는, 과학적인 지식과 기술이 있는 그들은 물론, 그 전언을 듣는 모든 사람들의 조롱거리가 되었습니다.
그 방주가 완성될 때까지 노아는 사람들에게 회개하고 하나님을 믿으라고 전도했고, 하나님께서는 그들이 회개하고 믿고 따르기를 기다리셨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회개하고 믿어 구원받을 기회로 가득 찬 나날을 조롱과 희롱으로 날려 보내고 말았습니다. 그런 그들 중 한 사람이라도 더 구원받도록 하시기 위해 하나님께서는 노아에게 명하신 대로 노아의 가족과 짐승들이 방주에 들어간 후에야 비로소 홍수의 심판을 시작하셨습니다.
하나님의 현실적 심판이란 인간에게 주시는 결정적인 회개의 믿음의 기회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마태복음 24:38 이하를 보면, 예수님이 그 안타까운 사건에 대해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홍수 전에 노아가 방주에 들어가던 날까지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장가들고 시집가고 있으면서 홍수가 나서 저희를 다 멸하기까지 깨닫지 못하였으니 인자의 임함도 이와 같으리라.” 최후 심판인 재림 때에도 다를 게 없다는 겁니다.
노아 시대와 재림 때뿐만 아닙니다. 그 어느 시대나 별다를 것이 없습니다. 특히, 과학만능주의와 황금만능주의가 판을 치는 현대에는 하나님을 부정하고, 하나님의 말씀은 허구적 신화로 여기고, 종교 지도자는 망상가 같은 존재로 여기는 경향이 더욱 심해지게 마련입니다. 일부 주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조차도 신앙을 하나의 교양 장신구로 여기고, 실생활에서는 돈이나 과학 지식, 전문가들이나 자기 자신을 따르고 있지 않습니까? 그 모두를 부정하라는 것이 아니라, 그 모두를 하나님께 종속시키라는 것입니다. 상대적인 것들을 절대자 위에 두어서는 안 되지 않습니까?
첫째, 전문가도 실수할 수밖에 없는 인간임을 알아야 합니다.
아르헨티나 미시오네스주에 사는 우고 갈반이라는 30대 절도범은 은행 앞에서 한 여인의 손가방을 낚아채 달아나다 여인의 비명을 듣고 달려온 경찰의 추격을 받자 주택의 담장과 지붕을 타면서 도주극을 벌렸습니다. 정신없이 도망가던 범인은 어느 담장 뒤편으로 숨으려고 넘어갔는데, 하필이면 경찰서 앞마당이었습니다. 물론, 근무 중이던 다른 경찰관들에게 붙들리고 말았습니다.
둘째, 과학자라고 다 도덕적인 인간은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서울대 등 3개 국립대 의대 교수들이 연구 보조비를 받고는 제자의 논문 등을 베낀 연구 보고서를 제출한 것이 적발되어 연구비 회수 조치를 당했다고 합니다.
슈퍼마켓에서 옷 속에 물건을 숨겨 나오다 적발된 아르헨티나 판사가 사법부 얼굴에 먹칠을 한데 이어 경찰서장이 옷가게에서 옷을 훔쳐 나오다 검거됐다고 아르헨티나 신문이 보도했습니다.
셋째, 첨단 과학 지식을 가진 전문가라도 심각한 폐해를 끼칠 수 있는 인간임을 알아야 합니다. 세계 최고의 선진 의학 시스템을 자랑하는 미국이지만, 의료사고로 매년 이천 백만 명이 고통을 당하고 있으며, 약 10만 명이 억울하게 죽는다고 합니다.
과학자들이 만든 핵폭탄은 군사 과학을 대표하는 무기라 할 수 있습니다. 어떤 이들은 북한의 핵 위협을 너무 과장해서는 안 된다고 하던데, 몰라서 그런 것이라면 한심하고, 알고도 그런 것이라면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습니다. 1945년 일본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떨어진, 길이 약 3m, 직경 1m, 무게 4t 밖에 안 되는 핵폭탄 2개 때문에 목숨을 잃은 사람만 31만 명이 넘었습니다. 그 후유증은 61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우리는 정말 세상 모든 것과 모든 사람보다 하나님을 더 믿고, 매사에 하나님을 인정하고, 말씀대로 순종하며 사는 겁니까?
어떤 소년이 늦잠을 자서 예배 시간에 늦게 되었습니다. 소년은 허둥지둥 옷을 입고 집을 나와 교회로 가면서 계속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제발 늦지 않게 해주세요.” “하나님, 제발 늦지 않게 해주세요.” 교회에 겨우 도착한 소년이 계단을 뛰어 올라가다가 그만 넘어지고 말았습니다. 그러자 한숨을 크게 쉬며 하늘을 보면서 말했습니다. “그렇다고 저를 미실 필요는 없잖아요.” (온맘닷컴)
우리 모두 하나님 아버지를 순진하게 믿고 사시기 바랍니다. 그래야만 노아처럼, 믿음으로 불신의 세상을 정죄하고,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하심을 얻는 후사가 될 수 있습니다.
3. 맺음말
강철왕 카네기가 철강업에 종사할 때입니다. 그가 공장을 순시할 때마다 늘 기쁨으로 성실하게 일하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마침 공장장 자리가 비어있던 터라 그에게 공장장을 맡기고 싶었습니다. “당신의 성실함을 보았소. 그 성실성으로 공장장 일을 한 번 해보지 않겠소?” 그러나 그는 “사장님, 저는 단순한 철공입니다. 철공 일에는 대통령이죠. 그러나 다른 일은 잘 하지 못합니다.”라고 했습니다. 그러자 카네기는 “당신 말이 옳소. 당신이 철공 일에는 대통령이니, 이 달부터 대통령의 봉급을 주겠소. 계속 기쁨으로 철공 일을 해 주시오.”라고 했습니다. 그는 카네기 철공 회사에서 최고의 봉급을 받는 사람이 됐습니다. (장태원, 지혜의 샘 시리즈)
우리 모두 생사화복을 주관하시는 하나님께 “주님, 저는 단순한 믿음의 사람입니다. 주님의 일에는 대통령이죠. 그러나 다른 일은 잘하지 못합니다.”라고 고백하시기 바랍니다. (최세창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