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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만하지 않은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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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만하지 않은 사랑
황준식 목사 [성경본문] 눅 18:9-12
9 ○또 자기를 의롭다고 믿고 다른 사람을 멸시하는 자들에게 이 비유로 말씀하시되
10 두 사람이 기도하러 성전에 올라가니 하나는 바리새인이요 하나는 세리라
11 바리새인은 서서 따로 기도하여 가로되 하나님이여 나는 다른 사람들 곧 토색, 불의, 간음을 하는 자들과 같지 아니하고 이 세리와도 같지 아니함을 감사하나이다
12 나는 이레에 두번씩 금식하고 또 소득의 십일조를 드리나이다



오늘은 사랑의 5번째 속성을 다루려고 합니다. 곧 교만하지 않은 사랑입니다.
다시 한번 사랑의 속성을 처음부터 점검해보면
사랑은 “오래 참고”
여기서 오래 참는 것은 고약한 사람을 향하여 오래 참는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둘째로 “사랑은 온유하며”여기서 온유는 친절. 배려. 자상. 자비하다는 말이라고 하였습니다. 이는 작은 일에서부터 시작합니다.
셋째로 “사랑은 투기하는 자가 되지 아니하며” (젤론)
사탄이 가장 많이 이용하는 인간의 죄성이라고 했습니다.
배은 망덕를 합리화시키는 자기 모순이요, 공동체를 파괴하는 주인공입니다.
그리고 질투로 다스림을 받는 인생은 언제나 비참한 인생이라 하였습니다.
지난 주에 넷째로, “사랑은 자랑하지 아니하며” (페르페르우오마이)
허탄한 자랑은 악한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특히 야고보서를 보면 세상적, 정욕적, 마귀적 지혜에 빠져 육신에 속할 때 반드시 나타나는 영적 증상은 “남의 흉, 자기 자랑”이라 하였습니다.
그러나 사랑에 속한 자는 오직 하나님을 자랑하고 그 분이 우리를 위하여 이루신 일들을 자랑합니다. 가장 위대한 일은 십자가와 부활이니 우리는 당연히 예수 그리스도를 자랑하며 그 십자가만을 자랑하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은 (사랑은) 교만하지 아니하며 <휘시오>
(휘시오)라는 그리스 원어의 뜻은 <puff up; be conceited; be proud of himself; be arrogant> 잘난척 하다. 고개를 바짝 들고 다니다. 거만하다. …교만하다는 뜻입니다.

여기서 교만이란 어떠한 공동체에서 자신이 참으로 중요한 사람이라고 느끼는 것입니다. 자신이 너무나 중요한 사람이라는 생각 때문에 언제나 부풀어 있는 마음입니다. 그래서 목이 곧은 것입니다.

이러한 교만이 조금만 발전하면 <과대망상>가가 되지요.

그러나 이 세상의 주관자가 되시는 하나님께서는 교만을 가장 싫어하시고 때가 되면 교만한 자를 심판하십니다.

다니엘 4장을 보시면, 느브갓네살이 교만하다가 하나님의 심판을 받는 장면이 나타납니다.

단 4장:
29 열 두달이 지난 후에 내가 바벨론 궁 지붕에서 거닐새
30 나 왕이 말하여 가로되 이 큰 바벨론은 내가 능력과 권세로 건설하여 나의 도성을 삼고 이것으로 내 위엄의 영광을 나타낸 것이 아니냐 하였더니
31 이 말이 오히려 나 왕의 입에 있을 때에 하늘에서 소리가 내려 가로되 느부갓네살 왕아 네게 말하노니 나라의 위가 네게서 떠났느니라
32 네가 사람에게서 쫓겨나서 들짐승과 함께 거하며 소처럼 풀을 먹을 것이요 이와 같이 일곱 때를 지내서 지극히 높으신 자가 인간 나라를 다스리시며 자기의 뜻대로 그것을 누구에게든지 주시는 줄을 알기까지 이르리라 하더니
33 그 동시에 이 일이 나 느부갓네살에게 응하므로 내가 사람에게 쫓겨나서 소처럼 풀을 먹으며 몸이 하늘 이슬에 젖고 머리털이 독수리 털과 같았고 손톱은 새 발톱과 같았었느니라

느브갓네살의 교만을 향하여 하나님께서 심판하시사 미친 사람이 되게 하시고 소처럼 풀을 먹고 머리털은 독수리 털처럼 되었고 손톤은 새 발톱처럼 되게 하셨습니다.

신약에서는 사도행전 12장을 보시면, 헤롯 아그립바 왕이 벌레에게 먹혀 죽게 되는 장면이 나옵니다. 이때 헤롯 아그립바가 심판을 받게 된 이유는 바로 교만 때문이었습니다.

행 12장:
21 헤롯이 날을 택하여 왕복을 입고 위에 앉아 백성을 효유한대
22 백성들이 크게 부르되 이것은 신의 소리요 사람의 소리는 아니라 하거늘
23 헤롯이 영광을 하나님께로 돌리지 아니하는 고로 주의 사자가 곧 치니 충이 먹어 죽으니라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는 교만을 꺽으시는 것입니다.

특히 잠언은 교만에 대하여 몇 가지 교훈을 말씀하는데요.
잠11:2
교만이 오면 욕도 오거니와 겸손한 자에게는 지혜가 있느니라

잠13:10
교만에서는 다툼만 일어날 뿐이라 권면을 듣는 자는 지혜가 있느니라

잠14:3
미련한 자는 교만하여 입으로 매를 자청하고 지혜로운 자는 입술로 스스로 보전하느니라

잠15:25
여호와는 교만한 자의 집을 허시며

잠16:5
무릇 마음이 교만한 자를 여호와께서 미워하시나니 피차 손을 잡고 뭉칠지라도 하나님의 심판을 면치 못하리라

잠16:18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요 거만한 마음은 넘어짐의 앞잡이니라

잠16:19
겸손한 자와 함께 하여 마음을 낮추는 것이 교만한 자와 함께 하여 탈취물을 나누는 것보다 나으니라

잠21:24
무례하고 교만한 자를 이름하여 망령된 자라 하나니 이는 넘치는 교만으로 행함이니라

잠29:23
사람이 교만하면 낮아지게 되겠고 마음이 겸손하면 영예를 얻으리라


특히 잠 21:4에서는 “교만한 것은 죄니라..”라고 분명하게 말씀하십니다.

예수님께서도 교만은 악한 것이요, 사람을 더럽게 하는 요소라 말씀하십니다.

막 7장:
20 또 가라사대 사람에게서 나오는 그것이 사람을 더럽게 하느니라
21 속에서 곧 사람의 마음에서 나오는 것은 악한 생각 곧 음란과 도적질과 살인과
22 간음과 탐욕과 악독과 속임과 음탕과 흘기는 눈과 훼방과 교만과 광패니
23 이 모든 악한 것이 다 속에서 나와서 사람을 더럽게 하느니라

인간의 부패한 죄성을 나역하는 롬1:30절에서는 비방하는 자요 하나님의 미워하시는 자요 능욕하는 자요 교만한 자요 자랑하는 자요 악을 도모하는 자요 부모를 거역하는 자요

딤전6:4에서는 교만한 자의 대인관계의 형태에 대하여,
저는 교만하여 아무 것도 알지 못하고 변론과 언쟁을 좋아하는 자니 이로써 투기와 분쟁과 훼방과 악한 생각이 나며

말세에 부패하고 타락한 인생의 주요 특징 중에 “교만”이 포함됩니다.

딤후3:2
사람들은 자기를 사랑하며 돈을 사랑하며 자긍하며 교만하며 훼방하며 부모를 거역하며 감사치 아니하며 거룩하지 아니하니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특히 성경에서는 자신의 의에 대하여 긍지를 느끼는 것을 상당히 심각하게 다룹니다. 사실 오늘 원어 (fusio,w )도 그 배경을 보면, 종교적인 배경으로서 인간들의 의를 근거로 하는 교만을 의미합니다.

오늘 본문은 종교적 교만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
바리새인들이지요.

눅 18:
9 ○또 자기를 의롭다고 믿고 다른 사람을 멸시하는 자들에게 이 비유로 말씀하십니다.
10 두 사람이 기도하러 성전에 올라가니 하나는 바리새인이요 하나는 세리라
11 바리새인은 서서 따로 기도하여 가로되 하나님이여 나는 다른 사람들 곧 토색, 불의, 간음을 하는 자들과 같지 아니하고 이 세리와도 같지 아니함을 감사하나이다
12 나는 이레에 두번씩 금식하고 또 소득의 십일조를 드리나이다


제가 영적인 멘토로 모시는 분이 오스왈드 챔버라는 분이십니다.
그 분의 깊이가 너무 깊어서 그 분의 글을 읽을 때면 머리가 조아려 집니다.
그런데 그 분의 글을 보면, 이 세상에서 가장 악한 죄가 무엇인가?
바로 사탄이 하나님을 흉내내는 것이라고 합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새생명이 없는 자들이 새생명을 흉내내는 것이 악한 것이요,
또한 육체가 성령의 열매를 흉내내는 것이 가장 큰 악이라고 지적하고 있습니다.

바로 이것은 깊은 영적 위선이요, 진리를 훼방하고, 영생을 모독하는 행위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한 맥락에서
고린도후서 11장을 보면,
13 저런 사람들은 거짓 사도요 궤휼의 역군이니 자기를 그리스도의 사도로 가장하는 자들이니라
14 이것이 이상한 일이 아니라 사단도 자기를 광명의 천사로 가장하나니
15 그러므로 사단의 일군들도 자기를 의의 일군으로 가장하는 것이 또한 큰 일이 아니라 저희의 결국은 그 행위대로 되리라

창세기 3장을 보면, 인류의 처음 타락인, 아담과 하와가 선악과를 따 먹는 내용이 나옵니다.
이때 아담과 하와가 선악과를 따 먹는 동기를 보면, 하나님처럼 되길 원하는 마음 때문입니다. 즉 피조물의 선을 넘어서서 하나님이 되어 보겠다는 것입니다.
이는 아담과 하와의 동기가 인간 이하로 떨어지겠다는 동기가 아니라 오히려 인간의 한계를 넘어서 하나님의 자리까지 승진하겠다는 동기입니다.

여러분! 이것이 교만입니다. 자신의 힘과 꾀로 하나님의 자리까지, 또는 하나님처럼 되겠다는 것이 교만인 것입니다. 이것이 타락의 시초요 하나님의 진노를 사는 마음과 행위였던 것입니다.

곧, 인류의 첫째 죄악은 하나님의 영광을 찬탈하고 스스로 하나님이 되려고 한 것입니다.

사탄의 타락도 마찬가지입니다.
사 14장에
11 네 영화가 음부에 떨어졌음이여 너의 비파 소리까지로다 구더기가 네 아래 깔림이여 지렁이가 너를 덮었도다
12 ○너 아침의 아들 계명성이여 어찌 그리 하늘에서 떨어졌으며 너 열국을 엎은 자여 어찌 그리 땅에 찍혔는고
13 네가 네 마음에 이르기를 내가 하늘에 올라 하나님의 뭇별 위에 나의 보좌를 높이리라 내가 북극 집회의 산 위에 좌정하리라
14 가장 높은 구름에 올라 지극히 높은 자와 비기리라 하도다
15 그러나 이제 네가 음부 곧 구덩이의 맨 밑에 빠치우리로다

따라서 교만은 사탄의 타락에 그 뿌리를 두고 있는데, 이는 하나님 같이 되려는 것이요, 하나님께 무엇인가를 받기 보다는 스스로 뭔가를 소유하여 하나님이 되길 원하는 마음이 교만인 것입니다.
이 교만한 마음이 소유하고 싶은 것 중에 가장 큰 것이 바로 “의”인 것입니다.

따라서 성경을 보시면 두 가지의 의가 싸웁니다.
< 하나님께서 그리스도를 통하여 예비하신 의가 있습니다. 이는 오직 은혜로 받을 수 있으며 복음을 믿음으로 얻게 되는 의입니다.
반면 인간이 세우는 자신의 의가 있습니다. 바로 이 인간의 의가 이 세상의 모든 종교가 추구하는 것이요, 그 깊은 마음 속에는 교만이 자리잡고 있는 것입니다. >
그러므로 교만의 끝인 저 깊은 바닥으로 떨어지게 되는 것이니 복음을 거부하고 자신의 의를 구하는 모든 자들마다 음부 곧 구덩이의 맨 밑에 빠치우게 되는 것입니다.

Von Rad 라는 위대한 신학자는 교만에 대하여 깊게 성찰하길,
교만은 첫째되는 죄악으로 하나님에 대한 순종보다는 자율(자주)성 안에서 더 잘 살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라고 정의하였습니다.

< Reinhold. Niebuhr>
죄는 온통, 항상 어디서나 교만이다. 인간의 교만은 하나님을 향한 불순종과 불신앙의 구체적인 형태의 죄악들을 창출한다.

※ Reinhold. Niebuhr에 의하면, 죄의 첫 번째 형태인 교만에는 네 가지의 종류가 있다고 정의하고 있습니다.
① 권력의 교만 : 이것은 자기만족, 자기우월을 주장하고 자기들의 지위가 언제나 안정되어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의 교만입니다.
② 지적 교만 : 이것은 진리에 대한 자신의 이해의 한계성, 편파성을 알지 못하고 자신의 지식이 남보다 더 우월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의 교만입니다.
③ 도덕적 교만 : 이것은 타인이 자신의 높은 독단적인 표준에 일치하지 않는 다는 이유로 그를 정죄하는 사람들의 교만입니다.
④ 영적(혹은 종교적) 교만 : 이것은 자신의 도덕적 교만을 하나님의 권위를 빌려 스스로 인준하려고 시도하는 사람들의 교만입니다.

특히 마지막 영적 교만은 우리의 마음 속에서 가장 잡기 힘든 무서운 악입니다.
다른 죄악들은 쉽게 들통나고 걸리는데, 유독 이 영적 교만의 악은 잡기도 힘들고 드러내기도 힘듭니다. 그만큼 위장 기술에 있어 첨단을 달리는 악이 영적 교만인 것입니다. 그래서 그 완변한 위선과 위장 기술로 많은 사람들이 속습니다.
곧 영적으로 교만한 사람에게 사람들이 모이기도 한다는 사실입니다.

여러분! 이 영적 교만은 먼저 스스로 신앙이 깊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큰 병입니다.
그러나 이 병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자신의 신앙을 철저히 파괴합니다.
그래서 영적 교만에 빠진 자들은 자기 자신에게도 많은 해를 끼치며 또한 교회 공동체에 얼마나 큰 피해를 입히는지요, 그 손실은 말로 다 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스스로는 믿음이 깊다고 착각한다는 사실입니다.
삶의 열매도 없고 교회에 덕 보다는 피해를 끼치면서도 자신의 교만의 병을 보지 못합니다. 보통 남의 티는 너무나 잘 보여 심한 질타와 비방을 하지만, 그런데 자신의 들보를 보지 못하는 사람들이 여기에 해당합니다. 특히 이단들에게 이 병이 아주 심하지요.

심지어 양심대로 산다고 하는 사람들 가운데 이런 교만한 사람들이 많습니다.
이들은 자신의 의를 쌓는 것에 신경을 씁니다. 그래서 이들은 십자가를 깨닫지 못합니다. 십자가를 필요로 하지 않습니다. 예수님의 보혈이 감사함으로 다가오지 않습니다. 따라서 복음의 능력도 알지 못하며 복음의 능력을 체험치도 못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을 보면,
잠 16:2
사람의 행위가 자기 보기에는 모두 정직하여도 여호와는 심령을 감찰하시느니라

잠 21:2
사람의 행위가 자기 보기에는 모두 깨끗하여도 여호와는 심령을 감찰하시느니라

어떤 사람이 선행과 덕이 많고, 양심적으로 살고, 거짓이 없는 것 같아도 마음을 지으신 하나님께서는 그의 마음을 들여다보고 계신다는 말입니다. 곧 하나님은 속지 않으시는 것이지요.


그래서,

눅 16:15 (찾)
15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는 사람 앞에서 스스로 옳다 하는 자이나 너희 마음을 하나님께서 아시나니 사람 중에 높임을 받는 그것은 하나님 앞에 미움을 받는 것이니라

이 말씀을 따르면 심지어 외면적인 선행으로 사람들에게 칭찬 받고 그러면서 스스로 의로운 자라고 믿는 것조차 죄라는 뜻입니다.
종종 양심을 따라 살고, 욕심도 덜 부리고, 따라서 스스로 자신의 의로움에 만족하는 사람들을 종종 볼 수 있는데, 그럼에도 그리스도께서는 그들의 마음의 부패를 지적하시고 온 세상 사람이 한 사람도 빠짐없이 다 죄인임을 드러내십니다.

심지어 아무것도 모르는 어린 아이들까지 죄 중에서 태어난다고 하십니다.
(시 51:5)
5 내가 죄악 중에 출생하였음이여 모친이 죄 중에 나를 잉태하였나이다
(시 58:3)
3 악인은 모태에서부터 멀어졌음이여 나면서부터 곁길로 나아가 거짓을 말하는도다

따라서 성경은 율법으로 인하여 온 세상이 죄의 권능 아래 있다고 하며,
(롬 11:32),
32 하나님이 모든 사람을 순종치 아니하는 가운데 가두어 두심은 모든 사람에게 긍휼을 베풀려 하심이로다

구약의 인물 중 가장 의로운 사람을 들라고 하면 욥이라는 인물이라 하겠습니다.
욥은 순전하며 온전한 자였습니다. 순전하고 온전한 사람이였습니다.
그러나 그가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삶과 마음을 돌아본 후의 그의 고백을 들어 보면,

(욥기 25장 4,5절)
그런즉 하나님 앞에서 사람이 어찌 의롭다 하며
부녀에게서 난 자가 어찌 깨끗하다 하랴
하나님의 눈에는 달이라도 명랑치 못하고
별도 깨끗지 못하거든
하물며 벌레인 사람,
구더기인 인생이랴

(욥기 15장 14,15절)
사람이 무엇이관대 깨끗하겠느냐
여인에게서 난 자가 무엇이관대 의롭겠느냐
하나님은 그 거룩한 자들을 믿지 아니 하시나니
하늘이라도 그의 보시기에 부정하거든
하물며 악을 짓기를 물 마심 같이 하는 가증하고 부패한 사람이겠느냐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 앞에서는 우리 모두 죄인입니다.
그리고 이것을 인정하는 사람만이 예수님을 영접하여 천국에 들어갑니다.
주께서 말씀하십니다.
"내가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 (마태복음 9장 13절)

(사 57:12)
내가 높고 거룩한 곳에 거하며
또한 통회하고 마음이 겸손한 자와 함께 거하나니
이는 겸손한 자의 영을,
통회하는 자의 마음을 소성케 하려 함이라.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나는 하나님 앞에서 죄로 인하여 병든 자입니다. 특히 이 교만의 병을 용서하소서.

이 시간 나는 교만한 사람인가? Biblical Psychology로 진단해 보시기 바랍니다.

교만한 자:
1) 배우기를 싫어한다. 특히 복음을 받지 못한다. 왜냐하면 자신이 의롭기 때문에. 이러한 자는 교만한 자입니다.
2) 하나님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자신의 힘으로 이루어 보겠노라고 한다. 이는 기도하지 않은 모습으로 나타납니다.
3) Unteachable: 언제나 자기 주장과 자기 생각이 옳다고 생각되어진다. 그래서 Mentor 가 필요없는 사람입니다.
4) 교만한 자는 교만한 자를 가장 싫어한다.
5) 위선으로 나아간다. 위장의 탈을 쓰며 거짓 위선으로 나아간다.
6) 어느 공동체에서나 내 맘에 들지 않으면 혼자 잘나서 다닙니다. 곧 권위 질서를 인정치 않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께서는 사랑하는 주의 백성이 교만케 되는 것을 싫어하십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친히 교만의 병에 대하여 수술하시는데
교만을 향한 하나님의 해결책은 십자가의 고통을 허락하시는 것입니다.
바로 삶의 고통입니다.

그래서 자신의 뜻대로 되지 않는 것입니다. 특히 가장 가까운
자녀들이나 아내, 남편을 통하여 자신의 모든 죄성이 다 드러나는 것입니다.
또는 자신과 같은 악한 자들을 만나 고통을 당하면서 자신의 죄성을 보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십자가의 고통 만이 교만에 대한 하나님의 답입니다.
이때 이 십자가의 고통이 그의 삶에 임할 때, 우리 마음으로부터 사탄이 멀리 쫓겨 나가고 위선된 교만이 드러나면서 무너지게 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사실 교만한 자에게 내리시는 하나님의 고통은 그에게 축복입니다.
왜요? 교만의 영적인 병을 고칠 수 있는 기회이기 때문입니다.

바로 이것이 바울의 변화 과정이었습니다.
그는 인간적으로 보았을 때 지독히 선하였지만, 그러나 바로 그 선한 그때가 그는 참으로 가장 악한 때였고, 스스로 거룩한 척, 겸손한 척 하였지만 실은 악마같은 모습이었고 교만의 극치를 달리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스스로를 가장 의롭게 여기던 그때가 사실 그는 포행자요, 살인자요, 괴수 중에 괴수였던 것입니다.

그러나 여러 고통을 통하여 예수 그리스도를 알게 되면서 참으로 겸손한 자가 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결국 참으로 섬기는 종의 신분으로 살 수 있었던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사랑의 사람은 자신이 중요한 사람이라고 주장하지 않습니다.
대신 언제나 도움이 되는 사람이 되고 사랑할 뿐입니다. 섬기는 자리로 내려갑니다. 묵묵히 섬길 뿐입니다.

약4:6
그러나 더욱 큰 은혜를 주시나니 그러므로 일렀으되 하나님이 교만한 자를 물리치시고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주신다 하였느니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자신이 너무나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시간이 지나면서 아무도 좋아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도 그를 싫어하십니다.
그러나 교만하지 않은 사람은 많은 사람들이 좋아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때가 되면 높여 주십니다. 그리고 마침내 영예를 얻게 되는 것입니다.
특히 이때 하나님께서 겸손한 사람에게 주시는 영예는 영원토록 변함없는 영예가 되어 하늘 나라의 면류관으로까지 이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사랑은 교만치 아니하며 …
겸손한 마음, 섬기는 사랑의 영으로 충만할 수 있도록 성령님께서 우리의 마음을 만져주시길 기도합시다.
그래서 더욱 남은 여생은 교만하지 않은 사랑을 이루어가면서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를 닮아가시길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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