억지로 진 십자가(막15:21-23)
본문
마침 알렉산더와 루포의 아버지인 구레네 사람 시몬이 시골로부터 와서 지나가는데 그들이 그를 억지로 같이 가게 하여 예수의 십자가을 지우고 예수를 끌고 골고다라 하는 곳(번역하면 해골의 곳)에 이르러 몰약을 탄 포도주를 주었으나 예수께서 받지 아니하시니라
옛날 어느 마을에 아주 마음씨가 좋은 부자 영감님이 살았습니다. 이 사람은 정이 많아서 가난한 사람을 보면 참지 못합니다. 그래서 도와주는 아주 착한 사람이었습니다. 하루는 그 마을에서 가장 가난한 목수를 불렀습니다. 그 목수에게 이렇게 말을 했습니다.
“여보게 우리 부부가 3개월간 여행을 하고 돌아 올 텐데, 그 3개월 동안 집을 잘 지어주게. 재료는 아끼지 말고, 돈 아끼지 말고, 그저 얼마가 들든 신경쓰지 말고 잘 지어주게나.” 그리고는 여행을 떠났습니다.
여행을 떠나자마자 이 목수가 갈등이 좀 느꼈지만 이 목수가 ‘야! 이런 기회가 평생에 또 오겠나! ’라고 생각을 하고는 싸구려 재료를 사고 싸구려 일군들을 사서 집을 대충대충 지었습니다. 그리고 이익을 많이 남겼습니다. 얼마 되지 않아서 금이 가고 비가 세고 그러니 서둘러 페인트를 사다가.. 다시 보수를 해 감쪽같이 메꾸고 땜질을 잘 해서 모양을 잘 갖췄습니다. 겉모양은 그럴듯한 집이었습니다.
어느덧 3개월의 약속시간이 되었습니다. 부자가 돌아왔습니다. 부자 앞으로 이 목수가 얼른 가서는 이렇게 말을 했습니다. “제가 3개월 동안 열심히 만든 집입니다.” 하고는 그 열쇠를 부자에게 건내 주었습니다. 그러자 그 부자가 그 목수에게 껄껄껄 웃으며 “3개월 동안 수고가 많았구만.. 정말 수고 많이 했어.. ” 그러면서 열쇠를 다시 이 목수에게 주며 “이 집은 자네와 자네 가족에게 주는 집이니 이 집에서 행복하게 살게”라고 말을 했습니다.
바로 그 순간 이 목수는 땅을 치며 통곡을 했지만 지나간 과거가 되고 말았습니다. 자기 자신에게 돌아올 집 인줄도 모르고 순간의 이익을 위해서 한순간의 판단을 잘못함으로 인해서 그는 큰 낭패를 보고 말았습니다.
[뿌린 대로 거둔다]는 말이 있습니다. 당장의 이익에만 눈이 어두워 은혜를 모르는 사람이 이 세상에 많이 있습니다. 이 사람은 축복의 기회가 왔음에도 불구하고 기회를 놓치고 말았습니다.
오늘 마가복음 15장에 우리에게 주시는 말씀을 잘 살펴보면 이 말씀 속에 대표적인 두 사람이 등장하고 있습니다. 한 사람은 로마의 총독이었던 당대의 권력자 빌라도라는 사람이고, 또 한사람은 오늘 본문에 나타나는 유대인의 명절인 유월절을 지키기 위해서 예루살렘에 찾아왔던 구레네 시몬이라는 사람이 등장을 합니다.
결론을 먼저 말씀드리면 한사람은 축복의 기회가 왔는데도 그 축복의 기회를 저주의 기회로 바꾸었고, 또 한사람은 본인의 의사와는 다르게 억지로 순종했지만은 결과적으로는 본인과 가족에게는 놀라운 축복이 이어졌다고 하는 귀한 말씀입니다.
오늘 본문을 잘 살펴보면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죽이기 위해서 당대 총독이었던 빌라도에게 예수를 고발합니다.
“빌라도 각하여! 예수라고 하는 자칭 유대인의 왕을 죽여주시오. 로마의 법을 어긴 사람입니다.”
그때 그 말을 듣고 있던 이 빌라도도 사실은 너무나 잘 알고 있거든요. 소문을 들어서 주변상황을 다 알고 있습니다. 예수가 죄가 없다는 사실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던 빌라도. 예수를 살려보려고 노력을 했으나 유대인의 저항이 너무나 무서워서, 유대인의 저항이 너무나 컸기 때문에 예수를 살려 줬다가는 내가 총독 짓을 해 먹지 못하겠다는 것입니다.
그 결국에 유대인들에게 인기를 얻기 위해서 정치생명을 유지하기 위해서 예수님에게 십자가 사형을 하라 합니다. 그러면서 빌라도가 어떻게 말을 하냐면 “나는 무죄하다 나는 상관없다.” 그들에게 손을 씻으면서 “나는 절대로 이 사건과 무관하니 이 죄는 유대인 너희들이 받아라.”라고 말을 합니다.
다시 살펴보세요. 이 빌라도라고 하는 사람에게 구원의 기회가 왔습니다. 예수님을 만나는 만남의 기회가 왔습니다. 천국이 보장되는 기회가 왔는데 그 기회를 포기했습니다. 오늘 우리가 하나님 앞에 와서 신앙고백을 했습니다. 나는 안 죽였다고 그를 항변을 하고 있지만 많은 성도들이 예배시간마다 신앙고백을 하면서 뭐라고 하는 줄 아세요? “본디오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으사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시고 ” 빌라도는 예수님을 죽인 살인자다 살인자다라고 하면서 역사를 통해서 지금 까지 믿는 성도들이 고백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직접 빌라도가 예수님을 죽이지는 않았지만 우리는 오늘도 신앙고백을 통해서 빌라도는 살인자다, 빌라도가 예수님을 죽였습니다. 고백을 하고 있습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서 살펴보면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죽이기 위해서 빌라도에게 예수를 데리고 갔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십자가를 지시고 골고다를 향해서 가셨습니다. 골고다에 가는 길에 수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의 모습을 지켜보고 있습니다. 무거운 십자가를 지신 예수님은 몇 번이나 쓰러지신지 모릅니다. 그러자 로마 군병들은 구경하고 있는 사람 중 한 사람을 지명을 해서 대신 그로 하여금 십자가를 지도록 하였습니다. 그 사람은 바로 구레네 시몬이라고 하는 사람입니다. 이 구레네 시몬이라고 하는 사람은 무슨 뜻인고 하니 ‘구레네에 사는 시몬’이라는 그런 뜻입니다. 이렇게 얘기를 하면 됩니다. 한남동에 사는 박씨, 이씨, 오씨라고 하면 됩니다. 구레네 시몬이라고 하는 말은 구레네에 사는 시몬이라는 그런 뜻입니다. 이 구레네라고 하는 지방은 아프리카 북쪽에 있는 작은 시골마을입니다. 그런데 이 시몬이라고 하는 이름은 아프리카 사람의 이름이 아니라 유대인의 이름입니다. 따라서 이 시몬이라는 사람은 유대인이지만 아프리카에 이민을 가서 살고 있는 사람이 분명합니다. 한국 사람들이 미국에 이민 가서 많이들 사십니다. 그래서 이름을 지을 때도 폴 김, 그레이스 이라고 이름 뒤에 이, 김, 박이 붙습니다. 미국 사람은 그런 이름을 붙이지 않습니다. 영어식 이름이지만 김이다. 이다, 박이다 하는 것은 다 한국 사람들이 그렇게 이름을 짓습니다.
마찬가지로 구레네에 이민 가서 살지만 시몬이다, 요한이다, 라는 말은 유대인이라는 말입니다. 그래서 그는 유대인이었기 때문에 유대인의 명절인 유월절을 지키기 위해서 예루살렘에 왔습니다. 이스라엘 민족은 전국에 흩어져서 살지만 일년에 한번, 유월절에는 고향에 와서 예배를 드리고 가는 풍습이 있습니다. 무슨 영문인지도 몰랐습니다. 그는 아프리카에 살고 있었기 때문에 자기의 조국에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전혀 모르고 있는데 유월절을 지키기 위해서 왔는데 아침에 유월절을 지키기 위해서 성전을 올라가는데 사람들이 왁자지껄하면서 사람들이 벌 떼가 돼서 모여 움직입니다. 무슨 일인가? 하고 구경을 갔습니다. 구경을 하는데 예수님이라고 하는 사람이 십자가를 지고 가는데 많은 사람들이 그를 따라가는 예수님을 향해 손가락질을 하고 욕을 하고 있습니다. 가다가 넘어지고 또 넘어지면 채찍질을 하고 무슨 영문인지를 모르겠습니다. 그냥 구경만 했습니다. 그런데 갑자가 로마 군병 가운데 한 사람이 “너 이리와 봐.” 불러 세웠습니다. 구경하다가 불려 나갔습니다. 그러더니 로마병정이 하는 말이 “네가 대신 십자가를 져라.” 라고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만약에 우리가 그 상황에 끌려 나가서 대신 십자가를 지라고 하면 뭐라고 하시겠습니까? 이것은 기가 막힌 노릇입니다 맑은 날에 날벼락, 아닌 밤중에 홍두깨가 아닙니까? 만약에 우리가 시몬이라고 한다면 어떻겠는지를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자기는 지금 예루살렘성전에 올라가서 유월절 예배를 드리기 위해서 여기까지 왔는데 대신에 흉악한 죄인이 드는 십자가를 대신 들고 땀을 뻘뻘 흘리며 골고다 언덕을 올라가야만 했다는 말씀! 세상에 이렇게 원통하고 억울할 때가 어디 있습니까?
그런데 중요한 것은 오늘 시몬이라고 하는 사람이 이렇게 원치 않는 십자를 졌는데 나중에 그에게 큰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성경 로마서16:13절을 보면 이런 말씀이 나옵니다. 잘 들어 보세요.
“주 안에서 택하심을 입은 루포와 그의 어머니에게 문안하라 그의 어머니는 곧 내 어머니니라”
여기서 사도바울이 편지를 쓰면서 문안하는데 어떻게 썼냐면 “루포에게 문안하라, 루포의 어머니는 나의 어머니다.” 사도바울이 고백을 했습니다. 그러면 오늘 성경에 본문을 잘 보시기 바랍니다. 알렉산더와 루포의 아비인 구레네 사람 시몬이라고 했습니다. 우리 다시 생각해 봅시다. 바울이 루포에게 문안하면서 루포의 어머니를 나의 어머니라고 했는데 이 루포가 누구라구요? 루포의 어머니가 누구입니까? 성경은 생각을 하면서 봐야 합니다. 무조건 그냥 ‘지당하신 말씀입니다’ 하고 듣기만 하면 안됩니다. 생각을 하면서 들으세요. 그냥 무조건 아멘만 하지마시구요.
다시 한 번 생각을 하고.. 오늘 본문을 읽습니다. 알렉산더와 루포의 아비인 구레네 사람 시몬, 구레네 시몬이 누구 아버지에요? 루포의 아버지 생각납니까? 그렇게 되어 있습니다. 루포의 아버지가 구레네 시몬입니다. 그런데 ‘루포의 어머니가 내 어머니다’ ‘내 어머니’라고 했습니다. 시몬의 아내가 ‘내 어머니다’라고 사도바울이 그렇게 고백을 했습니다. 대단한 축복입니다. 대 사도가 구레네 시몬의 아내를 가리켜서 내 어머니라고 고백을 했습니다. 그러면 루포와 바울은 어떤 관계입니까? 루포의 어머니도 이 여인이고, 바울의 어머니도 이 여인이면.. 둘은 무슨 관계입니까? 형제관계입니다. 형제처럼 가까운 사람이 되었습니다. 이유는 뭡니까? 시몬이라고 하는 사람이 억지로 십자가를 지고 난 후에 결과라는 것입니다. 비록 시몬은 억지로 십자가를 졌지만 그 결과 그 과정에 신앙의 훌륭한 가정이 되었다는 사실을 우리에게 이 말씀을 통하여 깨달을 수가 있다는 것입니다.
보세요. 빌라도에게도 기회가 왔습니다. 그는 축복의 기회를 포기했습니다. 예수를 죽인 살인자가 되고, 시몬에게 기회가 왔습니다. 억지로 십자가를 졌지만 하나님의 일꾼, 하나님의 가족이라고 하는 축복을 받았다고 하는 말씀입니다.
또 한군데를 보면 사도행전 13장 1절에 “안디옥 교회에 선지자들과 교사들이 있으니 곧 바나바와 니게르라 하는 시므온과 구레네 사람 루기오와 분봉 왕 헤롯의 젖동생 마나엔과 및 사울이라” 하는 말씀에 이름이 많이 나오는 부분이라서 조금 복잡합니다. 그러니까 생각을 하면서 보세요.
여기에 시므온이라고 하는 이름이 나옵니다. 여기서 나오는 시므온이라고 하는 이름은 시몬이라는 이름과 같은 말입니다. 예를 들어서 히브리식을 헬라어식으로 표기를 하는데 나타나는 변화입니다. 우리가 외국말을 우리말로 번역을 할 때에 TV를 텔레비전, 티비라고 하면 다른 말입니까? 같은 말입니다. 그렇게 표현을 하면서 달라졌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시므온과 시몬은 같은 이름입니다. ‘니게르라고 하는 시므온’이라고 하는데 ‘니게르’라고 하는 말은 ‘니그로,’ 검은 사람을 ‘니그로’라고 했잖아요. ‘검다’라는 뜻입니다. 다시 말하면 이 시몬이 어디 살았다고 했습니까? 아프리카 북쪽, 더운지방! 얼굴이 검어 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니까 무슨 말인고 하니 저 시므온은 얼굴이 검기 때문에 구레네 사람 시몬, ‘구레네에 사는 얼굴이 검은 시몬이다.’ 그런 뜻입니다.
오늘 성경말씀을 봤을 때 시몬은 자기와는 상관이 없이 억지로 십자가를 졌습니다. 그러나 그 십자가로 말미암아 안디옥교회에 지도자가 되는 은혜를 받았습니다. 그와 그의 가족들도 하나님이 귀하게 쓰는 일꾼으로 선택받았다고 하는 사실, 얼마나 귀한 사실입니까? 구레네 사람 시몬은 이름 없는 한사람의 구경꾼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그가 예수님의 십자가를 대신 짐으로 그는 성경의 한 부분을 이루는 축복의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의 이름만 나온 것이 아니라 그의 어머니이름 그의 아들이름까지 성경에 올랐습니다. 억지로 진 십자가가 감사와 축복과 영광의 십자가가 되었다는 사실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혹시 이 가운데 구경 나오신 분이 계십니까? 억지로 나오신 분, 남편이 가자고 하니까, 아내가 가자고 하니까, 아들딸이 가자니까 억지로 나오신 분들이 계십니까? 구경 나오신 분들이 계시잖아요. 억지로 진 십자가도 이런 축복을 받는데 내가 스스로 나왔다면 그거야 얼마나 큰 축복을 주시겠습니까? 그렇지 않습니까?
성경을 보게 되면 억지로 십자가를 진 사람이 너무나도 많이 나옵니다.
그 가운데 대표적인 사람이 우리가 잘 아는 요셉이라고 하는 사람입니다. 그는 부잣집에서 태어났습니다. 부모님의 사랑을 독차지하며 그는 색동저고리만 입으면서 좋은 음식만 먹으면서 살았습니다. 그러나 그는 형제들의 미움을 사서 애굽에 노예로 팔려갔습니다. 애굽의 종으로 팔려간 것도 억울한데 그는 보디발의 아내를 통해서 억울한 누명을 쓰고 감옥에까지 갔습니다. 억지로 죄인의 십자가를 지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를 가만히 나두십니까? 그가 억지로 죄인의 십자가를 지고 감옥에 갔지만 그가 억지로 져야 했던 십자가를 하나님은 영광의 십자가로 바꿔 주셨다는 것입니다. 애굽의 총리가 되어서 애굽 사람들 뿐 만 아니라 이스라엘 모든 사람들을 기근에서 구해줬습니다. 억지로 진 십자가가 나중에는 영광의 십자가가 되었습니다.
오늘 우리들에게도 억지로 십자가를 져야 하는 일들일 많이 있습니다. 세상을 살아가다 보면, 특별히 예수를 믿다보면, 억지로 십자가를 질 때가 얼마나 많이 있습니까? 나는 아무 잘못이 없는데... 나는 원치 않은데.. 나는 괜찮은데 나에게 억지로 오는 십자가가 있습니다. 때로는 가족들 때문에 오는 십자가가 있습니다. 때로는 자녀들 때문에 억지로 십자가를 질 때가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아마 우리들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가장 어려운 문제 가운데 하나가 가족들 때문에 겪는 문제라고 생각을 합니다. 자녀를 낳아놓고 이 자녀를 잘 양육하기 위해서 과외공부를 시키고 좋은 옷을 입히고 정성을 다해서 길러놨는데 이 놈이 부모뜻대로 살아가지 못할 때가 많이 있습니다. 너무너무 속상할 때가 많이 있습니다. 그래서 옛 어르신들은 ‘무자식이 상팔자’라는 말을 하십니다. 얼마나 자식들이 속을 썩이면 무자식이 상팔자라는 말을 합니까? 아이들이 잘 큰 것도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제 대학동창 가운데 한 20여전에 이민을 가신 분이 계십니다. 몇 해 전에 나왔습니다. 전화를 거는데 전화를 받자마다 “할렐루야!” 하는 겁니다. 그래서 깜짝 놀랐습니다. 제 생각에는 이 친구는 전혀 이 친구는 예수를 믿으리라고는 상상도 못한 친구입니다. 그야말로 한국에 살 때 아주 부잣집에서 태어났습니다. 그 아버지는 장교출신입니다. 그 친구들도 모두 부잣집에다 황태자와 같은 친구였어요. 그런 친구가 부잣집 친구 따라 독일로 유학을 갔다가 독일에서 미국으로 이민을 갔습니다. 잘 산다는 얘기를 들었었는데 예수를 믿었다는 얘기를 못 들었습니다. 호텔에서 만나 “너 어떻게 예수를 믿게 됐냐?”하고 물었더니 이 친구에게도 십자가가 있었습니다. 그 십자가는 바로 자식의 십자가였습니다. 태어나면서부터 선천성 장애를 갖고 태어난 딸 때문에 하나님을 만난 것이었습니다. 자식이라고 하는 십자가. 정말 자식이라는 십자가 때문에 하나님을 만나게 되었고 하나님을 영접하게 되었고 교회에 잘 나오게 된 것입니다. 여러분 자식이 건강한 것만으로도 감사해야 합니다. 자식이 교회에 잘 출석하는 것만으로도 감사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또 어떤 분은 부모님이 오랫동안 병들어서 수발을 드느냐고 몇 년, 몇 십 년을 고생하시는 분들이 계십니다. 그러면 부모님이 건강하신 것만으로도 감사하게 생각을 하셔야 합니다. 뿐만 아니라 때로는 사업의 실패로 인해서 경제적인 고통의 십자가를 질 때도 있습니다. 남의 사업에 보증을 섰다가 억지로 십자가를 질 때도 있습니다. 때로는 병이 들어서 육신적인 고통의 십자가를 질 때도 있습니다. 누구든지 원치 않는 십자가를 질 때도 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 십자가를 어떻게 지고 가느냐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십자가를 지는 것에 대해서 하나님께 불평을 합니다. “하나님 어떻게 이런 일을 내게 주십니까? 왜 네게 이런 십자가를 주셨습니까?” 하면서 원망하는 분들이 계십니다. 그러나 욥의 아내를 보세요. 욥은 그런 고통을 당할 때 “주신분도 하나님이 거두시는 분도 하나님이시오니 내가 주를 찬양하리로다.” 라고 고백을 했는데 누구보다도 욥을 신뢰하고 믿었던 아내가 뭐라고 합니까? “당신도 하나님이 버렸나봐. 당신도 하나님을 저주하고 죽어.” 같이 저주하고 아내는 떠나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욥이 환란을 만나서 원치 않는 십자가를 지고 있을 때에 그의 아내마저 욥을 저주하고 떠났을 때 욥은 끝까지 하나님을 붙들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더니 하나님께서 나중에 갑절의 복을 누리는 은혜가 왔습니다. 그러나 욥의 아내는 갑절의 복의 기회를 놓치고 말았다는 것입니다. 내게 원치 않는 십자가 내게 주어졌을 때 그것을 불평하고 원망하는 사람은 나중에 하나님께서 주실 축복을 놓치고 만다는 사실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저는 이렇게 이런 교회를 통해서 하나님의 축복을 받는 사람을 많이 봤습니다. 그 가운데 인상이 오랫동안 남은 사람들 가운데 제가 20여전에 부산에서 목회를 할 적에 하나님께서 특별한 기회를 주셔서 저 김해에 김해교도소에 교화위원회라고 해서 죄수들을 30여명 만나서 항상 면담하고 전도를 할 수 있는 기회가 있었습니다. 가장 적은 형을 받는 사람이 5년, 가장 중한 형을 받는 사람이 무기수형입니다. 30명을 다 모아놓고 물어봤습니다.
“혹시 이 가운데 교회에 다녔던 분이 계십니까?” 라고 물었더니 딱 2명이 계시더라구요. 교회를 몇 년이나 다녔습니까? 초등학교 3학년 크리스마스 때 딱 한번 다녀왔다고 하네요. 또 다른 사람한테 물어봤더니 5학년 때 다녀온 사람, 이렇게 딱 2사람이었습니다. 나머지는 한번도 교회에 나오지 않았던 사람들이었습니다. 그중에 제 인상에 가장 오래 남는 분이 박천웅이라고 하는 사람입니다. 지금은 석방이 되었을지도 모릅니다. 무기수였습니다. 아주오래전의 사건이라 여러분들도 잘 기억이 안나 실 것입니다. 옛날 마포에서 금당사건이라고 형제가 살인을 저지른 사건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박천웅이라고 하는 사람은 형은 사형을 받고 이 동생은 무기수로 복역 중이었습니다. 그는 미술선생님이었습니다. 오랜 시간동안 접촉을 하면서 그분이 하는 말이 “목사님! 저는 교도소에 오길 잘 했습니다.” “그게 무슨 소리입니까?” “제가 만약 교도소에 오지 않았더라면 어떻게 주님을 만날 수 있었겠습니까? 나는 교도소에 옴으로 주님을 만났고 세상적인 그림을 그리는 것이 아니라 성경 안에 있는 그림을 그리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부산에 일년에 한번씩 그림 전시회를 하는데 전부다 성경을 소재로 한 그림만 그렸습니다. 대개 교도소에 있는 사람들은 이렇게 말을 합니다. “나는 재수가 없어서 걸려서 여기 온 사람이야. 죄가 있어서 온 사람은 없고 재수가 있어서 온 사람만 복있어.” 그런데 이 분은 “나는 오기를 참 잘했습니다.”
여러분 십자가를 질 때 그 십자가를 어떻게 짐에 따라서 축복이 될 수도 있고 저주도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여러분은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저는 그 십자가를 짐으로 인해서 하나님 앞에 더 나아가야 한다고 생각을 합니다. 이사야 55장 2절에 이렇게 말을 합니다. “너희는 여호와를 만날 만할 때 만나라 가까이 있을 때 너를 부르라” 말씀하셨습니다. 여러분 여호와를 만날 만할 때가 언제입니까? 등 따시고 배부를 때 기도하시는 분들은 신앙 상태가 아주 좋으신 분들입니다. 일이 잘 될 때, 등이 따시고 배부를 때 하나님을 찾는 사람들은 굉장한 사람들입니다. 대게 우리는 언제 하나님을 찾습니다. 급하면 찾지요?
욥은 환난을 당했을 때 이렇게 고백을 합니다. “내가 귀로 듣기만 하였는데 이제는 눈으로 봅니다.” 전에는 귀로 듣기만 했습니다. 여러분 듣는 것이 확실합니까? 보는 것이 확실합니까? 편안할 때는 하나님의 음을 듣기만 했었는데 고통을 당하니 환난을 당하니 이제는 하나님을 봅니다. 그게 신앙이고 믿음입니다. 우리가 인생을 살면서 원치 않는 고통을 당할 때, 그때가 바로 하나님을 만날 때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여러분에게 십자가가 다가올 때 하나님 아버지께 더 가까이 가시기를 바랍니다. 더욱 소리 높여 하나님을 부르시기 바랍니다. 놀라운, 놀라운 은혜를 체험하게 될 것입니다. 시편 50편 15절의 말씀입니다. “환난 날에 나를 부르라 내가 너를 건지리니 네가 나를 영화롭게 하리로다 ” 이 약속의 말씀 그대로 이루어 질 줄로 믿습니다.
두 번째는 십자가를 통해 하나님이 주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으시기를 바랍니다.
어떤 집사님이 병에 걸려서 병원에 입원을 하셨습니다. 무슨 말로 위로를 해 드릴까 고민을 하면서 병원에 도착했습니다. 집사님을 뵙자마자 이 집사님이 이런 고백을 하셨습니다. “목사님 나는 하나님께서 내게 이런 병을 주신 이유를 알겠습니다.” “뭐요?” “제가 집사라고 하지만 돈 벌려고 너무 세상만 보고 뛰어 다녔더니 나 하나님만 쳐다보라고 병원에 눕혀놓으셨습니다.” 아멘. 할렐루야!
보통 그런 상황에 쳐하면 원망하고 내가 무슨 잘못을 했길레 이런 일을 주냐고 원망해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나를 병원에 눕혀놓으신 이유를 알게 하신 것이 왜 하나님을 만나라고 하십니까? 하나님이 오랫동안 눕혀놓으시겠습니까? 그렇게 금방 깨달았는데... 여러분 때로는 하나님이 나에게 질병의 십자가를 주실 때, 때로는 사업의 실패의 십자가를 주실 때 여러분들은 그 십자가를 통해 주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게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고린도전서 10장 13절에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사람이 감당할 시험 밖에는 너희에게 당한 것이 없나니 오직 하나님은 미쁘사 너희가 감당치 못할 시험 당함을 허락지 아니하시고 시험당할 즈음에 또한 피할 길을 내사 너희로 능히 감당하게 하시느니라” 감당할 만큼, 내가 감당할 만큼, 할 만큼, 하나님께서 주신다는 것입니다. 어려움을 당할 때 억지로 십자가를 져야 할 때 그때 십자가를 통해서 주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순종하고 깨달으면 하나님께서 반드시 피할 길을 열어 주실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세 번째는 십자가를 통해 주시는 축복을 여러분들이 보시기 바랍니다.
우리에게 다가오시는 십자가입니다. 저는 반드시 하나님의 선한 목적이 있을 줄로 믿습니다. 분명히 우리들에게 하나님이 원하시는 목적이 있습니다. 그 하나님이 원하시는 그 수준에 도달하지 못하면 도달할 때까지 하나님은 우리를 훈련시키십니다. 여러분 학생들이 제일 싫어하는 것이 시험을 가장 싫어합니다. 학생들이 시험을 안본다고 하면 아주 좋아합니다. 그런데 여러분 시험을 봐야 합니까? 안 봐야 합니까? 봐야합니다. 그래야 이놈의 실력이 얼마나 늘었는지 안 늘었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필요합니다. 그 시험을 잘 보기 위해서 얼마나 힘든 훈련을 합니까?
제가 한번 물어 보겠습니다 훈련이 힘듭니까? 시험이 힘듭니까? 제가 다시 한번 물어보시겠습니다. 손들어 보세요. 그래도 여기는 수준이 있으시네요. 사실은 훈련이 더 힘이 듭니다. 왜 그렇습니까? 훈련은 될 때까지 해야 하기 때문에 많이 힘이 듭니다. 시험은 한번 치러서 떨어졌는지 안 떨어졌는지만 확인하면 됩니다. 우리가 마라톤을 한다! 2시간10분을 독파해야한다. 그러면 2시간 10분만 하면 되는 것입니다. 한달에 안 되면 1년, 1년이 안 된다하면 10년을 해야 합니다. 될 때까지 해야 합니다. 그러면 무슨 얘기입니까?
우리도 하늘나라의 천국백성 삼기 위해서는 커드라인이 있습니다. 그 커트라인에 도달할 때까지 훈련을 해야 합니다. 여러분 훈련을 안받으려고 하지 마세요. 그러면 천국을 포기하는 것입니다. 아주 중요한 내용입니다. 오늘 하나님이 우리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사람이 감당할 시험밖에는 너희가 당한 것이 없다”고 하셨습니다. 감당할 만한 시험을 우리에게 주신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지금은 힘들고 죽을 것 같더라도 하고나면... 제가 군대가서 가장 힘든 훈련이 유격훈련입니다. 그런데 유격훈련은 별거 아닙니다. 유격훈련보다 더 힘든 것이 피티 체조가 있습니다. 될 때까지 하는 체조입니다. 맨 마지막 구호는 반복이 되는데 하면 안 되는 것입니다. 수 백 명을 모아놓고 이것을 하면 꼭 맨 마지막에 구호를 외치는 멍청한 사람이 있습니다. 타고 올라가서 내려오면 되는데, 죽을 것만 같은데..그게 아닙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그렇게 힘을 쪽 빼놓고 산악훈련을 하면 사고가 없습니다. 그런데 마음 착한 교관을 만나서 설렁설렁한 다음에 산악훈련을 하면 꼭 사고가 납니다. 이상합니다. 그래서 제가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다음에 내가 목회를 하게 되면 신앙훈련도 유격훈련처럼 해야 겠다.’ 유격훈련이 뭔가 하니 인간의 힘을 쫙 빼놓는 것입니다. 그러면 뭐만 남습니까? 군대용어로 깡만 남습니다. 정신만 남습니다. 이렇게 하면 이해가 쉽지요. 불이 났습니다. 가장 귀한 것이 피아노입니다. 평상시에는 꿈쩍도 안하는 것이 불이 나니까 번쩍 들고 나와서 밖에 놔두었는데.. 불을 다 진화하고 피아노를 들고 나가려고 하니 꿈쩍도 안합니다. 여러분 내가 할 수 있다고 생각할 때의 힘은 아무것도 아닙니다. 난 할 수 없다고 하는 것은 내 힘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힘으로 되는 것입니다.
아이들이 밥투정을 하는 것은 배에 기름이 껴서 하는 것입니다. 그런 아이들은 몇 일 밥을 굶겨 놔야 합니다. 아직도 하나님께 불평, 불만을 얘기하는 것은 배에 기름이 끼었기 때문입니다. 아직도 살만한 것입니다. 그러면 그냥 놔두세요. 그런데.. 배고프면 모든 ‘아멘, 감사합니다.’ 하고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에게 주시는 말씀이 바로 그것입니다. 바울과 실라는 빌립보에서 귀신들린 여종을 구해줬습니다. 잘한 겁니다. 그런 것이 올무가 되어서 오히려 감옥에 갇혀버렸습니다. 억지로 십자가를 졌다는 것입니다. 그때 바울과 실라가 “내가 귀신 들린 여인을 고쳐줬는데 내가 무엇을 잘못했습니까? 왜 나를 감옥에 쳐 넣습니까?”하면서 불평 했더라면 기적이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감옥에 들어갔지만 찬송을 부르고 하나님 앞에 기도를 드렸습니다. 감옥이 열렸습니다. 간수가 죄인이 도망을 간줄 알고 자결을 하려고 했지만.. 도망가지 않은 바울과 실라가 나타나 간수와 그 가족이 구원을 받았습니다. 빌립보에 하나님의 성전이 세워지는 놀라운 축복의 역사가 일어났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역사입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십자가는 하나님의 계획하심에 의해서 지어지는 십자가이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내게 지어진 십자가가 억지로 지어진 십자가라 할지라도 인내하고 찬송하고 기도하고 지고 나가면 하나님께서 놀라운 축복으로 결론 지어 주실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성도여러분 세월이 참 빠릅니다. 2006년을 엊그제 맞은 것 같은데 결실이 없습니다. 어김없이 봄에 씨앗을 뿌리면 가을에 추수할 때가, 수확의 계절이 어김없이 돌아옵니다. “아니 벌써”라는 말을 입에 달고 다닙니다. 어김없이 계절이 옵니다. 한달이 얼마나 빨리 지나갑니까? 이 말은 주님 오실 날이 가깝고 내가 주님 앞에 설 날이 가까웠다는 말입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십자가가 있습니다. 가정의 십자가, 직장의 십자가, 그리고 특별히 교회 안에서 내게 주시는 십자가가 있습니까? 때로는 그것이 내가 원하지 않고 억지로 지어진 십자가가 있습니다. 그냥 묵묵히 지고 가는 사람에게는 하나님의 놀라우신 은혜와 축복이 있을 주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억지로 지어도 이렇게 큰 축복이 오는데 만약에 반대로 우리가 자원하는 마음으로 십자가를 졌다면 하나님은 얼마나 큰 축복을 주시겠습니까? 구레네 사람 시몬이 억지로 지었던 십자가가 가족이 큰 축복이 된 것처럼 사랑하는 여러분들도 주어진 십자가를 충성스럽게 지고 가는 하나님의 놀라운 축복을 받는 자녀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이응삼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