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을 행하다가 낙심치 말라 (살후 3:6-15)
본문
이성권목사 [성경본문] 살후 3:6-15
오늘 본문의 말씀은 데살로니가교회에 주의 이름으로 명하는 말씀입니다.
본문 6절에 「형제들아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너희를 명하노니 규모 없이 행하고 우리에게 받은 유전대로 행하지 아니하는 모든 형제에게서 떠나라」고 했습니다. 데살로니가 교회는 사도 바울이 2차 전도 여행에서 3주 동안 머물면서 복음을 전파하여 세운 교회입니다(행17:2). 유대인들의 반대가 극심하여 더 머물 수 없었습니다.
「형제들아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너희를 명하노니」....
사도 바울은 자신이 세운 교회이지만 자기의 이름으로 명하지 않고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명했습니다. 그것은 교회의 주인이 주 예수 그리스도이기 때문입니다. 비록 사도 바울이 데살로니가교회를 세웠다고는 하나 데살로니가교회는 주님의 몸된 교회로, 주님이 데살로니가교회의 주인입니다. 사도 바울은 사도적 권위를 가졌지만, 자신이 세운 교회에 자기 이름으로 명하지 않았습니다. 바로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의 몸이요, 자신은 예수 그리스도의 종임을 잘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지금 데살로니가교회는....
주님의 재림 문제로 혼란을 겪고 있습니다. 살후 2:2절에 「혹 영으로나 혹 말로나 혹 우리에게서 받았다 하는 편지로나 주의 날이 이르렀다고 쉬 동심하거나 두려워하거나 하지 아니할 그것이라」고 했습니다. 다시 말해서 데살로니가교회는 시한부 종말론에 휘말려 있습니다. 주님의 재림의 날짜를 "영으로", 곧 하나님의 계시로 받았다고 합니다. "말로나", 곧 음성을 들었다고 합니다. "편지로나", 곧 성경에서 깨달았다고 합니다.
이런 시한부 종말론으로....
데살로니가교회 성도들 중에 아무 일도 하지 않고 재림의 그 날만 기다리며 먹고 마시고 즐기는 사람들이 늘어갑니다. 이들이 그렇지 않다며 일하는 사람들까지 찾아다니며 믿음이 없는 자라고 몰아붙입니다. 그래서 본문 11절에 「우리가 들은즉 너희 가운데 규모 없이 행하여 도무지 일하지 아니하고 일만 만드는 자들이 있다」고 했습니다. 더욱이 자기들의 재물을 다 쓰고는 주님 재림하시면 아무 소용없는 재물이라며 다른 사람들의 것도 쓰려고 합니다. 그래서 싸움이 벌어집니다. 다시 말해서 도무지 일하지 아니하고 일만 만드는 것입니다. 이런 사람들을 향하여 「일하기 싫거든 먹지도 말라」고 했습니다(본문10절).
시한부 종말론의 폐해(弊害)....
그 심각성을 우리도 보았습니다. 1992년 10월 28일 예수님이 공중에 재림하시고, 구원받은 성도들이 공중에 들려 올라간다는 다미선교회의 휴거설로 나라가 온통 소동을 피웠습니다. 휴거날에 대비한다며 일정한 장소에 모이는 바람에 실종자, 가출자, 집단 생활자로 인해 소동이 벌어졌습니다. 회사원, 교사, 공무원 등이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선교활동을 하는 기현상도 벌어졌습니다. 거기에다 1992년 10월 28일에는 휴거의 현장을 생중계한다며 다미선교회 본부에서 TV 생중계를 하기도 했습니다. 결국 휴거는 없었고, 신도들의 재산 34억원을 헌납받아 가로챘다는 혐의로 1992년 12월 4일 2년의 징역형을 선고받고, 이장림이 구속됨으로 다미선교회의 휴거설은 한바탕 소동으로 끝났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선을 행하다가 낙심치 말라』
데살로니가교회가 재림에 대한 잘못된 신앙으로 혼란을 겪고 있습니다. 한때 우리나라에서도 보았듯이 시한부 종말론의 폐해(弊害)는 엄청납니다. 그것을 알고 사도 바울은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명하고 있습니다. 그런 사람들과 사귀지 말라고 했습니다. 그런 사람들에게서 떠나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종용히 일하게 권하라고 했습니다.
여기의 "종용히"는....
말썽을 피우거나 다른 사람에게 해를 끼치지 않는 것을 말합니다. 곧 시한부 종말론에 빠져 광신적인 신앙생활로 물의를 일으키지 말고, 차분히 스스로 일하여 남에게 폐를 끼치지 말라고 했습니다. 이는 데살로니가교회 성도들 중에 주님의 재림이 가까웠다며 일하지 않고 먹고 마시고 즐기다 가산을 탕진하고, 남에게도 일할 필요가 없다며 먹고 마시고 즐기자 하여 따르지 않으면, 믿음이 없는 자로 몰아붙이는 폐단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선을 행하다가 낙심치 말라』
이런 폐단을 바로잡는 일은 참으로 힘듭니다. 다미선교회의 사건에서 보듯 시간이 흘러야 합니다. 그 날이 지나야 잘못된 것인 줄 스스로 알게 됩니다. 그렇다고 그냥 두고만 볼 수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살전 4:11-12절에 「또 너희에게 명한 것같이 종용하여 자기 일을 하고 너희 손으로 일하기를 힘쓰라, 이는 외인을 대하여 단정히 행하고 또한 아무 궁핍함이 없게 하려 함이라」고 했습니다. "외인을 대하여" 곧 믿지 않는 불신자들에게 교회가 비난을 받지 않도록 단정히 곧 좋은 모습/모범을 보이게 하라는 말씀입니다. 그들 광신자들을 이렇게 바르게 인도하는 일이 힘듭니다. 그러나 낙심치 말고 권고하라는 것입니다.
1.선을 행하라고 했습니다.
본문 13절/ 형제들아 너희는 선을 행하다가 낙심치 말라/
"형제들아 너희는 선을 행하다가 낙심치 말라"....
여기의 "선을 행하다가[칼로포이에오(kalopoievw)]"는.... 이곳에 한번 사용된 단어로, 「좋은+행하다」의 합성어로 "올바르게 행하다, 선을 행하다"를 뜻합니다. 다시 말해서 형제들에게나 외인들에게 곧 교회 안에나 교회 밖의 모든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 삶의 모습을 보여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아름답고 훌륭한 삶으로 하나님 앞과 사람 앞에 영광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바로 본문에서 말씀하시는 "규모" 있게 살라는 말씀입니다.
본문 6절/ 형제들아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너희를 명하노니 규모 없이 행하고 우리에게 받은 유전대로 행하지 아니하는 모든 형제에게서 떠나라/
"규모 없이 행하고.. 받은 유전대로 행하지 아니하는 모든 형제에게서 떠나라"....
여기의 "규모 없이[아탁토스(ajtavktw")]"는.... "무질서하고 무책임하게, 의무에 태만하게"를 뜻합니다. 곧 도덕적으로 무질서하고, 책임에 대하여 게으른 것을 말합니다. 또 "유전[파라도시스(paravdosi")]"은.... 전달/전수되어진 "교훈, 교리, 전통"을 뜻합니다. 이를 정리하면,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명하는 바울의 교훈을 좇지 아니하고, 시한부 종말론에 빠져 무질서하고, 무책임하게 행동하는 형제들을 멀리하라는 말씀입니다. 다시 말해서 규모 없이 행하지 않고 규모 있게 행하는 것이 바로 선을 행하는 것입니다.
본문 7절/ 어떻게 우리를 본받아야 할 것을 너희가 스스로 아나니 우리가 너희 가운데서 규모 없이 행하지 아니하며/
"어떻게 우리를 본받아야 할 것을 너희가 스스로 아나니"....
한마디로 우리를 본받으라는 말씀입니다. 또 어떻게 행할 것을 너희가 안다고 했습니다. 이는 사도 바울 일행이 데살로니가교회에서 규모 없이 행하지 아니하고, 본을 보였다고 했습니다. 그 본을 본문 8절에서 너희에게 누를 끼치지 아니하려고, 「누구에게서든지 양식을 값없이 먹지 않고 오직 수고하고 애써 주야로 일했다」고 했습니다.
본문 9절/ 우리에게 권리가 없는 것이 아니요 오직 스스로 너희에게 본을 주어 우리를 본받게 하려 함이니라/
"우리에게 권리가 없는 것이 아니요"....
여기서 말하는 권리는 복음 전하는 자가 육신의 쓸 것을 공급받을 권리를 말합니다. 딤전 5:18절에 「곡식을 밟아 떠는 소의 입에 망을 씌우지 말라 하였고 또 일꾼이 그 삯을 받는 것이 마땅하다」고 했습니다. 이 권리를 사용하지 않고 오히려 본을 보여 데살로니가교회로 본받게 하려고 주야로 수고하여 힘써 일했다고 했습니다. 이런 것이 선을 행하는 신앙생활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선을 행하다가 낙심치 말라』
선을 행하라고 했습니다. 데살로니가교회가 잘못된 재림 교리로, 곧 시한부 종말론에 빠져 혼란을 겪고 있습니다. 규모 없이 행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다시 말해서 내일 주님이 오시리니 오늘 먹고 마시고 즐기자 식으로, 시한부 종말론에 빠진 성도들이 무질서하고, 무책임한 생활이 되어버렸습니다. 회사원으로, 교사로, 공무원으로 맡은 바 자기 일에 책임을 다해야 할 사람들이 도무지 일을 않고 돌아다니며 다른 형제들까지 충동하여 일을 만들었습니다. 이런 형제들을 본받지 말고, 규모 있게 살아가는 것이 바로 선을 행하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이 일찍이 데살로니가교회에서 본을 보인 삶입니다.
2.선을 행하기가 어렵다는 말씀입니다.
본문 13절/ 형제들아 너희는 선을 행하다가 낙심치 말라/
"형제들아 너희는 선을 행하다가 낙심치 말라"....
「선을 행하다가 낙심치 말라」는 말씀은, 그만큼 선을 행하기가 어렵다는 말씀입니다. 여기서 "선을 행하기가[칼로포이에오(kalopoievw)]".... 곧 형제들에게나 외인들에게 다시 말해서 교회 안에나 교회 밖의 모든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 삶의 모습, 곧 아름답고 훌륭한 삶으로 하나님 앞과 사람 앞에 영광을 나타내는 삶이 어렵다는 말씀입니다.
더욱이 데살로니가교회는 지금 시한부 종말론에 휘말려 있습니다.
그 소용돌이에 휘말리지 아니하고, 오히려 그런 형제들을 바로잡고, 종용히 일하게 하여 남에게 폐를 끼치지 않고 자기 양식을 먹게 권고하는 하는 것은 더욱 어렵습니다. 그러나 이 일을 하는 것이 선을 행하는 것입니다. 그러니 선을 행하기가 그만큼 힘든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내가 선을 행하기도 힘든데, 규모 없이 행하는 형제들까지 바로잡기란 더욱 힘든 일입니다.
본문 11절/ 우리가 들은즉 너희 가운데 규모 없이 행하여 도무지 일하지 아니하고 일만 만드는 자들이 있다 하니/
"너희 가운데 규모 없이 행하여.. 일하지 아니하고 일만 만드는 자들이 있다"....
이것이 데살로니가교회의 실정입니다. 시한부 종말론에 빠진 성도들이 도무지 일을 하지 아니합니다. 내일 주님 재림하실 터이니 오늘 먹고 마시고 즐기자 하며, 옆에 있는 형제들까지 마치 믿음이 없는 것처럼 들쑤십니다. 종들이, 일군이 주인의 말에 아랑곳하지 아니하고 제 멋대로 나설칩니다. 오히려 주인을 향해 믿음 없는 자라고 몰아붙입니다. 바로 규모 없이 행하고 도무지 일하지 않고 오히려 일을 만드는 자들입니다. 이런 이들을 바로잡는 일이 참으로 힘들고 어렵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선을 행하다가 낙심치 말라』
이 말씀은 바로 선을 행하기가 그만큼 어렵다는 말씀입니다. 시한부 종말론에 빠지지 않았더라도 규모 없이 살아가는 자들, 곧 도덕적으로 무질서하고, 신앙적인 책임에 대하여 게으른 사람들이 오늘의 교회 안에도 많습니다. 나 하나 타에 모법이 되도록 살기도 힘들지만, 이런 무질서하고, 무책임한 형제들을 바로잡는 것도 우리 성도들이 감당해야 될 선한 일입니다. 이들을 가슴에 안고 위하여 기도하며, 권고하고, 올바로 인도해야 합니다. 이것이 선을 행하는 일인데, 이 선을 행하기가 그만큼 어렵습니다. 그러나 성령의 도우심을 구하고, 감당해야 할 일입니다.
3.그러나 낙심치 말라고 했습니다.
본문 13절/ 형제들아 너희는 선을 행하다가 낙심치 말라/
"형제들아 너희는 선을 행하다가 낙심치 말라"....
여기의 "낙심치[엑카케오(ejkkakevw)]"는.... "안에[엔(ejn)]"+"무능력/악한[카코스(kakov")]의 합성어로, 「완전히 힘/용기를 잃다. 절망하다」를 뜻합니다. 규모 없는 자들이 게으르고 무책임하게 살아가도 거기에 휘말리지 말고, 행여 미혹되어 실족하지 말고, 성도로 부르심을 입은 부름에 합당하게 최선을 다하고(빌3:14), 어떤 오해와 시련 속에 처하더라도 낙심말고 선을 행하라는 말씀입니다. 또 그런 형제들을 권고하기를 그치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이 "낙심치[엑카케오(ejkkakevw)]"는....
절대로 도중에 중단할 수 없음을 나타냅니다. 이 단어가 성경에 6회 사용되었습니다. 이를 살펴보면, 누가복음 18:1절에 기도하며 낙심치 말라고 했습니다. 고후 4:1절에서 주께 받은 사명을 수행함에 낙심치 말라고 했습니다. 고후 4:16절에 부활의 영광을 바라보는 소망 중에 낙심치 말라고 했습니다. 에베소 3:13절에 주님 때문에 당하는 환난에 낙심치 말라고 했습니다. 갈라디아 6:9절과 본문 13절에 선을 행하다가 낙심치 말라고 했습니다. 반드시 때가 이루매 거둔다고 했습니다.
본문 14절/ 누가 이 편지에 한 우리 말을 순종치 아니하거든 그 사람을 지목하여 사귀지 말고 저로 하여금 부끄럽게 하라/
"우리 말을 순종치 아니하거든 그 사람을 지목하여 사귀지 말고"....
여기서 말하는 "우리 말"은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명하는 말씀입니다(본문6절). 곧 사도 바울이 전한 말씀, 가르친 말씀을 순종치 아니하는 자들을 지목하여 사귀지 말라고 했습니다. 여기의 "사귀지[쉬나나믹뉘미(sunanamivgnumi)]"는.... "함께 잘 썩다, 연합하다, 교제하다"를 뜻합니다. 곧 친밀하게 교제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원수와 같이 생각지 말고 형제같이 권하라」고 했습니다(본문15절). 그러므로 교제를 단절하라는 말씀이 아닙니다. 아직도 그들은 형제이요, 선도하고 회개를 촉구해야 할 대상입니다. 이단이라서 교제를 끊는 일이라면, 힘들고 어려운 일이 아닐 수도 있습니다.
"그 사람을 지목하여 사귀지 말고 저로 하여금 부끄럽게 하라"....
지목하여 사귀지 말라는 목적이 저로 하여금 부끄러움을 깨닫게 하는 데 있다는 말씀입니다. 저를 주의 몸된 교회에서 잘라내는 데 있지 않습니다. 여기의 부끄럽게 하라[엔트레포(ejntrevpw)]"는.... 「안에/안으로+돌다」의 합성어로, "방향을 바꾸다, 자신에게 돌리다, 부끄러워하다"를 뜻합니다. 곧 생각을 자신에게로 돌리게 한다는 말입니다. 다시 말해서 남을 향하던 비판의 눈길로 자신을 돌아보게 하여 수치를 느끼게 하는 것을 말합니다. 그래서 비난하던 그 사람이나 내나 똑같음을 스스로 바라보게 하여, 뉘우쳐 회개하게 하는 것입니다. 저들로 스스로 깨닫게 하는 일입니다. 비록 힘들고 어렵지만, 참고 낙심치 말라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선을 행하다가 낙심치 말라』
선을 행하여야 하는 데, 선을 행하기가 그만큼 어렵고 힘들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낙심치 말고 중단하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시한부 종말론에 빠져 규모 없이 행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무시하고, 도무지 일을 하지 아니하며 일만 만드는 자들이 있습니다. 저들을 권고하여 바로잡는 일이 선을 행하는 것입니다. 이 얼마나 힘들고 어려운 일입니까?
그러나 낙심치 말라고 했습니다.
갈라디아 6:9절에 「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피곤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고 했습니다. 선을 행하는 일이 피곤한 일이라고 했습니다. 선행의 열매가 그때, 그때 곧바로 맺히는 것이 아닙니다. 선행의 열매는 때가 되어야 거두게 된다고 했습니다. 궁극적으로 저 영원한 천국에서 거두게 됩니다. 다시 말해서 이 땅에서 거두지 못하는 수도 있습니다. 그러니 눈에 보이는 것을 좇는 이들은 낙심하게 됩니다.
그래서, 인내가 필요합니다.
계시록 14:12절에 「성도들의 인내가 여기 있나니 저희는 하나님의 계명과 예수 믿음을 지키는 자니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여 지키고 살기가 힘든 세상입니다. 그래서 「주는 미쁘사 너희를 굳게 하시고 악한 자에게서 지키시리라」는, 주의 도우심을 구하는 기도가 필요합니다(살후3:3). 그래서 사도 바울은 기도합니다. 「주께서 너희 마음을 인도하여 하나님의 사랑과 그리스도의 인내에 들어가게 하시기를 원하노라」고 했습니다(살후3:5).
『선을 행하다가 낙심치 말라』
형제를 깨우쳐 바로잡기는 고사하고, 내가 선을 행하기도 힘든 세상입니다. 세상이 너무도 악합니다. 악한 것이 나쁜 것이 아니라 오히려 정상인 것처럼 보이는 세상이 되어버렸습니다. 속고 속이고, 죽고 죽이는 무서운 세상입니다. 다시 말해서 이 세상의 주인이 악의 세력들입니다. 그러니 선을 행하기가 너무도 힘든 세상입니다.
선의 기준이/개념이 달라져버렸습니다.
이는 다른 말로 하나님의 말씀이 선의 기준이 되지 못하고 땅에 떨어져버렸다는 말이기도 합니다. 또 다른 말로 교회가 이 사회에서 선한 곳으로 평가되지 못하고 있다는 말이기도 합니다. 참으로 서글픈 일이지만, 우리 교회가 이 사회에서 선한 곳으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하루 빨리 교회의 참된 모습을 회복해야 합니다. 그러기에 선을 행하되 낙심치 말아야 합니다.
『선을 행하다가 낙심치 말라』
선을 행하다가도 낙심될 일이 그만큼 많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선을 행하기를 낙심치 말고, 중단하지 말아야 합니다. 낙심케 하고, 실망케 하고, 좌절케 하는 이들이 앞서가는 자들이요, 지도자들이요, 힘있는 자들일 때 선을 행하다가 더욱 낙심하게 됩니다. 그러나 살후 3:5절에 「주께서 너희 마음을 인도하여 하나님의 사랑과 그리스도의 인내에 들어가게 하시기를 원하노라」고 했습니다. 우리 성도들은 이렇게 기도로 서로를 붙들어주고, 힘을 북돋아주어 낙심치 말게 해야 합니다. 「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피곤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고 했습니다(갈6:9). 선을 행하다가 낙심치 마시고, 때가 이르러 아름다운 열매를 거두시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