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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고 확신한 일 (딤후 3:1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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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고 확신한 일 (딤후 3:13-17)


제가 미국 시카고에서 어느 한인교회에 다니고 있을 때, 그 교회의 부목사님께서 그 지역의 한인대학생들을 모아서 어떤 기독학생 단체를 조직하여 사역하고 계시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단체의 이름이 'SFC'라는 것을 듣고서 저는 깜짝 놀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 한인교회는 미국의 어느 복음주의 교단에 속한 교회였고 그 목사님도 우리나라의 SFC 출신은 분명 아니었는데도 바로 우리 SFC의 이름으로 학생단체를 이끌고 있었으니, 저는 놀라우면서도 또 무척 반가웠습니다.

그래서 그 목사님께 도대체 어떤 연유로 해서 한국의 SFC와 관계를 맺고 이런 사역을 하게 되셨는지 물어보니까, 그 목사님의 대답이 "이 SFC는 우리나라에 있는 SFC와는 아무 관계없이 그냥 독립적으로 하는 거예요."라고 하시는 것이었습니다.
또 내막을 좀 더 알고 보니 그 시카고 지역의 SFC라는 것은 우선 교회에서 조직된 것도 아니고 중고등부는 없이 그냥 그 시카고 지역의 몇 개 대학교에 다니는 한인학생들을 중심으로 운영되고 있었습니다.
물론 제일 중요한 'SFC 강령'도 전혀 없고, 그냥 일종의 지역 기독대학생들의 친교와 전도 단체였던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만약 그렇다면 무슨 다른 이름으로 해야지 어떻게 우리나라에 SFC라는 유명한 학생 단체가 있다는 것을 알면서 그와 꼭 같은 이름을 사용하시면 어떻게 하느냐고 좀 따지듯이 물어보았습니다.
그러자 그 목사님 대답이 "아니, 이름도 달라요."라고 하시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당황스러워서 "아니, 그 'SFC'가 'Student For Christ'의 약자가 아니예요?"라고 했더니, 하시는 말씀이 "여기 'SFC'는 첫 글자 'student'를 단수가 아니라 복수를 사용해서 'Students For Christ'로 쓰니까 한국의 SFC와는 달라요."라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실로 어처구니가 없어서 그냥 말문이 막힐 수밖에 없었습니다.
겨우 한 글자의 끝머리에 들릴락 말락 하는 's'자 하나 붙여 놓고서 다른 이름이라고 오리발(?)을 내밀고 나오는데, 그렇다고 어떻게 더 이상 싸울 수도 없는 노릇이라 그저 실소(失笑)할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그러면서도 또 다른 한 편으로는, 'SFC'라는 이름이 워낙 멋있고 뜻도 좋으니까 그렇게 은근슬쩍이라도 베껴 쓰고 싶기도 하겠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오늘 우리들은 'S.F.C. 주일'로 이 날을 지키고자 합니다.
우리뿐만 아니라 본 교단 산하의 모든 교회들이 함께 오늘 주일예배를 그렇게 드리고 있습니다.
'S.F.C'.란 이름은 아까 나왔던 대로 'Student For Christ'의 약자로서 우리나라말로 직역하자면 '그리스도를 위한 학생'이라는 말이 되겠지만 원래 명칭은 '학생신앙운동'인 것을 영어로 그렇게 만들어놓은 것입니다.
그래서 줄여서 '학신'이라고도 부르지만 통상 'SFC'라고 부르는 이 모임은 문자 그대로 학생들로 하여금 바른 신앙을 배우게 하고 그 배우고 확신되는 바를 따르는 선한 삶의 운동을 하게 만들자는 것입니다. 보통 다른 교회들에서는 그냥 '학생회'라고만 부르는 것을 우리가 이처럼 특별한 이름으로 부르게 된 것은 물른 아주 특별한 의미가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 저와 여러분은 이 'S.F.C. 주일'을 맞이하여 과연 이 학생신앙운동이 우리의 자녀 된 학생들에게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는 것인지 본문의 말씀을 중심으로 세 가지를 새겨보고자 합니다.

1. '학생신앙운동'은 정통 신앙을 자녀에게 전해 주는 운동입니다.

본문 14절에 "14그러나 너는 배우고 확신한 일에 거하라 네가 뉘게서 배운 것을 알며"라고 기록했습니다.

여기서 "배우고"라는 말은 디모데가 과거에 배웠던 것을 가리키는 것이며 "확신하는 일"이란 바로 그 배움을 통하여 자신의 심령 속에 확신되어진 일, 다시 말해서 굳게 믿게 된 것을 가리킵니다.
지금 이 편지를 사도 바울로부터 받고 있던 디모데는 이 당시에는 벌써 어엿한 목회자가 되어 있었지만 그 역시 한때는 배우는 시절이 있었는데, 그는 실로 좋은 교육을 받으면서 자랄 수 있었습니다.

여기서 "네가 뉘게서 배운 것을 알며"라고 할 때, "뉘게서"라는 말은 복수로 되어 있습니다.
바로 디모데후서 1장 5절에서 "이 믿음은 먼저 네 외조모 로이스와 네 어머니 유니게 속에 있더니 네 속에도 있는 줄을 확신하노라"고 바울이 말하고 있듯이, 그 어린 디모데에게 신앙 교육을 시작한 사람들은 바로 그의 외할머니와 어머니였습니다.
한 마디로 말해서 그는 전통 있고 유서 깊은 신앙의 가문에서 자랐던 것이었습니다.

또한 그 배움은 사도 바울이 디모데로 하여금 혹시라도 이단 사설에 빠지지 않도록 늘 그에게 당부하면서 가르쳐주었던 특별교육을 통하여서도 이루어졌었습니다(딤후 2:18).
이처럼 디모데는 어릴 때부터 가정에서도 좋은 신앙 교육을 받았고 또 사도 바울을 통하여서 그야말로 정통 교리와 실천신학까지 전수받는, 아주 특별한 은총을 누렸는데, 바울은 디모데가 바로 그것들을 소중히 여기고 잘 간직하기를 당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특히 디모데 같이 복음전파의 길을 가는 목회자에게는 아주 중요한 일이었습니다.
왜냐하면 그는 이단 사설에 흔들리지 아니하고 교회를 진리로 지켜내어야 했고, 온갖 미혹에 흔들리기 쉬운 성도들을 바로 가르치고 키워내어야 할 중차대한 사명을 완수해야 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런 점에 있어서, 어릴 때부터 좋은 신앙의 가정과 좋은 교회를 통하여 잘 배우면서 기초가 잘 되어 있는 사람이 아무래도 더 큰 어드밴티지를 가지게 될 수밖에 없는 것은, 디모데전서 3장 6절에서 목사의 자격을 말할 때 "새로 입교한 자도 말지니"라고 경고하고 있는 말씀을 보아서도 알 수 있는 것입니다.

좋은 가정교육을 통하여 부모의 신앙이 2대 째 자식에게 그대로 전수되는 것이 얼마나 큰 축복인지 모릅니다.
또한 훌륭한 아버지 목사를 통하여 그 아들이 2대 째 목사의 길을 걷게 되는 것은 더욱 큰 축복입니다.
마찬가지로 SFC를 통하여 개혁주의 신앙으로 철저하게 교육을 받아서 나중에 목사가 되고 장로가 된 사람 역시, 그렇지 못한 사람들과 비교해볼 때에 아무래도 기본 바탕이 잘 되어 있는 까닭에 모든 면에서 훨씬 훌륭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의 자녀들이 학생신앙운동이라는 이 줄기를 통하여 우리 선조들의 훌륭한 신앙전통에 접하고 그것을 이어받고 자랄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음을 실로 감사하게 여길 줄 알아야 합니다.
우리에게 허락하신 신앙의 특별한 유산은 정말 고귀한 것 아니겠습니까?
우리가 SFC를 통하여 가르치고자 하는 개혁주의 신앙은 선지와 사도의 정통신앙에서 출발하여 종교개혁자 선배들이 다시 회복시켜 놓은 실로 귀중한 유산입니다.
또한 바로 그 신앙이 초기 선교사들을 통하여 이 땅에 뿌려졌으며 순교의 피라는 이 값진 제물을 통하여 순전하게 지켜짐으로써, 오늘날에 와서는 세계를 향한 선교의 사명이라는 열정으로 열매 맺혀 가게 되고, 일본이나 중국이 아니라 우리 대한민국이 바로 그 개혁주의 신앙의 최대 상속자가 되었다는 사실은 실로 최고의 특권이요 축복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학생신앙운동은 바로 조국의 순교자들을 통하여 그런 개혁주의 신앙을 직접 배웠던 선배들이 시작한 운동으로서 학생들이 자기네들끼리 모여서 기도하면서 시작한 운동입니다.
개혁주의 신앙이 얼마나 좋은지를 배우고 깨달아서 이 신앙을 조국과 세계에 전하는 사명을 꼭 완수해야겠다고 각오하면서 세워진 단체입니다.
'하나님 중심, 성경 중심, 교회 중심'이라는 너무나도 멋진 생활강령에 착안하고 이를 중심으로 뭉쳐진 순수한 신앙의 운동인 것입니다.

오늘 우리의 자녀들은 이처럼 실로 전통 있는 정통신앙의 뿌리와 줄기에 연결되어 있는 것입니다.
비록 우리의 현실은 21세기에 대한민국 땅에 살고 있지만, 바로 이 SFC를 통하여 우리 자녀들의 신앙이 먼저 가신 순교자 선조들, 참된 진리와 신행일치의 삶을 회복시켰던 종교개혁자들, 그리고 무엇보다도 선지와 사도들이 증거했던 참된 복음의 전통을 직통으로 물려받고 있음을 감사하고 자랑스럽게 여길 줄 아는 여러분들 되시기를 바랍니다.

2. '학생신앙운동'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자녀를 무장시키는 운동입니다.

본문 15절에 "15또 네가 어려서부터 성경을 알았나니 성경은 능히 너로 하여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게 하느니라"고 했습니다.

당시 모든 유대인들은 어려서부터 구약 성경을 철저히 배웠습니다.
대표적으로 신명기 6장 6절과 7절에 "오늘날 내가 네게 명하는 이 말씀을 너는 마음에 새기고 네 자녀에게 부지런히 가르치며 집에 앉았을 때에든지 길에 행할 때에든지 누웠을 때에든지 일어날 때에든지 이 말씀을 강론할 것이며"라고 명하고 있는 대로, 자식에게 성경 말씀을 가르치고 외우게 하는 것은 유대인 부모들의 일상사와 같았습니다.
특히 디모데는 어려서부터 그처럼 경건하고 신실했던 어머니와 외조모 밑에서 자랐으니 그 누구보다도 성경 말씀을 많이 배웠음에 틀림없습니다.

그렇게 알게 된 성경 말씀이 이 디모데에게 어떤 작용을 낳았습니까?
바로 성경이 "능히 너로 하여금...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게 하느니라"고 사도 바울이 디모데에게 상기시켜 주었습니다.
비록 그 어머니와 외조모가 훌륭한 신앙인이었기는 했지만 그들이 직접 디모데를 신자로 바꾼 것은 아니었습니다.
오직 그들이 가르쳐 주었던 성경 말씀이 디모데 속에서 또한 독자적으로 역사하여 그를 감동시키고 그를 움직여 또 하나의 경건한 신자로, 또한 거기에서도 한 걸음 더 나아가서 훌륭한 목회자로 자라나게 했던 것이었습니다.

왜냐하면 그 말씀에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비록 구약 39권이 오랜 세월과 많은 시대에 걸쳐서 기록되기는 했지만 그것들은 일관된 한 주제를 가지고 있었는데 그것이 바로 '자기 백성을 구원하기 위하여 오실 메시아'였습니다.
구약조차 그처럼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써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주제였다면 신약은 두말할 필요조차 없는 것입니다.

성경이 기록된 목적은 오직 '죄인 구원'이며, 그런 목적으로 기록된 책은 이 세상에서 오직 성경책밖에 없습니다.
성경을 읽고서 바로 그 구원의 축복을 받기 위해서는 신구약 성경 전체의 주제가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하나님의 구속사'임을 제대로 깨닫고 읽어야 하는 것입니다.
이처럼 오직 성경을 통하여 참된 구원의 확신에 이르게 만드는 것, 이것이 바로 우리 SFC 운동을 통하여 반드시 이루고자 하는 일차 목표입니다.

우리의 자녀들로 하여금 제대로 된 영적 자립을 누리게 하기 위해서는 이들의 성장 시기에 무엇보다도 먼저 성경 말씀으로 교육시키고 무장시켜야만 합니다.
성경은 우리 자녀들을 이 세상의 불신문화와 불신과학과 불신친구들 속에서도 능히 신앙의 독립 인격으로 성장시키고 지켜줄 수 있는 유일한 대책인 것입니다.
정말이지 이것 외에는 절대로 다른 대안이 없습니다.

아직까지는 내 집 지붕 밑에서 키우고 있지만 우리의 자녀들이 스스로 홀로 서야 할 때는 바로 코앞에 다가오고 있지 않습니까?
아직까지는 부모가 야단치면 묵묵히 들어야 하고 아직까지는 교회 데리고 나오면 따라올 수밖에 없는 통제 하에 있지만 그것도 잠시인 것입니다.
이제 곧 대학교에 들어가면 저녁에도 얼굴 한 번 보기 힘들어지기 시작할 것이고 조금만 더 지나면 결혼해서 아주 딴 살림을 차리게 될 날이 그야말로 순식간에 다가올 것입니다.

문제는 바로 그 날을 위하여 지금 부모가 어떻게 자녀를 미리 준비시켜 주느냐 하는 데에 있습니다.
여러분은 여러분의 자식이 혼자 서게 될 그 한 날을 위해 무엇을 미리 챙겨주려고 애를 쓰고 계십니까?
그저 대학만 졸업시키면 제 먹고 사는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될 터이니 어찌하든지 들들 볶아서라도 수능고사 공부만 시켜놓으면 내 자식의 앞날은 만사 오케이가 될 것이라고 생각하고 계시지는 않습니까?
'얘는 별 재주 없는 아이이니 내가 돈 좀 많이 모아서 어떻게 장사 밑천이나 하나 제대로 남겨 주면 그것 가지고 저 혼자라도 살아 갈 수 있겠지.'라고만 생각하고 계시지는 않습니까?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여러분의 자식들은 결코 그 졸업장 하나, 그 돈뭉치 하나 들고 이 세상에서 '홀로서기'를 결코 제대로 할 수가 없습니다.
자식이 머리 좋고 돈 잘 벌게 되기만 하면 나중에 부모의 걱정거리가 될 일이 조금도 없을 것이라고 꿈에라도 착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왜냐하면 우리 예수님께서 그처럼 분명하게 선언하셨듯이 "사람은 떡으로만 살 수 없고 오직 하나님의 입으로 나오는 말씀으로만 살 수 있기" 때문입니다.
성경을 제대로 가르치지 않으면, 그 자식을 언젠가 잃게 될 날이 반드시 오고야맙니다.
다른 것은 남보다 좀 모자라서 안타깝다 할지라도, 다른 것은 남들만큼 못해주어서 미안하다 할지라도, 자식에게 하나님의 말씀만큼은 제대로 채워주는 부모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SFC운동원들은 성경만 잘 배워놓으면 그것만 가지고도 충분히 훌륭한 독립인이 될 수 있으며, 여러분의 아들딸들은 오직 그 말씀만 가지고도 혼자서 아주 잘 살 수 있습니다.
오직 성경 말씀으로 무장시키는 것만이 우리 학생들을 바른 신앙인으로 키우고 오직 그것만이 우리의 자녀들의 생명을 마귀에게 빼앗기지 아니하고 지켜낼 수 있는 유일한 길인 것을 꼭 기억하고, 우리 SFC를 통하여 부지런히 성경을 알고 믿음을 얻고 구원의 확신을 지키는 여러분들 되시기를 바랍니다.

3. '학생신앙운동'은 경건한 생활로 자녀를 훈련시키는 운동입니다.

본문 16절과 17절에 "16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17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케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하기에 온전케 하려 함이니라"고 기록했습니다.

여기서 "모든 성경"이라 함은 물론 오늘날의 66권은 아직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이 당시 구약 성경은 이미 집대성 되어 있었고, 또한 이미 기록된 복음서들과 사도들의 서신들이 교회들 사이에 회람되고 있었으므로, 오늘날 이 말씀을 신구약 66권에 적용시키는 것에는 아무 무리가 없습니다.
그 모든 성경이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이라 함은, 성경책은 선지와 사도들이 쓰기는 했지만 결코 '하나님에 관한 말씀'이 아니라, 어디까지나 성령 하나님의 감동으로 기록되었기 때문에 일점일획까지도 모두 다 정확무오한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뜻입니다.

여기서 "교훈이란" '가르침'을 뜻하는데 특히 바른 신앙 진리를 가르치는 것입니다.
"책망"은 죄에 대한 '꾸짖음'을 뜻하고, "바르게 함"이란 잘못된 것을 고치는 '교도'를 가리키며, "교육"은 '훈련' 특히 행동지도를 뜻합니다.

17절에 "이는"이라고 시작되는 말은, 그처럼 가르치고 교육시킨 것이 그 이하에 나오는 결과로 나타나야 함을 강조하는 것인데, 그것이 곧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케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하기에 온전케 하려 함"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사람"이란 구약 시대에는 보통 선지자들에게만 붙여진 명칭이었지만 신약에서는 '하나님의 택함을 입은 모든 사람'으로 범위가 확대된 것으로서, 엄청나게 영광스러운 칭호임에 틀림없습니다.

어떤 사람이 그런 명예로운 이름으로 불리게 됩니까?
바로 말씀으로 잘 교육 받아서 '선한 일에 온전케 된 사람'이라고 했습니다.
즉 '교훈'을 받아 바른 신앙을 고백하고, '책망'을 통하여 진정한 회개가 일어나고, 그 다음에는 '바르게 함' 즉 회개에 합당한 변화된 삶이 나타나고, '교육'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훈련 받음으로써 최종적으로는 '선한 일'이라는 행위의 열매를 맺게 되는 사람이 바로 '온전케 된 하나님의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성경은 하나님께서 당신을 스스로 드러내어 보여 주시는 '자기 계시'의 말씀인 동시에 또한 그 하나님을 믿는 신자들을 교육시키는 책입니다.
그래서 우리 개혁주의 신자들은 성경을 가리켜 '신앙과 행위의 유일한 규범'이라고 성경의 절대성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경을 통하여 바른 신앙을 고백하게 되면 반드시 바른 행위가 따라올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우리의 자녀교육에도 바로 그와 같은 균형이 필요합니다.
개혁주의 신앙은 우리 자신이나 우리 자녀들이 세상의 문화와 철저히 격리된 삶을 살아야 한다고 가르치는 것은 아닙니다.
아니 오히려 고상한 문화생활을 누리고 건전한 오락을 즐기면서 사는 것 역시 열심히 노력하는 자에게 주어진 삶의 축복 가운데 하나라고 전도서 3장 13절에서도 말씀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그런 가운데서도 이 세상의 불신 생활양식과는 확실하게 구별되는 성별의 생활이란 것이 무엇인지 깨닫고 몸소 실천하며 살아야 할 것을 결코 잊지 말아야 합니다.

오늘날의 자녀들은 텔레비전을 통하여, 컴퓨터와 인터넷을 통하여 세상의 감각적 가치관과 정욕적 쾌락을 급속도로 배우며 자라고 있습니다.
자녀들은 '내가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하는가?' 하는 문제를 자각하기 훨씬 이전에 '내가 무엇을 해야 잘 살 수 있을까?' 하는 문제부터 고민하게 됩니다.
덕이라든지 윤리라는 개념이 이들의 사고 체계에 자리 잡기 훨씬 이전에 육체의 관능적 쾌락이 무엇인지를 먼저 배우게 되는 것이 바로 오늘 청소년들의 현실이 아니겠습니까?
자연히 의, 거룩, 경건 이런 말들은 오늘날의 자녀들에게 점점 못 알아들을 외래어가 되어 가고 이런 식으로 몇 세대가 지나면 그런 말들은 아예 고어가 되어 버리고 우리 후손들에게는 사전을 들추어 보아도 그 뜻을 이해할 수 없는 '죽은 단어'가 되어 버릴지도 모를 일입니다.
그것은 참으로 비극이며 이 사회의 미래에 대한 저주나 다름이 없습니다.

"육체의 연습은 약간의 유익이 있으나 경건은 범사에 유익하니 금생과 내생에 약속이 있느니라"는 말씀대로, 우리의 자녀들에게 '경건생활을 통한 금생과 내생의 축복'을 남겨주어야 합니다.
주일마다 예배드리는 생활이 매일 학교에 가는 것 이상으로 귀중함을 가르쳐주어야 하고, 자기 몸매만 가꾸는 것이 아니라 자기 영혼을 위하여 기도할 줄 알게 만드는 부모가 되어야 하며, 친구들과 노는 것보다는 선한 일을 행함으로 얻는 기쁨이 얼마나 더 큰 것인지를 체험할 줄 알도록 교사가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저 남보다 더 잘 벌고 더 잘 놀기 위해서 속이고 속으며 살아가는 이 악한 세대 속에서, 자신을 구별하여 하나님 앞에서 온전한 인격체로 드리며 자신의 생활을 구별하여 선한 일을 행하며 사는 이 경건의 능력이 얼마나 위대하며 그 축복이 얼마나 지대한지를 이 학생신앙운동을 통하여 꼭 가르쳐주고 배울 줄 아는 여러분들 되시기를 바랍니다.

성도님 여러분, 본문 첫 절인 13절에 보면 당시 디모데가 처해 있던 주변의 영적 상황을 가리켜서 "¹³악한 사람들과 속이는 자들은 더욱 악하여져서 속이기도 하고 속기도 하나니"라고 하면서, 곧 이어지는 14절 이하의 말씀 첫 마디에서 "그러나 너는"이라고 사도 바울은 강조했습니다.
이 "너는"이란 말은 '너는 아니다, 너는 그렇게 되면 안 된다, 너는 반드시 달라야 한다.'는 뜻입니다.
불의와 거짓이 판을 치며 그것이 오직 악화일로에만 있는 이 영적 혼란의 사회이지만 우리는 우리의 자녀만큼은 '온전한 하나님의 사람'으로 키워야만 할 시대적인 사명을 가지고 있습니다.
아무리 우리 자녀들의 주변이 그래도 '너는 그런 세상사조에, 불신 친구들, 악한 사회 풍조에 휩쓸려 가면 안 된다.'라고 가르치고 그렇게 키워야만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런 신앙교육은 정말 훌륭한, 명문 신앙학교에 자녀들을 입학시켜야만 가능한 일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의 자녀들을 이 '학생신앙운동'이라는 단체를 통하여 바로 이런 것들을 '배우게 하고 확신케 하며 그대로 살게 하고자' 합니다.
우리 SFC야말로 좋은 '신앙 전통'을 이어 받고 '성경 말씀'을 정확무오한 하나님의 말씀으로 배우며 '경건의 생활'로 자신을 훈련시켜주는 멋진 학교인 것입니다.

우리가 자녀들을 좋은 학교에 넣기 위해서 얼마나 애를 많이 씁니까?
중고등학교 학군 좋은 곳에 이사하게 되면 부모님들은 얼마나 좋아하며 안도의 한숨을 내쉽니까?
전통 있는 유수한 대학교에 자녀가 입학하게 되면 얼마나 기쁜 일이겠습니까?
그렇다면 우리 자녀들이 '학생신앙운동'이라는 이 좋은 학군 속에, 이 유수한 전통이 있는 교회학교에서, 이 순수한 신앙과 정확한 말씀으로 최고의 신앙교육을 받으며 자라고 있다는 것은 그 얼마나 자랑스럽고 감사한 일이겠습니까?
이 '학생신앙운동'을 통하여 바로 참된 신앙, 바른 말씀, 옳은 생활에 대하여 '배우고 확신한 일에 거하여' 살아가는 경향의 SFC운동원들과 또한 그와 같이 자녀를 양육시키시는 경향의 성도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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