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땅에서 천국을 맛보는 법
본문
본 문 : 에베소서 3:14-19
I. 서 론
노마 진 모튼슨(Norma Jean Mortenson)이란 여자 아이가 태어났다.
그런데 그의 아버지는 누구인지 알 수 없었고, 그의 어머니는 정신병에 걸렸다.
그래서 모튼슨은 남의 집에 양녀로 갔다.
그녀는 8살 때 그 집에 하숙하는 사람에게 강간을 당하였다. 그는 그녀에게 모욕스럽게도 1니켈을 주었다. 그러면서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라고 경고를 했다. 노마는 양어머니에게 그 사실을 이야기했다가, 위로를 받기는 커녕 호되게 매를 맞았다. 그러면서 양어머니는 그 하숙생이 하숙비를 잘 내니 아무에게도 그에 대하여 나쁘게 이야기 하지 말라는 경고를 받았다.
노마는 어려서부터 이렇게 추하고 더러운 세상을 알며, 거기에 익해지며 자랐다.
그는 자라나면서 점점 더 아름다워졌고, 그러다가 일찌기 결혼을 했고, 그리고 1945년에 무기 공장에 페인트공으로 일하다가 그곳에서 해군 사진 작가가 그녀를 모델로 찍은 사진이 선풍적인 인기를 얻어서 일약 스타가 되고, 세계적인 여배우가 되었다.
그녀는 수 많은 부와 영화를 누렸다.
그녀는 3번이나 결혼을 했다.
그러나 1962년 8월 5일 주일에 35살의 나이로 자살을 했다. 그는 알몸으로 침대에서 수면제를 과다 복욕하여 죽은 것으로 밝혀졌다.
그녀의 이름이 바로 마리린 몬로우(Marilyn Monroe)이다.
인간은 이세상에서도 천국을 맛보기를 원합니다.
사람들은 이땅에서 천국을 맛보려고 갖은 노력을 다합니다.
이세상을 천국으로 만들어 보려고 노력하는 자들이 많이 있읍니다.
하도 열심히 싸우길래 왜 그렇게 싸우느냐고 물었더니, 이세상에 천국을 만들려고 그렇게 악착같이 싸운다고 합니다.
저의 바램은, 저의 목회의 목표는 우리 모든 성도님들이 이땅에서 천국을 맛보며 신앙생활을 하는 것입니다.
이세상 전체에서 천국을 맛볼 수 없다고 하면, 적어도 교회나 가정에서는 천국을 맛보기를 원합니다.
그래서 늘 우리 성도님들의 가정이 천국지점이 되기를 위하여 기도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많은 사람들이 마리린 몬로우와 같이 잘못된 곳에서 천국을 맛보려고 합니다.
천국을 맛볼 수 없는 곳에서 천국을 맛보려고 발버둥을 치고 있읍니다.
이렇게 천국을 맛볼 수 없는 곳에서 천국을 맛보려고 발버둥을 치다가 보면, 천국을 맛보게 되는 것이 아니라, 종- -
당에는 망신창이가 되고 맙니다.
종당에는 상처뿐이요, 불행뿐입니다.
이런 것은 결국은 우리로 지옥을 맛보게 합니다.
처음에는 거기에서 천국을 맛볼 것 같으나, 종당에는 우리로 지옥에 빠지게 합니다.
최근 이나라가 바다이야기로 시끄럽읍니다.
많은 사람들이 거기에서 천국을 맛보려고 했읍니다.
바다이야기를 만들어 유통시킨 자들은 그것을 통하여 떼돈을 벌어서 천국을 맛보려고 했읍니다.
그러나 결국은 감옥의 지옥에 빠지고 말았읍니다.
바다이야기에 빠진 자들은 그 바다이야기에서 떼돈을 벌어서 천국을 맛보려고 밤을 새워가며 열심히 했읍니다.
그러나 바다이야기를 통하여 천국을 맛봤다는 사람을 들어보지 못했읍니다.
모두가 다 불행하게 되었읍니다.
이렇게 잘못된 곳에서 천국을 맛보려고 하면 다 불행하게 됩니다.
그러면 어떻게 이땅에서 천국을 맛볼 수 있을까요 ?
비록 이세상은 천국은 아니라고 하더라도, 이땅에서 천국을 맛보며 살 수는 없을까요 ?
그 말씀이 오늘 본문에 나와 있읍니다.
그래서 오늘은 우리가 이땅에서 천국을 어떻게 맛볼 수 있을까를 오늘 본문에서 살펴보려고 합니다.
II. 본 론
1. 성령으로 말미암아야 합니다.(v. 16)
에베소서에는 사도 바울의 기도가 두 번 나옵니다.
① (1:15-23)이고 ② (3:14-19)입니다.
그런데 ①에서는 계몽(enlightment)을 위하여 기도했읍니다.
즉 에베소 교인들로 하여금 하나님, 부르심의 소망, 그들이 받을 기업, 하나님이 주신 능력들을 깨닫게 하기 위하여 기도했읍니다.
그런데 ②에서는 우리가 체험(enablement)하도록 하기 위하여 기도하고 있읍니다.
즉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복과 은혜를 아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체험하여 누리도록 기도하고 있읍니다.
즉 우리로 하나님의 나라를 맛보도록 기도하고 있읍니다.
그러면 어떻게 이땅에서 천국을 맛볼 수 있다고 말씀하고 있읍니까 ?
그 첫째가 성령으로 말미암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 영광의 풍성을 따라 그의 성령으로 말미암아 너희 속 사람을 능력으로 강건하게 하옵시며”
즉 성령으로 이땅에서 하늘나라를 맛볼 수 있다는 것입니다.
성령님은 우리로 하여금 이땅에서 천국을 맛보게 하기 위하여 하나님이 보내신 분입니다.
이것을 잘 설명한 것이 바로 아브라함이 아들 이삭을 위하여 며느리감을 구해오라고 그의 충성된 종을 보내는 사건입니다.
여기에서 아브라함은 하나님을 뜻하며, 아브라함이 보낸 종은 하나님이 보내신 성령님을 뜻합니다.
즉 성령님은 하나님이 보내신 분입니다.
그런데 아브라함은 종을 보낼 때 그 집에 있는 “모든 좋은 것들”을 가지고 가게 합니다.
그리고 그것을 여인을 찾으면 주라고 합니다.
그렇게 해서 그 여인이 그 보화를 보고 아브라함의 집이 어떠한가를 알고 따라오게 하라고 합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의 종은 아브라함의 집에 있는 “모든 좋은 것들”을 가지고 갔읍니다.
그리고 그것을 리브가에게 주어서, 그가 살고 있는 곳 즉 하란에서 아브라함의 집을 미리 맛보게 했읍니다.
이렇게 성령님은 우리로 천국을 맛보게 합니다.
그래서 우리로 천국에 갈 마음이 생기게하고, 우리로 천국으로 인도하는 것입니다.
천국을 맛보지 않고서야 누가 성령님을 따라 천국으로 가겠읍니까 ?
그래서 성령님은 우리로 천국을 맛보게 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성령님이 오시면 이땅에서 천국을 맛볼 수 있읍니다.
초대교회 때 교인들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또 재산과 소유를 팔아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눠주었읍니다.(행2:44-45)
즉 이들이 천국생활을 했읍니다.
언제 이런 생활이 시작된줄 압니까 ?
바로 오순절날 성령님이 임하신 후입니다.
이렇게 성령님이 오시면 이땅에서도 천국을 맛볼 수 있읍니다.
그러면 성령님은 어떻게 우리로 천국을 맛보게 하실까요 ?
1) 성령님은 우리의 속 사람을 능력으로 강건하게 하십니다.
즉 성령님은 우리에게 능력을 주십니다.
성령님이 주시는 능력은 성령님의 능력입니다.
그러므로 성령님이 오셔서 능력을 주시면 우리가 성령의 능력을 체험하게 됩니다.
성령의 능력을 체험하는 것이 천국을 체험하는 것입니다.
이 능력을 희랍어로 두나미스(δύναμις - dunamis)라고 하는데 신약성경에 60번이나 나옵니다.
① 이 능력은 세상의 시련과 어려움을 이기게 합니다.
② 이 능력은 죽은 예수님을 살리신 능력입니다.(엡1:19-20)
그러므로 이 능력이 오면 우리의 죽은 것이 살아납니다.
미국의 새들백 교회의 릭 워렌(Rick Warren) 목사님은 이 부활의 능력이 바로 지금 우리의 삶의 약함을 강하게 한다고 하셨읍니다.
성경은 이 부활의 능력을 다음과 같이 이야기 했읍니다.
① 우리의 과거를 없애는 능력이요,
② 우리의 문제를 정복하는 능력이요,
③ 우리의 인격을 바꾸는 능력이다.
이 성령을 받을 때 우리가 이땅에서 천국을 맛볼 수 있읍니다.
2) 성령님은 우리로 성령의 열매들을 맺게 합니다.
성령님은 생명이시기 때문에 우리에게 오시면 성령의 열매들을 맺게 합니다.
그 성령의 열매가 9가지인데, 바로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입니다.
이것은 우리로 천국을 맛보게 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성령님은 우리에게 오셔서 성령의 열매를 맺게 하여 우리로 그 열매를 따먹음으로 천국을 맛보게 합니다.
그러므로 이땅에서 천국을 맛보려면 성령을 받으려고 노력을 해야합니다.
성령받기를 사모하고, 성령받기 위하여 열심히 기도하여 성령충만 받아 이땅에서 천국을 맛보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 그리스도께서 우리 마음에 계셔야 합니다.(v. 17)
우리가 이땅에서 천국을 맛보려면 그리스도가 우리 마음 속에 계셔야 합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께서 너희 마음에 계시게 하옵시고”라고 기도를 했읍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계신 곳이 그 어디나 천국입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은 하나님 우편에 계십니다.
사도신경은 예수님에 대하여 고백하기를 “장사된지 사흘만에 죽은 자 가운에서 다시 살아나시며, 하늘에 오르사, 전능하신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다가, 저리고서 산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러 오시리라”고 하고 있읍니다.
예수님은 하나님 우편에 계십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이 계신 곳에 하나님이 계십니다.
이 하나님이 계신 곳이 그 어디나 천국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가 우리 마음에 계실 때 우리는 천국을 맛볼 수 있읍니다.
그런데 여기에서 중요한 말은 “계시다”는 말입니다.
이 말은 희랍어로 카토이케오(κατοικέω)라는 말입니다.
이 말의 뜻은 “살다”, “거하다”라는 뜻입니다.
일시적으로 거하는 것이 아니라, 영원히 거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영어 성경 Good News Bible은 이것을 “그리스도께서 네 마음에 그의 집을 만들게 하라”(Christ will make his home in your hearts)라고 번역을 했읍니다.
예수님이 우리 마음에 계속 계셔야 합니다.
계시다가 안계시다가 하면 천국과 지옥을 오고 삽니다.
그런데 예수님을 우리의 마음에 계시게 해야 합니다.
즉 예수님이 우리의 마음을 다스려야 합니다.
천국은 우리의 육체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천국은 우리의 물질적인 곳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천국은 아름다운 공원이 아름다운 집과 같은 공간에 있는 것도 아닙니다.
천국은 우리의 마음에 있읍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천국은 “여기 있다 저기 있다 못하리니 하나님의 나라는 너희 안에 있느니라”(눅17:21)고 말씀하셨읍니다.
이렇게 천국은 우리의 마음에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이 우리의 마음에 계셔야 합니다.
그러면 그리스도가 우리 마음에 계시는 것은 어떻게 계시는 것일까요 ?
성경은 인간을 3종류로 나누고 있읍니다.
① 육에 속한 사람입니다.(고전2:14)
이런 사람을 자연인(natural man)이라고 합니다.
이런 사람은 성령밖에 있는 사람입니다.
이런 사람은 예수님을 영접하지 않은 자입니다.
믿지 않는 자입니다.
이러한 자의 삶을 CCC에서 만든 사영리에서는 그의 인생의 의자에 자기가 앉아 있고, 그리스도는 그의 삶의 밖에 있는 자입니다.
이런 자는 천국을 맛볼 수가 없읍니다.
② 어린아이 같은 영의 사람입니다.(고전3:1)
이런 사람을 육의 사람(carnal man)이라고 합니다.
이런 사람들은 믿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그들을 형제라고 불렀읍니다.
그러나 아직 어린아이와 같이 행동하는 자들입니다.(고전3:3)
이런 자들은 불순종의 삶을 사는 믿는 자들입니다.
③ 영의 사람입니다.(고전2:15)
이 영의 사람을 spiritual man이라고 합니다.
이들은 예수님을 믿고 영접한 자들입니다.
사영리는 이런 자들을 예수님이 그의 마음의 보좌에 앉아 있고, 나는 그 아래 앉아 있는 것으로 설명을 했읍니다.
천국을 맛보는 자는 바로 이 영의 사람입니다.
예수님이 우리 마음에 계셔서 우리의 마음의 주인이 되셔서 우리의 마음을 다스리셔야 합니다.
그래야만 우리가 천구을 맛볼 수 있읍니다.
그리스도가 우리의 마음을 다스리면 우리의 마음이 그리스도와 같이 됩니다.
그리스도와 같은 마음을 가질 때 우리는 천국을 맛보게 됩니다.
풀러신학교 교수를 지낸 로버트 멍거(Robert Boyd Munger) 교수는 그의 책 “나의 마음은 그리스도의 집”(My heart Christ's home)이란 책에서 이것을 잘 설명을 했읍니다.
예수님이 우리 마음에 주인으로 들어오셔서 우리 마음의 주인이 되셔서, 이방 저방을 돌아보며, 지시하시고 깨끗하게 하셔야 합니다.
이렇게 예수님이 나의 마음의 주인이 될 때 우리는 천국을 맛볼 수 있읍니다.
그런데 이것은 믿음으로만 됩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께서 너희 마음에 계시게 하옵시고라고”라고 기도를 했읍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우리의 주님으로 믿고 우리 마음에 영접을 해야 합니다.
예수님을 우리의 주님으로 믿지 못하면 우리는 예수님께 우리의 마음을 맡겨드릴 수가 없읍니다.
우리의 마음을 예수님께 맡겨드리지 못하면 우리는 천국을 맛볼 수 없읍니다.
예수님을 여러분의 구주로 믿고 영접하여, 예수님께 여러분의 마음을 맡기셔서 천국을 맛보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3.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아야 합니다.(vs. 17b-8)
천국에는 사랑이 있는 곳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사랑은 언제까지든지 떨어지지 아니하나 예언도 폐하고 방언도 그치고 지식도 폐하리라. 그런즉 믿음, 소망, 사랑 이 세 가지는 항상 있을 것인데, 그중에 제일은 사랑이라”(고전13:8, 13)고 말씀을 하셨읍니다.
믿음도 소망도 우리가 천국에 들어가면 다 사라집니다.
그러나 사랑은 천국에서도 계속됩니다.
그러므로 교회는 성도들로 하여금 천국에 가서 행할 사랑을 배우고, 연습하는 곳입니다.
그러므로 교회에서는 열심히 사랑하는 것을 배우고 연습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천국은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 때 우리가 맛볼 수 있읍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너희가 사랑 가운데서 뿌리가 박히고 터가 굳어져서 능히 모든 성도와 함께 지식에 넘치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아 그 넓이와 길이와 높이와 깊이가 어떠함을 깨달아 하나님의 모든 충만하신 것으로 너희에게 충만하게 하시기를 구하노라”라고 기도했읍니다.
천국은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 때 우리가 맛볼 수 있읍니다.
그런데 천국의 사랑은 우리 인간적인 사랑이 아니라,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의 사랑인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면 우리가 이땅에서도 천국을 맛볼 수 있읍니다.
그런데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안다”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안다는 것은 이론적으로 아는 것이 아닙니다.
이것은 체험적으로 아는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가 그리스도의 사랑을 느끼고 즐기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어떻게 그리스도의 사랑을 느낄 수 있을까요 ?
그것은 우리가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사랑할 때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내 계명은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하는 이것이니라”(요15:12)고 말씀을 하셨읍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의 사랑을 체험하는 것은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우리가 사랑할 때입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하나님을 사랑할 때입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사람을 사랑할 때입니다.
그리스도의 사랑은 무엇입니까 ?
그것은 원수까지 사랑하는 사랑입니다.
우리가 사랑할 수 없는 자를 사랑할 때 우리는 이땅에서 천국을 맛볼 수 있읍니다.
하루는 한 장교가 사병을 무참하게 구타하고 있었다. 그 장교는 젊고 성급한 사람이였다. 그런데 맞고 있는 사병도 젊고 용기가 있는 사병으로 잘 알려져 있었다. 그 사병은 모멸감을 깊이 느꼈다. 그러나 군율에 장교에게 반항할 수 없도록 되어있었어 그냥 맞을 수 밖에 없었다. 그 사병이 할 수 있는 것은 말로만 “당신을 후회하게 해줄 것이다”라고 하는 것 밖에 없었다.
그런데 하루는 치열한 전투가 벌어지고 있었다. 그 장교는 큰 부상을 당했다. 그리고 그 부대로부터 떨어져 있었다. 그 장교는 부상을 당한 몸으로, 필사의 힘으로 자기에게 부상을 입힌 적들을 통과하려고 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 사병이 그를 보는 순간 지난날 자기를 비참하게 만들었던 장교의 모습이 생각이 났다. 그러나 그 사병은 그 장교를 극진히 부축하고, 사력을 다하여 자기 진영으로 돌아왔다. 그래서 이 장교는 살 수 있게 되었다. 감동을 받은 이 장교는 그를 구해준 사병의 손을 잡으며 떨리는 목소리로 이렇게 감사를 했다. “귀하, 그렇게 무자비한 모멸감에 대한 이 왠 놀라운 보답인가 ?” 그러자 그 사병은 장교의 손을 꽉잡으면서 얼굴에 미소를 지면서 이렇게 부드럽게 이야기를 했다. “내가 전에 당신으로 후회하게 만들겠다고 하지 않았읍니까 ?” 그 장교는 이 사병이 자기와 같은 악으로 자기에 복수하여 후회하게 만든다고 생각을 했다. 그러나 이 사병은 사랑으로 그를 후회하게 만들었다. 그후로 이 장교와 사병은 형제가 되었다.
이렇게 천국은 우리가 그리스도의 사랑을 행할 때 맛볼 수 있읍니다.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하나님을 사랑하고, 아내와 남편을 사랑하고, 부모와 자녀들을 사랑하고, 이웃과 원수를 사랑하셔서, 이땅에서 천국을 맛보며 사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이한배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