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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義)가 무엇이기에 (롬4:1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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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義)가 무엇이기에
로마서4:18~25
2006년 8월 20일 주일 낮예배 최일환 목사 설교

4:18 아브라함이 바랄 수 없는 중에 바라고 믿었으니 이는 네 후손이 이같으리라 하신 말씀대로 많은 민족의 조상이 되게 하려 하심을 인함이라
4:19 그가 백세나 되어 자기 몸의 죽은 것 같음과 사라의 태의 죽은 것 같음을 알고도 믿음이 약하여지지 아니하고
4:20 믿음이 없어 하나님의 약속을 의심치 않고 믿음에 견고하여져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4:21 약속하신 그것을 또한 능히 이루실 줄을 확신하였으니
4:22 그러므로 이것을 저에게 의로 여기셨느니라.
4:23 저에게 의로 여기셨다 기록된 것은 아브라함만 위한 것이 아니요
4:24 의로 여기심을 받을 우리도 위함이니 곧 예수 우리 주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를 믿는 자니라.
4:25 예수는 우리 범죄 함을 위하여 내어줌이 되고 또한 우리를 의롭다 하심을 위하여 살아나셨느니라.


설교:
세상 사람들은 눈에 보이는 것을 귀하게 여기고 삽니다. 그리고 눈에 보이지 않은 것은 하찮게 여깁니다. 그러나 실상 눈에 보이는 것보다는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이 더 가치가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사랑, 정신, 영혼, 천국, 이런 것은 눈에 보이지 않기에 사람들이 그다지 중요하게 여기지 않습니다. 그러나 돈, 황금, 보석, 수십억원의 고급아파트, 이런 것은 눈에 보이는 것이기에 아주 중요하게 여깁니다.


눈에 보이지 않으나 아주 중요한 것이 하나 있습니다. 그것은 믿음입니다. 그리고 그 믿음으로 얻어지는 의(義)라는 것입니다. 이 의(義)의 가치를 아는 사람은 세상에 최고의 복을 누리는 사람입니다.


이 義를 위해 목숨을 걸었던 사람들이 있습니다. 1517년 독일의 ‘루터’라는 사람은 ‘오직 믿음으로 의롭다함을 받는다’는 성경말씀을 외치면서 종교개혁의 깃발을 들었습니다. 구원은 인간의 행위로 얻어지는 것이 아닌 오직 믿음으로 얻어지는 선물이라고 외쳤던 것입니다. 그 뒤를 이어서 칼빈, 쯔빙글리, 존 낙스 등의 개혁자들은 ‘오직 믿음!’, ‘오직 성경!’이라는 구호를 외쳤습니다. 여러분도 그렇게 믿습니까?


그러나 당시 부패와 타락의 늪에 빠져 있던 카토릭 종교 지도자들은 자신들의 아성을 무너뜨리지 않기 위해서 종교개혁자들을 이단으로 몰아세우면서 공격하고 그들을 짓밟았습니다. 왜냐하면 당시 로마 가톨릭의 지도층은 “구원이 인간의 행위와 공로에 있다”고 주장하면서 면죄부 판매에 열을 올렸기 때문입니다. 결국 중세 카토릭은 성경을 떠난 종교가 되고 말았던 겁니다.


성경 어느 곳에서도 구원이 행위에 있다고 하지 않습니다. 원래 이신칭의(以信稱義)의 사상은 루터가 주창한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성경의 핵심사상입니다.
믿음으로 의롭다함을 받는 것이 최초로 발견되는 곳은 창세기 15장 6절입니다. “아브람이 여호와를 믿으니 여호와께서 이를 그의 의로 여기시고”
“여호와께서 이것을 그의 의로 여기셨다.” 여기서 이것은 약속을 믿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성경이 말하는 의(義)란 무엇일까요?


1. 義란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은 상태입니다.
의(義)란 “하나님 보시기에 좋은 상태”요, “만족스런 상태”를 말합니다. 그러면 하나님 보시기에 좋은 상태가 어떤 상태일까요? 에덴동산의 창조 당시의 원래 모습입니다. 그 모습이 의(義)입니다.


의(義)라는 뜻의 한문(漢文) 뜻은 “옳다, 바르다, 흠이 없다”를 말합니다.
제가 한문을 잘 모르지만 한문으로 의(義)자는 양(羊)자와 아(我)자가 합쳐진 상태로 “나는 주님의 양이다”고 고백하는 상태라고 봐야 합니다.


에덴동산에서 최초 인간 아담은 하나님과의 약속을 깨버렸습니다. 선악과 언약을 어기고 ‘정령 죽으리라’는 약속을 무시했습니다. 결국 모든 인간은 죄를 범하게 되었고 그로 말미암아 사망의 값을 치르어야 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스스로 의로워 질 수 없는 인간을 그냥 버려두지 않으시고 그 타락한 인간을 구원하시려고 한 길을 열어 놓으셨습니다. 그것이 십자가의 대속입니다.


우리가 치러야 할 값을 하나님의 아들이 대신 값을 치르게 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율법에서는 속죄 제사를 지키게 하신 것입니다. 그러나 그 양이나 소를 제물로 드리는 속죄 제사는 완전치 못하였습니다. 그 속죄제사는 그림자였습니다. 장차 오실 어린양 예수를 미리 보여 주신 사건이었습니다.
그러기에 아브라함이 의롭다함을 받았다는 것은 장차 오실 메시야 믿음을 가져서 하나님께 만족을 드렸다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의 행위가 완전해서 아닙니다. 그가 메시야의 믿음을 고백했기 때문입니다. 그는 장차 오실 메시야를 믿었던 것입니다. 아브라함의 믿음은 단순한 확신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의 존재만 확신한 것도 아니었습니다. 아브라함은 메시야를 보내실 하나님을 믿었습니다. 그 믿음을 보시고 의롭다고 하신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세상에 하나님께 만족을 드릴 것이 아무 것도 없습니다. 믿음 외에는 하나님을 만족하게 해드릴 수 없었습니다.
여기에서 믿음으로 말미암은 의의 법칙이 나오는 것입니다.


2. 의란 약속을 신뢰한 자의 결과입니다.
아브라함이 바로 그 약속을 받아들이고 그 약속을 신뢰하고 행했던 사람입니다. 그러기에 의란 약속을 신뢰한 자에게 주신 결과입니다.
오늘 본문 4:18절~22절을 이하를 보세요.
18절에는 “아브라함이 바랄 수 없는 중에 바라고 믿었다”고 했고
19절에서는 “그가 백세나 되어 자기 몸의 죽은 것 같음과 사라의 태의 죽은 것 같음을 알고도 믿음이 약하여지지 아니했다”고 했습니다.
20절에 결국 믿음이 없어 하나님의 약속을 의심치 않고 믿음에 견고하여져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21절에 약속하신 그것을 또한 능히 이루실 줄을 확신하였으니
22절에 그러므로 이것을 저에게 의로 여기셨다고 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의란 무엇이냐? 바랄 수 없으나 하나님이 하신 약속을 믿고 믿되 믿음이 약하여지지 않고 의심치 않고 하나님이 하신 약속을 하나님이 능히 이루실 것을 믿는 그것을 의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도 주님이 하나님의 아들 되심을 믿어야 합니다. 그분이 나를 위해 십자가에 죽으신 것을 믿어야 하며 그분이 나를 위해 부활하신 것도 믿고 그분이 나를 위해 다시 오실 것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그 믿음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의의 상태입니다.


의심이 생길 수 있습니다. 아브라함도 믿었다가 나중에 의심도하고 인간적인 편범도 사용하여 이스마엘을 낳기도 했습니다. 오늘 우리를 향한 구원약속, 세월이 흐르면서 도저히 이루어지지 않을 것 같지 않은 의심도 생깁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약속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 믿는 것도 실상 하나님의 은혜로 주시는 선물입니다. 그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얻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은혜도, 믿음도, 구원도 선물입니다.
성도 여러분! 예수를 믿습니까? 예수님이 여러분의 죄를 위해 죽으신 하나님의 아들임이 믿어집니까? 그것을 기뻐하시기 바랍니다. 왜냐하면 그것이 바로 의롭다하심을 입은 증거이며 그것이 바로 구원받은 증거이기 때문입니다.


불신자들은 하나님의 존재도, 그분의 살아계심도 믿지 못합니다. 그러기에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 되심을 믿지 못합니다. 그러기에 그분의 약속을 받아들이지도 못합니다. 결국 의롭다함을 얻을 길이 없습니다.
그러기에 그 결과는 정령 죽으리라 하신 약속처럼 멸망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공의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다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로 예수를 구주로 믿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분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를 대신하여 죄를 속하신 것을 믿습니다. 그러기에 그분의 약속대로 의롭다함을 얻은 상태가 되었습니다. 아브라함이 그 믿음으로 의롭다함을 얻은 것처럼 우리도 의롭다함을 얻은 것이 되었습니다.


3. 그 의는 행위로 된 義가 아닌 믿음으로 된 稱義입니다.
우리의 행위로 얻은 것이라면 자랑할 것이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 행위로 된 것이 없습니다.
엡2:8~9 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2:9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치 못하게 함이니라
로마서 3장에서도
3:24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구속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 3:25 이 예수를 하나님이 그의 피로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는 화목 제물로 세우셨으니 이는 하나님께서 길이 참으시는 중에 전에 지은 죄를 간과하심으로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려 하심이니


그래서 칭의(稱義)란 말을 씁니다. 稱義란 의롭지 못한 사람을 의롭다고 일컬어 주는 것입니다.
오늘 4장2절 이하를 보세요.
4:2 만일 아브라함이 행위로써 의롭다 하심을 얻었으면 자랑할 것이 있으려니와 하나님 앞에서는 없느니라


4:5 일을 아니할지라도 경건치 아니한 자를 의롭다 하시는 이를 믿는 자에게는 그의 믿음을 의로 여기시나니
한마디로 아브라함도 그 행위가 온전치 못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아브라함처럼 경건치 않는 자를 의롭다하시는 이를 믿는 자들에게는 그의 믿음을 의로 여기신다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여기에 우리 소망이 있습니다.
만약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완전해야 하고 흠이 없어야 한다면 결코 우리는 의롭다함을 얻을 수 없습니다. 비록 의롭지 못하나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주신 약속을 받아들이는 그것을 믿으면 그것을 의롭다고 하시는 것입니다.


문제는 의롭다함을 입은 결과가 중요합니다.
이 의롭다함을 입은 자는 어떻게 됩니까?

1) 하나님 나라에 영원한 언약 백성이 됩니다.
하나님께로 의롭다 함을 받은 자는 “신분이 바뀐 자”입니다. 세상 죄의 종노릇 하던 자가 이제는 하나님의 자녀의 권세를 누리고 그 권세를 영원히 누리는 언약 백성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한번 구원받은 당신의 백성을 절대로 포기하지 않으십니다. 우리의 구원을 어떤 세력도 물리칠 수 없습니다.
로마서 8장30절 이하를 보세요.
8:30 또 미리 정하신 그들을 또한 부르시고 부르신 그들을 또한 의롭다 하시고 의롭다 하신 그들을 또한 영화롭게 하셨느니라


8:34 누가 정죄하리요 죽으실 뿐 아니라 다시 살아나신 이는 그리스도 예수시니 그는 하나님 우편에 계신 자요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시는 자시니라 8:35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환난이나 곤고나 핍박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협이나 칼이랴


자식은 부모를 버려도 부모는 자식을 절대 포기하지 않습니다. 설사 부모가 자식을 포기하는 경우는 있어도 하나님은 당신 백성을 절대로 포기하지 않습니다. 그 사랑이 여러분에게 이미 임하였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2) 아브라함이 누린 복을 누립니다.
아브라함은 세상에서 가장 큰 복을 누린 자입니다. 하나님이 그를 복의 근원으로 삼으시겠다고 하십니다.
그리고 창세기 12장2~3절에
12:2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케 하리니 너는 복의 근원이 될지라 12:3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를 인하여 복을 얻을 것이니라 하신지라 하셨습니다.
실제로 그는 가는 곳마다 복을 누리고 하는 일마다 복을 누립니다. 기근을 피해 애굽에 가서도 거부가 되어 나오고 롯과 헤어질 때도 그는 황량한 들판과 산 쪽을 택했으나 그는 엄청난 복을 누립니다. 그 복이 우리에게도 있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아브라함은 오실 예수님을 바라보고 믿었으나 우리는 오신 예수님을 믿습니다. 우리는 우리 죄를 위해 십자가에 죽으신 예수, 우리를 위해 부활하신 예수를 믿고 그처럼 우리 영생을 누릴 것을 믿습니다. 어찌 보면 아브라함보다 더 큰 복을 누리는 백성입니다.


3) 예수님의 부활의 영광을 누리게 됩니다.
의롭다함을 받은 것은 아브라함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했습니다.
본문 로마서4:23~24절을 보세요.
23 저에게 의로 여기셨다 기록된 것은 아브라함만 위한 것이 아니요
24 의로 여기심을 받을 우리도 위함이니 곧 예수 우리 주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를 믿는 자니라.
아브라함이 의롭다함을 받은 것은 자신만을 위함이 아닌 장차 믿을 우리를 내다보시고 하신 것입니다.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하나님을 믿는 우리를 위한 칭의였던 것입니다. 그러기에 그분의 칭의를 받은 우리는 예수님이 누린 영광을 누리게 될 것을 믿어야 합니다. 의롭다함을 얻은 백성만이 누릴 부활의 영광, 이것을 누리시기 바랍니다.


오늘 설교는 매우 어렵습니다. 그러나 그럴지라도 여러분이 의의 가치와 중요성을 깨닫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이 베푸시는 의가 세상의 눈으로 보기에는 아무것도 아니나 영적 시각으로 보면 세상 그 어떤 것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것입니다.


이 義를 복으로 누리시고 이 義를 생명처럼 귀하게 여기시기를 축원합니다. 하나님은 義의 하나님이십니다.


기도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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