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자가로 나타난 하나님의 사랑 (롬 5:6-11)
본문
어느 목사님, “내가 가장 좋아하는 성경 구절은 롬5:8입니다.”
롬5:8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그 이유에 대하여 이렇게 설명했다.
“만약 강도가 내 집에 들어와 돈을 달라하면 돈을 줄 것이고, 집 문서를 내놓으라하면 집 문서를 내 줄 것이다. 그러나 내 아들의 손가락 하나라도 내놓으라면 나는 결코 내 놓을 수 없을 것이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나를 위하여 당신의 외아들을 아낌 없이 내어 놓으셨다.”
그러나 하나님의 사랑을 느끼는 것은 사람에 따라 차이가 많다. 어떤 사람은 그 사랑에 감격하여 눈물을 흘리고 자신의 삶을 주님을 위해 살 것을 다짐하는 사람이 있다. 또 어떤 사람은 맹숭맹숭 그 사랑이 어떤 사랑이길래 저렇게 눈물까지 흘리는가 이해가 안된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그렇다면 언제 그 사랑을 느낄 수 있는가? 그것은 하나님께서 나를 위해 하신 일이 무엇인가를 깨닫게 될 때 느낄 수 있다. 그것은 마치 나이가 들면서 부모님의 은혜를 깨닫게 되는 것과 같은 것이다. 어린아이들은 부모님의 사랑을 잘 모른다. 왜냐하면 받기만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자신이 자식을 낳아 길러 보면 부모님의 사랑이 얼마나 큰 것인가를 알게 된다. 나를 키우시려고 당신은 잠도 못자고, 옷도 못 입고, 제대로 쓰시지도 못하고 그렇게 희생하셨구나!
그런데 대부분 이 사랑을 늦게 깨닫고 후회하게 된다.
하나님과 그리스인들과의 관계도 마찬가지이다. 자기 일에 바빠서 분주히 살다보면 받은 은혜도 까먹고 그 사랑을 잊고 살 때가 많다. 오늘 이 말씀을 통하여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사랑을 다시 한 번 깊이 느낄 수 있는 시간이 될 수 있기를 축원한다.
사도 바울은 오늘 본문을 통해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사랑을 3가지 측면에서 구체적으로 증거하고 있다.
1.하나님의 사랑의 3가지 측면
1)우리가 연약할 때 그 사랑을 나타내셨다고 증거하고 있다.
롬5:6, 우리가 아직 연약할 때에 기약대로 그리스도께서 경건치 않은 자를 위하여 죽으셨도다
여기서 “연약할 때”라는 말은, 불신앙 가운데 있으면서 육체의 정욕을 따라 행하던 때를 가르킨다. 우리에게 나타난 하나님의 사랑은 우리가 그리스도를 믿고 구주로 영접할 때부터가 아니라 그것 보다 훨씬 더 전에 우리가 불신자로서 하나님을 모른다 하며 세상을 좇아다닐 때에도 여전히 우리를 사랑하셨다는 뜻이다.
2)우리가 죄인되었을 때도 그 사랑을 나타내셨다고 증거하고 있다.
롬5:8,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죄인되었을 때”라는 말은, 연약할 때의 모습에 대한 구체적 표현이다. 그 모습은 마치 법정에서 피고인으로 재판장 앞에서 형을 언도받기 위해 서 있는 미결수와 같은 모습을 연상케 한다. 아무도 그를 도와줄 수가 없다. 이제 그에게 남은 것은 재판장의 형 언도만 남아 있다. 절망적인 상황에서 하나님은 나타나셨다. 그리고 이렇게 말씀하신다.
“사람들은 너를 죄인이라고 욕하고 비난하지만 이제부터 너는 죄인이 아니야!” 죄수들이 입는 수의를 벗겨내시고 그에게 그리스도의 옷을 입혀 주셨다. “이제 너는 의인이야!” 그 자리에서 그의 사랑을 확증해 주신 것이다.
3)우리가 하나님과 원수되었을 때
롬5:10, 곧 우리가 원수 되었을 때에 그 아들의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으로 더불어 화목되었은즉 화목된 자로서는 더욱 그의 살으심을 인하여 구원을 얻을 것이니라
이것은 하나님과의 적대적 관계에 놓여 있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원수의 관계는 반드시 한쪽 편을 제거해야 문제가 해결되는 관계이다. 결코 공존할 수 없는 관계이다. 그런데 그런 원수의 관계에서 화목한 관계로 바꾸시기 위해 독생자 외아들을 내어 놓으셨다.
여러분, 전과자에게 사랑하는 마음으로 접근할 수 있겠는가? 이단이나 타종교인들을 사랑할 수 있겠는가? 나와 원수 관계에 있는 사람과 화목할 수 있겠는가? 쉬운 일이 아니다. 쉬운 정도가 아니라 너무 너무 어려운 일이다. 현실에서 나와 부딪히는 관계 속에서 나의 사랑이 얼마나 작고, 편파적이며, 이기적인가를 느낄 때가 많다.
설날이나, 추석 명절이 되면 친척집을 방문하기 위해 선물을 사게 된다. 그런데 나도 모르는 사이에 공정치 못한 태도가 나타나게 된다. 상대적으로 가난한 집에는 싼 물건을 사게 되고 부잣집에는 비싼 선물을 준비하게 된다.
사실 부잣집에 갈 때 10만원짜리 선물세트를 사들고 가도 별로 빛이 나질 않는다. 그러나 가난한 집에 10만원짜리 선물세트를 사들고 가면 충격을 받고 감동을 받고 기뻐할 것이다.
세상 인심이 참 고약하다. 내가 잘 되고 성공하면 멀어진 친척도 찾아오고 잊었던 친구들도 찾아 온다. 그러나 내가 망하면 시간이 지남과 함께 다 떠난다. 그러나 하나님은 내가 망했을 때 찾아오시고, 내가 범죄했을 때 찾아와 주신다. 사람들이 외면하고 조롱하고 무시할 때 그 때 찾아와 주신다. 이것이 하나님의 사랑이다. 내가 연약할 때, 내가 죄인되었을 때, 내가 하나님과 원수되었을 때 그 때 내게 찾아 오셨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사랑이다.
2.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사랑을 어떻게 우리에게 나타내셨는가?
오늘 본문 6,8,10절에서 반복적으로 등장하고 있는 문구가 있다. “죽으심으로...”
누가 누구를 위하여 죽으셨는가? -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가 경건치 않은 우리를 위하여 죽으신 것이다. 그의 아들을 주게 하심으로 그의 사랑을 나타내셨다.
인도네시아 동북부의 이리얀자야라는 정글에서 식인종들을 대상으로 선교하던 돈 리챠드슨이라는 선교사가 쓴 선교수기 “화해의 아이”라는 책이 있는데, 어느 날, 선교 대상이었던 사위 부족과 그 이웃 부족과의 싸움에서 결정적으로 패배할 것이 확실시되자 사위 부족의 추장 아들을 상대 부족에게 내어 주고 그 아들이 희생 제물로 바쳐지자 전쟁이 끝나는 모습을 보게 되었다.
이후에 돈 리챠드슨 선교사가 사위 부족을 대상으로 전도할 때 요3:16의 내용을 잘 증거할 수 있었다고 한다.
“여러분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셨습니다. 그래서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화해의 아이’로 주셨습니다. 이 화해의 아이인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는 이제 하나님과 화목하게 된 것입니다.”
사위부족의 추장이 자기 아들을 죽음의 자리에 내어 놓음으로 자기 부족을 살릴 수 있었던 것처럼,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아들 그리스도를 죽음의 자리에 내어 놓으심으로 영원한 멸망으로부터 인류를 살려낼 수 있었던 것이다.
성경은 인간 존재에 대하여 이렇게 증거하고 있다.
(롬 3:10) 기록한바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롬 3:23)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죄는 물로 씻겨지는 것이 아니다. 선행과 수행을 통해서 해결되지 않는다. 오직 그리스도의 피로써만 씻을 수 있기 때문이다.
벧전1:18-19, 너희가 알거니와 너희 조상의 유전한 망령된 행실에서 구속된 것은 은이나 금 같이 없어질 것으로 한 것이 아니요. 오직 흠 없고 점 없는 어린양 같은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한 것이니라
우리를 죄에서 구원하시기 위해 당신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 박히게 내어 놓으셨다. 이것이 우리를 위해 나타내신 하나님의 사랑이다.
찬 184, 나의 죄를 씻기는 예수의 피 밖에 없네 다시 성케하기도 예수의 피 밖에 없네 예수의 흘린 피 날 희게 하오니 귀하고 귀하다 예수의 피 밖에 없네.
3.그리스도의 죽으심의 효과는 무엇인가?
1)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신 것
(롬 5:8)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내가 너를 사랑한다! 십자가를 바라볼 때마다 그 사랑의 음성을 들을 수 있기를 바란다.
2)의롭다 하심을 얻음
(롬 5:9) 그러면 이제 우리가 그 피를 인하여 의롭다 하심을 얻었은즉 더욱 그로 말미암아 진노하심에서 구원을 얻을 것이니
의롭게 되는 것은 선한 행위, 율법의 의로 되는 것이 아니다. 오직 방법은 하나, 그리스도의 피로써 의롭게 되는 것이다.
3)하나님과의 화목
롬 5:10, 곧 우리가 원수 되었을 때에 그 아들의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으로 더불어 화목되었은즉 화목된 자로서는 더욱 그의 살으심을 인하여 구원을 얻을 것이니라.
“너는 내 아들이라, 너는 내 딸이라.” 하나님과의 친밀한 관계를 유지할 수 있게 되었다.
4)하나님 안에서 즐거움
(롬 5:11) 이뿐 아니라 이제 우리로 화목을 얻게 하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 안에서 또한 즐거워하느니라
예수님의 십자가로 의롭다함을 받았고, 영생의 보장, 하나님과 친밀한 관계가 회복되었으면 그것보다 더 행복한 것은 없는 것이다. 이것을 인해 우리는 즐거워 할 수 있는 것이다. 어떤 목사님이 말하기를,
“그리스도인은 십자가 하나만 바라보며 하나님은 나를 사랑하고 있다는 것을 깨닫고 감격할 수 있어야 한다.”
19세기 세계적 설교자인 스펄젼목사.
어떤 아버지가 아들과 함께 외출했다가 일을 보기위해 나중에 이 건물 앞에서 만나자고 아들과 약속했다. 아버지는 분주히 일을 보다가 집으로 돌아왔다. 아내가 리처드는 어디 있어요? 그때까지 아들이 그 건물 앞에 서 있었다.
그리스도인들에게, 주님이 돌아오실 때까지 십자가 밑에 있으라고 명령하셨는데 아직 주님이 돌아오지 않으셨다. 주님이 재림하실 때까지 십자가 밑에서 떠나서는 안된다. 꼼짝말고 그 자리를 지키고 있어야 한다.
그러나 현실은 어떤가?
십자가 없이 예수 믿는 사람들, 십자가를 피해서 믿는 사람들, 십자가를 잃어버리고 방황하는 사람들..
부부관계 - 정상적인 부부라면 오랜 세월을 함께 살면 그 사랑이 더욱 깊어지고 아름다운 것이다. 그러나 사랑이 식어진 부부 관계는 명목상 부부일 뿐이지 부부가 아니다.
십자가의 사랑을 잃어버린 그리스도인들은 명목상 그리스도인이지 참된 그리스도인이 아니다.
“십자가의 도”라는 책에서 제씨 팬 루이스는 십자가의 능력에 대하여 4가지를 말했다.
1)죄에 대한 승리 2)세상에 대한 승리 3)육신에 대한 승리 4)사탄에 대한 승리
하나님께서는 십자가를 통해서 당신의 사랑을 우리에게 보여 주셨다. 십자가는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변함 없는 증거이다. 십자가를 밑에 있는가? 십자가의 능력을 믿는가? 십자가를 든든히 붙잡고 있는가?
(원영대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