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지배하는 법칙 (롬 4:17-17)
본문
로마서 4:17-18 “기록된 바 내가 너를 많은 민족의 조상으로 세웠다 하심과 같으니 그가 믿은 바 하나님은 죽은 자를 살리시며 없는 것을 있는 것으로 부르시는 이시니라 아브라함이 바랄 수 없는 중에 바라고 믿었으니 이는 네 후손이 이 같으리라 하신 말씀대로 많은 민족의 조상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
인사 나눕시다. 저랑 친해지십시요. 나중에 제 덕 볼 수 있습니다.
어떤 청년이 사람만 만났다 하면 돈, 여자, 결혼 이야기만 하는 거예요.
돈 여자 결혼 이야기하는 청년 어떤 청년입니까? 노총각이죠. 꿈에도 소원은 결혼이죠, 결혼하려면 여자가 있어야하고, 돈도 있어야죠. 이렇게 날마다 돈 여자 결혼을 외치던 이 노총각에게 기회가 왔어요. 천사를 만난 거지요. “니 소원이 무엇이냐?” 뜸들일게 무엇입니까?. 내 소원은 “돈, 여자, 결혼입니다.” 막 바로 나왔죠. 천사가 의외로 그냥 이루어 주었데요. 돈 여자랑 결혼시켰답니다.
우리는 좋은 결과를 바라는데 원하지 않는 결과가 나와서 우리를 당황케 할 때가 많지요. 왜 그럴까요.
따라 하겠습니다. “인생은 법칙대로 움직여 갑니다.”
볼펜이 있습니다. 이 볼펜을 여기서 놓으면 어떻게 될까요? 왜 앞으로, 위로 안가고 밑으로 만 떨어질까요? 중력의 법칙의 법칙 때문에 그래요.
많은 사람들은 막연한 기대를 가지고 있습니다. 잘 되겠지. 그러나 법칙대로 됩니다. 난 이래도 내 자식은 잘 될 거야. 아니요 법칙대로 됩니다. 우리가 무엇을 결정할 때 그 결과가 어떻게 될 것인지, 무슨 말을 할 때 그 말이 어떤 결과를 초래할 것인지 알 고 살아야 됩니다.
로마서 8장 5-6절에 어떤 법칙을 가지고 어떤 생각을 가지고 살아야 될지 법칙을 얘기해 주고 있습니다. “육신을 따르는 자는 육신의 일을, 영을 따르는 자는 영의 일을 생각하나니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니라”
아무리 노력하고, 땀을 흘려도, 좋아 보여도, 그 일이 육신적인 일이면 그 결과가 사망, 실패요. 아무리 실패한 것 같이 보여도, 인생이 힘겨워 보여도, 괴로워도 그 것이 영의 일이면 그 결과가 생명과 평안이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정해 놓으신 법칙입니다.
먼저 육신의 법칙이 있습니다.
왕대 밭에 왕대 난다는 법칙이 있습니다. 훌륭한 부모 밑에 훌륭한 자녀가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자녀가 훌륭하지 않다 그러면 부모도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엄마가 자녀를 보고 “난 공부 잘 했는데 넌 누굴 닮아 이렇게 성적이 안 나와”하는 경우가 있어요. 둘 중 하나입니다. 아버지가 성적이 나빴거나, 지금 어머니가 자신을 속이고 있는 거지요. 잘 한 척하는 것이지요. 자녀가 엄마 학교 가서 성적을 설마 떼어보겠습니까? 아무도 모르지요, 그러나 조심하십시오. 진짜 갈지도 몰라요.
요즘은 공부를 잘 하려면 돈이 있어야한데요. 학원 보낸 아이하고 안 보낸 아이하고실력 차이가 다르데요. 돈이 있어야 과외하고 돈이 있어야 미술, 음악도, 스포츠도 한다고 그래요. 왕대 만들려면 돈이 있어야 한데요. 무서운 세상입니다. 가난한 사람은 계속 가난하고, 부자는 계속 부자가 된답니다.
이것이 세상의 법칙입니다. 왕대 밭에 왕대 난다. 우리가 계속 이렇게 살아야 합니까? 하나님께서 계속 이렇게 살게 만들어 놓으셨을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세상의 법칙을 깨는 법칙이 있습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법칙입니다.
여기 풍선이 있습니다. 왼편의 풍선은 손을 놓으니깐 가라앉습니다. 그런데 오른편 풍선은 좀 다릅니다. 이 풍선은 손을 놓으면 뜨네요. 잡아 내리려 해도 뜹니다. 무슨 차이 입니까? 겉으로 볼 때는 몰라요. 안에 무엇이 들어 있느냐의 차이입니다. 법칙의 차이입니다. 하나에는 이산화탄소가 들어 있고, 다른 하나에는 공기보다 가벼운 헬륨이 들어가 있지요.
우리 안에 육신의 생각이 들어 있으면 아무리 띄우려해도 가라앉을 수밖에 없어요. 그러나 우리 안에 영의 생각, 영의 법칙을 알고 있으면 아무리 잡아당기고 사탄이 잡아당겨도 가라앉지 않는 인생이 될 줄로 믿습니다.
이지선 양이 있지요. 온 몸이 화상으로 다 타버렸어요. 손가락도 다 타서 네 손가락 절단하고 집게 손가락 한 마디만 남았어요. 세상의 법칙을 가진 사람은 이럴 때 인생을 포기하겠지요. 그러나 하나님의 법칙을 가진 사람이었기에 그는 아무리 잡아 당겨서 포기시키고 실패하게 만들려해도 그는 포기하지 않았어요. 하나님의 법칙을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가 고백하는 말 “하나님 내게 이 손가락 하나 남겨 주셔서 감사합니다.” 온 몸에 피부를 다시 입히다 보니까 다리에 있는 피부를 얼굴에 입혔어요. 그러다 보니 털이 있지요. 고백했습니다. “바람에 날리니 하나님께서 주신 공기를 느낄 수 있어서 감사합니다.”
이 세상의 법칙을 지배하는 그 위의 법칙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법칙은 이 세상의 법칙을 지배합니다. 할렐루야. 이 세상의 육신의 법칙으로 아무리 우리 인생을 바꾸려 해도 안되는 것은 안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법칙은 이 세상의 법칙을 지배합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하나님의 법칙을 소개합니다. 세상을 이기는 그 법칙, 말씀을 같이 읽겠습니다.
로마서 4:17-18 “기록된 바 내가 너를 많은 민족의 조상으로 세웠다 하심과 같으니 그가 믿은바 하나님은 죽은 자를 살리시며 없는 것을 있는 것으로 부르시는 이시니라 아브라함이 바랄 수 없 는 중에 바라고 믿었으니 이는 네 후손이 이 같으리라 하신 말씀대로 많은 민족의 조상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
아브라함은 민족의 조상이 되었습니다. 보잘것없는 사람이 민족의 시조가 된 것이지요. 아브라함은 오늘 날로 말하면 자기 집도 없이 이 집에서 몇 년, 저 집에서 몇 년 이렇게 살았지요. 전세로나 월세로 땅을 빌려 자기 가축을 먹이던 사람이 한 민족뿐 만 아니라 온 세계가 인정하는 사람이 된 이유가 무엇일까요. 왕대 밭에 왕대 난다는 법칙을 깨고 꿈의 대상이 될 수 있었을까요? 하나님의 법칙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말씀에서 단서를 찾아봅시다. 17절 “그가 믿은바”
너는 민족의 조상이 될 것이다. 너희 후손이 하늘의 뭇별과 같이 가득할 것이다. 얘기했어요. 그런데 아브라함이 그 말씀을 믿었다. 아브라함이 그 말을 믿음으로 민족의 조상이 되었습니다. 아브라함만 그렇게 되는 것이 아니예요. 그 믿음이 민족의 조상으로 만들었다는 이야기입니다.
18절 보십시오. “이는 네 후손도 이와 같으리라 하신 말씀대로 많은 민족의 조상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 이 말씀을 통해 알 수 있는 것은 무엇입니까? 우리도 하나님은 민족의 조상이 되길 원한다는 것입니다. 우리 인생을 실패와 낙망으로 끝내는 것이 아니고, 한 나라에 영향을 미치고 그 사람이 가지고 있는 사상 때문에 그 나라가 살아나는 그런 마음을 가지는 것이 하나님의 마음입니다. 우리도 한나라를 세울 수 있습니다.
한번 따라하시겠습니다. “믿음의 법칙은 한 사람의 인생을 바꿉니다.”
어떤 구두닦기 소년이 있었습니다. 어머니는 병들고 먹여 살릴 동생들도 여러 명 있었습니다. 자기보다 동생을 공부시켜야 겠다는 생각 때문에 구두 닦기를 시작했다. 그래도 열심히 살아야지 결심하면서 열심히 구두를 닦았습니다. 그러나 입에서 항상 휴~ 한숨소리가 나왔습니다. 한 숨을 안 쉬면 가슴이 꽉 막혀 왔습니다. 한 숨을 왜 쉬는 지 아세요. 희망이 사라질 때, 자기가 하는 일이 의미가 없고, 억지로 감당해 할 때 한 숨이 나오지요.
하루는 어떤 멋지게 보이는 사람이 구두를 닦으러 왔습니다. 열심히 땀을 흘리며 다아 주었지요. “다 닦았습니다. 감사합니다. 또 닦으러 오세요.” 휴~(한숨소리) 그 사람이 가려다 다시 왔습니다. “얘야 꼭 너에게 이야기를 해주고 싶구나. 나도 어렸을 때는 구두닦이였단다. 지금은 이 나라의 상원의원이지. 꼭 이 말을 너에게 하라고 하나님께서 감동을 주었단다.”
‘나도 상원위원이 될 수 있다. 지금은 구두닦이 이지만 나도 상원 의원이 될 수 있다.’ 희망이 생겼지요. 이 날부터 이 소년의 입에서 한 숨소리가 사라지고 “난 할 수 있다”는 소리가 울려나왔지요. 힘들 때 마다, 코피가 쏟아 질 때 마다, 피곤에 지쳐 쓰러지고 싶지만 초롱불 밑에서 책을 볼 때마다 그는 외쳤습니다. “나도 상원이 될 수 있어” 그 아이가 지금 상원 의원은 아니지만 전 세계를 돌아다니며 옛날 자기처럼 절망한 사람들의 맘을 고치고, 희망이 없어 포기하고 있는 사람들의 맘을 고치는 민족의 스승이 되었지요. 우리나라의 치유스승인 정태기 목사님의 스승인 웨이노츠 박사님의 이야기입니다.
웨이노츠 박사님은 전세계에 제자를 가지고 있습니다. 구두닦이 소년이 어떻게 한 나라의 치유를 책임지는 사람의 스승, 전 세계의 치유자들의 스승이 될 수 있었을까요?바로 그 말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감동으로 준 한 사람의 얘기를 마음속 깊이 새기고 믿었다. “구두 닦기도 상원의원이 될 있어!”
믿음은 무엇일까요?
첫째. 바랄 수 없는 중에 바라는 것입니다.
18절 아브라함은 바랄 수 없는 중에 바랬다고 했습니다. 그게 믿음입니다. 가망 없을 때 바라는 것이 믿음입니다. 웨이노츠 박사는 인생의 밑바닥에서 바랄 수 없는 중에 바랬습니다. 더 이상 감당하기 힘든 중에 한 사람이 하나님의 감동으로 한 이야기를 있는 그대로 믿고 인생을 바꾸었습니다. 가망이 없을 때 진짜가 시작됩니다. 희망이 없을 때 진짜가 시작됩니다. 끝까지 희망을 포기하지 않겠다. 믿음 때문에 그렇습니다.
히브리서 11:1 “믿음을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라고 이야기합니다. 믿음을 가지고 바라면 반듯이 실상으로 나타납니다. 할렐루야!
사업에 어려운 사람 있습니까? 잘 되는 모습을 믿고 바라십시오. 반드시 번창하는 실상으로 다가올 것입니다. 자녀 때문에 고민하는 부모님 계십니까? 그 자녀의 멋진 미래를 그리며 바라보십시오. 반듯이 멋진 자녀가 실상으로 나타날 것입니다. 아픈 사람은 건강한 모습을 바라고 믿으면 건강한 실상이 될 것입니다.
저희 아버지는 중풍병으로 쓰러지셨다가 일어나지 못하고 돌아가셨습니다. 그런데 똑같이 중풍병에 걸려 쓰러진 인도선교사 스텐리 존슨 목사님은 다시 일어 나셨습니다. 병상에서도 내려가는 것도 힘든 상황에서 스텐리 존슨은 한 가지 믿음이 있었습니다.
야고보서 5장 15절의 믿음이었습니다. “믿음의 기도는 병든 자를 구원하리니 주께서 그를 일으키리라” 그는 믿음을 가지고 기도하면 나으리라 라는 것을 믿었습니다. 그래서 온 병원에 있는 사람에게 다 부탁했지요. 간호사가 들어오면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명하노니 일어나라” 이야기해 달라고 부탁했어요. 이 소문이 온 병원에 퍼졌습니다. 누구나 장난삼아 이 병실에 들어와 외쳤어요.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명하노니 일어나라” 꼬맹이들도 들어와 외쳤지요.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명하노니 일어나라” 모든 사람들은 거의 장난이었지만 한 사람만은 진짜로 믿고 있었습니다. 잘 움직이지도 못하는 이 스탠리 존슨 목사님이었지요.
그에겐 건강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있는 것 같이 믿고 불렀습니다. 그 믿음 스탠리 존슨 목사님을 일으켰습니다.
믿음은 둘째로 없는 것을 있는 것 같이 부르는 것입니다.
17절 보십시오. “하나님은 없는 것을 있는 것 같이 부르셨다”고 이야기합니다.
부활절때 삶은 계란을 줍니다. 아동부 전도사때 의문이 들었어요. ‘왜 생 계란을 안 주고 삶을 계란을 줄까.’ 생 계란을 주면 좀 에디슨같이 몇 일 품고 있으면 병아리가 나올 것 아닙니까? 그때 ‘야, 이게 부활이야’ 부활 산 교육 아닙니까? 그런데 하나님께서 제 뒤통수 때리시며 하는 말 “야, 생계란에서 병아리가 나오면 그건 부활이냐 부화지. 삶은 계란에서 병아리가 나와야 부활이지.” 그래서 부활절 날은 삶은 계란을 준다는 전설이있습니다.
없는 것을 있는 것 같이 부른다는 것은 부화 정도를 이야기하지 않습니다. 부활을 이야기합니다. 우리의 믿음은 부화를 믿는 것이 아니라 부활을 믿는 것이지요.
가능성이 없을 때 그때 하나님은 우리의 믿음을 보십니다. 우리의 믿음이 부화의 믿음입니까? 부활의 믿음입니까? 가능성에서 가능성을 믿는 것은 부화의 믿음이지요. 부화의 믿음은 세상의 법칙입니다. 그러나 부활의 믿음은 불가능할 때 있는 것처럼 선포하는 것이 부활의 믿음인줄 믿습니다. 부활의 신앙은 하나님만의 법칙입니다.
돈이 없어도 있는 것처럼 사십시요. 가족이 없어도 있는 것처럼 사십시요. 빽이 없어도 있는 것처럼, 외로워도 즐거운 것처럼, 아파도 건강한 것처럼, 못생겨도 잘생긴 것처럼.
어떤 애가 길을 가다가 못생겼다는 말 듣고 상처를 받았어요. 그 말을 듣고 집에 가서 얼굴을 봤는데 점이 하나 있어요. ‘아, 이것 때문에 그랬구나.’ 점 하나 때문에 못생겼다고 생각하는 겁니다. 여러분 전 점 투성이입니다. 그 애가 다시 거울을 봤어요. 여드름 짜서 여드름자국이 하나가 있었어요. ‘아 이것 때문에 애가 나 보고 못생겼다 그랬구나.’ 여러분 전 달 표면입니다. 못 생겨도 잘생긴 것처럼 사세요. 나는 잘 생겼다. 나는 아름답다 생각하고 사세요.
애인이 없어도 있는 것처럼 생각하고 결혼 날짜 잡아요. 진짜 결혼해요.
우리교회에서 수도 없이 일어나고 목격된 거예요.
김경연 목사님 - 10월1일 날짜 잡았습니다. 여자 없습니다. 결혼했습니다.
김욱 목사님 - 8월15일 날짜 잡았습니다. 여자 없습니다. 결혼했습니다.
김윤관 전도사님 날짜 잡았어요. 떡두꺼비같은 딸 낳아서 잘 살고 있어요.
없는 것을 있는 것같이 부르십시오. 증거로 나타날 것입니다.
히브리서 11장 1절 “믿음은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니라”
하나님을 믿으십시오. 이 땅에서 보이지 않는다고 하늘나라에도 없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의 눈에 보이지 않아도 하나님 손에 있기에 우리에게 언제든지 주실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믿고 선포하십시오. 증거로 나타날 것입니다.
마지막 3번째로 믿음은 우리 인생의 우선순위를 하나님의 나라에 두는 것입니다.
클린턴 대통령시절 재무장관을 지냈던 루빈 박사가 계십니다. CT그룹회장이지요. 회사 직원 수련회에서 있었던 이야기입니다.
강사로 온 분이 큰 그릇을 가져다 놓고 큰 돌을 가득 채웠습니다. 그리고 “여러분 이 그릇이 다 찼습니까?” 물었습니다. 모두 “다 찼습니다.” 외쳤습니다. 그랬더니 다시 자갈을 한 푸대를 붓는 것입니다. 그리고 또 외쳤지요. “이 그릇 다 찼습니까?” 모두 자신이 없었죠. “글쎄요.” 대답했지요. 그러자 또 모래 한 푸대를 부었습니다. 그리고 물을 부어 그 그릇을 다 채웠습니다. 그리고 강사는 물었습니다. 여러분이 이 실험을 통해 무엇을 발견했습니까?
저도 그 강사분과 똑같이 여러분에게 묻겠습니다. 여러분은 이 실험을 통해 무엇을 발견했습니까? 만약 모래를 먼저 채우고 자갈, 큰 돌을 채웠다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또 만약 자갈 먼저는 채우고 다른 것을 채웠다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그럼 이것을 무엇을 알 수 있습니까?
순서가 중요합니다. 반드시 큰 돌 다음에 작은 돌, 그 다음은 모래, 그 다음 물입니다. 순서가 잘못 되면 하나님께서 주시는 것들을 받아 누리지 못하고 낭비하고 살 수 밖에 없습니다. 우리 인생에서 먼저 큰 돌을 먼저 놓고 다른 것들을 세팅해야하는데 큰 돌이 우리에게서 무엇입니까?
마태복음6장 33절 보겠습니다. “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하나님께서는 다른 어떤 것보다 하나님의 나라가 우선이 되길 원하십니다. 우선순위 먼저 해야 할 일이라고 “1등은 내가 할 일, 2등은 하나님.” 이렇게 생각하시면 안됩니다.
어떤 아내가 남편에게 이야기합니다. 나 당신 사랑해, 그런데 옆집 아저씨가 더 좋고 당신이 두 번째야. 말이 됩니까? 아니지요. 하나님이 1등이고 내가 할 일은 2등이다. 이것도 잘못된 것이지요. 여보 당신이 이 세상에서 최고로 좋아 그 다음이 옆집 아저씨야. 말이 됩니까? 아니지요. 하나님께서 가장 원하시는게 무엇인가?
마태복음 6장 24절 말씀처럼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길 수 없다.”
인생의 주인자체를 바꿔라. 우선순위의 문제라는 것은 1등 2등 3등 이것을 가리는 것이 아니고 인생 자체의 주인을 바꾸라는 것입니다. 인생 자체를 완전히 하나님 나라를 위해서 살라는 것입니다.
큰 돌이 제대로 놓일 때 다른 돌들 채울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나라 위에 가정이 세워져야 합니다. 하나님의 나라 위에 직업이 세워져야 합니다. 하나님의 나라 위에 우리의 꿈이 세워 져야합니다. 하나님의 나라 위에 이 나라가 세워 져야 합니다. 어떤 땐 직장이 먼저고, 어떤 땐 나라가 먼저가 아닙니다. 어떤 땐 꿈이 먼저가 아닙니다. 오직 하나님의 나라가 밖에 없습니다. 우리의 가정이 하나님의 나라고, 우리의 직업이 하나님의 나라이고, 우리의 오직 한가지 꿈이 있다면 그것은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는 것입니다.
이번에 호주 힐송 컨퍼런스를 가서 거기서 세계 최고의 인물들을 만났습니다. 그분들의 공통적인 특징이 있었습니다. 인생 자체를 1등 2등 3등 가릴 것 없이 오로지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서 산다는 것입니다.
마이클 w 스미스도 마찬 가지였습니다. “난 그래미 상에 관심없습니다. 난 주님을 예배하기 위해 살 뿐입니다.” 빌보드 챠트 1위입니다. 하나님 손에 그 인생을 다 드리니까 하나님 손에 있기 때문에 하나님이 써 주는 것 아닙니까? 하나님은 1등 내 노래는 2등 이것도 아닙니다.
조이스 마이어는 그곳에서 아침부터 늦게까지 70노구를 이끌고 강의를 하셨어요. 강의가 다 끝나고 돌아갈 때 받은 강사비를 모두 헌금하고 “난 쓰임 받은 것만으로 행복합니다.” 하나님이 1등 돈이 2등이 아닙니다. 그냥 하나님 나라를 위해서 사는 것이었습니다. ‘아 이게 세계 최고의 사람들의 생각이구나’ 가라앉을 수 없는 세상의 법칙을 지배하는 이 우선순위가 있구나.
세계 리더쉽의 3대 산맥의 스티븐 코비, 엔소니 라빈슨, 존 맥스웰.
존 맥스웰은 강의시간마다 가장 열정적으로 강의했지만 중요한 것은 다른 사람들의 강의 시간에 맨 앞자리에 앉아 노트 필기를 쉬지 않고 계속했습니다. ‘저 사람에게 말씀하신 하나님의 음성 놓치지 않을 거야.’ 우리 류영모 목사님.
세계 최고의 찬양 사역자 달링 책은 자기가 키운 제자들이 인도할 때도 언제나 맨 앞에서 설교를 듣고 다른 사람이 인도할 때도 맨 앞에 손을 들고 계속 기도해 주고 가장 먼저 반응을 보여 주었습니다. 어떤 사람이 예배를 인도하느냐 여기에는 관심이 없고 오로지 하나님께 최고의 예배를 드려야 한다.
‘아, 이게 세계 최고의 인물들이구나.’ 세계 최고의 인물들은 하나님 그 분만을 위해서 사는 평범한 사람들이었습니다. 오직 그 나라를 위해 사는 사람들이었습니다.
너무 충격적인 깨달음이라 집에 돌아와 토인비의 「역사연구」라는 책을 꺼내 읽어내려 가며 울지 않을 수 없었어요. 모든 사람들이 1등 하나님 2등 뭐... 그러지 않았어요. 모두 하나님의 영광만을 위해서, 하나님의 나라만을 위해서 사신 분들이었어요.
지금 세계 최고의 부자는 누구입니까? 빌게이츠
그 전의 부자는 누구입니까? 록펠러
그 전 부자는 포드, 그 전은 카아네기 모두 기독교인입니다.
그러나 이 모든 사람들이 아직도 못 깨는 역사상 가장 큰 부자는 다윗이엇습니다.
세계 최고의 정치가는 많은 기독교인이 있습니다.(링컨, 마틴 루터킹, 윌버퍼스, 처칠, 김구, 조만식) 그 중에 링컨은 그분의 인생은 1등 하나님 2등 미국이 아니었습니다. 오로지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서, 흑인도 하나님의 나라에서는 대접받아야 된다. 이것을 위해서 목숨건 사람이 아닙니까? 세계 최고의 정치가가 되었습니다.
세계 최고의 음악가들의 곡, 우측 상단엔 항상 이런 말이 쓰여져 있습니다. 미사곡! 예배곡입니다. 세계 최고의 작곡가 베토벤, 슈베르트, 리스트, 조수미...
하나님께서 쓰시는 최고의 사람들은 하나님의 나라만을 위해 살았고 예배를 드리기 위해 살았습니다. 한쪽 다리는 세상에 걸쳐놓고 다른 한쪽 다리는 하나님께 걸쳐놓으니 하나님께서 쓰시다가도 안됩니다. 왜 우리나라에서 세계 최고의 부자가 안나오고, 세계 최고의 정치가가 교회에서 안나옵니다. 반쪽 자리이기 때문에. 그 인생 전체를 드릴 사람이 없을까요 하나님은 그 사람을 찾고 계십니다.
하나님 나라를 우선순위에 들고 산다는 것은 복음을 위해 산다는 것입니다. 온 아프리카를 회교권에서 하나님의 나라로 돌아오게 하는데 쓰임 받는 소중한 종이 있습니다. 본케라는 분인데 그분이 나이지리아, 케냐, 수단, 아프리카 온 나라를 돌면서 집회 할 때마다 170만명, 130만명, 기본이 100만명씩 모이는 집회를 합니다. 회교권에서요.
어떻게 그 분은 하나님이 쓰시는 사람이 되었을까요?
그 분이 독일에서 처음 아프리카로 가서 예배 처소를 구하기 시작했습니다. “하나님 100불만 주십시요. 예배 처소가 필요합니다.” 하나님께서 “100만불 줄까?” 머리 속으로 별 가지 생각이 다 떠 오르죠(농담). 100불로 예배당 장만하고, 집 장만하고, 애들 학교 보내고, 차 한 대 사고, 저 같으면 그랬을 거예요. 뭐 목사 믿음 저래 그럽니까 그런데 많은 사람들은 하나님의 그런 말씀 농담으로 여기잖아요.
본케 목사님 “저에게 백만불보다 백만의 영혼을 주세요.” 하나님께서 본케 목사님의 고백을 듣고 울지 않았을까요. 이런 하나님 나라만을 위해 사는 사람에게 우리 하나님 무엇이 아깝겠습니까? 아프리카에 믿음의 조상하면 본케 목사님을 떠올리지 않겠습니까? 우선순위를 하나님께 두면 민족의 조상이 될 줄로 믿습니다.
10만 선교사를 헌신한 이 나라.
1980년대 여의도 광장에서 100만명이 모였어요. 하나님께 십일조를 드렸어요. 돈으로 드린 것 아닙니다. 10만명의 선교사로 헌신하겠습니다. 내 인생은 오로지 주님만을 위해서 살겠습니다. 1907년에는 주일만 되면 가계 문을 닫는 거예요. 한 사람이 “나는 주일날 예배만 하겠다” 문을 닫으니까 그것이 누룩처럼 퍼져서 온 평양 시내가 주일날 예배하는 날이 되었어요. 우리나라가 어떻게 주일날이 쉬는 날이 되었는지, 평양 1907년 부흥사건 때문에 그렇게 된 것입니다.
지금 한국교회 현실을 보십시오. 주일을 지키기 위해서 선배들은 목숨을 걸었는데 나 직장 망해도 돼. 나 직업 망해도 돼. 헌신했어요. 진짜 망했습니까? 아니요. 어떤 나라보다도 엄청난 기적이 일어나면서 부흥했지요. 넉넉해진 우리는 어떻게 하고 있습니까? 주일날 학원 보냅니다. 시험 있으면 교회 안 보냅니다. 여름에 더우면 휴가 갑니다. 이 민족을 다시 하나님께로 1907년의 헌신이 이 민족 안에 있어야 될 줄로 믿습니다. 우리가 그렇게 헌신해야 이 나라가 다시 살 줄로 믿습니다.
이 나라와 이 민족은 우리 어머니, 아버지들은 첫 아들 낳으면 소중하다고 하나님께 헌신했어요. 하나님께서 그것 때문에 이 나라를 기뻐하셨어요. 평양은 제2의 예루살렘이다. 지금 이 세계에 영적인 문제는 대한민국이 이끌어 간다. 모든 국가들이 그렇게 얘기했어요. 다시 헌신합시다. 다시 우리가 하나님 앞에 드려야 될 줄로 믿습니다.
충주 청소년 전국 60개 이상 연합으로 청소년들이 집회를 합니다. CCC 캠프에서 음향 장비일체를 빌리기로 했는데 못 빌려주게 되었데요. 왜 그런지 물었더니 횡성에서 CCC청년들이 만명이 모였데요. 만명이 모일 수 없는 장소라 땡뼡에서 모였어요. 그런데 그날 비가 왔습니다. 만명의 청년들이 비가 억수같이 쏟아지는 그 속에서 3시간 동안 꼼짝 않고 예배드리다 마이크가 다 물에 젖어 버린 거예요. 이 만명의 청년들이 하나님께 헌신했습니다. 이 나라가 하나님만을 위해 사는 이런 청년들이 있기에 세상을 지배할 수 있다는 미련을 버릴 수 없습니다.
우리 교회가 선두에서 일어납시다. 이 나라 이 일산 땅 하나님께 올려 드립시다. 우리의 마음과 우리의 날들을 하나님께 올려드립시다. 주변에 있는 영혼들을 하나님께 올려드립시다. 하나님이 우리가 전적으로 하나님 나라를 위해서 살기를 원하십니다. 그 사람을 하나님은 세우고 싶어하십니다. 그 자리에서 일어나십니다. 찬양하며 같이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첫 자녀를 드렸던 그 나라가 회복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동네마다 가장 큰 건물이 예배당이었던 그 나라가 회복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10만명의 선교사로 헌신하였던 그 나라의 영광을 다시 우리에게서 회복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피곤한 몸을 이끌고 금요철야 하던 그 영성이 다시 회복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일이 생길 때마다 기도원에 모여서 구국기도 하던 그 영성이 회복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금식하던 그 나라의 기도소리가 다시 한번 재현될 수 있게 하여 주시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