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의 부족함을 아는 사람
본문
말 씀 : 누가복음 18:18-23
제 목 : 자신의 부족함을 아는 사람
설교자 : 최낙보목사(포항대흥교회)
설교일 : 2006년 8월 6일
오늘은 더워서 1부, 2부에 많이 나왔습니다. 피서간 분들도 많고요. 오늘 아침 집을 나서는데 아파트 입구에 차를 세워놓고 피서가기 위해서 아이스박스 실고 야단법석이었습니다. 그들을 보면서 참 불쌍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들도 예배드리러 나와서 하나님께 예배하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했습니다.
따라합시다. "교회가 푸른 초장이요, 쉴만한 물가인줄 믿습니다.“
여름은 더워야 합니다. 이 더 떼약 볕에도 밖에서 근로하시는 분들을 생각하며 감사해야 합니다. 땀을 흘려야 할때는 흘려야 합니다. 덥다고 에어콘 틀어놓고 있으면 건강에 좋지 않습니다. “주여! 덥습니다”하고 땀을 흘리세요.
임철문 집사님 어디 있지요. 계단을 올라오는데 더워서 얼굴을 이래 가지고 오는데 “얼굴 펴라. 얼굴 펴”라고 했습니다. 예수님 믿는 사람이 그래야지요. 좀 더우면 인상쓰고 헉헉거리면 안됩니다.
곡식을 보세요. 더우니 열매가 팍팍 무르익잖아요. 이 여름에 곡식만 익을 것이 아니라 대흥교회 성도들의 신앙과 인격도 무르익어가는 복된 계절이 되기를 바랍니다.
오늘도 성숙해 지자는 주제로 말씀을 전할 것인데 그 중에서도 자신의 부족을 알자는 제목으로 말씀을 전하려고 합니다.
어느날 한 부자 관원이, 돈도 많고 높은 자리에 있는 사람이 예수님을 찾아와서 이렇게 물었습니다. “선생님, 제가 무엇을 해야 영생을 얻겠습니까?” 아직 이 사람은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인 것을 몰라요. 또 이 사람의 질문 자체도 잘못되었서요.
구원은 인간의 행위로 받을 수 없는데 이 사람은 그것을 몰랐습니다. 인간의 행위로는 구원받을 수 없는 전적인 죄인이라는 것을 몰랐습니다. 그래서 어떻게 행하면 구원을 얻을 수 있느냐? 영생을 얻을 수 있느냐라고 물었던 것입니다.
이 관원의 질문에 예수님은 “간음하지 말라, 살인하지 말라, 도적질하지 말라, 거짓 증거하지 말라, 네 부모를 공경하라”고 하십니다. 그러자 부자 관원이 “선생님, 저는 어려서부터 이 계명들을 다 지켰습니다”라고 자신있게 말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이 젊은 관원은 자신이 어려서부터 이 계명들을 다 지켰다고 장담을 했지만 그의 말 속에는 자신의 부족함이 무엇인지 송두리째 폭로를 하고 있습니다. 사람이 미사여구로 자신을 꾸미려고 해도 그 자신의 정체성, 본질은 숨길 수 없습니다. 그분의 인격과 그분의 사상과 가치관은 대화를 통해서 다 폭로가 됩니다. 속일수가 없습니다.
내가 다 지켰습니다. 이 말은 오히려 “나는 계명을 지키는 것이 무엇인지 조차도 모르고 있는 사람입니다”라는 폭로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십계명을 지키고 계명을 잘 아는 것처럼 말하고 있었지만 이 관원은 자신이 알아야 할 것을 모르고 있었던 사람입니다. 자기의 부족을 알았더라면 “내가 어려서부터 이 계명들을 다 지켰습니다”라고 말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자신의 부족을 모르는 사람이었기에 그는 다 지켰노라고 말할 수 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이렇게 말할 수 밖에 없습니다. “네가 오히려 한 가지 부족한 것이 있으니 네게 있는 것을 다 팔아 가난한 자들을 나눠 주라 그리하면 하늘에서 보화가 네게 있으리라 그리고 와서 나를 좇으라”
이 말씀을 듣자 이 관원은 얼굴이 노래졌습니다. 그리고 슬픈 기색을 띠고 근심하며 돌아갔습니다. 다 지켰다고 호언장담하는 그 관원에게 왜 예수님은 “네게 부족한 것이 있으니 네게 있는 것을 다 팔아 가난한 자들을 나눠 주라”고 하셨을까요?
이 말씀을 하신 이유는 지금 재산을 다 팔아서 그렇게 하라는 것이 아닙니다. 이 말씀을 하신 이유는 너에게 부족한 것이 한 가지 있다는 것을 깨우쳐주시기 위해서 말씀하셨습니다. 도적질 안했습니다. 간은 안했습니다. 살인 안했습니다. 거짓 증거 안했습니다. 그랬다고 다 지켰습니까? 더 중요한 것을 그는 지키지 못했습니다. 이웃을 사랑하지 못했습니다.
여러분, 십계명은 열가지 계명인데 이 계명을 한 가지로 묶을 수가 있습니다. 이것을 대강령이라고 합니다. 예수님은 열가지 계명을 “하나님을 사랑하고, 네 이웃을 네 몸같이 사랑하라”고 한 가지로 묶어주셨습니다. 사랑이 율법의 완성이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이 사람은 간음 안하고, 살인 안하고, 도적질 안했지만 이웃을 사랑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면 다 어긴 것입니다.
얼마나 부족함이 많은 사람입니까? 얼마나 부족함이 많은 사람임에도 자신의 부족함을 모르고 있었습니다. 다 지켰다. 본질을 상실한 채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본질을 잃은 사람인데....한가지 부족한 것이지만 전부를 부정할 수 있는 것이었습니다. 자신의 인생 전체를 부정할 수 있는 엄청난 것인데도 불구하고 그는 그것을 모르고 있었습니다.
여러분, 우리 인간은 내가 잘 하는 한 두가지 때문에 나의 많은 부족함을 보지 못한 채 살아갈 때가 많습니다. 이것을 잊지 마세요. 내가 잘하는 것 한 두가지 가 있습니까? 그것이 내 두 눈을 가리워서 나의 엄청난 부족함을 보지 못하게 만듭니다. 그래서 부족함도 모르고 살아가게 됩니다. 착각속에서 살아갑니다.
착각하지 마세요. 내 부족함이 뭔지 모르고 살아가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이 관원이 지금까지 어떻게 살았겠습니까? 자신의 엄청난 부족이 있었음에도 ‘나는 다 지켰습니다’라고 한 이 관원은 지금까지 어떤 모습으로 살았겠습니까? 생각해 보세요. 우리의 모습도 그대로입니다.
예수님께서 이 관원에게 “네게 있는 모든 것을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나눠주라”고 하십니다. 네게 정말 부족한 것이 무엇인지 이제는 깨달으라는 것입니다. “너 간음도 안하고, 도적질도 안하고, 거짓말도 안했지만 너의 것을 팔아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워주는 일은 네가 못하지 않았느냐? 이웃을 사랑하지 않고 살았는데 너는 무엇을 지켰다는 말이냐?”
이 관원이 근심하며 돌아갈 때 “아! 내가 잘못하며 살아왔구나. 내가 이웃을 사랑하며 살지 못했구나!” 깨달았을 것입니다. 마가복음 10장 22절에 “그 사람은 재물이 많은 고로 이 말씀을 인하여 슬픈 기색을 띠고 근심하며 가니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은 이 관원에게 자기의 부족한 것이 무엇인지 모르고 살아가는 이 관원에게, 그러면서도 나는 계명을 다 지키며 살았노라고 생각하는 이 관원에게 깨우쳐주고 계셨습니다. 오늘도 하나님은 이 말씀을 통해 자신의 부족함이 무엇인지 모르고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우리의 q부족함이 무엇인지 깨우쳐주고 계십니다.
이 말씀을 통해서 자신의 부족함이 무엇인지 깨우쳐 주시는 주의 말씀이 들려지는 열린 귀가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설교시간은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 내 부족한 것이 무엇인지 깨닫는 시간입니다. 그러면 그 사람은 은혜받는 겁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은 설교를 들으면서 “목사님 오늘 이 설교는 우리 박집사가 꼭 들어야 하는데....”라고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우리교회는 없습니다.
내게 하는 말씀이지 박집사에게 하는 말씀이 아니잖아요. 시간시간마다 내 부족함을 깨닫게 하시는 말씀의 은혜가 임하시기를 축원합니다. 그 은혜 받으셔야지요.
왜 부부가 싸웁니까? 자기 부족을 모르기 때문에 싸우는 겁니다. 어제 밤에 설교준비를 다 마치고 TV를 틀었는데 모 방송에서 “그것이 알고싶다”를 방영하고 있었습니다. 어제 주제는 심각하게 부부싸움하는 가정을 보면서 어떻게 하면 이 가정이 치유될 수 있을까였습니다.
세 가정이 모델로 나오는데 정말 불쌍했습니다. 만나면 싸웁니다. 호랑이 사자 만난 것은 아무것도 아닙니다. 방도 따로 습니다. 어떤 가정은 부인이 말을 안합니다. 남편은 부인이 말을 안하니 미치고 복장이 터져 죽겠다고 합니다. 그런데 부인에게 물어보니까 “저 사람한테 말했다가는 죽는다”는 겁니다.
자 보세요. 한 사람은 말 안한다고 복장이 터져죽겠다고 하고, 한 사라은 말을 했다가는 죽는다고 하니 어떻게 대화가 되겠습니까? 그러면서 25년을 죽지 못해서 사는 겁니다. 어쩔 수 없이 살아가는 겁니다.
결론이 뭐냐하면 한 가지입니다. 내 부족을 모르기 때문에...남편은 자신의 부족은 모르고 아내를 보고 “당신 때문에, 당신 때문에”라고 합니다. 아내도 자신의 부족은 모른 채 남편을 보고 “당신 때문에, 당신 때문에”라고 합니다. 누구 한 사람 “내가 잘못해서 우리 가정이 이렇고 저렇다”고 하는 사람이 한 사람도 없더라는 겁니다.
그러니까 만나도 원수처럼 살고, 자녀들도 아버지 안 만나려고 집에 오면 그냥 옥탑방으로 올라가 버리는 겁니다. “아버지 안 만나는게 나라와 국가의 평안을 위해서 좋습니다”이러는 것입니다. 자기 부족을 모르기 때문에....
따라합시다. “자기 부족을 모르는 사람은 반드시 목소리가 크다.”
자기 부족을 아는 사람은 목소리가 작습니다. 제가 목소리가 커요. 제가 문제가 많아서...왜 내 목소리가 큽니까? “내 부족을 모르기 때문에....” 진짜 하는 말입니다.
여러분들, 자기의 부족을 모르는 사람들은 반드시 남의 부족한 것이 크게 보입니다. 자기 부족을 아는 사람은 반드시 남의 부족이 작게 보입니다. 그래서 다툼이 일어나지 않습니다. “내가 당신보다 부족한데 뭐라고 하겠노. 내가 부족해서 그런데 욕본다.”라고 하면 어떻게 다툼이 일어나겠습니까?
그런데 내 부족함보다 저 사람 부족한 것이 크게 보이기 때문에 “저 사람 때문에 그래”라고 하는데 어떻게 문제가 해결되겠습니까? 남을 쉽게 흉보는 사람, 남을 쉽게 비난하는 사람. 자기 부족을 모르면 쉽게 흉보고 쉽게 비난합니다.
성도여러분, 오늘 이 예배시간에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 자신의 부족이 뭔지 깨닫고 보게되는 시간 되시기를 바랍니다. 성숙이 뭡니까? 성숙이 뭐냐? 성숙은 하나님 앞에서 십자가 앞에서 주님 앞에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라고 하며 자신의 부족함을 깨닫고 변화되어가는 것입니다.
바울을 보세요. “나는 율법으로는 흠이 없는 사람이다. 내만큼 하나님 믿는 사람 나와봐라”라고 큰소리 쳤는데 예수님을 만나고 변화되었을 때 이렇게 말합니다. 에베소서 3장절에 “모든 성도 중에 지극히 작은 자보다 더 작은 나”라고 합니다. ‘나는 이 성도들 중에서 지극히 작은 자보다 더 작은 자입니다. 저 사람들이 은혜를 받았다면 지금의 나보다 더 훌륭한 사도가 되었을 것입니다.’
내 부족함을 알면 예수님의 은혜밖에 보이지 않을 줄로 믿습니다. 예수님의 은혜가 아니면 나는 쓰레기 같고, 걸레 같아요. 십자가의 공로가 아니고서는 나는 지옥갈 수밖에 없는 쓰레기입니다. 어디서 내 의를 자랑합니까?
베드로가 예수님 만나서 제일 먼저 고백한 것이 무엇입니까? "나는 죄인입니다. 나를 떠나소서.“ 그래서 바울은 고백합니다. ‘나의 나 됨은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나같은 사람에게 은혜 주시지 않았다면 나같이 부족한 사람이 어떻게 되었겠습니까? 하나님께서 은혜 주셨기 때문에 이렇게 하나님 섬기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을 만나니 자신의 부족함을 깨닫게 되더라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여! 요즘 무엇이 부족해서 고민하십니까? 돈이 부족해서 고민하십니까? 어떤 사람은 거울을 보면서 부족함을 느낍니다. “야, 내가 코만 조금 더 높았다면 기가 막힌데.” 요즘 여성들 S body라는 것이 있더라구요. 옷에 S라인 그어놓은 것인데 몸매가 좀 날씬했으면 좋겠다는 부족함을 느끼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여성이라면 그것 괜찮은 생각입니다.
건강이 부족해서 고민인 사람도 있습니다. 다 고민할만한 것들입니다. 그런데 제가 여러분에게 묻습니다. 여러분들이 더 중요하게 부족함을 느껴야 할 것이 무엇이냐? 따라합니다. “하나님! 내게 사랑이 부족합니다.” “하나님 내게 믿음이 부족합니다.” “하나님 내게 겸손함이 부족합니다.” 정말 무엇이 부족함을 느껴야 할까요?
정말 하나님 앞에서 내게 부족한 것, 사랑이 부족한 것, 믿음이 부족한 것, 겸손이 부족한 것, 인격에서 정말 부족한 것을 깨닫게 될 때 그 사람은 성숙을 향해서 나아가게 됩니다. 우리는 부족함을 모를 때 문제가 일어납니다. 모든 문제가 부족함을 모르는 그 사람을 통해서 일어납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부족함을 모를 때 실패와 아픔을 통해서 부족함을 깨닫게 해주십니다. 실패를 통해서 우리는 내 부족함을 깨닫게 됩니다. 부부간에 불화로 가정의 어려움을 경험했습니까? 하나님의 사람은 보따리 싸들고 기도원 올라가서 기도하며 그 실패를 통해서 자신의 부족함을 깨닫습니다. 사업을 할때도 실패를 통해서 자신의 부족함을 깨닫습니다. 그런데 반복적인 실패를 반복하며 그 실패속에서 인생을 끝내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우리는 한 두 번의 실패를 통해서 자신의 부족이 무엇인지 발견하고 고쳐나가야 합니다. 자녀들이 잘못되는 것을 보면 “내가 아버지로서, 어머니로서 내가 잘못 가르치고 부족해서 그렇습니다. 제가 부족했습니다” 그러면 그 가정은 달라지고 변화되잖아요.
누구의 부족을 탓하고 있습니까? 마귀는 지금도 우리의 눈을 어둡게 하여 내 부족은 보지 못하게 하고 남의 부족은 크게 보게 합니다. 그러나 성령은 내 부족은 크게 보게 하고 남의 부족은 보이지 않게 합니다. 성령이 충만하면 남의 부족은 보이지 않습니다. 내 부족만 보입니다. 그러니 그 사람이 잘 안될 수가 없지요. 여러분 이렇게 기도하세요. “하나님이여, 성령으로 충만케 하사 내 부족을 보게 하옵소서.”
이제 자기 부족함을 얼마나 축복인가를 말씀드리겠습니다.
1.자기 부족함을 아는 사람은 겸손한 사람이 됩니다.
따라합시다. “자기 부족을 아는 사람이 겸손해집니다.” 겸손해 집니다. ‘나는 다 지켰습니다.’ 사랑하지 않고 살면서도 자기 부족을 모르니까 “나는 다 지켰습니다”라고 합니다. 겸손하십니까? 왜 겸손하지 못합니까? 내 부족을 모르니까? 부부간에도 서로 겸손하면 그 가정은 천국됩니다. 겸손하면 가정 천국될줄 믿습니다. 겸손하면 교회천국될 줄 믿습니다.
오늘 집에 가면 남편들은 “여보 나 같은 사람이 당신같은 분을 만난 것이 복입니다”라고 하십시오. 자기 부족을 알면 그렇게 합니다. 그런데 여자가 교만하면 이 말듣고 싸움이 일어납니다. 이 말 듣고 “이제 철 들었나?” 실컷 좋은 말해주면 “이제 철 들었나보네...”
겸손하면 어떻게 합니까? 남편이 이렇게 말하면 “아니요. 내가 당신 만난 것이 복이지요.” 겸손해야 합니다. 이 말은 가슴에서 나옵니다. 왜 가슴에서 나옵니까? 겸손해야 나올 수 있는 말이기 때문입니다. 교만하면 다 잃지만 겸손하면 하나님이 다 주십니다.
2.자기 부족을 아는 사람은 더욱 하나님을 굳게 믿고 의지합니다.
가난한 사람은 가난하기 때문에 하나님 앞에서 막 기도합니다. 그런데 돈을 좀 벌면 교만해져서 기도하지 않습니다. 부족함을 모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저는 사업이 잘 되는 사람이 있으면 자꾸 찌릅니다. “당신, 더 기도해, 당신 더 조심해.” 눈치 채야지요. 위험해 보이거든요.
다윗이 왜 위대합니까? 그는 왕이 되었서도 목동처럼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나는 부족합니다.” 재벌이 되어도 자신의 부족함을 고백할 수 있어야 합니다. 자기 부족을 알고 하나님을 더욱 의지하니 하나님이 얼마나 은혜를 주시지 않습니까?
좀 알고, 좀 배우고 나면 교만해 집니다. 하나님 의지 하지 않습니다. 여러분, 자기 부족을 아는 것이 왜 복입니까? 그 사람은 전적으로 하나님을 의지하고 하나님께 기도합니다. 왜 기도합니까? “주여, 나는 부족합니다.”라고 하며 하나님을 의지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그 사람은 더욱 높여 주시고 존귀하게 하십니다.
3.자기 부족을 아는 사람은 항상 감사하며 살아갑니다.
이게 기가 막힌 은혜의 축복입니다. 누가 감사합니까? 자기 부족을 아는 사람이...“저런 분 만나서 감사하지.” “대흥교회 다니게 되어서 감사하지.” 부족함을 아는 사람은 서리집사만 주어도 감사하고 감격해서 “내가 죽도록 충성하겠습니다”라고 하지만 부족함을 모르는 사람은 “아이구 그까짓 서리집사”라고 하며 시시하게 여기고 충성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어떤 분을 더 귀하게 여기겠습니까? 여러분 어떤 사람이 감사하며 살아갑니까? 어떤 사람이 범사에 감사합니까? 부족함을 아는 사람입니다. 된장국에 보리밥을 먹어도 “내가 이것 먹는 것도 하나님의 은혜입니다”라고 감사하며 천국을 이루며 살아갑니다.
여러분 부족함을 알므로 늘 감사하며 살아가기를 바랍니다. 원망과 불평이 사라지는 여러분의 삶이 되기를 축원합니다.
4.자기 부족을 아는 사람은 자기 잘못을 인정할 줄 알고 그것을 하나님 앞에 자복할 줄 알고 사람들에게 잘못했습니다라고 사과할 줄 압니다.
부족함을 모르는 사람은 부부싸움하고도 먼저 잘못했다는 말은 죽어도 안합니다. 다 자기가 손해보는 겁니다. 진정한 자손심은 잘못했습니다라고 말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잘못한 것을 알고 잘못한 것을 잘못했다라고 말할 줄 아는 것입니다.
자기 부족함을 아는 사람은 그렇게 됩니다. “내가 부족해서 그렇습니다.” 자녀들을 보고도 “엄마가 부족해서 그렇다. 나를 용서해 다오”라고 합니다.
어저께 이런 기사가 있었습니다. 명문대학에 다니는 둘째 아들이 자기 친아버지 친어머니를 토막살해해서 버렸다가 잡혔습니다. 수사과정에서 그 아이가 이런 말을 했습니다. “엄마가 한번이라도 ‘애야, 내가 잘못핵다’라고 했다면 내가 이런 짓을 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부모를 죽여서 토막살인을 했습니다.
잘못한 것 알아야지요. 그런데 놀라운 곳은 그 평소에도 엄마는 자기가 자식의 가슴에 못을 박고 있다는 것을 모르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엄청난 말을 하고도 자신은 그것을 모르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얼마나 안타까운 일입니까?
부족함을 아는 사람은 잘못했다고 하나님께 회개하고 사람에게도 잘못했다고 사과할 줄 압니다. 그 사람이 성숙한 인격자입니다.
5.자기부족을 아는 사람이 계속적으로 발전하고 성장하고 성숙합니다.
오늘 이 시간도 보십시오. 저는 예배시간을 소중하게 여깁니다. 처 할머니인 명향식원장님을 통해서 이런 말을 들었습니다. 그분은 신학박사인 박윤선목사님과 한성교회를 개척하고 오랫동안 동역했던 분입니다. 그런데 처할머니가 늘 하신 말씀이 있습니다. “나는 박윤선목사님의 겸손함에 늘 감동을 받는다.” 왜냐하면 그 여전도사님이 설교하는데도 그 신학박사가 맨 앞자리에 앉아서 설교를 듣는다는 겁니다. 그 목사님의 모습만 봐도 은혜가 된다는 겁니다.
왜 박윤선목사님이 그렇게 하셨겠습니까? “나는 부족합니다. 저 여종을 통해서도 주의 음성을 듣게 하여 주시옵소서. 사모하는 영혼을 만족하게 해 주실 줄 믿습니다.” 그러니까 계속적으로 발전하고 계속적으로 성장하고 계속적으로 성숙하여 죽을 때까지 아름다운 모습으로 변화되어 가신 것입니다. 부족함을 아는 것이 이렇게 위대합니다. 그러나 부족함을 모르는 사람은 성장이 멈추고 떨어집니다.
말씀을 맺겠습니다. 성숙해 지기를 원하십니까? 자기 부족을 알아야 합니다. 자기부족을 알려면 하나님 말씀에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오늘부터 사랑하는 대흥교회 성도들은 더욱더 말씀을 통하여 예수님의 십자가 앞에서 자신의 부족함을 깨닫고 더욱 겸손해지시고 더욱 하나님을 의지하시고 범사에 감사하시고 계속 자기 발전을 위해서 나아가고 노력하고 항상 먼저 잘못했습니다 죄송합니다라고 하며 더 아름다운 모습으로 하나님을 섬기고 많은 사람들에게 기쁨을 주고 하나님의 충만한 도구로써 쓰임받는 대흥교회 모든 성도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