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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직 예수만 보여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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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설교(40) 오직 예수만 보여야 합니다
마가복음 9장 1-13절

< 변화산 체험 >

오늘 본문에서는 주님께서 높은 산에서 변형되신 사건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 변화산 체험은 매우 환상적인 체험이었습니다. 본문 5절에서 너무 행복해서 “우리가 여기에 있는 것이 좋사오니...”라고 고백했습니다. 그가 왜 그렇게 좋았습니까? 무엇을 얻어서가 아니라 주님을 새롭게 체험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어떤 상황에서 그들이 체험했습니까? 마태복음, 마가복음, 누가복음 세 복음서가 모두 이 변형 기사를 기록하고 있지만 특히 누가복음 9장 32절 말씀을 보면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이 졸다가 이 체험을 했다는 기록이 나옵니다.

열심히 기도하고, 고행하고, 금식하다가 환상적인 체험을 한 것이 아니라 졸다가 엉겁결에 환상적인 체험을 했다는 사실이 부족한 우리에게 얼마나 위로가 됩니까? 사실 인간의 고행으로 무엇을 체험하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아무 자격이 없는 사람에게 체험이 주어지고, 은혜가 주어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있어도 결코 교만하지 않고, 없어도 결코 낙심하지 말아야 합니다. 이 변화산 체험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이 무엇입니까?

1. 우리의 미래는 보장되어 있습니다.

왜 주님은 제자들에게 변화산 체험을 허락하셨을까요? 이제 얼마 후에 주님은 십자가를 지시는데, 그 전에 가장 환상적인 체험을 하게 하심으로 “너희들의 미래는 보장되어 있다”는 것을 확신시켜 주기 위한 주님의 뜻이 계셨을 것입니다.

실제로 우리의 미래가 보장되어 있다는 것이 얼마나 큰 평강과 위로를 주는지 모릅니다. 아무리 절박한 문제와 고난이 있어도 미래가 확실히 보장된 것이라면 현재의 어려움을 능히 이길 수 있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미래가 찬란한 미래이고 보장된 미래임을 항상 기억해야 합니다. 고린도후서 4장 17절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우리의 잠시 받는 환난의 경한 것이 지극히 크고 영원한 영광의 중한 것을 이루게 함이니 우리의 돌아보는 것은 보이는 것이 아니요 보이지 않는 것이니 보이는 것은 잠깐이요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함이니라.”

우리가 당하는 어려움은 항상 잠깐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항상 낮은 곳으로 흐르기 때문에 우리가 겸손한 마음으로 살고, 현재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면 하나님은 반드시 우리를 적절한 때에 높여주실 것입니다.

2. 우리의 삶이 변화되어야 합니다.

변화산에서 어떤 일이 일어났습니까? 본문 3절을 보십시오. “그 옷이 광채가 나며 세상에서 빨래하는 자가 그렇게 희게 할 수 없을 만큼 심히 희어졌더라.” 변화산상에서 예수님의 옷도 아주 희게 변화되었다는 말은 “변화된 자는 옷이 깨끗한 자, 즉 행실이 옳은 자가 되어야 한다(계 19:8)”는 것을 도전하는 말씀입니다.

마태복음 17장을 보면 그 장면에서는 ”주님의 얼굴이 해 같이 빛난다“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이 모습도 ”변화된 자는 특별히 얼굴에 변화가 있어야 한다“는 것을 상징적으로 도전하는 말씀입니다. 얼굴은 마음의 표시판이요, 감정의 표시판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우리는 사랑과 평화가 넘치는 천사의 얼굴이 되도록 힘써야 합니다.

변화산의 체험은 “아! 좋은 체험을 했다! 은혜 받았다!”는 말로 끝나서는 안 됩니다. 그 체험이 옳은 행실로 연결되지 않으면 그 체험은 의미가 없습니다. 내일의 변화를 이끌지 못하는 체험은 잠깐의 쾌락에 다름 아닙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는 신분의 변화는 반드시 행실의 변화로 연결되어야 합니다.

특별히 받으려는 삶에서 주는 삶으로 변화되어야 합니다. 자세히 보면 삶의 고통의 원인은 받으려고 하는 삶 때문인 경우가 많습니다. 어떤 사람은 이런 말을 자주 합니다. “세상에는 사랑이 없어!” 그러나 세상의 사랑 없음을 탓하기 전에 자신이 사랑받을만한 행동을 했는지를 먼저 생각할 수 있어야 합니다.

대개 “세상이 너무 사랑이 없어!”라고 말하고 다니는 사람은 다른 사람들에게 사랑받을만한 행동을 하지 못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그리고 주려는 생각보다 받으려는 생각이 많습니다. 그런 식으로 세상을 바라보니까 사랑이 없어 보일 수밖에 없습니다.

저도 가끔 큰 교회 목사님과 교제할 기회가 있습니다. 그때 큰 교회 목사님과 교제할 때 “저분으로부터 무엇을 얻어야지!”하는 생각을 하면서 교제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내가 그분에게 어떤 힘이 되어드릴까?”하고 생각하고 교제합니다.

유력한 사람에게 무엇을 받으려고 가까운 척 하는 것을 요새는 “정치한다!”라고 말하고, 무엇을 주려는 마음으로 가까이 하는 것을 “섬긴다!”라고 말합니다. 이익을 위해 가까이 하는 사람은 솔직히 부담스럽습니다. 언제 시험에 들지 모릅니다. 그러나 섬기는 마음으로 가까이 하는 사람은 웬만한 일에는 시험에 들지 않습니다. 그래서 항상 편합니다.

가끔 교회로부터 어떤 물질적 이익을 얻기 위해서 많은 사람들이 모이는 교회를 찾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결국 그 의도는 들통이 나고 그로 인하여 받게 되는 수치스러움의 강도는 더욱 커질 것입니다.

또한 얻으려는 마음으로 교회를 찾으면 왜 그렇게 교회에 마음에 안 드는 부분이 많은지 모릅니다. 결국 은혜의 길은 막히고 고통만 남게 됩니다. 그러므로 은혜 받고 축복받으려면 우리의 삶을 받으려는 삶에서 주려는 삶을 변화시켜야 합니다.

3. 오직 주님 말을 들어야 합니다.

예수님이 변형되는 장면을 목격하고 또한 선지자를 대표하는 엘리야가 나타나고 율법을 대표하는 모세가 나타나서 예수님과 얘기를 하니까 제자들은 너무 감격했습니다. 그래서 베드로가 말합니다.

본문 5절 말씀을 보십시오. “베드로가 예수께 고하되 랍비여 우리가 여기 있는 것이 좋사오니 우리가 초막 셋을 짓되 하나는 주를 위하여, 하나는 모세를 위하여, 하나는 엘리야를 위하여 하사이다 하니.”

그렇게 “여기가 좋사오니”하는데 하나님은 그 모습을 기뻐하시지 않은 것 같습니다. 그래서 본문 7절 말씀을 보면 갑자기 구름이 나타나 그들을 덮으며 베드로의 말을 막고 하나님의 음성이 들였습니다.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니 너희는 저의 말을 들으라.”

이 장면은 우리에게 어떤 교훈을 줍니까? 진짜 좋은 것은 환상적인 체험이 아니라 바로 주님의 말씀이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체험도 필요하지만 우리가 보다 더 사모해야 할 것은 환상적인 체험이 아니라 단순한 주님의 말씀입니다.

어떤 분은 체험을 찾아서 여기저기 좋다는 것을 찾아다닙니다. 그러나 그런 분들은 진짜를 찾지 못합니다. 넓게 살기보다는 깊게 살아야 합니다. 순도가 높을수록 보석의 가치가 훨씬 높아지게 되듯이 신앙의 순도를 높여야 하나님의 은혜가 그 가운데 임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인생을 살 때 산만하게 살면 안 됩니다. 더욱 집중력을 높여야 됩니다. 특히 눈이 너무 가볍고 귀가 너무 가벼우면 실수하고 실패할 가능성이 많습니다. 여러 소리를 듣기는 하되 예수님의 음성을 뚜렷이 들을 수 있어야 합니다.

목회를 하면서 정말 소중한 분들이 있습니다. 그것은 잘 들을 줄 아는 성도님들입니다. 잘 듣는 것은 인격입니다. 삶을 아름답게 만드는 가장 소중한 도구 중의 하나가 바로 잘 듣는 것입니다. 특히 우리 신앙생활에서 잘 듣는 것은 기본입니다. 진짜 바람직한 성도가 되기 위해서는 듣는 것을 잘해야 합니다. 사람과의 관계도 견고해지려면 잘 들어야 하는 것처럼 주님과의 관계가 견고해지려면 역시 잘 들어야 합니다.

4. 오직 예수만 보여야 합니다.

본문 8절 말씀을 보십시오. “문득 둘러보니 아무도 보이지 아니하고 오직 예수와 자기들뿐이었더라.” 신앙생활에서 오직 예수님만이 보이도록 해야 합니다. 자기를 자랑하면 축복은 그만큼 줄어듭니다. 그러나 자기를 감추면 그만큼 축복은 늘어납니다.

신앙생활의 기본은 나는 죽이고 주님을 드러내는 것입니다. 우리는 어떤 경우에서도 나를 감추려고 최대한 노력해야 할 것입니다. 나를 바라보지 말고 오직 주님만 바라보아야 합니다.

무엇이 오직 예수님만 보이게 하는 삶일까요? 그것은 예수님처럼 환상의 변화산을 뒤로하고 내려가는 삶을 말합니다. 높은 곳에서 환상의 체험을 했으니 베드로는 그곳에 있자고 하지만 예수님은 곧 산 아래로 내려가자고 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은혜가 임하는 방향은 언제가 낮은 곳이기 때문입니다. 환상적인 무대에서 내려와 음지에서 빛을 비추는 삶이 바로 주님만 바라보고 사는 삶의 실체입니다.

또한 산에서 내려가면서 주님은 제자들에게 변화산 체험을 부활의 역사가 있기까지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라고 하십니다(9절) 얼마나 입이 간질간질했을까요? 그 체험을 말해 자기를 높이고 싶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태도를 참아야 합니다.

자신의 체험을 열심히 간증하다가 나중에는 예수님은 보이지 않고 자기만 높아져있는 경우가 얼마나 많습니까? 그러니까 체험은 있다고 하는데 현재 주어지는 하나님의 은혜는 희미해집니다. 얼마나 아쉬운 일입니까? 우리는 항상 겸손한 모습을 잃지 말고 ‘오직 예수’로만 살아야 합니다. 그러면 언젠가 하나님께서 저절로 우리를 높여주시는 역사가 있을 것입니다.

성공적인 삶을 살았던 사람이 한결같이 하는 고백이 무엇입니까? “내가 높아질 때는 하나님께서 여지없이 축복의 문을 닫으시고 내가 겸손해질 때는 하나님이 여지없이 축복의 문을 여신다”는 고백입니다. 항상 인간적인 자랑을 버리기에 힘쓰고 오직 주님만 바라보고 은혜를 예비하는 분들이 되길 바랍니다.

ⓒ 이한규목사(분당 샛별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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