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의 출발점 (막 1:9-11)
본문
[마가복음 1 장 9 - 11 절]
[9] ♠ 그 때에 예수께서 갈릴리 나사렛으로부터 와서 요단강에서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시고 [10] ♠ 곧 물에서 올라 오실새 하늘이 갈라짐과 성령이 비둘기 같이 자기에게 내려오심을 보시더니 [11] ♠ 하늘로서 소리가 나기를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라 내가 너를 기뻐하노라 하시니라
친정에 온 기분이고 편안한 느낌이 든다.
늘 하는 고민이지만, 교회가 커지면서 어찌하면 한 영혼 한 영혼을 돌아보며 그들을 천하보다도 귀하게 여길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있다. 목자의 심정을 갖고 주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것 같이 우리도 한 사람 한 사람을 사랑해야 한다. 남가주 사랑의 교회에 와서 보니 벌써 올해에만 850명의 새 신자들이 등록을 하였다. 연말까지 1,500명은 등록할 것이다. 남가주 사랑의 교회는 처음에 12명으로 시작한 교회였는데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참으로 큰 교회가 되었다. 서울 사랑의 교회에는 매년 8,000여명이 등록을 한다. 그곳에서 사역을 한지가 3년이 되었고 그동안 24,000여명의 성도가 등록을 하였다. 그런데 큰 교회가 될수록 교회는 흐트러지기 쉽다. 제자훈련을 향한 초점이 흐려지고 그냥 쉽게 넘어갈 수도 있다. 그리고 한 영혼을 돌아보는 일에도 게을러질 수 있다.
작년 7월 마드리드로 향하는 비행기 안에서 Financial Time이라는 신문을 읽은 적이 있다. 지난 해, 미국 휴스톤에서 큰 사역을 하시던 한 목사님에 대한 기사가 실려 있었다. 그 목사님은 휴스톤에 있는 큰 체육관을 개조하여 교회로 만들 정도로 목회를 성공적으로 이끌고 있었다. 하지만 그 기사를 쓴 기자는 ‘교회가 대중적이고 커서 좋은데 사역에 깊이가 없다’라고 평하였다. 그 기사를 읽고 ‘하나님, 교회가 크고 대중적으로 성장하여도 그곳에서 하나님의 말씀의 깊이 더욱 깊어지게 하소서’라고 기도하였다.
남가주 사랑의 교회는 소명을 받은 교회이다. 과거처럼 신실한 성도들이 지속적으로 양육되어야 한다. 그래서 주신 소명을 가지고 일하는 교회가 되어야 한다. 그래서 오늘 ‘신앙의 출발점’이라는 제목으로 설교를 준비하게 되었다. 우리는 보이지 않는 무형 교회들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교회로서 주위에 영향을 미쳐야하는 성도들이다. 하지만 이민와서 많이 고생하다가 생활이 안정되면서 자칫 영적으로 흐트려질 수 있다. 아니면 아직도 너무 힘들어서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신앙의 기본이 풀어질 수도 있다. 오늘 말씀을 통해서 우리 모두의 영적 생활이 다시한번 든든히 서갈수 있기를 소원한다.
9절을 보자. 예수께서 세례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셨다. 이 내용은 너무도 귀해서 사복음서에 모두 기록되어 있다. 예수께서 세례를 받으신 사건이 왜 그리 귀한가?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의 출발점이었기 때문이다. 여기에 복음의 신비가 있는 것이다. 요한이 행한 세례는 회개의 세례였다. 그것은 원래 죄인들이 받아야 하는 것이다. 처음에 예수께서 요한에게로 나아오실 때에 요한은 세례를 행할 수 없었다. 당시 이스라엘은 소망이 없는 나라였다. 모든 백성들이 어두움에 있었다. 그런 상황 속에서 세례 요한은 수많은 무리들에게 세례를 주었다. 또한 당시의 사회는 혈연 사회였다. 그리고 예수와 요한도 사촌 간이었다. 서로가 너무도 잘 아는 사이였다. 하지만 그가 세례를 줄 수 없다고 말한 것은 예수가 죄없고 순결한 하나님의 아들임을 선포하는 것이었다. 그는 예수께서 그에게로 다가오는 모습을 보고 많이 놀랐지만 예수께서 ‘허락하라’는 말씀을 듣고 순종하였다. 이것은 나같은 죄인이 감당해야하는 수치와 고난을 주님이 감당하기 시작하는 순간이었다. 내가 서 있어야 할 죄인의 자리에 주님이 가시는 사건이었다. 당장은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지만 주님이 하신 일을 보고 알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이같이 예수께서 받으신 세례의 의미는 나같은 죄인이 서 있어야 할 죄인의 자리에 예수께서 서있게 되었다는 것이다. 예수의 공생애는 이렇게 시작되었다. 야고보와 요한의 어머니가 예수께로 나아와서 그들을 주님의 좌우에 세워달라는 요청을 할 때에 예수는 ‘내가 받은 세례를 너희도 받을 수 있느냐?’라고 되물으셨다. 예수께서 받으신 세례는 이같이 고난과 수치를 의미하는 것이다. 우리가 주님을 섬기다보면 때때로 고통과 수치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생긴다. 그리고 이같은 일 때문에 많은 상처를 받기도 한다. 하지만 기억하라. 내가 서 있어야 할 자리에 주님이 서 계셔서 우리 대신에 고난과 수치를 받았다는 사실을 기억하라. 이 복음의 신비와 은혜의 가운데로 한 걸음 더 나아갈 수 있기를 바란다.
어떤 목사님의 간증을 들은 적이 있다. 그 분은 15살까지 하나님을 몰랐다고 한다. 가정을 버린 아버지 때문에 어머니가 돌아가셨고 그 때부터 아버지에게 대한 증오심이 생겼다. 그러나 15살 때에 하나님을 만나고 말씀에 집중하면서 신약성경을 210번이나 읽었다. 이렇게 말씀에 집중하다가 복음의 은혜 가운데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라’는 말씀을 읽고나서부터 70년 동안 아무 것도 염려하지 않고 살았다고 한다. 말씀에 우등생도 있고 열등생도 있다. 케네디 헤이그라는 분은 오랫동안 휠체어에 의지하며 살았는데 어느날 말씀을 읽다가’일어나 걸으라’라는 말씀을 읽고 그대로 일어나 걸었다고 한다. 그후로 ‘케네디 헤이그 Ministry’를 시작하였다고 한다. 우리도 말씀을 읽다가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변화를 받아 심령이 청결해지는 역사를 체험할 수 있기를 바란다.
10절을 읽고 복음의 신비에 감동될 수 있기를 바란다. 예수 그리스도가 사역의 출발점에서 능력을 받는 순간이다. 우리도 사역을 할 때에 반드시 경험해야 할 순간이다. 필요하다면 지금 당장이라도 주님이 주시는 능력을 받을 수 있다. 필요하다면 지금 당장이라도 Anaheim위에 하늘 문이 열릴 수 있다. 지금 여러분에게 메마르고 답답한 신앙 생활이 지속되고 있다면 주님께 도와달라고 기도하라. 비둘기같은 성령의 능력을 받을 때까지 간구하자. 물론 성령은 여러가지 다른 모습의 은사로 받을 수 있다. 또한 누구든지 예수께 내린 비둘기같은 성령을 받을 수도 있다. 비둘기같은 성령은 온유한 성령의 은혜로 내려진다. 이같은 성령이 임하시면 하늘 문이 열리고 은혜의 사람이 된다. 세상에는 적자생존, 강자생존의 원리가 있다. 하지만 성령을 받은 사람은 겸자생존(겸손한 사람이…)의 원리로 살게 된다. 주님의 능력은 평화와 온유이다. 이같이 성령이 임하시면 동시에 겸손한 마음이 생긴다. 나는 성령의 기름부음을 기대하며 늘 세가지 내용으로 기도한다.
(1)힘들 때마다, 매 순간 순간마다, 성령을 환영한다. 필요할 때마다 성령을 모시고 환영할 수 있다. 그때마다 하늘 문이 열리는 것이다.
(2)나를 완전히 장악하시도록 맡겨드린다. 하지만 자신의 힘을 믿는 사람들은 잘 맡기지 못할 때가 있고 그것이 어렵다고 말한다. 하지만 실오라기 하나라도 주님께서 맡아달라고 기도한다. 서울의 사역은 여기보다 좀 더 치열하다. 그럴 때마다 모든 것을 다 맡기려는 기도를 한다.
(3)하나님의 무한한 계획 앞에 제한없이 사용받을 수 있기를 기도한다.하나님의 은혜를 타고 끝없이 달려도 한없고 제한없이 사용받을 수 있기를 기도한다. 그때에 하늘 문이 열리는 것을 보게 된다.
우리의 힘으로는 배우자를 영원히 사랑할 수 없다. 배우자의 뒤에 계신 성령님을 바라보자. 진정한 사랑은 사랑할 수 없을 때도 사랑하는 것이다. 진정한 이해는 이해할 수 없을 때도 이해하는 것이다. 진정한 용서는 정말로 용서할 수 없을 때라도 용서하는 것이다. 이런 은혜가 여러분에게 넘치기를 기원한다.
11절에는 하나님의 음성이 있다. 우리의 신앙이 제대로 출발하려면 하나님의 음성을 들어야 한다. 이것은 신앙의 정체성에 관한 문제이다. 우리에게는 확고한 영적인 정체성이 있어야 한다. ‘너는 하나님이 사랑하는 사람’이라는 음성을 듣고 나의 정체성을 보존할 수 있어야 한다.이 정체성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인정서가 되고 보증서가 되는 것이다. 우리는 왕같은 제사장이고 택한 백성이며 거룩한 제자들이다. 우리가 어떤 정체성을 가지는가에 따라서 우리의 인생이 결정된다. 표리가 부동한 삶을 살아서는 안된다. 우리는 반드시 표리가 일치되는 삶을 살아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 늘 주님의 음성을 들어야 한다. 우리는 찬양할 때마다 주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다. 우리는 거룩한 존재들이므로 거룩한 자존심이 있어야 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의 몸을 함부로 굴려서도 안된다.
1부예배를 위해서 교회에 들어오면서 교회기, 성조기, 그리고 태극기를 보았다. 그리고 비전항구에 내려있는 닻도 보았다. 든든한 닻처럼 우리도 든든한 신앙을 가져야 하며 우리 교회가 비전과 소망의 항구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였다. 우리 교회에서 가장 멋있는 장소가 어디인지 아는가? 2층 난간, 로뎀나무 앞에서 가장 좋은 View를 볼 수 있다. 여기에 서서 밖을 내다보면 세개의 깃발이 모두 보인다. 우리는 100% Korean인 동시에 100% American이다. 그리고 동시에 왕같은 제사장들이며 택하신 백성들이다. 예수는 100%의 인성과 100%의 신성을 가진 분이었다. 주님께서 주신 고품격과 고결함을 잃지 말자. 우스운 이야기 같지만 자기 자신이 어떤 사람임을 알게 되면 비만조차도 허락할 수 없다. 나는 뛸 때마다 힘들고 괴롭지만 그래도 내 신분을 알기 때문에 내 몸이 방치되는 것을 그냥 볼 수 없다. 절대로 내 몸을 함부로 할 수 없다.
릭 워렌 목사님이 한국을 방문했을 때에 함께 한 적이 있었다. 상암 경기장 집회 때에도 그랬고 그후 청와대에도 함께 들어 갔었다. 9월달에 있을 한미 정상 회담이 잘되기를 소원하면서 김장환 목사님, 릭 워렌 목사님을 모시고 함께 들어 갔었다. 화목의 은혜를 기대하였다. 그곳은 예상대로 권위가 충만한(?) 곳이었다. 들어가기 전에 보좌관으로부터 ‘그곳에서는 절대로 기도하지 말라’는 권유를 받았다. 릭 워렌 목사님이 ‘Green House가 White House보다 더 좋다. 하지만 나는 My House가 더욱 좋다’라는 조크를 하셨다. 한 시간 정도 담소를 나누고 나서 자리를 일어나려다가 이런 생각을 했다. ‘우리는 하늘 나라의 대사들인데 그냥 돌아 갈 수 있는가?’ 그래서 무작정 손을 잡고 기도했다. 우리는 진심으로 기도했고 기도가 끝날 즈음에 ‘대통령이 아멘을 할 것인가 안 할 것인가’를 생각했다. 그런데 그 분께서 ‘아멘’이라고 했다. 하나님은 우리 나라를 특별히 사랑하신다. 이제 그 분의 임기가 일년 반 정도 남았다. 불쌍히 여겨 주기 바라고 그 분을 위해서 진심으로 기도해 주기 바란다. 우리는 누구를 위해서도 기도할 수 있어야 한다. 이런 은혜가 우리 모든 성도들에게 충만하기를 기도한다. 또한 성령의 충만함과 치유함이 여러분들과 항상 함께 하시기를 기도한다. (오정현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