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리다굼! (막 5:21~24,35~43)
본문
여러분, 험한 세상을 살아가는 데 가장 필요한 게 뭐라고 생각하십니까? ‘힘’(Power)입니다. 힘이 있어야 어려움도 극복하고 승리할 수 있습니다. 힘에 부치면 아무 일도 해낼 수 없습니다. 그래서 모든 사람들이 힘을 기르고, 할 수 있는 대로 큰 힘을 소유하려고 애를 씁니다. 그러면 과연 우리에게 필요한 힘에는 구체적으로 어떤 것들이 있을까요? 여러 가지가 있을 겁니다. 첫째로, 돈의 힘 재력(財力)이 있습니다. 돈의 힘이 얼마나 큰지 두말 할 필요가 없습니다. 때때로 세상에서 무엇이든 다 할 것 같은 착각에 빠질 정도입니다. 다음으로는 권력(權力)이 있습니다. 이것도 대단하죠. 사람들이 그 앞에서 굽실거립니다. 그래서 한번 권력의 맛을 보면 빠져나오기 어렵다고 말하지 않습니까? 그 외에 지식의 힘 지력(知力)과 육체의 힘 체력(體力) 등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것들보다 더 중요한 힘이 있습니다. 마음의 힘 심력(心力)입니다. 흔히 정신력이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영국의 심리학자 J. 하드필드 박사의 연구에 의하면 사람이 스스로 “난 틀렸어. 이제 끝났어!” 라고 생각하며 자괴감에 빠지면 실제 능력의 30%도 발휘하지 못한다고 합니다. 반면에 자신감이 있으면 500%의 능력을 발휘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또 한 가지 예를 소개해 드립니다. 여러분도 잘 아시는 빌 게이츠(마이크로 소프트 회장, 세계 제일의 부자)에게 어느 기자가 찾아가서 질문을 했습니다. “당신이 이토록 크게 성공한 비결이 뭡니까?” 이 질문에 그는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나는 매일 나 자신에게 최면을 겁니다. ‘오늘은 분명히 행운이 있을 거야’ ‘나는 무엇이든 할 수 있다’ 바로 이 두 가지이죠.” 심력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 수 있습니다.
하지만 심력을 포함해서 모든 종류의 인간적 힘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정말 어렵고 힘든 상황이 닥치면 포기하고 무너져 버립니다. 그러므로 보다 더 강력한 힘이 필요합니다. 평소에는 물론이고 극한 상황 속에서도 승리할 수 있는 놀라운 힘입니다. 여러분, 그런 힘이 있겠습니까? 있습니다. 그게 뭘까요? ‘영력’(靈力 Spiritual Power)입니다. 살아계신 하나님, 전능하신 하나님을 의지하는 ‘믿음의 힘’입니다. 인간의 힘을 초월하는 초자연적인 하나님의 능력을 힘입는 것입니다.
성경은 우리 인생에 믿음의 힘인 영력이 얼마나 크고 놀라운 것인지 수많은 케이스를 통해 증거해 줍니다. 그 중 하나가 바로 오늘 본문의 이야기입니다. 죽을병에 걸린 한 소녀가 죽었다가 살아난 사건입니다. 이것은 인간의 힘으로 도저히 불가능한 기적입니다. 하나님의 능력을 힘입은 믿음의 결과입니다.
우리에게도 이런 힘이 꼭 필요합니다. 아무쪼록 오늘 말씀을 통해 믿음의 힘 영력을 충만히 얻으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험한 세상을 살지라도 항상 승리하며 기뻐하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1] 인생에 닥쳐오는 숱한 고난 : 인간의 힘 안 되는 문제들
본문을 보면 회당장 야이로가 등장합니다. 그는 객관적으로 큰 힘을 가진 사람이었습니다. 회당장은 한 마디로 말해서 그 지역의 유지입니다. 당시 유대인들은 지역마다 회당을 갖고 있었는데, 신앙생활과 사회생활의 센터입니다. 회당장은 그 회당의 운영 책임자로서 건물 관리에서부터 예배 순서를 작성하고 말씀을 가르치는 랍비를 선정하고, 지역의 질서도 유지하고 심지어 재판하는 일까지 감당합니다. 그러니까 지역 유지로서 백성들에게 존경의 대상이었고, 많은 힘을 가졌던 사람입니다. 본문에 자세한 설명이 없지만 당연히 재력도, 지력도, 권력도, ... 다 갖춘 사람입니다. 그런데 그에게 엄청난 문제가 닥쳤습니다. 그의 12살 먹은 어린 딸이 중병에 걸려 사경을 헤매고 있습니다. 더욱이 병행구절인 눅8:42 보면 무남독녀 외딸이었으니 그 아버지의 심정이 어떠했겠습니까? 그가 힘깨나 쓰는 사람이지만 인간적인 힘으로는 도저히 어찌 해 볼 도리가 없었습니다. 지금 어린 딸이 중병에 걸려서 죽어가는 판국에 인간적인 힘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그 모든 힘들을 다 합쳐도 별 게 아니었습니다.
야이로는 가정의 문제, 자식의 건강 문제로 고통을 받았지만, 우리 인생에는 그 외에도 무수한 문제들이 있습니다. 순간순간 예기치 않게 크고 작은 문제들이 닥쳐옵니다. 개인의 문제, 자녀의 문제, 물질의 문제, 건강의 문제, 죽음의 문제, 인간관계의 문제, 가정의 문제, 직장문제, 사업 문제, 사회와 국가의 문제 등 ... 이루 헤아릴 수 없는 문제들이 우리 앞을 가로막는 것입니다. 그런 문제들이 닥쳐올 때 우리가 느끼는 게 있습니다. 인간이 얼마나 무력하고 연약한 존재인가 하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건강의 문제를 생각해 보십시오. 현대인들이 건강관리를 얼마나 잘 합니까? 그런데도 병원마다 환자가 넘치고, 별의 별 질병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경제적인 문제도 마찬가지 점점 살기 어려워지고 있습니다. 오죽 하면 오륙도, 사오정, 삼팔선 등의 신조어가 자꾸 만들어 집니까? 이제 그런 말들은 고전이 되었고, 요즘엔 다른 말들도 생겨나고 있습니다. 이태백(20대 태반이 백수)이란 말이 생겨나더니 십장생(10대들은 장차 백수 될 것을 미리 생각해야 됨)이란 말까지 생겼습니다. 가슴 아픈 이야기입니다. 한번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잘 나가는 삼성 이건희 회장의 인터뷰기사를 본 적이 있습니다. 그 분 정도면 경제 문제에 관한 한 무슨 걱정이 있으려나 싶은데 그게 아니었습니다. 그분이 이런 말을 했습니다. “앞으로 10년 후에 우리가 뭘 먹고 살아야 할지 생각하노라면 며칠 밤을 지새우기도 하고, 등줄기에서 식은땀이 납니다.” 사회 국가적으로도 요즘 얼마나 어렵습니까? 7월 한 달 동안도 얼마나 많은 일이 있었습니까? 북한이 미사일을 쏘고, 태풍이 불고, 장마 폭우가 쏟아지고 ... 얼마나 심란하고 답답합니까? 이런 일들이 앞으로는 발생되지 않으면 좋으련만, 어디 우리 마음대로 됩니까? 더 힘든 일이 생길지도 모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평소에는 인간적인 힘으로 대충 살아갈 수 있을 것 같지만, 이런 문제들에 부딪히게 되면 우리가 얼마나 연약한 존재인지 새삼 깨닫게 됩니다. 고난 앞에 속수무책일 때가 너무나 많은 것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됩니까? 야이로처럼 전능하신 하나님께, 예수 그리도 앞에 나아가 힘을 얻어야 합니다. 그래서 시146:3~5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방백들을 의지하지 말며 도울 힘이 없는 인생도 의지하지 말지니 그 호흡이 끊어지면 흙으로 돌아가서 당일에 그 도모가 소멸하리로다 야곱의 하나님으로 자기 도움을 삼으며 여호와 자기 하나님에게 그 소망을 두는 자는 복이 있도다”
[2] 숱한 고난을 이기는 힘 : 예수님께 나아가는 믿음의 힘
야이로는 다행히 그 다급한 상황 가운데 포기하지 않고 예수님께로 나아왔습니다. 22절~23절 보시면, 그는 예수님 발 아래 엎으려 간구합니다. “ ... 내 어린 딸이 죽게 되었사오니 오셔서 그 위에 손을 얹으사 그로 구원을 얻어 살게 하소서 ... ”
우리가 성경을 무심코 읽으면 그냥 그렇거니 하고 지나치겠지만 당시의 상황을 잘 이해하면 이건 쇼킹한 사건입니다. 지금 우리로서는 당연히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로 믿고 있지만, 당시에는 예수님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는 상황이었습니다. 심지어 유대인 상류사회에서는 예수님을 대적하는 분위기였습니다. 요즘 식으로 말하면 이단자쯤으로 오해하고 있는 분위기였습니다. 그런 가운데 인간적으로 30세가 갓 넘은 청년 예수를 직접 찾아온다는 것 정말 어렵습니다. 더욱이 그 앞에 엎으려 간구한다는 것은 충격적인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러면 여러분, 과연 야이로가 어떻게 그럴 수 있었을까요? 두 가지 이유 때문일 겁니다. 첫째는, 자신의 힘의 한계를 느꼈기 때문입니다. 그 다급한 고난 앞에 자기는 아무 것도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은 겁니다. 물에 빠진 사람이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이었을 겁니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충분한 이유가 되지 못합니다. 아무리 그래도 지위와 체면이 있고 당시 사회적인 분위기와 압력이 있었는데, 잘못하면 딸아이도 못 고치고 자기 신세도 망칠 텐데 그런 무모한 짓을 하겠습니까? 둘째로, 정말 중요한 이유가 있습니다. 그것은 그에게 믿음이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그 믿음이 그로 하여금 예수님에게 달려오도록 이끌었던 것입니다.
여러분, 믿음이 무엇입니까? 여러 가지로 설명할 수 있겠지만 간단히 이렇게 설명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 나아가면 가능하다고 기대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자면, 나의 힘으로는 할 수 없지만 하나님의 능력으로 할 수 있다고 인정하는 것입니다. 야이로는 그동안 예수님에 관한 많은 소문을 들었을 겁니다. 그분이 하신 말씀들, 그리고 그분이 일으킨 여러 기적들(병자를 안수함으로 고치고, 귀신을 쫓아내고, ... )에 관해 듣고 그 마음에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임을 인정하고 있었습니다. 그분을 만나면 자기 딸을 거칠 수 있으리라 기대했습니다. 바로 그 믿음으로 예수님을 찾아왔던 것입니다.
야이로는 어려운 고난을 해결하는 길을 제대로 찾은 것입니다. 여러분, 많은 사람들이 고난 가운데 무너지고 실패하고 좌절해버리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 문제 자체가 어려워서 그렇다기보다는 해결하는 길을 찾지 못해서 그런 겁니다. 우리는 그 길이 무엇인지 빨리 깨달아야 합니다. 그럴수록 우리 인생에 축복의 대로가 열립니다. 세상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재력이 대수가 아닙니다! 권력이 대수가 아닙니다! 지력이 대수가 아닙니다! 체력이 대수가 아닙니다! 심력이 대수가 아닙니다! 오직 믿음이 대수입니다!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께 나아가는 것, 그 믿음이 대수입니다.
그렇습니다. 믿음은 우리 인간이 가질 수 있는 가장 강력한 힘입니다. 눈에 보이지 않지만 가장 강력한 힘 영력입니다. 하나님은 믿음의 사람들에게 당신의 능력을 나타내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믿음은 연약한 인간이 하나님의 무한한 능력에 접속되는 것(connect)입니다. 마치 강력한 전원에 스위치를 연결하는 것과 같은 원리입니다.
그러므로 저와 여러분은 어떤 문제가 닥치든지, 어떤 고난이 찾아오든지 세상의 힘을 의지하지 말고 오직 믿음으로 하나님께 나아가 그 능력으로 승리하시기 바랍니다. 주님께서 반드시 도와주실 줄로 믿습니다!
[3] 믿음을 굳게 지키는 법 : 말씀대로 긍정하기
그런데 우리가 명심할 또 한 가지 중요한 사실이 있습니다. 우리의 믿음이 때때로 흔들리고 미약해질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럴 때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나지 않습니다. 믿노라 하면서도 고난이 극심해지고 문제가 커지면 믿음이 흔들릴 수 있습니다. 만약 그렇게 되면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나지 않고, 우리는 영력을 얻을 수 없습니다. 전기의 원리로 설명하면 접촉 불량이 되는 겁니다. 아무리 센 전력이 있어도 그 전원에 연결된 스위치가 붙었다 떨어졌다 하면 그 힘을 제대로 받을 수 없는 것과 같은 원리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믿음을 갖되, 그 믿음이 흔들리거나 약해지지 않도록 굳게 지켜야 합니다.
야이로가 예수님께 나아와 간구하자 예수님께서 흔쾌히 여기시고 그의 집으로 향하십니다. 그런데 중간에 변수가 생겼습니다. 많은 무리가 예수님을 따라다니는데, 12년 동안 혈루증을 앓는 여자가 예수님의 옷자락을 잡은 것입니다. 그 바람에 그 여자는 치유의 기적을 체험합니다.(25절~34절 참조) 중간에 그러는 동안 시간이 꽤 지체되었습니다. 그것은 좋은 일이었지만, 야이로의 입장에서 보면 얼마나 초조했겠습니까? 아직 그러고 있는데 상황이 악화됩니다.
35절을 봅니다. “아직 말씀하실 때에 회당장의 집에서 사람들이 와서 가로되 당신의 딸이 죽었나이다 어찌하여 선생을 더 괴롭게 하나이까” 한 마디로 청천벽력입니다. 딸이 그 사이를 기다리지 못하고 죽었다는 비보였습니다. 사람들이 비보를 전하면서 이제 더 이상 예수님을 괴롭히지 말고 보내드리라고 말합니다. 이 말은 아주 예의바른 것 같지만 사실은 불신앙의 소치입니다. 결국 무슨 뜻입니까? 예수님이 병은 고칠 수 있을지 모르지만, 죽은 사람을 살리지는 못한다는 뜻입니다. 그러나 여러분, 생각해 보십시오. 예수님이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일진대, 그 능력에 한계가 있겠습니까? 주님에게는 능치 못함이 없습니다. 다만 섭리 가운데 원하실 수도 있고 원치 않으실 수도 있을 뿐이지 능력에 한계가 있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그때 예수님께서 어떻게 반응하십니까? 36절. “예수께서 그 하는 말을 곁에서 들으시고 회당장에게 이르시되 두려워 말고 믿기만 하라 하시고” 여기서 ‘곁에서 들었다’는 것은 단순히 옆에서 들으셨다는 뜻이 아닙니다. 헬라어 원어 성경이나 영어 성경을 보면 무시했다(ignore)는 뜻으로 되어 있습니다. 그들의 불신앙이 말을 무시해 버리시고 야이로에게 말씀하십니다. “두려워 말고 믿기만 하라!” 무슨 뜻입니까? 문제가 커졌다고 두려워하지 말고, 처음 믿음을 굳게 지키라는 말씀입니다.
이게 많은 사람들 가운데 나타나는 신앙생활의 문제입니다. 인간의 힘이 달리는 것이지 주님의 힘이 달립니까? 그렇다면 그분은 하나님의 아들이 아니죠. 예수님은 병을 고칠 뿐 아니라 죽은 자도 살리실 수 있습니다. 그분 스스로 십자가에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셨습니다. 그분이 원하시면 병을 고치는 것이나 죽음에서 살리시는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감기가 암이나 마찬가지입니다. 그분에게 큰 문제나 작은 문제나 무엇이 문제가 되겠습니까?
예수님의 이 말씀을 듣고 야이로는 믿음을 추스릅니다. 그리고 집으로 갑니다. 갔더니 소란이 벌어지고 있었습니다. 사람들이 울고불고 ... 슬퍼하며 애곡합니다. 예수님은 소녀가 자는 것이니까 울지 말라고 타이르십니다. 그 말씀을 죽지 않았다는 게 아니라 살려낼 것이라는 뜻입니다. 그러자 조문객 중에는 비웃는 자들도 있었습니다.(40절 참조) 예수님은 불신하는 자들을 다 물리치고, 그래도 믿음을 가진 사람들, 즉 야이로 부부와 세 명의 제자들(베드로, 야고보, 요한)만 데리고 소녀에게 들어갑니다. 그리고 손을 잡아 일으키며 외칩니다. “달리다 굼!” ‘달리다’는 소녀야! ‘굼’은 일어나라 그런 뜻입니다. 그 말씀을 듣고 시체가 움직입니다. 살아난 겁니다. 놀라운 기적이죠. 바로 하나님의 능력으로 죽음에서 살아났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은 이렇게 강력합니다. 따라서 우리가 믿음을 가지고 그 말씀을 긍정하면 그대로 성취됩니다.
여러분, 혹시라도 내 생각에 문제가 너무 큽니까? 상황이 너무 나쁩니까? 그것에 시선을 빼앗기지 마십시오. 주님을 바라보십시오! 그분은 하나님이십니다. 그분은 전능자이십니다. 그분은 살아계십니다! 히13:8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니라!” 아무리 우리의 문제가 크다 하더라도 예수님은 그 문제보다 크신 분입니다.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환경이나 조건, 그리고 문제를 보면서 부정적인 생각이나 두려움과 의심에 빠지지 마십시오. 그러면 우리의 믿음이 흔들리고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나지 않습니다.
마태복음 14장을 보면, 베드로가 물 위를 걸은 사건이 있죠. 예수님의 제자들이 밤에 갈릴리 바다는 항해하고 있었습니다. 마침 따로 떨어졌던 예수님이 물 위로 걸어오십니다. 제자들은 놀라면서 유령이라고 소리칩니다. 그러나 예수님인 줄 확인하고 안도합니다. 그때 베드로가 자기도 예수님처럼 걸을 수 있나 질문합니다. 예수님이 오라고 하셨고 그 말씀에 믿음으로 단순히 순종한 그는 정말 물 위로 걸었습니다. 그런데 잠시 후 바람이 불자 출렁이는 파도를 보면서 그는 두려운 마음이 생겼고 믿음을 상실합니다. 그때 여지없이 빠져버립니다.(마14:30 참조) 믿음이 흔들리자 주님의 능력을 힘입을 수 없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믿음이 흔들리지 않도록, 믿음을 놓치지 않도록 말씀 그대로 마음속에서 인정하고 긍정해야 합니다. 말씀대로 된다! 주님이 말씀의 약속대로 이뤄주신다! 그럴 때 놀라운 능력의 역사가 나타나는 것입니다.
미국의 레이크우드 교회 담임하는 조엘 오스틴 목사의 책 『긍정의 힘』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그의 어머니가 20년 전 간암 진단을 받았다고 합니다. 의사들은 몇 주밖에 살지 못하다고 단정했습니다. 가족들은 의료진의 수고에 정중히 감사했지만, 그들의 의견을 최종적인 권위로 인정하지는 않았습니다. 하나님만이 최종 권위자임을 고백했습니다. 그러기에 포기할 수 없었습니다. 무엇보다 어머니 본인이 포기하지 않고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하기 시작했습니다. 말씀을 붙들고 날마다 마음속으로 긍정하며 입술로 선포했습니다. 치유에 관한 성경 구절 30~40개를 종이에 적어놓고 매일 큰 소리로 선포하며 하나님의 능력을 구했던 것입니다. 몇 주후부터 회복세를 보이더니 수개월 후에 마침내 완치되었습니다. 20년이 지난 지금도 그분은 건강하게 지내고 있다고 합니다.
또 이런 간증을 읽어본 적이 있습니다. 어느 교회 안수집사님 이야기입니다. 그분은 본래 교회와 담을 쌓고 지냈는데, 부인의 간청을 오래 거부하다 우연치 않게 교회 모임에 참석하게 됩니다. 평소에 교회는 순 못난이들만 나가는 줄 생각하고 오히려 자기보다 잘난 사람들이 수두룩한 모습을 보고 생각이 바뀌기 시작한 겁니다. 성경 공부를 하는 등 신앙생활을 시작합니다. 그런데 그분이 우유 회사 중역인데 신제품 개발을 맡아 하고 있었습니다. 경쟁이 심함 업계어서 그게 어디 만만합니까? 머리를 짜내도 나오지 않고 점점 큰 압박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부인과 작정 기도를 시작합니다. 그러던 어느 날 하나님께서 아이디어를 주셨습니다. 검은 콩 우유를 만들라는 겁니다. 지금은 여러 회사에서 만들고 있지만 그때는 업계 최초로 출시한 것이었고, 대박을 터뜨렸습니다. 하나님이 능력 주시면 이처럼 삶의 전반에서 놀라운 일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성도 여러분! 이것은 비단 성경만의 이야기 아닙니다. 옛날만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또 어떤 특별한 사람들만의 이야기 아닙니다. 주님은 오늘 우리에게도 동일한 역사를 허락해 주십니다. 얼마든지 우리들의 이야기, 나의 이야기, 오늘의 이야기일 수 있습니다. 우리 앞에 어려운 상황, 큰 문제 앞에 있습니까? 낙심하지 마십시오. 포기하지 마십시오. 우리가 믿음으로 하나님께 나아가면, 말씀을 믿고 기도하면 분명히 우리에게 새 힘을 주실 줄로 믿습니다. 영력을 주실 줄로 믿습니다. 그래서 승리의 역사가 나타나고, 치유의 역사가 나타나고, 놀라운 일들도 생겨날 줄로 믿습니다! 아무쪼록 말씀 붙잡고 믿음을 굳게 지킴으로 용기를 얻고 영력을 얻어 날마다 승리하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홍문수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