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가지 유혹 (눅 4:1-13)
본문
<빈대에게 배운다>
현대 그룹의 창업주 정주영씨가 경험한 '빈대 이야기'가 있습니다.
정말 찢어지도록 가난했던 시절, 인천에서 부두 하역 일과
이삿짐 나르기 등 궂은 일을 도맡아 했을 때였습니다.
이 때 노동자들을 위한 합숙소에서 생활했는데 빈대가 너무 많아서 걱정이었습니다.
수많은 빈대들이 잠을 잘 수 없을 정도로 극성을 부리니까 노동자들이 꾀를 냈습니다.
방바닥이 아닌 밥상 위에 올라가서 자면 괜찮겠지 해서 밥상 위에 올라가
잠을 청했는데, 빈대들이 거기까지 기어 올라와 온 몸을 물어뜯었답니다.
결국 합숙하던 노동자들이 특단의 대책을 다시 마련했는데
이번에는 빈대들을 아예 수장(水葬)시켜 버릴 생각을 했습니다.
빈대들을 물에 빠져 죽게 하려고 밥상 다리 네 개를 물 담은 양재기 넷에 담가 놓았습니다.
첫날은 이 작전이 주효했는지 그런 대로 지낼만한 했지만,
한 이틀쯤 지나자 빈대들이 다시 총공격을 해왔습니다.
불을 켜고 자세히 살펴보니 빈대들이 네 벽을 타고 천장으로 올라간 다음
잠자는 사람을 목표로 공중투하를 하면서 자기목표를 달성하더라는 것입니다.
이 때 정주영씨는 중요한 교훈 하나를 배웠습니다.
"아, 하찮은 미물에 불과한 빈대도 저렇게 자기 목표를 달성해보려고 노력하는구나.
빈대도 자기 생명을 위협하는 양재기 물까지 피하면서 필사적으로 발버둥을 치는데,
우리 인간이 저 빈대처럼만 끈질기게 노력한다면 성공 못할 일이 어디 있겠는가?"
정주영씨의 자서전 「시련은 있어도 실패는 없다」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빈대에게서 악착같은 근성을 발견한 정주영씨는 결국 훌륭한 사업가로 대성할 수 있었습니다.
사람들은 누구나 다 성공해보려고 노력합니다.
실패하려고 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사람들은 누구나 다 행복해지려고 합니다.
불행해지려고 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그런데 성공하고 행복해지기 위하여 목표를 바로 정하는 일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없습니다.
저는 지난 목요일에 여의도 순복음 교회에서 열린 릭 워렌(Rick Warren) 목사님의
「목적이 이끄는 교회 컨퍼런스」에 우리 교역자들과 함께 참석했습니다.
저는 이미 그 분이 쓴 책을 읽고 참석했기 때문에 강연을 쉽게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건강한 교회가 되기 위하여 목적을 바로 세우고 나가면
교회는 저절로 성장할 수 있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앞에서 말씀드린 빈대 이야기처럼 하찮은 미물인 빈대도 자기 목표를 정한 다음에는
필사적으로 노력하는데, 우리 교회도 목표를 정하고 그 목표를 이루기 위하여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사실은 당연한 상식이겠지요.
그런데 저는 릭 워렌 목사님의 오전 강연 끄트머리에 교회 지도자가
갖추어야 할 자세에 대해서 말씀할 때 큰 은혜를 받았습니다.
목회자나 평신도나 영적인 지도자는 유혹을 잘 이겨내야 하는데,
크게 세 가지 유혹을 극복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극복해야 할 세 가지 유혹, 배양해야 할 세 가지 미덕>
요1서 2: 16에 보면 "이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인데 이는 다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것이 아니라 세상으로부터 오는 것."이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우리 영적인 지도자들은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을 이겨내야 합니다.
릭 워렌 목사님은 이것을 'Three P'라고 했는데 Pleasure 쾌락, Possession 소유욕,
Position 지위욕, 이 세 가지 욕심과 싸워 이겨야만 한다는 것입니다.
사람이 육신의 정욕, 즉 육체가 원하는 본능적인 쾌락에만 빠져 살면 쾌락주의자가 됩니다.
할 수 있으면 육신의 고통은 줄이고 감각적인 쾌락을 늘이는 데에만 관심을 기울이게 되지요.
오늘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힘겹게 싸워야 할 원수도 바로 쾌락주의입니다.
우리의 육신을 즐겁게 하려는 감각적이고 향락적인 환경이 도처에 깔려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반드시 기억해야 할 진리는 롬 8: 13의 말씀처럼
우리가 육신대로 살면 반드시 죽는다는 사실입니다.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기 때문에 그 마침은 사망이 되고 맙니다(롬 8: 6-7).
그 다음에 우리는 소유욕, 즉 물질에 대한 욕심과도 싸워 이겨야 합니다.
더 많이 소유하고 싶은 욕구가 우리 마음 속에 다 있습니다.
그리하여 엄청난 물질을 소유하고 있음에도 도무지 만족이 없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오늘 신문이나 TV나 모든 매스 미디어가 우리에게 구매욕을 충동질합니다.
우리 마음 깊은 곳에 있는 소유욕을 자극해서 더 많이 소유하게 만들려고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눅 12장에서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어리석은 부자의 비유'를 기억해야 합니다.
부자가 자기 밭에서 엄청난 소출을 거두자, 지금 있는 곳간을 헐고
다시 크게 지은 다음 이렇게 혼잣말로 뇌까립니다.
"내 영혼아, 이제 여러 해 동안 쓸 많은 물건을 쌓아 두었으니
너는 마음놓고, 먹고 마시고 즐겨라."
이런 부자를 향하여 주님은 뭐라고 말씀하십니까?
"어리석은 자여, 오늘밤에 네 영혼을 네게서 도로 찾을 것이다.
그러면 네가 그렇게 고생해서 장만한 것이 뉘 것이 되겠느냐?"
그렇습니다.
우리의 소유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잠깐 맡겨주신 선물일 뿐이지 영원한 것이 아닙니다.
그 다음에 릭 워렌 목사님은 지위욕, 즉 명예욕을 경계하라고 했습니다.
목요일 밤 상암 월드컵 경기장에서 열린 대규모 집회에서도 그런 말씀을 했습니다.
자신이 전 세계적으로 유명해지게 되어서 영향력이 날이 갈수록 증대되고 있는데,
그럴수록 자기는 점점 더 두려운 마음을 갖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영향력이 자기를 과시하고 자기의 명예를 높이고
하나님이 아닌 자기를 섬기는 쪽으로 갈까봐 두려워한다는 것이지요.
그리하여 워렌은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영향력을 하나님과 이웃을 섬기고
온 세상을 유익하게 하는 쪽으로 써야 한다는 사실을 역설했습니다.
사람에게는 누구나 다 지위욕과 명예욕이 있습니다.
다른 사람보다 더 높아지고 대접받고 명령하는 위치에 올라가고 싶은 마음이 있습니다.
그러나 영적 지도자는 servant, 섬기는 종이 되어야지 군림하는 지배자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릭 워렌 목사님은 이와 같은 인간의 세 가지 욕구가 지도자뿐만 아니라
누구에든지 다 있는데, 이것을 극복하기 위하여 세 가지 미덕을 강조했습니다.
첫째로, humility 겸손입니다.
잠 18: 12은 말씀합니다.
"사람의 마음의 교만은 멸망의 선봉이요 겸손은 존귀의 앞잡이니라."
잠 29: 23도 말씀합니다.
"사람이 교만하면 낮아지게 되겠고 마음이 겸손하면 영예를 얻으리라."
우리가 겸손해지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을 이길 수 있습니다.
둘째로, integrity 성실성입니다.
안에서나 밖에서나 변함 없이 한결같은 사람입니다.
교회 안에서나 교회 밖에서나 가정에서나 세상에서나 차이가 없는 사람입니다.
오늘 우리가 쾌락, 소유욕, 지위 명예욕을 이기기 위하여 성실성이 중요합니다.
언제 어느 곳에서나 하나님의 사람으로서 흔들림이 없는 견고한 삶을 살아야 합니다.
셋째로, generosity 베푸는 삶입니다.
이번에 릭 워렌 목사님이 한국에 오셔서 계속 강조하신 말씀 중에 하나가 베푸는 삶입니다.
하나님께서 한국과 한국 교회를 축복하셔서 한국이 물질적으로 잘 살게 되었느니
이제 가난한 이웃을 위하여 베풀 차례가 되었다는 것이지요.
예수님은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더 복이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행 20: 35).
우리가 관대한 마음을 가지고 베풀 때 우리의 삶은 더욱 풍성하고 윤택해질 것입니다!
<예수께서 받으신 세 가지 유혹>
저는 릭 워렌 목사님의 강연을 들으면서 예수님께서
사탄으로부터 받은 세 가지 시험을 다시 읽게 되었습니다.
사실 예수님이 받으신 시험 이야기는 워낙 중요한 이야기라서
공관복음서에 다 기록되었습니다(마 4: 1-11; 막 1: 12-13).
예수님께서 공생애를 시작하시기 전에 시험을 받으셨다는 사실은 매우 중요합니다.
히 4: 15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우리에게 있는 대제사장은 우리 연약함을 체휼하지 아니하는 자가 아니요
모든 일에 우리와 한결같이 시험을 받은 자로되 죄는 없으시니라."
하나님의 아들로서 항상 성령이 충만했던 예수님이 우리와 똑같이 시험을 받으셨습니다!
하물며 연약하기 짝이 없는 우리가 시험받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입니다.
그리하여 예수님은 주기도문에서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시며"
하고 기도할 것을 가르쳐주시지 않았습니까?
자, 그런데 예수님은 광야에 나가서 40일 동안을 주야로 금식하시면서 시험을 받으셨습니다.
여러분, 이것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하루 이틀도 아니고 40일을 아무것도 먹지 않는다고 할 때 심신이 극도로 약해지지 않습니까?
예수님은 심신이 다 지쳐 있었을 때 시험을 받으셨습니다.
우리 신앙인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언제 육신의 정욕 안목의 정욕 이생의 자랑 같은 유혹을 받습니까?
주로 심신이 약해져서 기력이 다 빠지게 될 때 찾아오지 않습니까?
그렇습니다.
우리의 심신이 다 지쳐 약해질 때 사탄은 우리를 시험합니다.
전투를 할 때 상대편이 사기가 충천하고 전력이 강할 때에는 공격을 잘 하지 않습니다.
상대편이 사기가 저하되고 방심하고 전력이 약화될 때 총공격을 하게 되지요.
마찬가지로 우리가 믿음이 떨어지고 영력이 쇠하고
그리스도에게 굳게 붙어 있지 못하고 육적인 것에 빠져 있을 그 때에
사탄은 우리의 헛점을보고 시험거리를 주는 것입니다!
또 한 가지 기억해야 할 중요한 사실이 있습니다.
마태 복음 3장에 보면 예수님께서 세례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신 다음 하늘로부터 비둘기 같은 성령이 내려오면서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가 기뻐하는 자라"는 음성을 들으십니다.
그런데 마 4장에 보면 바로 이런 일이 있은 다음에 예수님께서 시험을 받으셨습니다.
여러분, 사탄은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라는 사실을 확증하게 될 때
이내 찾아와서 우리를 넘어뜨리려고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가 아니라고 하면서 다시금 세상의 자녀로 돌아가도록 유혹합니다.
사탄은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로서 은혜롭게 살아가려 하는 그 때 찾아와 넘어지게 만듭니다.
그렇습니다.
사탄은 우리의 심신이 약해질 때도 유혹하고 은혜가 충만하고 성령이 충만할 때도 흔듭니다.
약할 때나 강할 때나 은혜가 떨어질 때나 은혜가 넘칠 때나 전천후로 유혹한다는 것이지요.
자, 그렇다면 예수님께서 어떤 유혹을 받으셨습니까?
첫째로, 돌들에게 명령을 내려 떡덩이가 되게 하라는 유혹이었습니다.
먹고사는 문제를 하나님의 말씀보다 더 귀하게 여기는, 물욕 혹은 물질주의에 대한 유혹이지요.
팔레스타인 광야에는 빵조각처럼 생긴 석회석이 사방에 널려 있습니다.
40일 동안 금식하신 예수님께는 빵처럼 생긴 돌멩이를
떡으로 만들라는 유혹이 보통 큰 유혹이 아니었을 것입니다.
지금 극도의 시장기를 느끼고 계셨을 때 먹는 유혹보다 더 큰 유혹은 없었겠지요.
그리하여 사탄은 제일 먼저 돌이 변하여 떡이 되게 하는 기적을 보이라고 유혹합니다.
여러분, 사람의 욕구 중에 가장 큰 욕구가 먹는 것에 대한 욕구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먹을 것, 입을 것, 잠잘 것 등등의 물질적인 것 때문에 넘어질 수 있습니다.
이와 같은 물질적인 것 자체가 나쁜 것은 아닙니다.
문제는 세상의 물질이 하나님의 말씀이나 하나님 뜻에 순종하는 것보다 앞설 때 있습니다.
사탄은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서 하나님의 뜻에 먼저 순종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사는 것보다도 먹을 것, 입을 것, 잠자는 것,
이 세상의 물질적인 것에 더 많은 관심을 두도록 유도합니다.
우리가 하나님 우선주의로 살지 못하게, 이 세상의 물질주의(materialism)의 원칙을
우선하며 살도록 유혹한다는 것이지요.
많은 사람들은 먼저 내가 이 땅에서 물질적으로 번영할 때,
그런 후에 주님의 뜻을 받들고 순종하겠다는 생각을 품고 있습니다.
이것은 잘못입니다.
하나님의 뜻이 먼저가 되어야 합니다.
마 6: 33에서 주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우리가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그 나라의 의를 구하면 물질적인 것은 저절로 주어집니다.
돌이 변하여 떡이 되는 기적을 베풀라는 사탄의 유혹에 대해 예수님은 어떻게 대응하십니까?
예수님은 신 8: 3의 말씀을 그대로 인용하여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부터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고 응수하십니다.
옳습니다.
맑스-레닌주의 공산주의가 왜 망했습니까?
유물론, 사람이 빵의 문제만 해결되면 다 된다는 그릇된 생각 때문이 아닙니까?
빵의 문제 이전에 인간의 근원적인, 영적인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인간은 살 수 없습니다.
여러분, 영적인 것을 육적인 것보다 더 귀하게 여기십시오!
물질적인 욕심보다 하나님의 말씀을 더 귀하게 여기십시오!
그리할 때 여러분의 삶은 진실로 행복해질 수 있습니다.
둘째로, 사탄은 예수님을 지극히 높은 산꼭대기로 데려가서 온 천하
만국의 권세와 그 영광을 보여 주면서 "만일 네가 나에게 엎드려 경배하면
저 세상의 모든 권력과 영광을 너에게 주리라"고 유혹했습니다.
이 세상과 타협하여 권세와 영광을 누리라는 권력욕에 대한 유혹이지요.
하나님의 뜻보다는 명예와 지위에 더 탐닉하여 세상과 타협하라는 유혹입니다.
사탄은 하나님이 아니라 자기와 결탁하면 온 세상의 권력과 영광을 주겠다고 유혹합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사탄의 두 번째 유혹을 어떻게 물리치셨습니까?
첫 번째와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말씀으로 물리치셨는데 신 6: 13의 말씀을 인용하셨습니다.
"오직 주 너의 하나님께 경배하고 다만 그를 섬기라."
여러분, 하나님 이외의 세상의 그 어떤 보이는 것을 섬기는 것은 우상숭배입니다.
피조물인 우리가 창조주 하나님을 섬기지 않고
헛된 권력과 영광을 구하여 세상과 타협할 때 사탄의 시험에 넘어지게 됩니다.
오직 마음과 뜻과 정성을 다하여 주 하나님만 사랑하고 경배하십시오!
셋째로, 사탄은 예수님을 예루살렘 성전 꼭대기에 세우고
예수님으로 하여금 땅에 떨어지도록 유혹했습니다.
그렇게 할 때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기 때문에
천사들이 당신을 붙들어 발이 다치지 않도록 지켜준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인기와 허영심, 즉 이생의 자랑에 대한 유혹입니다.
성전꼭대기에서 쇼맨십을 하라는 것이지요.
사람의 눈과 귀나 적당히 즐겁게 해주는 만능 엔터테이너가 되라고 유혹하는 것입니다.
어떤 진리에 매달리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을 감각적으로
즐겁게 해주는 인기배우가 되라는 것이지요.
텔레비전에 나오는 인기 부흥강사들이 주의해야 할 점이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하나님의 진리의 말씀보다 사람들의 눈과 귀를 즐겁게 해주려는 감각주의에 빠져서 안 됩니다.
예수님은 얼마든지 성전 꼭대기에서 땅에 떨어져도 발이 다치지 않을 능력이 있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십자가의 고난과 수치를 통하여 하나님의 뜻을
실현하려 하셨지 기적적인 쇼맨십을 통해서 그렇게 하지 않으셨습니다.
자, 그렇다면 주님은 이 세 번째 유혹을 어떻게 물리치셨습니까?
첫 번째나 두 번째 유혹과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말씀으로 응수하셨습니다.
신 6: 16의 말씀을 인용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시험하지 말라."고 대응하셨습니다.
우리는 절대 주권을 가진 하나님을 하나님 그대로 인정해야지 시험해서 안 됩니다.
오늘날 많은 교인들이 마치 인기 탤런트나 코미디언 같이
잘 웃기고 잘 울리는 부흥사를 좋아합니다.
그리하여 눈과 귀를 즐겁게 하는 "예수 쇼"가 설교와 예배라는 이름으로 유행하는 것을 봅니다.
또한 너무나 많은 교회들이 그저 예수만 믿으면 세상의 온갖 물질적 축복과
성공과 건강이 저절로 찾아오는 것처럼 광고합니다.
그러나 잊지 마십시오.
하나님께서 주시는 은혜와 축복은 물질적인 것 그 이상의 영적인 축복입니다.
오늘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우리의 눈과 귀만
즐겁게 하는 감각적인 쇼로 격하시켜서 안 됩니다.
<무상을 넘어 영원을 향하여>
이제 결론을 맺겠습니다.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 쾌락이나 소유욕이나 명예욕은 영원하지 못합니다.
너무나 덧없습니다.
무상합니다.
육체의 쾌락은 그 쾌락의 순간이 지나가면 아무 것도 아닙니다.
어떤 물질을 소유하면 천년 만년 그것이 내 손아귀에 있지 않습니다.
하나의 물질을 소유하면 또 다른 소유욕이 생깁니다.
어떤 자리에 그토록 올라가고 싶어서 막상 그 자리에 올라가면 허전합니다.
별 것 아닙니다.
더 높은 자리에 올라가고 싶습니다.
육적이고 세상적인 욕심은 밑 빠진 독과 같아서 도무지 만족을 모릅니다.
그렇습니다.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은 우리를
잠시 기분 좋게 만들어주지만 영원한 것이 아닙니다.
아침에 있다가 금방 사라질 안개와 같이 허무한 것입니다.
우리는 영원토록 시들지 않고 사라지지 않을 것에 소망을 두어야 합니다.
사 40: 8은 말씀합니다.
"풀은 마르고 꽃은 시드나 우리 하나님의 말씀은 영영히 서리라 하라."
옳습니다.
우리의 진정한 행복은 영원토록 시들지 않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돌아가는데 있습니다.
예수님도 유혹을 받으셨으니 우리도 당연히 유혹을 받습니다.
육신의 정욕 안목의 정욕 이생의 자랑, 쾌락, 소유욕,
명예욕, 인기와 허영심 등이 사는 날까지 우리를 끝없이 유혹합니다.
여러분, 우리는 이 유혹을 어떻게 물리쳐야 합니까?
예수님은 하나님의 말씀과 기도로 사탄의 유혹을 물리쳤습니다.
오늘도 사탄은 우리의 심신이 지치고 은혜가 떨어지면 우리에게 시험을 주고 넘어지게 합니다.
또한 하나님의 자녀로서 신앙 생활 잘 해보려고 할 때 우리를 흔듭니다.
그러나 우리가 평소에 하나님의 말씀 위에 굳게 서서 기도에 힘쓸 때
하나님의 능력에 순종하는 생활을 할 수 있고 하나님과 동행할 수 있습니다.
시험을 이길 수 있습니다.
여러분 모두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서 기도하십시오.
또한 시험이 찾아올 때 하나님의 말씀과 기도로
물리칠 수 있게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기원합니다. 아멘.
(김흥규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