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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나음을 얻으니라 (행 5:1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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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나음을 얻으니라 (행 5:12~16)


지난 주간 북한이 발사한 미사일로 인해 온 세계가 발칵 뒤집혔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온 세계가 그렇게 난리를 떠는데도 한국만은 너무도 조용하다는 것입니다. 그만큼 믿음이 좋은 것인지 아니면 무감각해진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한국 사람들의 품성이 세상 그 어느 사람들과도 같지 않다는 것입니다.

어느 나라를 가보든지 여러 종교가 뒤섞여 있을 경우 그로 인해서 벌어지는 투쟁은 서로의 목숨을 해치는 일까지도 서슴지 않는 지경에 이르고 있습니다. 그런데 각양각색의 종교가 함께 지경을 넓히기 위해서 애쓰고 있음에도 서로 다투지 않고 평화롭게 지내는 곳은 어쩌면 한국뿐이지 싶습니다. 그만큼 우리가 평화를 사랑하는 백성이기 때문에 그럴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겉으로는 평화롭지만 그 속을 들여다보면 그렇지만도 않은 것 같아 안타깝습니다. 가진 자와 없는 자 간의 보이지 않는 대립, 보수와 진보를 내세우고 있지만 서로 다른 이념으로 인한 갈등들이 우리네 마음을 사로잡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교회 안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겉으로는 사랑을 말하고 있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과연 사랑을 말할 자격이나 있는가 싶을 정도로 서로의 마음의 상처들이 많이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너와 내가 서로 화합하고 한 마음으로 나아가고자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안에 있는 상처들은 쉽게 사라지지 않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한분 하나님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살아가는 우리들이기에 교회가 지녀야 할 모습은 당연히 같은 사랑으로 하나가 되는 것이어야 합니다. 오늘 우리는 이 하나 됨과 하나 됨을 통해서 교회 안에 나타나는 역사에 대해서 함께 살펴보고자 합니다.

먼저 생각할 것은 모두가 한 마음이 되어서 모이는 일에 힘써야 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부활 승천하시고 난 다음 전에는 보지도 듣지도 못했던 놀라운 일들이 예루살렘 교회에 연이어 나타납니다. 우선은 오순절날 예루살렘 교회에 나타난 성령 강림입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약속을 믿고 마가의 다락방에 모여 기도하던 성도들 가운데 놀랍게도 성령이 임했습니다. 성령이 그들 마음에 임하시고 나니 그들은 큰 은혜 가운데 담대히 말씀을 전하게 되었고 주님의 능력으로 날 때부터 한 번도 걸어본 적이 없었던 사람이 고침을 받아 걷고 뛰게 됨으로 온 예루살렘을 떠들썩하게 만들기도 했습니다. 그뿐 아니라 모여드는 사람들이 한 마음으로 예배하고 교제하며 사랑을 실천하는 모습이 그렇게도 아름다울 수가 없었습니다. 더욱 성령의 감동하심을 따라 가진 재산을 팔아 사도들 앞에 둠으로 해서 이것을 가져 가난한 사람들을 돕게 되니 주는 자나 받는 자가 다 기쁨으로 넘쳐났던 것입니다. 하지만 호사다마라고 그런 가운데 아나니아와 삽비라가 성령을 속이고 가진 재산을 팔아 일부를 숨기고 다 바치는 것처럼 하다가 그 자리에서 죽어나가는 일이 벌어졌습니다. 자칫하면 온 교회의 분위기가 가라앉게 될 형편입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그 이후 사도들의 손을 거쳐서 많은 표징과 놀라운 일이 백성 가운데서 일어났다는 것입니다.

어떻게 이 일이 가능할까요? 아나니아와 삽비라 부부가 죽고 난 다음 온 교회와 이 사건을 듣는 사람들은, 모두 크게 두려워하였다고 했습니다. 그렇다면 그들이 단지 두려워서 벌벌 떨고만 있었을까요? 아마도 그들은 성령의 감동하심에 어긋나지 않도록 기도와 더불어 말씀을 따라 믿음으로 순종하기를 힘썼을 것입니다. 따라서 온 교회가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은혜와 사랑으로 넘쳐나게 되니 사도들의 손을 통해 많은 표징과 놀라운 일이 백성들 가운데 일어나는 것은 오히려 당연한 일이었던 것입니다. 그 다음에 나오는 말씀이 바로 그것을 증명해 줍니다.
“그들은 모두 한 마음이 되어서, 솔로몬 행각에 모이곤 하였다.”

그렇습니다. 예루살렘 교회 성도들은 모두가 한 마음이 되어 함께 모였습니다. 모여서 그들이 무엇을 했을까요? 당연히 그들은 함께 기도하고 사랑의 교제를 나누며 복음을 전하기에 힘썼을 것입니다. 그곳에 많은 하나님의 표징과 놀라운 일들이 나타나는 것은 오히려 당연한 일이 아니겠습니까?

여기 한 마음이 되었다는 말씀을 우리는 기억해야 합니다. 우리도 살아가면서 겪어보지만 한 마음이 된다고 하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겉으로는 하나 된 것 같아도 속마음으로야 이런 저런 갈등과 아픔들이 있지를 않습니까? 함께 사는 부부 사이에도 생각이 다를 수 있는데 하물며 사는 방식이 다르고 형편이 서로 다른 사람들이 한 마음이 된다는 것이 어찌 쉬운 일이겠습니까? 더군다나 우리 모두는 다 사랑받고자 하는 마음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사랑에 대한 욕구가 사람들마다 다 다릅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은 작은 사랑에도 크게 감격하고 기뻐하는 반면 어떤 사람은 혼자 독점하다 시피하지 않으면 사랑을 받지도 못하는 것처럼 여기기도 합니다. 작은 관심에도 감격하는 사람이 있는 반면 오히려 관심을 부담스러워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또한 다른 사람과 비교해서 내가 더 큰 관심과 사랑의 대상이 되기를 원하는 마음도 있습니다. 그런데 모든 것이 내가 바라는 대로 되지는 않는다는데 문제가 있습니다. 내 딴에는 잘 한다고 한 것이 비난의 대상이 되기도 합니다. 잘 하려고 한 것이 오히려 결과가 반대로 나타나기도 합니다. 내 딴에는 좋은 마음으로 한 일이 상대방에게는 부담으로 남기도 합니다. 그럴 때 우리는 좌절하기 쉽습니다. 그리고 그러한 좌절은 또 다른 상처가 되어 쌓이게 됩니다. 그래서 한 마음이 되기가 힘이 드는 겁니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한 마음이 될 수가 없는 것일까요? 아니죠. 우리 안에 역사하시는 성령의 감동을 따르게 되면 그리고 작은 일까지도 기쁨으로 순종하며 함께 모이기를 힘쓰면 성령 안에서 우리는 하나가 될 수 있습니다. 성령 하나님이 우리로 하여금 하나 되게 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하나 되게 하시는 성령께서 놀라운 능력으로 역사하시니 또한 많은 표징과 놀라운 일이 일어나게 되더란 말입니다.

오늘 우리들에게 필요한 것이 바로 이것입니다. 우리 마음에 주시는 성령의 감동하심에 순종하십시오. 결코 마음을 완고하게 하지 않도록 하십시오.

히브리서 3장 15절에 “오늘 너희가 그의 음성을 듣거든, 반역하던 때와 같이 너희의 마음을 완고하게 하지 말아라”라고 주님은 말씀하시며 또한 히브리서 4장 2절을 통해서는 “그들이나 우리나 기쁜 소식을 들은 것은 마찬가지입니다. 그런데 들은 그 말씀이 그들에게는 아무런 유익이 되지 못하였습니다. 그들은 그 말씀을 듣고서도, 그것을 믿음과 결합시키지 않았기 때문입니다.”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어떤 말씀을 듣든지 믿음과 결합시켜야 합니다. 다시 말해서 말씀을 믿음으로 받아들여야 하는 것이요 믿음으로 순종하여야 합니다. 그럴 때 성령의 역사는 우리의 삶을 온전히 이끌어주심으로 말미암아 날마다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 안에서 허락하시는 바 모든 것을 후히 받아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왜 우리들에게 성령을 보내 주셨습니까? 왜 우리들에게 은사와 직분을 허락하셨습니까? 왜 우리들에게 건강을 주시고 물질을 주셨습니까? 마음껏 사용하고 활용하고 충성함으로 복된 자리로 나아가도록 하시기 위해서입니다. 따라서 우리에게 맡겨주신 은사와 직임을 따라 성령의 감동하시는 대로 믿음으로 마음과 뜻과 정성을 다하여 하나님을 섬기며 이웃을 섬기도록 하십시오. 주님 앞에 한 마음으로 모이기를 힘쓰십시오. 한 마음이 되기를 기도하십시오.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이 있거든 더욱 마음에 품어 주십시오. 저도 부족한 사람입니다. 이게 아니다 싶으실 때도 있을 줄 압니다. 하나님의 뜻을 바로 분별하고 하나님의 뜻을 따라 여러분들 앞에 말과 행실에 본이 되는 삶을 통해 하나님의 교회를 인도할 수 있기를 위해서 기도해 주십시오. 때로는 억울하게 책망을 듣는다 싶을 때도 있을 것입니다. 어떻게 저런 식으로 말하고 행동할 수 있는가 싶을 때도 있을 것입니다. 그럴 때 모세의 사환으로 충성하였던 여호수아를 기억하십시오. 오히려 그 손을 들어주었던 아론과 훌을 기억하십시오. 그러면 모든 복이 여러분들의 것으로 다가올 것입니다. 다른 사람들은 누구 하나, 감히 그들의 모임에 끼어들지 못하였지만 그러나 백성은 그들을 칭찬하였다고 했습니다. 한 마음이 되지 않고서는 믿음으로 하나가 되어 모이는 자리에 끼어들 수가 없습니다. 하지만 믿음으로 하나가 되어 모이게 될 때 백성들이 칭찬하였고 사도들을 통해 많은 표징과 놀라운 일이 일어났던 것처럼 우리 역시 한 마음이 되어 모이기를 힘쓰고 믿음으로 순종함으로 말미암아 종의 손을 통해 많은 표징들과 놀라운 일들이 나타나며 주위 사람들이 칭찬하는 교회와 성도들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다음으로는 믿는 사람들이 더욱 늘어나 큰 무리를 이루게 되었습니다.
성도들이 기쁨으로 순종하며 한 마음으로 모이고 사도들의 손을 통해 많은 표징과 놀라운 일들이 백성 가운데서 일어나니 믿는 사람들이 더욱 늘어나면서, 주님께로 나아오니, 남녀 신도들이 큰 무리를 이루게 되었습니다.
여기 믿는 사람들이 더욱 늘어나 주님께로 나아왔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그것이 그냥 된 것이 아닙니다. 자 보십시오.
먼저 믿는 사람들이 병든 사람들을 거리로 메고 나가서 침상이나 깔 자리에 눕혀 놓고 베드로가 지나갈 때에 그 그림자라도 그들 가운데 누구에게 덮이기를 바랐습니다. 왜 그렇게 했습니까? 베드로의 그림자만이라고 병든 자에게 덮이면 나음을 얻을 것으로 믿었기 때문입니다. 믿지 않고서야 어찌 사람들을 데리고 올 수 있었겠습니까? 저들에게는 믿음이 있었습니다. 베드로를 통해서 치료의 역사가 나타날 것으로 그들은 믿었습니다. 단지 마음으로만 믿은 것이 아니라 아픈 사람들을 데리고 모여들었습니다. 그리고 그 결과 그들이 데려온 사람들이 다 고침을 받았습니다. 그랬더니 이제는 예루살렘 근방의 여러 동네에 사는 많은 사람들이 병든 사람들과 악한 귀신에게 시달리는 사람들을 데리고 모여들었는데, 그들 역시 모두 고침을 받았습니다.

여기 어떤 병이라고는 말하지 않았습니다. 또한 어떤 모양으로 악한 귀신에게 시달리고 있는지도 말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그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단지 무슨 병이든, 사람들이 어떤 모습으로 악한 귀신에게 시달렸든지 간에 그들 모두가 고침을 받았습니다. 이것이 바로 믿음의 승리요 믿음으로 나아오는 자들에게 성령께서 역사하셔서 그들을 고쳐주었던 것입니다. 이미 예수님께서는 열두 제자를 부르셔서, 더러운 귀신을 제어하는 권능을 주시고, 그들이 더러운 귀신을 쫓아내고 온갖 질병과 온갖 허약함을 고치게 하셨다고 마태복음 10장 1절은 말씀합니다. 그런데 성령이 저들 가운데 임하시고 성령의 감동하심을 따라 믿음으로 병자들을 데리고 나아왔더니 귀신이 쫓겨나가고 병든 사람들이 다 고침을 받았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몸에 무슨 병이 있든지 마음에 무슨 상처가 있든지 혹은 어떤 일로 인해 마음이 괴롭고 시달리든지 믿음으로 주님 앞으로 나아오기 바랍니다. 무엇이 여러분을 힘들게 만들고 있습니까? 아니 우리들 가운데 누가 상처를 받고 고통스러워하고 있습니까? 주님 앞으로 함께 나아오십시오. 주님이 주의 종을 통해 온전히 치료하여 주실 것으로 믿고 나아오십시오. 그럴 때 여러분의 함께 하는 믿음이 놀라운 하나님의 역사를 가져와 우리의 문제가 무엇이든지 간에 우리를 혼란스럽게 만들고 힘들게 만드는 것이 무엇이든지 간에 다 해결 받게 만들어 주실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믿음으로 함께 나아오는 것입니다. 주님이 다 낳게 해 주실 것으로 믿고 나아오는 것입니다. 그것도 아픈 분들, 힘들어 하는 분들, 마음에 고통이 있는 분들과 함께 한 마음으로 모이는 것입니다.

히브리서 4장 7절로 8절은 “그런데 기쁜 소식을 먼저 들은 사람들이 순종하지 않았으므로, 들어갈 수 없었습니다. 그렇지만 하나님께서는 다시 '오늘'이라는 어떤 날을 정하시고, 이미 인용한 말씀대로, 오랜 뒤에 다윗을 통하여 ‘오늘 너희가 그의 음성을 듣거든 너희 마음을 완고하게 하지 말아라’ 하고 말씀하셨습니다.”라고 기록합니다. 계속해서 히브리서 4장 16은 “그러므로 우리는 담대하게 은혜의 보좌로 나아갑시다. 그리하여 우리가 자비를 받고 은혜를 입어서, 제때에 주시는 도움을 받도록 합시다.”라고 권면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에게 들려주시는 말씀대로 우리에게 주시는 말씀을 들을 때 마음을 완고하게 하지 말고 순종함으로 믿음으로 화합하여 담대히 은혜의 보좌로 나아가야 합니다. 그럴 때 우리는 자비를 받고 은혜를 입어서, 제때에 주시는 도움을 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무엇이 제때에 주시는 도움입니까? 아픈 사람이 고침을 받고 마음에 고통이 있는 사람이 위로를 받으며 낙심한 사람이 격려를 통해 새롭게 서게 되고 힘을 잃은 사람이 다시 새 힘을 얻어 힘 있게 서게 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사랑을 구하지만 사랑에 이르지 못하고 미움으로만 가득한 사람이 사랑을 주고받을 수 있게 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아무리 힘쓰고 애써도 여전히 목마르고 여전히 부족하고 무언가 답답해서 견딜 수 없는 사람이 모든 답답한 것이 다 사라지고 마음에 기쁨과 평화가 넘치게 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이제 우리 모두가 다 믿음으로 하나가 되어 모이기를 힘쓰고 한 마음으로 서로를 섬기며 함께 기도하고 성령의 감동하심을 따라 순종함으로 우리의 모든 아픈 것이 사라지고 이 모든 평안과 기쁨과 더불어서 사랑으로 충만하게 되며 주위 사람들은 우리 모두를 칭찬하게 될 뿐 아니라 그로 인해 믿는 무리들이 모여듦으로 우리 교회가 큰 무리를 이루게 되기를 축원합니다.

누가 자비를 받고 은혜를 입어서 제때에 주시는 도움을 받을 수가 있습니까? 바로 믿음으로 함께 하는 분입니다. 믿음은 함께 하는 것이요 믿음은 순종하는 것입니다. 믿음은 은혜의 보좌 앞으로 함께 나아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어떤 말씀을 듣든지 어떤 경우에 처하든지 결코 마음을 완고하게 하지 않도록 하십시오. 항상 주님을 향해서 마음을 여십시오. 주님은 한 번도 우리를 향해서 마음을 닫으신 적이 없습니다. 언제든지 마음을 열어놓고 기다리시는 분입니다. 아니 오히려 우리의 마음으로 찾아오시는 분입니다.

“보아라, 내가 문 밖에 서서, 문을 두드리고 있다.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나는 그에게로 들어가서 그와 함께 먹고, 그는 나와 함께 먹을 것이다.”라고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지금 내 마음이 닫혀져 있지는 않습니까? 지금 내 마음이 아픔으로 가득차 있지는 않습니까? 아니 내 삶이 닫혀져 있지는 않습니까? 주님을 향해 믿음으로 마음을 여십시오. 주님 앞으로 나아오십시오. 어떻게 주님 앞으로 나아올 수 있습니까? 주님은 나의 모든 아픔을 아시는 분이십니다. 나의 모든 형편을 아시는 분이십니다. 그분만이 나를 도울 수 있습니다. 아니 우리를 도울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주님 앞에 한 마음으로 함께 모이도록 하십시오. 주님의 도우심을 바라십시오. 우리 옆에 아파하는 사람이 있습니까? 함께 주님 앞으로 나아오십시오. 주님 앞에 그 모든 문제를 아뢰십시오. 주님이 다 해결해 주십니다.

“사람들을 데리고 모여들었는데, 그들은 모두 고침을 받았다.”고 했습니다. 이제 바로 우리가 고침을 받을 차례입니다. 바로 지금이 우리가 제때에 주시는 도움을 받을 차례입니다. 그러므로 성령의 감동하심을 따라 순종하며 믿음으로 화합함으로 오늘 이 시간 우리의 모든 문제가 해결되고 모든 고통으로부터 벗어나게 되는 귀한 역사가 있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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