받은 복과 누리는 복 (히 4:1∼11)
본문
“그러므로 우리는 두려워할지니 그의 안식에 들어갈 약속이 남아 있을지라도 너희 중에는 혹 이르지 못할 자가 있을까 함이라 그들과 같이 우리도 복음 전함을 받은 자이나 들은 바 그 말씀이 그들에게 유익하지 못한 것은 듣는 자가 믿음과 결부시키지 아니함이라 이미 믿는 우리들은 저 안식에 들어가는도다 그가 말씀하신 바와 같으니 내가 노하여 맹세한 바와 같이 그들이 내 안식에 들어오지 못하리라 하셨다 하였으나 세상을 창조할 때부터 그 일이 이루어졌느니라 제칠일에 관하여는 어딘가에 이렇게 일렀으되 하나님은 제칠일에 그의 모든 일을 쉬셨다 하였으며 또 다시 거기에 그들이 내 안식에 들어오지 못하리라 하였으니 그러면 거기에 들어갈 자들이 남아 있거니와 복음 전함을 먼저 받은 자들은 순종하지 아니함으로 말미암아 들어가지 못하였으므로 오랜 후에 다윗의 글에 다시 어느 날을 정하여 오늘이라고 미리 이같이 일렀으되 오늘 너희가 그의 음성을 듣거든 너희 마음을 완고하게 하지 말라 하였나니 만일 여호수아가 그들에게 안식을 주었더라면 그 후에 다른 날을 말씀하지 아니하셨으리라 그런즉 안식할 때가 하나님의 백성에게 남아 있도다 이미 그의 안식에 들어간 자는 하나님이 자기의 일을 쉬심과 같이 그도 자기의 일을 쉬느니라 그러므로 우리가 저 안식에 들어가기를 힘쓸지니 이는 누구든지 저 순종하지 아니하는 본에 빠지지 않게 하려 함이라” (히브리서 4장 1∼11절)
하나님이 주시는 복과 은혜
불신과 원망으로 누릴 수 없지만
믿고 순종할 때 받은 복 누려
시골에서 종종 듣는 말 중에 “그 사람 고생 고생하여 돈 좀 벌어 새집 짓고 살만하니 그만 죽었네, 헐복한 사람 같으니” 또는 “돈 버는 사람 따로 있고 쓰는 사람 따로 있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우리 신앙생활에도 받은 복과 누리는 복이 따로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복을 주실지라도 누리지 못하면 그 복은 우리에게 아무 소용이 없는 것입니다.
1. 애굽에서 나온 이스라엘 일세대
야곱이 애굽으로 내려갈 때는 집안 식구 70명을 거느리고 내려갔습니다. 그 당시에는 요셉이 애굽의 국무총리로 있었으므로 이스라엘 백성들은 고센 땅에 안주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에서 살아온 430년 동안 요셉을 모르는 왕이 일어나자 강성해지는 이스라엘을 압제하기 시작했습니다. 애굽 사람들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중한 역사와 고역으로 학대하였고 이스라엘에 자식이 태어나면 여아는 살리고 사내아이들은 전부 죽이라고 명하므로 이스라엘 민족의 씨를 말리려고 하였습니다. 이러한 고통과 괴로움에 처하자 이스라엘 백성들은 애굽 땅에서 살 수 없다는 것을 깨닫고 하나님께 부르짖었습니다. 출애굽기 2장 23절로 24절에 “여러 해 후에 애굽 왕은 죽었고 이스라엘 자손은 고된 노동으로 말미암아 탄식하며 부르짖으니 그 고된 노동으로 말미암아 부르짖는 소리가 하나님께 상달된지라 하나님이 그들의 고통 소리를 들으시고 하나님이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세운 그의 언약을 기억하사”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그들의 울부짖음을 들으시고 모세를 이스라엘 백성들의 목자로 세우심으로 이스라엘 백성을 이끌고 홍해를 건너 광야길로 인도하였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을 인도해낼 때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을 약속하셨습니다. 출애굽기 3장 8절에 “내가 내려가서 그들을 애굽인의 손에서 건져내고 그들을 그 땅에서 인도하여 아름답고 광대한 땅, 젖과 꿀이 흐르는 땅 곧 가나안 족속, 헷 족속, 아모리 족속, 브리스 족속, 히위 족속, 여부스 족속의 지방에 데려가려 하노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젖이 흐르고 꿀이 넘치는 가나안 땅으로 가기위해 지나게 된 광야길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극심한 고통을 안겨주었습니다. 광야생활의 여정 중에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을 믿지 않고 원망한 죄로 40년간 광야를 방황하게 되었습니다. 그 결과 하나님은 애굽에서 나온 일세대를 전부 광야에서 죽이시고 다음 세대가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으로 들어가게 하셨습니다. 신명기 8장 15절로 16절에 “너를 인도하여 그 광대하고 위험한 광야 곧 불뱀과 전갈이 있고 물이 없는 간조한 땅을 지나게 하셨으며 또 너를 위하여 단단한 반석에서 물을 내셨으며 네 조상들도 알지 못하던 만나를 광야에서 네게 먹이셨나니 이는 다 너를 낮추시며 너를 시험하사 마침내 네게 복을 주려 하심이었느니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처럼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을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으로 인도하여 복을 누리게 하시려고 광야를 통하여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고 온전히 하나님께 순종하는 삶을 사는지 시험해 보았던 것입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을 믿지 못하고 오히려 원망하였습니다. 그 결과 그들은 복과 은혜를 약속 받았으나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을 밟아 보지 못하고 광야에서 죽었던 것입니다. 민수기 14장 22절로 23절에 “내 영광과 애굽과 광야에서 행한 내 이적을 보고서도 이같이 열 번이나 나를 시험하고 내 목소리를 청종하지 아니한 그 사람들은 내가 그들의 조상들에게 맹세한 땅을 결단코 보지 못할 것이요 또 나를 멸시하는 사람은 한 사람도 그것을 보지 못하리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약속은 받았으나 누리지 못함으로 주시는 복과 은혜를 받지 못하는 것은 비극적인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약속을 받고 꿈과 희망에 차서 애굽 땅을 나왔으나 하나님을 바라보고 믿고 순종하지 않고 오히려 불신앙과 불순종으로 하나님의 은혜에 들어가지 못한 것입니다. 신명기 1장 39절에 “또 너희가 사로잡히리라 하던 너희의 아이들과 당시에 선악을 분별하지 못하던 너희의 자녀들도 그리로 들어갈 것이라 내가 그 땅을 그들에게 주어 산업이 되게 하리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항상 조심해야 될 것은 하나님으로부터 복은 받았으나 누리지 못하는 것은 불신앙과 불순종 때문임을 마음속에 깊이 새겨야 되는 것입니다.
2. 예수님의 십자가 대속의 복
이스라엘 백성에게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을 주겠다고 하신것처럼 오늘날 하나님은 우리에게도 예수님의 십자가를 통해서 우리의 죄를 다 청산하셔서 우리를 의롭게 하시고 또한 거룩함과 성령 충만함과 아브라함의 축복과 형통을 주시고 영생부활하여 천국을 값없이 주시겠다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갈라디아서 3장 14절에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아브라함의 복이 이방인에게 미치게 하고 또 우리로 하여금 믿음으로 말미암아 성령의 약속을 받게 하려 함이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처럼 이 모든 것들은 은혜의 선물로 주시는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의 행위와 의로움에서 난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값없이 부어주시는 은혜인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오직 믿음으로만 받으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에게 받을 자격이 없음에도 하나님께서 우리의 자격을 논하지 않으시고 선물로 주는 것이니 받으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에베소서 2장 8절에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또한 우리가 십자가로 인해서 하나님이 주시는 오중복음을 받으면 우리의 운명이 달라지는 것입니다. 영혼이 잘되고 범사에 잘되며 강건하고 생명을 얻되 풍성히 얻은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아담이 타락함으로 우리에게 온 것은 삼대재앙이었습니다. 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분리되므로 영원히 죽을 수 밖에 없게 된 인간의 생활은 가시와 엉겅퀴와 저주가 넘쳐나게 되었습니다. 또한 우리는 육체의 질병으로 죽음과 함께 영도 죽게 되었지만 이러한 삼대재앙에서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대속을 통하여 우리를 구원하시고 저주와 질병으로부터 우리를 해방시키심으로 영혼이 잘되게 하시고 범사가 형통케 하시고 강건하고 생명을 얻되 넘치게 얻게되는 놀라운 자화상을 갖게 하신 것입니다. 베드로전서 2장 9절에 “그러나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가 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 데서 불러 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이의 아름다운 덕을 선포하게 하려 하심이라”고 말씀하신 것처럼 하나님께서 우리를 택하신 족속과 왕과 제사장으로 만들어 주시고 또한 거룩한 나라와 그의 소유된 백성으로 삼아 주었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하나님 우리가 누구이기에 우리를 택하여 주셔서 마귀와 흑암의 세력을 지배하는 왕으로 삼으시고 하나님을 섬기는 제사장이 되고 하나님이 와서 다스리는 나라가 되고 하나님이 가슴에 품은 소유된 백성으로 만들어 주신다니 이 어찌된 일입니까?”라고 우리는 의아해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2000년 전에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공로로 하나님께서 이 은혜의 축복을 우리에게 허락해 주신 것입니다. 우리가 이 소식을 듣고 이것을 믿고 순종할 때에 기쁨으로 누릴 수 있게 되지만 많은 사람들이 믿지 않음으로 누리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은 이미 복을 받은 사람이지만 그 가운데에서도 그 복을 누리지 못하고 사는 사람이 많이 있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나올 때 젖과 꿀이 흐르는 땅으로 들어갈 것을 기대하고 나왔으나 300만명이나 되는 일세대들은 광야에서 살다가 전부 죽임을 당하게 된 것은 하나님을 믿지 못하므로 복 받는 약속은 받았으나 누리지 못한 결과인 것입니다. 오직 여호수아와 갈렙과 그 후손들만이 믿음과 순종을 통해서 하나님이 약속하신 복을 누렸던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우리도 믿음을 통해서 하나님이 주시는 이 엄청난 오중복음과 삼중축복과 사중지위를 받았으므로 누려야 되는 것입니다. 성경은 히브리서 4장 1절로 3절에 “그러므로 우리는 두려워할지니 그의 안식에 들어갈 약속이 남아 있을지라도 너희 중에는 혹 이르지 못할 자가 있을까 함이라 그들과 같이 우리도 복음 전함을 받은 자이나 들은 바 그 말씀이 그들에게 유익하지 못한 것은 듣는 자가 믿음과 결부시키지 아니함이라 이미 믿는 우리들은 저 안식에 들어가는도다 그가 말씀하신 바와 같으니 내가 노하여 맹세한 바와 같이 그들이 내 안식에 들어오지 못하리라 하셨다 하였으나 세상을 창조할 때부터 그 일이 이루어졌느니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3. 복을 누리기 위하여
우리에게 주신 복을 누리기 위해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의심없이 믿는 믿음입니다. 사람들은 환경과 감각을 의지하므로 믿지 못하지만 하나님이 예비하셔서 주시고자 하시는 복은 오직 믿음을 통해서 오는 것입니다. 하루는 예수님의 제자들이 배를 타고 밤바다를 지나가는데 파도가 치고 바람소리가 진동하고 물보라가 일어나 배가 흔들리므로 두려움에 처했습니다. 이때에 예수님이 물 위로 제자들에게 걸어오실 때에 베드로는 놀라 고함치는 제자들을 뒤로하고 물 위로 주님께 걸어가기를 원했습니다.
마태복음 14장 28절로 31절에 “베드로가 대답하여 이르되 주여 만일 주님이시거든 나를 명하사 물 위로 오라 하소서 하니 오라 하시니 베드로가 배에서 내려 물 위로 걸어서 예수께로 가되 바람을 보고 무서워 빠져 가는지라 소리 질러 이르되 주여 나를 구원하소서 하니 예수께서 즉시 손을 내밀어 그를 붙잡으시며 이르시되 믿음이 작은 자여 왜 의심하였느냐 하시고”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베드로는 예수님만을 바라보고 그 말씀을 믿었기 때문에 물 위를 걸어갈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베드로가 눈을 돌려 바람을 바라보고 파도를 바라 보았을 때 즉시 물에 빠져 버린 것입니다. 베드로가 물 위로 걸어간 것은 오로지 믿음 하나 때문에 일어난 기적이었습니다. 그리고 이 믿음의 눈이 세상을 바라보는 눈으로 돌려졌을 때 물에 빠져 들어갔던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이 세상에서 복을 받는 길은 오로지 믿음의 눈으로 바라볼 때 이루어집니다. 믿음이란 환경과 우리의 감각이 아니라 말씀위에 서는 것입니다. 눈에는 아무 증거 안보이고 귀에는 아무 소리 안들리고 손에는 잡히는 것이 없어도 말씀 위에 서서 믿음으로 주님을 바라보고 나가는 것이 믿음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만을 믿고 따라갔으면 가나안 땅에 들어갔을 것이지만 광야를 지나면서 늘 원망과 불평을 하고 하나님께 순종하지 않으므로 젖과 꿀이 흐르는 땅으로 들어가지 못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광야와 같은 인생을 살면서 젖과 꿀이 흐르는 하나님의 은총을 누리기 위해서는 하나님을 거역했던 세상의 죄를 회개하고 버려야 합니다. 죄는 하나님과 원수가 되므로 이 세상과 죄를 가지고 하나님을 믿을 수 없습니다. 세상과 죄를 짊어지고 하나님을 섬길 수 없는 것입니다. 이러한 세상과 죄악속에는 우상숭배가 가득 들어차 있고 또한 이 우상이 세상을 지배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탄이 사람들의 마음을 미혹케 하여 하나님 대신에 돈과 권력과 쾌락을 추구하고 혹은 나무나 돌로 빚은 우상을 믿고 살도록 유혹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호수아 24장 14절에 “그러므로 이제는 야훼를 경외하며 온전함과 진실함으로 그를 섬기라 너희의 조상들이 강 저쪽과 애굽에서 섬기던 신들을 치워 버리고 야훼만 섬기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과만 동행해야지 하나님과 함께 세상과 죄도 더불어서 살겠다는 것은 어리석은 일입니다.
또한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를 누리기 위해서는 철저히 하나님을 섬기는 삶을 살아야 되는 것입니다. 인간은 원래 하나님을 섬기고 살도록 창조되었습니다. 하나님이 에덴 동산과 세계를 지으시고 아담과 하와가 지으신 세계를 다스리게 하심으로 하나님을 섬기고 살도록 만들어 놓은 것입니다. 그들이 하나님을 섬길 때 에덴 동산도 하나님이 지으신 세계도 다스리며 누렸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거역하고 세상으로 나아갔을 때는 마귀를 섬기게 되었던 것입니다. 성경에는 사람을 그릇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릇이 무엇을 담아놓기 위한 용도로 쓰이는 것처럼 사람은 마음속에 하나님을 담아 놓든지 마귀를 담아 놓든지를 선택해야 하는 것입니다. 성전에 와서는 하나님을 섬기고 돌아가서는 우상을 섬기는 것은 온전히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 아닙니다.
마태복음 6장 31절로 33절에 “그러므로 염려하여 이르기를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지 말라 이는 다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시느니라 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믿고 그 말씀을 따라 살도록 부르심을 받은 사람들 입니다. 그러므로 세상적으로 사는 방식과 다른 방식으로 살아야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도 믿고 세상의 수단과 방법으로 죄와 더불어 살아도 된다고 생각하지만 성경은 나의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산다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히브리서 10장 38절에 “나의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또한 뒤로 물러가면 내 마음이 그를 기뻐하지 아니하리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또한 하나님과 더불어 살고 하나님의 예비한 축복을 받고 살기 위해서는 우리가 어떤 사람인지 알아야 합니다. 우리 예수믿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정체성이 확립되어야 합니다. 예수믿는 사람은 십자가를 통하여 옛사람은 다 지나가고 새사람이 되었습니다. 새사람이란 용서받은 의인을 말합니다. 또한 거룩하고 성령 충만한 사람과 아브라함의 복과 범사에 형통한 복을 받은 사람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새사람은 택한 족속이요, 왕같은 제사장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된 백성이 되었다는 것으로 이는 우리의 새로운 신분과 우리의 변화된 자화상과 지위를 분명히 밝히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어느곳에 가나 우리는 항상 “나는 용서받은 의인이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영광에 참여하는 사람이다”라고 말해야 되고 성령이 거하는 거룩한 성전임을 믿음으로 선포해야 하는 것입니다. 또한 예수께서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고 건강한 사람이 되었으므로 가시와 엉겅퀴에서 벗어나 아브라함의 복을 받은 사람임을 항상 시인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러므로 우리는 고린도후서 5장 17절에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처럼 옛 사람이 아닌 새피조물이 된 것을 알고 받은 복을 누리며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1912년 보스턴의 한 가난한 집에서 태어난 소년이 있었습니다. 그는 어려운 집안 형편 때문에 교육도 제대로 받을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소년은 ‘비록 내가 가난하고 공부도 못했지만 하나님을 먼저 섬기며 살겠다’며 철저히 주님 중심의 삶을 살았습니다. 적은 돈이었지만 벌어서 꼬박꼬박 십일조를 드리고 철저히 주일성수를 하였습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 그에게 사업가의 재능을 부어 주셔서 10대에 이미 사업가로서의 자질을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여름에는 얼음을 팔아서 돈을 벌고 공장이나 건설 노동자에게 커피와 샌드위치를 팔아서 제법 돈을 모은 후 30세에는 점심을 배달해 주는 ‘모빌 런치 서비스’라는 회사를 세워서 성공했습니다. 후에는 잘 알려져 있는 ‘던킨 도너츠’라는 세계적인 회사를 설립했습니다. 바로 이 소년이 던킨 도너츠의 창업주인 로젠버그입니다. 현재 로젠버그는 던킨 도너츠를 세워서 미국에만 1700개의 지점이 있고 세계의 100개 나라에 지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는 72세를 맞이하는 생일 축하자리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저는 가난하고 못 배웠습니다. 초등학교도 못 나온데다가 그리 좋지 않은 환경에서 자랐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늘 제 짐을 맡아 주셨습니다. 제가 성공한 것은 제가 잘나서 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나와 같이 계셔서 은혜를 주셨기 때문에 하나님의 은혜로써 성공을 했습니다. 나의 삶의 목표는 하나님 섬기는 것이고 하나님을 믿는 것이었는데 하나님은 내게 이런 복을 주셨습니다” 그리고 그는 계속해서 말하기를 “지식이 성공을 부르는 것이 아니라 삶의 태도가 우리를 성공 시킨다”라고 말했던 것입니다. 그는 지식이 없었습니다. 초등학교도 못나왔습니다. 좋은 가정형편에서 자라지 못했고 부모의 유산도 물려받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는 하나님을 믿는 신앙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믿고 순종하는 삶을 살았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모든 사람을 위해서 십자가를 통하여 선물을 예비해 놓으시고 은혜를 부어 주시는데 로젠버그는 이러한 하나님께 믿음과 순종으로 나아가므로 비록 교육을 받지 못하고 유산을 받지 못하고 가정형편이 좋지 못해도 하나님은 세계적인 기업가로 만들어 주셨던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이 된 것을 깨닫고 그것을 믿고 순종하면 하나님께서 예비한 복을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 모든 사람에게 하나님은 십자가를 통해서 오중복음과 삼중축복과 사중지위를 값없이 선물로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와같은 하나님이 주시는 복을 누려야만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복을 누리기 위해서는 새 말, 새 노래를 통해서 받은 복을 시인하고 감사해야 합니다. 우리가 흑암의 권세에서 건짐받아 그 아들의 나라로 옮겨졌으니 이제는 하나님의 자녀로서 천국의 말을 사용해야 되는 것입니다. 이처럼 우리가 흑암의 권세가 지배하는 세상에 살다가 하늘나라에 들어왔으므로 하늘나라에 속한 말을 해야 하는데 성경이 바로 하늘나라 지식을 주고 하늘나라 말을 가르켜 주는 것입니다. 부정적이고 파괴적인 말을 하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 “할 수 있다, 하면된다, 해보자”라는 긍정적인 말과 함께 약속의 말씀에 따라 믿음의 말을 사용할 수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잠언 18장 21절에 “죽고 사는 것이 혀의 힘에 달렸나니 혀를 쓰기 좋아하는 자는 혀의 열매를 먹으리라”고 말씀하고 있고 로마서 10장 10절에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이고,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는 놀라운 말의 능력을 주셨습니다. “할 수 있다, 하면된다, 해보자” 이말은 우리에게 위대한 능력을 심어주는 말입니다. 마가복음 9장 23절에 “예수께서 이르시되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히 하지 못할 일이 없느니라 하시니”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 중에서도 일생을 광야에서 살다 죽은 자들이 있고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 산 사람들도 있습니다. 다같은 그리스도인들이라도 그리스도의 십자가 대속의 은혜를 풍성히 누리는 삶을 사는 사람들도 있고 반대로, 믿고 구원은 받았어도 일평생 광야생활을 하다가 힘겹게 천당에 올라가는 사람도 있습니다. 이런 결과에 대한 책임은 하나님께 있는 것이 아니라 성도 개개인에게 있는 것입니다. 복은 이미 하나님이 주셨으므로 누리는 책임은 우리에게 있는 것입니다. 주신 복을 믿음으로 누려야 되는 것은 우리 각자의 책임입니다. 그러므로 죄를 회개하고 믿음을 통해서 하나님을 섬기고 주안에서 강하고 담대한 자기의 정체성을 깨닫고 시인하는 삶이 오늘날의 젖과 꿀이 흐르는 땅에 들어가서 살 수 있게 하는 것입니다.
-기도-
하나님 우리 아버지!
주님께서 우리에게 넘치는 오중복음, 삼중축복, 사중지위를 주신 것을 감사합니다. 하나님의 자녀로서 이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을 보고도 들어가지 못하는 어리석은 삶을 살지 않도록 도와주시옵소서. 하나님이 예비하신 복을 믿음으로 누리는 우리들이 되게 도와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조용기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