健康하고 均衡잡힌 敎會를 위해서
본문
恩賜中心的 使役
말씀: 베드로전서 4:10, 11
"각각 은사를 받은 대로 하나님의 각양 은혜를 맡은 선한 청지기같이 서로 봉사하라. 만일 누가 말하려면 하나님의 말씀을 하는 것같이 하고 누가 봉사하려면 하나님의 공급하시는 힘으로 하는 것같이 하라 이는 범사에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영광을 받으시게 하려 함이니 그에게 영광과 권능이 세세에 무궁토록 있느니라 아멘."
오늘 말씀의 제목은 은사 중심으로 사역하는 것입니다. 은사에 따라 사역하라, 하나님께서 주신 은사,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은사를 기억하고, 은사를 발견하고, 은사를 사용해서, 그 은사에 따라 일하라는 말씀입니다. 이는 교회, 가정, 직장에 다 적용되는 말씀입니다. 가정에서도 은사에 따라 일하며, 교회에서도 은사에 따라 사역하며, 직장에서도 은사에 따라 일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가정, 교회, 직장이 건강할 때 건강한 그리스도인, 건강한 교회, 건강한 사회가 됩니다.
평생 싫증나지 않는 일을 한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일하면서 기쁨이 있고, 일하면서 보람과 의미가 커진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모든 일은 그래야 됩니다. 일 자체가 기뻐야 됩니다. 일 자체는 신성하고 거룩한 것입니다. 가정, 교회, 직장에서 하는 모든 일이 거룩합니다.
우리는 일하는 사람들을 무시하는 문화 속에 살고 있습니다. 일하며 사는 사람을 아랫사람, 평민으로 여깁니다. 그래서 양반 대감들은 땀흘려 일하는 것을 수치스럽게 여깁니다. 그러나 성경적인 모든 노동은 신성하고 거룩합니다. 우리는 낙원에서도 일할 것이며, 천국에서도 일할 것입니다. 다만 괴로운 일은 저주이고, 휴식 없는 일도 저주입니다. 무슨 일을 하든 그 일 속에서 하나님의 임재를 느끼고, 사랑과 희망과 신뢰를 느낀다면, 그 일은 거룩한 것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일을 거룩하게 여길 수 있습니까? 하나님께서 주신 은사를 따라 일할 때입니다. 하나님은 모든 사람에게 은사를 주셨습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주신 은사를 사용해서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은사를 따라 일해야 한다."라고 할 때, 정리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은사와 달란트를 구별해야 합니다.
많은 사람들은 "은사를 따라 일하자."라고 할 때, "달란트를 따라 일하자."로 받아들입니다. 그런데 은사와 달란트는 다릅니다. 달란트는 능력, 기술, 지식, 자격, 훈련에 의해 습득된 기술을 말합니다. 은사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것입니다. 은사는 태어날 때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것이 있고, 우리가 예수님을 주로 영접할 때, 거듭날 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것이 있습니다. 달란트는 행위, 기술, 훈련의 결과로 주어진 것이라면, 은사는 영적 성품, 존재 자체에서 오는 품성, 우리가 어떤 훈련을 받을 때 훈련받을 수 있는 기초를 말합니다. 달란트를 지식으로 표현한다면, 은사는 지혜로 표현할 수 있습니다.
로마서 12:6-8 말씀을 보겠습니다. "우리에게 주신 은혜대로 받은 은사가 각각 다르니 혹 예언이면 믿음의 분수대로, 혹 섬기는 일이면 섬기는 일로, 혹 가르치는 자면 가르치는 일로, 혹 권위하는 자면 권위하는 일로, 구제하는 자는 성실함으로, 다스리는 자는 부지런함으로, 긍휼을 베푸는 자는 즐거움으로 할 것이니라."
6절을 보십시오. "우리에게 주신 은혜대로 받은 은사가 각각 다르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은사는 각각 다릅니다. 그러나 여기서는 모든 사람에게 은사가 주어졌음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예언이면 믿음의 분수대로", 예언의 능력, 예언의 역할, 예언의 직분을 섬기는 사람은 분수에 맞게 하라는 것입니다. 예언하면서 다른 사람 무시하면서, 자기의 능력을 과신하면서 하지 말고, 믿음의 분수대로 은사대로 예언하라는 것입니다. 점쟁이가 예언하듯하는 것이 아닙니다. 다른 사람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대신 전하는 것을 다 포함하고 있습니다.
7절을 보십시오. "섬기는 일이면 섬기는 일로", 섬기는 일은 직분입니다. 섬기는 역할, 섬기는 일을 하는 사람은 봉사자입니다. 서비스업, 다른 사람을 돕는 사람입니다. 이런 사람은 섬기는 일을 할 때 섬기는 마음으로 하라는 것입니다. 불평과 원망하는 마음으로 하거나, 열등의식을 갖고, 자기를 비하하는 마음으로 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섬기는 마음으로, 섬김의 은사로 하라는 것입니다. "가르치는 자면 가르치는 일로", 가르치는 능력, 자격, 직업 가진 사람은 가르침의 은사로 가르치라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을 무시하거나 교만하거나 자기 지식을 자랑하면서 가르치지 말라는 것입니다.
8절, "권위하는 자면 권위하는 일로", 다른 사람을 위로하거나 상담하거나 격려하는 사람은 자기를 자랑하거나 교만한 마음으로 위로하지 말고 정말 위로하는 마음으로 하라는 것입니다. "구제하는 자는 성실함으로", 구제하는 사람은 적선하는 마음으로 하지 말고, 교만한 마음으로 하지 말고, 상처 주는 마음으로 하지 말고, 오직 성실한 마음으로 하라는 것입니다. "다스리는 자는 부지런함으로", 다스리는 사람은 다른 사람을 무시하거나 교만한 마음으로 하지 말고 오직 부지런함으로 하라는 것입니다. "긍휼을 베푸는 자는 즐거움으로 할 것이니라." 다른 사람에게 베풀 수 있는 것은 특권입니다. 그러나 베푸되 무시하는 마음으로 하거나, 교만한 마음으로 하지 말고 즐거운 마음으로 하라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달란트가 많습니다. 그런데 사람마다 달란트가 다 다릅니다. 어떤 사람은 다섯 달란트, 어떤 사람은 두 달란트, 어떤 사람은 한 달란트... 어떤 사람은 기술, 능력, 자격증이 많고, 학력이 높습니다. 어떤 사람은 기술, 능력, 자격증이 별로 없고, 학력도 낮습니다. 이와 같이 달란트가 많은 사람이 있는 반면에 그렇지 못한 사람도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달란트만으로 살아간다면, 우리의 삶은 세상적이고 세속적일 수밖에 없습니다. 이는 세상 사람들이 다 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람이 달란트만 갖고 일하고 추구한다면, 세상에서 경쟁과 싸움 속에서 살게 되고, 약육강식(弱肉强食)과 적자생존(適者生存)에 빠지게 됩니다. 가진 자는 없는 자를 무시하고, 있는 자는 없는 자를 무시하고, 없는 자는 있는 자에 대해 열등감 느끼며 살아갈 수밖에 없습니다. 모든 지식, 기술, 능력, 소유에 대해서도, 달란트로 일하며 다른 사람에 대해 교만하거나 무시 속에서 살게 됩니다. 정글 속에서 사는 것과 다를 바 없습니다. 우리가 일할 때 달란트로 일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그러나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하나님께서 주신 은사로 일하는 것입니다. 사랑, 희락, 믿음, 기쁨, 섬김, 위로의 은사로 사역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가정, 교회, 직장 모든 영역에서 은사로 일하고 사역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은사와 달란트 구분하기 위해서 두가지 사례를 말씀 드리고자 합니다.
헨리 나우웬이 1987년 2월 10일, 하버드 대 채플시간에 강의한 내용입니다.
'아담'이라는 중증장애인의 이야기입니다. 아담은 말을 못하고, 혼자 입지도 못하고 밥 먹지도 못하고 마음대로 울지도 웃지도 못하였습니다. 아담이 할 수 있는 것은 다른 사람과 가끔 눈만 마주치는 것입니다. 아담의 등과 팔, 다리는 다 휘어져 있고, 뒤틀려 있었습니다. 며칠에 한번씩 심하게 발작하고 경련을 일으켰습니다.
우리는 이 세상에서 사회생활 할 수 있는 몇 가지의 기술, 지식, 능력 등의 달란트라도 있습니다. 그러나 아담에게는 달란트가 거의 없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헨리 나우웬은 아담에게 은사가 많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그 은사는 하나님께서 그에게 주신 은사였습니다. 아담은 다른 사람의 도움을 기쁘게 받아들이는 은사가 있었습니다. 다른 사람의 사랑을 거절하지 않고 기쁘게 받아들이는 은사가 있었습니다. 다른 사람을 즐겁게 해주는 은사, 행복하게 해주는 은사, 하나님을 천진난만하게 믿는 은사가 있었습니다.
또 다른 사람을 믿는 은사가 있었습니다. 사실 아담은 다른 사람을 믿을 수밖에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그와 같은 상황 속에서 다른 사람을 못 믿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나 아담은 다른 사람을 즐거이 받아들이는 은사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아담 존재 자체가 하나님의 사랑을 이야기하고 있었습니다. 많은 사람이 아담의 존재를 보고 하나님을 신뢰하였습니다. 아담은 보통 사람이 갖고 있는 달란트가 거의 없었지만, 하나님께서 아담에게 주신 은사가 참으로 많았습니다. 그것이 아담이 존재하는 이유였습니다. 아담은 일찍 세상을 떠났지만, 많은 사람들에게 평화와 기쁨, 하나님의 사랑을 가르쳐 주었습니다.
우리 각자에게 있는 달란트는 다 다릅니다. 사람마다 가진 능력과 기술은 차이가 있습니다. 그런데 사람이 달란트만 추구하고, 그것을 따라 일한다면 우리는 경쟁의 희생자가 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우리가 일해야 할 힘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은사입니다. 우리가 은사 따라 살아갈 때 우리는 건강한 그리스도인, 건강한 가정, 건강한 교회, 건강한 사회를 만들 수 있습니다.
책을 한권 소개하고자 합니다. '연탄길'(이철환 작가)이라는 책입니다. 이 책은 가슴 찡한 우리 이웃들의 이야기를 모은 자료를 바탕으로 4년여 동안 씌어진 것입니다. 그 중 한 소년소녀 가장의 이야기를 하고자 합니다.
주인공은 조그만 음식집하는 아줌마입니다. 어느 날 한 여자아이가 동생들을 데리고 음식 집으로 들어왔습니다. 큰아이가 동생들에게 물었습니다. "뭘 시킬까?" "자장면." "나두…." "아저씨, 자장면 두 개 주세요." 그러자 여동생이 말했습니다. "근데 언니는 왜 안 먹어?" "응, 점심 먹은 게 체했나 봐. 아무 것도 못 먹겠어." 그러자 남동생이 말했습니다. "누나, 그래도 먹어. 얼마나 맛있는데." "누나는 지금 배 아파서 못 먹어. 오늘은 네 생일이니까 맛있게 먹어." 큰 아이는 그렇게 말하며 동생의 손을 꼭 잡아주었습니다. "언니… 우리도 엄마 아빠가 있었으면 얼마나 좋을까. 저렇게 같이 저녁도 먹구." 여동생은 건너편 테이블에서 엄마 아빠랑 저녁을 먹고 있는 제 또래의 아이들을 부러운 눈으로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 (중략) …
잠시 뒤 식당 아줌마가 나오더니 말했습니다. "너 혹시 인혜 아니니? 인혜 맞지?" "네, 맞는데요. 누구세요?" 큰 아이는 갑작스런 물음에 어리둥절해했습니다. "나는 엄마 친구야, 나 모르겠니? 영선이 아줌마 …." "……." 아이들은 서로 쳐다볼 뿐 말이 없었습니다. 아줌마는 말했습니다. "한 동네에 살았었는데, 네가 어릴 때라서 기억이 잘 안 나는 모양이구나. 그나저나 엄마 아빠 없이 어떻게들 사니?" 그녀는 너무 반가운 나머지 아이들의 얼굴을 하나하나 어루만지고 있었습니다. "조금만 기다리고 있어. 아줌마가 맛있는 거 해다 줄게."
잠시 후 자장면 세그릇과 탕수육 한 접시를 내왔습니다. 아이들이 음식을 먹는 동안 그녀는 내내 흐뭇한 얼굴로 아이들을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안녕히 계세요.""그래, 잘 가라. 차 조심하구…. 자장면 먹고 싶으면 언제든지 와, 알았지?" "네…." 영선은 문 앞에 서서 아이들이 저만큼 걸어갈 때까지 손을 흔들어주었습니다.
아이들이 가고 난 뒤 남편은 물었습니다. "누구네 집 애들이지? 나는 아무리 생각해도 기억이 안 나는데…." "사실은, 나도 모르는 애들이에요. 엄마 아빠가 없는 아이들이라고 해서 무턱대고 음식을 그냥 주면 아이들이 상처받을지도 모르잖아요. 그래서 엄마 친구라고 하면 아이들이 또 올 수도 있고 해서…""그랬군, 그런데 아이들 이름은 어떻게 알았어?" "아이들이 말하는 걸 들었어요. 주방 바로 앞이라 안에까지 다 들리던데요? 오늘이 남동생 생일이었나 봐요. 자기는 먹고 싶어도 참으면서 동생들만 시켜주는 모습이 어찌나 안돼 보이던지 …." 영선의 눈에 맺혀 있는 눈물은 금방이라도 흘러내릴 것만 같았습니다. 남편은 가난으로 주눅든 아이들에게 상처를 주지 않으려고 했던 아내를 보며 많은 생각을 했습니다. 『상처를 주지 않고 사랑하기란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소리 없이 아픔을 감싸준다는 것은 얼마나 아름다운 일인가.』
여기서 영선 아줌마의 달란트는 음식 만드는 기술입니다. 아줌마의 은사는 무엇일까요? 소년소녀 가장을 배려하는 마음입니다. 사랑입니다. 상처 주고 싶지 않은 마음, 소리 없이 감싸주는 마음, 내가 가진 것을 조금이라도 나눠주는 마음, 아이들이 꿋꿋이 살 수 있도록 뒤에서 도와주고자 하는 마음, 상처주지 않고 도와주는 마음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달란트 따라 일하기보다, 은사를 따라 일할 때 희망과 사랑과 신뢰를 심을 수 있습니다. 가정과 교회와 직장과 사회에 희망과 사랑과 신뢰를 심을 수 있습니다.
세상이 악하다는 것은 우리 모두가 기술, 능력만을 추구했기 때문입니다. 달란트만을 추구하며 살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세상이 아무리 악해도 하나님 주신 은사를 따라 일하면, 이 세상에 따뜻하고 훈훈한 사랑을 심을 수 있습니다.
노래 잘한다고 해서 다 성가대 하는 것이 아닙니다. 아무리 노래 잘해도 성가대 하는 것을 싫어하고, 노래방만 열심히 다닐 수 있습니다. 노래는 기술입니다. 그러나 찬양은 기술만으로 되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찬양하고 싶은 마음, 하나님을 경배하고 싶은 마음을 가져야 진정한 찬양을 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어떤 기술을 가질 때 그 기술로 교회에서 일할 수 있습니다. 그 기술이 없는 것보다는 낫습니다. 그러나 기술로만 교회에서 봉사할 수 없습니다. 은사가 있어야 합니다. 은사가 있어야 교회 사역을 할 수 있습니다. 그리할 때 다른 사람에게 사랑과 희망을 심을 수 있습니다.
우리가 자녀를 키울 때, 기술, 능력, 달란트만 중시여기고 키운다면, 달란트를 통해 사회에서 성공적인 삶을 살게 할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자녀를 행복하게 하지는 못합니다. 자녀의 삶을 윤택하게 하지는 못합니다. 보다 따뜻한 마음을 갖고 살게 하지는 못합니다. 물론 우리가 최선을 다해서 달란트를 많이 개발하고 달란트를 많이 갖도록 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자녀들의 은사를 발견하도록 도와주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을 돕고자 하는 마음, 사랑하는 마음을 갖게 하는 것입니다. 희락, 기쁨, 만족, 즐거움, 봉사하는 마음, 사랑하는 마음... 이 은사를 따라 일할 때 가정과 교회와 직장과 사회에 진정한 봉사자가 될 수 있습니다.
우리는 각기 다른 능력, 기술을 갖고 있습니다. 무슨 일이든 간에, 모든 일은 하나님이 우리 각자에게 주신 일입니다. 따라서 그 모든 일이 거룩합니다. 그렇다고 무조건 다 거룩해지는 것은 아닙니다. 무슨 직업, 어떤 방법으로 돈벌든지 간에 열심히 벌어야 합니다. 그러나 거룩해지기 위해서는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은사가 무엇인가를 찾아서, 그 은사를 따라 일하는 것입니다. 그리할 때 내가 하는 일이 거룩해집니다.
우리에게 있는 은사를 발견하기 위해서는 다음 네 가지를 자신에게 계속 질문해야 합니다.
첫째는 기쁨입니다.
"어떤 일이 나에게 기쁨과 만족과 성취감을 주는가"를 질문하십시오. 어떤 사람은 한사람의 영혼을 진리의 말씀으로 가르치고 섬기면서 기뻐하고, 어떤 사람은 청소하면서 기뻐하고, 찬양하면서 기뻐하고, 긍휼을 베풀면서 기뻐하고, ... 여러 가지 다른 사역을 하면서 기뻐합니다. 이와 같이 "내가 무슨 일을 할 때 기뻐하는가, 내가 무슨 일을 할 때 만족스러워하고 성취감을 누리는가?"를 자신에게 질문을 던져보십시오. 기쁨을 주는 그 일을 찾으라는 것입니다.
대학을 졸업하고 직장을 구하고자 하는 청년들에게 중요한 것이 무엇일까요? 자격증, 출신학교, 전공일 것입니다. 그러나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청년의 마음'입니다. 자신이 헌신하고 싶은 그 일, 밤을 새워도 즐겁고 성취감이 있는 그 일을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내가 어떤 기술을 갖고 있다고 해도 그것이 은사가 뒷받침 될 때 그 기술이 거룩한 것이 됩니다. 그런데 내가 하고 싶지 않은데 그 기술이 있다고 그것만 강요되면, 그 청년은 죽어 가는 것입니다. 그 사람의 은사가 불일듯하게 사용되어야 합니다.
우리가 전통에 매여서 자신이 기뻐하는 일, 만족스러워하고 성취감을 가져다주는 일을 하지 못한다면, 그것은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은사를 억압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의 각 지체에게 주신 은사를 억압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교회에서도, 가정에서도, 직장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기쁨을 추구하는 것이어야 합니다.
둘째는 통찰력(洞察力)입니다.
"무슨 일을 할 때 다른 사람이 보지 못하는 것을 보느냐, 다른 사람이 깨닫지 못하는 것을 깨닫느냐"하는 통찰력이 중요합니다. 어떤 사람은 훈련받아도 어떤 상황 속에서 어떤 문제를 잘 발견하지 못합니다. 그러나 어떤 사람은 훈련받지 않았는데 어떤 상황 속에서 어떤 문제를 잘 발견합니다. "통찰력이 있는가" 이것이 우리에게 주어진 은사를 발견하는 질문입니다.
셋째는 열매입니다.
이는 결과입니다. "내가 어떤 일을 할 때 효과적인가", "어떤 일을 할 때 열매가 좋은가", "어떤 일을 할 때 쉽게 느껴지는가", "어떤 일을 할 때 반복해서 또 하고 싶은가"
넷째, 확증(確證)입니다.
"주위 사람이 나의 사역과 일을 보고 만족하고 격려하는가" 입니다. "다른 사람이 나의 사역과 일을 보고 비난하는 판단 말고, 격려해주는 판단을 하는가"입니다. 당신 옆에서 "맞아. 당신 그 일 하니까 참 좋아. 정말 그 일 잘 택했네."라고 격려하는 가입니다.
"기쁨, 통찰력, 열매, 확증", 이 네 가지 질문을 자신에게 자꾸 해서 자신의 은사를 발견해서, 그 은사를 따라서 일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리할 때 마음속에 사랑, 희락, 화평, 오래 참음, 자비, 양선, 충성, 온유, 절제를 키워갈 수 있습니다. 성령님의 충만한 능력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직장에서 많은 패러다임이 달라지는 것을 경험합니다. 이제는 평생 직업 개념이 없어져 갑니다. 세일즈 하다가 기술직 할 수 있고, 관리직 하다가 경비직할 수 있고, 운전하다가 운전회사 경영주가 될 수 있고, 주부가 경영자 될 수 있고, 경영자가 청소할 수 있고... 이와 같이 우리의 직업은 변한다는 것입니다. 내가 과거에는 이것을 잘하는 줄 알았는데 5년, 10년 지난 지금은 다른 것을 하고 있습니다. 지금은 이 일을 잘한다고 생각했는데 5년 뒤, 10년 뒤에는 다른 것을 할 수 있습니다. 달란트는 달라집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섬기는 마음, 이웃을 섬기는 마음, 하나님 주시는 사랑, 희락, 화평... 하나님을 섬기고, 교회를 섬기고, 직장, 사회, 이웃에게 희망을 주고 싶은 마음, 이 은사는 변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이 은사를 갖고 직장에서 봉사해야 합니다. 직장에서 단순히 돈 벌기 위해 일한다면 그 자체가 비참합니다. 그러나 내가 직장에서 무슨 일을 하든 간에, 나의 달란트가 무엇이든 간에 그것은 수단이고, 하나님이 내게 주신 은사를 따라 일한다면, 무슨 직업을 갖든 간에 결코 부끄러운 일이 아닙니다. 그러나 직업자체가 단순히 돈벌이라면 부끄러운 일입니다. 그러나 직업이 나의 은사를 불일듯하게 하고, 나의 은사를 마음껏 발휘하는 것이 된다면 그 직업이 무엇이든, 무슨 일을 하든 그것은 거룩한 것이 됩니다. 결코 부끄러운 것이 아닙니다. 너무 자랑스럽고 떳떳하고 보람찹니다. 다만 죄를 범하는 직업은 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런 직업은 택하지도 말아야 합니다. 사회에서 합법적으로 인정하는 직업은 다 거룩합니다. 그 직업이 거룩하기 위해서는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은사대로 일하는 것입니다.
교회에서도 일하는 것이 즐겁고, 은사를 따라 일하는 것이 존재 이유여야 합니다. 우리는 교회에서 무슨 일이든 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를 세우기 위한 사역에 동참해야 합니다. 그러나 자신의 은사를 발견하고, 그 은사에 따라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무슨 일이든 기쁨이 가는 것을 찾아야 합니다. 즐거움이 있는 것, 성취감이 있는 것을 해야 합니다. 교회에서 어떤 형태로든 가만히 있지 않고 사역하고 있다는 것은 우리가 그리스도인으로 살아있다는 증거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증거입니다. 그 증거를 보여야 합니다. 일주일에 한번 교회 가서 예배만 보고 돌아가면, 이는 일하지 않고 먹기만 하는 사람과 다를 바 없습니다. 영적으로 비만해집니다. 그 삶이 윤택해질 수 없습니다. 우리가 교회에서도 자신의 은사에 따라 일할 때, 건강한 그리스도인, 건강한 가정, 건강한 교회, 건강한 사회, 건강한 나라가 됩니다.
우리가 건강한 그리스도인일 때, 내가 속한 가정, 내가 속한 교회, 직장이 함께 건강해지고, 영과 혼과 육이 건강해지는 것을 추구하게 됩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나라를 누리며 즐거워하게 됩니다.
이제 여러분의 은사를 찾으십시오. 그 은사에 따라 일하시길 바랍니다. 가정에서, 교회에서, 직장에서 여러분의 은사에 따라 일하십시오. 그리하면, 우리의 삶이 하나님이 주신 풍성한 삶으로 풍성해질 것입니다.
(기도)하나님 아버지, 우리에게 은사 주신 것을 인해 감사합니다. 우리의 은사를 찾게 하시고, 그 은사를 사용하여 불일듯하게 하며, 그 은사로 가정과 교회와 직장과 이 사회에 봉사하며 살게 하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김아브라함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