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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리석은 부자의 웰빙(눅12:16~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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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리석은 부자의 웰빙(눅12:16~21)

몇 년 전부터 사람들이 즐겨 사용하는 말 중에 ‘웰빙’(Well-Being)이란 단어가 있습니다. ‘복지’ ‘안녕’ ‘행복’ 등의 뜻을 갖고 있는 외래어입니다. 과거 우리나라가 경제적으로 지금보다 어려웠을 때는 작은 것을 갖고도 행복해 했습니다. 어린 시절 저의 추억이 하나 가 생각납니다. 초등학교 몇 학년 때인지 기억이 나지 않지만 추석 무렵 어머니가 선물로 축구화를 사주셨습니다. 그래봤자 밑창이 볼록 볼록 하게 된 운동화에 불과했지만 마치 축구선수라도 된 것처럼 신이 나서 온 동네를 뛰어 다녔던 기억이 납니다. 아마 그 운동화를 요즘 아이들에게 주면 퇴박을 놓을 겁니다. 그래도 그때는 너무 좋았습니다.

그런데 세월이 흘러 경제적으로 수준이 높아지고 여러 가지 좋은 것들이 나오니까 이제는 웬만한 것 갖고는 사람들이 만족해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웰빙’이란 말을 붙여가면서 뭔가 차별화되고 고급스런 것들을 추구하게 되는 겁니다. 그러니까 웰빙은 ‘고급스런 행복’ 정도로 이해하면 될 것 같습니다.

우리가 이와 같은 시대 경향(Trend)을 보면서 무조건 나쁘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사실 이것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모든 인간이 추구하는 기본 욕구인 동시에 기본 권리입니다. 그래서 우리나라 헌법에도 보면 제10조에 행복추구권이 명시되어 있습니다. “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 존엄과 가치를 가지며,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가진다.”
그런데 문제는 과연 무엇이 참 행복이냐 하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나름대로 행복을 추구하고 웰빙을 추구하는데, 과연 그 방향이 옳은가 하는 점입니다. 방향이 잘못 되었다면 큰일 납니다.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이 목적지를 향해 열심히 달린다고 합시다. 그런데 나중에 알고 보니까 전혀 엉뚱한 방향으로 달린 겁니다. 그러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달려 간만큼 손해입니다. 돌아설 수 있다면 그나마 다행인데, 만일 돌아올 수 없다면 치명적이 아닐 수 없습니다. 우리 인생길이 바로 그런 경우입니다. 인생은 단한번입니다. 방향을 잘못 잡고 가면 영영 실패하게 됩니다. 후회해도 소용이 없고, 만회할 수도 없습니다.
그래서 오늘 성경 말씀은 우리 인생에 바른 방향을 제시해 줍니다. 오늘 이 말씀을 들으면서 우리는 올바른 방향으로 인생길을 가고 있는지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그 방향이 제대로 잡힐 때 비로소 ‘진정한 웰빙’ 즉 ‘진정한 행복’이 가능해집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 한 사람의 인생 이야기가 나옵니다. 흔히 ‘어리석은 부자의 비유’라고 부르는 이야기인데, 예수님은 이 말씀을 통해 우리에게 인생의 중요한 교훈을 주셨습니다.

[1] 왜곡된 웰빙 추구 : 세상의 물질과 향락에 집중
한 부자가 있었습니다. 당시는 오늘과 달라서 농경 사회였는데 아마 대지주였던 것 같습니다. 광활한 농토를 소유하고 있었고 거기서 소출이 많이 나왔습니다. 얼마나 소출이 많았던지 쌓아둘 데가 모자라 고민이 될 정도였습니다. 그래서 그는 창고를 확장하고, 그 안에 곡식을 가득 쌓아둡니다. 그리고 이제는 한가롭게 인생을 즐길 계획을 짜놓고 있었습니다. 이 이야기를 ‘현대인의 버전’으로 바꾸면 이런 식입니다. 그는 사업을 해서 돈을 많이 벌었습니다. 통장에 돈을 많이 예치해 두었습니다. 이자만 갖고도 노후를 충분히 살 수 있습니다. 부동산도 넉넉하게 사 두었는데, 값이 뛰어올랐습니다. 매달 월세 나오는 것만 해도 쓸 수 없을 정도로 넘칩니다. 이제 남은 것은 그저 건강관리나 잘 하고 레저 생활이나 하면 됩니다. 그는 이런 상상을 하면서 흐뭇한 마음으로 중얼거립니다. 19절. “ ... 여러 해 쓸 물건을 많이 쌓아두었으니 평안히 쉬고 먹고 마시고 즐거워하자!”

여러분, 이 사람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뭐 잘못 된 것 있습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특별히 부정을 저질러서 돈을 번 것 같지도 않습니다. 나름대로 성실하게 열심히 일해서 돈을 벌었습니다. 그러니 이제는 여유를 갖고 인생을 즐기려고 하는데 뭐가 문제이겠습니까? 인간적으로 생각해 보면, 오히려 부러울 정도입니다.
사실 따지고 보면 모든 사람들이 이런 식으로 삽니다. 출세도 하고 돈도 많이 벌고자 노력합니다. 또 건강을 추구합니다. 특히 건강은 정말 중요하죠. 아무리 출세하고 돈이 많아도 건강을 잃으면 인생이 너무 힘들어집니다.

오래 전에 이미 고인이 된 모 재벌 회장의 이야기입니다. 그분은 말년에 위장병으로 고생하며 요양했는데, 매일 먹는 음식이 정해져 있었습니다. 흰죽에 왜간장 그것뿐이었습니다. 얼마나 안타까웠을까요? 그 이야기를 듣고 어느 분이 그러더라고요. “돈 있으면 뭐해?” 정말 그렇죠. 돈이 그렇게 많아도 건강을 잃으니까 소용이 없는 겁니다.
그래서 그런지 사람들이 얼마나 건강관리에 관심을 많이 갖고 노력하는지 모릅니다. 우리 한국 사람들은 뭐든지 열심이지만 특히 건강에 좋다고 하면 무엇이든 다 먹고 무엇이든 다 합니다. 이 분야에 관한 한 아마 세계 제일일 겁니다.

미국 캘리포니아에 요세미티 국립공원이 있습니다. 산악이 아름답고 숲이 울창해서 많은 사람들이 관광을 하고 캠핑을 합니다. 어떤 한국 분이 한번은 캠핑을 하다 곰이 나타나서 깜짝 놀랐습니다. 그 말은 전해들은 친구가 말했습니다. “에이, 곰이 나타나면 간단히 쫓아버리는 방법이 있는데 몰랐구나? 말 한 마디만 외치면 되는데.” “무슨 말인데?” “나는 한국인입니다!” “아니 그게 무슨 말이야?” “이렇게 외치면 곰이 한국 사람들 웅담이라면 사족 못 쓰는 것 알아서 쓸개 빼앗길까봐 손으로 가리고 막 도망간단 말이야!” 우스개 소리지만, 그만큼 건강에 관한 사람들의 관심이 크다는 겁니다.

여러분, 사람들이 대개 이렇게들 삽니다. 어떻게 하면 성공하고, 돈도 벌고, 건강하고, 인생을 엔조이(enjoy)하고 ... 사실 그렇게 사는 게 나쁜 짓도 아닙니다. 지극히 당연하고 평범한 삶의 모습입니다.
그런데 무엇이 문제입니까? 그런 인생이 당연하고 평범하고 다들 그렇게 사는 것 같은데, 예수님은 그런 인생을 어떻게 평가하셨나 하는 겁니다. 20절. “어리석은 자여!”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그가 나쁜 짓을 한 것은 아니지만, 어리석은 인생을 살았다고 단언하십니다.

여러분, 예수님께서 왜 그렇게 야박하게 말씀하셨을까요? 그것은 정말로 제일 중요한 것을 소홀히 했기 때문입니다. 인생에서 제일 중요한 것이 무엇입니까? 생명의 문제입니다. 예수님도 말씀하셨죠. 마16:26 “사람이 만일 온 천하를 얻고도 제 목숨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리요 사람이 무엇을 주고 제 목숨을 바꾸겠느냐” 그런데 부자는 착각을 했던 겁니다. 마치 자기가 천년만년 살 것처럼 말입니다. 그러나 바로 그날 밤 하나님이 그 생명을 거두어가셨습니다. 아무 준비도 하지 않았는데 ... 큰 비극입니다.
성경은 분명히 말씀합니다. 인간에게 죽음이 반드시 있으며, 그것을 대비해야 된다고 강조합니다. 그런데 부자는 이 세상에서 어떻게 하면 잘 살아볼까 그것만 궁리하다 인생을 마친 것입니다.

여러분, 인간의 죽음은 과연 무엇입니까? 일반적으로는 육체의 죽음만 말하지만 성경은 죽음의 개념을 이렇게 밝힙니다. 전12:7 “흙(=육신)은 여전히 땅으로 돌아가고 신(=영혼)은 그 주신 하나님께로 돌아가기 전에 기억하라” 그렇습니다. 인간은 영혼과 육체로 되어 있습니다. 죽음은 육체와 영혼이 분리되는 것입니다. 육체는 흙으로 돌아갑니다. 영혼은 하나님에게로 돌아가 심판을 받게 됩니다. 히9:27 “한 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 그 후에는 영원한 내세에 들어갑니다. 영혼은 불멸입니다. 천국이냐 지옥이냐 둘 중의 하나입니다. 중간 지대는 없습니다. 천국에 들어가 영생 복락(영생)을 누리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지옥에 들어가 영원한 고통(영원한 사망)을 당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이처럼 모든 인생에 죽음이 연연하게 존재한다면 과연 진정한 웰빙이 무엇입니까? 단순히 이 세상에서 먹고 마시고 즐기는 것에 불과하겠습니까? 그것은 결코 아닙니다.

[2] 진정한 웰빙의 내용 : 영혼의 기쁨과 평안, 천국의 확신과 소망, 인생의 목적과 의미
그러면 과연 진정한 웰빙은 어떤 것일까요? 그 내용을 다음 세 가지로 정리해 봅니다.

① 영혼의 기쁨과 평안 :
하나님이 주시는 영혼의 생명을 얻으면 세상의 즐거움보다 더 좋은 기쁨, 평안을 누리게 됩니다. 아무리 호의호식해도 영혼에 생명이 없으면 결국은 공허하고, 불만족스럽게 됩니다. 세상의 것들로는 육신과 본능적인 것만 만족시킬 수 있습니다. 인간의 영혼은 하나님을 만나야 합니다. 어린 아이가 엄마 품에 안기지 전에는 울고 보채는 것처럼 우리 영혼은 하나님을 만나기 전까지 참 평안을 맛보지 못합니다.

예를 들면 마치 어린 아이와 같은 겁니다. 응애 거리며 막 울던 아이를 달래기 위해서 먹을 것을 주고, 장난감을 주고 아무리 애를 써도 그때뿐입니다. 그러나 엄마가 품에 안고 젖을 물리면 금세 울음을 그칩니다.
우리 인간이 육신적으로는 물질도 건강도 필요하지만, 그 영혼은 오직 하나님을 통해서 참 기쁨과 평안을 누리게 됩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뭐라고 말씀하셨습니까? 요 4:13~14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이 물을 먹는 자마다 다시 목마르려니와 내가 주는 물을 먹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나의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 세상이 주는 것으로는 아무리 해도 참 만족을 얻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오직 예수님이 주시는 생수 같은 생명으로 참 만족을 얻을 수 있습니다. 이것은 세상 것과는 전혀 비교되질 않습니다. 요14:27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 같지 아니 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
또 이렇게 영혼에 기쁨과 평안이 있게 되면, 인간관계도 좋아지고 세상일도 잘 됩니다. 그리고 육체의 건강에도 도움이 됩니다. 요삼2 “사랑하는 자여 네 영혼이 잘 됨같이 네가 범사에 잘 되고 강건하기를 내가 간구하노라” 이것은 간구이면서 동시에 영적인 법칙입니다.

② 천국의 확신과 소망 :
이 세상에서 잘 사는 것도 중요하지만 죽음이 분명히 닥쳐오는 현실일진대 어떤 죽음을 맞이하느냐, 그리고 죽음 이후에 어떻게 되느냐 하는 것은 정말 중요합니다. 요즘 사람들이 조금씩 이런 것을 인식하면서 만들어낸 말이 있습니다. 웰 다잉(Well-Dying) 혹은 웰 엔딩(Well-Ending)입니다. 이것은 웰빙의 완성입니다. 우리는 결코 죽음을 회피해서는 안 됩니다. 죽음은 나와 상관없는 게 아니고, 염연히 내 인생의 연장입니다. 따라서 죽음에 무관심하게 살아가는 것은 지혜로운 삶의 자세가 아닙니다.

사냥꾼이 꿩을 잡을 때 이런 재미있는 일이 벌어진다고 합니다. 사냥꾼이 엽총을 들고 따라가면 꿩이 혼비백산 도망갑니다. 그러다 수풀이 나타나면 얼굴을 처박고 숨습니다. 그런데 엉덩이는 밖으로 내놓고 있다는 겁니다. 얼굴만 가리면 되는 줄 알고 ... 정말 멍청하죠. 이와 마찬가지입니다. 인간이 죽음에 대해 고개를 돌리고, 얼굴을 가리면 다 되는 줄 압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내가 죽음을 무시하고 피하고 외면해도 죽음은 뚜벅 뚜벅 내게로 걸어옵니다. 그러므로 죽음을 직시하며 어떻게 극복하고 뛰어넘을까 잘 생각하는 게 지혜입니다.
수개월 전 46세의 젊은 개그맨이 갑자기 세상을 떠났습니다. 번득이는 기지로 많은 사람에게 웃음을 선사해주던 분이어서 모두 아까워했습니다. 그분은 살을 많이 뺀 후 아주 건강해져서 주변 사람들에게 자랑하곤 했습니다. 그날도 식사도 잘 하고, 운동도 잘 했는데, 돌연히 죽은 겁니다. 더욱 기가 막힌 것은 바로 전날 본인의 미니 홈피에 올린 개그의 소재가 바로 시체에 관한 것이었다는 사실입니다. 만일 본인이 죽을 것을 1%라도 예상했다면 그런 개그를 감히 올렸을까요? 안 그랬을 겁니다.

여러분, 죽음은 이런 겁니다. 그러므로 항상 준비해야 됩니다. 오늘 당장 준비해 놓아야 합니다. 천국의 영생을 준비하는 게 가장 중요합니다. 이것을 준비해 두지 않으면 세상에서 아무리 출세하고 인생을 엔조이해도 헛것입니다. 마치 이런 것과 같습니다. 침몰하는 타이태닉호의 1등 칸에 탔다고 폼을 잡으며 먹고 마시고 즐기는 것과 매한가지입니다.
그런데 천국은 죄를 갖고 못 가는 뎁니다. 모든 인간은 죄인입니다. 누구도 부인할 수 없습니다. 평생 살면서 한번도 마음속의 생각으로 죄를 짓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습니까? 평생 살면서 한번도 말로 죄를 짓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습니까? 평생 살면서 한번도 행동으로 죄를 짓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습니까? 그러면 어떻게 하면 좋겠습니까? 죄인은 천국에 들어갈 수 없는데 ... 그래서 죄 사함을 받아야 합니다. 인간 스스로는 죄를 씻지 못합니다. 죽기 전까지 더 이상 죄를 짓지 않기도 어려운데 어떻게 과거의 죄를 씻을 수 있겠습니까? 바로 이런 이유 때문에 우리의 죄를 대신 속하기 위해 예수님이 인간의 몸을 입고 오신 겁니다. 그는 무죄하지만 십자가 사형 틀에 피 흘려 죽었습니다. 부활하심으로 그분의 죽음이 분명 인간의 죄를 대속한 것이었음을 증명했습니다. 그리고 약속하셨습니다. 누구든지 대속의 십자가를 믿으면 죄를 사해 주시고, 하나님의 자녀로 삼아주신다는 겁니다. 또 영생과 천국을 주시겠다는 겁니다. 얼마나 놀라운 일입니까? 평생 노력해도 안 되는 것을 단지 믿음으로 얻을 수 있다니! 그래서 기쁜 소식 ‘복음’인 겁니다.

이 믿음을 갖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면 마음이 담대해집니다. 언제 죽음이 닥쳐와도 두렵지 않습니다. 그런 사람은 세상을 아주 당당하게 살아갈 수 있습니다.

③ 인생의 목적과 의미 :
인생은 한번 왔다 갑니다. 짐승은 이 세상에서 그저 먹고 마시고 살다 죽으면 끝입니다. 그러나 인간은 그럴 수 없습니다. 내세 천국에 들어가 하나님 앞에 받을 상급이 있습니다. 그것은 의식하면서 바른 목적을 갖고 의미 있는 인생을 살아야 합니다. 그럴 때 하늘에서 별처럼 빛나는 존재가 됩니다.
어차피 세상을 떠날 때 아무 것도 갖고 가지 못합니다. 억만장자라 하더라도 마찬가지입니다. 딤전6:7 “우리가 세상에 아무것도 가지고 온 것이 없으매 또한 아무것도 가지고 가지 못하리니 ... ” 공수래공수거입니다. 그러므로 이 세상 살 동안 하나님이 맡기신 것들을 갖고 누리기도 해야 되지만, 더 나아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나를 구원한 생명의 복음을 위해 선용해야 됩니다. 그럴 때 영원히 보람 있는 인생이 됩니다.
우리 인간은 엄격히 말하면 ‘소유권’이 없습니다. 오직 ‘관리권’만 있을 뿐입니다. 그래서 우리 인간을 가리켜 하나님 앞에서 ‘청지기’라고 하지 않습니까? 하나님 앞에서 잘 관리할 때 목적과 의미를 갖고 뿌듯한 인생을 살게 됩니다.

여러분, 해비타트 운동을 잘 아시죠. 지미 카터 전 대통령 때문에 많이 알려진 선교운동인데, 전 세계의 무주택자들에게 집을 지어주는 운동입니다. 그런데 그 창설자는 밀러드 훌러(Millard Fuller)라는 분입니다. 그분은 어린 시절 너무 가난했습니다. 그게 한이 되어서 악착같이 공부하고 커서 변호사가 되었습니다. 사업까지 했습니다. 그러면서 엄청난 돈을 벌었습니다. 집에 들어갈 때마다 아내에게 돈다발을 안겨줄 정도였습니다. 그 아내 린다(Linda)가 얼마나 행복했을까요? 이렇게 생각하면 오산입니다. 어느 날 집에 들어와 보니까 아내가 편지를 써놓고 가출했습니다. “여보! 이렇게 사는 게 과연 무슨 의미가 있나요?” 그 편지를 읽고 충격 받게 됩니다. 그리고 아내를 찾아 새로운 인생을 시작합니다. 전 재산을 사회복지단체에 기부하고, 아프리카 선교사로 가서 3년을 봉사합니다. 그 후에는 귀국해서 해비타트 운동을 시작합니다. 예전에 비해 돈도 없고 몬 면에서 초라해졌지만 그들은 오히려 의미 있는 인생을 살면서 행복해 했습니다.

거듭 말씀드리지만 인간은 짐승이 아닙니다. 그냥 먹고 사는 게 중요한 게 아닙니다. 의미가 중요합니다. 의미가 있으면 죽음도 불사하는 게 인간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복음을 위해서 살면 영원히 의미 있고 보람 있는 인생이 됩니다.

성도 여러분! 행복하십니까? 혹시 웰빙, 웰빙 하면서 세상을 열심히 따라다니지만 참 기쁨과 평안이 없는 건 아닙니까? 부디 오늘 말씀을 마음 속 깊이 새겨보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어리석은 부자의 삶이 아니라 진정한 웰빙의 삶, 영원히 후회하지 않을 행복하고 의미 있는 인생으로 살아가시기를 축원합니다. (홍문수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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