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혜로운 사람 (마 7:24-27) > 설교자료실

본문 바로가기
사이트 내 전체검색


Home > 설교자료실 > 설교자료실
설교자료실
설교자료실

지혜로운 사람 (마 7:24-27)

본문

지혜로운 사람 (마 7:24-27)


오늘 본문은 오늘 성경은 우리가 너무나 잘 아는 말씀입니다.
두 사람이 똑같이 집을 지었습니다. 한 사람은 모래 위에, 한 사람은 반석 위에 지었습니다. 모래 위에 지은 집은 비가 오고 바람이 불고 창수가 날 때 무너짐이 심했고, 반석위에 지은 사람은 비가 오고 바람이 불고 창수가 날 때 아무 문제없이 든든히 견딜 수 있었다는 말씀입니다. 24절 “그러므로 누구든지 나의 이 말을 듣고 행하는 자는 그 집을 반석 위에 지은 지혜로운 사람 같으리니...”

이스라엘은 사막과 바위만으로 된 나라입니다. 비가 오면 바위가 패여 모래를 만듭니다. 비는 자주 오지 않습니다만 한번 왔다 하면 엄청난 양이 옵니다. 보통 때에는 평지와 다를바 없습니다. 그러나 비가 오면 문제가 생기는 것입니다. 비가 내릴 때만 물이 흐르고 이내 말라 버리는 골짜기. 보통 때는 유수가 없는 마른골짜기이나, 호우가 내리면 갑자기 홍수와 같은 유수가 생긴다. 이런 지역을 ‘와디’(wadi)라고 부릅니다.

이스라엘의 좋은 집들은 모두 바위산 위에 있습니다. 예루살렘도 바위산입니다. 해발 600m, 바위 위에 예루살렘이 있어서 비가 오더라도 안전한 곳입니다.
바위 위에 집을 짓는 것은 세울때는 어렵습니다만 거기에 집을 세워야 든든하기 때문에 그렇게 세워야 하는 것입니다.
요즘 TV광고에 ‘집이 뭐죠?’라는 광고가 나오죠? 집이 무엇입니까? 오락이나 사치품입니까? 아닙니다. 꼭 있어야 하는 필수품입니다. 없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이 집은 우리의 인생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돈을 버는 직장생활이나 사업일수도 있습니다. 가정생활일 수도 있습니다. 어떤 사람이 지혜로운 사람일까요?

1. 기초에 더 투자하는 사람이 지혜로운 사람입니다.

집을 짓되 깊이 파고 주초를 반석위에 놓으니 무너지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기초가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본문의 지혜로운 사람은 기초를 파는데 노력했다는 것입니다. 기초는 보이지 않습니다. 남들이 알아주지도 않습니다. 대단치 않게 생각할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기초는 중요합니다. 여기에 많은 수고가 필요합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들은 남들이 보는 부분에만 관심을 갖습니다.
공부를 하는데도 기초가 든든해야 잘할 수 있습니다.
건강도 기초 체력이 있어야 건강을 유지할 수 있습니다.
모든 일을 하는 데도 기초 없이 성공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집을 짓는 데는 무엇보다도 기초를 잘 다져야 건물을 지을 수 있는 것입니다.
이처럼 우리의 인생도, 신앙도 기초가 부실하면 삼풍백화점처럼 성수대교처럼 붕괴하고 마는 것입니다.
신앙이라는 것은 보이지 않는 내면의 문제요, 궁극적으로 내일에 대한 확신입니다. 우리의 육신은 한계가 있습니다. 과학의 발달로 수명이 길어진다고 하지만 길어봐야 120년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죽음을 준비하는 것이 지혜로운 인생입니다. 이 땅에서 부귀와 영화를 누리는 것이 진정 성공한 인생이 아니라 죽음을 준비하는 인생이 성공한 인생입니다. 보이지 않는 일을 위해 관심을 가지고, 투자하고, 보이지 않는 부분을 위해 일하십시오.

이 집을 잘 지어야 합니다. 본문에 두 사람은 집을 다 완성했습니다. 모래위에 지은 사람도 다 완성 했습니다.
이 사람이 지은 집, 가정, 인생도 나름대로 보기에는 완벽한 작품입니다. 완벽해 보이는 인생입니다. 소위 행복한 가정입니다. 모든 사람이 다 칭찬하고 부러워 할 정도입니다. 경제적으로도 부족이 없습니다. 쓸 만큼 있고 누리고 먹고 싶을때 먹고, 쓰고 싶을때 쓰고, 주고 싶을 때 줄 수 있습니다. 사회적으로도 존경을 받습니다. 칭찬도 듣고 상도 받습니다.

교회적으로도 많은 일을 하고 직분도 있고 봉사도 합니다. 그러나 그 집이 아무리 잘 된 집 같아도, 얼마나 잘 지은 집인지는 끝까지 가 봐야 아는 것입니다.
세상의 모든 일은 끝까지 가봐야 알 수 있습니다. 지금은 모릅니다. 지금은 잘 되어가도 나중에는 잘 안될 수도 있고 지금은 잘 못되어도 나중에는 잘 될 수도 있습니다.
모래 위에 지은 집은 바람 불고, 비 내리고 창수가 날때 비참하게 무너져 버리고 만다고 했습니다. 우리가 진짜로 믿었는지 가짜로 믿었는지 심판하는 날이 옵니다. 겉으로 볼 때는 멋이 있고 아름다워 보이지만 하나님의 심판이 임할때 보면 다 나타납니다.

보이지 않는 일을 위해 성실히 일한 사람들이 종국에 가서 승리자들이 되고 복을받았습니다.
우리의 신앙이 좋은지, 나쁜지 평소에는 잘 모릅니다. 겉으로 보면 다 믿음이 좋고 신앙 생활을 잘 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다 거룩하게 보이고 다 천사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막상 어려움과 역경에 처하면 신앙이 좋은지, 나쁜지 나타나게 됩니다. 시련과 고통에 처하면 믿음이 있는지, 없는지 알 수 있습니다.

평소에 기초가 잘 다져진 사람은 어려움과 시련이 오더라도 견뎌냅니다. 반석과 같은 말씀 위에 쌓여진 신앙이기 때문에 잘 인내하고 극복합니다. 그러나 신앙의 기초가 다져지지 않은 사람은 어려움과 시련을 견딜 힘이 없습니다. 말씀 위에 세워지지 않았기 때문에 쉽게 좌절하고 낙심합니다. 힘을 잃고 포기합니다. 결국은 무너져서 다시 일어서지를 못합니다. 이삭의 아들중에 에서는 날 때부터 장군처럼 힘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아버지가 크게 사랑했습니다. 그러나 동생 야곱은 부족하고 허물이 많아 아버지의 사랑을 받지 못했습니다.

에서는 능력이 많았지만 버림받았습니다. 그러나 야곱은 부족했지만 하나님의 사랑받고 위대한 하나님의 사람이 될 수 있었습니다. 이처럼 그러나 우리가 성경을 통해 알 수 있는 것은 이 세상의 모든 일은 끝가지 가 봐야 합니다.
요셉은 노예로 팔려가고 감옥에 갇히는 억울한 일을 당했을때에도 원망불평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이 알아서 하시는 것이겠지, 하나님의 뜻이겠지, 하나님이 만드시는 역사의 과정이겠지’라고 생각하고 감사했습니다. 미움을 받아도 원망하지 않았습니다. 결국 하나님이 그와 함께 하시고 그를 들어 쓰시고 국무총리가 되게 하셨습니다.

다니엘은 바벨론의 포로생활 중에도 하나님께 감사를 했습니다. 바벨론의 우상을 섬기지 않으면 죽인다고 했을 때에도 하나님께 기도생활을 쉬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사자 굴에 갇혔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사자들의 무서운 입을 막아 주셨습니다. 그도 결국 바벨론의 국무총리가 되게 했습니다.

2. 어리석은 사람은 보이는 것에만 관심이 있는 자입니다.

모래 위에 집 짓는 자가 어리석은 자입니다. 어리석다고 하는 말은 바보라는 뜻입니다. 바보의 몇 가지 원칙이 있습니다. 바보는 자기밖에 모르는 사람입니다. 본문 앞에 있는 22절에 보면 주의 이름으로 구제하고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좇아내고 주의 이름으로 능력을 행합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나는 너를 모른다 하리라” 고 말씀하십니다. 왜 모른다고 했습니까? 말로는 주의 이름으로 주의 일을 한다고 했지만 속 중심은 뻔 합니다. 자기 자신을 위해 일한 것입니다. 주님은 말씀하십니다.‘너는 언제 나를 위해서 일 했느냐? 너를 위해서 일했지, 너밖에 몰랐지. . . ’주를 위해서 산다고 했지만 결국은 속 깊은 내면에는 자신의 유익과 이기적인 목적을 위해서 일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미련한 사람은 원칙을 무시합니다. 건축을 할려면 설계도를 들여다보고 지어야 하는 데 이 어리석은 자는 설계도를 무시하고 지었습니다. 그 설계에 보면 반석 위에 기초를 두도록 설계가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기초는 안보이니까 이 어리석은 사람은 안 보이는 것은 대충해도 괜찮은 줄 알았던 것입니다.

여러분 속지 마세요. 비슷하다고 같은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비슷하면 같은 줄 알아요. 그래서 거짓 선지자에게 넘어가는 것입니다. 우리 인생의 설계도는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그 설계도 대로 살아야 합니다. 그래야 튼튼한 인생이 됩니다.
설교를 들으면서 평가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의 말씀을 나의 지성으로 연구의 대상으로 삼지 마십시오. 하나님의 말씀은 명령하시는 대로 받으십시오. 믿음으로 받아들이시기 바랍니다. 그 말씀 위에 집을 지으시기를 바랍니다.
어리석은 사람은 설교 말씀을 듣습니다. 그러나 교회 현관문에 나가서면서 잊어버려요. 왜냐하면 무관심하게 들었습니다. 자기가 원하는 것은 열심히 듣지만 자기가 원치 않는 것은 귀담아 듣지 않는 것 이예요. 쉽게 잊어버려요. 그게 바보예요.

어리석은 사람은 좋은 말을 들으면 그냥 잊어버려요. 건망증이 얼마나 심하든지 남에게 돈 빌려주는 것은 절대로 안 잊어버려요. 남에게 돈 꾸어준 것 이자는 얼마나 잘 기억하는지 모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취사선택하는 것이 아닙니다. 편식하는 것이 아닙니다. 자기가 좋아하는 것만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신구약 전체를 통째로 먹어야 합니다.
지혜로운 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합니다. 편식하지 않습니다. 전체를 받아들입니다. 그 속에서 깨닫습니다. 회개합니다. 고칠 것은 과감히 고칩니다. 그 말씀을 원칙으로 삼습니다. 그리고 성실하게 지키기 위해 힘씁니다.

2. 지혜로운 사람은 말씀을 행하는 자입니다.

뭐가 참으로 지혜로운 것입니까? 하나님이 인정하시는 지혜는 세상적으로 똑똑히 인정하시는 지혜는 세상적으로 똑똑해 보이고 I.Q가 높고 이해타산에 빠르다고 해서 참 지혜를 가진 사람이 아닌 것입니다.
잠8:10“너희가 은을 받지 말고 나의 훈계를 받으며 정금보다 지식을 얻으라 대저 지혜는 진주보다 나으며 무릇 원하는 것을 이에 비교할 수 없음이니라”고 은이나 금이나 진주보다 귀하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잠1:7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혜의 근본이어늘 미련한 자는 지혜와 훈계를 멸시하느니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을 두려워하면서 그 분 앞에서 생각하고 행동하는 사람이 참으로 지혜있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을 떠나서 참된 도덕도 있을 수 없고 참된 지혜도 있을 수 없습니다.

시119:98-100 “주의 계명이 항상 나와 함께 함으로 그것이 주의 증거를 묵상함으로 나의 명철이 나의 모든 스승보다 승하며 주의 법도를 지킴으로 나의 명철함이 노인보다 승하니이다”라고 했습니다. 주의 말씀을 많이 묵상하고 그 말씀을 지켰더니 원수보다도 지혜롭게 되고 스승보다도 지혜롭게 되더라고 하는 말씀입니다.

사11:2 “여호와의 신 곧 지혜와 총명의 신이요 모략과 재능의 신이요 지식과 경외하는 신이 그 위에 강림하시리니”라고 했습니다. 즉 성령께서 참된 지혜와 총명을 주십니다.

말씀을 행하는 사람이 지혜로운 사람입니다. 말씀을 행하면 축복을 받고, 행하지 않으면 불행한 사람입니다. 행복과 불행을 결정하는 것은 바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느냐 불순종하느냐에 달려있습니다.
토마스 왓슨은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은 우리의 의무라기보다는 우리의 특권이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유익이 되는 것만을 명령하시기 때문이다.”

마7:9-11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좋은 아버지가 되심을 말씀하시고 계십니다. “너희 중에 누가 아들이 떡을 달라 하면 돌을 주며 생선을 달라 하면 뱀을 줄 사람이 있겠느냐 너희가 악한 자라도 좋은 것으로 자식에게 줄줄 알거든 하물며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으로 주시지 않겠느냐”하나님께서는 우리의 기도에 응답하시는 좋으신 아버지시라는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세상의 아버지가 자식을 사랑하는 것보다 더 우리를 사랑하신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을 신뢰해야 합니다. 그분께서 말씀하시는 것이라면 무조건 따라랴 합니다. 비록 말씀에 순종하는 것이 당장에는 이해가 안되고 어려움을 당하는 것 같더라도 순종해야 합니다.

신앙이란 하나님의 말씀을 전적으로 신뢰하고 순종하는 것입니다. 밤새도록 고기를 잡았으나 한 마리도 잡지 못한 시몬 베드로에게 주님은 깊은데로 가서 그물을 내리라고 했을 때 베드로는 “선생이여 우리들이 밤이 맞도록 수고를 하였으되 얻은 것이 없지마는 말씀에 의지하여 내가 그물을 내리리이다”(눅5:5)라고 순종했을 때 그물이 찢어질 정도의 많은 고기를 잡았던 것입니다.

철옹성 여리고 성은 칼이나 창으로 무너뜨린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였을 때 무너졌습니다.
성경에는 모두 기적의 사건들로 가득 차 있습니다. 그 기적들이 어떻게 기적이 나타났습니까? 말씀을 믿고 순종할 때 일어났습니다.

모세에게 ‘지팡이를 앞으로 내밀라 . . ’순종할 때 홍해가 갈라지는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므리바에서는 ‘반석을 치라’ 하실 때 믿고 반석을 치니까? 생수가 나와서 모든 백성들이 먹었습니다.
여호수아의 명령을 따라 제사장들이 요단강물을 향하여 전진 할 때 흐르던 물이 그쳐서 백성들이 건넜습니다.
우리의 함정이 어디에 있습니까? 설교는 잘 듣습니다. 열심히 듣습니다. 그러나 귀가 하늘만큼 높아서 어지간히 해서는 감동을 받지 않습니다. 들으면 뭐합니까? 행하지 않으면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한 가지를 들었더라도 지켜 행하는 자가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수1:8 “이 책의 모든 말씀을 네 입에 두며 주야에 묵상하여 그 가운데 기록한 대로 다 지켜 행하며 . . . . . 네 입술에 두며 그 말씀을 지켜 행하면 네 길을 평탄하게 할 것이니”

여러분의 길이 언제 평탄하게 됩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지켜 행할 때 평탄, 형통이 오는 것입니다. 마음에 평안이 오는 것입니다.
그러나 문제는 듣기는 듣지만 행하지는 않는데 있습니다. 왜 사람들이 듣기만 하고 행하지 않습니까? 그 첫 번째 이유는 그 말씀이 마음속에 남지 않기 때문입니다. 내가 듣는 그 수많은 말씀은 그저 귀 전만 스치고 지나가 버립니다. 지난주일 무슨 설교를 들었는지 아무리 생각을 해 보아도 기억이 나지를 않습니다.

또 들은 말씀대로 행하기가 어렵기 때문입니다. 바위를 깍고, 파서 기초를 만들고 그 위에 집을 짓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닙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말씀을 듣고 행하기란 그리 쉬운 일이 아닙니다. 말씀만 듣고 행하지 않는 것은 너무도 쉽습니다. 그저 가만히 듣고 앉아 있기만 하면 되기 때문입니다.

주일이 되면 수 많은 사람들이 교회 문턱을 드나듭니다. 그러나 주님은 그들을 그저 따라다니는 군중들로만 볼 수 있습니다. 말씀을 들으나 행하지 않는 사람들 가지고 주님은 아무 일도 할 수 없습니다. 아무리 말해도 듣지 않는데 그런 사람들을 가지고 무슨 일을 할 수 있겠습니까?
마8: 백부장은 로마군대의 중대장쯤 되는 고급장교였습니다. 그는 로마의 백부장이였으면서도 예수님을 감동케 한 인물입니다. 그의 겸손 때문입니다. “말씀만 하옵소서 그리하시면 종의 신하가 낫겠삽나이다.”

3. 이유없이 복을 받는 사람은 없습니다.

1919년에 파리에서 ‘파리 평화 회의’가 개최될 무렵 몇 명의 아랍 지도자들이 회의에 초청되었습니다. 그들은 파리에 있는 한 호텔에 머물게 되었는데, 욕실에 있는 수도꼭지에서 쉴 새 없이 물이 쏟아져 나오는 것을 보고 큰 감명을 받았습니다. 이 아랍 국가들은 기름은 많지만 물은 귀한 나라가 아니겠습니까? 그들에게 이 수도 꼭지는 희한한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회의가 막바지에 이를 무렵 웃지 못 할 일이 벌어졌습니다. 아랍 지도자들이 욕실에 붙어 있는 수도꼭지를 떼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그들 생각에는 수도꼭지를 틀기만 하면 물이 나오는 요술 기계로 생각했던 것입니다. 그들은 수도꼭지에서 물이 나오려면 물의 근원과 연결되어야 한다는 사실을 모르고 거저 꼭지 에서만 물이 나오는 줄로 알았고 그 수도꼭지를 가지고 가려고 했다는 재밌는 이야기입니다.

복을 받은 사람을 보면 복 받을 일을 했고, 잘 된 사람을 보면 잘 될 수 밖에 없는 일을 했고, 성공한 사람을 보면 그만한 대가를 치뤘고, 승리한 사람을 보면 경쟁에서 승리할 수 있는 준비를 한 것을 보게 됩니다.
심은 대로 거두는 것입니다. 공부 한 만큼 성적이 나오고, 일한 만큼 돈을 벌고, 믿는 만큼 하나님의 은혜를 받고, 헌신한 만큼 하나님의 복을 받고, 효도한 만큼 축복을 받는 것입니다.

말씀대로 사는 사람이 복받는 사람이고 승리하는 사람인줄로 믿습니다.
성경에는 온유한 사람은 땅을 차지하는 복을 주신다고 했습니다. 온유한 사람은 어떤 사람입니다. 착하고, 주인의 말에 순종하고, 하나님의 말씀에 철저히 순종하는 사람이 온유한 사람입니다.
믿음의 조상 야곱이 아들들을 축복하였습니다. 아들 유다가 더욱 복을 받았습니다. ‘유다’? ‘찬송, 찬양’이란 뜻입니다. 유다는 형제들이 요셉을 미워하며 죽이려고 할 때 그를 살렸습니다. 유다는 증오심에 불타 동생 요셉을 죽이려는 형제들에게 죽이지 못하게 했습니다. (창:37:26-27)

요셉의 형들이 애굽에 두 번째 곡식을 사러 갔을 때 아버지를 설득합니다. 일전에 요셉(총리)이 “아우를 데려오지 않으면 얼굴을 보지 못하리라”고 했기 때문에 . . .
‘아버지, 막내 동생 베냐민을 데리고 애굽으로 가야 아버지의 모든 아들들이 삽니다. 제가 목숨을 걸고 베냐민의 안전을 책임지겠으니 데리고 가게 해 주세요. 베냐민에게 위험이 닥치지 않도록 하겠습니다. 만일 베냐민에게 불미스런 일이 일어나면 저는 평생 아버지 앞에 죄인으로 살겠으며, 아버지께서 내리시는 벌을 어떤 것이라도 달게 받겠습니다.

저를 집에서 쫓아내셔도 좋고, 상속권을 박탈해도 좋고 . . , 저주를 내리셔도 좋습니다.’(창43:8,9)
인질이 된 ‘베냐민’을 구하기 위해 요셉총리 앞에서 여러번 변론을 했습니다. (창44:16-18)

유다의 탄원을 듣고 요셉은 큰 감동을 받고 자기가 요셉임을 형들 앞에서 밝히고 방성대곡을 하였습니다.(창45:1-15)
나중에 유다 지파가 기업으로 얻게 된 땅은 실제적으로 가나안의 요충지라고 할 만한 곳이었습니다. 이 곳은 많은 농산물을 생산해 낼 수 있는 땅이었으며, 수많은 민족들이 집단을 이루고 살았던 안정적인 곳이었습니다. 유다지파의 땅을 보면 대체적으로 비옥한 목초지와 풍성한 포도원과 수자원이 풍부한 옥토였습니다.

아무나 복을 받는 것이 아닙니다. 좋은 나무가 좋은 열매를 맺고, 나쁜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고, 많이 심으면 많이 거두고, 적게 심으면 적게 거둡니다.(마7:15-20) (임경택 목사)





고객센터 개인정보취급방침 서비스이용약관 기독정보넷공식트위터 Copyright © cjob.co.kr All rights reserved.
상단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