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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를 따라 돕는 은혜 (히 4:1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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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를 따라 돕는 은혜 (히 4:14-16)


AD60년대 중반에, 그리스도인이 된 많은 유대인들은, 집 없는 신세가 되었다. 많은 사람이 재판을 받았고, 고문을 받아 죽어갔다. 자기 소유도 없이, 외국 땅에서 순례자와 이방인으로 살아야만 했다. 동굴과 땅 속에, 구멍을 파고 살았다. 그래서 더러는 유대교로 돌아가는 사람도 있었다.

세상과 적당히 타협하며 사는 게, 유익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래서 히브리서 기자는 14절에서 “우리가 믿는 도리를 굳게 잡을찌어다”라고 권했다. 어떤 유혹과 시험이 찾아와, 낙심되고 절망되고, 슬퍼도, 믿음의 도를 놓치지 말고, 굳게 잡으라고 하였다. 그런 성도들이 되시기 바란다.

힘들고 어려울 때, 왜 주님을 굳게 잡아야 하나요? 예수 그리스도는 때를 따라, 하나님의 은혜를 베풀어주시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때를 따라 돕는 하나님의 은혜가, 우리의 삶에 풍성하시기 바란다. 본문은 우리에게 이상적인, 큰 대제사장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소개하고 있다.

1. 체휼하여 주시는 분이다(15).

“우리에게 있는 대제사장은, 우리 연약함을 체휼하지 아니하시는 자가 아니요” 여기서 체휼한다는 말은, 동정한다는 말이다. 동정은 함께 고통을 느낀다는 말에서 왔다.

예수님은 동정하는 분이시다. 사람에게 가장 큰 동정은 “생명”이다. 죽을 수밖에 없는 사형수 같은 우리에게 가장 큰 동정은, 우리 대신 죽으심으로, 우리를 구원하여 주시는 것이다. 이보다 큰 동정은 없다. 제사장은 라틴어로 폰티펙스(Pontifex) ‘다리를 놓는 사람’이라는 뜻이다.

예수님은 우리와 하나님 사이에 다리를 놓아, 하나님의 생명이 우리의 생명으로, 흘러 들어오게 하시는 분이다. 미국과 영국 사이에, 통신 케이블을 연결시킨 사람은, 시러스 필드(Cyrus Field)라는 사람이다. 지금부터 약110년 전에 이런 생각을 하였으니, 정말 생각이 큰 사람이다.

그 넓은 대서양에 전선을 깔아, 미국과 영국 사이에 통신을 원활하면, 인류 문명에 지대한 공헌을 할 수 있지만, 작업이 순조롭지 않았다. 그는 3번의 실패 끝에, 4번 째 전선을 잇는데 성공하였다. 제1차 시도는, 대서양 500km 지점에서 파도로 인하여, 케이블이 끊어짐으로 실패하였다.

실패 1년 후에 다시 시작했다. 이번에는 더 굵은 줄을 사용하여 성공하였다. 양국 사이에 통화가 가능하였다. 그러나 거친 바다에서 견디지 못하고 또 끊어졌다. 2차 실패였다. 필드는 결코 포기하지 않았다. 그 후 7년 째 되던 해에, 다시 한번 케이블을 깔았지만, 또 다시, 실패를 해야 했다.

필드는 기어코 완성하고 말겠다는 의지를 불태워서 수년 후, 여러 번의 실패를 보완하여, 완벽한 케이블을 설치하였다. 실로 감격적인 순간이었다. 이제는 영국과 미국 사이에 통신에 아무런 이상이 없어졌다. 이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야기이다.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도 틈이 생겼다. 인간이 죄를 지었기 때문이다. 이 사이를 이으려고, 수많은 선지자들이 외쳤다. 그러나 실패였다. 드디어 우리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나타나서, 우리 대신 죄를 짊어지시고 죽으심으로, 하나님과 우리 사이가 연결되었다.

죽을 수밖에 없는 우리를 체휼하셨기 때문이다. 하나님과 사람을 연결시킬 수 있는 분은 하나님도 잘 알고, 사람도 잘 아는 분이어야 한다.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이시기에, 하나님을 제일 잘 아신다. 또한 예수님은 사람으로 이 땅에 태어나셨다. 그렇기에 큰 대제사장이 되셨다.

이와 같이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무너진 관계를 회복해 주시려고,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셨기에, 주님의 돕는 은혜를 받을 때 행복하게 된다. 사람의 도움을 받아도 행복한데, 하물며 하나님의 원수 된 우리를, 회복하시려고 이 땅에 오신 예수님의 도움을 받지 않는다면, 어떻게 행복할 수 있는가?

이제 우리는 언제든지, 하나님의 은혜를 받을 수 있고, 그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가 기도할 수 있게 되었다. 때를 따라 도우시는 예수님의 은혜를 믿고 살면, ‘때를 따라 돕는 하나님의 은혜’를 얻게 된다.

스코틀랜드의 독립 운동가, ‘로버트 브루스’가 적을 피해 달아나다가, 동굴 속으로 들어가 숨었다. 뒤쫓아 온 추적자들은 그가 숨은 곳에 이르렀다. 그때 거미 한 마리가, 동굴 입구에 거미줄을 쳤다. 추적자들은 브루스가 동굴 안으로 들어갔다면, 거미줄이 끊어져 있을 것이라 생각하고 되돌아갔다.

그때 브루스는 기도했다. “하나님! 자그마한 거미의 뱃속에, 저를 위한 피난처를 마련해 두시고, 적절한 때에 거미를 보내사, 저를 보호하시려고 거미줄을 치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이처럼 하나님은 언제나 신비한 방법으로, 놀라운 일들을 행하시며, 당신의 자녀들을 보호하여 주신다.

하나님의 자녀들에게는, 때를 따라 돕는 하나님의 은혜가 있다. ‘때를 따라 돕는 은혜’라는 말은 항상 우리에게 머물러 있는 은혜라는 뜻이다. 항상 하나님께서는 자기 자녀를 긍휼히 여겨 주시기에 필요한 때에 은혜를 베풀어주신다.

때를 따라 돕는 은혜는, 평소에 하나님의 은혜 안에 사는 사람들에게 주어지는 은혜다. 그러므로 어려울 때도 괴로울 때도, 항상 하나님을 바라보는 은혜 안에 머물면서, 승리하시기 바란다. 언제나 우리를 향하시는, 하나님의 도우심을 믿으시기 바란다. 주님은 어떤 분이신가?

2. 때를 따라 도우시는 예수님(16)

“그러므로 우리가 긍휼하심을 받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것이니라” 예수님은 큰 대제사장으로, 사람의 필요와 욕구를 너무나 잘 알고 계신다.

그렇기에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주시는 분이시다. 그렇기에 우리는 때마다 곳마다 하나님께 기도해야 한다. T.A. 헤그레 선교사의 수기에 이런 내용이 나온다. “헤그레 선교사는 긴급하게 선교지에 갈 일이 생겼다. 황급히 비행장을 떠났다. 임박한 시간이었다.

그러나 비행기가 떠날 시간이 되었다고, 표를 주지 않았다. 그렇지만 헤그레 선교사는, 선교지로 가지 않으면 안 되는, 긴박한 상황이었다. 그래서 의자에 앉아 하나님께 기도하였다. 그러자 조금 후 놀라운 일이 생겼다. 방송을 통하여 들리는 음성이 있었다.

“갑자기 몰려온 안개로 인하여, 비행기가 연발하게 되었사오니, 이점 용서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헤그레 선교사는 창구로 가서, 표를 달라고 했다. 할 수 없이 그들은 표를 주었다. 비행기에 오르자, 안개가 걷히고 비행기가 이륙하였다.

하나님께서는 이같이,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주시는 분이시다. 구하면 주시는 분이시다. 간구를 하면 들어주시는 분이시다. 부르짖으면 응답하여 주시는 분이다. 주님께서는 어떻게 은혜를 주시나?

(1) 사람을 통해 은혜를 주신다.

하나님께서는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사람을 통하여 주시기도 한다. 우리 주변에는 내가 어려울 때, 적절한 도움을 줄 사람이 얼마나 있나요? 그 숫자가 많다면, 그 사람은 행복한 사람이다.

우리 주변 사람은, 하나님께서 내게 도움을 주는 통로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나와 전혀 상관없는 사람들도 알고 보면, 현재 내게 도움을 주는 사람이거나, 앞으로 도움을 줄 수 있는 사람이다. 우리 부모님, 배우자, 목사님과 성도들, 또한 이웃을 통해서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복을 주신다.

그러므로 아무리 못마땅해도,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살아야 한다. 그 사람이 내 사돈이 될지, 내 동지가 될지 아무도 모른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도우시는 방법 중에서, 가장 중요한 방법은 사람을 통해 돕는다는 사실을 잊지 마시기 바란다.

따라서 사람을 만날 때, 늘 기대와 감격을 가지고 대하라. 또한 새사람을 만나기를 두려워하거나, 경계하지 마시기 바란다. 옆에 계신 성도들은, 우리 교회에 들어오기 전에는 알지도 못하고, 상관도 없던 사람이었다. 그런데 하나님 때문에 만났고, 그 사람들 때문에 행복하다. 사람을 통해 도우신다.

(2) 공동체를 통해 은혜를 주신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도우시는 방법 중의 하나가 공동체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행복하도록 하도록, 3가지 공동체를 허락하셨다. 가정, 교회, 국가다. 이 3가지 공동체를 잘 이루어가야 행복하다.

이 공동체들을 통해, 우리는 복을 누리게 된다. 가정이 엉망인 사람은 아무리 행복을 얻으려 해도 얻을 수 없다. 또한 교회에 적을 두지 않았거나, 교회와의 관계가 불편한 사람은, 영적인 생활에서 문제가 되기에, 행복할 수 없다. 나라와 관계가 불편한 사람, 범법자가 되면, 행복할 수 없다.

우리는 일주일 동안, 많은 문제에 시달린다. 가족과의 관계에서, 직장에서 상사와 부하 직원간에, 심지어는 교회에서 봉사하다가, 교유들끼리도 상처를 주기도 하고, 상처를 입기도 한다. 그러나 주님 앞에 나와서 예배하는 시간에, 하나님께서 우리들을 용서하시는 사실을 체험해야 한다.

하나님의 은혜를 힘입어, 하나님께서 보여주신 목표를 향해, 다시 달려가야 한다. 이런 일이 우리 공동체 안에서 일어나고 있나요? 하나님의 보시기에, 아름다운 공동체로 자라가고 있나요? 우리의 이웃에 관심을 가져 보십시오. 우리 자신이 하나님의 축복의 통로가 되시기 바란다.

하나님께서는 힘든 삶을 이겨갈 수 있도록, 우리에게 공동체를 주셨다. 서로 돕고 살라는 말이다. 그래서 서로 사랑하라(요13:34-35). 서로 종노릇하라(갈5:13). 서로 기도하라(약5:13-18). 서로 격려하라(히10:25). 서로 받아라(롬15:7). 서로 화답하라(엡5:19), 서로 짐을 지라(갈6:2),

서로 용서하라(엡4:32), 서로 복종하라(엡5:21), 서로 하나됨을 지키라(엡4:3). 서로 화목하라(막9:50), 성경은 이렇게 많은 곳에서, 서로 아름다운 관계를 맺으라고 했다. 좋은 교회는 성도가 좋은 사람이 모이면, 좋은 교회가 된다.

(3) 직접 은혜를 주신다.

전능하신 하나님은, 우리의 형편과 처지를 누구보다도 잘 아시기에, 하나님의 도움을 받으면, 복중의 복이다. 그래서 시편기자들이 고백한 시를 보면, 하나님의 도우심이 있었다고 여러 곳에서 고백한다.

(시121:1) “내가 산을 향하여 눈을 들리라, 나의 도움이 어디서 올꼬, 나의 도움이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에게서로다”라고 했다. (시46:1) “하나님은 우리의 피난처시요 힘이시니, 환난 중에 만날 큰 도움이시라”라고 했다. 저는 우리의 생애가, 하나님의 도움을 풍성히 누리는 생애가 되기 원한다.

이스라엘 백성의 애굽에서의 구원을 살펴보면, 그들이 아무 것도 하지 않았다. 애굽을 나올 때도, 홍해를 건널 때도, 광야를 지날 때도, 전부 하나님께서 이끌어 주셨고 먹여주셨다. 주님의 도우심이 없었다면, 단 하루도 살 수 없었다.

마찬가지로 우리 생애도, 주님께서 주시는 도우심이 없다면, 단 하루도 살수 없음을 인정하시고, 감사하며 살기 바란다. 예수님을 믿어서 구원을 얻음도, 하나님의 자녀 됨도, 영생을 얻음도, 모두가 하나님의 도우심의 은혜다.

은혜는 하나님께서 주시는 선물이다. 가장 큰 은혜는, 하나님께서 주신 어떤 것이 아니라, 우리를 위해 행하시는 하나님 자신이다. 하나님 자신을 우리에게 주시는, 은혜를 받으시기 바란다.

3. 때를 따라 하나님의 도움을 얻기 위해, 담대히 나아가라(16).

‘담대히’라는 말은 헬라어로 ‘팔레시아’인데 ‘숨김없이, 뻔뻔스럽게’라는 뜻이다. 과거에는 지은 죄로 말미암아, 하나님 앞에 자유롭게 나갈 수가 없었으나, 죄를 숨기지 말고 자유롭게 나간다는 뜻이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 뻔뻔스럽게 나갈 수 있다. 왜냐하면 예수님께서 그 길을, 완전히 열어 주셨기 때문이다. 종교개혁자 마르틴 루터는, “사람에게는 관리, 상인, 농부, 혹은 노동자의 직책의 차이는 있을 수 있으나, 하나님 앞에서 만인은 다 동등하다”면서 ‘만인제사장직’을 강조하였다.

사람은 누구나 하나님 앞에서 제사장이기에, 모든 성도들은 은혜의 보좌로 나아가, 하나님을 만날 수 있다고 했다. 따라서 신앙의 핵심은, 은혜의 보좌에 나아가는데 있다. 구약 시대에는 짐승의 피와 대제사장의 중보를 통하여, 제한적으로 하나님께서 만나주셨다.

하지만, 신약 시대 이후 지금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시공의 제약을 받지 않고, 누구나 자유롭게 은혜의 보좌 앞에 나가, 하나님과 교제할 수 있다. 그러므로 문제가 있을 때마다, 은혜의 보좌 앞에 나아가야 한다.

‘나아간다’는 말은 현재형으로서 계속적인 행동을 말한다. 중단 없이 쉬지 않고, 하나님의 은혜를 찾는 모습을 말한다. 어쩔 수 없는 고민과 문제가 있을 때, 은혜의 보좌로 나아가면, 때를 따라 돕는 하나님의 은혜를 얻게 된다.

건국 대학교 교수인 유태영 박사는, 아버지가 머슴인 가난한 가정에서, 8남매 중에 여섯째아들로 태어났다. 가난하여 겨우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중학교에 가지 못했다. 소꼴을 먹이고 토끼를 기르며 살아야 할 자신의 운명이 애처로웠다.

그래서 하나님의 도움을 얻기 위해, 은혜의 보좌 앞에 나아갔다. 새벽기도를 하루도 빠지고 않고 다녔다. 하나님께서 주신 약속을 붙잡고 기도했다. 그리고 꿈을 가지고 상경하여, 구두닦이를 한다. 아무데나 자다가 새벽 종소리가 울리면, 근처 교회의 새벽기도를 나갔다.

기도하는 가운데 하루는, 하나님께서 감동을 주셔서, 덴마크 국왕에게 편지를 쓰게 되었다. “저는 한국농촌을 위해 일하고 싶습니다. 그러니 농업이 잘 발달되어 있는 덴마크에서, 공부하도록 허락해 주십시오.”

편지를 받은 덴마크 국왕은, 감동 받아 그를 초청한다. 결국 돈 한푼 없이 유학하여, 박사학위를 받았다. 고국에 돌아와서, 새마을운동을 힘차게 하였다. 그는 농촌을 살리는데, 귀하게 쓰임 받았다. 때를 따라 도우시는 하나께서 역사하셨기 때문이다.

우리도 하나님 앞에 약한 것을 가지고 나아가, 하나님의 긍휼히 여김을 받을 때, 하나님의 도움을 입게 된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긍휼히 여기는 분이다. 우리가 약하여 지치고 상해 있을 때, 그냥 지나칠 수 없는 분이다. 은혜 받는 비결은, 믿음을 지키고, 주님 앞에 담대히 나아갈 때 임한다.

히2:18절 말씀처럼, 주님께서 친히 시험을 받아 고난을 당하신 분이시기에, 시험받는 자들을 능히 도와 주신다. 따라서 은혜 받는 성도가 되려면, 하나님의 긍휼히 여기심을 받아야 한다. 하나님께서 긍휼히 여기시는 사람은, 자기 힘을 의지하는 사람이 아니다. 물질을 의지하는 사람이 아니다.

자기 명철, 자기 지혜, 자기 경험을 의지하는 사람이 아니다. 교만한 사람이 아니다. 자신의 모습 그대로, 하나님께 가지고 나오는 사람들이다. 늘 넘어지고 쓰러지는 연약한 모습, 세상에서 실패하고 지친 모습, 병들어 괴롭고, 아픈 마음을 그대로 가지고 나오면, 긍휼히 여겨주신다.

따라서 어렵고 힘든 일 앞에, 실망하지 마시기 바란다. 오로지 믿음의 눈으로 하나님을 바라보며, 하나님의 도우심을 기다리시며 나오시기 바란다. 하나님께서 꼭 필요할 때, 도와 주신다. 하나님의 때에 하나님의 방법으로 도와 주신다.

아무 쓸모 없는 돌이라도, 미켈란젤로의 손을 거치면, 걸작품이 나온다. 이같이 버려진 폐품이라도 예술가의 손에 들어가면, 엄청난 가치를 발휘하듯이, 하나님의 긍휼을 받게되면, 누구나 가치 있는 존재로 변화된다. 이런 은혜가 넘쳐나시기 바란다.

지금 삶의 자리에서, 당하는 궁핍함과 실패의 위협이 있고, 육체의 질병으로 인한 수많은 고통과 환란이 있나요? 인간관계를 통하여 찾아오는 공허함으로 힘드십니까? 이제 우리들의 살길은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주시는, 하나님의 보좌 앞으로 나아가는 길밖에 없음을 믿으시기 바란다.

그래서 주님께서 때를 따라 돕는 은혜로 살아가는, 복된 성도들이 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한다
(이건기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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