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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의 열매를 맺는 교회(요한복음 15장 7~8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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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의 열매를 맺는 교회(요한복음 15장 7~8절)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 너희가 과실을 많이 맺으면 내 아버지께서 영광을 받으실 것이요 너희가 내 제자가 되리라."

요한복음 15장에 아버지 하나님은 포도원 주인이라고 비유하셨고, 예수님께서는 자신을 참 포도 나무라고 비유하여 말씀하며, 성도들은 가지로 비유합니다. 문제는 원 줄기에 붙어 있는 가지라고 하더라도 과실을 맺지 못하면 주인되시는 하나님 아버지께서 말하기를가 그 과원지기에게 가지를 잘라 버리는 일을 하라고 명령하신다고 열매의 중요성을 엄격히 알려주셨습니다. 예수님은 마태복음 12장 열매를 보아서 그 나무를 안다고 하셨습니다. 어떤 나무는 무슨 나무인지 몰랐다가 열매가 맺혀진 것을 보고 그런 나무였구나 하는 것을 알게 됩니다. 이처럼 열매는 그 나무가 어떤 나무인가를 정확하게 밝혀 주는 것이되므로 열매를 반드시 맨저야 할 것을 권고하셨는데 이것은 하나님의 심판 기준이 공의로움을 밝히고 있는 대목입니다.

본문 5절 말씀에는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니 저가 내 안에 내가 저 안에 있으면 이 사람은 과실을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이라."고 말씀하면서 예수님께서는 신자가 철저히 주안에서 말씀을 통해 열매 맺는 신앙생활을 하라고 명령하십니다.

그래서 7절에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고 분명한 약속을합니다. 여기에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는 누구를 의미합니까? 본문에서는 "내가 참 포도나무"라는 말씀을 하십니다. 여기에서 특별히 "참"이라는 말이 전제되어 있습니다. 헬라 말에는 이 "참"을 표현 하는데 '알레세이아' 라는 단어와 '알레씨노스아' 라는 두 단어를 사용합니다.

'알레세이아'로 표현되는 참은 사실로서의 참을 표현하고, '알레씨노스'는 거짓의 반대를 뜻하는 참을 말합니다. 그 중 본문에서 말씀하신 "참"은 거짓에 반대되는 의미의 참을 말하고 있습니다. 지금 예수님은 거짓 것들이 많지만??나는 참 포도나무라는 의미의 말씀을 하신 것입니다. 요한복음에는 이 알레씨노스로 표현된 "참"이라는 말이 무려 21회나 있습니다. 이는 요한복음에만 나타나는 특징있는 표현입니다.

예수님께서 나는 참 포도나무라고 하실 때의 이 "참"이라는 말씀은 거짓된 것이 아니라는 뜻 뿐만 아니라 생명 있는 포도나무라는 보다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이것은 말라버려 생명이 없는 포도나무가 아니라 살아있는, 생명이 있어서 많은 열매를 맺을 수 있는 좋은 포도나무라는 뜻이다. 그리고 깊은 뜻은 우리와 그리스도와의 관계를 포도나무와 가지와의 관계로 설명하려는 것입니다.

동시에 그것은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말씀을 그 속에 가진 사람을 의미합니다.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이란 말씀은, 주님의 말씀이 그들의 마음의 왕좌를 점령하였다는 나타내는 것입니다. 주님의 말씀을 이 땅에 가장 큰 진리(代理)로 생각하고 사랑하며, 그 권위를 높여, 주님의 말씀을 지키고, 순종하는 사람에게 살아 계신 하나님께서 함께 하셔서 열매를 맺게 해 주신다는 것입니다.

(요15:9-10)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신 것 같이 나도 너희를 사랑하였으니 나의 사랑 안에 거하라. 내가 아버지의 계명을 지켜 그의 사랑 안에 거하는 것 같이 너희도 내 계명을 지키면 내 사랑 안에 거하리라."

이와 같이 주님 안에 거한 생활, 즉 말씀을 지키면 영원하신 하나님의 구원 계약에 참여한 자로서 믿음으로 주님 뜻에 따르면(신종信從) 그리스도와 연합하게 되므로 하나님의 사랑받는 자가 되며, 동시에 주님과 연합한 신자의 신분으로서는 그리스도의 이름 권세를 쓸 수 있고, 또한 성령께서 그런 신자의 의지를 거룩하게 변화시켜 (성화聖化) 주님의 뜻대로만 기도할 수 있도록 도와주시는 복을 받게 됩니다. 따라서 말씀 안에 거하며, 말씀으로 구하는 성도의 기도는 반드시 응답받게 됩니다.

그렇다고 해서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는 해석을 하나님의 뜻인 말씀대로 기도해야 할 진리를 무시하라는 것이 아닙니다. 다시 말하면 벌써 주님과 연합한 신자의 생활이 될 때 기도응답의 조건으로 되어 있습니다. 신자가 주님과 연합한 것은, 위에 말한 바와 같이 말씀과의 계약 행위입니다. 곧, 말씀을 통해 하나님의 뜻을 선택하는 것이 기본이고, 그 결과로 나오는 순종이 그 응답으로 이어지게 됩니다. 그러므로 외부적 생활에서만 어쩔 수 없이 하나님의 뜻을 순종하는 얕은 경건이 아니고, 하나님의 말씀과의 계약에 전적으로 순종하는 내면적인 경건이 하나님의 전적인 응답을 보장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구해야 무엇이든지 응답 받는다는 진리는, 요한이 그 시선에서도 말씀한 바 있습니다. 곧, "그를 향하여 우리의 가진 바 담대한 것이 이것이니 그의 뜻대로 무엇을 구하면 들으심이라"고 한 말씀이 그것이다(요일 5:14). 기도 응답을 받는 사람들은 내면적인 경건의 소유자들로 말씀 순종이 하나님의 마음을 움직이고, 역사를 일어나게 합니다.

기도 응답을 많이 받은 모세는, "여호와께서 대면하여 아시던 자"였고(신 34:10), 히스기야는, 기도 하여 자기의 병을 고침 받았습니다(사 38:2-5; 왕하 20:5-6). 또 그는 기도하여 앗수르 군대 18만 5천 명을 파멸시켰는데(왕하 19:14-19, 35), 하나님 앞에서 자백한대로, "내가 진실과 전심으로 주 앞에 행하며, 주의 보시기에 선하게 행한 것을 기억하옵소서."라고 할 만큼,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경건한 신앙을 소유를 하였습니다.

기도 응답을 받을 수 있는 것은, 이렇게 사도들을 위시하여 일반 신자들 전체에게 허락되었습니다. 그것이 그렇게 된 원인은,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모든 짐을 져 주시는 대제사장이 되셨기 때문입니다.

히 4:14-16에 말하기를 "그러므로 우리에게 큰 대제사장이 있으니 승천하신 자 곧 하나님 아들 예수시라 우리가 믿는 도리를 굳게 잡을지어다. 우리에게 있는 대제사장은 우리 연약함을 체휼하지 아니하는 자가 아니요. 모든 일에 우리와 한 결 같이 시험을 받은 자로되 죄는 없으시니라 그러므로 우리가 긍휼하심을 받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것이니라."고 하였습니다.

약 5:17에 말하기를, “엘리야는 우리와 성정이 같은 사람이로되 저가 비 오지 않기를 간절히 기도한즉 삼 년 육 개월 동안 비가 아니 오므로 다시 기도 한 즉 하늘이 비를 주고, 땅이 열매를 내었느니라.”고 말씀합니다. 그러므로 큰 죄인들도 회개하며, 기도하면 응답을 받는데, 구약 시대에도 그러하였고(대하 33:10-13), 신약 시대에는 더욱 그러하여 변함이 없습니다.

눅 18:13-14에 말하기를, "세리는 멀리 서서 감히 눈을 들어 하늘을 우러러 보지도 못하고 다만 가슴을 치며 가로되 하나님이여 불쌍히 여기옵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하였느니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 사람이 저보다 의롭다 하심을 받고 집에 내려갔느니라. 무릇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지리라 하시니라" 하면서 죄인 된 세리가 응답을 받았습니다.

계 3:19-20에는 말하기를, "무릇 내가 사랑하는 자를 책망하여 징계하노니 그러므로 네가 열심을 내라 회개하라. 볼지어다. 내가 문 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로 더불어 먹고 그는 나로 더불어 먹으리라."고 회개하면 은혜를 베푸시겠다고 약속합니다.??

그러나 본문 요한복음 15:8 “너희가 과실을 많이 맺으면 내 아버지께서 영광을 받으실 것이요. 너희가 내 제자가 되리라. 고 선언합니다.”

다시 말하면 과실을 맺어야 할 나무가 열매를 맺지 못하면, 그것을 찍어 버릴 수 밖에 없다. 과실나무를 심는 자는 목재를 쓰려고 심지 아니하고, 열매를 따려고 심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열매를 맺지 못하는 신자는 나무와 같이 찍힘을 받을 위태로운 자리에 있는 것이라고 선언하므로 우리 미스바교회는 2006년도에는 반드시 말씀 안에 거하며, 순종하여 좋은 열매를 맺어야 할 줄 믿습니다.


1. 감사의 열매를 맺자.

망아지가 어미에게 불평했답니다. "저 돼지를 보세요. 우리는 일한 만큼 만 먹는데 돼지는 그렇지 않아요.아무 일도 하지 않고 먹기만 하잖아요. 이건 불공평한 처사라구요? 우리는 일하는 것에 비하면 먹이가 더 있어야 해요." 불평하는 새끼들에게 어미가 말했습니다.

" 에들아! 좀 기다려보렴. 그러면 그 이유를 알게 될 거야?" 그래도 항상 새끼들은 불평이 계속되었지만 여전히 어미는 같은 말만 계속했습니다. 가을이 되자 돼지는 어느날 도살장으로 끌려가 도살당했습니다.

그때가 거 보란 듯이 어미가 쌔끼들에게 말했답니다. "돼지는 많이 먹고 살이 쪄 죽고만 거야! 사람은 그걸 노리고 먹이를 준 거란다."

무엇을 교훈합니까? 먹는 것만을 위해 산다면 짐승과 다를바 없다는 교훈입니다. 선도는 하나님의 귀한 사역에 게으른 자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부지런히 주님을 섬기는 헌신자가 되어야 마땅합니다.

예수님께서 아버지의 계명(율법)을 지켜(율법을 완성) 아버지를 사랑하신다는 표시를 했습니다. 그처럼 신자들에게도 예수님의 계명(12절에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을 지키면 예수님의 사랑 안에 거하는 것으로 간주하겠다고 말씀합니다.

또한 말씀에 순종하며,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헌신하고 순종하는 충성된 일꾼에게 주시는 선물이 기쁨입니다.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은 내 기쁨이 너희 안에 있어 너희 기쁨을 충만하게 하려함이니라(요15:11)."고 하셨습니다. 이 기쁨은 내가 만들어 내는 기쁨이 아닙니다. 그렇다고 해서 내가 세상에서 경험할 수 있는 기쁨은 더군다나 아닙니다. 이 기쁨은 내가 애써서 누리는 기쁨도 아니며, 오직 예수님께서 가지고 계셨던 기쁨이요. 말씀을 순종하며, 하나님의 뜻에 헌신하는 성도와 직분 자에게 주시는 선물이며, 성령을 통해 신자에게선물로 주어진 기쁨을 말합니다.

"항상 기뻐하라" 고 데살로니가 교회를 향해 말했던 바울의 그 기쁨 역시 없는 기쁨을 만들어 내라고 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렇다고 해서 억지로 기쁘지 않는데 기뻐하는 척하라는 말도 아닙니다. 여기서 기쁨 역시 세상에서 누릴 수 없는 기쁨이 우리에게 주어 졌는데, 내가 아닌 예수님의 영으로 말미암아 아버지 하나님께 당당히 나아갈 수 있는 그런 일이 벌어졌으니 기뻐하지 아니 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 기쁨은 어떠한 어령움과 고난 고통과 형편, 처지를 당하고 있다할지라도 뺏을 수 없는 기쁨이었습니다. 마치 요한복음 14장에서 평안을 주노니 세상이 주는 평안과 같지 않다고 할 때 그 때의 평안과 같은 종류인 것이었습니니다.

철저히 보혜사 성령에 의해 신자는 아버지 안에 거할 수 있으며, 말씀 순종과 헌신으로 땀을 흘리며, 십자가를 지는 성도에게 세상에서 얻는 기쁨이 아니라 바울이 체험한 진정한 기쁨을 주십니다. 이 비밀을 아는 성도는 법사에 감사생활을 할 수 있습니다.

감사가 무엇입니까? 인간에게만 있는 최고의 덕이 바로 감사입니다. 그러므로 감사를 아는 자가 최고의 인격자입니다. 그리고 감사는 은혜를 깨닫는 자에게만 있는 행위이고, 신앙이 성숙되었다는 표시이며, 자신의 육체와 정신과 영적생활에 유익한 것이고, 더 큰 축복을 받는 비결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감사를 생활화시켜야 합니다. 감사하는 마음은 우리의 삶을 훈훈하게 지펴주는 불씨와 같은 것입니다. 원망과 불평과 불만이 가득 찬 세계는 한대지방과 같습니다. 그러나 "감사합니다, 수고하십니다. 주신 은혜에 고맙습니다."라는 따뜻한 감사의 말 한마디는 우리 삶을 꽃동산처럼 아름답게 만들고 행복한 인생이 되게합니다. 감사는 이 세상의 어떤 것보다 우리의 마음을 바꾸고, 환경을 변화시키고, 문제를 극복하게 하는 능력이 있습니다.

오늘 우리에게 어떠한 감사의 노래가 있습니까? 무엇으로 감사할 수 있겠습니까? 여러분 한 사람 한 사람이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면서 감사드릴 때에 감사의 조건을 어디에 근거하십니까? 나같은 죄인를 구원하시고, 나를 살려 주시고, 생명록에 내 이름을 기록하시고, 영원한 천국으로 인도하시며, 선한 목자 되시어 나를 이끌어 주시고, 나를 택하사 구원의 백성으로 삼으신 하나님을 기뻐하며 감사하며, 십자가의 의로 거룩한 백성으로 세우신 하나님을 기뻐하며, 감사하십시다.

지난 날 모든 시험과 역경에서 이끌어 내셨던 하나님을 기뻐하며, 감사하십시다. 질병과 낙심과 좌절 가운데서 구원하셨던 하나님을 기뻐하며 감사하십시다.

나의 영혼을 위해 주님의 사역자들과 목회자들을 주신 하나님을 기뻐하며, 감사하십시다. 믿음의 터 우리들의 미스바교회와 성도들을 만나게 해주신 하나님을 기뻐하며, 감사하십시다.

특별히 오늘 천사도 흠모할 만한 귀한 직분을 맡겨주나를 높은 곳에 세워주시어 귀한 직분을 맡겨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기뻐하며, 노래하며 감사하여야 할 것입니다. 귀한 임직을 허락해 주신 것에 감격과 감사가 있기를 복 빌어 드립니다.

내 가정에 보배로운 자녀들을 주시고, 길러주신 하나님을 기뻐하며 감사하십시다. 일할 수 있는 건강과 직업과 산업을 주신 하나님을 기뻐하며, 감사하십시다. 감사할 수록 감사의 조건은 더욱 풍성해 지기 마련입니다. 비록 지금 세상적인 조건으로 감사하기 어려울 찌라도 하나님을 기뻐하며 감사하십시다.

하박국 선지자는 하박국 3장 17~19절에서 "비록 무화과나무가 무성치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밭에 식물이 없으며, 우리에 양이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을 찌라도 구원의 하나님을 인하여 기뻐하리라. 주 여호와는 나의 힘이시라. 나의 발을 사슴과 같게 하사 나로 나의 높은 곳에 다니게 하시리로다." 라고 고백했습니다.

우리 미스바교회 성도들도 비록 무화과나무가 무성치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밭에 식물이 없으며, 우리에 양이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을 찌라도 나의 구원의 하나님을 기뻐하며, 감사하십시다.

결실과 축복의 계절에 오직 하나님의 구원을 노래하며 기뻐하고, 찬송하며 감사하십시다. 우리 삶속에 예언자의 고백처럼 감사로 가득히 채웁시다. 지금 현재 우리의 환경과 처지와 입장이 어떠하든지 간에 무조건 감사해 봅시다. 감사는 하나님의 축복을 여는 문이며, 하나님의 은혜는 감사의 문을 통해서 들어오기 때문입니다. '축복은 감사의 문으로 들어오고, 불평의 문으로 나간다.'라고 하는 이 교훈을 꼭 기억합시다.

어떤 소년이 학교 가기를 싫어했습니다. 운동화 때문이었습니다. 가난한 생활 에다 엄마도 일찍 잃었습니다. 일용직을 하는 아버지는 지체부자유자였습니다. 최선을 다했지만 항상 모든 것이 부족했기에 아들이 원하는 것을 해 줄 수가 없었습니다. 아버지는 아들의 고민을 알고 있었지만 아들을 위해 할 운동화를 사 줄 형편이 되지 못했습니다.

며칠 후 아침에 소년은 학교에 가려고 신발을 찾았다가 깜짝 놀랐습니다. 새 운동화는 아니지만 자신의 발에 맞는 깔끔한 운동화가 놓여 있었습니다. 새벽에 나간 아버지는 운동화 밑에 이런 글을 남겨 놓았답니다.

"세상에서 가장 좋은 신발은 아니지만 세상에서 가장 가치 있는 발걸음으로 살아 가거라."는 말과 함께 아들은 아버지의 사랑을 느낄 수 있었답니다.

성도 여러분! 다행히 하나님은 모든 것을 해 주실 수 있는 전능하신 분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에게 시련과 역경과 어려움과 고통을 허락하신다면 선한 뜻이 있는 줄 믿습니다. 그러므로 슬픔 가운데 있다 하더라도, 환란 가운데 처했다 할지라도, 엄청난 손해를 보고 어찌할 바 모른다 할지라도, 육신의 질고로 아픔을 견디어 내기 힘들다고 할지라도, 내 가족과 이웃과 자신에게 죽음이 다가왔다 할지라도 나의 구원의 하나님을 기뻐하고, 찬송하며, 감사해 보십시다. 하박국처럼 감사와 기쁨과 찬송으로 헌신의 제물을 드리는 온 성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부탁합니다. 감사로 주신 직분을 잘 감당해서 신령한 기쁨으로 충만한 감사의 삶을 열어 가시기를 복 빌어 드립니다.


2. 전도의 열매를 맺자.

그리스도인들은 예수에게서 떠나면 아무 것도 할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사업을 시작하는 분들에게 말씀을 전합니다. 아무리 많은 자금과 풍부한 지식이 있고, 평생 쌓아온 익숙한 경험과 노동력이 있다하더라도 예수에게서 떠나면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마음으로??하라는 말씀으로 권면을 한다.

진정 이런 생각을 해 보셨습니까? 과연 나는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떠나면 아무것도 아니라는 생각을 말입니다. 지금 내게서 예수를 빼고나면 내 인격도 내 재산도, 내 명예도, 내 건강도 이대로 무너지고 마는 것이라는 생각을 배 보았는냐는 것입니다.

가만히 보면 예수를 떠나서도 무엇을 할 수 있는 것처럼 생각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교회에 나오지 않고도 무엇을 할 수 있는 것처럼 생각을 합니다. 그래서 어떤 이들은 "요즈음 왜 교회를 자주 빠지십니까?"하고 물으면 "사업이 잘되어 워낙 바빠서 빠집니다"라는 것이다.

그런가 하면 어떤이들은 "워낙 사업이 안되서 빠집니다"라고 말하곤 합니다. 여러분! 이런 태도는 올바른 신앙인의 자세가 아닙니다. 사업이 잘되어도 좋고 안되어도 좋으며, 출세를 해도 좋고 못해도 좋으니 내가 예수 그리스도에게 붙어 있는 것이 소중하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것이 흔들리고 잘못되면 인생이 끝나는 것으로 알아야 합니다.

간혹 고등학교 3학년이 되면 대체로 교회를 나오지 않는다고 합니다. 심지어는 잘 믿는 집사님까지도 교회고 뭐고 아무데도 가지말고 공부만 하라고 자녀에게 말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고등부마다 아예 3학년은 없이 1, 2학년만 있는 것이 보통이라고 합니다.

미스바교회 성도 여러분! 이 일을 두고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교회에 잘 나가던 아이들에게 수능을 보기 위해서 공부해라는 것은 당연한 요구이지만 신앙생활까지 내 팽게치고 공부하라는 그 마음씨 가지고 진로가 보장되는 대학을 들어 가도록 하나님게서 축복하겠으며, 또 들어가면 무엇을 하고, 졸업을 하면 또 무엇을 하겠습니까?

성도는 언제, 어디서나, 무슨 일을 하든 범사에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떨어지면 아무 것도 할 수 없다는 명확한 신앙소속, 천국시민 의식 속에서 살아가야 합니다. 만약 그렇지 않고 예수 그리스도를 떠나서도 무엇이 될 것처럼 생각한다면 그 생각 자체부터가 하나님 앞에서 얼마나 잘못된 것인가를 알아야 합니다.

이에 사도 바울은 내게 사는 것이 그리스도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빌 1:21) 이 말은 내가 그리스도를 위해서 산다는 말이 아닙니다. 사는 그대로, 그 자체가 그리스도의 뜻과 말씀을 쫒아 산다라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 없는 나는 아무것도 아니다라는 확고한 기준을 정하여 성도는 바른 신앙인의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내가 참 포도나무요"라는 말씀에 이어 "내 아버지는 그 농부라 무릇 내게 있어 과실을 맺지 아니하는 가지는 아버지께서 제해 버리시고, 무릇 과실을 맺는 가지는 더 과실을 맺게 하려하여 이를 깨끗케하시느니라."라는 말씀을 하십니다.

사실이 그렇습니다. 포도나무를 전정하는 사람은 항상 잘 살펴서 열매 맺지 않는 줄기가 보이면 사정없이 잘라버려야 합니다. 열매 맺는 줄기는 충실한 열매로 자랄 수 있도록 깨끗하게 소독을 하며 잘 다듬어 주어야 합니다. 이와 같이 열매를 맺지 않는 줄기를 잘라버리는 것은 열매맺는 줄기로 흡수될 진액이 그리로 흘러들어 진액이 낭비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누가복음 13장에 기록된 무화과나무의 비유에도 보면 3년 동안이나 열매를 맺지 못하는 무화과나무를 보시고는 "찍어버리라, 어찌 땅만 버리느냐?"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열매를 맺지 않는 것은 빨리 찍어버려야 다른 나무, 다른 가지에 도움이 뙵니다. 만약 그러지 않고 열매를 맺지 않는 가지를 두고 기어이 맺게해 보겠다며 계속 시간을 끌다보면 진작 열매를 맺은 가지로 가야될 진액을 충분히 보내지 못하게 되어 열매 맺은 가지까지 피해를 보게 될 것이기 때문에 과실을 맺지 않는 가지는 잘라버리라는 말씀입니다.

이는 실로 무서운 말씀입니다. 이런 경우의 성경을 보면 조금은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왜냐하면 맺지 못하는 가지는 맺게해 주어야 하고, 잘 맺는 가지는 좀 덜 맺게함으로 평준화가 되었으면 좋겠는데 성경은 그렇게 말씀하고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 보다는 오히려 적은 자의 한 달란트를 빼앗아 열달란트를 가진 자에게 주라고 하시며, 열매 맺지 않는 가지는 사정없이 잘라버리라고 하시는 것이 하나님의 명령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진리를 알아야 한다. 그러기에 본문에도 아버지는 농부로서 과실을 맺지 않는 가지는 제하여 버리고 과실을 맺는 가지는 더 과실을 맺게 하기 위하여 이를 깨끗케 하신다고 하였습니다. 이것이하나님께서는 있는 자에게 더 주신다는 약속이요, 하나님의 선한 의도인 것입니다.

본문에 의하면 가지가 원줄기에 붙어 있는 상태를 가리켜서 안에 거한다는 말로 표현하고 있다. 이 의미는 생명력의 연결을 말한다. 그러면, 신자의 생명력 있는 좋은 열매는 무엇을 의미 하겠습니까? 그것은, 우리가 성령의 은혜로 행실을 바로 행하는 것을 말하며(갈 5:22-23), 동시에 사람들을 주님께로 인도하는 전도자의 생활을 의합니다.

잠언 11:30절에 말하기를, "의인의 열매는 생명나무라 지혜로운 자는 사람을 얻느니라"고 하였다. 사람의 영혼은 귀합니다. 예수님은 말씀하시기를, 한 영혼이 온 천하보다 귀하다고 하셧습니다(마 16:26). 예수님께서 사람의 영혼이 귀하다고 하신 이유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하면, 그에게 여호와의 빛이 나타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영국의 위대한 사상가이며, 미술 평론가,사회 개혁자인 존 러스킨(1819∼1900)은 어느 날 『값비싼 손수건인데 잉크자국으로 얼룩져 못쓰게 되었습니다.』라고 말하는 부인을 만났답니다.

러스킨은 말없이 그 손수건을 받아 얼룩 옆에 세련되고 우아한 무늬를 함께 그려 넣었습니다. 그러자 「얼룩져 못쓰게 된 손수건」은 멋진 예술품으로 다시 태어났고 부인은 탄복을 하게 했습니다. 그때 러스킨은 오히려 스스로 깨달았답니다. "망가진 인생의 재활용은 의미 부여에 따라 가능하다는 것"을 발견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만나게 하고, 예수를 믿게 하는 전도는 가장 귀한 인생 의미를 깨닫게 해주는 일이며, 죽은 자를 살리고, 지옥 불에서 건져내는 일입니다.

잠언 20:27절에 말하기를, "사람의 영혼은 여호와의 등불이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은, 사람들로 하여금 이런 등불이 되게 하는 운동, 곧, 전도 운동을 기뻐하십니다. 하나님은 의인 99명보다 회개하는 한 사람을 더 기뻐하십니다(눅 15:17).

아무리 귀한 직분을 받았더라도 전도의 열매를 맺지 못한다면 가장 충성과 거리가 먼 사람입니다. 적은 직분은 없지만 알아주지 않는 직분이라도 영혼을 구원한 사람이라면 천국에서는 별과 같이 빛나는 충성스러운 일꾼으로 하나님께 인정 받게 될 것이기에 임직자와 성도 여러분은 전도에 최선을 다하여 영적인 자녀를 낳고, 충성된 일꾼들이 되시기를 진심으로 부탁합니다.


3. 헌신의 열매를 맺자

지금이야말로 열심히 일할 때인 줄 믿습니다. 미국 독립선언문을 기초한 정치인이며, 저술가였던 벤저민 프랭클린은 일하는 사람을 보면 꼭 격려했습니다. 특히 그는 흙먼지를 뒤집어쓴 채 열심히 일하는 농부를 만나면 정장을 했어도 그냥 지나치는 법이 없이 마차에서 내려 모자를 벗고 인사를 했다고 합니다.

이런 모습을 옆에서 지켜 본 비서가 하루는 "선생님께서는 어째서 농부를 그리도 존경하십니까?"라고 물어보았습니다. 그러자 프랭클린은 "이 사람아!,서서 일하는 농부가 앉아 있는 신사보다 높은 사람이라네."라고 알려 주었답니다.

스위스 알프스 산맥에 있는 하나의 물방울이 북쪽 골짜기로 방향을 잡으면 그 물방울은 라인강을 타고 북해로 흘러갑니다. 그 물방울이 동쪽 골짜기로 방향을 잡으면 그 물방울은 다뉴브 강을 통해 흑해로 흘러갑니다. 그 물방울이 남쪽 골짜기로 방향을 잡으면 그 물방울은 로네 강을 통해 지중해로 흘러갑니다. 처음 방향을 잡을 때 약간의 방향 차이로 그 물방울은 수천 킬로미터가 떨어진 다른 바다로 흘러 들어가게 됩니다. 작은 방향 차이, 작은 헌신의 차이가 나중에는 큰 차이가 됩니다.

이처럼 작은 차이가 나중에는 큰 차이가 되는 것을 볼 때 현재 우리의 작은 헌신이 얼마나 중요한지 모릅니다. 적은 열매가 맺기 시작하면 마침내 탐스러운 결실을 가을에 얻게 됩니다.

지금까지 전 세계적으로 존경을 받는 미국의 16대 대통령인 링컨은 취임식에서 이런 연설을 해 사람들에게 깊은 감명을 주었다.

"지금 저는 워싱턴 대통령 이래 그 어떤 역대 대통령들이 겪었던 어려움 보다 더 큰 어려움에 직면해 있습니다. 전임 대통령들이 항상 의지했던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면 저는 결코 성취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이제 전능하신 하나님의 도움을 바라며, 그 분을 의지합니다. 저를 위해 간구해 주십시오. 그리고 다 함께 성취를 위해 기도해 주십시오. 그러면 반드시 이루어질 것입니다."라고 국민들에게 부탁을 했습니다.

저는 오늘 이 교훈을 인용하여 성도 여러분들에게 간절히 부탁합니다. 우리에게 맡겨진 귀한 사명들을 위해 반드시 감당하겠다는 의지가 있어야 하며, 목표를 위해 합력하여 함께 기도하며, 적극적으로 헌신하여 열매를 얻고자 하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작은 물방울이 모여 큰 강물이 되듯이 작은 땀방울이 모여 큰 인생을 만듭니다.

주후 1809년 가난한 목수의 가정에 둘째 아이가 태어났습니다. 주위에서는 이 아이에게 별다른 관심을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어머니는 아이의 미래를 내다보고 저녁 식사를 마친 후면 꼭 아이를 무릎에 앉혀 놓고 성경을 읽어주었습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이 아이가 아홉 살 되던 해 어머니는 풍토병에 걸려 숨지고 말았습니다. 어머니는 숨지면서 이런 말을 남겼습니다.

"부자나 위인이 되기보다는 성경을 힘써 읽는 사람이 되라." 후에 이 아이는 미국에서 가장 존경과 관심을 받는 위대한 대통령이 되었습니다. 링컨의 이야기입니다.

저는 오늘 사무총회를 통해 한해를 결산하고 새로운 목표를 향해 나아가고자 하는 우리 미스바교회 성도 여러분들에게 또한 임직을 받은 분들과 우리 교회에 장로, 권사, 안수집사 추대를 위해 투표를 하고, 그 결과에 승복하게 될 여러분들에게 가장 중요한 신앙은 하나님의 말씀 안에 순종하며, 실천하며, 열매를 맺는 생활이 되어야 한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강조하며, 신년 교회 생활의 목표를 삼고 목회를 구상하고 적용하려고 합니다.

AFP통신은 최근 영국에서 상습적인 절도범이 빈 집을 털었다가 그만 현관과 창문에 자신의 귓바퀴 자국을 남기는 바람에 체포되었다고 보도했습니다.25세 된 시웰이라는 범인은 집 안에 사람이 있는지 없는지를 알기 위해 현관문과 창문에 귀를 바짝 댔다가 자국을 남겼는데 사건 후 신고를 받고 달려온 경찰은 현장조사를 하다가 창문에 남겨진 귓 자국을 발견했고, 즉시 모양을 본떠 추적한 끝에 결국 시웰을 검거했다는 것입니다.「죄의 흔적」은 아무리 미세한 것이라도 반드시 드러나게 된다는 것을 증명한 셈이지만 말씀으로 살아가는 모습은 열매를 남게 됩니다.


우리는 예수를 믿습니다. 따라서 그를 구주로, 선생으로, 주님으로, 생명으로 받아들입니다. 그리고 그로부터 진액을 공급 받는 절대적 생명관계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따라서 거기로부터 끊어지면 죽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결코 끊어짐이 없이 꼭 붙어 있으면서 계속 말씀과 성령과 은혜의 진액을 받으며 살아가야 합니다. 오늘도 주님께서는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는 자기 존재의 정체의식을 분명히 하고 그 의식과 그 체험에 살아갈 것을 말씀하고 계시며, 열매를 맺을 것을 부탁하십니다.

사무총회에 임직을 받으신 성도 여러분! 한달도 채 남지 않는 연말과 신년에는 무엇보다 말씀의 열매인 감사와 기쁨의 열매, 전도의 열매 헌신의 열매를 맺는데 전력하는 모든 성도 여러분들이 되시어 과원의 주인되시는 하나님께 기쁨을 드리고, 반드시 열매를 맺어 인정받고, 승리하시기를 간절히 복 빌어 드립니다. (황영복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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