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이 어떤 시기인줄 아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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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로마서 13장 11 - 14절 마경훈 목사
본문 : 로마서 13장 11 - 14절
11 또한 너희가 이 시기를 알거니와 자다가 깰 때가 벌써 되었으니 이는 이제 우리의 구원이 처음 믿을 때보다 가까왔음이니라
12 밤이 깊고 낮이 가까왔으니 그러므로 우리가 어두움의 일을 벗고 빛의 갑옷을 입자
13 낮에와 같이 단정히 행하고 방탕과 술 취하지 말며 음란과 호색하지 말며 쟁투와 시기하지 말고
14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로 옷입고 정욕을 위하여 육신의 일을 도모하지 말라
로마시대는 영적으로 보면 한밤중이었습니다. 그러나 믿지 않는 로마인들에게는 그 때가 밤이 아닌 낮이요, 발전과 번영의 때로 생각되어 호사한 연회를 베풀고 술 취하며, 음행과 방탕이 보편화된 때였습니다. 롬1:26,27에 보면 동성연애까지 하던 시절이었다. 하나님은 바울을 통해서 그곳에서 살고 있는 그리스도인들에게 밤이 깊고 낮이 가까웠다고 말씀합니다.
지금은 어찌 보면 로마시대보다 더 깊은 밤입니다. 역사상 지금처럼 풍요로운 때가 없었습니다. 그렇다고 지금을 낮이라고 생각하면 안 됩니다. 영적으로는 지금은 캄캄한 밤입니다. 이제 곧 새벽이 됩니다. 주님이 오신다는 말입니다. 예수님은 마지막 때의 징조에 대해 마 24:3-15절에 구체적으로 예언하셨는데 바로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기의 현상과 맞아떨어집니다.
① 마 24:5에 보면 말세의 징조로 거짓 그리스도가 많이 나타난다고 했습니다. 1990년 이후로 자기가 그리스도라고 주장하는 사람이 1,100명이 넘고 있습니다. 지금은 과연 이단의 절정기라고 할 수 있습니다. 말세지말입니다.
② 마24:6-7에 보면 말세의 징조로 난리와 전쟁이 강하게 일어난다고 예언하셨습니다. 1900년대 들어서서는 1차, 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여 상상할 수 없는 많은 사람들이 죽었고 그 이후에도 한국전쟁, 월남 전쟁, 걸프 전쟁 등 국지전만도 거의 40개가 넘게 일어났고 지금도 세계 많은 곳에서 전쟁 중입니다. 그리고 최근에 보시는 대로 팔레스틴 지역은 언제 아마겟돈 전쟁이 터질지 모르는 세계의 화약고가 되어 있습니다.
③ 마 24:7을 보면 말세의 징조로 기근과 지진이 있겠다고 예언하셨습니다. 오늘날 세계에서 25억의 인구가 굶주림에 시달리고 있는데 그 중에 10억은 영양실조에 걸려 있다고 보고되고 있습니다. 또한 1900년대 들어서 가장 두드러진 현상은 지진입니다. 어느 지진학자의 조사에 의하면 예수님 때부터 1960년까지의 대형지진은 24회인데 비해 1960년도부터 2000년까지 40년 동안 발생한 대형지진은 무려 50여회 이상이 발생했다고 합니다. 거의 2천년 동안 24회의 지진이 발생한데 비해서 40년 동안 두 배 이상이나 발생한 것입니다. 지구는 이미 정상이 아닙니다. 엄청난 기상 이변으로 수많은 곳에서 폭서, 폭우, 폭풍, 폭설로 무서운 재해를 만나거나 농사가 흉작으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세계의 곡창지대인 미국도 기상 이변으로 흉작이 예상되어 언제 식량 파동, 에너지 파동이 올지 예측하기 어렵습니다. 얼마 전 일어났던 쓰나미를 기억하실 것입니다. 그것도 말세의 징조입니다.
④ 마 24:12절에 보면 말세의 징조로 불법이 성하므로 많은 사람들의 사랑이 식어지리라고 예언하셨습니다. 지금은 불법의 시대요, 사랑이 점점 고갈되는 사회가 되고 있습니다. 「미국인의 일상생활에 나타난 깜짝 놀랄 만한 진상들」이란 책에 보면 하루에 1,282명의 사생아 출생, 하루에 2,740명의 어린이 가출, 하루에 1,986명의 부부 이혼, 하루에 68,493명의 10대들의 성병 감염, 하루에 2,740명의 10대가 임신, 하루에 3,231명의 여자들이 임신중절을 한다고 했습니다. 그러한 불법의 바람과 사랑이 없는 차가운 바람이 한국 사회도 점점 강하게 불어오고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알고 정신을 차려야 합니다.
⑤ 마 24:14절에 보면 말세의 징조로 복음이 온 세상에 전하여진다고 예언하셨습니다. 2000년에 전 세계적으로 성경이 번역된 언어의 수는 1,326개입니다. 이 언어는 전 세계 인구의 97%에 포함됩니다. 다만 아직도 3%의 인구에 해당되는 언어가 번역이 진행되고 있거나 계획 중에 있습니다. 그런데 벌써 몇 년의 시간이 흘렀으니 또 얼마나 많은 언어로 성경이 번역되었겠습니까! 하여튼 예수님의 말씀대로 온 세상에 거의 복음이 전해진 것만은 틀림이 없는 것입니다.
⑥ 마24:15절에 보면 "멸망의 가증한 것이 거룩한 곳에 선 것을 보거든"라고 말씀했는데 이는 마지막 때 끝에 나타날 '적그리스도'를 말합니다. 예수님은 적그리스도가 나타나 가장 거룩한 곳인 성전에 내가 '내가 하나님이다. 내게 제사를 바치라'하는 순간이 바로 말세의 절정이 될 것이라고 마24:16-21절에 예언하셨습니다. 아마 곧 그 날이 오게 될 것입니다. 지금 예루살렘 성전이 있던 장소에 회교사원이 세워져있는데 이것도 거룩한 곳에 멸망의 가증한 것이 선 것으로 볼 수도 있습니다.
확실한 것은 지금은 영적으로 캄캄한 밤이라는 사실입니다. 밤이 깊었다는 말은 낮이 가깝다는 말인데 이 말은 주님의 재림이 멀지 않았다는 이야기입니다.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주님의 재림이 훨씬 가까운지도 모릅니다.
사도 바울은 분문에서 말세에 대해서 말하면서 말세를 사는 그리스도인들에게는 말세가 어떤 때가 되어야 하는지 밝히고 있습니다.
1. 지금은 자다가 깰 때입니다(11절).
왜 자다가 깨어나야 합니까? 11절에서는 우리의 구원이 처음 믿을 때보다 가까웠기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12절에서는 밤이 깊고 낮이 가까웠기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날이 밝을 때가 되면 자리에서 일어나야 하는 것처럼 주님의 재림이 멀지 않았기 때문에 깨어나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11절에서 우리의 구원이 처음 믿을 때보다 가깝다고 말하는데 무슨 의미입니까? 구원을 세 가지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과거의 구원, 현재의 구원, 미래의 구원입니다. 과거의 구원은 이미 받은 구원을 말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미 의롭다함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그것으로 만족해서는 안 됩니다. 현재와 미래의 구원도 이루어져야 됩니다. 현재의 구원은 내 생활이 점점 발전해서 성화 되는 것, 거룩하게 되는 것을 말합니다. 미래의 구원은 예수께서 재림하실 때, 우리가 완전하게 구원받아 하나님 앞에 상을 받고 천국에서 영생을 누리며 사는 것을 말합니다. 여기서 말하는 구원은 세 번째 구원 즉 주님께서 재림하시고 믿는 우리들이 영원한 천국에 들어갈 구원이 가까웠다는 것입니다.
깨어 있어야 마귀를 이길 수 있습니다. 천로역정에 보면 천성을 향하여 나아가는 기독도에게 비겁이란 사람이 숨이 가득 차서 돌아 내려오면서 죽는 소리를 합니다. "저기 한참가게 되면 사자가 길 양편에 웅크리고 앉아 있는데 더 가까이는 무서워서 가보지도 못했지만 가까이 가기만 하면 사자가 달려들어 뼈하나 남김없이 씹어 먹을 것입니다. 저는 아예 무섭고 겁이 나서 가지 못하고 다시 돌아가는 겁니다."하면서 반정신이 나가서 벌벌 떨며 다른 사람도 돌아가라고 합니다. 그때 기독도는 정신을 바짝 차리고 좌로도 우로도 치우치지 아니하고 사자 사이로 걸어가는데 사자가 으르렁대며 덤벼들려 합니다. 자세히 가만히 보니까 사자의 발목에는 쇠고랑이 매여 있는 것입니다. 여기서 사자는 악한 마귀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입니다. 우리는 위협 속에서 신앙생활을 하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나 영적으로 깨어있으면 사자가 하나님의 자녀를 건드릴 수 없습니다. 그래서 사도 베드로는 "근신하라, 깨어라 마귀가 우는 사자와 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는다."고 했습니다. 깨어있지 아니하고 그 영혼이 잠들게 되면 사자의 밥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영적으로 깨어 있는 것은 기도생활을 말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하실 때 제자들에게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있어 기도하라 마음에는 원이로되 육신이 약하도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마 26:41). 좀 심하게 표현하면 기도하지 않고 살아가는 사람들은 잠꼬대를 하고 있는 것과 같습니다. 잠은 자는데 움직이고 말하는 것입니다. 잠자면서 말하고 움직이면 자기도 모르는 말이나 행동을 하는 것입니다. 잠꼬대를 하면서 일하면 그 사람이 하는 일의 결과가 좋겠습니까? 혹 사람이 볼 때는 좋아보여도 하나님 앞에서 그 일의 결과가 좋을 리가 없습니다.
깨어 있다는 것은 종말을 준비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마태복음24:42-44에 보면 주님께서 “깨어 있으라. 어느 날에 너희 주가 임할는지 너희가 알지 못함이니라. 너희도 아는 바니 만일 집주인이 도적이 어느 경점에 올 줄을 알았더면, 깨어있어 그 집을 뚫지 못하게 하였으리라. 이러므로 너희도 예비하고 있으라. 생각지 않은 때에 인자가 오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주님의 재림을 도적이 오는 것처럼 온다고 했는데 이 말은 주님이 도적이라는 말이 아니라 언제 오실지 모른다는 말입니다. 잠들어 있으면 도적이 오면 도적질 당하게 됩니다. 깨어 있으면 도적이 오는 것을 알게 되고 자신의 것을 지킬 수 있습니다. 재림도 마찬가지입니다. 깨어있는 사람은 주님의 재림을 준비하고 있기 때문에 재림의 주님을 맞이할 수 있는 것입니다.
2. 지금은 어둠의 일을 벗어야 할 때입니다(12절).
날이 밝으면 잠옷을 벗어야 하는 것처럼 주님의 재림이 가깝기 때문에 벗어야 할 것이 있습니다. 12절에서는 어둠의 일이라고 말합니다. 그럼 어둠의 일은 무엇인가?
첫째 방탕과 술 취함입니다.
방탕이란 말인 ‘코모스’라는 말인데, 원래 운동경기가 끝난 후 우승자를 집으로 동행하면서 노래를 부르며 축하하는 ‘축제의 행렬’을 뜻하던 말입니다. 그런데 후에 밤거리를 휩쓸고 다니는 시끄러운 사람들을 가리키는 말이 되었습니다. 방탕과 술 취함은 함께 갑니다. 엡5:18에서도 “술 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라고 말하면 방탕과 술 취함을 연결시켜서 말하고 있습니다.
술 취하는 것은 영적으로 상당히 위험한 일입니다. 방주를 만들어 홍수 심판을 면했던 의인 노아도 술에 취하여 하체를 드러내고 부끄러움을 당했습니다. 소돔과 고모라 성이 멸망할 때 구원을 받았던 롯도 술에 취하여 딸들과 잠을 잤고 두 아들을 낳는 불행한 일이 있었습니다. 술에 관해서는 특히 한국 사람들은 주의해야 합니다. 한국은 개인 술 소비량이 세계 1위입니다. 영국속담에 “폭음은 어떤 사람을 바보로 만들고, 어떤 사람을 짐승으로 만들고, 어떤 사람을 악마로 만든다.”고 했는데, 그 속담 그대로 멀쩡하던 사람들이 술에 취하여 바보 같은 짓을 합니다. 제가 아는 분은 술에 취하여 잘못된 계약서에 도장을 찍어서 전 재산을 날리는 바보 같은 짓을 했습니다. 어떤 사람은 술에 취하여 짐승 같은 행동도 하고, 악마 같은 행동도 합니다. 그리고는 술에서 깨어난 후에 후회하면서 “그 놈의 술 때문에...”라고 핑계합니다. 우리나라의 향락 사업은 큰 문제입니다. 최근 청소년 선도회에서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유흥윤락업소에 있는 10대 소녀들이 50만 명이나 된다고 합니다. 돈을 벌고 편안하게 살기 위해서 학교를 뛰쳐나왔지만 그들 인생의 종말은 어떻게 됩니까? 결국 불행해 질 수밖에 없습니다.
특히 연말연시를 앞둔 이 시점에 남자들이 주의해야 할 것입니다.
둘째, 음란과 호색입니다.
음란이란 말은 ‘침상, 성교, 임신’이란 말입니다. 무절제한 정욕이 낳은 부도덕한 성행위를 말합니다. 호색이란 분별없는 성욕을 말합니다. 타락한 소돔성에서는 천사들과 상관하려 했던 호색꾼들이 있었는데 그래서 그 성이 멸망을 당한 것입니다.
이런 측면에서 보면 이 시대가 말세는 말세입니다. 물건을 잘 팔려면 성과 연관이 있어야 한다고 합니다. 그래서 성적인 것과 아무런 상관도 없는 광고도 섹시하게 해야 잘 팔립니다. 자신의 섹시함을 상품화 시키는 연예인들도 많습니다. 연기력이나 노래실력으로 승부를 보기보다 섹시한 컨셉으로 승부를 노리는 연예인들이 많습니다. 더 큰 문제는 이 시대의 청소년들이 닮고 싶은 사람들 중에 연예인이 가장 많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청소년 중에도 자신을 섹시하게 보이려고 노력하는 아이들이 많습니다. 옷차림이나 말투 그리고 행동을 통해서 섹시함이 묻어나오게 하려고 노력하는 아이들이 많습니다.
제가 짧은 인생을 살아오면서 관찰한 바에 의하면 성적으로 야릇한 분위기를 풍기는 사람들은 그것 때문에 올무에 걸리는 일이 많다는 것입니다. 결국 그것이 자신에게 독입니다. 그래서 본문에서는 그런 것들을 벗어버리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셋째, 쟁투와 시기입니다.
‘시기’는 욕심이 불러일으키는 감정이며, 이것이 행동으로 드러난 것이 ‘쟁투’입니다. 쟁투와 시기는 욕심 때문에 발생합니다. 사실 욕심 때문에 싸움이 일어납니다. 성경은 “너희 중에 싸움이 어디로, 다툼이 어디로 좇아 나느뇨 너희 지체 중에서 싸우는 정욕으로 좇아 난 것이 아니냐”(약4:1)라고 말합니다. 교회 안에서건 교회 밖에서건 욕심 때문에 다투게 되는 것입니다.
욕심을 벗어버려야 할 또 다른 이유는 욕심 때문에 기도 응답을 받지 못합니다. 성경은 “너희가 얻지 못함은 구하지 아니함이요 구하여도 얻지 못함은 정욕으로 쓰려고 잘못 구함이니라”(약 4:3)고 말씀합니다. 기도는 열심히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올바른 동기와 올바른 방향성을 가지고 기도해야 합니다.
욕심을 벗어버려야 하는 또 다른 이유는 욕심 때문에 영적으로 약해집니다. 성경은“영혼을 거스려 싸우는 육체의 정욕을 제어하라”고 말합니다. 육체의 정욕이 욕심입니다. 욕심은 결국 우리의 영혼을 죽이는 일을 하는 것입니다.
인생의 목적을 나에게 두면 쟁투와 시기를 하게 됩니다. 인생의 목적을 하나님과 이웃에게 두는 사람은 절대 쟁투와 시기에 빠지지 않습니다.
그럼 어떻게 해야 어둠의 일을 벗어버릴 수 있습니까? 어둠의 일을 벗어버리려면 생각을 지켜야 합니다. 왜냐하면 14절에 “정욕을 위하여 육신의 일을 도모하지 말라”고 말하는데, 여기서 ‘도모한다.’는 말은 ‘미리’와 ‘생각함’의 합성어입니다. 곧 정욕적인 삶을 추구하기 위해 전문적으로 그것만을 생각하는 것을 뜻합니다. 사람은 생각하는 것을 말하게 되어 있고, 생각하는 것을 행하게 됩니다.
어떻게 생각을 지킬 수 있습니까? 하나님의 말씀은 감사기도를 많이 하는 것이 생각을 지키는 방법이라고 말씀합니다(빌4:6,7). 우리가 생각을 지키고 싶어도 지킬 수 없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지켜 주셔야 하는데 빌립보서에서는 감사하므로 기도하면 마음과 생각을 지켜 주시겠다고 말씀합니다.
3. 지금은 빛의 갑옷을 입을 때입니다(12절).
12절에서는 말세를 사는 우리들에게 빛의 갑옷을 입으라고 말씀합니다. 그리고 14절에서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고”라고 말씀하시므로 빛의 갑옷을 입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는 것이라고 가르쳐줍니다. 그런데 여기서 ‘오직’이라는 말을 집고 넘어가야 합니다. 말세에 빛의 갑옷을 입는데 오직 그리스도입니다. 다른 옷이 없다는 것입니다. 유일한 방법이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는 것입니다.
긴 기차 여행이나 비행기 여행을 하는 사람들이 여행 도중에는 눕기도 하고 잠을 자기도 하고 옷도 편한대로 헤치고 있다가 목적지가 가까워지면 옷을 바르게 하고 머리를 빗고 내릴 준비를 하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주의 재림이 가깝습니다. 세상 종말이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역사의 종착역이 눈앞에 있습니다. 이제 옷을 바르게 입어야 하는데 빛의 갑옷 즉 오직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기를 바랍니다.
옷을 입는 데는 몇 가지 목적이 있습니다. 먼저는 부끄러움을 가려주는데 목적이 있습니다. 우리의 신체 중에는 드러나면 수치심을 느끼는 부분이 있습니다. 그래서 옷으로 가려주는 것입니다. 그 다음은 몸을 보호하는데 목적이 있습니다. 실제로 옷은 연약한 피부를 외부의 위험한 요소로부터 잘 보호해 줍니다. 특별히 추운 겨울, 잘 차려입은 옷은 몸을 보호하는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됩니다. 또 다른 목적은 사람을 아름답게 하는 것입니다. 옷을 잘 차려입으면 사람이 달라 보입니다. 그래서 ‘옷이 날개’라는 말도 하잖습니까! 정말 좋은 옷은 이러한 목적을 잘 충족시켜주는 옷입니다. 보기는 좋은데 동상에 걸려 죽을 정도라면 좋은 옷이 못됩니다. 몸을 보호하기는 좋은데 누더기와 같다고 하면 결코 좋은 옷이 될 수 없습니다. 아무리 좋은 옷감을 썼더라고 부끄러운 부분을 가리지 못한다면 좋은 옷이 될 수 없을 것입니다. 요즘은 아름다움에만 관심이 많아서 추운 겨울에도 짧은 치마에 속이 훤히 들여다보여서 바람이 잘 통하는 옷을 입는데 그런 사람은 옷을 잘 못 입는 것입니다. 위의 세 가지 목적이 잘 충족되도록 옷을 입는 사람이 옷을 잘 입는 사람입니다.
예수로 옷 입으면 영적으로 위에서 말한 세 가지 목적이 다 충족 됩니다. 첫째는 예수 그리스도의 옷은 부끄러운 수치를 가려줍니다. 영적인 수치는 사람의 능력으로는 가릴 수 없습니다. 아담과 하와가 선악과를 따먹고 무화과 잎으로 치마를 만들어서 수치를 가렸지만 하나님 앞에서는 가릴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아담과 하와에게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 하는 짐승을 잡아서 그 가죽으로 옷을 해 입히셔서 수치를 가려주셨던 것입니다. 둘째는 예수 그리스도의 옷은 외부로부터 신자를 보호해줍니다. 사단의 공격으로부터 신자를 보호해 주고, 하나님의 심판으로부터 신자를 보호해 줍니다.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는 여러 가지 사건과 사고로부터 신자를 보호해 줍니다. 셋째는 예수 그리스도의 옷은 신자의 아름다움을 가꾸어줍니다. 예수로 옷 입은 사람은 의의 흰 옷을 입었기 때문에 하나님 보시기에 정말로 아름다운 사람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는 것을 이렇게 설명할 수 있습니다. 나는 가려지고 그분만이 드러나게 하는 것입니다. 옷을 입으면 그 옷에 내 몸이 가려서 몸은 보이지 않고 옷만 보이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으면 나는 가려지고 그분만이 드러납니다. 내가 무슨 말을 할 때 내가 생각하고 내가 원하는 말을 하는 것은 내가 드러나는 것입니다. 내가 무슨 일을 하는데 내가 계획하고 내가 결정하고 내가 추진하는 것은 내가 드러나는 것입니다. 무슨 일을 하든지 그분과 상의하고 그분의 결재를 받고 그분의 뜻을 따라 행한다면 그 사람은 철저히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은 사람입니다.
4. 지금은 단정히 행할 때입니다(13절).
단정히 행하라는 말은 말씀대로 살라는 말입니다. 어둠 속에서는 행동이 보이지 않으나 빛 가운데서는 다 드러납니다. 빛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성경은 ‘주의 말씀은... 등이요 .. 빛’이라고 말합니다. 마지막 때가 가까울수록 더욱 말씀대로 살아야 합니다.
말씀대로 살기 위해서는 말씀을 읽어야 합니다. 미국의 농담에 ‘거북이 크리스천’이라는 말이 있답니다. 새는 9일간 먹지 않고 살 수 있고, 사람은 12일간, 개는 20일 간 견딜 수 있다고 합니다. 그런데 거북이는 500일 동안을 먹지 않아도 살아갈 수 있다는 겁니다. 그래서 참다운 양식인 하나님의 말씀 없이 사는 신자, 성경을 읽지 않는 신자를 ‘거북이 크리스천’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시 119:165은 “주의 법을 사랑하는 자에게는 큰 평안이 있으니 저희에게는 장애물이 없으리이다”고 말씀하고, 잠 13:13에 “말씀을 멸시하는 자는 패망을 이루고 계명을 두려워하는 자는 상을 얻느니라”고 말씀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가까이 하십시오. 말씀은 여러분은 신대륙으로 인도할 것입니다. 16세기 이탈리아의 항해자 크리스토퍼 콜럼버스(Christopher Columbus ; 1451∼1506)는 신대륙을 발견하기 위해 31번이나 배를 타고 갔다가 실패했습니다. 인도에 가면 동양의 문화와 값진 보물이 있다는 말에 막연히 인도를 찾아 출발했지만 결국 실패한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32번째 항해에 결국 신대륙을 발견했습니다. 그는 그 곳이 ‘인도겠지’라고 생각했는데 실은 아메리카 대륙이었습니다. 그 당시에는 유럽과 아시아 사이에 아메리카가 있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는데, 제일 먼저 콜럼버스가 발견한 것입니다. 그런데 31번이나 실패해서 낙심한 그가 어떻게 32번째에 아메리카를 발견했을까요? 31번의 실패를 하고 절망하여 모든 것을 포기한 것이 아닙니다. 그 절망스러운 상황에서 하나님을 찾았습니다. 콜럼버스는 매일 2시간씩 기도를 하고 20장씩 성경을 읽었습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말씀을 가까이 하며 하나님을 찾는 콜럼버스를 신대륙으로 인도하셨던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들은 역사의 종점에 서있습니다. 긴 여행을 마무리하는 사람들이 집에 돌아갈 준비를 하는 것처럼, 우리들도 하나님 앞에 설 그 날을 준비해야 합니다. 유명한 역사가인 찰스 베어드라는 분이 있습니다. 하루는 어떤 사람이 그에게 이런 질문을 했습니다. “당신은 평생 역사를 연구하면서 연구를 통해서 무엇을 깨달았다고 생각하십니까?”그 질문에 대해 찰스 베어드는 네 가지 답을 말해 주었습니다.
“첫째는 하나님이 한 개인이나 국가를 심판하실 때, 혹은 멸망시키려고 할 때는 권세욕에 날뛰게 하시는 것을 보았습니다. 개인이나 국가나 교만하면 망해요. 교만해지기 시작하면 ‘아하! 끝 났구나’ 그렇게 볼 수 있다는 말입니다. 이것이 제가 역사 속에서 깨달은 진리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지금 이 시대가 교만의 극치를 달리는 시대입니다.
“둘째는 하나님의 맷돌이라는 것, 즉 심판의 역사는 아주 천천히 돌기 때문에 때로는 돌지 않는 것도 같고 심판이 없는 것도 같은데 아니요. 악과 선, 불의와 의를 아주 고르게 세밀하게 골라주시고 심판하신다는 겁니다.” 역사 속에서만 심판하시는 것이 분명하듯이 마지막 심판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
셋째는 벌이 꽃 속에 들어가서 꿀을 빨아내는데 마치 강도질하는 것 같죠. 이 꽃, 저 꽃 다니면서 들어가서 꿀을 빨아내는 데 허가도 받지 않고 남의 집에 들어가서 꿀을 도적질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묘한 진리가 됩니다. 이렇게 벌이 이 꽃, 저 꽃 옮겨 다니면서 꽃의 술을 옮겨놓는단 말입니다. 결국은 도적질하는 것 같으나 벌은 꽃을 위해서 심부름하고 있는 거예요. 이 세상에는 악도 있고 도적질도 있고 강도도 있고 남의 목숨을 빼앗고, 전쟁을 일으켜 남의 나라도 빼앗는 것 같아도 결국은 이 모든 일을 통해서 더 귀한 일, 더 큰 일들이 이루어지는 것을 볼 수 있는데 이것을 역사에서 보았습니다.”, “마지막 네 번째는 날이 점점 어두워지면 별빛도 보이지 않고 아주 어두워지고 말 것 같지만 아니요, 새벽하늘을 환하게 비추는 샛별이 나타나는 것을 보았다는 겁니다.” 주님 다시 오십니다. 신약 성경은 216장으로 되어 있는데 그 중에 재림에 대해서 318번 기록하고 있습니다. 평균 잡아 30절마다 한번씩 재림에 대해서 강조하고 있다는 계산이 됩니다. 이제 역사의 밤은 대단히 깊어졌습니다. 종말의 시계는 카운트다운이 시작되었습니다. 온 세상은 어둠의 일들로 가득 차서 앞이 전혀 보이지 않습니다. 그럴지라도 새벽은 밝아 오고 있습니다. 주님의 재림이 가까워 오고 있습니다. 세상 종말이 눈앞으로 다가오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영적인 잠에서 깨어나십시오. 어둠의 일을 벗어버리십시오.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으십시오. 영적으로 단정히 말씀 안에서 행하십시오.
[사랑의 빛 교회] 경기도 감이동 361-4
(02) 443-919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