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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무엇을 자랑해야 합니까? (고후 1:1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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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무엇을 자랑해야 합니까? (고후 1:12-14)


2001년 9월 11일 미국 뉴욕에 있는 세계 무역센터 쌍둥이 빌딩이 테러리스트들에 의해서 폭발되었습니다. 미국은 그 테러의 주범인 오사마 빈 라덴을 잡으려고 과학력과 군사력을 총동원하고 있지만 아직도 그를 잡지 못하고 있습니다. 세계무역센터인 쌍둥이빌딩은 유태인이 소유주로서 유태인의 부의 상징으로 여겨지는 곳이었습니다. 1950년대에 유태인들이 당시 뉴욕에서 가장 높은 엠파이어 스테이트빌딩을 매입하려고 했을 때 소유자가 유태인에게는 이 빌딩을 매각할 수 없다고 거절하자, 이에 분개한 유태인 상공조합이 힘을 합쳐 뉴욕에서 가장 높은 빌딩을 새로 짓기로 결정하였습니다. 이 때 유태인들은 자신의 부를 보여 주기 위해 한 채가 아닌 두 채를 올리기로 결정하였습니다. 결과적으로 이 빌딩은 중동지역에서는 유태인들의 부의 상징으로 적개심의 대상이 되었던 것입니다. 사실 이 빌딩이 세워진 목적을 보면 유대인들의 부를 자랑하기 위해서 세워졌던 것입니다.

그런데. 이 빌딩에 얽힌 참으로 안타까운 어느 부동산 업자의 일이 있습니다. 그는 미국 최고의 빌딩을 소유하여 자신의 명성을 얻고 있었던 사람입니다. 그는 유명한 건물들이 세워지면 어떤 방법을 동원해서도 자기 소유로 만들었습니다. 그는 뉴욕에서는 가장 유명한 건물 중의 하나인 쌍둥이 빌딩이 세워지자 그것도 자기 것을 만들고 싶어 했습니다. 그런데 유대인들이 그것을 팔지 않았습니다. 결국, 그는 자신이 가지고 있는 재력과 권력을 모두 동원해서 유대인들로부터 99년 동안 그 빌딩 전체를 빌려 쓰는 임대 계약서를 작성했습니다. 그가 지불한 임대료는 32억불로 우리나라 돈으로 환산하면 약 4 천억원에 이릅니다. 그는 그 빌딩 전체를 모두 임대한 후에 재임대하는 방식으로 건물을 관리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가 그 건물을 임대하였을 때 얼마나 자랑스러웠겠습니까? 그가 임대 계약서를 작성한 후 6개월이 지났을 때 그 빌딩은 뉴욕에서 영원히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잠언 27:1절에는 “너는 내일 일을 자랑하지 말라 하루 동안에 무슨 일이 날는지 네가 알 수 없음이니라”고 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자신들이 가진 부를 자랑합니다. 자신들이 가진 힘을 자랑합니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되기를 소망하면서 권력을 좇아가고, 부를 좇아갑니다. 성도들에게도 부는 자랑일 수 있습니다. 성도들에게도 남보다 좋은 대학 나오고, 남이 가지고 있지 않은 석박사의 학위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 자랑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사람에게는 이것이 자랑 일 수 있지만 우리를 심판자이신 하나님 앞에서 과연 이런 것들이 자랑일 수 있겠느냐?하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부자였습니다. 그러나, 그의 부를 자랑한 적이 없습니다. 요셉은 이집트의 총리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권력을 자랑하지 않았습니다. 모세는 약 100만 명 정도를 이끄는 민족의 지도자였습니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지도력을 자랑하지 않았습니다. 성경은 그가 하나님의 일을 맡은 청지기로 겸손하게 일했다고 했습니다. 바울이 얼마나 많이 배운 지성인입니까? 당세의 철학과 신학과 문화와 예술에 이르기까지 뛰어난 능력을 지닌 사람입니다. 얼마나 좋은 유대인의 가문에 속한 사람입니까? 최고의 학부를 나오고 최고의 선생을 두었던 사람이었습니다. 남들이 평생 모은 재산으로 사고 싶어 했던 로마의 시민권을 소유한 사람입니다. 그런데, 그는 결코 자신이 소유한 이러한 육신의 것들을 자랑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오직 하나님의 은혜를 자랑했습니다. 그는 지금의 내가 이렇게 된 것은 오직 하나님의 은혜라고 했습니다.

오늘 12절에도 바울은 고린도 교회의 성도들에게 말하기를 “내가 하나님의 거룩함과 진실함으로써 하되 육체의 지혜로 하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은혜로 행함은 우리 양심이 증거하는 바니 이것이 우리의 자랑이라”고 했습니다. 바울의 자랑은 자신이 육체의 지혜로 일하지 않고 오직 하나님의 거룩함과 진실함이라는 그분의 은혜가 자신의 자랑이라는 것입니다.

그리스의 대부호 알치비아데스가 하루는 소크라테스 앞에서 자기가 소유한 토지가 매우 많음을 크게 자랑했습니다. 그때에 소크라테스는 조용히 세계지도를 펴놓으며 "그러면 당신이 소유하고 있는 토지가 어느 정도인가 여기에 그림으로 표시해 주십시오"라고 했습니다. 그러자 그는 당황하며 "그런 농담은 마십시오. 내 토지가 아무리 많기로서니 세계지도에 그릴 수야 있겠소"라고 했습니다.

유대의 13대 왕인 히스기야왕은 자신이 얼마나 부자인지 자신의 보물 창고를 열고 바벨론의 사자에게 자랑했습니다(왕하20:13). 그 결국 그가 자랑했던 모든 보물은 바벨론으로 옮겨지고 말았습니다. 예레미야 선지자는 말하기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지혜로운 자는 그 지혜를 자랑치 말라 용사는 그 용맹을 자랑치 말라 부자는 그 부함을 자랑치 말라"(렘9:23)고 했습니다.

하나님으로부터 복을 받은 사람들의 공통점은 그들의 자랑이 오직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주신 그 은혜를 자랑했다는 것입니다. 시편 20:7절에서 다윗은 말하기를 “사람들은 병거나 혹은 말을 의지하나 우리는 여호와 우리 하나님의 이름을 자랑합니다”(시20:7)라고 했고, 시편 44:8절에는 “우리가 종일 하나님으로 자랑하였나이다 우리가 하나님의 이름을 영영히 감사하리이다”라고 했습니다. 요셉도 늘 하나님이 그의 자랑거리였습니다. 때문에 창세기에 보면 “그 주인이 여호와께서 그와 함께 하심을 보며 또 여호와께서 그의 범사에 형통케 하심을 보았더라”(창39:3)고 했습니다. 야곱도 외삼촌 라반에게 말하기를 “하나님이 나의 고난과 내 손의 수고를 감찰하셨기에 어젯밤 꿈에 외삼촌을 책망하신 것입니다.”라고 고백했습니다. 이삭이나 아브라함은 말할 것도 없습니다. 그분의 이름이 베풀어 주신 은혜를 자랑하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은혜와 은총과 평안이 임하는 줄로 믿습니다.

이제부터 우리도 세상을 창조하신 여호와 하나님을 자랑합시다. 우리를 위해 피 흘려 십자가에 죽으시며 우리의 영혼을 구원하신 주 예수 그리스도를 자랑합시다. 우리와 지금 함께 하시며 교회를 세우시고, 우리를 보증하시며 인치시며 주님의 은혜를 고백케 하시는 성령님의 은혜를 자랑합시다. 할렐루야!

둘째로 믿음의 성도들은 자신이 전도한 사람이 자랑이 되어야 합니다. 14절 말씀에서 보듯이 바울은 “우리 주 예수의 날에 너희가 우리의 자랑이 되고 우리가 너희의 자랑이 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빌립보서 4:1절에도 “그러므로 나의 사랑하고 사모하는 형제들, 나의 기쁨이요 면류관인 사랑하는 자들아 이와 같이 주 안에 서라”고 했습니다. 데살로니가전서 2:19절에는 “우리의 소망이나 기쁨이나 자랑의 면류관이 무엇이냐 그의 강림하실 때 우리 주 예수 앞에 너희가 아니냐?”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주님께 인도한 그 생명들은 여러분들이 천국에 가서 씌게 될 생명의 면류관들입니다. 그들은 천국에서 내 자랑들이 될 면류관입니다. 여러분들의 머리를 장식할 영혼의 면류관은 어떻습니까? 주님 앞에서 자랑할 만한 전도한 형제나 자매가 몇 명이나 있습니까?

나는 여러분들이 꿈을 가지기를 원합니다. 주님께서 이 땅에 오셨을 때에 생명의 면류관을 씌고 주님 앞에 서서 자신의 면류관을 자랑하는 그날의 꿈을 꿈꾸기 원합니다. “예수님! 이 사람도 제가 전도한 친구에요. 저기 제 친구 삼순이의 얼굴이 보이는 구요! 주님 저 친구도 제가 전도한 친구에요! 저기 삼식이 얼굴도 보이는 군요! 저 친구도 제가 전도한 친구에요!”이 얼마나 아름다운 일입니까? 주님께서는 이런 사람을 향해 “착하고 충성된 종아! 내가 네게 더 많은 것을 맡기리라”고 할 실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말하지 못하는 것은 주님의 말씀보다 자기 뜻을 굽히지 않고 너무 강하게 자기를 내 세우고 있기 때문입니다. 주님의 뜻은 알지만 “하지만 나는...아직 ”이라고 말합니다. 혹은 “주님께서 그렇게 명령하셨지... 하지만 아직 나는 준비가 되지 않았어!”라고 말합니다. ‘뜻’이라는 말을 영어로는 ‘will’ 이라고 합니다. 의지라는 말입니다. 자기의 의지와 자기의 주장과 자기의 고집이 너무 강한 사람은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누가복음 12장에 나오는 부자는 자기 의지가 아주 강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는“내가 이렇게 하리라... 내 곡간을 헐고 내 모든 곡식과 물건을 거기 내가 쌓아 두리라. 그리고 내가 내 영혼에게 이렇게 말하리라”(눅12:18,19)는 식으로 이야기했습니다. 모세도 자아가 깨어지기 전까지는 말하기를 “나는 입이 둔합니다. 나는 할 수 없습니다. 나는 능력이 없습니다. 나는.... 나는 ... 못합니다.”이렇게 말했습니다.

베드로도 말하기를“모든 사람이 다 주님을 버린다 해도 저는 절대로 주님을 버리지 않겠습니다”(현대인의 성경 마26:33)고 했습니다. 그는 또한 “내 발을 절대로 씻기지 못하시리이다”(요13:8)라고 했습니다. 그리고,“주여 그리 마옵소서 이 일이 결코 주에게 미치지 아니하리이다”(마16:22)고 했습니다. 그는 자아가 얼마나 강했는지 “절대로, 결코... 그럴 수가 없습니다”라는 말을 자주 사용했습니다. 이런 사람은 결국 자기를 자랑하게 되어 있고, 자기의 영광을 구하려다가 인생의 실패를 맛보게 되는 것입니다. 인생의 실패에서 벗어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인생이 승리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믿음의 조상들이 행했던 것처럼 자기의 뜻보다는 주님의 뜻을 내 세우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주님을 자랑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생명을 살리는 전도의 사람이 됩니다. 그토록 자아가 강했던 베드로는 나중에는 부활하신 주님께서 그에게 “네가 날 사랑하느냐?”고 세 번 물으셨을 때에 말하기를 동일한 말을 세 번 반복했습니다. 그것은 바로 “주님께서 아십니다”라는 말이었습니다.

야고보 선생은 말하기를 “너희가 도리어 말하기를 주의 뜻이면 우리가 살기도 하고 이것 저것을 하리라 할 것이거늘 이제 너희가 허탄한 자랑을 하니 이러한 자랑은 다 악한 것이라”(약4:15,16). 진실로 지혜로운 사람은 “나” 중심이 아닌 주님을 중심하는 사람입니다. 성경을 읽어보면 사도 바울 선생의 삶의 원리는“주의 뜻이라면... 혹은 하나님이 허락하시면... ” 이었습니다. 사도행전 18:21절의 말씀을 보면 “하나님의 뜻이면 너희에게 돌아오리라”고 했고, 로마서 1:10절에는“어떠하든지 이제 하나님의 뜻 안에서 너희에게로 나아갈 좋은 길 얻기를 구하노라”고 했습니다. 고린도 전서 4:19절에는 “주께서 허락하시면 내가 너희에게 속히 나아가리라”고 했습니다. 이처럼 주님의 사람들은 “나를 자랑하면서 나 중심의 삶을 살아가는 것 아니라 오직 그분 중심으로 그분의 말씀 중심으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복음 전도자였던 죤 길모어 목사는 어느 날 작은 마을을 지나다가 주방용품을 팔고 있는 어느 노인과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습니다. "안녕하세요? 할아버지, 요즘 장사는 잘 되시는지요?" "예, 그럭저럭 잘 됩니다." "할아버지는 예수님을 믿으십니까?" "물론 믿지요. 예수님을 믿고 구원받는다는 것은 정말 위대한 일인 것 같습니다." "그래요, 그렇지만 그보다 더 위대한 일이 있지요" "그래요? 그게 뭔데요?" 그러자, 목사님은 그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건 나를 구원해 준 그분과 동행하는 것이지요."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의 자랑할 만한 생명은 누구입니까? 주님 앞에서 “주님 이 사람이 바로 제가 전도한 생명의 면류관입니다” 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 있어야 할 것이 아니겠습니까? 바울은 이것이 자신의 자랑이라고 했습니다. 내가 자랑이 아니라 나를 버리고 오직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죽어가는 영혼을 살리는 그것이 우리의 자랑이 되어야 합니다.

그리스도인에게는 날마다 일어나는 세 가지 기적이 있다고 합니다. 그것은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성경말씀은 거들떠보지도 않는 것이 첫째 기적이고, 예수님을 사랑한다고 하면서 생명을 살려 전도할 생각은 전혀 하지 않는 것이 두 번째 기적이고, 마지막은 이렇게 주님의 말씀과 상관없는 삶을 살면서도 예수님을 내가 사랑한다고 자신 있게 말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예수님은 말씀하시기를 “나의 양식은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며 그의 일을 온전히 이루는 이것이니라”(요4:34) 했습니다. 그렇다면, 그분의 뜻과 그분의 일은 무엇입니까? 요한복음 6:39절에는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려 함이니라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은 내게 주신 자 중에 내가 하나도 잃어버리지 아니하고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는 이것이니라”고 했습니다. 주님은 영혼을 구하기 위해서 오셨습니다. 이것이 그분께서 이 땅에 오신 목적이라고 합니다.

이제 우리도 바울처럼 주님 앞에서 자랑 힐 생명의 면류관이 있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빌립보서 2:16절에는 “생명의 말씀을 밝혀 나의 달음질도 헛되지 아니하고 수고도 헛되지 아니함으로 그리스도의 날에 나로 자랑할 것이 있게 하려 함이라”우리도 바울처럼 나를 구원하신 그 하나님의 은혜를 자랑해야 합니다. 자신이 전도한 그 생명들을 주님 앞에서 자랑해야 합니다. 나는 진실로 이 교회에 속한 성도들이 주님 앞에서 생명의 면류관을 주님께 드리며 영광의 그 나라에 들어가기를 축원합니다. (한 용근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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