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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으로는 할 수 없으되 (마 19:25-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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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으로는 할 수 없으되 (마 19:25-26)


샌프란시스코를 방문했을 때 금문교를 구경한 적이 있습니다. 대단한 다리였습니다. 지금은 우리나라에도 서해대교와 같은 다리가 있지만 1937년도에 완공한 현수교로써는 토목기술의 뛰어남과 아름다움을 느끼게 하는 뛰어난 작품이었습니다.

요즘 우리나라 생명공학이 전 세계적으로 뜨고 있습니다.
황우석교수의 생명복제기술은 종교적인 논쟁을 불러일으키기도 하지만 난치병과 인류복지에 큰 기여를 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줄기세포를 이용한 생명복제 기술에 까지 인간의 능력이 도달하게 되었습니다.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은 어디까지일까요? 아마도 우리는 계속 놀라운 발견과 연구들을 하게 될 것입니다. 그럼에도 사람이 할 수 없는 것이 있습니다.

지난 목요일 저는 큰 슬픔에 빠졌습니다. 새벽기도를 마치고 사무실에 내려와 성경을 읽고 있는데 전화벨소리가 울리는 겁니다. 새벽에 걸려오는 전화는 급한 일이든지 좋지 않은 일들로 걸려오는 경우가 많습니다. 전화를 받아 들자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왔습니다.
영생교회에 다니는 유태평씨가 집 앞에서 교통사고를 당하고 119에 실려 원대병원으로 갔다는 것입니다.
급히 병원 응급실로 달려갔습니다. 병원에는 유태평권사님이 의식을 잃은 채 심폐소생술을 의사들이 하고 있었습니다. 저는 도착하자마자 권사님의 몸을 붙들고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이 생명 살려주시옵소서. 의식이 회복되고 호흡이 다시 돌아오게 하옵소서.’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의사들이 번갈아 가면서 심폐소생술을 하고 한 30분이 지나고 났을 때 기계에 표시되던 심장이 멈추었습니다.
유태평 권사님은 끝내 생명을 회복하지 못하고 세상을 떠나고 말았습니다. 지금도 권사님이 우리와 같이 예배하는 것 같습니다. 모든 예배마다 참석하셔서 은혜 받고 기도하시던 권사님이셨습니다. 저는 믿습니다. 그분의 눈물의 기도는 우리 영생교회에서 아름다운 열매로 맺어지게 될 것입니다.
생명이 죽고 사는 문제는 사람이 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오직 하나님만이 하시는 일입니다.

중보기도 세미나에서 들은 이야기 입니다.
어느 날 담임목사가 부목사들에게 우리 지역에서 가장 악랄하고 못된 사람이 누구인가? 하나님이 그를 위하여 기도하시기를 원하신다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가장 악날하기로 소문난 지역 깡패를 위해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이 깡패가 술에 잔뜩 취한 모습으로 교회에 나타났습니다. 그는 한참을 제단 앞에서 울고 난 후에 이제부터 내가 교회에 나와 예수를 믿겠노라고 말했습니다.
이 깡패의 변화는 사람이 할 수 없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사람으로는 할 수 없으되 하나님으로서는 다 할 수 있느니라.” 아멘 아멘

<부자청년의 이야기>
한 부자 청년이 예수님께 찾아와 물었습니다. 무슨 선한 일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
부자청년은 평소에 영생은 선행으로 얻을 수 있다는 신념을 가지고 살아 왔습니다. 그러므로 아마도 그는 많은 선한 일들을 하였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생의 확신을 얻을 수 없었습니다.

예수님은 ‘어떻게 선을 행해야’라고 묻는 청년에게 ‘계명을 지키라’는 말로 대답을 하십니다. 그러자 청년은 더욱 의기양양하여 이 모든 것을 내가 지키었는데 무엇이 부족하느냐고 되묻습니다. 청년에게는 자신감이 생겼습니다. 자신은 모든 율법을 잘 지키고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주님은 다시 선행의 문제로써 대답하십니다. “네 소유를 팔아 가난한 자들을 주라”
부자 청년은 당황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이제까지 쓰고 남는 돈으로는 선행을 해보았지만 있는 소유를 팔아가면서 선행을 한 일이 없었습니다.

여러분, 내 주머니에 있는 몇 푼의 돈으로 구제하고 선행을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내가 타고 다니던 승용차를 팔아서 구제할 수는 없습니다.
아무리 주님을 잘 믿는 좋은 신앙인이라도 집을 팔아가면서 선행을 할 수 있는 사람은 그리 흔하지 않습니다. 솔직히 말하면 내가 가진 것을 포기할 만큼 선을 행하는 사람은 별로 찾아 볼 수 없습니다.
그런데 주님은 나의 것을 포기하는 것이 영생의 길임을 말씀하시고 계십니다.
영생은 포기하는 자에게 주어지는 은총입니다. 포기하는 자가 진정 얻을 수 있습니다.

우리는 여기서 한 가지 중요한 진리를 발견하게 된다. 믿음은 삶으로 표현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입술의 고백이 행동으로 이어지는 것이 진정한 믿음입니다.

예수님은 계속 말씀하십니다.
“부자는 천국에 가기가 어려우니라. 약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이 오히려 쉬우니라.”

부자는 구원을 받을 수 없다?
제자들은 놀랍니다. 그러면 누가 구원을 받을 수 있겠는가?

부자이기 때문에 구원을 받지 못하는 것이 아닙니다. 가난하기 때문에 구원을 받을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문제는 재물을 주인으로 삼았느냐 하나님을 주인으로 삼았느냐 입니다.
만일 재물이 그 인생의 주인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면 결코 구원을 받을 수 없을 것입니다. 부자청년의 문제는 바로 이것입니다. 선행의 문제가 아니라 누가 그 인생의 주인의 자리에 있느냐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우리 인생의 주인으로 모신다면 누구든지 구원을 받을 것입니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을 내 삶의 주인으로 모셔 들이는 것입니다.
나는 할 수 없지만 하나님이 하실 수 있는 것은 나를 죄와 사망에서 구원해주시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사람으로는 할 수 없으되“라고 말씀하셨는데
모든 것을 할 수 없다는 말이 아닙니다. 인간의 한계, 유한성을 말하는 것입니다.
사람은 모든 것을 할 수 없는 것이 아닙니다. 사람이 할 수 있는 것이 있습니다.

농사의 비유를 들어 생각해 보겠습니다. 밭을 기경할 수 있습니다. 씨를 뿌릴 수 있습니다. 물을 줄 수 있습니다. 김을 맬 수 있습니다. 맺은 열매를 관리하고 보관할 수 있습니다.
심는 이가 있고 물을 주는 이가 있습니다. 그러나 오직 자라게 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사람으로는 할 수 없으되 하나님은 다 할 수 있습니다.

아브라함과 사라를 통해 이삭을 주신 하나님은 태의 문을 열어 생명을 주실 수 있습니다.

한나의 부르짖음을 듣고 아들 사무엘을 주신 하나님은 오늘도 성도들의 기도를 듣고 태의 문을 열어주실 것입니다.

히스기야의 생명을 연장시켜 주신 하나님은 생명을 살리기도 하시고 죽이기도 할 수 있습니다.

홍해를 가르시고 여리고성을 무너지게 하신 하나님은 우리들 인생의 모든 문제의 장벽들을 무너뜨리시며 길을 열어주실 수 있습니다.

모든 병든 자를 고쳐주신 하나님은 지금도 모든 질병의 치료자가 되시며 고쳐주실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모든 것을 다 하실 수 있습니다. 구원의 문제 - 하나님이 하시는 것입니다.

다만 우리에게 요구되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순종입니다.
지금 우리가 해야 할 것이 있다면 순종하는 것이다. 또한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순종입니다.

성 프란체스코에게 찾아온 제자 지망생들이 있었습니다. 프란체스코는 그들에게 무우를 밭에 가서 심으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무우를 거꾸로 심게 하였습니다.
한 제자지망생은 생각했습니다. 선생님이 우리를 시험하시는 것일거야 어찌 거꾸로 심는단 말인가 그것은 상식에 맞지 않아. 그러나 또 다른 지망생은 선생님이 하라신데는 무슨 깊은 뜻이 있을거야. 그리고 무우를 한사람은 바르게 한사람은 거꾸로 심었습니다.
프란체스코가 그들에게서 보기를 원한 것은 순종이었습니다.

순종하는 자리에 하나님의 역사하심이 일어납니다. 성서의 많은 이사와 기적들은 순종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가나의 혼인잔치에서 물이 편하여 포도주로 변한 사건(종들의 순종이 있었다)

여호수아와 이스라엘 백성들의 일치와 순종은 여리고성을 무너지게 하였다.

나아만 장군의 문둥병이 고침받은 것도 순종의 결과입니다.

순종할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을 믿고 신뢰하기 때문입니다. 사람으로는 할 수 없으되 하나님으로는 다 할 수 있음을 믿기 때문입니다.

아프리카에서 선교활동을 하던 선교사가 성서를 원주민 말로 번역하던 중 어려움에 부딪히게 되었습니다.
그 어려움이란 '순종'이라는 단어를 대신하여 사용할 원주민 말을 아직 찾지 못한 것이었습니다. 하루는 그 선교사가 마을 광장 안으로 걸어가고 있었는데, 그가 기르는 개가 옆길로 비켜가고 있었습니다.
그 개를 본 선교사는 휘파람을 불었고, 휘파람 소리에 개는 전속력으로 그에게 달려왔습니다. 그런데 마침 길 옆에 앉아서 그 광경을 지켜 보던 나이 많은 원주민이 개의 즉각적인 반응에 깊은 감명을 받았는지 다음과 같이 중얼거렸습니다.

"무이 아뎀 델레가우 계!"
이 말은 '당신 개는 귀만 있다.'라는 뜻입니다.

그 순간 선교사는 그 말의 뜻이 '당신 개는 열심히 듣는다.' 즉 '순종'이라는 말이구나 하는 생각이 번개같이 스쳐지나갔고, 그 원주민의 표현을 성경 번역시 순종의 의미로 사용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우리도 모든 귀를 쫑긋 세워 하나님의 말씀에 귀 기울이고, 신속히 순종하여 행해야 할 것입니다.

헌신은 말씀에 순종하는 것입니다.
본 훼퍼는 믿음과 순종은 떨어질 수 없는 하나로 보았습니다.
"믿는 자들만이 순종할 것이며 순종하는 자들만이 믿게 될 것이다."라고 말했습니다.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모든 지각에 뛰어나신 하나님께 아뢰라고 바울은 말했습니다.
우리가 할 수 없는 것은 하나님이 하시지만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우리가 해야 합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이 있습니다.
기도하는 것입니. 찾아가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것입니다.
예수생명 전도축제를 통해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바로 이런 것들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할 수 없는 것이 있습니다. 그 영혼이 하나님께로 나아와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여 하나님의 자녀로 구원받는 것입니다.
구원은 하나님이 하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할 수 없는 것을 하나님은 다 하실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전도의 결과를 생각하며 염려하지 마십시오. 모든 것은 하나님이 다 하시는 것입니다. 사람이 할 수 없는 것도 하나님은 하실 수 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 모든 결과를 맡기고 할 수 있는 것들을 최선을 다해 열심히 하십시오.

그것은 한 번 더 기도하는 것입니다.
한 번 더 찾아가는 것입니다.
한 번 더 사랑하는 것입니다. (구호제창)

40여년 전,미국의 한 시립병원에 생후 6개월 된 한 아기가 버려졌습니다. 아기는 시각장애와 심한 뇌성마비를 앓고 있었습니다. 그때 52세 된 간호사 메이가 아기를 데려다 키웠습니다. “평생 동안 이 아기를 잘 보살피겠어요.”그는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메이는 아기의 이름을 레슬레라고 지었습니다. 아기는 우유를 주어도 그것을 빨아먹을 힘이 없었습니다.
메이는 매일 아기의 볼에 입을 맞추고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그러나 아기는 단 한번도 미소를 지을 줄 몰랐습니다.
메이는 레슬레를 위한 기도를 드리기 시작했다.“하나님, 저는 성경의 기적을 믿습니다. 기적을 베풀어 주소서.” 레슬레는 ‘기도’와 ‘사랑’을 먹고 조금씩 변화됐습니다.
어느 날 밤, 메이는 은은한 피아노 반주를 듣고 잠에서 깨어났습니다. 그것은 차이코프스키의 피아노 협주곡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곡의 연주자는 놀랍게도 스물 한살의 레슬레였던 것입니다. 한 여인의 사랑과 기도가 잠든 영혼을 깨운 것입니다.

기적의 재료는 사랑과 기도입니다. 기적은 하나님이 하시는 것이지만 사랑과 기도는 사람이 할 수 있는 것들입니다.
결과는 하나님이 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나 과정은 사람이 만드는 것입니다.

성경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롬8:28) 할렐루야
2005년 10월23일 주일낮예배 (이 광 호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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