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자랑 십자가 갈6장14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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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10월16일 주일
최수인 목사
사람들 마음속에는 자랑하고자 하는 마음이 있기 때문에 자랑하기를 좋아 합니다 우리는 그 사람이 자랑하는 것을 들어보면 그 사람의 인격을 알 수 있습니다. 자랑이란 자기가 가장 가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을 자랑하기 때문입니다 돈에다가 인생에 가치관을 둔 사람은 돈만 있으면 자랑합니다. 자식들에게 가치관을 둔 사람은 자식들을 자랑 합니다 지식에다가 가치를 둔 사람은 자신의 학벌을 자랑하기 마련입니다 미모를 자랑하고 권력을 건강을 자랑하고 가문을 자랑하고 아무튼 수없이 많은 자랑거리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자랑거리들이 일년이 지나고 10년이 지나가고 50년이 지나간 후에도 영원히 자랑 할 수 있느냐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세상의 그 어떠한 자랑거리도 영원히 자랑거리는 될 수 없습니다 이세상은 날마다 변하기 때문입니다 인생은 하루 동안에 무슨 일을 만나게 될는지 내일 일을 알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제가 어려서는 동네에서 자전거 한대만 있어도 대단한 자랑거리였습니다. 그러다가 오토바이가 나오니까 오토바이가 자랑거리가 되었습니다. 지금은 어떠합니까. 고급 승용차들이 자랑거리가 되었습니다.
더 좋은 것이 생기면 전에는 그것이 최고인줄로 알았는데 전에 자랑하던 것을 멈추고 지금 좋은 것을 자랑하기가 마련입니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사도 바울도 주님의 십자가의 도를 깨닫기 전에는 그에게 자랑 거리가 여러 가지었으나 예수님의 십자가를 발견한 후에는 전에 자랑하던 것을 부끄럽게 여기고 그것들을 배설물로 여기고 그의 일생동안 오직 예수님의 십자가만을 자랑하게 된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바울이 발견한 십자가 바울이 자랑한 십자가를 우리도 발견하게 된다면 우리의 삶의 가치관이 바꾸어지고 우리의 자랑거리가 바꾸어질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1.예수님을 만나기 이전에 바울이 생각했던 십자가
바울의 일생을 크게 나누라고 한다면 예수님을 만나기 이전과 예수님을 만나고 난 이후에 삶으로 나눌 수가 있을 것입니다 예수님을 만나기이전의 생활은 예수님께서 못 박히셨던 십자가의 참된 진리를 깨닫지 못했던 생활이요 예수님을 만나고난 이후에 생활은 예수님의 십자가의 참도 도를 깨달았던 생활이라고 말할 수가 있을 것입니다. 바울사도가 오늘 본문에서 그의 자랑을 오직 십자가뿐이라고 말씀하고 있지만 그도 예수님을 만나기 이전에는 십자가를 자랑스럽게 여기지 않았던 것을 성경을 통하여 알 수 있습니다.
바울이 예수님을 만나기 이전에 생각했던 십자가는 수치스럽고 저주스럽게 여겼으며 그래서 그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와 그 예수를 믿고 십자가를 전하는 모든 무리들까지 미워하고 핍박하고 잡아서 죽이는 일까지 앞장서서 했던 사람입니다 그때당시에 모든 사람들은 십자가는 가장 흉악한 죄인들을 잡아서 죽이는 사형 틀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의 생각 속에는 십자가를 저주하고 미워하고 거부하는 마음이 본성적으로 누구에게나 있었던 것입니다.
바울 사도 역시 그래서 십자가에 죽은 죄인들을 증오했으며 죄인들은 당연히 십자가에 죽어야 한다고 생각을 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바울을 더욱 화나게 했던 것은 그 저주스런 십자가에 못박혀죽은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요 그리고 죽었던 예수는 온 인류의 죄인들의 죄를 대신하여 십자가에 피 흘려 죽었을 뿐만 아니라 죽었다가 사흘 만에 다시 부활 했다고 증거 하자 정의감에 사로잡힌 바울은 예수는 사기꾼이고 그 예수 믿고 따르는 모든 사람들 역시 똑같은 사기꾼들이라고 생각하여 예수 믿는 사람들을 핍박하는데 사명감을 가지고 앞장서서 괴롭히던 사람이 바울이었습니다. 바울만 그러했을까요. 아닙니다. 오늘날도 동일하게 모든 사람들은 십자가를 거부합니다. 십자가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싶어 하지도 않습니다. 사람들은 본성적으로 십자가를 싫어하고 십자가를 조소합니다. 십자가는 나의 실패와 죄를 지적하기 때문입니다. 십자가는 고난과 희생을 암시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십자가는 이해하기가 힘든 신비이기 때문입니다.
베드로도 처음에는 십자가를 싫어했습니다. 주님께서 십자가에 죽음에 대한 말씀을 하셨을 때에 "주여 십자가의 사건이 일어나서는 절대로 안 됩니다." 그것이 솔직한 베드로의 소원이었습니다. 갈라디아 사람들도 십자가의 복음을 싫어했습니다. 십자가의 신비를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이었습니다.
현대인들도 십자가를 싫어합니다. 십자가가 현대인의 체면을 손상시키기 때문입니다. 나의 실패와 죄를 적나라하게 지적하기 때문입니다.
이 땅에 모든 사람들이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지 못하면 십자가는 어리석고 미련하게 보일뿐입니다 진정한 주님의 십자가의 참된 진리를 발견하지 않고는 예수님을 바로 믿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예수를 믿는다고 말하면서도 십자가를 부끄러워한다든지 십자가를 자랑 할 수 없다면 아직도 구원 받은 자라고 말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바울이 예수님을 만나기 이전에 생각했던 십자가는 수치와 부끄러움의 십자가 어리석음의 십자가로 생각 했던 것입니다
2. 십자가를 자랑하게 된 바울
어리석고 미련하게 보였던 십자가 그런 십자가를 믿고 따르는 자들 역시 천박스럽게 생각했던 바울이 그 반대로 오직 십자가만을 설교하고 십자가만을 자랑하는 사람으로 바꾸어져서 십자가만을 전하다가 생을 마치었을까요.
바울이 십자가를 자랑하게 된 것은 예수님을 만나고 난 이후에 변화였던 것입니다. 그가 예수님을 만나게 된 과정을 살펴보면 바울이 예수님의 십자가를 전하는 무리들을 증오하고 있을 때에 중요한 정보를 입수하게 됩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를 믿고 전파하는 무리들이 다메섹에 모여 있다는 것입니다 바울은 대 제사장에게 가서 그들을 결박 할 수 있는 체포 영장을 손에 들고 그들을 잡으러 가다가 다메섹도상에서 부활 하신 예수님을 만나게 된 것입니다 갑자기 하늘로부터 강한 빛이 바울을 향하여 비쳐오더니 눈을 뜰 수가 없어 땅에 엎드려 졌는데 하늘로부터 사울아 사울아 네가 어찌하여 나를 핍박하느냐 하는 음성을 듣고 주여 뉘시니까 라고 묻자 다시 음성이 들려오기를 나는 네가 핍박하는 예수라고 하는 말씀 한마디에 바울은 큰 망치로 얻어맞는 것 같은 충격을 받게 되었던 것입니다
지금까지 바울이 생각했던 십자가는 실패자 예수 죄인 예수가 죽은 십자가요 그리고 그 십자가를 믿고 따르는 모든 무리들은 배우지 못하고 어리석고 미련한자들이 분별력이 없기 때문에 속아서 만들어낸 이단으로 생각하고
그래서 오늘도 그들의 어리석음을 깨우쳐 주려고 그들을 결박하러가고 있는데 지금 바울은 십자가의 사건이 거짓이 아니고 진리요 십자가야 말로 가장 위대한 하나님의 사랑의 증표임을 발견하게 되었으며 그는 사흘 동안을 식음을 전폐하면 눈물로 회개하고 하나님의 은혜로 그 눈을 가리어서. 지금까지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를 바로 볼 수없게 막았던 눈에 비늘이 벗겨지고 죄인들을 구원하시기 위하여 십자가에 죄인들을 대신하여 피흘려죽으신 예수님을 바라보게 된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바울이 예수님을 만나기 이전에 바라보았던 십자가는 실패자예수 죄인예수가 매달린 십자가로 보았으나 바울이 예수님을 만나고 그의 눈이 열리고 바라본 십자가는 의로우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가 자신의 흉악한 죄를 대신 짊어지시고 자기를 대신하여 피 흘려 죽으시고 자기의모든 허물과 죄를 사하여주시는 놀라운 구원의 십자가로 보였던 것입니다. 그 순간에 바울의 가치관에 변화가 찾아 왔습니다. 십자가는 그의 삶속에 가장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게 되었으며 오직 십자가만 자랑하게 된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십자가는 기독교의 핵심이며 성경의 핵심입니다. 기독교는 윤리나 도덕 사회정의실현도 아니고 예수 그리스도가 못 박힌 십자가인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바울 사도는 오직 십자가만 자랑하겠노라고 고백합니다. 무엇 때문에 그런 고백을 하였을까요.
첫째, 십자가 앞에서 자신의 죄를 발견했기 때문입니다 .
바울 예수님의 십자가의 참된 진리를 발견하기 전에는 조류독감보다 더 무서운 심각한 영적인 질병이 있었었습니다. 그의 병은 어떤 것으로도 드러나지 않았으며 자신도 감쪽같이 수십 년을 속아서 살았던 것입니다.
그래서 자신의 영혼이 가장 건강하고 완전 한 줄로 알았던 것입니다 그가 배운 많은 학문이 자신의 영적인 상태를 밝혀주지 못했으며 수많은 종교적인 생활이 진단해 주지 못했으며 유대의 전통적인 그의 가문이 깨우쳐주지 못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자신이 가장 완전하고 의롭고 그리고 건강 한 줄로 착각하고 속아서 살아왔던 것입니다 그러던 그가 주님의 십자가 앞에서 자신의 심각한 상태를 발견하게 된 것입니다 지금까지 그는 한번도 자신이 죄인이란 사실을 망각하고 고민하지 않고 살아왔으나 주님의 십자가 앞에서 자신을 발견하게 된 것입니다 처참한 지경에 놓인 모습을 발견한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 앞에 꺼꾸러질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는 사람들의 모든 죄를 들추어내는 것입니다 십자가 앞에서 자신이 죄인인줄을 발견하지 못하면 멸망하고 마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실 때에 한편 강도는 십자가를 외면했기 때문에 영원한 저주를 받았습니다. 그러나 한편 강도는 십자가를 바라보며 자신이 죄인인줄을 발견하고 십자가를 붙들었기 때문에 영원한 구원을 받았습니다. 사울의 운명도 십자가로 인해서 바뀌어졌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처참하게 매달려 죽으신 십자가를 바라보면서 우리의 모습을 보아야 할 것입니다 십자가의 주님의 모습은 영광스러운 예수님의 모습이 아니고 우리의 추하고 더러운 처참한 나의 모습이란 사실이 깨달아지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 합니다
둘째는 십자가 앞에서 드러난 모든 죄를 용서받았기에 십자가를 자랑했습니다.
환자의 질병을 진단한 의사가 병명만 말해주고 치료하여 주지 않은 다면 어떻게 될까요. 그것은 참으로 비극적인 일입니다 이 땅에 의사들은 진단하여 병은 찾아내지만 치료 할 수 없는 병들이 수없이 많습니다
그러나 우리 방법을 말씀해 주셨습니다. 그 방법은 하나님의 독생자 예수님의 십자가를 통하여 우리의 추악한 모든 죄상이 다 드러나게 하시고 예수님의 십자가의 피 흘려 죽의심이 나의 죄를 사하기 위하여 대신 죽으신 죽음으로 믿는 자들의 모든 죄를 깨끗하게 사하여 주시기로 약속 하신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십자가는 우리의 모든 죄를 들러나게만 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죄를 해결하는 하나님의 능력이 되십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를 믿음으로 바라본다면 기적이 일어납니다. 증오했던 마음이 사라지고 나를 짓누르는 무거운 죄의 짐이 벗겨지고 답답했던 나의 영혼이 확 트이는 역사가 일어 날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서 원망하고 불평 할 때에 하나님께서 불 뱀을 보내어 그들을 물게 하셨습니다. 불 뱀에 물려서 온 몸이 독으로 퉁퉁 부어올라 수많은 사람들이 아우성을 치며 죽어 갈 때에 모세는 하나님 앞에 엎드리어 하나님 나의 죄와 이백성의 허물을 용서하시고 살려달라고 간절히 기도 했을 때에 불 뱀에 물린 자들이 살아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을 말씀해 주셨습니다. 너는 구리로 뱀을 만들어 높은 장대에 매달고 누구든지 불 뱀에 물린 자는 장대에 달린 구리 뱀을 쳐다보면 독이 사라지고 살수 있다고 외치라고 말씀 합니다 모세가 하나님 말씀대로 장대의 구리 뱀을 만들어 불뱀에 물려 죽어가는 무리들을 향하여 누구든지 이 구리 뱀을 쳐다보면 살수 있으니 바라보라고 외치자 바라보는 자들은 독이 사라지고 살수 있었으나 그런 어리석은 말을 못 믿겠다. 하고 바라보지 않은 자는 그대로 죽었던 것입니다 사랑하시는 성도 여러분 죄 때문에 고통스러워하십니까. 죄 때문에 두려워하십니까. 죄 때문에 죄를 회개 하면서 나의 모든 죄를 대신 지시고 피 흘려 죽으신 예수님의 십자가를 믿음으로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를 믿는 자는 죄 사함을 받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약속입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 고 약속 하셨습니다.
주님의 십자가를 통하여 죄 사함을 얻게 될 때에 예수님의 십자가를 자랑하게 될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사울은 본래 십자가를 싫어하던 사람이었습니다. 십자가를 멸시하고 십자가를 반대하던 사람이었습니다. 스데반이 "십자가, 십자가" 하면서 설교할 때 그를 돌로 처 죽인 사람이었습니다. 십자가를 설교하는 무식한 놈들은 처 죽여 마땅하다고 생각했고 그들을 잡아 죽이는데 앞장을 섰던 사람이었습니다. "사울이 그의 죽임 당함을 마땅히 여기더라"(행8:1). "내가 이 도를 핍박하여 사람을 죽이기까지 하고 남녀를 결박하여 옥에 넘겼노니"(행22:4). 그러던 사울의 운명이 바뀌어졌습니다. 십자가에 달려 죽으신 주님을 만났기 때문입니다. 십자가와 부활의 주님을 만났기 때문입니다. "사울아 사울아 네가 어찌하여 나를 핍박하느냐 나는 네가 핍박하는 예수라"(행9:4,5) 라고 말씀하시는 주님을 만났을 때 사울의 운명이 바뀌어졌습니다. 사도 바울은 나중에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갈2:20).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세상이 나를 대하여 십자가에 못 박히고 내가 또한 세상을 대하여 그러하니라"(갈6:14). 십자가 사건으로 사울의 운명이 변화되었습니다. 십자가를 통해서 세상이 죽고 자기가 죽는 운명의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독일의 부유한 귀족의 집에서 태어난 진젤돌프 백작도 십자가 때문에 그의 운명이 바뀌어졌습니다. 그가 19살 청년이었을 때 백작으로서의 공직을 수행하기 위해 법률을 공부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진젤돌프 백작이 어느날 미술 전시회에 들러 미술품을 관람하던 중 그의 인생이 바뀌어지는 획기적인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달려 고통을 받고 있는 성화를 바라보다가 그만 그 그림 앞에 무릎을 꿇었습니다. 미술품 전시관의 문을 닫아야 하는 시간이 되었는데도 진젠돌프는 그 그림 앞에 무릎을 꿇고 있었습니다. 십자가 그림 앞에서 진젠돌프의 삶의 방향이 바뀌어졌습니다. 1719년에 일어난 사건이었습니다. 백작의 삶에서 위대한 선교 지도자의 삶으로 바뀌어졌습니다. 십자가는 인생의 운명과 가치를 바꾸어 놓는 천국의 열쇠가 되고 하늘의 문이 됩니다. 용서와 사랑의 마당이 되고 무대가 됩니다. 십자가를 얼마나 중요시 하느냐에 따라 그 사람의 가치가 결정됩니다. 십자가가 삶의 중심을 차지하느냐에 따라 그 사람의 의의와 가치가 결정됩니다. 여러분들의 삶도 십자가 앞에서 변화를 받아야 합니다.
세째, 십자가는 그의 자랑 거리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자기 자랑 하기를 좋아합니다. 자기의 지식, 자기의 경험, 자기의 성공담, 자기의 군대 생활, 자기의 가정생활, 자기의 학문, 자기의 여행담 등등 자기에 대한 자랑하기를 좋아합니다. 그런 것들을 자랑하는 이유는 내 생활에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러나 십자가를 통하여 자신의 죄를 발견하고 십자가를 통하여 죄 문제를 해결 받은 사람은 자랑 거리가 바꾸어져서 예수님의 십자가만 말하고 그것만 자랑하게 될 줄로 믿습니다. 사도 바울은 십자가를 경험한 이후부터 설교할 때 많이 배운 지식을 말하지 않았습니다. 아름다운 말, 유창한 웅변을 하지도 않았습니다. 이적이나 체험을 말하지도 않았습니다. 오로지 한 가지만을 핵심적으로 말하고 설교했습니다.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이었습니다.
고전 2:1-2에서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형제들아 내가 너희에게 나아가 하나님의 증거를 전할 때에 말과 지혜의 아름다운 것으로 아니하였나니 내가 너희 중에서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 외에는 아무 것도 알지 아니하기로 작정하였음이라." 고전 1:22-23에서는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유대인은 표적을 구하고 헬라인은 지혜를 찾으나 우리는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를 전하니." 수리아 안디옥 교회의 파송을 받은 선교사 바울이 소아시아 안디옥에 가서 설교한 첫 설교의 핵심도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이었습니다. "나무에서 내려다가 무덤에 두었으나 하나님이 죽은자 가운데서 저를 살리신지라"(행 13:29-30). 유럽의 데살로니가에 가서 설교한 첫 설교의 핵심도 십자가와 부활이었습니다. "바울이 성경을 가지고 강론하며 그리스도가 해를 받고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야 할 것을 증명하고"(행 17:2-3). 사도 바울의 대표적인 저술인 로마서와 고린도서의 중심 내용도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십자가의 죽음이었습니다. 사도 바울은 십자가만을 설교했고 십자가만을 전파했고 십자가에 대해서만 글을 쓴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무식하다는 비난도 받았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그와 같은 비난에 굴하지 않고 끝까지 십자가만을 말하고 십자가만을 자랑하여 전파 한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십자가가 여러분의 자랑하는 말을 변화시켜서 오직 십자가 자랑만 하시기를 원 합니다. 오직 내 입술이 십자가를 말하고 내 영혼이 십자가를 노래하고 내 몸이 십자가를 증거 하기를 바랍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우리들의 입술과 영혼과 몸을 지으신 목적입니다. 십자가가 우리의 말과 설교를 변화시키기를 바랍니다.
3. 오직 예수님의 십자가만 자랑하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의 자랑은 무엇입니까 지금까지 무엇을 말하며 자랑하면서 살아 오셨습니까. 이제는 우리 주님의 십자가만을 나의 장으로 삼으시기 바랍니다.
지식이나 가문이나 미모 건강 물질 처자식 명예 직장 나의 이름 석자 자랑할 것이라고는 이 세상에 아무것도 없습니다. 이런 것들은 나의 가장 근본적인 죄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구원을 줄 수 없기 때문입니다 오직 우리 주 예수님의 십자가만 죄 문제를 해결하고 우리에게 구원을 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사도 바울도 전에는 자기의 가문과 자기의 학문과 자기의 종교적 열심을 자랑했습니다. 나중에는 낙원에 이끌려 올라갔던 신비한 체험을 자랑하고 싶은 마음을 품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십자가를 체험한 사도 바울은 이와 같은 자기에 관한 자랑들을 모두 포기했습니다. 그와 같은 것들이 이제는 모두 똥과 같이 보인다고 고백했습니다.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빌3:8). 갈 6:14에서 표현한 대로 사도 바울은 이제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 결코 자랑할 것이 없으니"라고 분명하고 단호하게 고백했습니다.
사도 바울은 십자가를 자랑한 나머지 십자가를 몸에 짊어지고 다녔습니다. 손자 손녀들을 자랑하고 싶은 할머니 할아버지가 손자 손녀들을 안고 다니거나 업고 다니거나 짊어지고 다니는 것처럼, 사도 바울은 십자가를 몸에 짊어지고 다녔다고 고백했습니다. "우리가 항상 예수 죽인 것을 몸에 짊어짐은"(고후 4:10). 십자가를 짊어지고 다니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닙니다. 무겁고 고통스럽고 수치스럽기도 합니다. 아이를 업고 다니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닙니다. 무겁고 고통스럽고 때로는 귀찮기도 합니다. 그러나 좋아하고 자랑하고 싶은 사람은 그것이 문제가 아닙니다. 무거워도 힘들어도 짊어지고 다닙니다. 바울은 고난의 십자가를 짊어지고 다니는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했고 오히려 기뻐했습니다. "내가 내 몸에 예수의 흔적을 가지노라"(갈 6:17). "내가 이제 너희를 위하여 받는 괴로움을 기뻐하고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그의 몸 된 교회를 위하여 내 육체에 채우노라"(골 1:24). 바울이야 말로 십자가의 사람이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들, 십자가를 부끄러워하는 사람들이 되지 말고 십자가를 자랑하는 사람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십자가를 귀찮아하는 사람들이 되지 말고 십자가를 좋아서 짊어지고 다니는 사람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십자가 앞에서 우리의 모습을 발견하시기 바랍니다. 십자가 앞에서 내가 얼마나 추악한 죄인인가를 깊이 발견하고 통회하고 회개하여 십자가 앞에서 우리 모든 죄 문제를 해결함을 받으시기 바랍니다. 진정으로 죄 용서함을 받았고 구원함을 받았다면 우리의 자랑은 오직 십자가만 되어야 할 것입니다.
우리가 주님의 십자가를 체험하게 되면 주님의 십자가를 붙잡게 될 것입니다. 어거스틴도 한 동안은 정욕과 출세욕에 얽매여 살았고 마태와 삭개오도 한 동안은 물욕과 출세욕에 얽매여 살았습니다. 바울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런데 이들에게 세상이 죽고 자기가 죽는 운명의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그래서 진정한 자유와 진정한 행복을 체험했습니다. 이와 같은 운명의 변화가 십자가를 통해서 일어났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이 우리 대신 심판과 저주를 받으신 십자가를 바라볼 때 그와 같은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하늘 영광 떠나서 이 세상에 섬기러 오신 주님, 하늘의 별을 만드신 그 손과 발에 상처를 입으시고 죽으신 주님을 바라볼 때 그와 같은 변화가 일어납니다.
이와 같은 변화가 바울 자신에게만 일어난 것이 아니었습니다. 바울이 십자가의 복음을 전파할 때 그 복음을 듣는 사람들 가운데도 그와 같은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루디아의 마음속에도, 빌립보 간수의 마음속에도 이와 같은 운명의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문둥병에 걸렸던 벤허의 어머니와 여동생이 멀리 서서 십자가를 바라볼 때 문둥병에서 고침을 받는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십자가 밑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죄와 질병과 우울증과 절망의 속박에서 벗어나는 구원의 역사를 체험했습니다. "십자가와 나" 나는 지금 십자가와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십자가를 무시하고 싫어합니까? 십자가를 사랑하고 자랑합니까? 십자가는 하나님의 아들이 나 대신 심판과 저주를 받으신 곳입니다. 십자가는 어떠한 무서운 죄를 범한 죄인도 조건 없이 받아들이는 하나님의 용서와 사랑의 두 팔입니다. 십자가는 우리가 세상을 떠날 때도 붙잡아야만 하는 유일한 의요 유일한 공로입니다. 진젠돌프 백작처럼 십자가 앞에 무릎을 꿇으시기 바랍니다. 십자가에 달린 한 편 강도처럼 그저 십자가를 바라보고 의지하시기를 바랍니다. 사도 바울처럼 한 평생 십자가만을 말하고 십자가만을 자랑하고 십자가만을 짊어지고 다니며 사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