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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랑 속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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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랑 속에서
본문 : 시편 107편 23절-32절 마경훈 목사

본문 : 시편 107편 23절-32절
23 선척을 바다에 띄우며 큰 물에서 영업하는 자는
24 여호와의 행사와 그 기사를 바다에서 보나니
25 여호와께서 명하신즉 광풍이 일어나서 바다 물결을 일으키는도다
26 저희가 하늘에 올랐다가 깊은 곳에 내리니 그 위험을 인하여 그 영혼이 녹는도다
27 저희가 이리 저리 구르며 취한 자 같이 비틀거리니 지각이 혼돈하도다
28 이에 저희가 그 근심 중에서 여호와께 부르짖으매 그 고통에서 인도하여 내시고
29 광풍을 평정히 하사 물결로 잔잔케 하시는도다
30 저희가 평온함을 인하여 기뻐하는 중에 여호와께서 저희를 소원의 항구로 인도하시는도다
31 여호와의 인자하심과 인생에게 행하신 기이한 일을 인하여 그를 찬송할지로다
32 백성의 회에서 저를 높이며 장로들의 자리에서 저를 찬송할지로다


성도들이 고생하며 사는 것을 보면 제 마음이 참 무겁고 죄송스럽습니다. 요즘은 다른 때보다 어려움을 당하는 성도들을 위한 중보기도를 많이 시키시는 것 같습니다. 그만큼 성도들이 힘들게 세상을 살고 있다는 생각을 합니다.
오늘은 인생을 살다가 풍랑을 만나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살펴보겠습니다.

1. 이상하게 여기지 말라.
야고보 장로는 “네 형제들아 너희가 여러 가지 시험을 만나거든 이상히 여기지 말라”(약1:2)고 말했습니다. 예수를 믿든지 믿지 않든지 인생에는 여러 가지 시험이 있습니다. 다양한 풍랑을 만납니다. 누구에게나 인생의 폭풍은 불며 생각지 않았던 풍랑을 만날 때가 있습니다. 모세는 “인생은 70이요 강건하면 80이라도 그 년수의 자랑은 수고와 슬픔뿐이라”고 말하며 인생이 풍랑의 연속임을 말했습니다.
믿음으로 살면 어려움이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렇지 않습니다. 믿음으로 살아도 힘들고 괴로운 일도 생깁니다. 믿음으로 사는 사람들이 믿음 없는 사람들과 다른 것은 긍정적으로 문제에 부딪힐 수 있고 하나님의 도우심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이 다른 것입니다.
스펄전 목사님은 기독교 역사에 남는 대 설교가 입니다. 이분도 한 때 인생의 심각한 위기를 맞아 견디기 힘든 시절을 보낸 적이 있습니다. 인생의 풍랑을 만난 것입니다. 이 때 교인들에게 기도부탁하며 쓴 편지 내용 가운데 이런 구절이 있습니다. “나는 완전히 부서진 질그릇처럼 느껴집니다. 많은 밤을 자지 못하며, 많은 낮에도 눈물을 흘리고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자기만 고난당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지나가는 사람 붙잡고 물어보십시오. 고난 없는 사람을 찾아볼 수 없을 것입니다. 아무리 행복하고 잘 사는 것 같아도 문제를 만납니다. 나만 당한다고 생각하면 고통이 더 크게 느껴질 것입니다. 모두가 고난속에 있다고 생각하면 조금은 위로가 될 것입니다.
주님과 함께 동행 해도 풍랑을 만날 수 있습니다. 주님의 제자들은 주님과 함께 갈릴리 바다를 건너면서 풍랑을 만났습니다. 다윗은 여호와가 목자가 되셔서 인도하셔도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통과할 때가 있다고 고백했습니다. 고난이 있다고 믿음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믿음이 좋아도 고난을 당할 수 있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당하는 고난을 믿음의 눈으로 보십시오. 긍정적인 시각으로 보십시오. 골짜기가 깊다는 것은 그만큼 산이 높다는 말입니다. 당하는 고난이 심하면 연단도 큰 것이고 연단 이후에 찾아올 은혜도 크다는 것입니다. 이상히 여기지 마시고 낙심하지 마시기를 바랍니다.

2. 버려야 할 것이 있다면 버려야 합니다.
요나서에 보면 요나는 하나님이 주신 니느웨 전도의 사명을 버리고 다시스에세 욥바로 가는 배를 탔습니다. 배 밑창에서 잠을 자는데 바다에 풍랑이 일어납니다. 선원들은 풍랑을 이겨보려고 몸부림을 쳤지만 불가능했습니다. 풍랑을 벗어나려던 선원들에게 영감이 떠올랐습니다. 배에 타고 있는 사람 중에 하나님을 진노하게 한 사람이 있을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제비를 뽑았는데 요나가 걸리게 됩니다. 결국 요나를 바다에 집어 던진 후에야 풍랑이 멈추게 되었습니다. 사도행전 27장에 보면 바울이 탄 배가 유라굴로라는 광풍을 만나게 됩니다. 죽음의 위기 가운데서 선원들이 먼저 한 일은 배에 있는 짐을 버리는 일이었습니다. 심지어 먹을 것과 배의 기구까지도 버렸습니다. 여호수아서 7장에 보면 아이성 전투에 실패한 이스라엘 백성들은 아이성 전투를 실패하게 만든 원인을 제거합니다. 역시 제비뽑기를 해서 아간을 잡아내고 그 공동체 가운데서 아간을 제거한 후에 아이성을 점령하게 됩니다.
우리의 인생에 풍랑이 일어나는 경우는 몇 가지입니다. 우리를 단련하기 위한 하나님의 연단이 있습니다. 선을 행하므로 당하는 거룩한 풍랑도 있습니다. 나와 상관없는 일로 당하는 애매한 풍랑도 있습니다. 하나님 앞에 처리되어야 할 문제를 처리하지 않아서 당하는 풍랑도 있습니다. 만약 하나님 앞에 처리되어야 할 문제 때문에 당하는 풍랑이라면 성령의 도우심을 받아서 처리해야 합니다. 그것이 죄의 문제라면 회개하고 버려야 합니다. 그것이 습관의 문제라면 성령의 도우심을 받아서 이겨내야 합니다. 그것이 잘못된 만남 때문이라면 기도하며 끊어버려야 합니다.
인도네시아나 말레이시아에서 원숭이를 잡으려면 빈 병과 과자만 있으면 됩니다. 조그마한 과자를 병 속에 집어넣어 두면 원숭이들이 와서 손을 집어넣어서 과자를 꺼냅니다. 그런데 병목이 작으니까 과자를 쥔 손이 빠지지 않습니다. 잡은 것을 놓으면 되는데 놓지 않고 손만 빼려고 하니 고생만하고 손은 빠지지 않는 것입니다. 결국 사람들이 원숭이를 잡습니다. 미련한 원숭이들이 손에 잡은 것만 놓으면 도망갈 수 있는데도 잡은 것을 놓지 않기 때문에 잡히고 마는 것입니다.
인간적으로 아무리 좋은 것도 하나님의 일을 하기에 방해되는 것이 있습니다. 그런 것은 과감하게 버려야 합니다. 모세가 하나님 앞에 쓰임 받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히브리서 11장24절을 보니까 “믿음으로 모세는 장성하여 바로의 공주의 아들이라 칭함을 거절하고 도리어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고난 받기를 잠시 죄악의 낙을 누리는 것보다 더 좋아하고” 모세는 하나님의 나라를 위하여 모든 것을 다 버렸습니다. 바로의 공주의 아들이라는 자리까지도 하나님을 섬기는데 방해가 되기 때문에 버린 것입니다.
저는 이 시간 성령께서 여러분 안에 놓아야 할 것, 버려야 할 요나를 보여주시기를 축원합니다. 성령의 조명으로 내가 처리해야 할 것은 무엇인지 보십시오. 그리고 믿음의 결단으로 담대하게 버리기를 축원합니다.

3. 주님을 깨우라.
막4장에 보면 주님께서 제자들과 함께 갈릴리 바다를 건너가십니다. 주님은 주무시고 제자들은 열심히 노를 저어 바다를 건너는 중에 문제가 발생했습니다. 큰 광풍이 일어났습니다. 바다가 춤을 추며 물결이 배에 부딪힙니다. 갈릴리 바다는 둘레가 18km 정도이며, 가장 먼 지점의 직경이 약 10km정도가 되지만 평평한 수면 위로 보면 한 2~3km 밖에 안 되는 것처럼 보이는 호수입니다. 수심은 깊은 곳은 200m, 평균 90m입니다. 갈릴리 호수는 해수면보다 6백 척이나 낮습니다. 거기다가 호수 양쪽에는 언덕이 있고 뒤에는 헐몬산이 있는데 그 산의 높이가 4천m나 됩니다. 그러므로 헬몬산에서 바람이 불면 큰 진공이 이루어지기 때문에 물이 하늘로 빨려 올라갑니다. 때문에 30분 이내에 배들이 피하지 아니하면 어떤 배도 침몰당하고 마는 것입니다. 그런 상황 속에서 제자들은 자신들의 능력으로 벗어나 보려고 애를 썼지만 역부족이었습니다. 그들에게 두려움이 엄습했습니다. 그들이 두려워했던 이유는 믿음이 부족했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제자들에게 “우리가 저편으로 건너가자”고 말씀하셨습니다. 주님이 말씀하셨으면 그렇게 되는 것입니다. 중간에 풍랑을 만나도 반드시 건너가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주님의 말씀은 능력이 있어서 말씀하신대로 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제자들은 주님의 말씀을 기억하지 못하고 두려워했습니다. 그래도 다행스러운 것은 그 상황 속에서 자신들의 힘만으로 해결하지 않고 주님을 깨웠다는 것입니다. 주무시던 주님은 일어나셔서 바람과 바다를 향하여 외치셨습니다. “잠잠하라 고요하라” 주님의 말슴이 떨어지자마자 신기하게도 바람이 그치고 바다가 아주 잔잔해졌습니다.
인생의 풍랑 앞에 당당히 맞서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럴싸하게 들리지만 주님 없이 맞서는 것은 아주 위험하고 무모한 일입니다. 제자들도 처음에는 주님을 깨우지 않고 자신들의 힘으로 극복해 보려고 하다가 죽을 뻔했습니다. 나폴레옹이 불롱 앞바다에서 태풍을 만난 적이 있었습니다. 막강한 함대가 있었던 그는 해군대장에게 폭풍을 거슬러 전진할 것을 명령하고 바다를 정복하라고 호령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허풍에 불과했습니다. 왜냐하면 그 순간 나폴레옹이 탄 배가 성난 파도에 휘말려 거꾸로 처박혀 박살이 났기 때문입니다. 그는 간신히 목숨은 건졌지만, 거의 200명이 넘는 불쌍한 군사들은 모두 수장을 당했습니다. 주님 없이 풍랑에 맞서는 것은 미련한 일입니다.
인생은 주님을 의지할 때 안전합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하나님만 의지하기를 원하십니다. “방백들을 의지하지 말며 도울 힘이 없는 인생도 의지하지 말라, 그 호홉이 끊어지면 당일에 그 도모가 소멸하리로다, 야곱의 하나님으로 자기 도움을 삼으며 여호와 자기 하나님에게 그 소망을 두는 자는 복이 있도다”(시146:3-5).
이번 제주도 무료효도관광이 2차입니다. 1차 때 있었던 일입니다. 비행기가 김포를 출발할 때까지만 해도 일기가 좋았는데 제주도에 가까워질수록 변덕을 부리기 시작했습니다. 결국 제주 비행장에 내리지 못하고 회향하여 광주 비행장을 향하게 되었습니다. 함께 여행을 하던 분들은 기도를 했고 저도 하나님 앞에 기도를 드렸습니다. 하나님은 비행기 안에서 우리가 드리는 기도를 들으시고 응답하셨습니다. 제 입을 통해서 점심은 제주도에서 먹겠다는 말이 나오게 하시고 그 말을 책임져 주셨습니다. 제자들이 풍랑을 만날 때는 주님이 주무셨고 제자들이 주님을 깨웠습니다. 우리도 좋지 않은 일기 속에서 주님을 깨웠던 것입니다. 물론 주님이 주무시지는 않으셨지만 우리의 기도가 주님의 손을 움직였던 것입니다.
인생의 풍랑을 만난 분이 계시다면 기도하십시오. 본문에 보니 배를 듸워 사업을 하는 사람이 광풍 속에서 주님을 보게 됩니다. 광풍을 마난 사람이 이리 저리 구르다가 근심 중에 하나님께 부르짖으니 하나님께서 광풍을 평정히 하사 물결로 잔잔케 하시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기도하십시오. 당신을 괴롭게 하는 광풍을 주님이 평정히 하실 것입니다.
우리가 기도하면 하나님은 광풍을 잔잔케 하실 방법을 가르쳐 주실 때가 있습니다. 이런 경우는 우리의 순종을 보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주님의 음성에 순종하면 주님은 광풍을 평정히 해주실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완악함이 주님을 붙들지 않고 주님이 아닌 다른 방법을 붙들려고 하니 문제입니다. 한 나무꾼이 깊은 산길을 걸어가다가 미끄러져 낭떨어지로 떨어지게 되었습니다. 팔을 뻗어서 겨우 한 나뭇가지를 붙들게 되었습니다. 깊은 산중에 사람이 있을 리가 없었습니다. 그래도 큰 소리로 외쳤습니다. “사람 살려 사람 살려! 거기 누구 없소? 하나님 하나님! 나 좀 살려주세요.” 그랬더니 어디선가 소리가 들리는데 하나님의 소리였습니다. “얘야, 내가 너를 살려 주지. 네가 그 붙들고 있는 그 나뭇가지를 놓아라." 밑을 내려다 봤더니 아주 깊은 벼랑이 있었습니다. 그 사람이 다시 하늘을 향하여 소리를 지르더랍니다. "거기 하나님 말고 다른 사람 없소!"

4. 사명을 붙들라.
사도행전 27장에 보면 바울이 탄 배가 유라굴로라는 광풍을 만나게 됩니다. 이 때 사람들은 두려워 떨지만 바울은 담대했습니다. 왜냐하면 주님이 그와 함께 하셨기 때문입니다. 주님이 바울과 함께 하셨던 이유는 그가 사명을 붙들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사자가 바울에게 나타났습니다. 그리고 바울이 가이사 앞에 서야 할 것을 가르쳐주었습니다. 바울의 사명 때문에 그 배는 풍랑을 뚫고 로마고 가야 했던 것입니다. 만약 바울이 요나처럼 사명을 버렸다면 그 풍랑은 더 강하게 불었을 것입니다.
여러분의 생활과 가정에 풍랑이 일어나는 이유는 혹시 사명을 버렸기 때문은 아닙니까? 사람은 나름대로의 사명이 있습니다. 그 사람만이 갖는 독특한 사명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 사명은 동일한 목적을 가지고 있습니다. 잃어버린 영혼을 구원하여 이 땅에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고, 하나님의 교회를 세우는 일입니다. 목사는 목회로, 평신도는 사업이나 직장생활 혹은 자신만의 전문분야를 통해서 그 일을 해야 합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일은 하지만 잃어버린 영혼을 구원하는 일이나 하나님의 나라, 그리고 교회를 세우는 일에는 관심이 없습니다. 인생의 풍랑을 만난 사람들 중에 그렇게 사명을 놓아버렸기 때문에 풍랑을 당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 교회의 사명은 무엇입니까? 지역복음화 민족복음화 세계복음화입니다. 좀 힘들더라도 이 일을 하면 하나님은 우리 교회를 더 든든하게 세우실 것입니다. 제주도 무료효도관광을 시켜드린다고 하니 우리교회가 그렇게 돈이 많은 교회냐고 묻는 분들도 있습니다. 절대 우리교회가 돈이 많아서 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주신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서 성령께 순종해서 지역을 섬기는 것입니다.
우리는 여러 번 한국 경제성장은 선교사의 파송수에 비례해서 높아갔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이렇게 경제의 풍성함을 주시는 이유가 잘 먹고 잘 살라고 주시는 것이 아니라 더 많은 선교사를 파송하라고 주시는 것입니다. 이것이 한국 교회의 사명입니다.
일찍이 선교에 열심 했던 나라들을 하나님은 부강국으로 만들어 주셨습니다. 교회사적으로 선교의 촛대는 예루살렘에서 소아시아의 안디옥으로, 안디옥에서 로마로, 로마에서 독일로, 독일에서 영국으로 바통이 이어져 왔습니다. 영국교회가 선교열정에 불탈 때 세계의 가장 부강국이 되게 하셨습니다. 그러나 영국이 후에 선교보다는 식민지 확장에 열중하기 시작할 때는 그 화려하던 전성기가 하향세를 타기 시작했던 것입니다. 그 다음 20세기 초반에 선교 촛대를 물려받은 미국은 교회 부흥에 발맞추어 점점 선교 열정으로 세계를 향해 뻗어 갔습니다. 미국교회가 선교 열정이 불탈 때에 하나님은 똑같이 미국에게 부강을 주셨습니다. 그러나 후에 미국이 군사력 확장에 몰두하고 월남전이나 걸프전 등, 자기 군사력을 과시하기 급급할 뿐, 선교비를 축소함으로 세계 처처에 나가 있는 선교사들이 귀국하는 사태가 속출할 때 미국의 교회당들은 비어지기 시작했던 것이다. 이제 선교의 촛대가 한국교회에 와 있다고 우리 한국교인들은 믿고 있습니다.
‘인터콥’이라는 선교기관의 최바울 대표가 쓴 [백투 예루살렘]에는 한국교회가 본격적으로 선교의 촛대가 자리 잡은 것은 2001년 9월 11일, 뉴욕 세계 무역센터와 워싱턴 국방성을 비행기로 자살공격한 때부터라고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9월 11일의 사건 이후 놀랍게도 세계동향은 이삭과 이스마엘 갈등구도로 나누어 대립하게 되었다는 점입니다. 다시 말하면 빈 라덴과 그의 친구들의 배후에는 이슬람 신이 있다는 것입니다. 이슬람 세력이 서구제국이요 세계제국인 미국을 공격함으로써 9.11사태는 이스람 신의 봉기를 나타내는 역사적인 사건이라는 것입니다. 그 관계로 이제는 백인들이 주관하던 선교시대는 막을 내리고 새로운 주역들이 선교를 하는 시대가 되었는데 그것이 바로 한국이라는 주장입니다. 놀라운 것은 9.11사태 이후 세계는 한국을 중심으로 두 진영으로 나누었다는 점입니다. 즉 한국의 동쪽 국가들은 일본, 호주, 유럽, 미국 등 서구 국가들이요, 한국의 서쪽은 중국, 동남아, 아시아, 중동, 아프리카 등 비서구 국가들이라는 점입니다. 그러므로 앞으로 한국은 본격적으로 선교 주역으로 나설 때가 되었다고 주장합니다.
그러면 가장 선교를 집중적으로 할 지역은 어디입니까? 그 책은 분명하게 그 지역은 한반도부터 예루살렘까지의 지역 중 북위 10도부터 북위 40도 지역이라고 강조하고 있습니다. 왜 그 지역이 가장 집중할 선교 지역입니까? 그 지역에 미전도종족이 90%가 살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한국교회는 이 지역을 집중적으로 선교해야 할 사명이 있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선교할 것입니까? 그 책의 저자는 이 지역의 선교 동역 국가는 중국이라 강조하고 있습니다. 지금 중국 교회는 얼마나 놀랍게 성장했는지 13억 인구 중에 1억 2천만 성도를 이루고 있습니다. 1980년에는 중국 가정교회는 성경이 없어서 성경책 한 권으로 한 도시의 모든 가정교회 성도들이 말씀을 배우기도 했을 정도였습니다. 그러나 1990년대 들어서서 해외에서 엄청난 성경책이 공급되기 시작하자, 1994년도에 4천만 명이던 중국교회가 2003년도에는 1억 2천 만 명의 성도를 헤아리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중국교회에는 성령의 역사가 강하게 나타나고 있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앞으로 중국교회를 잘 훈련만 시킨다면 선교사 파송 1위국이 될 가능성이 크다고 합니다. 그것은 가능성 있는 이야기 입니까? 중국의 유능한 한 지도자는 말하기를 “앞으로 3년 후에 북경 올림픽이 끝나면 중국정부도 해외여행 자유화 조치를 하게 될 것이고 중국은 크게 변화될 것입니다. 중국이 세계를 향해 활짝 열릴 것입니다. 지금부터 준비해야 합니다. 시간이 많지 않습니다.”라고 했습니다. [하늘에 속한 사람]의 저자 윈형제는 “하나님은 우리들에게 남(南)으로 서(西)가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인도차이나 반도를 거쳐 아랍 세계를 정복하고 예루살렘으로 갈 것입니다. 실크로드를 따라 아랍 무슬림을 정복하고 예루살렘으로 갈 것입니다.”라고 했습니다. 중국교회는 그것이 가능합니다. 아랍권과 중국은 전통적으로 매우 좋은 관계를 유지해 왔습니다. 특히, 최근 수십 년간의 유대 관계는 매우 긴밀합니다. 아랍 국가는 중국인들에게 매우 개방적입니다. 특히 북한보다 더 폐쇄적인 중앙아시아 투르크메니스탄에서 조차 중국인들에게는 비자도 요구하지 않고 완전 개방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불가능한 이야기가 아닙니다. 사실, 한국도 동남아나 중동 어느 나라에서도 거부 받는 나라가 아닙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마지막 때 아직도 열리지 않고 있는 저 이슬람 지역을 향해 한국 교회와 중국 교회를 동반자로 강하게 쓰실 날이 멀지 않을 줄 압니다.
사랑하시는 성도 여러분들이여, 한국이 사는 길은 선교사명을 다하는 데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교회도 더욱더 선교에 열심을 다하되 아직도 90% 이상이 복음을 접하지 않은 이슬람권에 집중적으로 선교가 되도록 그리고 결국 예루살렘까지 복음이 들어가 주님의 재림이 앞당겨지도록 힘을 써야 합니다. 우리는 백투 예루살렘의 비전을 성취하기 위하여 중국을 타켓으로 삼아야 합니다. 풍랑속에서도 사명을 붙드는 한국교회와 사랑의빛교회 그리고 성도들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5. 합력하여 선을 이루심을 믿으라.
하나님은 우리가 당하는 일들이 고통으로만 끝나게 하시는 분이 아닙니다. 좋으신 하나님은 우리에게 일어라는 풍랑도 합력하여 선을 이루십니다. 본문에서 광풍을 만난 사람이 부르짖어 하나님을 만나게 되었듯이, 요나는 광풍 때문에 잃어버린 신앙과 사명을 회복했으며, 제자들은 풍랑 때문에 바람과 바다도 잔잔케 하시는 주님을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바울의 일행들은 광풍 때문에 바울과 함께 하시는 하나님을 보게 된 것입니다.
[긍정의 힘]이라는 책을 보면 저자 조엘 오스틴 목사는 “공기의 저항이 없으면 독수리는 날 수 없고 물의 저항이 없으면 배는 뜰 수가 없다”고 말합니다.
좋으신 하나님을 믿으십시오. 하나님은 풍랑 속에서도 좋은 일을 추진하고 계십니다. 당신이 당하는 고난 속에서도 하나님은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도록 역사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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