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분은 하나님을 만났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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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용문 목사 설교 서론> 여러분은 하나님을 만났습니까? 시편 139편을 자세히 읽어보시면, 하나님의 속성, 또는 하나님의 성품에 대해 시인이 우리에게 알려주고 있는 것 같지만, 본문 말씀을 깊이 묵상해 보신 분이라면, 시인이 성경을 읽고 있는 독자들에게 ,“ 여러분은 하나님을 만났습니까? 그렇다면 하나님을 만났다면 그 확신이 있는가? ”라고 묻고 있는 것을 발견할 것이다.
하나님을 만났는가, 그렇다면 어떻게 그것을 확신할 수가 있는가 라고 물어보면, 당장 분명하고도 정확한 대답을 하는 이는 많지 않을 것이다. 어떤 분들은 내가 하나님을 만났는지, 만나지 않았는지 확신이 서질 않는다고 한다. 그렇다면 우리가 하나님을 만났는지 만나지 않았는지 어떻게 그것을 알수 있는가?
만남이란 일방적인 만남은 있을수가 없다. 대상이 분명히 있어야 한다. 친구와의 만남도 상대방을 필요로 하고, 부부와의 만남도 배우자를 필요로 한다. 하나님과의 만남도 일방적인 만남이 아니라, 실제로 체험을 통해 하나님을 만난다.
바로 이런 점에서 시편은 하나님을 체험하고 만난자들의 신앙고백이다. 시편 139편을 기록한 저자는 다윗인데, 다윗은 우리에게 하나님을 만난 자는 세 가지 확신의 단계에 이름을 말씀해 주고 있다. 저와 여러분이 하나님을 만났는지, 만나지 못했는지, 시인의 생생한 음성을 통해 확인할수 있기를 바란다. 만약 아직도 하나님을 만나지 못했다면, 여러분도 다윗처럼 하나님을 만날 수 있기를 바란다.
첫째로, 하나님을 만난 자는 자신이 죄인임을 확신한다.
저와 여러분이 하나님이 어떤 분인가를 안다면, 우리는 하나님 앞에 감히 설수 없는 죄인임을 깨닫을 것이다. 이 때 우리가 고백하는 말은, 주여 나를 떠나소서 나는 죄인입니다.
다윗은 하나님께서 자신을 훤히 다 알고 계신다고 했다. 1-4을 보라. 하나님께서는 내가 무슨 생각을 하는가도 다 아시고, 내 행동을 살피시고, 내가 혀로 무슨 말을 할지도 다 알고 계신다고 한다. 모든 것을 알고 계시는데, 그 전지하신 하나님 앞에 우리가 숨길것이 무엇이 있는가?
눅 5장에 보시면, 시몬 베드로가 밤새도록 고기를 잡고자 하였지만, 한 마리도 못잡고 빈그물을 씻고 있을 때였다. 그 때 예수께서 시몬 베드로의 배에 오르셔서, 베드로에게 “깊은데로 가서 그물을 던져라 라고 말씀하신다”베드로는 밤새도록 수고하여 잡은 것이 없지만은 말씀에 의지하여 그물을 내리겠다고 순종한다. 베드로가 말씀에 의지하여 순종했더니, 잡은 것이 많아 그물이 찢어질 정도였다.
예수님 말씀대로 깊은데로 가서 그물을 던졌더니, 이런 결과가 나온 것이다. 베드로는 순간 자신 앞에 말씀하신 분이 어떤 분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어디에 그물을 던지면, 고기가 많이 잡힌다는 것을 아시는 분께서, 자신이 죄인임을 모를 리가 없음을 알고, 5장 8절에 보시면, “가로되 주여 나를 떠나소서 나는 죄인입니다”라고 자신이 죄인임을 고백한다. 베드로는 주님을 만났다.
사무엘하 11장과 12장에 보시면, 다윗이 범죄한 일이 기록되어 있다. 다윗은 이스라엘의 모든 왕들보다도 정직하고 여호와를 경외한 자였다. 하지만 그도 인간인지라 하나님 앞에 온전하지 못하였다. 그가 범한 죄가 두 가지인데, 하나는 인구조사 이고, 다른 하나는 우리야를 전쟁터에 최전방에 보내 죽게 한 죄다. 장수가 최전방에 나가 싸우는 것이 당연한데 왜 죄가 되냐고 묻는다면, 그 죄는 바로 우리야의 아내 밧세바의 아름다움을 보고, 자신의 아내로 취하고자 하였기 때문이다. 다윗은 우리야의 아내 밧세바를 자기의 소유물로 삼기 위해, 우리야를 최전방에 보내 죽게 하였다. 성경은 다윗의 이와 같은 행위에 대해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삼하 11:26-27
우리아의 처가 그 남편 우리아의 죽었음을 듣고 호곡하니라 그 장사를 마치매 다윗이 보내어 저를 궁으로 데려 오니 저가 그 처가 되어 아들을 낳으니라 다윗의 소위가 여호와 보시기에 악하였더라
하나님게서는 다윗의 이와 같은 악행에 대해 나단 선지자를 보내 책망한다. 시편 51편은 선지자 나단이 다윗에게 하나님의 책망의 메시지를 들었을 때, 그가 행한 회개다.
“하나님이여, 주의 인자를 쫒아 나를 긍휼히 여기시며 주의 많은 자비를 쫒아 내 죄과를 도말하소서 나의 죄악을 말갛게 씻기시며 나의 죄를 깨끗이 제하소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은 하나님을 만났는가? 하나님을 만났다면 자신이 죄인임을 확신하는가? 아직 하나님을 만나지 않았다면, 먼저 지은 죄를 하나님 앞에 회개하시기 바란다.
마 4:17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느니라, 회개할 때 하나님 나라가 임하고, 회개할 때 주님을 만난다는 말씀이다.
행전 3:19그러므로 너희가 회개하고 돌이켜 너희 죄 없이 함을 받으라 이같이
하면 유쾌하게 되는 날이 주 앞으로부터 이를 것이요
여러분, 기억하시기 바란다. 아직 주님을 만나지 못했다면, 주님 만남에 대한 확신이 없다면, 내가 회개할 때가 곧 주님을 만날 때요, 내가 회개할 때가 곧 천국문이 열리는 날인줄 믿으시기 바란다.
예화) 19세기 미국의 유명한 부흥사였던 무디 선생이 시카고 시에서 전도 설교를 하였다. 설교를 하다보니 시간이 너무 많이 지나서 회개를 시키지 못한 채 설교를 중단하면서 오늘은 시간이 많이 지났으니 내일 다시 회개 설교를 계속하겠으니 오늘 저녁 회개할 것을 곰곰 생각하시고 내일 오셔서 회개하시라고 하시고 집으로 돌려보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날 밤에 시카고 시에 큰 불이 일어나 많은 사람들이 불에 타죽었는데, 그 날 밤 설교를 듣던 사람들이 많이 죽었다.
이 때문에 무디 선생은 일평생동안 마음속으로 괴로워했다고 한다. "왜 내가 그 날 밤에 회개시키지 아니했던가"하면서 후회했다 한다.
고후6:2
보라 지금은 은혜받을만한 때요, 보라 지금은 구원의 날이라고 하였다. 회개할 기회는 뒤로 미루어서는 안된다. 지금이 회개할 때요, 지금이 주님만날때인줄 믿으시기 바란다. 그러므로 자신이 죄인임을 확신하는 자는 하나님을 만났음을 믿으시기 바란다.
둘째로, 하나님을 만난 자는 성령으로 새롭게 빚어졌음을 확신한다.
고후 5:17절을 보시면,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하였다. ”이것은 성령 하나님에 의하여 신자가 새롭게 재창조되었음을 확신하는 말씀이다.
다윗은 그가 범죄한 후 자신을 새롭게 빚어줄 것을 간구하였다. 시편 51편 10절 보시면, “하나님이여 내 속에 정한 마음을 창조하시고 내 안에 정직한 영을 새롭게 하소서 나를 쫒아내지 마시며 주의 성신을 내게서 거두지 마소서”
여러분, 하나님께서는 본문 139편 13절에서 보시듯, 우리를 지으셨다. 우리의 내장을 지으셨고 모태에서부터 사람의 형질을 갖추도록 뼈와 피부와 생김새를 짜맞추셨다. 그런데 16절 보시면, 주님께서는 나의 형질이 갖추어지기도 전부터 나를 보고 계셨으며, 나에게 정하여진 날들이 아직 시작되기 전에 이미 주의 책에 다 기록되었다고 말씀하고 있다.
이와 같은 말씀은 하나님께서 나를 지으실 때, 우리가 어머니 모태에 있기 전부터 나를 아셨고,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을 향한 계획을 세우셨다는 말씀이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께서 저와 여러분을 창조하셨다면, 그 다음 하나님의 계획은 무엇이겠는가? 그것은 성령 하나님에 의한 재창조 인줄 믿으시기 바란다. 여러분이 하나님을 처음 만났을 때, 자신이 죄인임을 확신한다면, 이제 주님 나를 새롭게 빚어 주옵소서, 라고 간구할 것이다. 본문을 기록한 다윗도 그러했다.
성령께서는 저와 여러분을 새롭게 변화시켜 주신다.
만약 우리가 죄인임을 확신하면서도, 성령으로 변화되고자 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죄에서 해방되지 못할 것이다.
아담이 물려준 옛 성품은 우리로 하여금 죄를 짓도록 계속하여 부추킨다. 범죄하여 타락시키고자 한다. 뿐만 아니라 마귀가 우리를 유혹하여 하나님과 원수되게 하고자 한다. 이렇게 연약한 우리 육신이 범죄하는 것은 한 순간인데, 어떻게 우리를 다스릴수 가 있는가? 그것은 성령하나님에 의하여 새롭게 변화되는 길 뿐이다.
죄를 짓고는 어디에도 도망다닐수 없다. 하나님의 얼굴을 피하여 갈수 있는데라곤 어느 곳도 없다. 시인은 139:8절에서, “내가 하늘에 올라갈지라도 거기 계시며,음부에 내 자리를 펼찌라도 하나님은 거기 계신다고 말씀하고 있다.”
죄를 진 인간이 피하여 숨을 데라곤 아무데도 없다. 죄는 계속하여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과 멀어지게 만들고, 하나님의 은혜를 받는데 있어서 장애물의 역할을 한다. 때문에 우리는 이 죄로부터 멀어져야 하고 죄악을 버리고, 날마다 주님의 영으로 새롭게 되어야 한다.
예화)★ 미국에 미죠리 주의 스프링 훨드에 사는 한 남자가 있었는데 욕 잘하고 술을 잘 마시는 거듭나지 못한 교인 한 사람이 있었다.
훌륭한 그리스도인 한 사람이 사료를 사러 갔다가 이 상인과 더불어 그의 영혼에 관해 이야기를 하였다.
그는 일부러 이 교인과 또 대화할 기회를 갖기 위해 일주일분의 사료를 사러갔으나 다 사지 않고 하루분만 사갔다.
사료상 주인도 그와의 거래를 끊지 않을려고 그 그리스도인이 석달동안을 매일 와서 자기에게 이야기하는 것을 받아 주었다.
마침내 그 거듭나지 못한 사람은 얼마나 자기 죄에 대하여 뼈저리게 죄책감에 젖었는지 새벽 5시에 일어나서 상점 지하실로 내려가 무릎을 꿇고 기도하기를 "주여 당신께 저는 아무것도 약속할 수 없습니다. 저는 저의 처에게 음주와 욕질을 그만 두겠다고 약속했지만 못 지켰습니다.
하지만 당신께서는 사람에게 새마음을 주실 수 있다고 제 친구가 일러주었습니다.
제게는 새마음이 꼭 필요합니다. 저에게 새마음을 주옵소서. 이 낡은 제 마음 속에는 죄로만 가득차 있습니다. 제발 저의 마음을 새롭게 하여 주옵소서." 라고 간절히 기도하였다.
그는 그 후 음주와 욕질을 하지 않았다.
하나님께서는 그를 구하사 새심령을 허락하셨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은 하나님을 만났는가? 여러분이 하나님을 만났다는 것을 어떻게 확신하는가? 성령님의 새롭게 하심으로 여러분의 생각이, 행동이, 말하는 것이 달라진줄 믿으시기 바란다. 하나님께 자신이 죄인임을 고백하는 자가 그대로 죄속에 뒹굴기를 좋아할 자는 한 사람도 없다. 왜 무엇 때문인가? 예수믿을
때 받은 성령, 바로 그 성령께서 그 사람으로 하여금 계속하여 새로워지기를 요구하기 때문이다. 아직도 하나님과의 만남에 대한 확신이 없는 분이 계시다면, 성령님의 요구에 순종하시기 바란다. 그래서 하나님을 만남 체험이 있으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한다.
마지막 세 번째로, 하나님을 만난 자는 주님의 보호와 인도하심을 확신한다.
다윗은 하나님이 어떤 분이라는 것을 확실히 깨달았다. 하나님은 모든 것을 아시고, 아니 계신 곳이 없으시며, 능치 못하는 것이 없다는 것을 알았다. 그렇기 때문에 주님의 보호와 인도를 더욱 신뢰할 수가 있었다.
139편 9절을 보라.
내가 새벽날개를 치며 바다 끝에 거할지라도 곧 거기서도 주의 손이 나를 인도하시며, 주의 오른손이 나를 붙들어 주신다고 확신하고 있다.
11절에 보시면, 흑암이 정녕 자신을 덮고 나를 두른 빛은 밤이 되리라 할찌라도 주에게서는 흑암이 숨기지 못하며 밤이 낮과 같이 비취나니 주에게는 흑암과 빛이 일반이니이다 라고 확신하고 있다.
우리에게는 캄캄한 암흑과 같은 문제라도, 죽을것만 같은 위급한 경우라고, 주님에게는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말씀이다. 왜 무엇 때문인가? 주님이 나의 모든 것을 보고 계시고 알고 계시기 때문이다.
여러분, 하나님을 만난 자는 어떠한 문제 앞에서도, 심지어 사방에 우겨쌈을 당하여 앞으로도 뒤로도 갈수 없는 막힌 환경 속에서도, 하나님의 보호와 인도하심을 학신하는줄 믿으시기 바란다.
표준새번역(고후4:8)우리는 여러 가지로 환난을 당해도 곤경에 빠지지 않으며, 난처한 일을 당해도 절망에 빠지지 않으며,
표준새번역(시23:4)내가 비록 죽음의 그늘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주께서 나와 함께 계시고,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로 나를 위로해 주시니, 내게는 두려움이 없습니다. 할렐루야!
따라서 하나님을 만난 자는, 항상 주님의 보호와 인도를 확신하며, 두려워하지 않고 절망하지 않고 포기하지 않고 낙심하지 않는줄 믿으시기 바란다.
(요16:33)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은 너희로 내 안에서 평안을 누리게 하려
함이라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하시니라
예화) 식인종들에게 선교하셨던 분들 중에 아셀트라는 선교사가 있었습니다. 그 분이 선교 활동을 하는 중에 식인종들이 여러 번 아셀트 선교사를 끌고 가서 잡아먹으려고 아셀트 선교사 집을 밤에 침입했었습니다. 그런데 밤중에 찾아갈 때마다 대문 앞에서 창칼을 들고 지키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낮에는 아무도 없는데, 밤에 와서 끌고 가 잡아먹으려 하면 그 사람이 창칼을 들고 지키고 있습니다. 그래서 무서워서 떨다가 그냥 가고 또 그 다음 번에도 왔다가 그냥 돌아가곤 했습니다. 그러다가 이상하다고 생각한 식인종들이 아셀트 선교사를 낮에 찾아갔습니다. "낮에 가보면 없는데. 이상하게 밤에 가보면 누군가가 칼과 창을 들고 너를 지키고 있다. 그 사람이 누구냐." 식인종들의 물음에 아셀트 선교사는 다음과 같이 대답했습니다. "우리 집에는 지키는 사람이 없다." 그러자 식인종들은 "거짓말 마라. 한두 번이 아니고 우리가 너를 끌어다 잡아먹으려고 여러 차례 왔는데도 밤만 되면 창칼을 들고 지키는 자가 있어서 무서워서 너한테 갈 수가 없었다" 라고 말했습니다. 그때에 아셀트 선교사에게는 퍼뜩 떠오르는 영감이 있었습니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쓸모 없는 죄인을 버리지 아니하시고 지켜주셨음을 감사합니다. 저를 지켜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깨닫지 못하고 지키는 자가 없다고 말했던 불신앙의 죄를 용서하옵소서.' 아셀트 선교사는 순간적으로 회개와 감사의 기도를 드렸습니다.
여러분,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하시면 누가 우리를 대적하겠습니까. 믿는 사람이 가장 약할 때는 자기 홀로 있다고 생각할 때입니다. 그러나 가장 강한 때는 나는 약하지만 하나님이 나를 위하시고. 하나님께서 나와 함께 하신다고 믿을 때입니다.
표준새번역(민6:24)주께서 너에게 복을 주시고, 너를 지켜 주시며,
표준새번역(시17:8)주의 눈동자처럼 나를 지켜 주시고, 주의 날개 그늘에 숨겨 주시고,
시 121:1-4
표준새번역(시121:1)내가 눈을 들어 산을 본다. 내 도움이 어디에서 오는가? 표준새번역(시121:2)내 도움은 하늘과 땅을 만드신 주님에게서 온다. 표준새번역(시121:3)주께서는, 네가 헛발을 디디지 않게 지켜 주신다. 너를 지키시느라 졸지도 않으신다. 표준새번역(시121:4)보아라, 이스라엘을 지키시는 분은, 졸지도 않으시고, 주무시지도 않으신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은 하나님을 만났다고 믿습니까? 그렇다면 왜 두려워하는가? 왜 염려하는가? 주님의 보호하심과 인도하심을 확신한다면, 우리가 절망하고 낙심할 이유가 어디 있는가?
다윗은 하나님을 만난자의 삶은 바로 이러하여햐 한다고 말씀하고 있다.
23절과 24절을 보라.
여러분이 죄인임을 확신하고, 성령의 새롭게 하심으로 변화되었음을 믿고,
주님의 인도와 보호하심을 확신한다면, 하나님을 만났다고 한다면, 하나님 앞에서, 곧 코람데오의 신앙생활을 한다는 것이다.
예화) 어느 가을 달밤에 어떤 사람이 어린 아들과 같이 바람 쏘이려 들판에 나갔더니 무밭에 무가 먹음직하게 보여서 아들보고 망을 보라 하여 아버지는 밭에 들어가서 무를 잡고 뽑으려고 하는데 아들이"아버지 누가 봅니다", "아버지 누가 보는 것 같습니다" 아이는 주일학교에 다니는 학생이었다. 아이는 무릇 두 번이나 번복하였다 아버지는 "에이! 아무도 없지 않니!" 하면서 세 번째 밭에 들어가 무를 뽑으려고 하는데 "아버지 봅니다" 하고 소리를 쳤다 그때 아버지는 또 나와서 "야! 보기는 누가 보느냐?" "아버지! 하나님이 보십니다 하였다 사실 하나님은 모든 것을 보시고 계시는 것이다.
다윗은 “하나님이여 나를 살피사 내 마음을 아시며 나를 시험하사 내 뜻을 아옵소서 내게 무슨 악한 행위가 있나 보시고 나를 영원한 길로 인도하소서” 라고 하였다. 저와 여러분도 바로 이러한 모습으로 살아야 할줄 믿는다. 하나님이 살피시고 계시다는 것, 하나님께 네 모든 행위를 다 보고 계시다는 것, 그래서 늘 자기를 살피며, 하나님 앞에서 있는 듯한 삶으로 살아가야 한다.
하나님은 악인들의 악행도 보고 계시지만, 하나님을 믿는 저와 여러분도 그 행위를 지켜 보고 계신다.
저는 여러분이 새벽예배에 나오지 못하여서, 각기 자기 처소에서 기도하고 계시는지 기도하지 않는지 모른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보고 계신다. 제가 담임목사를 위해 하루에 단 몇분만이라도 기도하라고 했는데, 누가 저를 위해 얼마나 기도했는지, 기도하지 않았는지 나는 모르지만, 주님은 알고 계신다. 여러분이 교회나와 힘든 가운데서도 교회를 돌아보고, 이웃을 사랑하고 구제하는지 다른 사람은 몰라도 주님은 알고 계신다. 여러분이 교회 밖을 벗어나서 세상에서의 삶을 우리 성도들은 서로 모른다. 어떤 말을 하고 다니는지, 어떤 생각을 품고 사는지, 어떤 행동을 하고 다니는지, 우리는 모르지만, 우리는 곁에 없지만, 주님의 눈동자는 늘 우리를 따라 다닌다.
저를 지도했던 대학원교수님 중에, 김진섭 박사님이 계신다. 그분은 우리에게 대학원 채플시간에, 우리가 잘 믿는지 안 믿는지 알려면, 하나님과 나와의 1대일의 개인적인 시간을 가질 때라고 한다. 아무도 없는 방에서 책상에 앉아 내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어떤 행동을 하는지, 하나님은 보고 계시기 때문에. 내 모든 것을 알고 계신다는 것이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본 시편을 기록한 저자인, 다윗은 하나님을 만났다. 하나님을 만났기 때문에 그는 마음대로 생각하고, 마음대로 행동하고 마음대로 말하고 살지 않았다. 항상 자기를 살피며, 코람데오, 하나님 앞에서의 삶을 살았다. 정말 우리가 하나님을 만났다고 한다면, 우리는 코람 데오의 삶을 사는줄 믿으시기 바란다.
축도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하나님의 크신 사랑과 우리를 새롭게 하시고, 코람데오의 삶을 요구하시는 우리주 성령하나님의 감화 감동 내주 충만 충만하심이, 코람데오의 신앙으로 하나님을 만난 자로서의 마땅한 삶을 살기를 다짐하는 머리숙인 성도들 위에와 그들의 자녀들 위에, 사업장과 일터와 자녀들 위에 그리고 하나님의 피로 값주고 사신 우리 사랑의 교회 위에 이제로부터 영원까지 함께 있을지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