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아이의 일을 버립시다 (고전 13:11)
본문
신생아의 체중이 2.5kg이면, 미숙아(未熟兒)라고 하고, 자랄 만큼 다 자란 어른이 된 사람을 ‘장성한 사람’이라고 합니다.
“나무는 꽃을 버려야 열매를 맺고 강물은 강을 버려야 바다에 이른다”(화엄경)는 말이 있습니다.
어린아이적의 생각을 버려야 어른 같은 생각을 하고, 어렸을 때 하던 말을 버려야 어른스런 말을 하게 됩니다.
오늘 읽은 성경은,
『내가 어렸을 때에는, 말하는 것이 어린 아이와 같고, 깨닫는 것이 어린아이와 같고, 생각하는 것이 어린아이와 같다가 장성한 사람이 되어서는 어린아이의 일을 버렸노라.』 (고전 13:11)
장성한 사람의 척도는 두뇌가 아닙니다.
두뇌가 아니라 그 두뇌를 이끄는 것이 장성한 사람입니다.
두뇌를 이끄는 것은 성격, 마음, 너그러움, 진보적인 생각입니다.
장성한 사람이란 어떤 사람일까요?
1. 어린아이의 생각을 버려야 합니다.
장성한 사람은 생각이 어른입니다.
400회에 걸쳐 방영된 ‘불멸의 이순신’이 막을 내렸습니다.
김훈의 ‘칼의 노래’라는 소설에 이런 말이 나옵니다.
이순신의 어머니가 아들에게 “어서 가라. 가서 나라의 원수를 크게 갚으라.”
아들 이순신이, 어머니를 만나러 갔을 때 마다, 그렇게 말했다는 것입니다.
위대한 영웅은 어머니가 만듭니다.
아들을 전장에 보내는 어머니는 두 종류가 있습니다.
한 어머니는 아들의 목을 끌어안고 울먹이며, “반드시 살아서 돌아오너라.”하고 보냅니다.
다른 어머니는 눈물을 참으며 “내가 기도할 테니, 너는 두려워 말고 용감히 싸워라.”하고 보냅니다.
그 아들은, 용기를 가지고 전장에 나갔기 때문에, 쉽게 죽지 않을 뿐만 아니라, 죽어서 돌아오면 영웅이 됩니다.
떠나는 아들의 목을 끌어안고 울먹이며 보낸 어머니는, 어린 어머니이고, 용기를 북돋으며 내 보낸 어머니는, 장성한 어머니입니다.
[이순신]의 어머니는, 장성한 사람의 생각입니다.
자기 아들이 국가를 위해 일하기를 바랐습니다.
여자가 도저히 용서할 수 없는 남자가 누구인지 아세요?
눈구멍이 단추 구멍만한 것은 용서할 수 있어도, 예쁜 여자만 보면 눈구멍이 커지면서, 눈알이 튀어나오는 남자입니다.
귀고리 한 남자는 용서할 수 있어도, 귀 구멍이 곽 막힌 남자는 용서 못합니다.
머리 빠진 남자는 용서할 수 있어도, 머리 빈 남자는 용서 못합니다.
남자도 마찬가지입니다.
잘생긴 남자를 보면, 다시 쳐다보는 것은, 마찬가지 아닙니까?
남자 머리 비었다고 투정하는 여자, 머리 뚜껑을 열어 보니, 돌들로 채워져 있더랍니다.
석두라는 말이죠.
***** 기도원 부흥회에서 강사 목사님이, “다시 태어나도, 현재 남편과 다시 결혼 할 사람 손들어 보세요.”라고 말하자, 할머니 한 분이 손을 번쩍 들었습니다.
그래서, 강사가 웃으면서 물었습니다.
“영감님이 그렇게도 좋으세요?”
이 할머니 대답이, 그랬다지 않습니까?
“그놈이 그놈이야!”
가정 문제, 부부 갈등의 원인은, 이 할머니만한 생각을 못해서입니다.
***** 부부가 온천에 갔습니다.
기왕에 온천에 왔으니, 목욕시간을 길게 갖기로, 합의를 했습니다.
두 시간동안 하기로 약속을 하고 들어가서, 남자는 한 시간하고 나왔는데, 여자가 두 시간이 지나도 안나오더랍니다.
세 시간이 지나서야 나왔는데, 얼마나 비벼 댔는지, 얼굴이 빨개 가지고 나왔습니다.
남편이 화가 나서 “세 시간씩이나 무얼 했느냐?”고 역정을 냈습니다.
그러니까, 아내가 자근자근 이렇게 설명을 하더랍니다.
“남자는 흙으로 만들어서, 물 속에 오래 있으면 풀어지지만, 여자는 뼈로 만들어서, 뜨거운 물속에 푹 고아야, 진액이 나오는 거예요” 그러더랍니다.
남자는, 여자를 이해 못해요. 여자도, 남자를 이해 못합니다.
왜 그래요?
남자와 여자사이에는, 바다가 막혀 있기 때문입니다.
가정이 붕괴되는 원인이, 무엇일까요? 갈등을, 치유하고 예방하지 못해서입니다.
생각하는 것이, 둘 다, 어린아이이기 때문입니다.
열등감을 건드리는 것입니다.
상처에 고춧가루를 뿌리면 어떻게 합니까?
감정이라는 열등감을, 덮어주고 감싸줘야 합니다.
[솔로몬]이,
“여자들 중에 내 사랑은, 가시나무 가운데 백합화 같구나.”(아2:2)라고 했는데, 그가 사랑한다는 ‘술람미 여인’은, 얼굴이 검고, 생긴 것이 게달의 장막 같았습니다.
“예루살렘 딸들이여, 내가 비록 게달의 장막처럼 검지만, 솔로몬의 휘장들처럼 아름답습니다.”(아 1:5)
‘게달의 장막’ 같다는 말은, 양을 치느라 얼굴이 타서, 거무스름한 것을 말합니다.
검은 염소 털로 짠, 천으로 만든 천막 색깔 같다는 말입니다.
검은 것이 싫으면, 불 끄고 보면 됩니다.
그래요.
(롬 8:6) 『죄의 본성의 지배를 받는 사람의 생각은, 죽음이지만, 성령의 지배 를 받는 사람의 생각은, 생명과 평강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생각이 성숙해야 합니다.
어린아이의 일을 버려야 합니다.
장성해야 합니다.
좀더 넓은 마음을 가집시다.
좀더 넓고 깊은 생각을 아는 성숙한 장성한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2. 어린아이의 말을 버려야 합니다.
말하는 것을 들어 보면, 어린아이 같은 사람이 있고, 장성한 사람 같은 사람이 있습니다.
그 사람의 언어의 한계가, 곧 그 사람의 수준입니다.
파괴적인 말은, 자신의 현재를 망가트립니다.
어떤 사람은, 건설적인 말로, 빌딩(Building)을 세웁니다.
성공하는 사람은, 창조적인 언어로 미래를 예측하고, 장래의 영광과 승리를 만들어 갑니다.
영국 속담에 “좋은 말 한마디가, 나쁜 책 한 권보다 낫다.”는 말이 있습니다.
***** 부부간에 부르는 호칭으로, ‘여보’와 ‘당신’이 있습니다.
여보(如寶)는, 같을 여(如)자와, 보배 보(寶)입니다.
‘보배와 같이 소중한 사람아!’ 그런 뜻입니다.
당연히 남자가 여자를 부를 때 하는 말입니다.
‘당신’이라는 말은, 마땅할 당(當) 자와 몸 신(身) 자입니다.
따로 떨어져 있는 것 같지만, 바로 내 몸과 같다는 의미가 ‘당신’입니다.
여자가 남편을 그렇게 부르는 것입니다.
남자들만 저를 따라서 해 보세요. “여보!”(화난 목소리로가 아니라)
여자들만 저를 따라서 해 보세요. “당신!”(까스러진 목소리가 아니라)
전에는, 자기 남편보고 ‘아빠!’그러더니, 요즘 젊은 사람들은 ‘오빠!’라고 합니다.
족보를 어떻게 쓰게 될지 의문입니다.
드라마가 문제입니다.
그게 아닙니다.
남자는, 자기 아내를 부를 때, “여보!” 라고 부르고, 아내는, 자기 남편을 부를 때, “당신!”이라고 해야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일이 꼬이고 힘들 때, 누구를 붙잡고, 신세 한탄하고 싶지만, 그래봐야 뭐합니까?
억장이 무너져 내리고, 스트레스가 밀려 올 때, 부정적인 말을 하지 않도록, 자기를 단속해야 합니다.
(잠 18:21) 『혀는 사람을 죽이기도 하고 살리기도 한다. 혀를 놀리기 좋아하는 사람은 반드시 그 대가를 받는다.』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말로 상황을 바꾸기를 원하십니다.
문제점을 지적하는 것이 아니라, 해결책을 말해야 합니다.
장성한 사람은, 해결책을 말합니다.
그러나, 부정적인 말을 하지 않는 것만으로는 부족합니다.
그것은, 수비만 잘하는 축구선수와 같습니다.
공격해서 골인시켜야 합니다.
그 사람이 장성한 사람입니다.
말로 상황을 바꾸는 힘이 있습니다.
생각이 성공의 설계라면, 언어는 성공의 열쇠입니다.
“할 수 있다”고 말해보십시오.
가능성의 문이 열려, 성공의 길이 터집니다.
“안 된다”고 말하면, 불가능의 철문이 닫혀, 앞이 깜깜합니다.
“할 수 있다. 하면 된다. 해보자.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함이 없으리라.... 말씀 안에서, 믿음 안에서, 할 수 있다. 해보자”
할 수 있다 하신 이는 나의 능력 주 하나님
의심 말라 하시고 물길 위를 걸라 하시네
할 수 있다 하신 주 할 수 있다 하신 주
믿음만이 믿음만이 능력이라 하시네
사랑만이 사랑만이 능력이라 하시네
희생만이 희생만이 능력이라 하시네 아멘.
[욥]은, 동방에서 최고 부자로, 하나님을 경외하며 사는 의인이었습니다.
양이 7천, 약대가 3천, 등 많은 종들을 두고, 그의 소생은, 아들이 일곱, 딸이 셋입니다.
어느 날 갑자기 아랍인들이 몰려와, [욥]의 종들을 모두 살해했습니다.
그런가 하면, 하늘에서 불이 내려와, 양과 종들을 모두 살라 버렸습니다.
또 갈대아 사람들이 몰려와 종들을 죽이고 약대를 모두 빼앗아 갔습니다.
[욥]의 자녀들이, 자기 생일이 되면, 자기 집에 형제들을 초청하여 잔치를 베풀며, 먹고 즐겁게 지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욥]의 자녀들이 집에 모여 생일잔치를 하고 있는데, 갑자기 태풍이 불면서, 그 집이 기울기 시작하더니, 무너지면서 그들을 뒤 덮어, 10남매가 몰살하고 말았습니다.
그것으로 끝난 것이 아닙니다.
[욥]의 온 몸이, 문둥병 같은 피부병이 발생하였습니다.
[욥]이, 깨진 기와 조각으로 몸을 긁고 앉았는데 아내가 말합니다.
“그래도 당신은 신앙을 지킬 것입니까? 차라리 하나님을 저주하고 죽어 버려요!”
그 여자는, 어린아이요 악처였습니다.
///// 그러나 [욥]은 대답하기를,
“당신조차 미련한 여인처럼 말하는구려! 우리가 하나님에게서 좋은 것 받았는데, 나쁜 것이라고 하여 어찌 거절할 수 있단 말이요”(욥2:9-10)
아내는 철부지 어린아이였지만, 남편은 장성한 사람이었습니다.
부주의한 말 한마디가, 싸움의 불씨가 되고, 잔인한 말 한마디가, 삶을 파괴합니다.
쓰디쓴 말 한마디가, 증오의 씨를 뿌리고, 무례한 말 한마디가, 사랑의 불을 끕니다.
은혜로운 말 한마디가, 길을 평탄케 하고, 즐거운 말 한마디가, 하루를 빛나게 합니다.
때에 맞는 말 한마디가, 긴장을 풀어 주고, 사랑의 말 한마디가, 축복을 줍니다.
우리 모두, 장성한 사람답게, 말하며 사십시다.
아내가 철부지거든, 남편이 어른 되고, 남편이 철부지거든, 아내가 장성한 사람이 되어, 둘이 다 장성한 사람의 언어를 만들어 가십시다.
[플루타르크]라는 사람은 말하기를,
“말이라는 것은, 수놓은 비단과 같아서, 펼치면 모든 무늬가 나타나지만, 접으면 무늬가 감추어지는 동시에, 또한 소용이 없게 되는 것이다.”
어린아이의 말을 버려야 장성한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3. 어린아이의 판단을 버려야 장성한 판단을 합니다.
‘깨닫는 것이 어린아이와 같다’는 말은 ‘어린이의 판단’이란 뜻입니다.
장성한 사람의 깨달음은, 논리적으로 생각하고 판단한다는 뜻입니다.
어린아이는 깨닫지 못합니다.
그래서 종아리를 때리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깨닫게 하시기 위해서, 자기 백성을 괴롭게 하십니다.
“그들을 괴롭게 하여 깨닫게 하리라.”(렘10:18)라고 하십니다.
나이가 먹었다고 해서 모두 깨닫는 것이 아닙니다.
“백발이 얼룩얼룩할지라도 깨닫지 못하는도다.”(호7:9)
우리가 바른 판단을 하려면, 광명한 곳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어둠 속에서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습니다.
율법이 죄를 깨닫게 합니다.
(롬3:20)『그러므로 율법을 지키는 것으로 하나님 앞에서 의롭다고 인정받을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왜냐하면 율법은 우리가 죄인이라는 사실을 알게 해 주기 때문입니다.』
지혜의 왕 [솔로몬]이,
“하나님이여 주의 판단력을 왕에게 주시고, 주의 의를 왕의 아들에게 주소서!”(시72:1)라고 기도했습니다.
***** 어떤 주부가, 하루하루 사는 것이 너무 힘이 들었습니다.
살고 싶은 의욕도 희망도 다 없었습니다.
마음에 안 드는 남편과, 늘 말썽만 부리는 자식들, 모두가 귀찮은 존재들이었습니다.
그는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빨리 천국에 가고 싶어요. 정말 빨리 가고 싶어요. 힘들어서 못살겠어요.”
그 때 갑자기 하나님께서 나타나셔서 말씀하셨습니다.
“살기 힘들지? 네 마음 이해한다. 이제 내가 9일 후에 네 소원을 들어줄 텐데, 그 전에 몇 가지, 내 말대로 해보겠니?”
그 부인이 반가워서, “예 하겠습니다.” 하자,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얘야! 집안이 너무 지저분한 것 같은데, 네가 죽은 후에, 그래도 마지막 정리를 잘하고 갔다는 말을 듣도록, 집안 청소 좀 할레?”
그 후 며칠 동안, 그녀는 열심히 집안 청소를 했습니다.
3일 후, 하나님께서 다시 오셔서 말씀하십니다.
“얘야! 애들이 맘에 걸리지? 네가 죽은 후에 애들이 엄마가 우리를 정말 사랑했다고 느끼게 3일 동안 최대한 사랑을 주어 볼래?”
그 후 3일 동안 그녀는 최선을 다해서 애들을 사랑으로 품어주고, 정성스럽게 요리를 만들어 주었습니다.
다시 3일 후, 하나님께서 찾아오셔서 말씀하십니다.
“이제 갈 때가 되었다. 마지막 부탁 하나 하자. 너 남편 때문에 상처 많이 받고 미웠지? 그래도 장례식 때 ‘참 좋은 아내였는데’라는 말이 나오게 3일 동안 남편에게 최대한으로 친절하게 대해 줘봐라.”
마음에 내키지는 않았지만, 천국에 빨리 가고 싶어서 3일 동안 최대한으로 남편에게 친절을 베풀어주었습니다.
다시 3일 후,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이제 천국으로 가자. 그런데 그 전에 네 집을 한번 돌아보려무나.”
이 부인이, 집안 구석구석을 돌아보니, 깨끗한 집에서, 오랜만에 애들 얼굴에 웃음꽃이 피었고, 남편 얼굴에 흐뭇한 미소가 있었습니다.
그 모습을 보니, 천국으로 떠나고 싶지가 않았고, 결혼 후 처음으로, “내 집이 천국이로구나.”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부인이 말했습니다.
“하나님! 우리 집의 이 행복이, 어디서 왔죠?”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지난 9일 동안 네가 만든 거야!”
그때 그 부인이 말했습니다.
“그러면 이제부터 우리 집을, 천국으로 만들어가며 살아 볼래요!”
‘9일 동안 천국 만들기’의 기적은, 어디서나 가능합니다.
사랑의 수고는, 행복으로 가는 밝은 길입니다.
사랑과 희생의 짐을 지면, 인생의 짐이 가벼워집니다.
우리는 판단력이 부족합니다.
모든 문제를, 판단할 능력이 없습니다.
[아브라함]의 아내 [사라]는, 복잡한 가정 문제를 놓고, 남편에게 말합니다.
“당신과 나 사이에, 여호와께서 판단하시기 원하나이다.”(창16:5)
하나님의 판단을 받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지도가 필요합니다.
장성한 사람에게는, 올바른 판단력이 있습니다.
사람이 된다는 것은, 무엇입니까?
생각하는 것이, 말하는 것이, 깨닫는 것이, 어른스러운 것입니다.
사람됨의 점수를 높이 받는 다면, 그는 장성한 사람이요, 귀한 사람입니다.
그는 감정에만 의존하지 않습니다.
냉철한 이성과, 높은 영성을 갖고 있습니다.
생각과 언어와 판단이, 장성한 사람이 되기 위하여, 어린아이와 같은 생각과, 말과 판단은 버려야 합니다.
“put away!" 치워버려라! 그 말입니다.
실패자들은, 과거를 못 버립니다.
과거에 사로 잡혀 있습니다.
승리자들은, 과거에서 배웁니다.
요즈음 벌써 햇밤이 나왔습니다.
별로 맛은 없어도, 굵직한 알밤들이, 시중에 많이 나왔습니다.
그 알밤은, 가시로 덮인 밤송이를 벗기고, 그 속에서 꺼낸 것입니다.
알밤을 먹으려면, 아무리 힘들고 귀찮아도, 밤송이를 벗겨야 합니다.
과거라는 밤송이에서, 알맹이를 빼고, 그 껍데기를 버립시다.
그리고, 미래를 향해, 노를 저어 갑시다.
우리 모두, 어린 아이의 일을 버리고, 장성한 사람이 되십시다.
예수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까지 자라십시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은 혹시, 아직도, 깊은 영적 진리를 깨닫지 못한 채, 초보적인 믿음의 도에, 머물러 있지는 않습니까?
여전히, 죄의 유혹을 이기지 못하여, 자주 쓰러지고, 낙심하는 것은 아닙니까?
여러분은 아직도, 사랑을, 받기만 하며, 또한 자기중심적으로 살아가고, 여전히, 혼자 일어서지 못하고, 남을 의지하는, 나약하고 이기적인 어린아이는 아닙니까?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루소]가 말했듯이, 어린 시절은, 이성이 잠자는 시절입니다.
어린아이의 일을 버리고, 이제는, 보다 깊은 영적 진리와, 거룩한 생활을 이루기 위해 노력하며, 은혜를 알고, 거기에 보답할 줄 아는 자가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그리고 혼자 믿음을 지키고 키워갈 수 있는, 용기와 담대함을 가지시기를 축원합니다.
그것이, 처음에는 어려운 일일 듯 하나, 더 큰 믿음의 성장으로 나가는, 첫걸음이 될 줄로 믿습니다. -아멘-
(박 영 준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