염려하지 않는 비결 (빌 4:4-7)
본문
할렐루야!
예배의 자리에 나오신 여러분 위에 하나님의 평강과 축복이 넘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옆에 앉으신 분들과 웃는 얼굴로 인사 할까요? “염려하지 않는 인생이 됩시다.”
기도의 아버지로 불리는 조지 뮬러의 유명한 일화가 있습니다. 그가 영국 브리스턴에서 고아원을 경영하던 어느 날, 아침 음식이 다 떨어졌습니다. 주방의 직원이 와서 “목사님, 아이들에게 줄 아침 음식이 없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목사님은 낯 빛하나 변하지 않고 “하나님이 책임지실 겁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목사님은 식당을 향해 가셨습니다.
식당에는 빈 컵과 빈 접시가 놓여있었고, 포크가 가지런히 놓여있었습니다.
300여명의 아이들이 등교준비를 하고 식탁에 다 나와 앉았습니다. 목사님은 아이들과 함께 기도하자고 말했습니다. “하나님 오늘도 이 아침에 사랑하는 주의 자녀들에게 일용할 양식을 허락하실 줄로 믿습니다. 아멘”하고 기도했습니다. 기도가 끝난 후 잠시 침묵이 흘렀습니다.
그 때, 누군가 와서 문을 급히 두드렸습니다. 문을 열어 보았더니 바로 고아원 앞 동네에 사는 빵가게 주인이 빵을 한 가득 안고 왔습니다. 그가 들려준 사연인즉슨, 언제부턴가 이 고아들에게 빵을 한 번 만들어줬으면 좋겠다는 소원이 일었었는데, ‘내가 무슨 그런 일을 하겠느냐?’하고 그동안 억눌러 왔었답니다. 그런데 그 날은 새벽 2시에 잠이 깨서는 그 생각 때문에 다시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고 합니다. 그는 그 시각부터 열심히 빵을 만들어 이 아침에 가지고 왔다고 빵을 내밀었습니다. 그가 가져온 빵이 아이들 접시에 다 놓여졌습니다.
그 순간, 또 누군가가 문을 두드리는 것입니다. 나가 보니 우유를 배달하는 수레를 운전하는 인부인데, 하필이면 이 고아원 앞을 지나가다가 수레바퀴가 망가져서 갈 수가 없게 되었다고 합니다. 수레 위에 가득 올려진 무거운 우유를 다 내려 놓아야 수레를 수리할 수가 있으니 이 고아원에서 이 우유를 좀 책임져 달라고 내미는 것이었습니다. 그 우유를 데워서 아이들을 다 먹였는데, 점심때까지 먹을 몫이 남더라는 이야기입니다.
여러분, 이런 이야기를 들으면 어떤 생각이 드십니까?
“목사님 그게 뭐 오늘날도 가능한가요? 그건 우연의 일치겠죠. 뭐 로또복권이 당첨되듯이 100만분의 1의 확률이겠죠. 어쩌다가 우연히 일어난 일이지, 그게 기도했다고 응답받은 겁니까?” 라고 말하는 분들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여러분! 중요한 사실은 오늘도 하나님의 자녀들, 믿음의 사람들, 기도의 사람들에게는 이런 우연의 일치가 늘 일어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기도할 때마다 그들은 우연의 일치를 체험하고 있는 것입니다.
처음 교회에 나온 초신자나 믿음이 연약한 분들은 의문을 가질 수 있습니다. “정말 하나님이 내 문제를 해결해 주실 수 있을까?”“하나님은 내 인생의 문제를 해결해 줄 만한 그런 능력이 있으신 분일까?”하는 의문 말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우리에게 무엇이라고 말씀하십니까?
하나님은 다니엘을 사자굴에서 머리털하나 상하지 않도록 보호하신 분이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부인 사라의 나이가 90세임에도 불구하고 아들 이삭을 낳을 수 있도록 태의 문을 열어주신 분임을 증거하고 있습니다. 또한 예수님이 풍랑을 향해서 꾸짖었더니 풍랑이 잔잔해졌다고 했습니다.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을 이끌고 나오다가 홍해를 만났는데, 홍해 앞에서 하나님 앞에 기도했을 때 하나님이 그 홍해를 마른땅같이 갈라주었다고 말합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를 걸어갈 때에 하나님은 그들에게 아침마다 만나를 내려주셨고, 북풍을 불어오게 하셔서 메추라기를 몰아주셨고, 그리고 모세가 반석을 칠 때 반석에서 생수가 터져 나왔다고 증언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수많은 죽은 자들을 살려내신 기록들을 성경이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영원하신 분입니다. 우리의 기도를 응답할 만한 힘과 능력을 가지신 분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이사야 48:28에 보니까 ‘너는 알지 못하였느냐 너는 듣지 못하였느냐 주님은 영원하신 하나님이요, 땅끝까지 창조하신 분이라고, 그 분은 피곤치 아니하시며, 곤비치 아니하시며, 명철과 지혜가 무궁하신 분’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오늘 말씀의 제목은 「염려하지 않는 비결」입니다.
여러분은 이미 정답을 아실 것입니다. 염려하지 않는 비결의 정답은 무엇입니까?
염려하지 않는 비결은 기도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오늘 날 우리는 얼마나 많은 어려움을 겪으며 살아갑니까? 가정의 여러 가지 문제들이 있습니다. 건강의 문제, 자녀의 문제, 물질의 문제, 사업의 문제, 직장의 문제, 친척간의 문제, 인간관계의 문제 등 많은 염려와 근심이 있습니다.
혹시 여러분 중에 나는 염려와 근심이 한 가지도 없다는 분이 있으면 손 들어보십시오. 성가대 중에는 혹시 없으십니까? 아니 권 장로님도 염려가 있으세요? 계 집사님도 염려가 있으세요? 정 집사님도 염려가 있으시군요. 웃으시는걸 보니, 다 있으신가 봅니다. 혹시 여러분 가운데 염려가 없으신 분 없으십니까? 한 번 손들어 보십시오. 없으시군요.
염려가 없는 사람이 있긴 있다고 합니다. 공동 묘지에 가면 거기 누워 계신 분들이 염려가 없구요, 또 하나는 아이큐가 90 이하면 염려가 없다고 합니다. 아이큐가 90 이하인 사람들은 스트레스를 안 받는다고 합니다. 어떠한 일도 염려하지 않고 잠을 잘 잘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러분들은 보니 다들 저처럼 두뇌가 뛰어나신 분들 같아요. 염려하는 걸 보니 말입니다. 바로 염려와 걱정, 근심이 있는 모습이 인간의 모습이라는 것입니다.
그럼 이제 반대로, 내게는 한 두가지 염려가 있다는 분들 손 한번 들어 보십시오. 괜찮아요. 손 드는게 훈련이 안되어 있는데 이럴 때 한 번 들어 보는 것이지요. 내게는 염려와 근심이 있다~! 고맙습니다.
오늘 설교는 여러분들을 위한 설교가 될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다 염려 없는 사람이 없으니 말입니다.
오늘 성경은 우리에게 뭐라고 말씀하십니까? 빌립보서 4:6 말씀을 한번 더 읽겠습니다.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아멘」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어떤 문제도 예외가 아닙니다. 이것을 원어로 보면 염려를 중단하고 대신 기도하라는 것입니다.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하나님께 간구하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특별히 강조하는 말이 있습니다. 기도와 간구입니다. 같은 의미로 읽어도 무방합니다만, 원어로 보면 이 기도와 간구는 근본적으로 다릅니다.
기도는 하나님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기도하는 사람은 하나님을 바라보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을 의지하는 사람. 그게 바로 기도입니다. 오늘 여러분은 세상을 바라보십니까? 하나님을 바라보십니까? 그것이 바로 기도하는 사람의 모습입니다.
해바라기는 뭘 바라보고 삽니까? 예. 해입니다. 그러면 우리 4부 청년 성가대 이름이 뭔지 아십니까? 주바라기 성가대입니다. 바로 주님만 바라보는 성가대라는 멋진 이름을 가졌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정말 주님만 바라보십니까? 아니면 세상을 바라보십니까? 그것이 바로 기도자와 기도하지 않는 사람의 차이인 것입니다.
시편 62:1에 보니까 「나의 영혼이 잠잠히 하나님만 바라며 나의 구원이 여호와에게서 오도다」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잠잠히 하나님만 바라보는 사람, 그 사람이 바로 기도하는 사람입니다. 그것이 바로 기도입니다.
그런가 하면 간구는 무엇입니까? 특별한 사안에 대해서 특별히 부르짖는 것. 하나님께 아뢰는 것, 그것이 간구입니다. 내 인생의 문제를 가지고 하나님 앞에 나와서 하나님을 바라보며 하나님만 의지하고 믿음으로 나아가서 부르짖는 것. 그것이 바로 기도와 간구입니다. 오늘 하나님은 우리에게 “너희가 구체적으로 내게 구하라. 그리하면 내가 네게 응답할 것이다”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실 것이다」응답하실 것이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오늘 우리들은 얼마나 많은 기도의 제목들을 가지고 있습니까? 아마 여러분들의 근심거리를 한 번 적어보라고 하면 상당히 많을 것입니다. 경제적인 문제, 직장 사업의 문제, 자녀, 손자, 친척의 문제, 내 미래의 문제인 가정 문제, 개인의 문제. 더 나아가서 교회와 민족의 문제등, 우리는 이런 여러 문제들과 고민들을 가지고 있습니다.
여러분, 그렇게 보면 지금은 기도할 때라고 말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우리는 개인의 많은 문제들, 또 믿음의 성장을 위해서 하나님 앞에 나아와서 기도해야할 줄로 믿습니다. ‘
‘나는 기도할게 없다’는 사람은 없습니다. 오히려 너무나 산적한 기도의 문제들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많은 분들이 왜 기도하지 않습니까? 기도해봤자 괜히 공허한 되풀이만 계속되는 것 같고, 그럴 바에는 좀 힘든 거 그냥 이겨내지라고 생각하고 있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우리는 개인의 문제, 믿음의 성장을 위해서 기도하셔야 됩니다.
제가 어제 제 사무실을 정리하다보니 화분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그런데 화분 하나가 잎사귀가 다 축 늘어져 있었습니다. ‘왜 그럴까?’하고 화병을 보니, 그 화병은 흙을 넣는 게 아니라 물을 넣는 화분이었습니다. 그런데 물이 다 증발해 버린 것입니다. 그래서 그 화병에 다시 물을 채워 넣으면서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우리도 기도가 없는 삶이라면 마치 시들어가는 잎사귀가 같은 것이 아닌가. 겉으로 보기에는 그럴 듯해 보이지만 우리 영혼은 점점 시들어가고 메말라가지 않는가?’
여러분, 기도는 우리의 영혼을 강건케 합니다. 윤기 나게 합니다. 활력 있게 하는 것입니다.
또한 얼마 전, 제 방에 금고가 하나 있는데 언제부턴가 이 금고가 잘 안 열리는 것이었습니다. 잘 열리던 것이 한참을 헤매야 어쩌다 열리고 그럽니다. 그래서 건전지를 바꿔 봤지만, 그래도 잘 안됩니다. 하다 하다 안되어서 금고회사에 전화를 했더니, 거기 분명 녹이 슬은 거라고, 시중에 가면 WD-40이라고 있는데 그걸 사다가 뿌리라고 안내를 해 주었습니다. 바늘구멍 같은 걸 이용해서 그것을 열쇠구멍 안에 넣으면 잘될 거라는 장담이었습니다.
그런데 저는 믿어지지 않았습니다. 아니 이게 안 열리는데, 어떻게 그걸 넣으면 되겠느냐고 말입니다. 그런데 정말 그걸 분사해 가지고 열쇠를 넣어보니까 찰칵 들어가는 것입니다. 거기 녹이 슬어 있었던 것이 분명했습니다.
바로, 기도하지 않는 사람의 영혼은 녹슨 영혼과 같음을 깨달았습니다. 기도는 우리 영혼의 녹을 제거하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 나와서 회개하고, 부르짖고, 간구하면서 영혼의 녹을 쓸어버리는 것입니다. 그럴 때 우리의 삶은 정말 하나님과 아름다운 교제가 이어지고, 모든 삶에 형통하고 승리하는 삶이 될 줄로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내 믿음의 성장을 위해서 영혼의 녹을 제거하기 위해서 우리는 기도해야 될 이유가 있는 것입니다.
또한 우리는 가정을 위한 기도의 제목이 얼마나 많이 있습니까? 가정에 대한 염려가 얼마나 많이 있습니까? 요즘 아이들 키우는 것도 참 힘듭니다. 예전에 10명 키우던 거나 요즘 한명 키우는 거나 똑같습니다. 그만큼 신경이 많이 쓰이고 참 어렵습니다.
아이들이 집 대문 밖을 문 열고 나가면 얼마나 많은 세상의 유혹과 손짓이 많은지 모릅니다. 그 유혹가운데 아이들이 건강하고 온전하게 성장한다는 건 기적입니다. 자녀를 위해 기도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수능시험을 앞에 두고 있고, 군에 입대한 자녀들도 많이 있는데, 어찌 부모 된 우리들이 새벽에 기도하는 일을 중단할 수 있을까요? 정말 그 자녀를 사랑하는 부모라면, 그에게 더 많은 돈을 주고 더 좋은 옷을 제공하지 못할지라도 그 아이를 위해서 기도하는 일을 중단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또한 우리의 직장의 문제, 앞으로 이 직장에서 얼마동안 더 일할 수있을까하는 불안들, 물질적인 문제들, 내 인생의 미래, 건강의 문제, 여러 가지 문제들이 있을 것입니다. 여러분의 가정을 위해 지금은 기도할 때인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여러분 얼마나 많은 부부들이 흔들리고 있습니까? 우리 가정도 영원히 견고하라는 보장이 어디 있습니까? 생각지도 못했던 가정이 깨지고 분열되는 모습들을 우리는 주위에서 얼마나 자주 보고 있습니까?
더더욱 우리는 교회를 위해서 기도할 때인 것입니다. 우리 교회는 다음달 10월 첫 주일이면 창립 50주년 기념 주일을 맞이하게 됩니다.
성인들도 나이 50이 되면 자기 인생에 대해 책임을 져야 되지 않습니까? 지금까지는 나 자신을 위해 살아왔다면, 이제는 베풀고 은혜를 나눠주는 삶을 살아야지 않을까요? 우리 영신교회가 해야 할 일들이 얼마나 많이 있습니까? 우리 영신교회는 50년 역사 속에 가장 거대한 대성전 건축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전에는 그저 우리가 할 만큼 했습니다. 우리가 할 능력이 있는 만큼 일했습니다. 돈이 있는 만큼 했습니다. 그러나 지금 우리는 믿음으로 거대한 일을 시작했습니다. 이래놓고 우리가 기도하지 않고 바라보고만 있으면 될까요? 교회와 교회 공동체를 위해서 기도할 때가 아니겠습니까?
또한 우리는 나라와 민족을 위해 기도해야 됩니다. 입만 열면 사람들은 정치가 어렵다고 경제가 불황이라고 입을 모읍니다. 그리고 대통령을 비판하는 분들도 참 많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대통령을 비판한다고 달라질 것이 무엇입니까? 듣지 않기로 마음먹은 사람에게 비판이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 여러분이 누군가를 비판하기보다 앞서 그 분들을 위해 기도하실 수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디모데서에 보면 가진자들을 위해서 기도하라고 말씀합니다. 왕들을 위해서, 너희의 상전을 위해서 먼저 진 자들을 위해서 기도하라고 말씀합니다. 여러분들이 정말 가진자들을 위해서 하루 세끼 금식하며 기도해본 경험이 없다면, 우린 사실 비판할 자격도 없는 것입니다. 왜냐면 기도는 그리스도인의 거룩한 의무이기 때문입니다. 특별히 우리는 혼란한 정치의 안정을 위해서 경제회복을 위해서도 기도해야 되지 않겠습니까?
또한 우리는 남북통일을 위해서도 기도해야 될 것입니다. 다른 나라에서 바라보는 우리 대한민국은 상당히 불안하게 보인다고 합니다. 그래서 아직도 한국에, 그 불안한데 사느냐고 묻느 분들도 있다고 합니다. 우리는 평화적인 통일을 위해서 부단히 기도하셔야 됩니다.
많은 분들이 그럽니다. 목사님 뭐 통일을 위해 기도하라니까 하긴 합니다만 그게 뭐 우리가 기도한다고 통일이 되겠습니까? 김정일이가 죽어야지요. 김일성이가 죽어도 안되더라고요. 그러나 그 보다 더 강력한 것은 바로 기도입니다.
한 번 거슬러 올라가 보십시오. 70년 말 초 또 80년 초 제가 대학생이었을 그 때에는 의식이 있다는 분들은 ‘군부독재, 독재타도’와 같은 말을 많이 했습니다. 종로5가 기독교회관을 지나가다 보면 늘 민주화를 위해서, 양심수의 석방을 위해서 기도하는 분들이 있었습니다. 전경버스가 몇 십대씩 서 있고, 검은 헬멧을 쓴 전경들이 몽둥이를 들고 죽 서있던 것이 생각납니다. 또 광주사태. 뭐 그렇게 오래된 일만은 아니지 않습니까? 그런 때가 있었는데, 그 때 정말 내 아들이 구속되었기 때문에 민주화를 위해 기도하는 분들이 소수 있었습니다.
그때 우리는 ‘저 100명, 200명이 모여 기도한다고 민주화가 올까? 군부 독재가 끝날까?’라고 생각하며 회의와 냉소의 눈빛으로 바라보았습니다.
그런데, 오늘 이 땅에 군부 독재가 물러가고 민주화가 이루어졌습니다. 지금 민주주의가 이루어지지 않았다고 주장하는 사람이 누가 있습니까? 마음 놓고 대통령 욕할 수 있을 만큼 민주화가 이루어졌습니다.
박 대통령 시대에 대통령을 욕했다가는 간첩으로 몰려 당장 잡혀갔을 것입니다. 목사도 설교하다 잡혀갔고, 다방에서도 누가 형사인지 정보원인지 몰라서 함부로 말 못했습니다. 그 시대에 비하면 얼마나 좋은 세상입니까?
그 당시 소수의 사람들이 모여서 기도하던 그것이 현실이 되었습니다. 좋으니 싫으니 잘사느니 못사느니 해도 할말 다하며 살 수 있는 시대가 된 것입니다.
그것을 교훈삼아 이제 우리는 통일을 위해서 기도해야 합니다. 통일은 우리 민족이 해결해야 될 숙원 과제입니다. 이 세계의 많은 나라가 있지만 아직도 남북이 다른 이데올로기를 가지고 살아가는 민족은 대한민국밖에 없습니다.
저에게는 북한 땅에 가보는 소원이 하나가 있었습니다. 중국에 갈 기회가 있어서 중국을 통해서 백두산 천지에 가보았지만, 북한 땅에 가서 주민들을 만나서 대화해본 일은 없었습니다. 이제 북한을 방문할 수 있는 길이 열렸지만 그동안은 배를 타고 가는 것이 너무 비싸서 엄두를 못 내었습니다. 그런데, 요즘은 육로가 개방되어서 누구든지 원하면 비교적 저렴한 방법으로 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저도 이번 휴가에 북한 방문이 다른 어떤 것보다도 더 의미 있는 일로 느껴져서 좀 무리됐지만 2박3일 육로를 통해서 금강산을 다녀왔습니다.
서울 광화문에서 9시에 차가 출발해서 5시간쯤 가니 고성 금강산 콘도에 도착했고, 그곳에서 잠깐 수속을 마치고 15분정도 바다를 끼고 가서 남쪽 출입국 사무실에 도착했습니다.
600명이 22대 버스로 나눠 타고 갔는데, 세관을 통과하듯 통과해서 비무장 지대를 통과했습니다. 가다가 안내원이 “여기가 바로 휴전선입니다.”라고 해서 보니 나무 막대에 푯말이 서있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휴전선에 철망이 쳐져 있는 줄 알았는데 나무 막대 150개가 한반도의 반을 갈라 놓여 있는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푯말이 바닷가에 하나 서있는데, 지난번 태풍에 간판은 날아가 버리고 막대만 세워져 있었고 옆에는 고압선 주의라고 써 있었습니다.
그곳을 지나 북측 출입국 사무국 입구에 도착하니 북한 경비병이 보였습니다. 그곳에서 간단한 수속을 마치고 북한 땅에 들어갔습니다.
참 인상적인 것은 북한 군인들은 호리호리하고 키도 작고 어렸습니다. 북한에서는 17살부터 군대에 가기 때문이라고 전해 들었습니다.
북한 땅에 가서 느낀 것인데 남쪽은 산이 푸르고 나무가 많았는데, 북한에 들어가니까 지형이 그런지 바위산과 붉은 산 밖에 안보였습니다.
북측 출입국 사무소를 지나 20여분 가니 온정리란 마을이 나왔고 좀 더 들어가서 금강산 밑에 온정각이란 관광단지에 있는 금강산 호텔에서 투숙하게 되었습니다.
그날 밤에 금강산 예술가무단 공연이 있다고 해서 어떤지 가봤습니다. 가수들이 나와서 노래 부르는데, 우리 가락과 비슷했습니다. 요즘 북한에서 많이 부르는 노래가 ‘심장에 남는 사랑’, ‘휘파람’ 인데 노래가 좋아서 가사를 적어 달라고 종업원에게 부탁하니 적어 주었습니다.
이처럼 호텔이나 식당에서나 북한 종업원들과 많은 대화를 할 수 있는 것이 참 감사했습니다. 물론 그 분들은 교육을 받은 분들이지만 참 친절하고 솔직하게 대화했습니다. 경제가 어려운 것도 다 인정했습니다. 왜 못사는지 물어보니 일본과 미국 때문에 못산다고 했고, 일본과 미국이 나가고 남북이 통일되면 잘 살수 있다고 이야기 했습니다. 김정일이나 김일성이야기 외에는 웬만한 이야기까지 다 할 수 있었습니다.
뭐 필요한 것이 없느냐고 했더니 왜 없겠냐며 약이 필요하다고 해서 제가 가지고 있는 영양제부터 혈액 순환제, 두통약, 무좀약 까지 다 주고 왔습니다.
다음 날 금강산에 올라가면서 일하는 인부들 40~50명을 만났는데, 바로 옆에서 일하고 식사도 하는데 인부들 모습이 다 그렇겠지만 보기에 안되어 보였습니다.
금강산 등산도하고, 구룡연이란 폭포도 보았습니다. 선녀가 내려와 목욕했다는 여덟 개 못이 있는 상팔담이 보이는 정상에 올라가서 저는 저의 아내와 함께 ‘정말 이 땅에도 평화가 와서 마음껏 하나님께 기도하고 찬양할 수 있는 통일의 그날이 오게 해주소서.’라고 기도 했습니다. 저는 그 기도가 반드시 응답될 줄로 믿습니다.
북한 땅에 가서 느낀 또 한 가지는 참 못산다는 것입니다. 도로 옆에 집이 모여 있는데, 허술한 담들과, 낡은 기와 지붕이 바둑판처럼 죽 있습니다. 보기에도 너무 낡았고 쓰러질 것 같았습니다. 초등학교를 지나가며 유리창을 보는데 유리가 아니었습니다. 유리가 없어서 비닐로 씌웠다는 것이었습니다.
소가 풀을 뜯는 그런 목가적인 풍경들을 가로질러 해금강도 둘러보았는데 참 보기가 좋았습니다.
안내하는 단원이나 기관원 같은 사람이 저를 보더니 “목사 선생님이시죠? 하늘의 기를 받아서 그런지 목사 선생님은 얼굴이 다릅니다.”라며 이야기해서 제가 표찰에다 직업이 목사라고 썼으니까 그것을 언제 보고 말하나보다 하고 생각했습니다.
이렇게 길이 나고 북한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보니 이제 통일이 멀지 않은 것 같습니다. 저는 길어야 30년 빠르면 10년 안에 통일이 이루어진다고 생각합니다.
이제 동독과 서독의 통일을 생각해 봅시다.
1989년 5월 동독의 라히프찌히시에 니콜라이란 소수의 교인들이 모이는 교회가 있었는데, 퓨러란 목사님이 촛불 기도회를 시작했습니다. 바로 동독과 서독의 평화적인 통일을 위해서 일주일에 한 번씩 모여 기도하는 것이었습니다. 소수의 사람들이 모여 기도하던 모임이 확산되기 시작해 10만 명이 넘는 인파가 운집하는 대 기도회가 되었고, 그들이 기도를 시작한지 6개월 만인 1989년 12월 9일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게 되었습니다. 베를린 장벽은 총이나 칼에 의해 무너진 것이 아니라 기도의 능력이었습니다.
지금 우리가 통일을 위해서 기도한다면 반드시 응답된다고 믿습니다. 우리의 생각으로 “어떻게 통일이 가능하겠어.” 하겠지만 오늘 우리가 기도의 사명을 감당한다면 베를린 장벽처럼 38선도 무너질 것입니다.
여러분 왜 기도가 염려의 해결책일까요?
기도는 닫힌 문을 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이번 특별 새벽 집회 주제가 ‘하늘 문을 연사람 엘리야’입니다.
엘리야 시대에 3년 6개월간 비 뿐 아니라 이슬조차 내리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엘리야가 하나님 앞에 나아가 기도할 때 하늘이 문을 열고 비가 내린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또한 바울과 실라가 복음전하다가 구속되어 모진 매를 맞고 빌립보 지하 감옥에 갇혀서 한밤중에 하나님을 찬양하며 기도할 때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나서 옥문이 열린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기도할 때 우리를 얽어매는 모든 것이 다 풀어집니다.
야곱은 얍복 강에서 돌아오는 길에 천사와 시름했습니다. “내게 축복하지 않으면 당신을 놓아 드릴 수 없습니다.”라며 끝까지 매달려서 결국 천사는 그를 축복하고 야곱의 이름이 이스라엘 바뀌어 졌습니다. 야곱에게 그 순간 축복의 문이 열린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이처럼 기도는 닫힌 문을 여는 것입니다.
두 번째 기도는 능력의 통로이기 때문에 염려의 해결책 인 것입니다.
하나님의 능력은 기도를 통해서만 우리에게 전달 될 수 있습니다. 상수원의 저수지 물들이 파이프라인을 통해 우리 주방에 전해지듯이 하나님의 능력은 기도의 끈을 통해서 우리에게 전달되는 것입니다. 어떤 경우라도 기도의 끈을 놓지 않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세 번째로 기도는 우리의 짐을 주님께 맡기는 것이기 때문에 염려의 해결책입니다.
우리가 너무 무거운 짐을 들고 갈 때 누군가 옆에 와서 받아준다면 얼마나 고마울까요? 우리가 짐을 나누어 질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우리 주님은 “사랑하는 아들아 딸아 너의 무거운 짐을 내게 다오. 내가 대신 져 주겠다.”고 말씀하십니다.
인생의 짐, 죄악의 짐, 병고의 짐, 사업의 짐, 경제적인 짐, 모든 짐을 주님이 대신 져주시겠다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여러분의 무거운 짐을 주님에게 맡기는 것이 기도인 것입니다.
베드로전서 5장 7절에 보면 “너희 염려를 다 주께 맡겨 버리라 이는 저가 너희를 권고하심 이니라.”라 말씀하셨고,
시편 55편 22절에 보면 “네 짐을 여호와께 맡겨 버리라 너를 붙드시고 의인의 요동함을 영영히 허락지 아니하시리로다.”라 약속 하셨습니다.
기도는 바로 우리의 짐을 주님께 맡기는 것입니다.
네 번째로, 기도는 우리의 생각을 초월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의 역사이기 때문에 염려의 해결책입니다.
오늘 4장 7절에 보면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너희가 하나님 앞에 기도하고 간구하면 우리의 생각을 초월하신 하나님의 평강이 너의 마음과 생각을 보호 하실 것이다.’란 뜻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생각을 초월하신분이란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인간은 길이 없다고 하는데, 하나님은 길이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절망이라고 하는데, 하나님은 희망이 있다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생각을 초월한 지혜로 더 좋은 것을 준비하고 계신다는 뜻입니다.
이사야 55장 8절에 보면 “여호와의 말씀에 내 생각은 너희 생각과 다르며 내 길은 너희 길과 다르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기도만이 염려의 해결책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오늘 말씀은 너희가 내게 구하면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실 것이며 평강으로 응답하실 것이란 뜻입니다. 하나님은 반드시 우리 기도에 응답하시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성경에 “구하라 그리하면 구할 것이요, 찾으라 그리하면 찾을 것이요, 두드리라 그리하면 열릴 것이다.”라 약속하셨습니다. 또한 “너희가 무엇이든지 내게 구하면 내가 시행할 것이다.”라고 응답을 약속하고 계십니다.
어느 집사님 가정에서 앵무새를 키우는데 이 앵무새가 늘 손님만 오면 “키스해 주세요.”라고 인사를 한다고 합니다. 소문을 들으니 목사님 댁에도 앵무새가 있는데 그 앵무새는 은혜를 받아서 그런지 목소리를 깔면서 “기도합시다.”라고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집사님이 생각해보니 자기 앵무새 소리가 너무 창피해서 목사님 댁에 앵무새를 보내서 목사님 댁 앵무새에게 은혜를 받아 은혜로운 말을 흉내 내도록 하려고 보냈습니다. 그래서 같은 우리에 넣었는데, 손님이 오니까 목사님 댁 앵무새가 늘 하던 대로 “다 같이 기도합시다.”라고 했습니다. 그러자 집사님 댁 앵무새가 또 하던 대로 “키스해 주세요.”했는데, 목사님 댁 앵무새가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주여 제 기도를 응답하시니 감사합니다.”^^
여러분, 하나님은 오늘도 우리의 기도에 반드시 응답하시는 분인 것은 믿으시기 바랍니다. 기도는 공허한 메아리가 아닌 생명의 씨앗입니다. 지금 하는 기도가 언젠가는 반드시 열매 맺고 꽃이 필 것입니다.
또한 기도는 그리스도인의 의무요 특권입니다. 성경 말씀에 “내 집은 만민의 기도하는 집이다.”라고 말씀하셨듯이 기도를 거부한다면 그것은 그리스도의 뜻에 합당하지 않는 것입니다.
이사야 58장 9절에 보면 “네가 부를 때에는 나 여호와가 응답하겠고 네가 부르짖을 때에는 말하기를 내가 여기 있다 하리라.”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지금은 기도할 때가 아닐까요. 여러분의 가정에 염려가 없으십니까? 걱정이 없으십니까? 하나님이 여러분을 도와주시겠다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지금 미국에서는 뉴올리안주에 허리케인이 강타해서 수천 명이 죽고 썩은 시체가 둥실둥실 떠다닌다고 합니다. 강대한 미국도 재난 앞에 어쩔 수 없는 것입니다.
여러분 얼마 전 이라크 바그다드에서는 수련을 마치고 나오는 사람들이 자살폭탄 테러로 인해서 다리로 몰리는 바람에 난간이 부서져서 800명이 떨어져 죽었습니다.
며칠 전 대구에서는 목욕탕 싸우나가 폭발해서 50여명의 사상자가 발생했습니다.
우리 역사 속에는 어려운 재난이 수없이 몰려왔고 몰려오고 있습니다. 정치는 불안하고 경제는 불황의 늪을 헤매고 있습니다. 바로 이 시대에 그리스도인들이 깨어서 기도해야 하는 것입니다.
1905년 길선주 목사님을 시작으로 새벽기도 운동이 일어났습니다.
1915년 김포 강화도 지역에도 새벽 기도 운동이 일어났는데 어느 무명의 성도가 그당시의 새벽기도의 부흥을 기록한 기도일지가 발견 되었습니다.
‘이날아침 새벽 예배에도 주께서 여러 병자를 고쳐 주시며 많은 은혜를 베풀어 주셨다. 새벽에 모든 교인들이 자신들의 죄를 내어놓고 울며 회개하고 기도하니 각 사람에게서 병 고침의 은사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김마리아가 자신의 죄를 회개하고 눈물을 흘리자 정윤아 권사가 축복의 기도를 올렸다. 그러자 오래된 피부병인 창병이 깨끗이 치료되는 기적이 일어났다. 정 권사는 동정녀 마리아에 대해 이야기하며 깨끗하고 순종하며 온전한 삶을 살아온 하나님의 딸 마리아의 본을 받으라고 간증했다.’
무려 100여 년 된 기도일지입니다. 공교롭게도 1905년 새벽기도가 시작된 이래로 올해가 100주년을 맞이하는 해입니다. 100주년을 맞이한 우리들이 새벽기도 부흥의 역사를 다시 일으켜야 되지 않겠습니까?
우리 영신교회가 오늘 이시대의 나라와 민족을 걱정하면서 새벽을 깨우며 하나님 앞에 나와 여러분의 필요를 아뢰고 주님의 평강을 선물 받는 저와 여러분이 될 수 있기를 주의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이 영 무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