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을 분별하라 !
본문
아래 글은 제가 존경하는 한 선배 목사님의 설교 테이프를 듣던 중에 은혜가 되어 받은 은혜를 나누고자 그 설교의 내용을 요약해본 것입니다 이단과 비진리가 활개를 치는 요즘, 영분별의 필요성은 그 어느때보다 시급합니다.
저는 지체님들과 함께 유명하다는 어느 원장님의 집회에
은혜를 받기 위해 참석한 적이 있습니다. 순수하게 은혜를 받기 위해서입니다.
듣던대로 그곳에는 열심히 굉장한 간증들을 하고 있었습니다.
함께 온 일행들은 그 사역에 푹 빠져서 큰 은혜를 받고 있었지만
제게는 보여지는 것과는 정반대로... 성령의 음성이 들려왔습니다.
그 사람안에서"나의 모습(=주님닮은 인격)이 보이느냐?
나의 음성이 들리느냐?"는 음성이었습니다.
그러나 주님닮은 모습이 보이기는 커녕 술집 작부의 모습이 보였습니다.
이와같이 우리는 꿈, 환상, 은사, 기적등을 체험하여
살아계신 하나님을 만나야 하겠지만 이런 능력-나타남이 영분별의 잣대는 아닙니다.
마24:23~
"그 때에 사람이 너희에게 말하되 보라 그리스도가 여기 있다 혹
저기 있다 하여도 믿지 말라, 거짓 그리스도들과 거짓 선지자들이 일어나
큰 표적과 기사를 보이어 할 수만 있으면 택하신 자들도 미혹하게 하리라."
살후 2:9~
악한 자의 임함은 사단의 역사를 따라 모든 능력과 표적과 거짓 기적과
불의의 모든 속임으로 멸망하는 자들에게 임하리니 이는 저희가
진리의 사랑을 받지 아니하여 구원함을 얻지 못함이니라
이러므로 하나님이 유혹을 저희 가운데 역사하게 하사
거짓 것을 믿게 하심은 진리를 믿지 않고 불의를 좋아하는 모든 자로
심판을 받게 하려 하심이니라."
마7:21~
"그 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 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치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 그 때에 내가 저희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
고후 11:14~
" 사단도 자기를 광명의 천사로 가장하나니"
그러므로 사단의 일군들도 자기를 의의 일군으로 가장하는 것이 또한
큰 일이 아니라."
그러기에 큰 권능을 행하는 것이나, 거룩한 웃음을 터트리는 것이나 ,
금가루가 생기게 하는 것이나, 금니가 생기게 하는 것이나, 뒤로 넘어트리는 것..
이런 것들로 그 사람이 하나님의 사람이라는 것을 증명하지 못합니다. 또..
예언이나 예언의 정확성이나, 계시를 받는 것이 분별의 잣대가 될 수 없습니다.
사단, 마귀는 이 모든 것을 위조할 수 있으며 흉내낼 수 있습니다.
분별의 잣대는 마7:15~20 입니다. "거짓 선지자들을 삼가라
양의 옷을 입고 너희에게 나아오나 속에는 노략질하는 이리라
그의 열매로 그들을 알찌니.." 라는 말씀대로 그 열매로 그들을 분별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보통은, 계시나 능력이나 기적, 표적이 나타나면 거기에 압도되어
분별할 생각을 하지 못하고,목사나 성도나 할 것 없이 무조건 따라갑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영광보다 표적이나 기적같은 현상에 미혹되는 것입니다.
하나님보다 선물을 더 원하거나, 하나님 그 자신보다 하나님의 능력을
더욱 추구하는 사람들이 쉽게 빠져드는 함정입니다.
미혹이란 불의를 좋아하는 데서 역사합니다.
진리보다 현상을 좋아하고, 진리를 좋아하지 않는데서 역사합니다.
자신이 정말로 원하는 것이 기적이라면 기적이 나타나면 무조건 추종하게 됩니다.
그가 정말 원하는 것이 권력이라면 권력이 나타나면 그것을 추종하게 됩니다.
그러나 영분별은 첫째로 그 열매를 기준으로 분별해야 합니다.
고전 13장의 사랑이 그 사람에게 있는지, 아가페의 사랑이 그 사람에게 있는지를
잘 분별해야 합니다. 아가페의 사랑이란 어떤 집단 가운데 있는 패거리의식이나
동류의식으로 가지는 그런 사랑과는 차원이 다른 사랑입니다.
아가페의 사랑과 핀란드로피아의 사랑은 서로 비슷하기 때문에 속기 쉽습니다.
고전13장에 나오는 이런 사랑의 특징이 나타나지 않으면 잘못된 것입니다.
(구체적으로 하나 하나씩 설명했지만.. 생략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시기하지 않습니다.
시기심이나 투기가 있다는 것은 여전히 자신을 위해 산다는 증거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게되면 남이 잘되는 것이 기쁨이지, 시기란 있을 수 없습니다.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은 시기심 때문에 예수님을 죽이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자랑하지 않습니다. 자기자랑을 하느냐?
아니면 하나님 자랑을 하느냐?도 유심히 관찰하여야 하며
또 무례히 행하느냐? 아니냐? 도 잘 살펴보아야 합니다.
점쟁이나 무당들에게는 악령이 임했기 때문에 반말하고 욕설을 합니다.
악령은 그 성질자체가 무례한 것이고 무례한 것이 또한 정상적인 일입니다.
점쟁이가 말을 높이고 겸손한다면.그게 오히려 이상하지 않겠습니까?
그러나 성령을 받은 사람이 욕설을 한다던가, 무례히 행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며 비정상적인 것입니다. 많은 부흥사들이 성도들을 불러내 세워놓고
마치 장난감을 갖고 놀듯이 무례히 행하는 경우는 종종 보게 되는데
이것은 아주 잘못된 것입니다. 그래서는 안되는 것입니다.
믿지 않는 사람들조차 공식석상에서는 반말을 하거나 무례히 행치 않습니다.
그렇게 무례히 행해서는 안된다는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하물며 지극히 인격적이신 하나님의 성령을 받은 하나님의 사람이라면 결단코
무례히 행치 않습니다. 반말하지 않습니다. 저는 한국 부흥사 10명이 있다면
그중 1명꼴의 비율로 천국에 들어갈 수 있다고 여깁니다.
그만큼 반말지꺼리에 욕설을 하는 부흥사들이 잘못되었다는 것입니다.
10명의 사도보다 1명의 겸손한 자를 주께서는 더욱 찾으십니다.더욱 귀히 여기십니다.
하나님은 겸손한 자를 찾으시며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주시지만
교만한 자는 아무리 큰 능력을 행할 찌라도 결국 버림받게 됩니다.
두번째로 분별할 수 있는 시금석은 "사랑안에서 겸손히 행하는가?"입니다.
겸손한 자가 되는 것, 이게 노력으로 되는 것은 아닙니다.
오직 하나님을 만난 사람만이 그리스도의 형상을 갖게 됩니다.
오직 예수님을 만난 사람만이 주님의 음성을 갖게 됩니다.
하나님의 사람이면 하나님의 사람일 수록 그 안에 하나님의 형상이 더 뚜렷히 있습니다.
주님을 본 자는 주님을 닮게 되어 있습니다. 온유와 겸손의 모습을 닮게됩니다.
그 영광을 보게 되면 될 수록, 그 임재를 체험하면 할 수록 더욱 주님을 닮게 됩니다.
어떤 사람은 열심을 내긴 내는데..자기를 위한 열심을 냅니다.
자기열심은 이기심이나 자기 야망과 욕심에서 나오는 인간적인 열심입니다.
이런 열심은 헛된 열심이며 감정적인 열심이며 변하는 열심입니다.
우리는 열심을 내되 하나님의 사랑에서 나오는 열심을가져야 합니다.
이것은 사람에게 나오는 열심이 아니라 하나님의 열심, 여호와의 열심입니다.
우리는 어디서 무엇을 하든지 우리의 채널을 하나님께 그분께 맞추어야 합니다.
설교자가 누구든지.. 잘하는 설교이든 못하는 설교이든..
그 설교자를 통해 흘러나오는 주님의 음성에 초점을 맞추어야 합니다.
어떤 일이나 사람을 통해 흘러나올 수 있는 주님의 음성을 찾아야 합니다.
그것이 목적이 되어야 합니다. 주님 외에 다른 부수적인 것들..즉
사람이나 현상(이나 능력이나 신유나 예언등)에 마음을 빼앗겨서는 안됩니다.
세번째 영분별의 시금석은 사랑과 겸손이 계속 성장하고 있는가? 입니다
믿음안에서도 만족은 쉽게 자만으로 이어지며 , 자만은 바로 교만이 됩니다.
믿음이란 표대를 향해 끝없이 달려나가야 될 줄 압니다.
그런 것이 보이지 않을 때는 이미 죽은 것이고 잘못된 것입니다.
(엡3:18) "히 모든 성도와 함께 지식에 넘치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아
그 넓이와 길이와 높이와 깊이가 어떠함을 깨달아
하나님의 모든 충만하신 것으로 너희에게 충만하게"하시기 위하여
어디까지 이르렀던지 그대로 행해야 합니다.
참된 믿음은 내 욕심을 이루기 위해 예수님을 믿는 것이 아니고
오직 주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서..
오직 주님을 따르기 위해서..오직 그 뜻을 행하기 위해 믿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