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날이 가까울수록 (히 10:19~25)
본문
이솝우화에 나오는 내용입니다. 사자와 당나귀, 여우 셋이서 힘을 합해 사냥을 했습니다. 그리고 사냥한 것을 나누는데, 사자가 당나귀에게 공평하게 나누어 보라고 했습니다. 그러자 당나귀는 똑같이 셋으로 나누었습니다. 그랬더니 사자는 공평하지 못하다 하면서 당나귀를 잡아먹어 버렸습니다. 그리고 나서 이번에는 여우한테 나누어 보라고 합니다. 그러자 여우는 대부분을 사자 몫으로 돌리고 자기는 쥐꼬리만큼 가졌습니다. 그때서야 사자는 흡족해 이제야 공평하게 되었구나 말합니다. 사자가 여우에게 묻습니다. "너는 어떻게 해서 이런 지혜를 생각해 냈느냐" 그러자 여우가 대답하기를, "어떻게는 뭘, 당나귀 죽는 것보고 생각해 냈지".
남에게 일어난 일을 보고 내게 일어날 일을 생각하는 것이 지혜입니다. 우리는 다른 사람들에게 어떤 일들이 일어나는가를 보고 우리 자신에게 일어날 일을 미리 깨달아야 합니다. 그리고 준비하여야합니다.
다른 사람이 병에 들었습니까? 그것을 보면서 우리도 병들 날이 있다는 것을 알고 준비해야 합니다. 다른 사람이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습니까? 우리에게도 그런 일이 일어날 것을 알고 준비하셔야 합니다.
성경전체가 우리에게 가르쳐 주는 귀중한 사실 하나가 있습니다. 그것은 그 날이 있다는 것입니다. 성경에서 '그 날' 이라는 단어가 처음 사용된 것은 창세기7장 11절입니다. "노아가 육백세 되던 해 이월, 그 달 십칠일이라, 그 날에 큰 깊음의 샘들이 터지며 하늘 창들이 열려" . 여기서 그 날은 하나님께서 홍수로 세상을 심판하시는 날이었습니다. 그리고 마가복음13장 19절에서 예수님은 "그 날들은 환난의 날이 되었음이라, 하나님의 창조하신 창조부터 지금까지 이런 환난이 없었고, 후에도 없으리라" 고 말씀하셨습니다. 여기서 그 날 역시 예수께서 재림하셔서 심판하실 날을 가리키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언제나 심판의 날인 그 날을 잊지 말고 살아야 합니다.
본문 25절은 우리에게 "그 날이 가까이 오고 있다" 라고 말씀합니다. 그 날은 변할 수 없는 날입니다. 확실히 다가오는 날입니다. 누구나 겪어야 하는 날입니다. 심판의 날입니다. 한 사람도 예외 없이 겪어야 할 날입니다. 우리 주께서 천사장의 나팔 소리와 함께 친히 하늘로 좇아 강림하시는 날입니다. 그러므로 '그 날' 이 있음을 알고 그 날이 가까움을 볼 수록 우리가 가져야 할 신앙의 모습은,
첫째로 모이는 일에 힘써야 합니다
무디가 유력한 사람을 찾아가 교회에 나올 것을 권유했습니다. 그러자 그 사람은 "교회에 안 나가도 신앙생활을 잘 하면 되지 않느냐?" 면서 반문하더랍니다. 그 때 무디는 벽난로에서 이글이글 타고 있는 석탄 덩어리들을 집게로 꺼내 따로 따로 땅에 놓았습니다. 그러자 그렇게 잘 타던 석탄 덩어리는 불이 점점 약해지더니 마침내 시커먼 석탄 덩어리가 되고 말았습니다. 무디는 말하기를 "아무리 열심 있고 신앙이 좋아도 교회에서 떨어지면 이 꼴이 되고 맙니다. 혼자 믿는다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그런 자에게는 성령의 뜨거운 역사가 없습니다" 라고 했답니다. 아무리 독실한 신자라도 영적인 모임인 예배에 자주 빠지면 신앙이 사라집니다. 교회에 함께 모여 뜨겁게 기도하고 찬송하고 예배드리지 않고 세상으로 흩어져 나가면 신앙 생활이 나약해 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믿음이 약한 자라도 열심히 모임에 참석하면 뜨거워집니다. 그의 믿음이 날로 성장합니다.
본문의 '모이기를 힘쓰라' 는 말은 모여 하나님께 예배드리며 하나님의 말씀을 상고하라는 뜻입니다. 모여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때 믿음이 깊어지는 것입니다. 이 믿음으로 기도할 때 하나님의 능력을 힘입게 됩니다. 그러므로 성도들은 모여야 합니다. 모이되 열심히 모여야 합니다. 로마서 13장 11-14절의 말씀에 "또한 너희가 이 시기를 알거니와 자다가 깰 때가 벌써 되었으니 이는 이제 우리의 구원이 처음 믿을 때보다 가까웠음이니라 밤이 깊고 낮이 가까웠으니 그러므로 우리가 어두움의 일을 벗고 빛의 갑옷을 입자 낮에와 같이 단정히 행하고 방탕과 술 취하지 말며 음란과 호색하지 말며 쟁투와 시기하지 말고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고 정욕을 위하여 육신의 일을 도모하지 말라" 고 하셨습니다.
열심히 모여 믿음을 굳게 하지 않으면 점점 더 타락해 가는 세상을 이길 수 없고, 썩어진 세속에 물들면 갑자기 재림하실 주의 날에 부끄러움을 당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므로 성도들은 주님 오실 날이 가까움을 느낄수록 더욱 더 모이기에 힘써야 합니다. 함께 모여야 예배도 있고, 교제도 있습니다. 함께 모여야 붙들어줄 수도 있고, 도와줄 수도 있습니다. 함께 모여야 격려할 수도 있고, 강권할 수 있습니다. 모이는 습관은 하나님께서 권하신 좋은 습관입니다. 그러나 마지막 때에는 모이기를 폐하는 자들의 악한 습관이 나타난다고 본문은 경고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의 습관은 모이기에 열심을 내는 습관입니까? 아니면 모이기를 폐하는 습관에 익숙하십니까? 부디 주의 날이 가까이 옴을 깨달아 모임에 힘을 쓰며 열심을 내는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둘째로 믿는 도리를 굳게 잡아야 합니다
로마의 검투사인 델리마쿠스는 자신의 칼에 맞아 죽어 가는 상대의 모습을 보고 기뻐하던 잔인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그가 신앙을 가지면서 "하나님의 뜻과 맞지 않는 검투를 끝내야 되겠다" 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리하여 검투장에서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명하노니 이 잔악 무도한 검투를 끝낼지어다." 라고 외쳤습니다. 그러자 사람들이 비웃으며 그를 칼로 찌릅니다. 그는 죽어가면서도 외칩니다. "다시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명하노니 이 잔악 무도한 검투를 끝낼지어다." 진지하게 그의 죽어 가는 모습을 보며 검투사들이 한 사람, 두 사람 떠나기 시작했습니다. 그 후 로마에서 검투 경기가 사라졌다고 합니다. 믿음의 도리를 죽음을 무릅쓰고 굳게 잡은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악한 전통이 사라지게 된 것입니다.
23절 하반절에 "우리가 믿는 도리의 소망을 움직이지 말고 굳게 잡아" 라고 했습니다. 사람은 무엇을 잡고 사느냐에 따라 운명이 결정됩니다. 사단을 붙들면 멸망하게 됩니다. 죄를 붙들고 거짓을 붙들면 그 댓가를 받게 됩니다. 우리가 굳게 잡아야 할 것은 믿음의 도리입니다. 거기에 영생과 구원, 승리와 성공, 사명과 상급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그 날이 가까움을 볼수록 우리는 믿음의 도리를 굳게 잡고 살아야 합니다. '믿는 도리의 소망' 이란 헬라 원어는 '호몰로기아' 로써 '함께 입으로 고백하다' 라는 뜻입니다. 즉 하나님의 도우심이 필요할 때일 수록 신앙을 고백해야 하는 것입니다. 입술의 고백이 하나님을 향해 믿음을 나타내는 증거가 되기 때문입니다.
민수기 14장 28절 말씀에“여호와의 말씀에 나의 삶을 가리켜 맹세하노라 너희 말이 내 귀에 들린 대로 내가 너희에게 행하리니”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을 향해 믿음을 고백하던 여호수아와 갈렙은 가나안 땅에 들어갔습니다. 그러나 믿음을 굳게 잡지 못하고 불평하며 원망하던 사람들은 광야에서 멸망당하고 말았습니다. 확실한 믿음을 잡고 나아갈 때 예나 지금이나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납니다. 그러므로 나를 지키시며 인도하시는 하나님을 향한 믿음의 도리를 굳게 잡아 하나님의 뜻인 소망이 있는 삶이 되시기 바랍니다.
셋째로 서로 돌아보아야 합니다
새 가운데 서로 잘 돌보는 새는 기러기라고 합니다. 기러기는 그리 강한 새가 아닙니다. 날개도 약하다고 합니다. 그러나 기러기는 새 가운데 가장 멀리 날아가는 새라고 합니다. 일년에 한 번 오고 한 번 가기에 장거리를 두 번 이동을 하는 셈입니다. 기러기는 날아갈 때에 언제나 V자 형으로 날아갑니다. 그 까닭은 먼저 날아가는 새가 공기를 뚫어주기 위함입니다. 그러면 그 다음의 새는 그만큼 쉽게 날아 갈 수가 있습니다. 조류학자들에 의해 기러기의 대형처럼 날아가는 것이 혼자 날 때보다 71%나 더 많이 날 수 있음이 증명되었습니다. 앞서가는 기러기가 힘이 들어 지치면 교대하면서 날아갑니다. 병든 기러기가 있으면 버리고 떠나는 법이 없다고 합니다. 몇 마리의 기러기가 남아서 치료를 한 후 같이 날아간다는 것입니다. 미물인 새들도 이러할진대 하나님을 섬기는 성도들은 마땅히 서로 돌아보아야 합니다. 특히 그 날이 가까움을 볼수록 서로 돌아보며 사랑과 선행으로 격려해야 합니다
사람은 어려우면 어려울수록 나이가 들면 들수록 위기가 오면 올수록 더욱 자신만을 생각합니다. 그러나 참된 믿음의 사람은 그 날이 가까이 올수록 남을 생각하며 살아야 합니다. 주님 앞에 갈 날이 가까이 오면 올수록 다른 사람에게 용기를 주고 의욕이 솟아나도록 북돋워 주는 인생을 살아야 합니다. 신학자인 토니 캄플로는 "사람이 죽을 때는 못다 이룬 업적을 후회하지 않는다. 바르게 살지 못한 것과, 바르게 사랑하지 못한 것을 후회하며 죽는다." 라고 말합니다.
본문 24절“서로 돌아보아 사랑과 선행을 격려하며”라는 말씀이 나옵니다. 예수 믿는 사람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맺어진 한 식구들입니다. 그러므로 서로 사랑하며, 서로 칭찬하며, 서로 격려해야 합니다. 그리해야 더욱 힘을 얻어 성도다운 삶을 살아가게 됩니다. 그렇지 아니하고 다른 이의 약점만을 캐거나 헐뜯으면 사랑의 관계는 깨어지고 맙니다. 교회는 남의 약점을 들추어내어 즐기는 곳이 아닙니다. 교회는 서로 격려 받고 서로 사랑하고 서로 선행으로 세워주어야 하는 곳이 되어야 합니다.
사도행전 2장 46절에 나타나는 초대 교회처럼 되어야 합니다. 초대교회 성도들은 주님의 다시 오심을 의식하며 모이기를 힘썼습니다. 모여 예배하고, 기도하고, 찬송하고, 교제를 나누고, 봉사했습니다. 그리 할 때 하나님께서 구원받는 사람의 숫자를 날마다 더해 주셨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그 날이 가까워 올수록 모여야 합니다. 주안에서 모여야 합니다. 교회 모임은 회의를 위한 모임이 아닙니다. 일만을 위한 모임이 아닙니다. 그리스도의 사랑과 선행을 실천하기 위한 모임입니다. 우리가 일하지 않는다고 하나님께서 일을 못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전능하신 하나님께서는 내가 아무 것도 하지 않아도 하나님의 교회를 움직여 나가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단지 모일뿐입니다. 우리는 단지 믿는 도리를 붙잡을 뿐입니다. 우리는 단지 서로 돌아볼 뿐입니다. 부디 그 날이 가까이 올수록 악한 자들의 습관처럼 불평을 일삼으며 모임에 나태하여 진리에서 이탈되는 삶이 되지 마시고 바르게 믿고 바르게 행하여 부끄럼 없이 하나님 앞에 설 수 있는 그 날의 복된 성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김 광 일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