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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식이냐? 안식이냐? (마 11:2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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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식이냐? 안식이냐? (마 11:28-30)


<휴가철에 던지는 질문-"휴식인가? 안식인가?">

휴가철이 한창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산으로 들로 물로 나갑니다.
직장마다 주 5일제를 확대 실시하면서 휴가에 대한 관심도 높아진 것 같습니다.
오랫동안 스트레스로 짓눌린 사람들이 휴가를 떠나는 것은 꼭 필요한 일입니다.

사실, 스트레스를 받지 않는 현대인들은 거의 없습니다.
현대인들을 죽음으로 몰고 가는 여섯 가지 주요 원인들이 있습니다.
심장질환, 암, 폐질환, 간장질환, 각종 사고, 자살입니다.
그런데 이 여섯 가지는 모두 스트레스와 긴밀히 관련되어 있습니다.
다시 말해 우리를 죽음으로 이끄는 제 1의 사망 원인이 스트레스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미국에서는 스트레스를 처리하기 위하여 해마다 3천억 달러나 되는 돈을 쓰고 있습니다.

그런데 도시 사람들이 시골 사람들보다 스트레스를 훨씬 더 많이 받습니다.
공기 오염, 소음 공해, 교통 체증, 복잡한 인간관계 등이 스트레스를 부추깁니다.
그러므로 골치 아픈 도시 생활을 벗어나 자연 속에 쉬는 것은 꼭 필요한 일입니다.
휴가는 스트레스를 이겨내고 재충전의 시간을 갖고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해 필수적입니다.
그것도 온 가족이 다함께 조용한 곳에 가서 쉬고 오는 것은
가정의 건강과 행복을 위해 참 좋은 일입니다.

이렇게 휴식하는 시간을 갖는 것이 좋은 일이긴 하지만
무엇이 진정한 쉼인지에 대해서 생각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여러분, 무엇이 진정한 쉼일까요?
저는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휴식이라는 말 대신에 안식이라는 말을 써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휴식(休息)이라는 말은 그냥 일손을 멈추고 쉰다는 뜻입니다.
그러나 안식(安息)은 편안히 쉬는 것입니다.
아니, 안심하고 쉬는 것이 안식이지요.

휴가를 떠나서 일을 중단하고 쉬는 것은 좋은데 편안히 쉬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아무 근심 걱정 없이 안심하고 마음껏 쉬는 것이 훨씬 더 중요합니다.
휴가가 안식이 되어야지, 그냥 휴식으로 그쳐서는 안 됩니다.

유명한 곳이라고 해서 휴가를 떠났다가 스트레스만 더 받고 오는 경우가 얼마나 많습니까?
먼저 고속도로부터 길이 막혀 이만저만 스트레스를 받지 않습니다.
막상 그 곳에 도착해도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 발 디딜 틈이 없습니다.
거기다가 바가지 요금에다 취객들의 고성방가는 또 얼마나 심합니까?

뿐만 아닙니다.
이왕 휴가를 떠났으면 복잡한 세상일은 다 잊어야 하는데
핸드폰을 가져가니 그것마저 쉽지 않습니다.
계속 전화가 오고 가고, 이것은 장소만 옮겼다는 것뿐이지 휴가가 아닙니다!

그렇습니다.
모처럼 휴가를 떠났다가 스트레스만 받고 돌아오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바로 이런 이유 때문에 저는 어느 곳으로 휴가를 떠나느냐 하는 장소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우리의 마음가짐, 태도가 훨씬 더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이 세상에서 아무리 좋은 휴양지에 여행을 간다고 할지라도
우리 마음에 평안이 없으면 '安息,' 안심하고 편안히 쉬는 일은 어렵습니다.
그 곳에 가서도 여전히 직장 일 때문에 고민하고 걱정하게 된다면 참된 쉼이 아니지요.

저는 어거스틴의 『고백록』을 읽다가 아주 흥미로운 이야기를 발견했습니다.
어거스틴에게는 둘도 없이 친한 죽마고우(竹馬故友)가 한 사람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친구가 그만 한창 젊은 나이에 죽고 말았습니다.
어거스틴의 마음은 슬픔으로 갈기갈기 찢어졌습니다.
바로 이 친구의 죽음 때문에 친구란 '두 몸에 깃들인 하나의 영혼'이라는
유명한 말이 나왔던 것입니다.
어거스틴에게 친구의 죽음은 자기 혼의 반쪽이 죽은 것과 마찬가지였습니다.

미친 듯이 괴로워하던 어거스틴은 친구와 함께 뛰놀던 장소를 떠나
전혀 낯선 곳으로 가면 혹시 위로를 받지 않을까 해서 장소를 바꾸어보았습니다.
그러나 마음이 변화되지 않는 한, 장소만 바꾸었다고 해서 문제는 해결되지 않았습니다.
장소만 바꾼다고 해서 친구의 죽음으로 인해 생겨난 슬픔이 사그라지지 않았다는 것이지요!

그리하여 어거스틴은 이렇게 탄식합니다.
"내 마음이 내 마음을 피해 어디로 도망갈 수 있겠습니까?
내가 내 자신을 피해 어디로 도망갈 수 있겠습니까?
내가 어디에 간들 [슬픈 마음을 가진] 내가 따라가지 않을 곳이 어디 있겠습니까?"

그렇습니다.
진정한 평안과 쉼은 우리의 마음과 태도, 우리의 영성에 달려 있는 것이지
어느 곳으로 여행을 떠나는가에 달려 있지 않습니다.

저는 피서철을 맞아서 우리 내리 교인들이 '휴식'이 아닌
참된 '안식'을 다 누릴 수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참된 안식을 주시는 예수님>
오늘 본문 말씀은 안식일 문제로 큰 스트레스를 받고 있던 유대인들을
초청하시는 주님의 말씀입니다.
유대인들은 613가지나 되는 율법을 지키기 위하여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았습니다.

그 중에서도 안식일에 대한 율법이 제일 까다로웠습니다.
안식일에는 절대로 노동을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 유대인들의 강박관념이었는데,
안식일에 어떻게 하는 것이 노동 행위에 해당되는가 하는 문제가 중요했습니다.

예컨대, 안식일에 못이 박힌 샌들을 신고 밖으로 나갈 수 없었습니다.
안식일에 짐 지는 것을 금했는데 신발 밑에 박힌 못이 짐이 된다고 보았기 때문이지요.
또한 손톱을 깎거나 머리카락을 뽑거나 수염을 깎는 것도 용납이 되지 않았습니다.
모두 안식일에 노동하는 것으로 간주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안식일에는 여자들이 거울도 제대로 쳐다보지 못했습니다.
혹시라도 흰머리를 뽑거나 얼굴에 묻은 티라도 제거할까봐 두려웠기 때문입니다.

이와 같이 안식일에 대한 율법규정 때문에 숨이 막힐 정도로 스트레스를 받고 있던
유대인들에게 주신 초청의 말씀이 바로 본문 말씀인 것입니다.
이것은 이 말씀이 끝나자마자 마 12장에 보면 예수님의 제자들이 안식일에
밀 이삭을 잘라먹은 이야기, 또 안식일에 손 마른 사람을 고쳐주신 이야기와
곧바로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에서 분명해집니다.

이제 이 말씀은 온갖 스트레스와 노동에 시달리고 있는 현대인들에게도 유효한 말씀입니다.
오늘 이 말씀의 뜻을 잘 헤아리시고 여러분 모두 예수님 안에서
진정한 안식을 누릴 수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① 예수님은 우리를 초청하십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얼마나 좋은 말씀입니까?
예수님은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지고 온갖 스트레스로 괴로워하는 이들을 부르십니다.

어부들과 세리들과 창기들을 불러주셨던 예수님은 오늘도 우리를 부르십니다.
가지가지의 스트레스와 노동으로 마음과 육신이 지칠 대로 지친 사람들을 부르십니다.

오늘 여러분들에게 고민이 있습니까?
두려움이 있습니까?
그 어느 곳에서도 풀 수 없을 것만 같은 스트레스에 짓눌려 있습니까?

예수님께서 부르십니다.
예수님께로 오라고 초청하십니다.
그 음성을 듣고 주님께 나아가세요!
예수님 안에 참 안식이 있습니다!

② 예수님은 우리에게 안식을 주십니다.
앞에서 어거스틴의 이야기를 잠시 말씀 드렸지만
사랑하는 친구를 잃어버린 어거스틴은 위로를 얻기 위하여
사방팔방을 헤매고 다녔습니다.
그러나 그 어느 곳도 어거스틴의 마음을 위로하지 못했습니다.

어거스틴은 『고백록』에서 이렇게 절규합니다.
"그래서 나는 내 혼이 쉴 수 있는 어느 곳을 찾아 거기에
놓아두고 싶었으나 그러한 곳은 어디에도 없었습니다.
아름다운 숲이나, 놀이와 노래가 있는 곳에도, 향기 나는 정원이나,
훌륭한 잔치나, 향락의 침실에도, 또한 글과 시를 읽는 곳에서도,
내 혼은 안식할 자리를 찾지 못했습니다.
나는 모든 것이 다 싫어졌습니다.
빛마저도 싫었습니다.
내 친구가 아닌 그 모든 것은 다 귀찮고 고통이었으니
다만 그에 따른 슬픔과 눈물에서 잠깐 위안을 얻었을 뿐입니다.
그러나 내 혼이 그 슬픔과 눈물에 젖어 있지 않을 때는
더 무거운 불행의 짐이 나를 엄습하는 것이었습니다.
주님, 당신만이 이 짐을 가볍게 할 수 있기에
당신에게 내 짐을 맡겼어야 했습니다."

어거스틴의 고백이 옳습니다.
우리의 무거운 짐을 예수님께 맡겨야 합니다.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의사가 환자에게 "내가 당신의 병을 고치리라!" 말하듯이
우리의 지친 영혼에 안식을 주신다는 약속입니다.

오늘 여러분들이 참 안식을 누리기 원하십니까?
예수님께로 돌아가야 합니다.
여러분이 아무리 기가 막힌 세계적인 휴양지에 여행을 간다고 할지라도
주님 안에 있지 않으면 진정한 안식이 없습니다.
잠시 잠깐의 '휴식'은 될지 모르지만 '안식,' 편안하게 안심하고 쉴 수는 없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의 모든 무거운 짐을 주님께 맡기세요!
열차를 타거나 비행기를 탈 때 무거운 짐은 선반 위에 실으면 됩니다!
승차한 다음에도 여전히 머리 위에 무거운 짐을 이고 있다면 얼마나 어리석습니까?

마찬가지로 예수님의 초청에 응답해서 예수님께 나아왔으면
모든 무거운 짐을 예수님께 맡겨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의 모든 무거운 짐을 대신 맡아 주시고 안식을 주십니다!

③ 예수님의 멍에를 메고 예수님께 배우고자 할 때 참 안식을 얻습니다.
예수님의 부르심을 듣고 주님께 나아오면 쉼을 얻게 되지만,
참된 안식을 누릴 수 있는 진짜 비결이 있습니다.

29-30절을 보세요.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러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이는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 하시니라."

이게 무슨 말씀입니까?

첫째로, 예수님은 온유하고 겸손한 분입니다.
유대교의 율법은 사람들을 무겁게 억누릅니다.
율법을 잘 지킨다는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은 교만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언제나 온유하고 겸손하셨습니다.
섬김을 받으려 하지 않으시고 먼저 섬기셨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안식일에 대하여 가지가지 무거운 조항을 엮어놓고
사람들에게 스트레스를 주는 유대교의 지도자들과 다르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님은 여러분의 직장 상사나 동료나 친구들과 다른 분이십니다.
세상 사람들은 여러분에게 스트레스를 주지만 주님은 자유와 평안을 주십니다!
온유하고 겸손한 분이십니다.

둘째로, 예수님의 멍에를 메고 주님께 배우라는 것입니다.
멍에는 주인이 소나 나귀를 자유자재로 통제하기 위해 쓰는 도구입니다.
주인이 멍에를 움직이면 짐승은 자신이 어느 곳으로 가야 할지,
언제 가야 할지, 얼마나 빨리 얼마나 멀리 갈지, 알게 됩니다.
그러므로 멍에는 짐승이 알아야 할 모든 것을 일러줍니다.

예수님의 멍에를 메라는 말씀은 주님의 말씀을 따라 살라는 것입니다.
내 고집과 내 생각 내 계획대로 무작정 살지 말고 주님의 뜻대로 살라는 것이지요.
나를 향하신 주님의 그 뜻을 바로 깨닫기 위하여 우리는 주님께 배워야 합니다.
"내게 배우라"--"learn from me"--는 말씀을
"내 학교에 등록하라"--"enroll in my school"--로 번역하기도 합니다.
예수 학교에 등록해서 우리를 향하신 주님의 선한 뜻을 힘써 배우라는 뜻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의 생각은 짧고 우리의 계획은 어리석지만
주님의 생각과 주님의 계획은 치밀합니다.
내 생각, 내 뜻, 내 고집, 내 계획대로 살면 참 안식이 없습니다.
우리의 영혼은 바람 잘날 없이 흔들리고 불안합니다.
오직 주 예수님께 나침반을 고정하면 우리의 인생 항해는 안전할 것입니다.
수고와 무거운 스트레스 한 가운데에서도 참 안식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셋째로, 주님의 멍에는 쉽고 가볍습니다.
유대의 종교 지도자들이 안식일에 대하여 만든 율법 조항들은 너무나 어렵고 무거웠습니다.
보통 사람들이 지키기에는 너무 숨이 막히고 힘든 일이었습니다.
율법의 멍에는 사람들을 낙심시키고 지치게 만들지만 예수님의 복음은 쉽고 가볍습니다.

여러분, 한번 생각해보세요.
이 세상에서 가장 쉽게 구원받는 길이 무엇입니까?
예수님을 믿기만 하면 되는 것이 아닙니까?
"착하게 살라, 양심적으로 살라, 구제를 많이 하라, 이렇게 해야지만 구원을 받는다."
기독교는 이렇게 가르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기독교는 결코 어려운 종교가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기만 하면 됩니다!
예수님의 멍에는 쉽고 가벼운 것입니다.

휴가철이 되었습니다.
이미 휴가를 다녀온 분들도 있고 앞으로 다녀 올 분들도 계실 것입니다.
여러분의 휴가가 잠시 쉬는 휴식이 아니라
주님 안에서 편안히 안심하고 쉴 수 있는 안식이 되길 바랍니다.

또한 온갖 스트레스 속에 살면서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졌습니까?
예수님께서 우리를 편히 쉬게 해주신다고 부르십니다.
그 예수님의 초청에 "아멘!"으로 응답해서 예수 학교에 등록하여,
그 쉽고 가벼운 예수의 멍에를 메고 예수님의 진리를 배워서
참 안식을 누려보시지 않으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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