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상에서 실상으로 (계 2:8-11)
본문
'알 카에다'하면 모두가 공포를 느낍니다. 이미 미국과 영국을 비롯한 여러 곳에서 끔찍한 사건을 일으켰습니다. 우리나라도 예외는 아닙니다. 우스개 소리로 '알 카에다'가 우리나라에 왔다가 세 가지 이유로 인해서 철수를 했다고 합니다. 첫째는, 휴대폰 카메라 때문이라고 합니다. 어디서나, 누구나 사진을 찍어서 보내기 때문입니다. 둘째는, 가스통을 배달하는 오토바이를 보고 놀랬다고 합니다. 셋째는, 국회를 폭파하고 국회의원들을 인질로 잡으려 했더니 국민들이 너무나도 좋아하는 모습을 보면서 스스로 철수를 했다고 합니다. 지구촌 전체가 공포와 긴장 속에서 살고 있습니다. 안전지대에 사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언제, 어디에 폭발과 지진과 해일이 일어날지 누구도 모릅니다.
오늘 본문의 서머나 교회는 빌라델비아 교회와 함께 칭찬만 받았습니다. 유대인들의 핍박과 극악한 황제 숭배 강요 가운데서도 신앙을 지킨 대표적인 교회입니다. 서머나 교회는 건전했고 영적으로 성숙해 있었고 믿는 성도로서의 사명에 충실하였습니다. 핍박자들에 의해 강탈과 압수를 당함으로 경제적으로는 심히 어려운 상태였으나 영적으로는 건강한 상황이었습니다. 고난은 극도로 심하였으나 신앙은 더욱 정금같이 깨끗하고 순수하였습니다. 현재 당하고 있는 환난과 핍박을 두려워하지 말고 오히려 주님의 일에 더욱 충성하며 그 환난의 너머에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섭리를 바라보아야 합니다. 오늘도 국제적, 국가적, 가정적, 교회적, 개인적, 신앙적으로 여러 가지 어려움이 많지만 사탄이 기뻐하는 허상은 다 깨뜨려 버리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실상의 성도들이 다 되시기를 축원 드립니다.
1.부요한 성도
본문 9절"내가 네 환난과 궁핍을 아노니 실상은 네가 부요한 자니라 자칭 유대인이라 하는 자들의 훼방도 아노니 실상은 유대인이 아니요 사단의 회라"
'환난'은 신앙으로 말미암아 받는 외부적 핍박을 말합니다. '궁핍'은 외적 핍박으로 생긴 물질적인 빈곤을 나타냅니다. 환난과 핍박은 그리스도인들이 황제 숭배를 거절함으로 당한 경제적 제재나 적대 감정을 가진 유대인이나 다른 사람으로부터 당한 경제적 어려움을 가리킵니다. 서머나 도시 자체는 부요한 도시였습니다. 그러나 서머나 교회는 온갖 핍박으로 인해 실제적으로 궁핍하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리스도께서는 서머나 교회를 부요하다고 인정하셨습니다. 이것은 육신적으로는 부요하나 내적, 영적으로 궁핍했던 라도디게아 교회와 정반대입니다. 성도들 가운데서도 외적으로는 부요하나 영적으로는 가난하고, 반면에 외적으로는 궁핍하나 내적, 영적으로는 깨끗하고 부요한 성도들이 많이 있습니다.
프랜시스 젠킨스 올코트가 각색한 전래동화에는 젊은 엄마와 어린 딸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젊은 엄마가 어린 딸과 함께 산딸기를 따기 위해 숲 속으로 향했습니다. 그들이 산등성으로 올라가는 도중에 갑자기 앞에 있던 큰 바위가 갈라지며 동굴이 나타났습니다. 놀라서 눈이 휘둥그레진 그들 앞에 눈부시게 하얀 옷을 입은 요정이 나타나 웃으면서 말했습니다.
"안으로 들어와 보물을 구경하세요. 전 당신들을 해치려는 게 아니랍니다."
동굴 안에는 수천 개의 금화가 가득 쌓여 있었습니다.
"당신이 집을 수 있을 만큼의 금화를 가져가세요. 그건 당신 것이에요."
요정이 말했습니다. 젊은 엄마는 한 손으로 딸의 손을 잡고 다른 손으로 금화 한 움큼을 쥐어 주머니에 넣었습니다. 순간 욕심이 발동한 그녀는 딸의 손을 놓고 두 손으로 금화를 움켜쥔 다음 황급히 동굴을 빠져 나왔습니다. 그녀가 동굴 밖으로 나오자마자 갑자기 동굴 벽이 닫히기 시작했습니다.
"어리석은 여인이여, 금화에 눈이 어두워 당신 딸을 두고 왔군요. 일년 후에 다시 오세요. 그럼 딸을 볼 수 있을 거예요."
그리고 문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습니다. 그녀는 울부짖으며 말했습니다. 다시 안으로 들어가려고 안간힘을 써보았지만 아무 소용이 없었습니다. 그녀는 울며 통곡하다가 쓰러지고 말았습니다.
정확히 일 년 후, 젊은 엄마는 다시 동굴로 돌아왔습니다. 동굴 문이 활짝 열려 있었고, 요정이 입구에 앉아 있었습니다. 그 옆에 앉아 있던 그녀의 딸이 엄마를 보자마자 펄쩍펄쩍 뛰며 소리를 질렀습니다. "엄마, 엄마!"
"들어오세요.. 여기 있는 금화를 가져갈 수 있을 만큼 가져가세요."
요정이 말했습니다. 하지만 젊은 엄마는 딸을 향해 달려가 딸을 끌어안고 얼굴에 키스를 퍼부었습니다.
"난 금화 따윈 필요 없어요. 내 아이만 있으면 돼요."
이 이야기는 불행히도 우리 시대의 모습들을 비유하고 있습니다. 우리들 대부분은 이미 일궈놓은 부를 누릴 사이도 없이, 가족이나 친구들과의 관계를 생각할 겨를도 없이, 더 많은 물질을 추구하느라 너무나 바쁘게 살고 있습니다. 경제적인 목표를 달성하는 것도 물론 중요하지만 사람을 귀하게 여기며 사랑하는 것과 무엇보다도 하나님을 섬기고 영적으로 부요한 삶을 누리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우리 모두는 핍박과 우상 숭배를 극복해야 합니다. 결코 굴복하거나 좌절해서는 안 됩니다. 서머나 교회와 성도들처럼 환난과 훼방을 이기기를 바랍니다. 여러분의 경제적인 삶도 부요하기를 바랍니다. 더욱이 영적으로 더욱 깨끗하고 부요하기 바랍니다. 물질이나 금은보화로 인하여 신앙을 잃어버리는 불행이 있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을 더욱 잘 섬김으로 영육간에 더욱 부요한 성도들이 다 되시기를 축원 드립니다.
2. 충성하는 성도
본문 10절""네가 장차 받을 고난을 두려워 말라 볼지어다 마귀가 장차 너희 가운데서 몇 사람을 옥에 던져 시험을 받게 하리니 너희가 십일 동안 환난을 받으리라 네가 죽도록 충성하라 그리하면 내가 생명의 면류관을 네게 주리라"
본문은 장차 서머나 교인들이 받게 될 핍박의 내용입니다. 서머나 교인들을 핍박하는 것이 유대인이든 당시 정부이든 간에 그 핍박의 주체는 하나님을 대적하는 마귀였습니다. 마귀는 서머나 교인들을 시험하기 위해 몇몇 사람을 감옥에 넣을 것이었습니다. 고난과 순교를 각오해야 합니다. 황제 숭배를 거부한 서머나의 초대 감독 폴리갑(Polycarp)이 있습니다. 그는 서머나의 12번째 순교자로 86세에 화형을 당했습니다. '가이사는 주'라고 한번만 고백하면 살려주고 부귀영화를 누리도록 하겠노라는 로마 총독의 권유에 폴리갑은 '86년간 단 한번도 예수님은 나를 섭섭하게 하시지 않았는데 내 어찌 나를 구속하신 내 왕을 욕하겠소'라고 대답하고는 담대히 화형장으로 들어가 찬송하며 순교를 하였습니다. 이처럼 동족의 핍박과 로마 제국의 박해가 제아무리 극심하다 해도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신실한 사랑을 져버리지 않고 죽음의 골짜기를 걸어갔던 순교자들이야말로 참생명의 길을 선택한 자들입니다. 잠시 더 살기 위해서 영원한 생명과 생명의 면류관을 포기하는 사람은 가장 미련하고 불행한 사람인 것입니다.
이솝우화에 나오는 한 가난한 소년의 이야기가 있습니다. 소년은 돈을 빌려 수백 개의 달걀을 산 후 배를 타고 카이로로 갑니다. 배를 타고 강을 건너가는 동안, 소년은 누워 공상에 잠깁니다.
'카이로 시장에 도착하면, 먼저 달걀을 팔아야지. 그리고 남은 돈으로 좋은 옷감을 사서 집으로 오는 거야. 그럼 여자들이 몰려들어 그 옷감을 사겠지. 옷감을 판돈으로 빚을 갚고, 나머지 돈으로 암양 한 마리를 사야겠다. 양을 잘 기르면 새끼 양을 적어도 두 마리는 낳게 될 거야. 그럼 그 암양과 새끼 양을 팔아 암소 한 마리를 사야지 암소가 송아지를 낳은 다음, 그 두 마리를 팔면 하인을 고용할 만큼 큰돈이 생길 거야. 그럼 이거 해라! 저거 해라! 이리 와라! 저기 가라! 하고 부려먹을 수 있겠지. 그 하인이 말을 안 들으면, 엉덩이를 걷어차야지. 그래, 이렇게…'
공상에 사로잡힌 소년은 하인의 엉덩이를 걷어차는 흉내를 내다가 실수로 그만 달걀이 든 바구니를 걷어차고 맙니다. 바구니는 나일강으로 풍덩 빠집니다. 달걀은 순식간에 강물 속으로 사라지고, 소년의 꿈은 산산이 부서지고 맙니다.
말만 많고 공상만 하는 사람들은 큰 일을 못합니다. 복잡하고 혼란만 있을 뿐입니다. 하나님 나라와 교회에는 '죽도록 충성하는 사람'이 필요합니다. 충성하는 척하는 허상에 사로잡힌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정말로 죽도록 충성하는 실상의 성도들이 많아야 합니다. 고난과 방해와 어려움 가운데서도 주님이 인정하시는 '죽도록 충성하는 성도'가 꼭 되시기를 축원 드립니다.
3. 생명의 면류관을 받는 성도
본문 10절"네가 장차 받을 고난을 두려워 말라 볼지어다 마귀가 장차 너희 가운데서 몇 사람을 옥에 던져 시험을 받게 하리니 너희가 십일 동안 환난을 받으리라 네가 죽도록 충성하라 그리하면 내가 생명의 면류관을 네게 주리라"
'생명의 면류관'은 죽기까지 신앙을 버리지 않고 신앙의 정절을 지킨 자에게 주어진 상급입니다. '면류관'에 해당되는 헬라어는 두 가지로 나타납니다. '디아 데마'는 왕관을 의미합니다. '스테파노스'는 운동 경기에서 승리자에게 주어진 '승리의 관'을 의미합니다. 본문에 사용된 면류관은 '승리의 관'으로 운동 선수가 경기에서 끝까지 싸워 승리하듯이 온갖 핍박에서 신앙의 정절을 지킨 자에게 주어지는 상급을 가리킵니다. 성경은 '생명의 면류관'(약1:12) 외에도 '썩지 않는 면류관'(고전9:25), '자랑의 면류관'(살전2:19), '의의 면류관'(딤후4:8), '영광의 면류관'(벧전5:4) 등을 그리스도인이 받을 상급으로 진술하고 있습니다. 믿음을 지키고 죽도록 충성한 성도들에게 주님이 씌워 주십니다. 이 순간을 위해서 믿고 충성하고 순교를 하는 것입니다.
'The Tale of Three Trees(세 나무 이야기)'라는 멋진 책이 있습니다. 올리브나무와 떡갈나무, 소나무의 원대한 꿈을 이야기하고 있는 동화입니다. 이들 나무는 각자 특별한 존재가 되겠다는 큰 꿈을 품고 있었습니다. 올리브나무는 정교하고 화려한 보석 상자가 되어 그 안에 온갖 보물을 담는 꿈을 꾸었습니다. 어느 날 나무꾼이 숲의 수많은 나무 중에서 그 올리브나무를 선택하여 베었습니다. 올리브나무는 아름다운 보석 상자가 될 기대에 부풀었지만, 더럽고 냄새나는 짐승의 먹이를 담는 구유가 되었습니다. 가슴이 무너져 내리고 꿈이 산산조각 났습니다. 자신은 가치가 없고 천한 존재라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떡갈나무도 위대한 왕을 싣고 바다를 건널 거대한 배의 일부가 되겠다는 꿈에 부풀어 있었습니다. 그래서 나무꾼이 자신을 베었을 때 흥분을 감추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갈수록 나무꾼이 자신으로 조그만 낚싯배를 만들고 있음을 알았습니다. 떡갈나무는 슬픔의 눈물을 흘렸습니다.
높은 산의 꼭대기에 사는 소나무의 유일한 꿈은 언제까지나 높은 곳에 버티고 서서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위대한 창조 섭리를 일깨워 주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순식간에 번개가 치더니 소나무를 쓰러뜨리면서 그 꿈을 빼앗아 버렸습니다. 얼마 후에 나무꾼이 쓰러진 소나무를 가져다가 쓰레기 더미에 던져 버렸습니다.
세 나무는 모두 자신의 가치를 상실했다는 생각에 크게 실망했습니다. 세 나무의 꿈은 모두 사라졌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다른 계획을 갖고 계셨습니다. 오랜 세월이 흘러 마리아와 요셉이 아이를 낳을 곳을 찾지 못해 헤매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마침내 마구간을 발견했고, 아기 예수가 태어나자 구유에 눕혔습니다. 이 구유는 바로 그 올리브나무로 만든 것이었습니다. 올리브나무는 귀중한 보석을 담고 싶었으나 하나님은 더 좋은 계획을 갖고 계셨습니다. 올리브나무는 이 세상에서 가장 귀한 보물인 하나님의 아들을 담게 되었습니다.
시간이 흐를수록 예수님은 키와 지혜가 자랐습니다. 어느 날 예수님은 호수 건너편으로 건너가기 위해 크고 멋진 배가 아닌, 작고 초라한 낚싯배를 선택하셨습니다. 이 낚싯배는 그 떡갈나무로 만든 것이었습니다. 떡갈나무는 위대한 왕을 태우고 바다를 건너고 싶었으나 하나님은 더 좋은 계획이 있으셨습니다. 이제 떡갈나무는 만왕의 왕을 태우게 되었습니다.
또 몇 년이 흘렀습니다. 몇몇 로마 병사들이 그 소나무가 버려진 쓰레기 더미에서 뭔가를 부지런히 찾고 있었습니다. 이에 소나무는 곧 땔감 신세가 되겠거니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놀랍게도 병사들은 소나무를 작은 두 조각으로 쪼개 십자가를 만들었습니다. 그리하여 그 소나무에 예수님이 매달리시게 되었습니다. 이 소나무는 오늘날까지도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사랑과 연민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 이야기의 핵심은 이렇습니다. 세 나무는 모두 자신의 가치를 상실했다고 여기서 다 끝났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결국 이 나무들은 이 세상에서 가장 놀라운 이야기의 중요한 부분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가치와 잠재력을 아십니다. 우리는 지금 일어나고 있는 일을 다 알지 못합니다. 하지만 하나님이 우리 삶을 다스리시고 위대한 계획과 목적을 가지고 계시니 고개를 높이 듭시다. 우리가 원하는 그대로 인생이 펼쳐지지 않더라도 성경은 하나님의 방법이 우리의 방법보다 훨씬 더 좋고 뛰어나다고 말합니다. 심지어 다른 모든 사람이 우리를 거부해도 하나님이 우리 앞에서 그 전능하신 팔을 넓게 펴고 계심을 명심합시다. 하나님은 언제나 우리를 영접하시고 우리의 가치를 인정해 주십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소중한 자녀입니다. 우리가 어떤 삶을 살았든지, 얼마나 많은 실망을 경험했든지, 하나님이 보시기에 우리의 가치는 항상 처음과 똑같습니다. 하나님이 보시기에 언제나 우리는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만큼 귀한 존재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절대 포기하지 않으시니 스스로 포기하지 맙시다. 하나님은 우리가 충성한 모든 것을 알고 계시며 족히 비교할 수 없는 영광과 상급으로 반드시 보답하십니다. 빠르고 짧은 인생을 하나님 나라와 상급을 위해 준비하고 투자합시다. 생명의 면류관이 실상으로 나타날 것입니다.
사랑하는 번동가족 여러분!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고 있습니다. 휴식과 재충전을 위한 휴가철입니다. 서머나 교회와 성도들처럼 신앙생활을 잘 하여 부요한 성도, 충성하는 성도, 생명의 면류관을 받는 성도가 되시기를 축원 드립니다.
(김 정 호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