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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자신과의 싸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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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자신과의 싸움(66)

본문: 시편 56편 1-13절

아베베는 로마 올림픽과 동경 올림픽 마라톤을 2연패한 최초의 선수였습니다. 어느날 한 신문기자가 아베베 선수에게 우승비결을 물었습니다. 아베베 선수는 한참 잠자코 있다가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별다른 비결이라고는 없습니다만 나는 남과 경쟁하여 이긴다는 것보다는 자기자신의 고통을 이겨내는 것을 언제나 생각하고 있습니다."
마라톤은 대단히 고된 운동이기 때문에 숨이 차고 터질 듯이 뜁니다. 때로는 몸이 너무 무거워서 고통스러울 때도 있습니다."
그럴 때마다 자신의 컨디션을 가다듬어 평소와 같이 뛰어야 합니다. 나 자신의 고통과 괴로움에 지지 않고 마지막까지 달렸을 때 그것이 승리로 연결되었습니다."
진정한 승리는 다른 사람과의 경쟁에서 얻어낼 수 있는 것이 아니며 자기자신과의 싸움에서 이겼을 때 비로소 얻어낼 수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자기를 다스려 이기는 자만이 참 기쁨을 맛볼 수 있습니다.
얼마전 뉴욕마라톤대회에서 만 하루가 넘는 31시간9분을 달려 42.195㎞를 완주한 여성 마라토너 조 코플로비츠를 보십시오. 이 여성은 정상인이 아니어서 우리의 가슴을 더욱 뭉클하게 합니다.그녀는 25년전 중추신경계 퇴행성 질환인 다발성경화증에 걸려 간신히 팔다리를 움직이는 중증 장애인입니다.지팡이를 짚고 겨우 겨우 한 걸음씩 내디뎠을 그녀를 상상해보십시오. 얼마나 고통스러웠을까요.중도에서 포기하고 싶은 생각이 수없이 들었을 것입니다.그러나 그녀는 온몸을 압박하는 고통을 `나를 다스려 이기자'는 정신으로 극복했습니다.혹시 지금 자신이 처한 어려움 때문에 삶을 포기하거나 대충 살려고 하는 사람이 있다면 이 여성을 기억하길 바랍니다.자신의 마음을 다스려 새로운 삶을 설계해보세요. 정상적인 신체조건을 갖고 있는 사람,나보다 좋은 환경에 있는 사람들보다 인생의 목적지에 늦게 도달할지도 모릅니다.하지만 기쁨의 강도는 그들보다 더 클 수 있습니다.조 코플로비츠는 다른 마라톤선수들보다 하루 이상 늦은 시간에 결승선에 도착했습니다.그러나 그녀는 매우 기뻐했습니다.결승선에서 마음을 졸이며 기다리고 있던 60여명의 친구들은 그녀를 1등보다 더 환영했습니다.또 미국 전역의 스포츠팬들이 그녀의 의지에 감탄했습니다.마라톤선수들도 힘들어 도중에 포기하는 경우가 많은데 그녀는 끝까지 달린 것입니다.인생을 살면서 꼴찌보다 더 무서운 게 쉽게 포기하는 것입니다.포기하지 않기 위해선 먼저 자신의 마음을 다스리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진정한 강함은 자기 자신과의 싸움에서 나옵니다. 자기 자신과 싸워 이긴 사람이 진정한 승리자입니다. 자신과의 싸움은 결코 한번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일회성이 아닙니다. 일생에 걸친 싸움입니다. 흔들려도 끝까지 가는 고독한 싸움입니다.
몇 개원전에 한 유명한 젊은 여배우가 자살했습니다. 얼마든지 세상은 살만한 곳인데 안타까운 일입니다. 그 소식을 듣고 이 시대에 자기를 극복하며 산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생각했습니다. 역사상 위대한 사람들은 다 자기를 극복했던 사람들이었습니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다윗도 자기를 극복했던 사람이었습니다.
본문의 표제를 보십시오. “다윗의 믹담 시, 영장으로 요낫 엘렘 르호김에 맞춘 노래, 다윗이 가드에서 블레셋 인에게 잡힌 때에”라고 되어 있습니다. 여기에서 ‘믹담’이란 ‘금언’이란 뜻입니다. 즉 이 시는 다윗이 평생 동안 금언처럼 여겼던 시로, 다윗이 가드로 피신 갔다가 블레셋 사람에게 잡혔을 때를 회상하며 쓴 다윗의 신앙고백이 담긴 시입니다. 왜 다윗이 블레셋 땅 가드로 피신을 갔습니까? 사무엘상 17장에서 다윗이 골리앗을 물리치자 다윗은 이스라엘의 최고 인기 스타가 됩니다. 사울 왕도 다윗의 인기를 따를 수 없었습니다. 사람들은 “사울은 천천이고 다윗은 만만이다”라고 소리쳤습니다. 그 인기가 문제였습니다. 결국 사울 왕의 미움을 받아 다윗은 끊임없는 피신 길에 오르게 됩니다. 그러다가 어느 날, 블레셋 지역의 땅인 가드의 아기스 왕에게 피난을 갔습니다. 그러나 가드에서 그는 철저히 자존심이 무너지는 경험을 합니다. 그때 신하들이 아기스 왕에게 다윗에 대해 모함을 했습니다. “다윗은 이스라엘의 최고 인기 스타인데 왜 망명을 오겠습니까? 망명을 온 것이 아니라 정탐을 왔을 것입니다.” 그러자 다윗은 자기 생명이 위험한 줄 알고 대문짝을 그적거리고, 수염에 침을 흘리며 미친 척을 했습니다. 그러자 아기스는 “저 미치광이를 내 집에서 쫓아내라!”고 해서 위기를 모면하게 됩니다. 그때를 회상하면 할수록 자존심이 상하고 우울해지고 견딜 수 없었지만 그는 결국 자기를 극복하고 이스라엘의 가장 위대한 왕이 됩니다. 다윗이 어떻게 자기를 극복할 수 있었습니까? 오늘 본문의 시편은 자기를 극복하는 6가지 길을 우리들에게 가르쳐 줍니다.

1. 하나님을 바라보십시오.
다윗이 왜 블레셋에서 자존심이 무너지게 되었습니까? 다윗의 결정적인 잘못이 무엇입니까? 무엇보다 블레셋으로 피신했던 것 자체가 잘못이었습니다. 블레셋은 세상을 상징합니다. 힘들다고 세상으로 나가면 더욱 큰 환난과 수치를 당하게 됩니다. 결국 다윗은 아기스 왕 앞에서 자존심이 완전히 무너졌습니다. 목숨을 부지하기 위하여 침을 수염에 흘리면서 미친 척까지 해야 했습니다. 그 수치스러운 일이 성경에까지 기록되었으니 얼마나 비참합니까? 자존심이 완전히 벗겨진 알몸 인생이 되었습니다. 그런 과거를 가지고 앞으로 살아가려니까 삶이 두려웠을 것입니다. 그 수치심과 두려움을 어떻게 극복했습니까?
본문 3절 말씀을 보십시오. “내가 두려워하는 날에는 주를 의지하리이다.” 다윗은 자신의 두려움을 하나님의 의지하고 바라봄으로 극복했습니다. 사실 두려움은 대개 실체가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마틴 루터 킹 목사님은 말했습니다. “공포가 문을 두드릴 때 믿음으로 문을 열면 문밖에는 아무도 없다.”
두려움은 훈련됩니다. 두려워하면 두려움이 커집니다. 그러나 믿음도 훈련됩니다. 믿음으로 맞서면 믿음도 점차 커지게 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뒤에 있는 애굽 군대를 보면서 불평과 원망을 늘어놓았을 뿐만 아니라 또한 앞에 있는 홍해 바다를 보면서 두려움에 꼼짝 못하고 있었습니다. 앞뒤가 불평과 두려움으로 꽉 막혀 있었습니다. 이때 모세가 보여준 신앙적 행위는 참으로 아름답습니다. 앞뒤를 보거나 좌우로 사람의 도움을 찾은 것이 아니라 위를 보았습니다. 하나님께 기도했다는 말입니다. 그랬더니 홍해가 갈라지고 이스라엘 백성들이 맨땅을 건너듯이 다 건너갔습니다. ‘위를 바라보는 신앙’이 승리를 하는 순간입니다. 과거의 불평과 원망뿐만 아니라 홍해의 두려움까지 싹 쓸어 가버렸습니다. 이것이 미래의 승리를 바라보는 결단입니다. 막연한 미래 때문에 두려워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을 보시기 바랍니다. 바로 그 신앙에 감사가 있고, 용기가 있고, 소망이 있고 하나님의 구원이 있습니다.
"내가 네게 명한 것이 아니냐? 마음을 강하게 하고 담대히 하라. 두려워 말며 놀라지 말라.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네 하나님 나 여호와가 너와 함께 하느니라 하시니라." (여호수아1:9)
두려움은 실체가 없는 것입니다. 다 마음의 문제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믿음의 훈련을 하고 두려움을 주는 것은 최대한 멀리해야 합니다. 점집에 가서 동자 귀신, 장군 귀신의 눈동자 돌아가는 모습을 신기하다고 쳐다보지 말아야 합니다. 공포영화를 멀리하고, 소름이 돋는 얘기를 멀리해야 합니다. 그런 것을 보고 그런 얘기를 들으면 영혼의 방어벽이 현저하게 약화되기 때문입니다. 대신에 믿음의 말은 많이 들어야 합니다. 믿음은 훈련됩니다. 계속 믿음의 생각을 하고, 믿음의 말씀을 듣고, 믿음의 말을 하면 두려움과 공포는 사라질 것입니다. 때로 큰 문제를 만나도 두려워하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문제보다 크십니다. 환경을 바라보지 말고 하나님을 바라보면 하나님은 우리의 실수와 실패도 다 좋은 체험으로 승화시켜주실 것입니다.

2. 말씀을 높이십시오.
세계 제 2차 대전 때에 전투기 조종사로 복무한 조지아 주의 로움이라는 곳에서 시무하던 레이니어 목사의 회고담이 있습니다. 목사님은 켈리 비행장이라는 곳에서 훈련을 받았는데 처음으로 비행기의 조종석에 올라타서 그 많은 계기들을 바라보고 있는 그에게, 교관은 그 계기들 한 개 한 개를 가리키면서 그것들이 모두 무슨 역할을 하는지를 설명해 주었습니다. 그리고 엄숙한 표정으로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내 말을 신중하게 들어라. 너는 이 계기들을 철저히 믿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비행기가 너를 죽일 것이다.” 그리고 다시 한 번 이렇게 말했습니다. “너는 너의 느낌을 믿지 말고 저 방향계를 믿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너의 목숨을 잃게 될 것이다.” 목사님은 그 후 언젠가 밤에 혼자서 비행을 하게 되었는데 폭풍우 속으로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어느 순간 그의 느낌에 오른 쪽 날개가 너무 낮아진 것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오른쪽 날개를 올렸는데 순간 계기판을 보았을 때 등줄기에 식은땀이 흘렀습니다. 비행기는 거꾸로 날면서 엉뚱한 방향으로 가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는 곧 계기를 보고 비행기를 바로 잡았습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오직 하나님의 말씀만이 우리 삶의 바른 계기판이 됩니다.
"말씀을 멸시하는 자는 패망을 이루고 계명을 두려워하는 자는 상을 얻느니라"(잠13:13)
본문 4절에서 다윗은 이렇게 고백하고 있습니다. “내가 하나님을 의지하고 그 말씀을 찬송하올지라.” 여기서 ‘그 말씀’이란 하나님께서 자신과 함께 하시겠다는 약속의 말씀을 의미합니다. 다윗은 자신이 약해지고 흔들릴 때마다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생각하고 용기를 얻었습니다. 우리도 말씀을 앞세우고 말씀을 높이는 삶을 살면 우리는 어떤 시련이나 어떤 사람의 말에도 흔들리지 않고 살 수 있습니다.
사람이 언제 가장 많이 불안에 빠집니까? 자신의 단점을 보였을 때 “다른 사람이 나를 어떻게 생각할까? 나에 대해 어떻게 말할까?”하는 염려를 할 때 가장 많이 불안에 빠집니다. 그러나 나의 단점을 보여주는 것이 인간관계에서 꼭 마이너스만은 아닙니다. 그것 때문에 나와 상대방은 더 조심하게 되고, 더 성숙하게 될 수 있습니다. 또한 대적은 나의 단점을 보고 방심하기 때문에 승리의 기회는 더 커질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단점 노출이 꼭 나쁜 것만은 아닙니다. 우리는 남의 시선에 내 영혼을 맡기지 말고, 남의 말에 내 영혼을 맡기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전폭적으로 신뢰하되 사람의 말은 가려서 들으면 됩니다. 사람의 말이 얼마나 곡해되는지 모릅니다(5절). 사단의 장기가 사람 사이의 말을 곡해하는 것입니다. 그 곡해한 말에 내 영혼이 흔들릴 필요는 없습니다.
오해가 심할 때는 변명도 필요 없고, 핑계도 필요 없고, 설득도 필요 없습니다. 그때에는 내 입과 귀에 하나님의 말씀이 가득 차도록 해야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오해를 풀 수 있는 기회를 주시고, 우리의 영혼은 더욱 빛나게 될 것입니다.
전자제품이 작동하려면 전류가 입력단자로 들어가 전선을 따라 순환하고 출력단자로 나오는 일이 계속되어야 합니다. 마찬가지로 사람의 영혼을 활력 있게 만드는 영적 전류가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그때 말씀의 입력단자는 귀이고, 출력단자는 입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이 귀로 들어가게 하고, 하나님의 말씀이 입으로 말씀이 나오게 하면 그 사람의 영혼에 불이 켜지면서 가장 활력이 넘치는 성령 충만한 영혼이 될 것입니다.
사람이 자기 입으로 무엇을 자랑하는가 하는 것에 그 사람의 사람됨이 나타나 있습니다. 가끔 보면 시시한 것을 자랑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사람들은 그것을 열등감의 표시로 봅니다. 그러나 우리가 하나님을 자랑하고 말씀을 높일 때 사람들은 우리의 영혼의 무게를 느끼게 됩니다. 그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높이는 사람은 결코 사람의 말에 비천하게 되지 않을 것입니다.

3. 눈물을 많이 흘리십시오.
참 신앙은 하나님 앞에서 늘 나 자신을 돌아보는 것입니다. 주님은 나를 위해 눈물을 흘리시고, 십자가 지셨는데 나는 과연 어떤 삶을 살아가고 있는가? 자성하고 허물과 죄악을 눈물로 회개해야 됩니다. 그리고 나 자신의 연약함을 도우셔서 험악한 세상에서 승리할 수 있도록 눈물로 간절히 기도해야 됩니다. 마리아의 눈물을 아시죠. 예수님의 발에 향유를 붓고 머리털로 씻으며 감사 감격의 눈물을 흘린 여인입니다. 그 눈물이 그 인생을 아름답게 만들었습니다. 밧세바를 범하고 우리야 살인 교사를 했던 다윗! 그가 회개의 눈물을 흘리자 하나님은 그를 새롭게 하시고 성군으로 만들어주셨습니다. 왕하 20장과 이사야 38장5절에서 히스기야 왕이 죽을병에 걸렸을 때 눈물을 쏟으며 기도하였더니 하나님께서는 히스기야의 눈물을 보시고 15년 동안 생명을 연장시켜 주셨습니다. 눈물의 기도는 죽을병에서도 살아나는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나는 것입니다. 이처럼 하나님 앞에 흘리는 눈물은 인생을 변화시킵니다.
본문 8절 말씀을 보십시오. “나의 유리함을 주께서 계수하셨으니 나의 눈물을 주의 병에 담으소서 이것이 주의 책에 기록되지 아니하였나이까.” 다윗은 하나님께서 자신의 환난을 하나까지 다 세시고, 자신의 눈물 한 방울도 주의 병에 담을 정도로 헛되게 하지 않으신다고 고백했습니다. 왜 하나님께서 다윗의 환난과 눈물을 다 기억하십니까? 큰 상급으로 갚아주시기 위해서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거룩한 눈물을 많이 흘려야 합니다.
눈물에는 거짓과 헛됨이 없습니다. 눈물을 흘린 만큼 상처 치유의 역사가 나타나고, 사람을 움직이고, 하나님을 움직일 수 있습니다. 오늘날 가장 큰 문제는 눈물이 마른 것입니다. 우리는 눈물이 있는 교회, 눈물이 있는 성도가 되어야 합니다.
나라와 민족을 위한 눈물이 있어야 하고, 어려운 이웃을 위한 눈물이 있어야 합니다. 선교사들을 위한 눈물이 있어야 하고, 나의 죄 때문에 흘리는 눈물이 있어야 하고, 주님의 은혜를 생각하는 눈물이 있어야 합니다. 그 눈물은 한 방울도 헛됨이 없이 주님의 눈물 병에 담기고, 결국 그 눈물 후에 기쁨으로 단을 가지고 돌아오는 역사가 있게 될 것입니다.
주님은 십자가에서 “다 이루었다!”고 하셨습니다. 그 선언이 있기까지 주님이 흘렸던 피와 땀과 눈물을 기억해야 합니다. 주님은 정말 행복하게 사셨습니다. 주님은 “내가 이 일을 원한다!”는 삶을 살지 않고 “하나님이 이 일을 원하신다!”는 삶을 사셨습니다. 그래서 피와 땀과 눈물이 있었지만 그래도 가장 행복하게 사셨습니다.
특별히 눈물은 노력을 상징합니다. 우리는 최선을 다해 노력해야 합니다. 행복은 눈물에 비례합니다. 게으른 사람은 행복할 수 없습니다. 땀과 눈물을 가진 사람은 행복하게 될 것이고, 이미 행복한 사람입니다.
성공자와 실패자의 가장 큰 차이는 무엇일까요? 사실 성공자와 실패자는 학력, IQ, 성격 등에서 별로 큰 차이가 없습니다. 진짜 큰 차이는 생각과 사는 태도에서 차이가 납니다. 게으르면 대개 실패하고, 부지런하면 대개 성공합니다.
성공자는 기도실과 연구실도 좋아하지만 대개 사람도 잘 챙깁니다. 부지런히 사람에게 관심을 표합니다. 보통 사람은 귀찮아서 안 합니다. 그런데 성공의 기회는 대개 다른 사람을 통해서 오기 때문에 사람에게 깊은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대화가 서투르면 이메일을 이용하면 됩니다. 열심히 나의 팬을 만들어야 합니다. 인맥이 참 중요한 시대가 되었습니다.
무엇이든지 노력과 관심이 없으면 성공할 수 없습니다. 몸도 부지런해야 하지만 머리도 부지런해야 합니다. 열심히 노력하고 연구해서 자신의 강점을 키우고, 핵심역량을 키워야 합니다. 내가 공동체를 위해 어떤 성과를 낼 것인가를 생각하고, 미래를 읽어내는 안목을 키우고, 미래에 내가 어떤 위치에 설 것인가에 대한 그림을 계속 그려야 합니다.
때로는 자기 마케팅도 필요합니다. 자기만의 노하우가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잊지 말아야 할 것은 “내가 거룩한 사역에 공헌하려는 마음을 가지고 있는가, 그리고 실제로 공헌하고 있는가?”를 항상 생각해야 합니다. 그런 모든 일에 눈물이 있어야 합니다. 그냥 아무 생각 없이 살면서 행운이 찾아오기를 바라지 말아야 합니다.
특별히 우리는 새벽 시간의 정복자가 되어야 합니다. 우리가 하루의 첫 시간을 말씀과 기도로 시작하면서 하나님께 매달리면 하나님께서 자기 마케팅 전략도 알려주실 것이고, 자기만의 노하우를 가지는 길도 보여주실 것이고, 성공의 중요한 자산인 온유함과 담대함도 주실 것이고, 인맥도 만들 수 있는 지혜를 주실 것입니다. 신맥이 튼튼하면 인맥은 반드시 따라올 것이고, 성공의 길과 자기 극복의 길도 활짝 열릴 것입니다.

4. 승리를 확신하십시오.
1955년 쉰 살이 넘은 나이에 흑인 최초로 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라하우스에서 관중을 열광시키며 감동적인 노래를 불렀던 여자 가수를 아십니까? 바로 ‘마리아 앤더슨’입니다. 공연 후 한 기자가 물었습니다. “흑인에 대한 편견과 차별 속에서 희망을 잃지 않고 세계 정상에 우뚝 설 수 있었던 비결이 무엇입니까?” 그녀는 하늘을 응시하더니 이렇게 대답합니다. “견디기 어려운 일에 부닥칠 때마다 언제나 제 시선은 고난과 부활의 예수님께로 향했지요. 그때마다 주님은 ‘내가 너를 사랑하노라’하고 말씀하셨어요.”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오늘도 당신을 사랑하십니다.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고 내주실 정도로 지극히 사랑하십니다. 바로 이 사랑 때문에 우리는 두렵지 않습니다. 평안합니다. 견딜 수 있습니다. 마침내 역경을 딛고 승리의 개가를 부르게 되는 것입니다. 진정 우리는 그 사랑으로 인하여 승리할 수밖에 없는 존재임을 잊지 마십시오.
다윗은 어떤 환경에서도 하나님의 도우심을 확신하고 승리를 확신했습니다. 본문 9절 말씀을 보십시오. “내가 아뢰는 날에 내 원수가 물러가리니 하나님이 나를 도우심인 줄 아나이다.” 우리가 성경 지식은 잘 몰라도 “하나님은 나를 도와주실 것이고, 나는 반드시 승리할 것이다!”라는 확신만은 잃지 말아야 합니다.
마귀의 가장 큰 일이 무엇입니까? 우리의 마음에 패배감을 심는 일입니다. “너는 이제 안 된다! 너는 이제 희망이 없다. 뒤에서 다 너를 욕한다. 사는 게 사는 게 아니다.” 그 마귀의 속삭임에 빠지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는 믿음으로 생각하고 믿음으로 고백해야 합니다.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다! 아직도 남은 것이 있다! 아직도 내게는 소중한 것이 있다! 가진 것이 없을 때 성공하면 진짜 성공이다. 진짜 성공을 이뤄보자! 하나님! 저에게 믿음과 용기와 지혜를 주소서!” 재주도 중요하고, 수단도 중요하고, 인맥도 중요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확신입니다.
독일의 대표적인 작가 헤르만 헤세는 어렸을 때 자폐증 환자였습니다. 성인이 되어서도 극도의 신경쇠약과 언어장애로 시달렸습니다. 그 고통을 통해서 더욱 아름다운 글을 쓸 수 있었습니다. 우리는 못한다고 하지 말아야 합니다. 부자의 꿈을 미리 포기하고 “부자가 되는 것은 나의 사명이 아니다!”라고 단정하지 말아야 합니다.
남 앞에 서면 얼굴이 붉어지는 증세를 적면증이라고 합니다. 저도 약간의 적면증이 있습니다. 적면증이 있는 사람은 대개 심장이 약하다고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도와주시면 약한 심장도 강심장으로 만들어주실 것입니다. 우리는 패배를 운명처럼 생각하지 말아야 합니다.
성공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의 얘기를 들어보면 맞는 얘기입니다. 반대로 성공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의 얘기를 들어봐도 맞는 얘기입니다. 다 맞는 얘기라면 우리는 성공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나가야 합니다. 성경은 일관적으로 하나님의 자녀는 성공할 수 있다고 합니다.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다.”고 했습니다. 우리는 그 말씀을 깊이 새기고 어떤 일이 있어도 낙심하지 말아야 합니다.
인내하고 나가면 축복의 때는 반드시 찾아오게 됩니다. 그때를 상상하면서 계속 준비하고 전진해야 합니다. 넘어졌을 때 포기하지 말아야 합니다. 스키를 탈 때 한두 번 넘어졌다고 포기하면 상급자가 될 수 없습니다. 넘어지면 더 큰 희망을 가지고 스키를 신어야 합니다. 말을 탈 때 한번 낙마했다고 포기하면 말을 잘 탈 수 없습니다. 그때 더 큰 희망을 가지고 말 등으로 올라타야 합니다.
이제 우리는 온갖 패배의식을 버려야 합니다. 자신을 놀라운 가능성을 가진 존재라고 믿어야 합니다. 스스로 안 된다고 하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이 도와주시면 무엇이든지 될 수 있고, 무엇이든지 얻을 수 있다고 믿어야 합니다.

5. 범사에 감사하십시오.
명문여대 4학년생이었던 이지선 양은 도서관에서 공부하다가 집에 돌아가는 길에 고통사고를 당했습니다. 전신 55%의 3도 중화상을 입고 7개월 동안 11차례나 수술을 받았습니다. 모두가 살 수 없다고 했지만 그녀는 기적적으로 살아났습니다. 비록 옛날의 얼굴이 아닌 일그러진 모습이지만 그 가운데에서도 주님의 크신 사랑을 깨닫고 온 세계를 다니며 하나님의 사랑을 전하며 행복하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녀는 말하기를 “짧아진 여덟 개의 손가락을 쓰면서 사람에게 손톱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알게 되었고, 1인10역을 해내는 엄지손가락으로 생활하고 글을 쓰면서 엄지손가락을 온전히 남겨주신 하나님께 감사했습니다. 눈썹이 없어 무엇이든 여과 과정 없이 눈으로 들어가는 것을 경험하면서 사람에게 작은 눈썹이 얼마나 필요한 것인지를 알았고 막대기처럼 돼버린 오른팔을 쓰면서 왜 하나님이 관절이 모두 구부러지도록 만드셨는지 깨달았습니다.”라고 했습니다. 저는 이 이야기를 읽으면서 “내 안에는 묻혀있는 감사의 조건들 즉 깨닫지 못한 하나님의 은혜가 얼마나 많은가!”하고 생각했습니다. 결코 짧지 않은 세월을 살아오면서 단 한번도 손톱을 두고 감사하거나, 눈썹을 두고 감사하거나, 불편 없이 접히고 펴지는 관절을 두고 하나님께 감사한 적이 한번도 없었기 때문입니다.
본문 12절 말씀을 보십시오. “하나님이여 내가 주께 서원함이 있사온즉 내가 감사제를 주께 드리리니.” 다윗은 고통 중에서도 한 가지 서원을 했습니다. 그것은 “이제 어려움이 있어도 블레셋 땅으로 가지 않고, 무엇보다 감사하는 삶을 살겠다”는 서원이었습니다.
사람의 상처를 아물게 하고, 수치심을 덮어주고, 불행한 생각의 바이러스를 박멸하는 가장 위대한 명약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용서와 감사입니다. 그래서 행복하게 사는 사람들을 보면 대개 감사하는 사람들입니다. 이 세상에서 제일 매력 없는 사람은 핑계하고 불평하는 사람입니다. 그런 식으로 살면 주변 사람들이 다 도망가 버리고 그러면 성공할 수도 없고 행복할 수도 없습니다. 반면에 이 세상에서 제일 매력적인 사람이 있습니다. 남을 높여주고 범사에 감사하는 사람입니다. 그러면 한 사람, 한 사람 내 곁으로 몰려들게 될 것입니다.
요새 성공하겠다고 성공비결을 찾고 성공강연을 듣지만 어떤 놀라운 성공비결보다 더 중요한 것이 범사에 감사하는 삶입니다. 이제 범사에 감사하는 마음을 훈련하십시오. 그처럼 감사하는 삶을 체질화시킬 때 우리의 영혼은 다윗처럼 견고한 영혼이 될 것입니다.

6. 하나님께 자신을 드리십시오.
내가 받은 달란트가 몇 달란트 이든 간에 하나님께 모두 사용되도록 해야 합니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외과의사이자, 부인과 의사인 하워드 켈리 박사는 대학을 졸업하는 날 밤 다음과 같은 일기를 썼습니다. "저는 저 자신과 시간과 재능과 야망 그리고 모든 것을 주님께 드립니다. 복되신 주님, 주께서 쓰시도록 저를 성결케 하소서 주님께로 저를 가까이 이끌지 못할 것이라면 세상적인 어떤 성공도 제게 허락하지 마옵소서" 이런 일기를 쓴 켈리 박사는 그의 생애를 예수님의 참제자 답게 살았다고 합니다.
본문 13절 말씀을 보십시오. “주께서 내 생명을 사망에서 건지셨음이라 주께서 나로 하나님 앞(coram deo), 생명의 빛에 다니게 하시려고 실족치 않게 하지 아니하셨나이까.” 왜 하나님께서 다윗을 블레셋에서 극적으로 건져주셨습니까? 하나님 앞에서 빛 된 삶을 살라는 뜻이었다고 다윗은 고백하고 있습니다.
왜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셨습니까? 이제 구원받은 자로서 하나님 앞에서 헌신된 삶을 살라는 하나님의 뜻입니다. 바로 거기에 자기 극복의 가장 위대한 길이 있습니다. 자기를 극복하는 가장 위대한 길은 “나는 나를 극복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자신을 하나님께 온전히 드리는 것입니다. 그런 헌신이 빠진 자기 극복은 니체의 초인사상과 다를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진짜 신앙은 ‘자기 극복’에 있지 않고 ‘자기 헌신’에 있습니다. 결국 자기를 헌신하는 자가 자기를 극복할 수 있습니다. 왜 제가 선교와 구제를 강조합니까? 선교사를 도우면서 자기 자신도 돕게 되기 때문이고, 이웃을 행복하게 하면서 자기 자신도 행복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의 작은 정성도 괜찮습니다. 성심성의껏 참여하시면 됩니다. 사실 선교는 내 호주머니를 비우는 일과 관련되기 때문에 듣기에 부담스럽습니다. 그래도 선교에 동참하는 것을 축복으로 알 수 있어야 합니다. 사람이 자신의 것을 거룩한 일에 드릴 때처럼 행복한 때는 없고, 충만해질 때는 없습니다. 결국 자기 헌신은 자기 극복을 위한 최선의 길입니다. 극단적으로 말하면 ‘자기 헌신이 없는 자기 극복’은 일종의 무신론이고 기복주의입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불행하게 되는 이유는 자기를 높이는 것을 자기 극복의 길이라고 오해하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부귀영화를 가진 사람은 다 자기 극복의 천재들이 되어야 합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물론 사람이 살면서 사닥다리를 한 계단씩 올라가는 것도 필요하지만 더욱 중요한 것은 현재의 그 단계에서 헌신하는 것입니다. 얼마 후에 자기의 역량이 커져서 사닥다리를 또 한 계단 올라가면 또 그 단계에서 헌신해야 합니다.
목회자가 50명 교회를 100명 교회로 만들고, 100명 교회를 1000명 교회로 만드는 것은 성취감은 주겠지만 그것은 진정한 자기 극복의 길이 아닙니다. 사업을 키우고 아파트 평수를 늘리는 것도 자기 극복의 길이 아닙니다. 큰 꿈과 비전을 가지고 나가면서도 현재의 위치에서 최선을 다해 하나님께 자기를 드릴 줄 아는 것이 자기를 극복한 것입니다.
우리는 가끔 자신의 모습을 보고 실망할 때가 있습니다. “아니, 내가 신앙인으로서 이런 모습을 보이면 되나?” 그러면서 열심히 자기 수양을 합니다. 감정을 누르고, 욕망을 누르고 삽니다. 그리고 그것을 신자 됨의 표시로 생각합니다. 그러면 일시적인 성취감이 있을지라도 한번 감정과 욕망이 폭발하면 사람 무너지는 것은 순식간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스스로 무엇을 하겠다고 하기보다 시시때때로 하나님 앞에 우리를 드리는 것이 중요합니다.
때로 단점이 노출되고, 수치심이 클 때도 하나님께 우리 자신을 드리면 그때가 오히려 영혼이 성숙해지는 기회가 됩니다. 그때 우리는 깨닫게 됩니다. “나는 예수님이 없으면 희망이 없구나!” 그때 우리는 주님의 보혈의 공로가 얼마나 소중한지 느끼게 되고, 보혈의 공로를 의지하며 나 자신보다 주님을 향해 조금 더 나가게 될 것입니다.
그때 많은 사람들의 시선에 몰입했던 내가 주님께 더 몰입하게 됨으로 넉넉한 마음을 가지게 되고, 또한 우리 등 뒤에서 힘주시는 주님의 힘을 의지해서 주님만 바라보고 주님의 사명을 향해 달려갈 수 있게 됩니다. 그처럼 내 뜻이 사라지고 주님 뜻이 부각되고, 세상과 나는 사라지고 구속한 주님만 보이게 될 때 우리의 영혼은 무적의 영혼이 될 것입니다.
어떤 시선공포증 처녀가 있었습니다. 그녀는 선을 보기 전에 한 상담학자를 찾았습니다. “선생님! 저는 처음 가는 장소에서나 처음 보는 사람 앞에서는 불안해서 견딜 수 없습니다. 치료 방법이 없습니까?” 그런 상담을 하면서도 그녀는 불안한 기색으로 끊임없이 흠짓흠짓하고, 눈을 깜빡거리고, 얼굴을 들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 상담자는 시선공포증 극복법을 가르쳐 주었습니다. 그래서 매일 아침과 저녁에 3분씩 거울 앞에 서서 거울에 비친 자기 얼굴을 똑바로 주시하라고 했습니다. 자기의 얼굴이라면 시선을 돌리지 않고 똑바로 바라볼 수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잘 하는 요령으로 처음에는 자기의 이마를 보다가 익숙해지면 자기의 눈을 응시하라고 했습니다. 그렇게 계속하니까 남을 얼굴을 보는 일이 비교적 편해졌다고 합니다. 사람이 거울을 바라보고 자기를 바라봐도 이렇게 변할 수 있는데 영적인 눈을 크게 뜨고 하나님을 바라보면 무슨 두려움이 있겠습니까?
우리는 할 수 없지만 하나님은 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불완전하지만 하나님은 완전합니다. 어차피 우리는 넘어지고 깨어지고 실망하고 낙심에 빠지는 연약한 존재입니다. 그처럼 우리는 완전한 삶을 살 수는 없지만 완전하신 하나님께 나아갈 수는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완벽함은 주시지 않았지만 완벽하신 주님을 향해 나갈 수 있는 믿음을 주셨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는 누구보다 축복받은 존재입니다. 항상 주님만 바라보고 주님의 뜻과 사명에 자신을 온전히 드림으로 자기를 극복하는 복된 분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 기도: 곧 넘어질 듯 약한 나를 붙드시고 사랑하시는 하나님, 이 절망속에 있는 나를 구원해주시니 감사합니다. 하늘의 소망을 바라보면서 현실이 어렵고 곤란하더라도 참아낼 수 있는 인내심을 주소서. 나로 하여금 맡겨진 일에 인내함으로 그것이 아무리 힘들고 싫을지라도 그것을 완수하거나 완전케 할 때까지 최선을 다하게 하옵소서. 저를 훈련시키시어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게 하소서. 언약의 줄 끝을 잡고 계신 하나님을 보며 저도 끝까지 줄을 놓치 않게 하소서. 나로 하여금 사람들에 대하여 인내하게 하심으로 안달하거나 조바심을 갖지 않게 하시고 그들에게 화내지 않게하옵소서. 나로 하여금 자신의 삶에 대해 인내하게 하심으로 목표가 이루어지기까지 많은 시간이 걸릴지라도 그것을 포기하지 않게하옵소서 나를 실망시키고 목표의 실현에 방해가 되는 것들에 대해서도 어떠한 원망이나 불평이 없이 그것을 수용하게 하옵소서. 당신의 사랑에 의지하여 간구하오니 이 기도를 들어주옵소서. 우리의 구주가 되시고 인도자가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한태완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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