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보기도의 능력 (벧전 5:10)
본문
성도의 영적 수준은 그 사람의 기도생활의 수준과 같습니다. 기도 수준이 높고 깊으면 그 영적 수준도 높고 깊습니다. 기도의 수준이 낮고 얕으면 그 영적 수준과 낮고 얕을 수 밖에 없습니다. 결코 그 기도의 수준을 뛰어 넘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리고 성도의 영적수준은 다른 사람을 생각하는 수준인 것입니다. 다른 사람을 위하는 수준이 곧 성도의 영적 수준인 것입니다. 자기 밖에 모르고 자기 중심적이고 이기적인 사람은 그 영적수준이 그것 밖에 되지 않습니다.
그런데 다른 사람을 위하는 것 중에 가장 영적으로 위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그 영혼을 위해서 무릎끓어 기도하는 것입니다. 이처럼 나 아닌 다른 사람을 위해서 기도하는 것을 말해서 중보기도라 하는 것입니다.
우리 교회는 다양한 동호회들이 활동하고 있습니다. 성경필사, 제자, 전도, 성지순례, 등산, 영어성경읽기, 중보기도팀 등이 있습니다. 우리 성도들이 적어도 하나 이상의 동호회에 참여하셔서 좋은 교제를 나누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더 많은 동호회들이 만들어지기를 바랍니다.
특히 중보기도회는 지난 주에 조직을 마치고 금주 삼일밤부터 중보기도훈련학교가 시작됩니다. 삼일밤기도회 시작하기 1시간에 전에 시작됩니다. 이미 중보기도팀에 가입한 분들은 한분도빠지지 말고 참석하시고 혹 관심이 있거나 훈련에 참가하고 싶은 분들은 참석하시기 바랍니다.
중보기도는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을 느끼며 기도하는 것입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민망히 여기시는 그 마음을 느끼면서 기도하는 것입니다. 성령님의 탄식하며 우리를 위해서 기도하시는 그 마음으로 기도하는 것입니다. 다른사람을 위해서 기도하는 중보기도는 다른 사람의 아픔을 내 아픔으로 느끼면서 기도하는 것입니다. 그러니 성숙한 신앙의 현상이며 수준높은 기도인 것입니다. 또 하나님의 능력을 얻게 되는 통로가 됩니다. 남을 위한 기도를 하므로서 내가 복을 누리는 기도이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중보기도자가 많은 교회는 그만큼 성숙한 교회가 될 수 있습니다.
중보기도는 무엇보다도 성서적 모델을 따른 것이며, 예수님의 모델을 따르는 길입니다. 예수님은 이 시간도 성도들과 교회와 주의 종들을 위해서 중보기도하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따라가는 길은 우리도 성도들과 교회와 목회자를 위해서 중보기도를 하는 것입니다. 지역과 민족과 나라와 세계를 위하여 중보기도하는 것입니다.
중보기도도 자신을 위한 기도처럼, 아니 자신을 위한 기도보다도 더 간절하고 집중적인 기도의 자세가 필요합니다. "하늘에 계신 주여, 내가 눈을 들어 주께 향하나이다. 종의 눈이 그 상전의 손을,여종의 눈이 그 주모의 손을 바람같이 우리 눈이 여호와 우리 하나님을 바라며 우리를 긍휼히 여기시기를 기다리나이다"(시 123:1-2) 대충하는 것은 안됩니다. 땀흘리지 않고 힘쓰지 않는 것은 안됩니다. 간절해야 합니다. 뜨거워야 합니다. 집중해야 합니다. 사명으로 알고 사역을 해야 합니다.
1. 중보기도는 "온전케 하는 능력"이 있습니다.
"너희를 온전케 하시며"했습니다. 여기서 "온전케 하시며"라는 말씀은 본래 "그물을 깁는다"는 말입니다. 찢어진 그물을 다시 깁는다"는 듯입니다. 즉 흠이 없는 물건을 만들어내기 위해서 정비하거나 연결시키는 일, 불완전한 것을 바로 잡는 것을 의미하는 말씀입니다. 찢어진 그물을 기우면 다시 고기를 잡을 수가 있습니다. 이는 하나님의 일을 할 수 있도록 준비된다는 뜻입니다.
중보기도는 온전치 못한 것을 온전케 할 것입니다. 건강이 온전치 못한 이들을 위해 기도하십시오. 건강이 온전해 질 것입니다. 온전치 못한 영혼을 위해서 기도하십시오 온전한 영혼이 될 것입니다. 지혜가 부족한 영혼을 위해서 기도하시기를 바랍니다. 꾸짖지 않고 후히 주시는 하나님께서 온전한 지혜를 주실 것입니다. 겸손하지 못한 이들을 위해서 기도하십시오. 겸손하게 될 것입니다. 기름부음받지 못한 종들을 위해서 기도하십시오. 기름부음을 받고 좋은 소식을 전하는 종들이 될 것입니다.
온전치 못한 것을 타박하지 마세요. 온전하지 못한 것을 위해서 기도하세요. 기도하면 하나님이 온전케 하실 것입니다.
2. 중보기도는 "굳세게 하는 능력"이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 "굳게 하시며"라고 했습니다. 이 말은 "굳게 하라. 확실하게 하다"는 뜻입니다. 인생은 낙심하기 쉬운 속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변덕스럽고 우유부단한 속성을 거지고 있습니다. 세상 물결이 밀려와 시험을 주고, 죄악의 유혹에 끌려가기 쉬운 존재입니다. 이런 인간의 속성을 굳세게 할 수 있는 것이 중보기도입니다. 중보기도는 그런 사람들을 굳게게 합니다. 믿음을 확실하게 합니다. 사명을 확실하게 합니다. 소명을 확실하게 합니다. 은사를 확실하게 합니다.
중보기도가 있는 사람의 영혼은 사단이 넘어뜨리지 못합니다. 넘지지 않는 사람 뒤에는 그를 위한 중보기도자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새신자들을 위해서 중보기도해야 합니다. 낙심자들을 위해서 기도해야 합니다.
3. 중보기도는 "강하게 하는 능력"이 있습니다.
강하게 하신다는 이 말씀은 "기운을 돋우워 준다"다는 뜻입니다. 하나님께서 속사람을 강하도록 기운을 돋우워 주셔야 합니다. 연악함과 곤고함을 가지고 있는 인생들을 위해서 그들이 강하여지도록 기도의 무릎에 힘을 주고 우리가 그렇게 중보하여 기도해야 합니다.
사도바울도 자신을 위한 중보기도를 간곡하게 자주 여러 교회에 부탁했습니다. 엡 6:19에 보면 "또 나를 위하여 구할 것은 내게 말씀을 주사 나로 입을 벌려 복음의 비밀을 담대히 알리게 하옵소서 할 것이니"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바울은 감옥에 있었지만 죽는 날까지 담대히 복음을 선포해야 하는 책임을 분명히 알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이 사역이 기도의 지원이 없이는 어렵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중보기도는 기운을 북돋우워 일할 수 있게 합니다. 무엇인가 시작할 수 있게 합니다. 위대한 일을 도모할 수 있도록 그렇게 용기를 줍니다. 영광스러운 일을 착수할 수 있도록 기운을 북돋우워줍니다. 그러므로 중보기도가 필요한 것입니다.
4. 중보기도는 그들의 "터를 견고케 하는 능력"이 있습니다.
온전하여지고 굳세게 되고 강하게 되었다 할지라도 여전히 흔들릴 수 있는 가능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견고케 한다는 말은 "흔들리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터가 흔들리지 않고 단단해야 합니다. 중보기도는 한 영혼이 서 있는 삶의 터를 흔들리지 않고 단단하게 합니다. 견고하게 합니다. 누군가를 위해서 중보기도하면 그 영혼이 그 삶의 터가 흔들리지 않고 든든하고 견고합니다. 중보기도는 가정의 터를 견고하게 합니다. 교회의 터를 견고하게 합니다. 민족과 나라의 터를 견고하게 하는 능력이 있습니다. 열방의 터를 견고하게 합니다.
무엇보다도 중보기도가 살아 있는 교회는 안정이 되고 부흥이 됩니다. 그러므로 중보기도가 살아 있어야 합니다. 중보기도는 두마리 토끼를 한꺼번에 잡는 영적 방법입니다. 내가 남을 위해서 기도하므로써 남을 세우고 남을 세우는 나는 오히려 갑절로 더 필배나 더 세워지는 역사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복을 받기 때문입니다.
(송기현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