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목적 (마 6:31-33)
본문
그러므로 염려하여 이르기를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지 말라 32이는 다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 천부께서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시느니라 33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인생은 짧다고들 말합니다. 나이가 들면 들수록 더욱 실감합니다. 사실 세월이 얼마나 빨리 지나가는지 날아가는 것만 같습니다. 120세를 산 모세는 시편 90:10에서 세월의 빠름을 『신속히 가니 우리가 날아가나이다』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시간이 없습니다. 허송세월할 시간은 더더욱 없습니다. 그럼에도, 많은 사람이 ‘어떻게 살아야 할지’를 몰라서 그 귀한 세월을 허송하고 있습니다. 에베소서 5:15~16에서 사도 바울은 『그런즉 너희가 어떻게 행할 것을 자세히 주의하여 지혜 없는 자같이 말고 오직 지혜 있는 자같이 하여 세월을 아끼라 때가 악하니라』라고 교훈하고 있습니다.
오늘날 대부분의 사람은 얼마나 바쁘게 살아가는지 모릅니다. 그렇다 보니 낮에 전화를 걸면 집에 있는 사람이 별로 없습니다. 다들 왜 이렇게 바쁘게 삽니까? 그러나 가만히 들여다보면 쓸데없는 일로 분주합니다. 괜히 바쁜 것입니다. 아무런 가치없는 일에 귀한 시간을 허비하고 있는 것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삶의 목적이 없거나 삶의 목적이 잘못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서 사람이 왜 사는지, 무엇을 위해 살아야 하는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잘 모르거나 잘못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노벨상 수상작가인 헤밍웨이는 “인생에는 목적이 없다. 인생이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물을 필요조차 없다.”라고 말했습니다. 결국, 그는 자살로 그의 생애를 마감했습니다. 인생의 목적을 모르는 사람, 인생의 목적이 없이 사는 사람보다 불행한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사람에게 죽음보다 더 큰 비극은 삶의 목적 없이 사는 것입니다.
사람과 짐승의 공통점은 본능을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살고자 하는 본능, 먹고 싶어하는 본능, 보고 싶어하는 본능, 듣고 싶어하는 본능, 하려는 본능, 가지려는 본능 등입니다.
또 얼마간 살다가 죽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그러나 짐승에게는 없고 사람에게만 있는 것이 있습니다. 고민하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어떻게 하면 잘 살아볼까. 좀 더 편하게 지내볼까. 어떻게 하면 하고 싶은 것을 다 해볼까. 어떻게 하면 쾌락을 누리며 살아볼까. 밤낮 이런 생각들로 걱정과 근심이 많습니다. 그러나 우리 인간들은 너무나 어리석어서 생각하는 대로 다 이루고 사는 것을 성공이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그 목적을 이루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이루려다가 망신을 당하고 감옥까지 가는 사람들을 우리 주위에 흔치 않게 보고 있습니다.
사실 우리가 내 뜻대로 다 이루어지는 것이 성공이요, 행복이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전도서 2장을 보면 솔로몬은 왕으로서 이 세상의 온갖 호강을 다 누려보았습니다. 쾌락이 될만한 것은 무엇이든지 금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솔로몬은 “헛되고 헛되며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라는 허무한 결론에 도달했습니다.
그는 자신의 욕구를 이루었기 때문에 만족한 것이 아니라 날마다 자신을 즐겁게 해줄 새로운 그 무엇을 찾기 위해 고민하다가 종국에 가서는 사는 것을 한하기까지 했습니다. 한마디로 ‘살기 싫다.’라는 것입니다. 이처럼 삶의 목적 없이 살거나 잘못된 삶의 목적을 가지고 사는 것은 불행한 삶이 아닐 수 없습니다. 많은 사람이 삶의 목적을 모르기 때문에 그 귀한 세월을 허송하고 있습니다.
많은 사람이 삶의 목적을 모르고 귀한 세월을 허송하는 이유는?
1. 과거의 죄의식에 매여 살기 때문입니다.
과거의 죄의식에 매여 귀한 삶을 다 허비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스스로 자기 자신을 정죄하고 스스로 처벌함으로써 그 고통에서 벗어나려고 몸부림치지만 모두가 부질없는 짓입니다. 우리가 아무리 큰 죄를 범했다 할지라도 하나님 앞에 회개하기만 하면 용서해 주십니다. 용서해주실 뿐만 아니라 기억도 하지 아니하시며 그 사람의 모든 과거를 도말해주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마치 과거에 범한 죄를 없던 일처럼 해주시겠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과거의 잘못을 하나님 앞에 다 회개했다면 용서받은 줄 믿고 하나님께서 기억도 하지 아니하시겠다고 말씀하셨으니 우리 자신도 깨끗이 잊어버려야 합니다. 과거의 죄의식에 매일 필요가 전혀 없습니다. 중요한 것은 언제나 현재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과거에 사람을 죽이고 미디안 광야로 도망가 양을 치고 있던 모세를 이스라엘의 위대한 지도자로 바꾸어주셨습니다. 갈릴리 바다에서 물고기를 잡던 어부 베드로를 불러 위대한 사도가 되게 하셨습니다. 일곱 귀신에 사로잡혀 온전치 못한 삶을 살아가던 막달라 마리아를 아름다운 믿음의 사람으로 살게 하셨습니다. 과거에 남편이 다섯이나 있었고 지금도 살고 있는 남자가 자신의 남편이 아닌 사마리아 수가성의 부끄러운 여인을 수가성을 구원하는 위대한 전도자가 되게 해주셨습니다.
성도 여러분! 과거에 매이지 마시기 바랍니다. 중요한 것은 현재입니다.
2. 원한과 분노에 사로잡혀 있기 때문입니다.
원한과 분노에 사로잡혀 그 귀한 세월을 허송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우리가 살다 보면 사람들로부터 크든 작든 상처를 입게 됩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상처는 용서하고 잊어버리면 치료됩니다. 그러나 어떤 사람은 용서하거나 잊어버리는 것을 손해 보는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래서 어떻게 해서든지 보복하려는 생각으로 무서운 분노와 증오심을 가지고 삽니다. 자연히 이런 사람들의 얼굴에는 살기가 있습니다. 따라서 이런 사람들을 가까이하기 싫어합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동안 세상으로부터 많은 상처를 받지만 이보다 더 치명적인 것은 내 스스로 만드는 상처입니다. 내 안에 분노를 가지고 증오심에 사로잡혀 살면 자신을 더 고통스럽게 만들고 불행하게 할 뿐만 아니라 한심한 인간이 되게 합니다.
성도 여러분! 과거는 과거일 뿐입니다. 용서하시기 바랍니다. 흘러간 과거를 돌이킬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과거를 통해 교훈만 얻고 잊어버리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입니다.
욥기 5:2을 보면 『분노가 미련한 자를 죽이고 시기가 어리석은 자를 멸하느니라』라고 했습니다. 또 잠언 14:17, 29을 보면 『노하기를 속히 하는 자는 어리석은 일을 행하고 악한 계교를 꾀하는 자는 미움을 받느니라』, 『노하기를 더디 하는 자는 크게 명철하여도 마음이 조급한 자는 어리석음을 나타내느니라』라고 했습니다. 또 잠언 19:11을 보면 『노하기를 더디하는 것이 사람의 슬기요 허물을 용서하는 것이 자기의 영광이니라』라고 했습니다.
3. 두려움 때문입니다.
어떤 사람은 두려움 때문에 좋은 기회를 잃어버리고 귀한 세월을 허송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두려움은 백해무익합니다. 하나님 한 분 외에는 누구도 두려워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평소에 잘하던 사람도 두려움이 오면 제대로 실력발휘를 하지 못합니다.
4. 물질에 대한 욕심 때문입니다.
많은 사람이 물질에 대한 욕심 때문에 세월을 허송하고 있습니다. 사실 물질에 대한 욕구는 끝이 없습니다. 우리나라 재벌들을 보십시오. 천년을 살아도 다 쓸 수 없을 만큼 재산이 많이 있으면서도 만족하지 못하고 더 벌려고 애를 쓰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대체로 물질이 더 많아지면 더 행복해지고 더 안전해지리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이 생각은 매우 잘못된 생각입니다. 오히려 더 불행해지고 더 불안해질 수도 있습니다. 물질이 더 많아지면 중요한 사람이 되고 성공한 인물이 되었다고 생각하기 쉬우나 사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물질이 많은 사람 중에도 무가치한 삶을 사는 사람들이 있고, 비참한 종말을 고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저와 여러분은 물질의 욕심에 사로잡혀 허송세월해서는 절대로 안 됩니다.
5. 다른 사람들로부터 인정받으려 하기 때문입니다.
많은 사람이 다른 사람들로부터 인정받으려고 하다가 그 귀한 세월을 허송하고 있습니다. 부모 혹은 자식, 스승, 친구, 대중들에게 인정받기 위해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하지 못하고 귀한 세월을 허송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런 사람들은 무엇을 하든지 밤낮 ‘다른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볼까’ 하는 생각으로 걱정이 많습니다. 옷을 하나 입어도 남을 의식하며 살기 때문에 하루도 마음 편히 살지 못합니다. 사실 우리가 모든 사람을 만족시키거나 모든 사람에게 인정을 받을 수는 없습니다. 도무지 불가능합니다. 또 굳이 그렇게 살 필요도 없습니다. 중요한 것은 오직 하나님 앞에서 인정받고 살고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많은 사람이 삶의 목적을 모르고 그 귀한 세월을 왜 허송하며 삽니까? 그것은 하나님이 우리의 삶에 대해 가지고 계시는 목적을 모르기 때문입니다.
에베소서 5:17을 보면 『그러므로 어리석은 자가 되지 말고 오직 주의 뜻이 무엇인가 이해하라』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삶에 대한 목적을 가지고 계십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허락하신 시간은 그 목적을 이루기 위해 주신 중요한 기회입니다. 허송세월할 시간이 없습니다. 그런데 어리석은 사람들은 하나님이 나를 향하여 가지신 뜻과 계획과 목적은 생각하지 아니하고 허송세월하고 있습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이 그 귀한 세월을 허송하고 있는 근본 원인은 첫째로, 하나님을 모르기 때문이며 둘째로, 내세를 모르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삶은 이 세상에서의 삶으로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삶은 현세와 내세로 나누어져 있습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은 본향이 아닙니다. 우리가 영원히 살게 될 본향은 하늘나라입니다. 빌립보서 3:20을 보면 『오직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는지라 거기로서 구원하는 자 곧 주 예수 그리스도를 기다리노니』라고 했습니다. 히브리서 11:16을 보면 『저희가 이제는 더 나은 본향을 사모하니 곧 하늘에 있는 것이라 그러므로 하나님이 저희 하나님이라 일컬음 받으심을 부끄러워 아니하시고 저희를 위하여 한 성을 예비하셨느니라』라고 했습니다.
현세는 짧지만, 내세는 영원합니다. 천국도 영원하고 지옥도 영원합니다. 그런데 이 세상에서의 삶은 짧지만 매우 중요합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이 세상에서 어떤 삶을 사느냐에 따라 하늘나라에 가서 영생복락을 누리며 살 수도 있고 영원히 지옥불에 들어가서 고통당하며 살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께서 가룟 유다를 향하여 “차라리 나지 아니한 것만 못하다.”라고 말씀하시지 않았습니까. 안타깝게도 많은 사람이 이러한 사실을 모른 채 현세에만 급급하여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저 육체의 본능을 따라 마음이 원하는 대로 하루하루 허송세월하며 어리석게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아는 사람은 허송세월하지 않습니다. 삶의 목적을 알기 때문에 아무렇게나 살지 않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삶의 목적도 없이 삶의 의미도 없이 살아갑니다. 이런 사람은 내세가 없다고 믿기 때문에 죽음으로 모든 것이 끝난다고 생각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죽음 앞에서 절망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소망을 가지고 산다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소망을 가지고 사는 암환자는 그렇지 않은 환자에 비해 생존율과 치료율이 높다고 합니다.
우리 성도들은 아무렇게나 살아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이 우리의 삶에 대해 가지고 계시는 목적을 똑바로 알고 그 목적에 맞는 삶을 살아야 하겠습니다. 그리하여 하나님의 기쁨이 되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아야 합니다. 우리가 이렇게 살 때 진정한 기쁨과 행복이 있게 될 줄 믿습니다.
하워드 헨드릭스는 자신의 책에서, 언젠가 만났던 비행기 승무원에 대한 감동적인 이야기를 전하고 있습니다. 그가 탑승한 비행기는 사람들로 붐볐고 사람들이 모두 신경이 곤두서 있었습니다. 아기들도 여럿 탑승하여 연방 칭얼대며 큰소리로 울어대는 바람에 분위기까지 어수선했습니다. 정말 짜증나는 분위기였습니다.
더구나 난기류를 만나 비행기가 몹시 흔들려대는 바람에 승무원들이 기내식을 제공하는데도 어려움이 컸습니다. 그러나 이런 힘든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계속하여 서비스를 제공하는 한 승무원이 특별히 그의 눈에 띄었습니다.
간혹 승객이 무례하게 굴더라도 그녀는 변함없이 친절하게 대했습니다. 승객들이 덜컹덜컹 흔들리는 비행에 대해 불만을 터뜨려도 그녀는 최선을 다해 상황을 설명하고 상냥하게 안내했습니다. 심지어 칭얼대는 아기들을 웃기려고 온갖 장난감을 들고 나타나 아기들을 달래기도 했습니다. 그 승무원은 탑승 내내 환하고 명랑한 미소를 잃지 않았습니다.
비행기가 목적지에 다다를 즈음에, 하워드는 그 승무원과 이야기를 나눌 기회를 얻었습니다. “당신과 같은 사람이 일하고 있어서 이 항공사는 무척 운이 좋은 것 같군요!” 그러자 그녀는 미소를 머금고 “저는 항공사를 위해 일하지 않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이에 하워드가 다시 물었습니다. “그렇다면, 혹시 독립 승무원 연맹에서 일하시나요?” 그녀는 “아닙니다, 손님.”이라고 답했습니다. “그렇다면, 도대체 누구를 위해 일한단 말입니까?” 하워드가 의아하다는 듯이 질문했습니다. 그녀는 다시 웃으며 단호하게 말했습니다. “저는 예수님을 위해 일한답니다. 이 항공사는 단지 제게 월급을 줄 뿐이죠.” 참으로 놀라운 대답이 아닐 수 없습니다.
삶의 목적을 분명히 아는 사람인 저와 여러분은 이 땅에 사는 동안 허송세월하지 마시고, 무엇을 하든지 어떤 위치에 있든지 하나님의 기쁨이 되고 하나님의 영광이 되는 삶을 살아가시기를 축원합니다.
(정필도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