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적 승리를 위한 준비 (엡 6:10-20)
본문
- 김양인 목사 (목양교회)
요즘 우리는 이라크 전쟁 소식을 매일같이 듣습니다. 미군과 테러집단 간의 싸움이 계속되는 가운데 무고한 이라크 백성들이 겪는 고통은 말로 다할 수 없을 것입니다. 지난 22일에는 한국인 김선일 씨가 이라크 테러범들에게 희생되었고, 어제 저녁에 그의 시신이 그토록 오고 싶어 했던 고국으로 돌아왔습니다. 그의 죽음을 대하면서 우리는 애통한 마음을 금할 수 없습니다.
이 세상에 전쟁이 없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러면 무고한 시민들이 죽고 다치고 고생하는 일이 없을 것인데 말입니다. 그러나 유사 이래로 전쟁이 없었던 시기가 전무할 만큼 인류 역사는 전쟁으로 얼룩져 있습니다. 한국인들도 지난 20세기에 얼마나 자주 전쟁을 경험했습니까. 특히, 한국동란으로 인한 비극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이산가족과 북한에 남아 있는 국군 포로 문제가 아직 해결되지 않고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지구상에서 전쟁이 사라지기를 바라지만 그것은 한갓 염원에 불과할 뿐입니다. 인류의 역사가 지속되는 한 전쟁은 계속해서 일어날 것입니다.
이는 그리스도인의 삶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영적인 전쟁을 하면서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이 땅에서 살아 숨 쉬는 동안 우리는 끊임없이 영적인 싸움을 싸워야 합니다. 지는 자는 이기는 자의 종이 됩니다. 그러므로 전쟁에서는 지면 안 되고 반드시 이겨야 합니다. 이 시간 저는 그리스도인들이 당면한 영적 전쟁에서 승리하는 비결이 무엇인지를 말씀해 드림으로써 성도님들과 함께 은혜를 나누려고 합니다.
첫 번째로, 영적 싸움에 대하여 성경적으로 올바로 알아야 합니다.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에 대한 것이 아니요 정사와 권세와 이 어두움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에게 대함이라”고 했습니다. 우리 인간은 누구나 혈과 육을 갖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혈과 육에 대한 것이 아니라고 하신 것은 성도들의 영적 싸움이 사람들을 상대하는 것이 아님을 말해 줍니다. 그리스도인의 영적 싸움은 마귀와 그의 수하에 있는 악령들에게 대한 것입니다.
“정세와 권세와 이 어두움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은”이란 악령들을 일컫는 말입니다. 천사들의 세계에 천사장을 비롯해서 여러 계급이 있듯이, 마귀의 수하에 있는 악령들에게도 높고 낮음이 있습니다. 마귀와 악의 영들은 우리 눈에 보이지 않지만 실재하면서 이 세상 사람들의 마음을 지배하고 있습니다. 이 세상이 타락하고 악과 불의가 난무하는 것은 이 세상이 마귀의 손아귀에 들어 있다는 증거입니다.
사람들의 말과 행동이 갈수록 악해져 가는 것 역시 악령들이 사람들의 마음을 주장하기 때문입니다. 불신 이웃들이 성도들을 미워하는 것은 그들의 본심이 아니라 마귀가 넣어준 마음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사람들을 상대로 싸울 것이 아니라 그들의 배후에서 역사하는 악령들을 대적해야 하는 것입니다. 만일 우리가 이 사실을 제대로 알지 못하면 우리를 핍박하는 사람들을 감정적으로 대하다가 죄를 짓게 될 것입니다. 반면에, 악령들이 배후에 역사하는 것을 안다면 핍박하는 사람들을 대적하지 아니하고 오히려 그들을 불쌍히 여기고 그들의 구원을 위해 기도할 마음을 갖게 될 것입니다.
그런가하면 그리스도인이 당면한 싸움은 적당히 타협해서 해결할 수 없는 싸움임을 알아야 합니다. 마귀와 타협하는 것은 곧 영적 싸움에서 패배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에베소서 6장 12절에 나오는 “씨름”이란 단어는 헬라어로 “파레”인데 이는 씨름, 격투, 전투, 투쟁 등으로 번역할 수 있는 말로서, 우리 성경에는 “씨름”으로 번역했고, 영어성경 흠정역에는 “레슬링”으로 번역했습니다. 씨름이나 레슬링은 일종의 격투기로서 선수들이 젖 먹던 힘까지 다 내서 싸우지 않으면 이길 수 없습니다. 한 순간의 방심도 허용치 않는 치열한 경기입니다. 우리의 신앙생활이 마치 씨름이나 레슬링과 같습니다. 정신을 차리고 최선을 다해 싸우지 않으면 마귀에게 지고 맙니다.
세상 사람들은 마귀가 얼마나 사악한 존재인지 알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어린이들이 즐겨보는 비디오나 영화에 나오는 마귀는 아이들의 친구로서 재미있는 역할을 도맡아서 합니다. 요즘 청소년들이 좋아하는 게임에도 마귀와 악령들이 친근한 존재로 등장합니다. 이와 같은 이미지 조작으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악마에 대해서 거부감을 갖지 않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우리나라의 월드컵 응원단의 이름이 ‘붉은 악마’입니다. 그러나 여러분, 마귀는 사람들이 생각하듯이 친근하고 재미있고 선량한 존재가 아닙니다.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시기를 “도적이 오는 것은 도적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는 것뿐이요…”(요 10:10)라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에 나오는 “도적”은 마귀를 가리킨 것입니다. 베드로전서 5장 8절에는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 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라고 했습니다. 마귀는 우리의 친구가 아니라 원수입니다. 마귀는 굶주린 사자와 같이 성도들을 공격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마귀를 대적해서 싸워서 이기지 못하면 마귀에게 져서 큰 피해를 입고 맙니다.
사랑하는 성도님들, 우리가 이 세상에 살아가는 동안에는 언제나 마귀와 더불어 싸워야 함을 아시기 바랍니다. 영적 싸움은 그리스도인이면 누구나 피할 수 없는 싸움입니다. 마귀는 외부적인 핍박을 통해서 우리를 공격하기도 하지만, 동시에 우리의 약점을 이용해서 우리를 넘어뜨립니다. 교만한 생각을 갖게 하는 것은 마귀가 가장 즐겨 사용하는 방법입니다.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의 금하신 선악과를 따먹고 타락한 것은 “너희가 먹는 날에는 하나님처럼 될 것이라”는 뱀의 유혹에 넘어간 데 그 원인이 있습니다. 여러분, 지음 받은 인간이 하나님처럼 되고 싶다는 생각을 품는 것처럼 교만한 경우가 어디 있겠습니까?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이르시기를 “아무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마 16:24)고 하셨습니다. 사람들이 가장 하기 힘든 일이 자기를 부인하는 것인데, 우리가 주님을 올바로 따르려면 이 일에 힘써야 합니다.또 말씀하시기를 “34)내가 세상에 화평을 주러 온 줄로 생각지 말라 화평이 아니요 검을 주러 왔노라 35)내가 온 것은 사람이 그 아비와, 딸이 어미와, 며느리가 시어미와 불화하게 하려 함이니 36)사람의 원수가 자기 집안 식구리라 37)아비나 어미를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는 내게 합당치 아니하고 아들이나 딸을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도 내게 합당치 아니하고 38)또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지 않는 자도 내게 합당치 아니하니라 39)자기 목숨을 얻는 자는 잃을 것이요 나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잃는 자는 얻으리라”(마 10:)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과 같이, 그리스도인들은 가족과 친지들로부터 따돌림 당하고 핍박당하는 것도 감수해야 합니다. 이렇게 볼 때, 신앙생활을 씨름에 비유한 것은 참으로 적절하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만일 우리가 하나님께 속한 자가 아니고 마귀에게 속한 자라면 이와 같은 영적 싸움을 싸울 이유가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하나님께 속한 자이기 때문에 마귀가 미워합니다. 우리가 믿음의 선한 싸움을 끝까지 해서 승리하려면 우리 자신이 누구에게 속해 있는지를 명확하게 알아야 합니다. 다시 말하면, 그리스도인으로서 확고한 정체성을 갖고 있어야 합니다. 그리스도인이란 그리스도에게 속한 사람을 가리킵니다. 디모데후서 2장 3절로 4절에는 “3)네가 그리스도 예수의 좋은 군사로 나와 함께 고난을 받을찌니 4)군사로 다니는 자는 자기 생활에 얽매이는 자가 하나도 없나니 이는 군사로 모집한 자를 기쁘게 하려 함이라”고 했습니다. 군사는 적과 싸워 이겨야 합니다. 우리 역시 그리스도 예수의 군사로서 마귀의 군대를 상대로 싸워 이겨야 합니다.
두 번째로, 우리가 영적 승리를 위해 갖추어야 할 것들이 있습니다.
에베소서 6장 10절에 보니 “종말로 너희가 주 안에서와 그 힘의 능력으로 강건하여지고”라고 말씀했습니다. 그리스도인은 강건해져야 합니다. 마귀를 두려워하지 아니하고 담대하게 대적해서 승리하려면 영적으로 강해야 합니다. 불신 가족의 핍박과 환난을 이기려면 마음이 강해져야 합니다. 마음이 약해서 작은 시험 앞에서도 맥없이 넘어지는 것은 그리스도인에게 어울리지 않습니다. 그리스도인은 약한 자가 아니라 강한 자가 되어야 합니다. 그러면 우리가 영적으로 강하게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무슨 수로 우리 마음을 강하게 만들 수 있을까요? 성경에 보니 “너희가 주 안에서와 그 힘의 능력으로 강건하여지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비록 부족하고 능력이 없지만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의지하며 나아갈 때 주님께서 공급해 주시는 힘과 능력을 받아 능히 마귀를 이길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님들, 예수 그리스도의 능력을 받아 강건해 지기를 원하시거든, 언제나 주 안에 거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에베소서 3장 16절에는 “그 영광의 풍성을 따라 그의 성령으로 말미암아 너희 속사람을 능력으로 강건하게 하옵시며”라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성령께서 우리와 함께 하실 때 우리 속사람이 능력으로 강건하게 됩니다.
이번에 이라크에 파병할 자이툰 부대의 대원들은 모두 특전사와 해병대, 특공대로 편성했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한국군의 최정예 부대를 보내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현 이라크의 상태가 불안정하고 위태롭기 때문입니다. 테러범들이 언제 어디서 공격해 올지 모르기 때문에 어떤 상황에서도 능히 적을 제압할 수 있는 실력을 갖춘 정예 요원들을 뽑아서 보내는 것입니다. 우리가 영적인 싸움에서 마귀의 세력과 싸워서 승리하려면 주 안에서, 성령으로 말미암아 능력을 받고 강건해져야 합니다.
그 다음, “마귀의 궤계를 능히 대적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으라”고 했습니다. 사도가 성경을 기록했던 그 시대에는 주로 창검과 활로 싸웠습니다. 그 당시 로마 군인들은 적의 공격으로부터 몸을 보호하기 위해 전신갑주를 입었습니다. 허리에는 가죽으로 된 띠를 띠고, 가슴에는 흉배를 붙이고, 가죽신을 신고, 커다란 방패를 가지고, 머리에는 투구를 쓰고, 검을 갖고 있었습니다. 사도는 로마 군인들의 무장을 보면서 이를 영적 무장에 견주어서 설명합니다.
먼저, 진리로 허리띠를 띠라고 했습니다. 군인들은 훈련을 하거나 행군할 때 반드시 허리띠를 졸라맵니다. 허리띠를 띠지 않으면 옷이 거추장스러워서 행동을 민첩하게 할 수 없습니다. 또 허리띠를 꼭 졸라매야 힘을 쓸 수 있습니다. 영적으로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진리 위에 설 때 양심에 아무 거리낌이 없이 자유롭게 행동할 수 있습니다. 그 다음, 의의 흉배를 붙이라고 했습니다. 흉배는 가슴을 보호하는 무장인데, 이 말씀은 성도들에게 하나님의 의로 무장하라는 뜻입니다. 마음속에 죄책감이 도사리고 있으면 담대하게 신앙생활을 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마귀의 참소로부터 우리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다는 사실을 굳게 믿어야 합니다.
그 다음, 평안의 복음의 예비한 것으로 신을 신으라고 했습니다. 군인이 싸움터에 나가서 능력을 발휘하려면 발이 편하고 질기고 튼튼한 신발을 신어야 합니다. 이는 영적으로도 마찬가지입니다. “평안의 복음의 예비한 것으로 신을 신고”라고 했습니다. 복음은 그것을 믿음으로 받아들이는 사람에게 평안을 줍니다.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요 14:27)고 하셨습니다.
우리 속에 그리스도의 평안이 있을 때 힘차게 복음을 전할 수 있습니다. 그 다음, “모든 것 위에 믿음의 방패를 가지고 이로써 능히 악한 자의 모든 화전을 소멸하고”라고 했습니다. 사도 당시에 로마 군인들은 전쟁에 나갈 때 큰 방패를 가지고 나갔습니다. 이 방패는 아교로 나무를 이중으로 붙인 것으로서 적이 쏘아대는 불화살을 막아내는 데 필요했습니다. 또 불화살이 방패에 박히면 불이 꺼졌습니다. 영적인 차원에서 방패는 곧 믿음을 말합니다. 마귀는 성도들을 향하여 불화살을 쏘아 댑니다. 의심, 정욕, 탐심, 허영심, 교만, 시기와 같은 것에 사로잡히는 것은 마귀의 화전에 맞았다는 증거입니다. 우리를 향하여 끊임없이 쏘아대는 마귀의 화전을 막아내려면 믿음으로 무장해야 합니다.
그 다음, 로마 군인들은 투구로 머리를 보호했습니다. 성도들은 “구원의 투구”를 써야 합니다. 구원의 투구를 쓴다 함은 항상 구원의 소망을 갖고 살아가는 것을 의미합니다. 머리는 생각하는 지체입니다. 구원의 소망을 생각하는 사람은 세상 유혹이 다가와도 넘어가지 않습니다. 그리고 로마 군인은 검으로 무장했습니다. 검은 방어와 공격 둘 다를 할 수 있는 무기입니다. 성도들의 검은 성령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을 가리킵니다. 성경에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을 성령의 검이라고 한 것은 성경은 성령의 감동을 받은 사람들이 기록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성경의 원저자는 사람이 아니고 성령이십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검이라고 하는 까닭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대적할 때 마귀가 겁을 먹고 물러가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공생애를 시작하시기에 앞서 광야에 가셔서 40일 동안 금식하시면서 기도하셨습니다. 때에 마귀가 주리신 예수님께 나아와서 시험하기를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명하여 이 돌들이 떡덩이가 되게 하라”고 했습니다. 이에 예수님께서 대답하시기를 “기록되었으되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 하였느니라” 하심으로 마귀를 물리치셨습니다. 그러자 마귀가 예수님을 성전 꼭대기에 세우고 말하기를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뛰어내리라 기록하였으되 저가 너를 위하여 그 사자들을 명하시리니 저희가 손으로 너를 받들어 발이 돌에 부딪히지 않게 하리로다 하였느니라”고 했습니다. 이에 예수님께서 이르시기를 “또 기록되었으되 주 너의 하나님을 시험치 말라 하였느니라”고 하셨습니다. 그러자 마귀가 다시 예수님을 데리고 지극히 높은 산으로 가서 천하만국과 그 영광을 보여 주면서 말하기를 “만일 내게 엎드려 경배하면 이 모든 것을 네게 주리라”고 했습니다. 이에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사단아 물러가라 기록되었으되 주 너의 하나님께 경배하고 다만 그를 섬기라 하였느니라”고 하셨습니다. 이로써 마귀는 완전히 패하고 예수님을 떠났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예수님께서 세 번에 걸친 마귀의 집요한 시험을 오직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으로 물리치셨음을 알 수 있습니다. 살아계신 하나님의 말씀은 이처럼 권세가 있습니다.
한편, 하나님의 말씀을 검에 비유하신 것은 말씀을 함부로 해석하지 말라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습니다. 군인은 검을 사용하는 법을 배워서 익혀야지 그렇지 않으면 자기의 검에 되레 상처를 입기 쉽습니다. 오늘날 우리 사회에는 성경 공부를 빙자해서 기독교인들을 미혹하는 이단들이 많이 생겨났습니다. 그들의 꾐에 넘어가서 함께 성경을 배우다보면 자기도 알지 못하는 사이에 이단 사상이 그 속에 뿌리를 내리게 되어 결국 이단의 앞잡이가 되고 맙니다. 그러기에 베드로전서 1장 20절에 보니 “먼저 알 것은 경의 모든 예언은 사사로이 풀 것이 아니니”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성경을 바르게 아는 성도들은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고 마귀를 물리치고, 이단의 정체를 밝혀내서 물리칠 수 있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사도는 기도로써 무장하라고 말씀합니다. “모든 기도와 간구로 하되 무시로 성령 안에서 기도하고 이를 위하여 깨어 구하기를 항상 힘쓰며”라고 했습니다. 기도가 반드시 필요한 이유는, 기도는 영적으로 깨어 있다는 증거가 되기 때문입니다. 군인이 아무리 차원 높은 훈련을 받고 최신 무기로 무장했더라도 졸음을 이기지 못하고 꾸벅꾸벅 졸고 있다면 적을 물리치기는커녕 자기의 목숨도 보전하지 못하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군대에서는 밤낮으로 보초를 세웁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영적인 파수꾼입니다. 항상 깨어 있어야 할 사명이 있습니다. 겟세마네 동산에서 예수님께서 땀이 핏방울처럼 되도록 간절히 기도하시는 동안에 제자들은 다 쓰러져서 졸며 잤습니다.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있어 기도하라”고 주님께서 경고하셨건만 그들은 주님의 말씀의 심각성을 깨닫지 못했습니다. 그 결과, 그 날 밤에 모든 제자가 예수님을 버리고 도망했으며, 수제자 시몬 역시 세 번이나 주님을 모른다고 부인하는 패배를 맛보아야 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님들, 마귀는 깨어 기도하는 성도들을 무서워합니다. 기도하는 성도들은 마귀의 궤계를 알아차릴 수 있는 영적 통찰력을 갖게 됩니다. 그러면 어떻게 기도해야 할까요? 먼저, 모든 기도와 간구로 하라고 했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자기 삶의 모든 것에 대하여 기도로써 하나님의 뜻을 물어야 합니다. 쉬운 일이든, 어려운 일이든 우리는 우리의 뜻대로 하지 말고 기도로써 하나님의 뜻을 묻고 그 인도하심을 구해야 합니다. 이에 대하여 빌립보서 4장 6절로 7절에는 “6)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7)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성도들은 기도하되 간절하게, 적극적으로 기도해야 합니다. 얍복강 가에서 천사와 더불어 씨름했던 야곱처럼 끈기 있고 적극적인 자세로 기도해야 합니다. 우리는 주님으로부터 “너희가 얻지 못함은 구하기 않기 때문이요”라는 책망을 듣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응답이 임할 때까지 기도의 줄을 놓지 말고 끝까지 붙잡고 기도해야 합니다.
또 기도하되 무시로 성령 안에서 기도하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쉬지 않고 할 수 있는 것은 숨 쉬는 것인데, 성경은 우리에게 “쉬지 말고 기도하라”고 말씀하였습니다. 성령 안에서 무시로 기도하라는 말씀도 이와 같은 내용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우리가 누구를 위해서 기도해야 할까요? 먼저, 우리 자신을 위해서 기도해야 합니다. 나 자신이 하나님 앞에서 온전한 신앙인이 되게 해 달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주님께서 주신 사명을 자각하고 충성하는 일꾼이 되게 해 달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인격을 닮아갈 수 있도록 도와 달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그런 다음, ‘여러 성도를 위하여 구하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나 자신을 위해서만 기도할 것이 아니라, 한 교회에서 신앙생활을 하는 여러 성도들을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믿은 지 얼마 되지 아니한 형제들을 위해서 기도하고, 삶에 어려운 문제를 만난 형제들을 위해서도 기도해야 합니다. 또 우리는 서로 “기도해 달라”고 부탁해야 합니다.
그뿐 아니라, 사역자들을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에베소서를 쓸 당시에 사도 바울은 로마 감옥에 갇혀 있었습니다. 그가 옥에 갇힌 것은 무슨 범법 행위로 인한 것이 아니라 오직 복음을 전하는 일로 인함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자신을 일컬어 ‘이 일을 위하여 내가 쇠사슬에 매인 사신이 되었다’고 했습니다.
성도님들께서는 기도하실 때마다 목회자들을 기억하고 기도해 주시기 바랍니다. 사도 바울과 같은 위대한 사도도 자기를 위해 기도해 달라고 부탁했다면 그 외의 사람들은 더 말할 나위가 없을 것입니다. 그와 더불어 교회에서 직분을 맡은 성도님들을 위해서 기도해 주시기 바랍니다. 구역장님들을 위해서, 교회학교 선생님들을 위해서, 성가대 지휘자와 반주자, 대원들을 위해서, 남녀 선교회의 임원들을 위해서, 또 찬양단을 위해서 기도로써 후원해 주시기 바랍니다. 그뿐 아니라, 주일마다 차량으로 봉사하시는 성도님들과 만나실에서 점심을 만들어 대접하는 분들을 위해서도 기도해 주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열심히 기도로써 후원할 때 저들이 지치지 아니하고 기쁨으로 사명을 감당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님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은 누구나 영적 싸움이 있습니다. 마귀의 시험과 핍박이 다가오게 되어 있습니다. 그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고 우리가 그리스도 예수께 속한 사람이라는 표시와도 같습니다. 그러므로 시험과 핍박이 다가올 때 두려워할 것이 아니라 그 모든 것을 이기고도 남도록 주 안에서 성령의 능력으로 강건해져야 합니다.
그와 동시에,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고, 성령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으로 무장하고, 늘 깨어 기도해야 합니다. 그리스도 예수의 군사로서 항상 주님의 명령에 순종하며 나아감으로 우리 주님 강림하실 그날까지 날마다 영적 싸움에서 승리를 구가하며 살아가시는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