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을 바꾸라
본문
본문: 빌4:6-8
저는 오늘 "생각을 바꾸라!"는 제목으로 함께 은혜를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하나님의 능력은 무한합니다. 그러나 그 무한한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나지 않는 것은 우리 속의 그릇된 생각 때문임을 알아야 됩니다.
여러분, 자동차 운전을 해보셨습니까? 시동을 건 뒤에 기어를 전진 기어를 넣고 패달을 밟으면 차가 앞으로 가지만, 백기어를 넣고 패달을 밟으면 차가 뒤로 갑니다. 같은 자동차인데, 같은 패달인데, 기어를 어떻게 넣느냐에 따라서 차의 방향이 결정되는 것입니다. 전진기어를 넣어야 앞으로 차가 가고, 후진기어를 넣으면 차가 뒤로 갑니다. 똑같은 상황 속에서도 우리가 생각을 어떻게 가지느냐에 따라서 우리의 운명이 결정되는 것입니다.
잔잔한 호수에 두 돛단배가 있습니다. 남쪽에서 바람이 붑니다. 그런데 하나의 돛단배는 동쪽으로 가고, 하나의 돛단배는 서쪽으로 갈 수 있습니다. 어찌 그런 일이 있을 수 있습니까? 그럴 수 있습니다. 배의 방향을 결정하는 키를 동쪽으로 돌리면 배가 동쪽으로 가고, 키를 서쪽으로 돌리면 배가 서쪽으로 갑니다. 사람의 생각은 배의 키와 같은 것입니다. 우리의 생각을 어떻 게 가지느냐에 따라서 모든 것이 결정된다는 것입니다.
한 소년이 선생님을 찾아와 상담을 했습니다. "저는 날마다 아버지의 구두를 닦아요. 그런데 그 일이 정말 싫어요. 무슨 묘안이 없을까요" 교사는 그 소년에게 한 가지 충고를 해 주었습니다. "좋은 방법이 있단다. 내일부터 아버지의 구두를 대통령의 구두로 생각하거라. 그러면 짜증과 고통이 사라질 것이다" 소년은 이튿날부터 아버지의 구두를 닦으며 마음속으로 생각했습니다. "이 구두는 대통령 할아버지의 구두다. 대통령의 구두를 닦는다는 것이 얼마나 영광스러운가"
그런데 그때부터 구두를 닦는 일이 전혀 힘들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이 일이 영광스럽고 기쁘게 여겨졌습니다. 무슨 일이나 억지로 하면 고통스럽습니다. 그러나 사랑을 갖고 하는 일은 '능률'과 '기쁨'을 가져다줍니다. 가족과 친구와 직장에 대해 항상 불만을 나타내는 사람은 누구에게도 환영받지 못
합니다. 애정을 갖고 일하는 사람은 반드시 능력을 인정받습니다.
1. 생각의 차이
사람은 그가 속해 있는 대로 무엇이든 생각합니다. 사람에 따라서 그 생각이 다릅니다. 같은 시간에 같은 장소에서 같은 저수지를 보아도 강태공은 물고기 낚을 생각을 하고, 수영선수는 수영할 생각을 하고, 보트 타기를 즐기는 사람은 보트탈 것을 생각하고 농부는 논에 물 줄 것을 생각합니다. 똑같은 꽃을 보아도 '아, 참 꽃이 이쁘다'고 일반적으로 생각하는데 화초재배를 전문으로 하는 사람은 '이 꽃은 원산지가 어느 나라인데 영양상태가 참 좋다' 등을 생각합니다. 또 꽃꽂이 전문가는 '이 꽃은 어떻게 꽂았으면 아주 돋보이겠는데'하고 생각합니다. 꽃장사는 '이 꽃은 한 송이에 얼마씩 하니까 다 하면 얼마가 되겠구나'고 마음속으로 생각합니다. 자기가 속해 있는데 따라서 그 생각하는 것이 다릅니다.
같은 동그라미 4개를 보고도 어떤 사람은 화살 과녁이나 사격표시판을 생각하고, 또 어떤 사람은 용수철이나 모기향을 생각하고 또 어떤 이는 80점을 생각하고, 또 어떤 이는 단순히 동그라미 네 개를 그렸다고 봅니다. 심지어 어떤 사람은 동그라미 그림이 잘 그려지고 못 그려진 것을 생각합니다.
어느 백화점에는 엘리베이터가 너무 느리게 움직여서 고객들이 불평이 컸습니다. 고장나서 그런 게 아니고 본래부터 그렇게 느린 것이었습니다. 이제 고객들의 불평이 너무 심해 백화점 지배인은 이 문제를 엔지니어인 자문위원회에 문의했고 자문위원회는 6명의 기술자를 동원해서 분석하고 연구해서 속도 증가에 필요한 대책을 일주일만에 내놓았습니다. 그러나 이 보고서를 받고 지배인은 새로운 걱정이 생겼습니다. 문제는 새로운 장치, 새로운 디자인을 하는데 엄청난 예산이 드는 것이었습니다. 이 소식을 들은 이 백화점에서 청소하는 아주머니가 지배인에게 말하기를 "내게 단 돈 5만원만 주면 이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하였습니다. 지배인은 속는 셈치고 청소부 아줌마에게 단돈 5만원을 주었더니 이 아주머니가 가서 큰 거울을 사다가 엘리베이터 안에다가 떡 걸어 놓았습니다. 전에는 엘리베이터가 오르내릴 때 그 상자 속에 들어가서 무료하게 서 있노라니까 지루하게 느꼈는데 거울이 있다보니까 얼굴을 비춰보고, 넥타이를 고쳐매고, 머리도 다시 마지고, 어떤 여자는 루즈도 바르고, 또 어떤 사람은 얼굴로 웃어보기도 하고... 이렇게 하다보니까 "덜커덩! 벌써 다 왔네." 그리고 내리게 되어 아무도 불평하는 고객이 없었다고 합니다. 엘리베이터는 그냥 여전히 느린데도 그 순간 "내가 무엇을 생각하고 있느냐?"에 따라 달라지는 것입니다.
2. 생각이 운명을 바꿉니다
우리는 항상 생각을 하며 삽니다. 생각은 행동을 만들며 행동은 습관을 형성하고 습관은 한 사람의 운명을 좌우하게 됩니다. 그래서 생각을 어떻게 하느냐의 문제는 한 사람의 인생에 매우 중요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주께서 심지가 견고한 자를 평강에 평강으로 지키시리니 이는 주를 의뢰함이니이다”(사 26:3) 여기서 ‘심지가 견고한 자’는 하나님만을 굳게 붙잡고 의지하는 마음을 가진 사람을 의미합니다.
사람의 마음은 하나님이 거하시는 성전이 되든지, 마귀가 활동하는 운동장이 되든지 둘 중 하나가 됩니다. 그래서 지혜의 왕 솔로몬은 “무릇 지킬 만한 것보다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잠 4:23)고 한 것입니다. 생각이 운명을 바꿉니다.
첫째, 복된 생각은 하나님이 주십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감사하며 기도하면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마음과 생각을 지켜 주십니다 기도와 간구하고자 하는 마음을 하나님이 주십니다(슥 12:10). 교회와 이웃을 위해 봉사하고 싶은 마음, 불신자에게 전도하고 싶은 생각, 연보 드리고 계명 지키며 살고 싶은 생각은 하나님이 주는 생각입니다. 하나님은 택한 백성에게 평안과 장래에 소망을 주려고 생각하시는 분입니다(렘 29:11).
둘째,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고 불순종하고 싶은 생각은 마귀가 줍니다. 가룟 유다의 마음속에 예수님을 팔려는 생각을 준 자는 다름 아닌 마귀였습니다(요 13:2).
마귀는 욕심과 음란과 시기와 질투와 미워하는 생각을 주는 자이며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고 불순종하고 싶은 마음을 주는 사악한 자입니다. 악인은 그 모든 사상에 하나님이 없다고 하고(시10:4), 불선한 길을 행하고 계획합니다.(사65:2) 미련한 자의 생각은 죄입니다.(잠24:9) 그러므로 정신을 차려야 합니다(벧전 5:7∼8).
셋째, 사람은 생각을 바꿀 때 운명이 바뀝니다. 왕하 5장 9∼14절에 보면 아람나라 군대 장관은 한센병자로서 그 병을 고침 받고 싶어 선지자 엘리사를 찾아왔다가 자기 생각에 맞지 않는다며 화를 내고 돌아섰습니다. 즉, 엘리사가 그의 종을 통해 병을 고치려거든 요단강에 가서 일곱 번 씻으라고 한 말이 자기 생각과 맞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수행원들이 병을 고치려면 선지자의 말을 들어야 한다고 간청하자 그때서야 자기가 국방장관이 아닌 문둥병자임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는 생각을 바꾸어 선지자의 말씀대로 순종하였습니다. 그때에 그의 살이 어린아이처럼 되었습니다. 하나님과 원수가 되는 육신의 생각에서 하나님이 기뻐하는 생각으로 바꿀 때 하나님의 구원이 나타나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생각이 우리에게 어떻게 나타납니까? 하나님의 생각은 기록된 성경말씀을 통해서 우리에게 나타납니다. 그리고 성령의 감동을 통해서 하나님의 생각이 우리에게 전달됩니다. 때로는 주의 종들이 증거한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 설교를 통해서, 혹은 간증을 통해서 하나님의 생각이 우리에게 전달됩니다. 그 하나님의 생각을 받아들이고, 그 하나님의 생각을 따라서 살아가는 것, 그것이 바로 승리적인 삶을 살아가는 방법인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하나님 외에는 구원자가 없음을 기억합시다. 시편 16:2절에 "내가 여호와께 아뢰리니 주는 나의 주시오니 주밖에는 나의 하나님이 나의 구원자가 나의 복이 없나이다"하고 했습니다. 다윗은 시편 18:1절 이하에서 "나의 힘이 되신 여호와여 내가 주를 사랑하나이다. 여호와는 나의 반석이시요 나의 요새시요 나를 건지시는 자시요 …그러므로 내가 찬송 받으실 여호와께 아뢰리니 내 원수들에게서 구원을 얻으리라"고 하였습니다.
신앙과 불신앙의 차이, 그것은 생각의 차이입니다. 그리고 각 사람의 운명은 그 사람의 생각에 의해 결정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이 주시는 언약의 말씀, 하나님이 주신 복된 생각을 믿음의 손으로 부여잡고 하나님 편에 서서 하나님의 눈으로 문제를 바라보며, 하나님이 원하는 쪽으로 나아가면 그 곳에 도우시는 주의 손길, 도우시는 주님의 지혜가 우리와 함께 할 줄을 믿습니다.
3. 소극적인 생각을 적극적인 생각으로 바꾸라
미국의 소매상협회에서 세일즈맨의 거래실적과 집념의 상관관계를 연구, 공개했습니다. 물건을 판매할 때 세일즈맨 중 48%는 단 한번 권유하고 포기합니다. 두 번 권유하는 사람은 25%였습니다. 세 번 권유하는 세일즈맨은 15%였습니다. 세일즈맨 중 오직 12%만이 네 번 이상 권유한다고 응답했습니다. 그러나 놀라운 사실은 네 번 이상 권유하는 12%의 세일즈맨이 전체 판매량의 80%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결국 88%의 세일즈맨이 판매한 상품은 고작 20%에 불과했습니다. 열 번 찍어 안 넘어가는 나무가 없습니다. 상품을 판매하는데도 이런 무서운 집념과 인내가 필요합니다. 하물며 영혼을 구원하는 일이야 오즉하랴. 어떤 사람은 서너 번 전도해 보고 낙담해 '안 믿으면 저만 손해지, 뭐'라고 자기를 합리화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런 성도는 영혼을 구원하는 프로 세일즈맨이 될 수 없습니다. 진정한 프로는 환경을 탓하지 않습니다. 오직 인내하며 최선을 다합니다.
영국의 정신병 학자인 하드필드가 밝힌 실험 결과는 대단히 흥미롭습니다.
그의 실험은 사람의 정신 암시가 육체의 힘에 얼마만한 영향을 주는 가에 대한 것이었습니다. 3명의 남자에게 보통의 상태에서 힘껏 악력계를 쥐게 했을 때 그들의 평균 악력은 101파운드였는데 그들에게 '당신은 참으로 약하다.'고 암시를 준 후 다시 재어보았더니 겨우 29파운드로 보통 힘의 1/3이하로 떨어졌다고 합니다. 이번에는 '당신은 강하다.'는 암시를 준 후 재어 보았더니 무려 142파운드에 달하는 결과가 나왔다고 합니다. 이 실험은 나는 강하다는 적극적인 정신 상태로 충만해지자 그들의 체력은 소극적이고 부정적이었던 상태 때보다 무려 500%나 그 힘이 증가했다는 것을 밝혀줍니다.
'난 약하다, 난 못한다.'는 마음으로 포기하려는 유혹만큼 우리를 쉽게 쓰러 뜨리는 것도 없습니다. 자신의 생각을 '난 강하다, 난 해낼 수 있다.'는 마음으로 바꾸기만 한다면 포기해버릴 때보다 다섯 배는 나아질 것입니다.
프랑스 파리에 앙또앙누라는 한 걸인이 있었습니다. 그는 파리의 대로에 앉아서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손을 내밀었습니다. 아르노라는 한 중년의 신사는 매일 그에게 동전을 던져주었습니다. 그러나 걸인의 몸이 건강한 것을 보고 하루는 통렬하게 그를 꾸짖었습니다. "당신처럼 사지가 멀쩡한 사람이 구걸을 한다는 것은 스스로에게 부끄러운 일이오. 나도 한때는 당신처럼 걸인이었소. 그러나 나는 돈 대신 책을 구걸했소. 리어커를 끌고 마을을 다니며 헌책과 종이를 모아 제지소에 팔았소. 지금은 그 돈으로 제지공장을 세워 사장이 됐다오"
그 날부터 거리에서 앙또앙누의 모습이 사라졌습니다. 한번은 아르노씨가 파리의 한 서점에 들렸더니 서점 주인이 다가와 절을 하며 말했습니다. "제가 10년 전 파리의 걸인입니다. 선생님의 따끔한 충고를 받아들여 지금은 50명의 직원을 거느린 서점의 주인이 됐지요"
사람을 황폐하게 만드는 것은 절망입니다. 생각을 바꾸면 희망의 미래가 보입니다. 사람은 자신이 생각하는 모습대로 되는 것입니다. 지금 자신의 모습은 자신의 생각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내일 다른 위치에 있고자 한다면 자신의 생각을 바꾸면 됩니다. 생각은 자기 안에 있는 또 하나의 '나'입니다. 자기 안에 숨겨진 내면의 얼굴입니다. 생각이 고우면 자기 얼굴도 고와지고, 생각이 뒤틀리면 자기 얼굴도 뒤틀립니다.
우리는 적극적인 생각으로 인생을 살아야 하며 적극적인 태도로 일을 해야 합니다. 전도하는 일, 봉사하는 일, 섬기는 일과 교회활동도 구경꾼이 되지 말고 주인정신으로 참여합시다. 더웁지도 아니하고 차지도 않은 미지근한 신앙생활을 버리고 적극적인 자세로 신앙생활을 해야 합니다.(계3:16)
4. 부정적인 생각을 긍정적인 생각으로 바꾸라
한 소년이 골목길에서 놀고 있었습니다. "딱-" 갑자기 돌이 날아와 소년의 눈을 때렸습니다. 친구가 돌을 던졌는데 그것이 그만 한쪽 눈에 명중한 것입니다. 소년은 눈을 손으로 잡고 쓰러졌습니다. 손가락 사이에서 피가 흘러나왔습니다. 소년의 부모가 달려왔습니다. 그리고 급히 병원으로 데리고 갔습니다. "크게 다쳤군요. 나머지 한쪽도 못 쓰게 되어 앞으로 볼 수 없게 될 것입니다." 의사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습니다. 부모는 비통한 표정으로 서 있었습니다. 그때 소년은 말했습니다. "엄마, 아빠! 눈을 잃었으나 머리는 남아 있어요." 이 소년은 평생을 시각장애자로 살았습니다. 그러나 "머리"가 남아 큰 인물이 되었습니다. 바로 이 소년이 앞을 보지 못했지만 영국의 위대한 경제학자요, 캠브리지 대학교수요, 국무위원을 지낸 헨리 포세트입니다. 긍정적인 마음의 생각을 갖고 사는 사람은 반드시 성공하게 마련입니다.
육체의 장애가 인생의 장애가 될 수 없습니다. 토마스 에디슨은 그의 나이 30세에 축음기를 발명했습니다. 시간과 공간을 초월해 만인의 귀에 노래를 담아 준 이 축음기는 정상인의 귀를 가진 사람이 발명한 것이 아닙니다. 에디슨은 어린 시절부터 귀머거리였습니다. 존 밀턴은 완전히 실명된 상태에서 "실낙원"이란 불후의 명작을 남겼습니다. 인생의 장애가 되고 인생을 붕괴시키는 것은 마음의 장애입니다. 마음의 장애는 정상을 비정상으로, 질서를 무질서로 바꾸어 놓습니다.
어느 유명한 대학에 목발을 짚고 다니는 학생이 있었습니다. 평범한 성격의 그 학생은 아주 쾌활하며 동시에 낙관적이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공부도 잘해 많은 상을 타기도 했고, 동료 친구들로부터 존경을 받기까지 하였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한 친구가 어떻게 해서 그러한 불구의 몸이 되었느냐고 물어보았습니다. "소아마비 때문에" 그는 이와 같이 간단하게 대답했습니다. "그러면 자신감 있는 네 행동의 비밀을 말해줄 수 있겠니?" 친구는 조심스럽게 물었습니다. 그러자 그는 "별 것 아니라구. 병이 내 마음까지 파고든 것은 아니였기 때문이지" 세상만사는 마음의 생각에 따라 달라집니다. 유대인들은 자녀교육을 할 때 긍정적인 사고와 비전을 강조합니다. 그들은 성경에 등장하는 다윗 소년과 거인 골리앗의 싸움을 종종 인용합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골리앗을 물리치기에는 너무 큰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그들은 두려움에 떨며 감히 저항하지 못했다. 그러나 다윗은 돌팔매가 빗나가기에는 골리앗의 몸집이 너무 크다며 자신만만하게 덤볐다. 의식의 출발점을 어떻게 잡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결과가 나타난다"
미국의 어느 철도회사에서 실제로 있었던 사건입니다. 이 회사에서는 늘 냉동차가 역에서 정차하고 있는 동안 그 차안을 청소하는 것이 상례였습니다. 그런데 불행히도 냉동차 안에서 청소를 하고 있다는 것을 모르고 누군가가 문을 잠가버리고 말았습니다. 그 다음날 아침 다시 이 냉동차의 문을 열었을 때는 이 냉동차에 갇혀 있었던 그 사람은 싸늘한 시체로 발견되었습니다. 회사가 발칵 뒤집혔습니다. 사건경위를 추적하는 가운데 참으로 이해할 수 없는 이상한 사실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그 냉동차는 청소하느라고 스위치를 뽑은 상태였기 때문에 그 안에 갇힌 사람이 얼어죽을 만큼 기온이 떨어진 것도 아니었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산소가 부족해서 질식할 정도로 그 냉동차가 적은 것도 아니었습니다. 얼어죽을 만큼 기온이 떨어진 것도 아니요, 산소도 충분했다고 하면 청소하던 그 사람은 무슨 이유로 하루밤을 넘기지 못하고 죽었을 까요? 이 사건을 조사하면서 갇혔던 청소부는 자기가 갇혔다는 것을 안 순간 그는 절망에 빠지게 되었고 자신은 냉동차 안에서 동태처럼 꽁꽁 얼어죽게 되었다고 굳게 믿었고, 이 생각 때문에 사실은 죽어야 할 아무런 객관적인 이유가 없는 그 상황을 이겨내지 못하고 죽고 만 것입니다.
어느 대기업에서 아프리카 진출을 위한 시장조사를 위해 2명의 사원을 현지에 보냈습니다. 그것은 아프리카에 신발을 수출하기 위한 사전 조사였습니다. 그들은 모든 조사를 마치고 본국으로 돌아와서 사장에게 보고를 했습니다. "아프리카 사람들은 한 사람도 신발을 신은 사람이 없습니다. 무한한 시장성을 갖고 있습니다."라는 긍정적인 보고와 "아프리카 사람들은 한 사람도 신발을 신고 다니는 사람이 없습니다. 한 켤레의 신발도 팔 수 없습니다."라는 부정적인 보고였습니다.
가나안 땅으로 보내졌던 12명의 정탐꾼들은 똑같은 것을 보고 왔습니다. 그런데 열명은 부정적인 사람이었고, 여호수아와 갈렙 두 사람은 현실뿐만이 아니라 현실 위에 계시는 하나님을 바라본 긍정의 사람이었습니다.(민13장) 하나님은 바로 이 긍정적인 두 사람 곧 여호수아와 갈렙을 통해서 이스라엘 역사를 유지시켰습니다. 술이 반쯤 들어있는 컵을 보고 어떤 사람은 반 밖에 안 남았다고 말하고, 또 어떤 사람은 아직도 반이나 남았다고 말합니다.
" 지혜자의 마음은 오른 편에 있고 우매자의 마음은 왼편에 있느니라"(전10:2)
무엇이든 플러스 발상을 하는 습관을 가진 사람은 면역성이 강하여 좀처럼 병에 걸리지 않습니다. 그러나 늘 마이너스 발상만 하는 사람은 한심스러울 정도로 쉽게 병에 걸리고 맙니다. 똑같은 상황, 똑같은 라이프 스타일임에도 불구하고 생기 있고 건강한 사람이 있는가 하면 늘 기운이 없고, 병약한 사람이 있습니다. 이 같은 차이는 대부분 ‘마음가짐’에서 시작됩니다. 사람의 몸은 신비합니다. 마음가짐에 따라 전혀 다른 체내(體內) 물질이 생성됩니다. 분노, 불만, 공포를 느끼면 몸을 해치는 아드레날린이라는 호르몬이 분비되지만, 웃음, 기쁨, 감사, 매사 긍정적 사고를 하면 엔돌핀이라는 행복 호르몬이 나옵니다. 오늘부터라도 플러스 발상을 하십시오. 손해볼 게 전혀 없습니다.
우리는 하루에도 수없이 많은 생각들을 하면서 지냅니다. 요즘 당신은 주로 어떤 생각을 하면서 지내십니까? 인간의 위대함은 그 사람의 생각의 위대함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므로 우리는 늘 성경말씀을 마음속에 두고,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을 본받으며(마 11:29, 골3:12-15), 긍정적인 마음을 갖고 살아야 하겠습니다.
5. 육신의 생각을 영적인 생각으로 바꾸라
육신의 생각과 육체의 일은 음행과 더러운 것과 호색과 우상숭배와 술수와 원수를 맺는 것과 분쟁과 시기와 분냄과 당 짓는 것과 분리함과 이단과 투기와 술취함과 방탕함과 교만과 거짓과 탐욕이고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충성과 온유와 절제입니다.(갈5:19-23)
이제 우리가 참된 생각을 갖기 위해서는 육신의 생각과 육신의 일을 버리고 영을 좇아 영의 생각과 일을 행하고(롬8:5), 위엣 것을 생각하고 땅엣 것을 생각지 말아야 합니다.(골3:2) 특히 우리는 하나님께서 주시는 좋은 생각을 얻기 위해서 하나님 말씀에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붙들고 그 말씀에 끌려서 앞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그때에 하나님의 신이 우리와 함께 하는 것입니다.
"종말로 형제들아 무엇에든지 참되며 무엇에든지 경건하며 무엇에든지 옳으며 무엇에든지 정결하며 무엇에든지 사랑할 만하며 무엇에든지 칭찬할 만하며 무슨 덕이 있든지 무슨 기림이 있든지 이것들을 생각하라"(빌4:8)
성도 여러분, 우리 모두 능하고 강하신 하나님을 전적으로 신뢰하고 그 분이 주는 생각을 받아 하나님의 생각을 따라 사십시다. 그리하면 언제나 하나님의 평강이 그 사람에게 임하게 될 줄로 믿습니다. 그와 같은 은혜가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감사합니다.
* 기도: 하나님! 복된 생각으로 복된 삶을 살게 하소서. 하나님과 원수 되는 육신의 생각을 십자가에 못 박고 성령의 인도를 받는 영의 생각으로 승리하게 하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한태완 목사(하나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