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사는 사람들 (마 6:1-4, 19-21)
본문
세상의 모든사람들은 죽는것은 원하지 않고 살기만을 원합니다,
살기를 원하되 보다 잘 살기를 원 합니다.
예수님을 믿지 아니하는 자연인은 잘 살다는 말을 대개 세 가지로 말 합니다
첫째로, 돈이 많아서 좋은 음식을 먹고, 좋은 옷 입고, 좋은 집에서 모든 문화시설을 갖추어 편리하게 사는 사람을 가르켜서 잘사는 사람이라고 말니다
둘째로, 높은 벼슬에 있으며 어디를 가든지 큰 소리 치며 권세가 당당하게 사는 사람을 잘살더라 그럽니다.
셋째로, 지식과 지혜가 깊고 넓으며 기술이 능란하여 어디를 가든지 지도자가되고 대접을 받으면 잘사는 사람으로 생각 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다릅니다.
1. 남을 위해 회생할 줄 아는 사람이 잘사는 사람입니다
우리 인간은 누군가를 위해서 살아야 할 것입니다.
그래야 보람과 행복을 느낍니다.
나만을 위가해 사는 사람, 그래서 가족도 이웃도 타인들의 행복을 짓밟아 버리고, 다 강탈하면서 나만을 위하여 사는 삶은 불행합니다.
또한, 남을 생각도 해 본적이 없고, 남을 사랑해 본적도 없고,
희생해 본적도 없이 살아가는 사람은,
어리석고 불행한 사람입니다.
예화> 경찰서에 매춘부 한사람 붙들려 왔는데, 이 사람은 벌써 여러번 붙들려 왔기 때문에 경찰서에서 야단을 맞았습니다.
그러더니 고개를 숙이고 하는 말이 "내가 이 일을 하고 싶어서 하는 것이 아니랍니다.
이 여성은 비록 매춘부이지만 남을 위해 산다는 생각으로 위안을 받고 있는 것입니다.
일종의 보상심리가 작용하고 있습니다.
만약에 이 여성이 자기를 위하여 이런 짓을 하고 있다면 아마 벌써 목숨을 끊었는지도 모릅니다.
반면에 누구를 위하서 살 대상이 없으면 불행합니다. 보람과 인생의 의미가 없습니다.
인생은 누군가를 위해서 살아야 합니다.
이를 위하여 태어난 것입니다.
누구가를 위하여 일을 할 때, 힘은 들지만 거기에 보람이 있고, 기쁨이 있는 것입니다.
남편이 가족을 위하여 수고 하는 일,
아내가 가족을 위하여 수고하는 일,
좀 힘은 들고, 고생은 되겠지만 거기에 소망이 있고, 행복과 보람이 있는 것입니다.
더 나은 사람이 있습니다.
그것은 이웃을 위해 사는 사람들입니다.
이웃의 유익을 위하여좀 봉사해 보려고 애쓰는 사람, 훌륭합니다.
특별히!
이웃사람의 영혼을 구원하기 위하여 애쓰는 사람,
이웃의 영원한 생명을 얻기 위하여 수고 하고, 애쓰는 사람 정말 귀합니다.
또 국가를 위하여 애쓰고 수고하는 사람, 아주 귀한 사람입니다.
애국자 이지요.
안창호, 윤봉길, 조만식, 김구 같은 사람입니다.
그보다 더 귀한 사람이 있으니, 민족 복음화를 위해, 온 세계를 위하여 목숨을 던지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민족과 세계의 영혼들의 복음을 위하여 끊임없이 기도합니다.
바울은 내게 유익하던 것을 그리스도를 위하여 다 해로 여길 뿐더러라고 했습니다.
자기에게 해가되는 것을 끊어버리기도 어렸습니다.(술, 담배등)
자기에게 유익한 것을 끊어버리기는 더욱 어려울 것입니다.
그러나 바울은 단호하게 내게 유익한것도 그리스도를 위해 다 해로 여긴다고 했습니다.
예화> 20세기 정신적 거성중의 한 사람인 슈바이처 박사는 목사의 아들로 태어나 공부하던 중에 어덯게 하면 예수님처럼, 바울처럼 살수있을까?
고민하던 중 무었인가 인류를 위해 봉사해야 되겠다고 생각하게 됩니다.
그리하여 30세 까지는 자기를 위해 살고,
그후부터는 남을 위해 살겠노라고 결심하게 됩니다.
30세에 이미 목사로, 신학자로서, 대학교수로서, 또 음악가로서 명성을 떨치고 있었습니다.
그러면 남을 위하여 무엇을 할 것인가?
무슨 일로 인류에게 봉사할 것인가?
그는 어느날 신문을 보고, 그의 인생의 사명을 발견했습니다.
아프리카 콩고 지방에서 흑인에게 의료 봉사를 할 하나님의 일꾼을 구하고 있다는 내용이었습니다.
그는 자기가 할 일을 깨닫고 의학공부를 7년간한 후에 부인과 함께 아프리카로 떠났습니다.
거기서 90세가 되도록 흑인들을 위해 봉사했습니다.
슈바이처로 하여금 90평생을 흑인을 위하여 봉사하게 한 힘은 무엇이겠습니까?
인류의 역사상 빛나는 위대한 삶을 살았던 사람들은 예수믿어 수지맞고 많은 것을 누린 사람이 아니라,
거룩한 손해를 본 사람들입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을 평가하실때 주님을 위한 적자액을 가지고 평가 하십니다.
주님을 위한 나의 적자액을 얼마 입니까?
주님을 위해 손해보는 것이 있어야 잘살고 있는 것입니다.
주님위해 시간 손해를 보고 있습니까.
주님위해 물질 손해를 보고 있습니까?
주님위해 잠을 손해 보고 있습니까?
주님위해 취미 손해도 보고 있습니까?
주님을 위해 잃은 만큼 그의 삶이 빛나고, 하늘의 상급이 쌓이게 됩니다.
2. 주면서 사는 삶이 잘사는 삶이다.
받는 삶보다 주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1) 삶을 가장 부요하게 하는 원리.
하나님의 본심 (요 3:16)
자연의 섭리 - 심고 거두는 법칙.
예수님의 언약 (눅 6:38)
2) 무엇을 어떻게 줄 것인가?
물질을 주어야 합니다. 받는 것 보다 주는 것이 더 복된 삶입니다.
(복음, 선교, 이웃구제)
많은 사람들이 물질을 받고, 모으고, 저축하는 것이 복된 것이라고 여기고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오히려 물질을 나누어 주고,
구제하는 삶이 더 복있는 삶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기독교인은 얼마나 벌었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어디에 어떻게 사용하였느냐가 더 중요한 것입니다.
만일 우리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물질을 혼자만을 위하여 쓸 것이 아니라, 복음과 가난한 자들을 위하여 사용한다면 복음 사역에 유용하게 사용되며 가난한 이웃들과 도움을 준이가 같이 복을 누리게 될 뿐 아니라, 천국에서 상이 큰 축복까지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예화> 록 펠러는 그의 재산의 1분당 백달러의(1억원) 이자가 늘고 있으며, 지금까지 6천 억원을 남에게 주었는데, 이돈은 3천 5백년동안 매일같이 40만원씩 남에게 준셈이 됨답니다.
그가 자기 재산을 유지하는 최대의 비결이 남에게 주면서 사는 것이라고 했답니다
믿음, 소망, 사랑을 주자.
정신을 위한 지식을 줄수도 있습니다.
복음(전도,선교) -- 받는 것보다 주는 것이 더 복이 있습니다
3. 예수님 처럼 살려면 후세에 남을 업적이 있어야 한다.
잘산 사람은 수천년이 지나도, 그 업적이 없어지지 않고 변하지 않아야 합니다.
“네 보물을 하늘에 쌓아 두라”고 가르치고 계십니다.
하늘에 쌓아둔것은 영원히 없어지지 않는 것입니다.
보물이 무엇입니까. 갑지고 귀한것이 보물입니다.
건강과 시간은 귀하기에 보물입니다. 얻기가 힘든것이 보물 입니다.
그러기에 재물도 보물입니다.
지식 얻기도 힘듭니다. 그러기에 지식도 보물 입니다.
힘들게 얻은 것이기에 없어지지 않는 하늘에 쌓아 놓으라는 것입니다.
예화> 인도의 여인들은 “사랑하는 자기 어린 아이를 겐지스강 속의 악어에게 던지는 것을 굉장한 미덕으로 알고 있답니다.
이같이 고귀한 보물을 허탄한 곳에 쏫아 버리는 것을 무슨 큰 자랑으로 알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돈 많은 부자들이 돈을 쏫는곳이 겨우 주색잡기나 사치나 허영으로서 탕자처럼 인생 낭비를 일삼고 있는 것입니다
하늘에 쌓아두는 구체적인 방법이 무었 입니까?
하루 하루를 주께 영광이 되도록 살면, 시간을 하늘에 쌓는 생활이며, 많든지 적든지 재물을 주의 뜻에 합당하게 사용한다면, 이는 재물을 하늘에 쌓는 생활입니다.
예화> 미국 에 라이트만 비처 목사님은 노년으로 은퇴하고, 아들 비춰 목사가 이어 시무를 하게 됐답니다. 어느난 아들 목사님이 설교중에 말하기를 아버지는 일생을 주께바쳐 목사로 봉사 하시느라고 시력도 청각도 미각도 총기도 다 천국에 바치시고서, 지금은 텅 빈집과 같이 보인다고 하며, 우리 다같이 기도하여 천국에 옴겨놓은 아버님의 눈과 귀와 팔과 다리와 젊음을 다시 돌려 달라고 해보자고 하더랍니다.
그러자 아버지 목사가 앞에 나서서 손을 가로 저으며 아니야 .아니야 하면서 힘들게 하늘에 쌓아놓은 것인데, 허물어서는 안된다고 하더 랍니다.
우리들도 열심히 하늘에 쌓아 둡시다.
남을 위했던 일들로, 이웃을 위했선 일들로, 베풀면서, 주면서 사는 일들로,
무엇인가 하늘에 남기고, 쌓일만한 일들을 합시다.
바로 하나님이 원하시는 일들을 합시다.
영혼을 구원하는 일, 가난한 자들을 돌보는 일, 기도하는 일,
봉사하는 일, 전도하는 일, 구제하는 일을 합시다. (강인식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