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인은 대한예수교 장로회(합동) 김인찬 목사입니다.
본문 내용 뒤에 반론 글이 이어집니다.(뒷부분)
***[예수의 죽음과 부활로 본 원죄와 자범죄]***
예수의 십자가의 고통은 자범죄와 연관되며 예수의 육체자체의 죽음은 모든 육체를(원죄) 심판하는 것이며 예수의 부활은 모든 사람들의 자범죄에 대한 심판을 위해서 부활하였다
*예수가 [a:십자가에 고초당하시고]***[b:육체로 죽으시고]***[C:육체로 부활]했다는 의미
a.자범죄의 용서는 십자가에서 고통당한 것으로 대신한 것이며 믿는 자들에게만 적용된다.
b.원죄의 심판은 십자가에서 육체가 죽는 것으로 원죄는 끝이다(재림 때는 원죄 없는 부활)
c.예수의 재림으로 말미암아 모든 사람은 원죄가 없는 완전한 육체로 부활하지만 자범죄가 있는 자들과 없는 자들로 분명히 나누어진다. 그리고 마지막 날에 심판이 있다. 최후에는 영생과 영벌로 나뉘어 지는 것이다.
1) 육체자체의 죽음과 원죄의 심판(모든 자들이 해결 받는다. 모든 자에게 해당됨)
예수는 영혼이 죽은 것이 아닌 육체가 죽은 것이다.
예수는 육체로 죽었는데 모든 육체를 대표해서 이방인과 유대인에게 죽었던 것이다.
예수의 육체적 죽음은 모든 사람을 대표하는 유일한 의인의 죽음이었다.
그 의인 예수의 죽음으로 모든 죄인들의 육체적 죽음은 정당한 죽음으로 확정된 것이다.
예수만이 의인으로 죽었고 모든 사람들은 죄인으로 죽었기 때문에 죄인들의 육체적 죽음은 당연하고도 마땅한 죽음으로 확정되어버린 것이다.(의인 예수의 죽음으로 심판됨)
결국 한 사람 의인의 죽음에 의해서 이 땅에 있는 모든 죄인들의 육체적 죽음은 정당한 죄인의 죽음(심판)으로 선언된 것이다.(예수의 죽음으로 모든 사람의 죽음은 정당한 죽음이됨)
그래서 예수는 노아시대의 죽은 영들에게 영으로 찾아가 자신의 죽음이 유일한 의인의 죽음이었고 나머지 물에 빠져 죽은 모든 인류는 죄인으로 죽어 심판된 것이라고 선포했던 것이다.(의인의 죽음으로 다른 모든 자들을 죄인의 죽음으로 확정한 선언)
세상에서 예수의 죽음만이 유일한 의인의 죽음이며 그것으로 말미암아 다른 모든 육체적 죽음은 마땅히 죽어야 되는 죽음이라고 증거하고 있는 것이다.(죄인의 죽음으로 확정=심판) 또한 모든 사람들은 육체가 죽으면 원죄는 자동으로 끝나게 된다는 것이다.
참고: 예수가 부활 후에 제자들에게 나타나자 제자들은 유령(영)으로 생각한 것이다.
여기에서 영에 대한 이해가 나타난다. 영은 공간을 초월해서 움직인다. 즉 모든 곳에 동시에 어디든지 갈 수 있는 특징이 있다. 성령도 그렇다.
예수가 죽은 후에 지옥(음부)에 내려갔다고 주장하는 자들이 있다. 그러나 예수의 영혼이 음부에 실존적으로 내려간 것보다는 영으로 선포된 것이다. 이는 그의 존재가 직접 내려간 것이 아닌 영으로 그들에게 선포된 것으로 볼 수 있다.(영이 환상으로 나타난다)
2)자범죄의 용서는 예수의 십자가의 고초가 있었기에 해결될 수 있는 것이다.
예수의 육체가 죽은 것은 육체 안에 있는 원죄에 대한 심판이다.(육체자체가 죽은 것)
예수의 육체적 십자가의 고통은 자범죄를 해결하는 고초였던 것이다. 이 자범죄는 [산자]와 [죽은 자] 그 모든 영혼들에게 심판의 기준으로 각각 적용된다. 그 고통을 믿고 자범죄를 사함 받는 신자들과 그렇지 않고 사함을 얻지 못한 불신자들로 나누어진다.
예수가 육체로 죽었기에 모든 육체(사람과 그 외)들도 재림할 때에 죄의 영향이 없는 살림을 얻는다. 즉 예수의 죽음은 모든 원죄에 대한 심판이었고 그 끝은 재림으로 완전히 심판된다. 그리고 새로운 세계와 육체들이 나타난다. 동물의 육체 새의 육체 사람의 육체 등등 모든 육체가 예수의 죽음으로 모두 죽은 것이다.(노아시대의 심판과 같다)
예수가 육체로 죽은 것만이 세상에서 유일한 의인의 죽음이며 그 나머지는 모두 죄인의 죽음이었던 것이다. 의인 예수가 육체로 죽었기 때문에 모든 육체들이 정당한 죽음으로 심판되어 진 것이다. 또한 살아있는 자들의 영혼도 죄인의 영혼과 의인의 영혼으로 각각 구분된다. 즉 성도와 불신자로 각각 구분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죽은 자들의 영혼은 그 기준에 의해서 심판되어 의인은 낙원에 죄인은 음부로 갈라지게 된 것이다.
3)예수의 죽음으로 육체의 원죄가 심판된 결과 다시는 원죄가 없는 세상에서 부활체로 나타난다. 예수가 육체로 부활한 것은 모든 사람들 중에서 대표로 부활한 것이다. 결국 모두 다 예수로 말미암아 신자는 영생의 부활로 불신자는 사망과 음부에서 놓임을 받아 영벌의 부활로 나타날 것이다. 예수가 육체로 부활함으로 말미암아 세상에서 육체로 살았던 모든 자들이 그와 같이 육체로 부활할 것이다.(심판)
예수가 육체로 부활한 것은 모든 사람들 중에서 유일한 만왕의 왕이 된 것이다.(승리의 왕)
예수가 육체로 부활한 것은 믿는 자들만의 왕이 아닌 모든 육체에 해당된다.(보편적 왕)
예수가 육체로 부활한 것이 유일한 것이며 이는 세상에 있는 모든 자들에게 왕이 되신다.
예수가 육체로 부활한 첫 번째 열매인 동시에 모두를 심판하는 왕으로써 나타난다(재림)
4)예수가 죽기 전에 고통을 당한 것은 믿는 자들에게만 죄 사함을 주기 위한 것이다.
예수의 육체적 십자가고통은 자범죄를 위한 것이다. 신자는 사함을 불신자는 얻지 못한다.
예수의 육체적 십자가고통으로 신자는 자범죄를 사함 받아 낙원에 불신자는 음부에 간다.
예수의 육체적 죽음자체는 원죄의 해결이며 십자가의 고통은 자범죄를 위한 희생이었다.
예수의 육체적 피 흘림은 모든 자범죄를 용서하시려는 피 흘림이며 예수의 육체적 죽음은 모든 육체의 원죄를 끝내는 죽음이었다.
ㅡ<위 1, 2, 3, 4번에 대한 설명은 아래와 같다>ㅡ
*(1)예수의 죽음은 모든 자들을 위해서 의인이라는 대표로 죽은 것이다.
곧 그의 죽음이 모든 육체(원죄)의 죽음을 정당한 죽음으로 심판하고 만 것이다.
먼저 예수의 육체자체의 죽음은 모두에게 심판의 기준이 되는 죽음이었다.
의인 예수가 모든 죄인들을 위해 죽었다. 의인의 육체적 죽음으로 말미암아 죄인의 육체적 죽음이 심판되었던 것이다.
모든 죄인들의 육체를 심판하시려고 예수는 모든 육체를 대표해서 의인으로 세상에서 죽으신 것이다. 예수의 죽음으로 모든 사람의 육체가 죄인의 죽음으로 마땅히 심판된 것이다.(의인과 죄인의 육체적 죽음이며 의인의 죽음으로 죄인의 죽음이 정당한 심판으로 확정된 것이다.)
이렇게 예수의 육체적 죽음으로 육체자체와 그 안에 있는 원죄는 모두에게 일반적으로 적용되어 심판된 것으로 볼 수 있다(믿음이 없어도 해결됨) 예수의 육체자체의 부활도 신자와 불신자 그 모두에게 적용된다.(믿음이 없는 불신자들도 부활한다.) 원죄의 끝은 예수의 죽음으로 끝난 것이다. 그리고 육체로 사는 모든 사람들도 예수의 죽음으로 심판되어 죽게 된다는 것이다. 세상에 있는 모두가 그렇게 예수로 심판된 육체의 죽음으로 달려가는 것이다.
*(2)예수의 죽음과 부활로 말미암아 죽은 자들과 산자들이 각각 갈라지는 일이 발생한다.
예수의 죽음과 부활로 말미암아 두 부류로 갈라지는 일이 발생한다.
a.죽은 자들에게 해당되는 갈라짐은 세상에서 예수를 믿고 자범죄를 용서받은 자와 그렇지 않고 용서받지 못한 자들로 각각 갈라진다. 그리고 갈라지면서 낙원과 음부로 각각 구분되어 들어가게 된다는 것이다.
b.동시에 현재 살아있는 자들도 각각 갈라진다. 성도들과 불신자들로 구분된다는 것이다.
이는 세상에서 중생으로 구원을 얻는 자들과 그렇지 못하는 자들로 나누어진다는 것이다.
먼저는 세상과 하나님 나라의 교회이며 다음은 교회 안에서 참으로 구원을 얻는 자와 그렇지 않는 자들로 각각 구분될 것이다.
이러한 구분은 예수의 죽음과 부활로 말미암아 사람들에게 성령에 의해서 영적으로 적용되는 것이다.(중생) 이 땅에서 이렇게 갈라진 자들은 죽어서 음부와 낙원으로 갈라져서 각각 들어간다. 사람이 죽으면 이렇게 영혼의 갈라짐이 나타난다는 것이다.
*(3)예수는 모든 사람들의 육체자체와 원죄를 심판하였고 다시는 원죄가 없는 완전한 부활체로 사람들을 부활시키실 것이다. 그리고 불신자들은 자범죄로 말미암아 또 다시 심판받게 될 것이다.
노아시대에 물 심판으로 모든 인류의 육체가 죽었다.
이는 예수의 죽음으로 말미암아 모든 인류의 육체가 심판되어 죽는 것을 말한다.
그리고 우리는 예수로 방주에 들어간 성도들이 된 것이다.(하나님 나라)
십자가의 죽음은 물심판과 같다.
물 심판으로 온 인류가 수장이 된 것같이 세상에서 예수의 죽음이라는 물 심판으로 육체가 심판된다는 것이다. 물은 세례를 의미하며 동시에 그리스도와 함께 죽는 것을 의미한다.
그의 죽음이 바로 물심판과 같은 세례라는 것이다. 결국 원죄는 예수의 죽음으로 심판된다.
성도들은 그 심판을 통과한다. 미리 영적으로 통과함으로 말미암아 우리는 마치 방주에 들어간 자들과 같다. 그리고 그들은 예수의 죽음으로 된 하나님의 심판을 피한 것이다. 오히려 그 심판을 피하고 하나님의 새로운 땅을 밟는다는 것이 노아가 새로운 출발을 하는 것과 같다. 노아가 새로운 땅에서 평화를 찾고 다시 출발하는 모습은 새 하늘과 새 땅을 연상하게 하고 있다.
예수가 육체로 모두를 대표로해서 죽었기 때문에 다시 예수로 부활하는 모든 사람들의 육체는 원죄가 없는 완전한 부활체로 나타나게 된다는 것이다. 예수가 대표로 그들을 심판하기 위해서 죽었듯이 또한 그들을 심판하기 위해서 부활하였던 것이다. 그러므로 이 땅에서 죽은 모든 사람들은 예수로 심판되어 육체가 죽었고(원죄) 예수로 말미암아 다시 살려져서 부활의 심판으로 나아갈 것이다.(자범죄로 심판)
예수는 이렇게 모든 사람들의 원죄를 끝내는(심판하는) 육체의 죽음을 당하셨고 그가 모든 사람을 대표로 살아나신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 날에 모두를 부활시켜서 자범죄에 대해서 심판을 하실 것이다. 만약에 그가 믿는 자들을 위해서만 대표로 죽었다면 부활은 믿는 자들만 부활할 것이다. 그러나 예수는 모든 자들의 육체를 대표로해서 세상에서 죽은 것이다. 그러므로 모든 자들이 육체로 부활하여 예수로 말미암아 다시 자범죄에 대해서 심판을 받게 될 것이다.
이렇게 그의 육체적 죽음은 모든 사람들의 죽음을 심판하기 위한 육체적 죽음이었으며 그의 부활은 모든 사람들을 심판하기 위한 육체적인 부활이라는 것이다.(여기에서 말하는 것은 자범죄를 위한 희생이 아닌 원죄에 해당되는 육체자체의 죽음과 부활을 말한다) 모든 사람이 예수로 말미암아 육체가 심판되었듯이 모든 사람이 예수로 말미암아 육체 가운데서 부활할 것이다. 그리고 부활한 자들의 최후의 심판은 재림으로 성취될 것이다.
*(4)예수가 십자가에서 고통을 당한 것은 믿는 자에게만 자범죄를 용서해주기 위해서이다.
예수가 십자가에서 고통을 당한 것은 그가 범죄 한 죄인들을 대신해서 하나님께 고통을 당하신 것이다. 모든 사람의 자범죄를 위해서 대신 고통을 당하심으로 우리는 그를 힘입어서 하나님께(성부) 죄 사함을 얻게 된 것이다. 곧 산제사의 은혜를 얻게 된 것이다.
성도가 자범죄를 용서 받으려면 예수가 십자가에서 죄인들의 자범죄를 위해서 고통당한 것을 믿고 자신의 범죄를 하나님께 고백함으로 용서를 구하는 것과 같다. 자범죄를 위한 희생은 육체자체가 죽는 것과는 다르게 이해되어야 한다. 이 자범죄를 위한 희생은 십자가에서 고통을 당한 그 자체를 의미한다. 그러므로 자범죄를 해결하려는 자들은 십자가에 못 박힌 성도들만이 용서받을 수 있는 것이다.
성도가 아닌 불신자들은 육체자체의 죽음에만 해당되지만(원죄) 성도들은 십자가의 고통과 육체자체의 죽음에 모두 다 적용된다. 즉 성도는 자범죄의 해결을 위해서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의 고통스런 희생을 통해서 하나님께 자비의 용서를 구할 수 있는 것이다. 또한 원죄의 해결이라는 육체자체가 죽는 것에도 당연히 해당된다는 것이다.
*******[예수의 죽음과 부활 그리고 원죄와 자범죄]**(최초공개)***수정
1)예수는 모든 인류를 대표해서 죽었기 때문에 보편적 구원이 가능해졌다.
예수의 죽음은 모든 인류를 대표로해서 죽으셨다.(아담과 같이)
그 명백한 증거를 아래와 같이 우리는 이해해야 할 것이다.
예수의 죽음은 모든 인류를 위해서 죽었던 것이다.
그렇게 그는 유대인과 이방인이라는 인류의 두 대표들에 의해서 죽은 것이다.
그는 모든 인류라는 죄인들을 위해서 죽은 것이 확실하다.(대표성)
예수는 모든 인류의 죄인들을 대표로 이 세상에 의인으로 보내어진 것이다.
그가 모든 인류의 대표가 될 수 있었던 것은 모든 인류는 죄인이지만 예수는 유일한 의인이었던 것이다. 유일한 의인이 모든 인류를 구원하는 대표로 세워졌고 또 모든 인류를 대표하는 두 종류인 이방인과 유대인에게서 죽은 것이 확실하다.
그러므로 그는 이방인과 유대인 그 모두를 위해서 죽은 것이며 나아가 모든 죄인들 가운데서 구원이 이루어지게 되는 보편적인 선택이 가능하게 된 것이다.
이 보편적인 선택을 위해서 하나님은 아담으로부터 오는 모든 사람들을 죄 아래 가두었고 나아가서 이방인과 유대인으로 나누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 두 종류의 인류의 대표들에 의해서 예수가 죽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은 세상의 모든 사람들 중에서 임으로 선택할 권한을 가지게 된 것이다.
그리고 믿음으로 나아오는 모든 자들에게 같은 구원의 기회가 주어진 것이다.(구원의 동일한 기회로 얼마든지 부르는 은혜=롬10:11~13절)
a.예수는 먼저 모든 육체와 원죄를 심판하기 위해서 육체 가운데서 죽으신 것이다.
b.그리고 죽은 영혼들은 자범죄로 말미암아 심판되어 낙원과 음부로 나누어지게 된 것이다.
c.예수의 부활로 모든 영혼이 원죄가 없는 육체로 부활하여 자범죄의 기준으로 심판된다.
2)세상에 영향을 주었던 원죄의 끝은 개인적으로는 죽음이며 우주적으로는 재림이다.
성도들의 우발적인 죄가 왜 죄 되지 않는 이유가 있다.(로마서 7장 17절)
앞서 말한 대로 이 우발적인 죄는 육체의 죄로 말미암아 혼으로 나타나는 것이다.
그 혼은 이성적인 판단의 주체가 아닌 본능적인 반응을 나타내는 주체이다. 즉 수용적이다.
혼이 있는 동물이라는 존재들이 죄가 되지 않는 이유가 있다.
그 존재는 이성이라는 영이 있는 존재가 아니기 때문이다.
영이 없는 동물이 본질은 육과 혼으로 구성되어있다. 그러므로 육에 의해서 혼으로 나오는 본능 자체는 죄가 아니라는 것이다. 이것은 책임이 없다는 것이다. 책임은 이성이 있어야 책임을 질 수 있는데 동물은 그렇지 않다. 성경에도 이성 없는 짐승이라고 표현하고 있다.
본능적인 존재(혼)는 그 자체가 책임을 지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사람으로 들어온 죄는 보이는 모든 육체로 사는 것들에 영향을 미쳤다.(우주와 지구의 하늘과 땅에서) 그러므로 동물들은 죄의 영향을 받는 것뿐이지 죄를 판단해서 짓는 이성적 존재가 아니라는 것이다.
모든 피조물들도 부활의 날을 기다린다고 성경은 증거하고 있다.(롬8:18~21)
그 날은 재림으로 하나님의 아들들이 이 땅에 나타나는 날이다.
사람의 죄로 말미암아 피조물들도 이렇게 굴절된 모습으로 나타난 것이다.
그래서 성경에서는 그러한 피조물들도 심히 탄식한다고 말하면서 하나님의 아들들이 이 땅에 나타나길 고대한다고 증거한다.(재림) 현재 보이는 피조물들은 하나님의 아들 예수와 하나님의 아들들인 성도들이 이 땅에 나타날 때에 모두다 영광의 모습으로 변할 것이다.(새 하늘과 새 땅)
이렇게 변모하길 바라는 것이 현재의 피조물들이며 그 시작은 하나님의 아들들이 이 세상에 부활하여 나타나는 것으로 성취되게 될 것이다. 사람의 육체만 부활하는 것이 아닌 이 세상자체가 모두 다 변화된다는 것이다. 죄가 있는 이곳에 죄가 없고 사망도 없으며 오직 하나님의 영광의 빛과 기쁨과 찬송이 있는 영광의 땅으로 변화한다. 그 곳이 새 하늘과 새 땅이다.
성도는 그 한 날을 기다려야 할 것이다.
그 날이 바로 우리가 육체로 부활하는 날이다. 이날에 모두가 하나님의 영광을 분명하게 볼 것이다. 그 아들을 찌른 자도 볼 것이며 모든 자들이 사망에서 놓여 그리고 낙원에서 나와 하나님의 심판으로 달려갈 것이다. 그리고 우리가 설 자리는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주어지는 거룩한 곳이다.
3)우리의 자범죄는 예수가 십자가에서 고통을 당한 것을 통해서 용서가 이루어진다.(회개)
예수 그리스도는 육체가 죽었지 영혼이 결코 죽은 것은 아니다.
육체의 원죄는 육체가 죽으면서 끝나지만 나의 영이 지은 자범죄는 세상에서 사함을 얻어야만 죽어서 음부에 들어가는 심판을 면할 수 있다. 즉 용서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부활 이전의 구약의 성도들은 예수가 십자가에 죽고서 부활하기 이전에 사함을 받고 영혼으로 하늘에 오른 것이다.(죽음과 부활 사이의 삼일 동안의 기간) 그러나 신약시대에는 이미 예수가 부활하였기 때문에 죽은 다음에 구약의 성도들과 같이 구원의 기회가 있는 것은 아니다.(카톨릭의 연옥거부) 예수가 다시 죽어서 음부에 찾아갈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미 부활한 예수로 말미암아 우리가 구원을 얻는 것은 오직 살아있을 때에 믿음을 통해서 얻어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의 [영]이 지은 자범죄는 아래와 같이 세상에서 용서받게 된다.
예수는 원죄를 위해서 자신의 육체를 먼저 버리셨고 죽은 사람의 영혼을 심판하시는 자가 된 것이다. 예수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첫째심판이 이루어지게 된 것이다. 예수가 직접 심판하시는 것보다 하나님께서 예수의 죽음을 유일한 의인의 죽음이라는 것으로 받으셨던 것이다. 그리고 모든 사람의 육체적 죽음을 정당하게 만든 것이다. 모든 사람은 죄인으로 죽었고 예수만이 의인으로 죽은 것으로 구분된다.
예수는 모든 사람의 자범죄를 위해서 십자가에서 고초를 당하셨다.(자범죄와 고초를 주목) 이 고난은 살아있는 자들의 자범죄를 위해서 대신 당하는 고통이었던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모든 사람이 자범죄를 용서받는 것은 아니다. 회개하는 자에게만 적용된다.
예수의 고통의 호소(대가)는 사람들의 자범죄를 용서해 달라는 것이었다. 십자가에서 저들이 알지 못하고 그렇다는 것을 호소한 것이다. 이러한 호소는 의인이 죄인들을 위해서 하나님께 호소하는 것이었다.(성경도 육체의 죄를 없애는 것으로 말하지 않는다: 배전)
그것을(의인 예수의 십자가의 고통) 통해서 하나님은 죄인들의 자범죄를 용서하시게 된 것이다. 문제는 예수가 하나님께 호소하였듯이 죄인들도 용서를 구하는 회개가 있어야 된다.
자신의 자범죄에 대한 참 회개가 전재되어야 죄 사함을 얻게 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를 힘입어서 하나님께 용서함을 받아야 되는 존재라는 것이다. 이것이 가능한 것은 우리에게는 대제사장과 산제사와 성령의 전(몸)이 있으며 그리고 우리가 제사장으로써 용서를 받게 된다는 것이다.
*그러한 관계적 자범죄의 속죄는 아래와 같이 나타난다.
1)하나님: 모든 사람들의 자범죄를 용서하시는 분이시다. 단 아들로써 죄 사함을 허락한다.
2)대제사장: 예수는 모든 죄인들의 자범죄를 용서하기 위해서 십자가로 고통을 당하셨다.
3)산제사: 예수가 세상에서 행한 십자가의 고통의 제사가 죄 사함을 주는 표적이 되었다.
4)성령의 전: 성령이 우리의 몸을 성전삼고 회개의 열매를 맺는 산제사가 항상 이루어진다.
5)제사장: 성도들이며 믿음으로 대제사장이신 예수를 의지하여 하나님께 용서를 받는다.
세상에 있는 모든 성도들은 영적으로 모두가 제사장이며 제사장 나라에 있는 자들이다.
세상에서는 이렇게 우리가 위의 관계로 죄 사함을 얻지만 세상을 떠나면 우리는 이미 사함을 얻은 자가 되어서 위의 관계를 벗어난다. 위의 관계는(대제사장. 제사장, 산제사) 세상에서 살아있는 성도들에게 꼭 필요한 것들이다. 그러나 우리가 죽으면 더 이상 그런 제사는 필요 없게 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를 의지하여 이 땅에서 죄 사함을 얻고 다만 악에서 건짐을 얻어야 한다. 참으로 우리는 끝까지 견디어서 하나님의 날을 사모하는 성도가 되어야 할 것이다.
출처: cafe.daum.net/hosannakim
(2007년 4월 8일 글쓴이: 김인찬 목사)
2)독자가 반론한 것에 대한 저의 재반론 글입니다.(편집)
[김인찬 반론]
예~제가 거짓교사라고 주장하는 독자님의 글을 보았습니다.
먼저 부탁을 드리고 싶은 것은 토론이 되어야 할 것으로 봅니다. 그리고 저는 진보든 보수든지 모두를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배울 권한이 있다고 봅니다. 양심의 자유입니다.(영혼의 자유)
저는 물론 정리되지 않는 글은 곧 바로 수정합니다. 즉 문제가 있다고 넘어가는 자가 아닙니다. 이번 토론으로 만약에 제가 잘못된 것이 드러나면 저는 저의 글을 곧 바로 수정하려고 합니다. 이것자체가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서로 배우고 서로 세우는 것은 그리스도인의 자세입니다. 혼란이 아닌 서로의 발전이라고 봅니다. 아직 이 글은 광범위하게 올리지 않았습니다. 어쩌면 이런 토론으로 더 나은 것을 얻을 것으로 봅니다.
이성적인 영이 없는 동물이 죄를 지었다는 보고가 성경에 없습니다. 그리고 이것은 본능적인 것으로 사람들이 흔히 이해합니다. 사람의 영이 육체의 죄를 따라서(육신을 따라서) 죄를 짓는 것은 자범죄입니다. 그런데 거듭난 성도가 장성한 분량이 되었는데도 자신도 모르게 죄가 드러나는 것이 있습니다. 이것을 저는 지적하려고 한 것입니다. 이것은 내영에 의한 죄가 아닌 내 육체 안에 있는 죄로 말미암아 혼으로 드러나는 본능적인 것으로 말하였던 것입니다.
로마서에서도 알 수 있듯이 바울은 이런 죄에 대해서 내가 죄를 짓는 것이 아닌 내 육체 안에 있는 죄가 짓는 것으로 말합니다. 이것은 내 영이 적극적으로 회개해서 해결해야 하는 문제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바울은 이것을 보고 죄의 것으로 치부하고 탄식한 것입니다. 우리는 이렇게 죄가 있는 육체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 육체를 가지고 있기에 내 영이 의도하지 않았는데도 그런 실수가 나타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우발적인 죄로 표현했지만 이런 의미라는 것입니다.
[독자의 반론]
예수는 원죄를 위해서 자신의 육체를 먼저 버리셨고 죽은 사람의 영혼을 심판하시는 자가 된 것이다"
[김인찬 답변]
000님의 글에 대한 반론입니다. 한 사람의 의인의 육체적 죽음으로 모든 인류는 죄인의 죽음과 대조됩니다. 이것은 세상에서 의인의 죽음과 죄인의 죽음으로 나뉩니다. 그리고 모든 인류는 의인의 죽음으로 말미암아 죄인의 죽음으로 정당하게 확정되고 심판된 것입니다.
예수가 세상에 없었다면 세상에서 의인의 죽음과 죄인의 죽음으로 구분이 되지 않았습니다. 예수의 죽음은 그런 구분을 명확히 하였던 것입니다. 심판입니다.(노아의 심판과 같이) 모든 육체가 예수로 심판되어 정당한 죽음으로 판명된 것입니다. 그 반대로 예수는 의인의 죽음이었기에 그는 다시 살아났습니다.
이렇게 그가 모든 사람들의 육체의 죽음을 심판하기 위해서 육체로 죽었고 모든 사람들의 육체를 살리기 위해서 다시 부활한 것입니다. 즉 모든 사람들을 심판하기 위해서 그는 죽고 부활한 것입니다. 이렇게 그는 세상의 대표가 된 것입니다. 모든 육체의 죽음을 위한 의인의 대표로 죽었고 그 안에서 그가 살아났습니다. 그리고 모든 사람들의 대표로 부활함으로 모든 사람들이 그로 말미암아 부활하여 심판으로 달려가게 된 것입니다.
그는 세상에서 모든 육체로 살아있는 자들을 심판하기 위한 육체의 죽음이었고 세상에서 모든 육체로 죽은 자들을 심판하기 위해서 그는 부활하였습니다. 물론 죽음도 심판으로 나타나고 부활도 심판으로 나타납니다. 예수의 육체자체의 죽음은 모든 사람들의 육체를 심판한 죽음이며 예수의 부활은 모든 사람들을 살려서 선과 악간에 심판을 하려는 부활입니다.
그는 세상에서 모든 육체로 있는 자들을 심판하기 위한 육체의 죽음이었고 세상에서 모든 육체로 죽은 자들을 살리기 위해서 그는 부활하였습니다. 물론 예수의 육체의 죽음도 모든 육체의 심판으로 나타나고 부활도 모든 육체의 심판으로 나타납니다. 예수의 육체자체의 죽음은 모든 사람들의 육체를 심판하기 위한 죽음이며 예수의 부활은 모든 사람들을 육체로 살려서 선악 간에 심판을 하기 위한 부활입니다.
앞서서 제한속죄에 대한 글은 따로 글이 있으니 올리려고 합니다.
제한 속죄와 대표성에 대한 글입니다..그리고 칼빈에 대한 예정에 대해서도 올리려고 합니다. 아무쪼록 서로 배우는 기회가 되었으면 합니다.
[독자의 반론]
윗 글을 보면, "세상에 영향을 준 원죄는 그 끝 날이 재림이다"는 말을 제목으로 삼고 있습니다. 육체의 죽음으로 끝난다고 주장해놓고 이제는 '재림'때에 그 원조의 끝 날이라고 얘기하고 있는 것입니다. 도대체 앞뒤가 잘 안 맞는 얘기를 늘어놓고 있습니다. 한편으로는, 원죄가 십자가에서 끝장났다고 하면서, 이곳에서는 원죄의 끝이 재림 때라고 합니다. 이 글에 대해서도 반론하려고 합니다.
이것은 신학적으로 정립이 되지 않은 것이 아니라 이해가 필요한 부분입니다.
현제의 육체를 가지고 있는 기간은 재림까지만 존재합니다. 그런 의미로 말한 것입니다.
오해가 없길 바랍니다. 좀 더 설명을 드리겠습니다. 지금과 같이 육체로 죽는 이런 모습은 재림으로 막을 내립니다. 재림이후에는 육체로 죽는 일이 없습니다. 이렇게 재림 전까지 모든 사람들은 육체와 육체의 원죄를 가지고 이 땅에 온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재림으로 그러한 일이 다시는 없다는 것입니다. 재림으로 그런 일이 끝난다는 것입니다.(영원한 심판)
[독자의 반론]
재림때까지 육체를 가지고 있는 자들의 원죄문제의 해결은, 결국 그 남은 육체와 관계되기 때문에, 그 사람들이 죽음으로서만 해결될 수 있는 것이기 때문에, 예수님의 재림시에 죽지 않은 채로 그 재림을 맞이하게 되는 자는 죽음을 맛보지 않게 될 것이라는 성경말씀과 상충될 것입니다(살전4:15-17)
[김인찬 답변]
물론 공중으로 끌어올려진다는 것에 전적으로 동의 합니다..문제는 지금의 육체가 아닌 새로운 변화된 육체로 올라간다는 것입니다...지금의 육체와 같이 썩는 육체가 아니라는 것으로 이해하시기 바랍니다. 별 문제가 없다고 봅니다. 끝으로 제가 만약에 이런 주장이 잘못이 되었다고 해도 이단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왜냐하면 모든 사람이 육체로 죽으면 결국 원죄에서는 모두 해방되기 때문입니다. 저는 이것을 구체적으로 예수의 죽음과 연관해서 생각한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 모두가(신자와 불신자) 부활한다는 것도 예수의 육체와 연관해서 생각한 것입니다. 000님이 이해 못하시면 것뿐입니다.
영(사람의 영)이 미혹을 받아서 육체로 죄를 짓는 것을 저는 자범죄라고 주장한 것입니다. 그럼 자범죄의 정의를 더 본질적인 것과 연관해서 설명을 부탁드립니다. 육체와 그 육체 안에 죄가 있다는 것도 인정하시는 지요?? 만약에 원죄가 영혼에 있다면 영혼이 죽지 않기 때문에 원죄는 영원히 따라다닙니다. 그래서 성경은 육체에 죄를 정했다고 말하고 그 육체 가운에 예수가 죽음으로 육체로 사는 모든 자들에게 죄 사함을 주시는 것입니다. 육체를 떠난 영혼은 원죄가 없는 것입니다. 그리고 다시 부활하는 육체는 영원한 육체입니다.
예수의 자범죄를 위한 희생은 십자가의 고통으로 설명하였습니다. 예수의 영이 십자가에서 육체로 말미암아 고통을 느끼는 것이었습니다. 우리가 영혼으로 회개하는 이유입니다. 육체가 있는 기간은 살아있는 기간입니다..육체가 죽으면 더 이상 죄를 용서받는 일이 없습니다.
그 살아있는 기간에서 예수가 육체로 고통당한 십자가의 산제사가 바로 자범죄를 위한 것입니다. 세상을 떠난 영혼은 사실상 유혹이 없는(원죄와 사탄)것입니다. 그 영혼이 세상에서 자범죄를 해결되었는가? 아니면 해결하지 못했는가? 로 나누어진다는 것입니다. 예수의 십자가의 고통이 바로 우리의 자범죄를 위한 것임을 우리가 알아야 합니다.
000님의 표현과 조금 차이가 있군요. 예수가 십자가에서 고통을 당하신 것은 우리의 범죄를 용서해주기 위해서 당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원죄를 위해서 예수가 죽은 것은 아닙니다. 원죄가 아닌 자범죄입니다. 원죄를 위해서 죽었다면 우리가 예수를 믿으면 원죄가 사라지든지 해야합니다. 그런데 원죄는 그 육신이 있는 동안 여전히 있습니다.
예수를 믿기 전이나 믿고 난 이후에나 원죄는 여전히 육신 안에 있다는 것입니다. 다만 그 차이는 우리 안에는 의가 동시에 있다는 것입니다. 예수는 원죄를 없애기 위해서 죽으신 것이 아닙니다. 용서와 사함은 우리가 행한 것에 대한 용서입니다.(자범죄)
000님께서 이렇게 긴 글로 나름대로 논평해주시니 저는 감사할 따름입니다. 저를 돌아보는 게기가 된다고 봅니다. 그리고 한 가지 확인하는 것은 저의 근본 신학이 옳은 방향으로 가고 있다고 확신하는 것입니다.
저는 원죄와 자범죄 모두를 공평하게 다루는 것이 중요하다고 봅니다. 000님은 영혼과 육체를 동일체로 보는 시각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영혼도 죽고 육체도 죽는다고 설명하였던 것입니다. 또한 000님은 원죄와 자범죄를 구분하지만 실상은 구분하려는 것보다는 함께 보고 있다는 인식을 줍니다. 과거 기독교는 죄인만을 강조했습니다.
카톨릭은 인성에 가깝다고 봅니다. 개신교는 신성을 강조합니다. 그래서 예수의 인성과 신성을 주장하는 것입니다. 사실 신성을 강조하기 위해서 만들어낸 교리입니다.(추후에 시간이 되면 설명하겠습니다) 000님의 사상에는 이렇게 인간은 전적타락 하는 것을 매우 강조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한 결과 죄인이라는 것만 강조한 것이 과거의 역사입니다.
의인이라는 것은 사실상 매우 약해진 것도 사실입니다. 오히려 성경은 죄인보다는 의인을 더욱더 강조하고 있습니다. 믿음으로 의롭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이런 로마서의 의인의 강조는 죄인을 강조하는 지금의 것과는 매우 차이가 있다는 것입니다. 구원파는 너무 앞서가서 의인만을 주장하지만 현대교회는 죄인만을 강조하는 특징이 있습니다. 성경은 의인을 강조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라는 것입니다.
성경은 죄인으로 강조하는 것보다 의인이 죄와 싸우는 영적인 관계를 말합니다. 그러므로 성도들 안에는 의가 있으며 그를 가리켜서 의의 종으로 말합니다. 의의 종이 내 안에 있는 육신의 죄와 싸우는 관계가 중생된 자의 영적인 상태입니다. 뭐가 더 중요하다고 보시는 지요? 역시 저는 의인이 더 중요한 신자들의 상태라고 봅니다. 그 의인이 내 안에 있는 죄와 싸우는 것입니다. 그러나 죽으면 우리는 의인의 영혼으로 하늘에 갑니다. 죄와는 완전한 결별이지요. 역시 원죄는 없어지는 것입니다.
[독자의 발론에 대한 김인찬 답변]
<그가(김인찬 그가) 예수는 육체는 죽었지만, 영혼은 죽지 않았다는 식의 주장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도대체 김인찬씨가 '죽는다'는 말의 의미를 제대로나 알면서, '예수의 영혼은 죽지 않았다'는 주장을 하고 있는 것일까요? >
[김인찬 목사 반론]
위와 같이 독자는 예수가 죽을 때에 예수의 영혼도 함께 죽었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이에 대해서 본인이 반론하려고 합니다.
영혼이 죽었다는 이야기는 성경에 전혀 없습니다. 육체로 죽은 것과 육체로 부활한 것이 성경의 명백한 증거입니다. 이것은 매우 기초적인 상식이라고 봅니다.
000님께서 예수의 영혼이 죽었다고 주장하면 정말로 이단이 되오니 지금 빨리 수정하시는 것이 옳다고 봅니다. 사람은 000님이나 저나 실수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 빨리 수정하세요. 이단은 구원이 있냐? 혹은 없냐? 가 그 기준입니다.(보편적)
십자가의 고통은 우리의 죄를 위해서 고통을 당하셨습니다. 또한 그로 말미암는 육체의 죽음은 원죄의 끝입니다. 육체가 죽으면 육체 안에 있는 죄도 함께 끝나는 것입니다. 문제는 우리의 자범죄입니다. 죽어서 영혼으로 있는 자들에게는 죄 사함을 받았는가? 아닌가? 에 따라서 음부와 낙원으로 이어집니다. 나아가서 최후의 심판도 이 자범죄가 있는 불신자들이 영별에 들어갑니다.
원죄의 해결을 위해서 예수가 죽은 것만 강조하면 안 됩니다. 원죄는 사람이 죽으면 자동으로 모두 해결됩니다. 저도 이것은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사람이 죽음으로 원죄가 해결되는 것이 예수의 죽음으로 정당한 죽음으로 심판이 됐다는 것을 저는 강조하는 것입니다. 물론 재림할 때에 모든 사람이 원죄가 없는 부활체로 나타난다는 것은 바로 예수가 자신의 죽음으로 사람들의 죽음을 심판하셨기 때문에 다시 부활하는 사람들에게는 원죄가 없는 부활이 되는 것으로 저는 개인적으로 생각합니다, 개인적인 것입니다.
영혼 없는 몸이 죽은 것 같다고 성경은 말합니다. 영혼이 없으면 죽은 것입니다. 그리고 영혼과 육체로 분리되는 것도 인정합니다. 그러나 육체가 사라지는 것은 좀 수용하기 어렵군요, 육체가 해체되어 흙으로 간 것으로 이해하는 것이 옳다고 봅니다. 죄로 말미암아 육체는 흙으로 간다고 봅니다. 예수의 영혼은 죽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하늘에 오르셨습니다.
그리고 다시 육체 가운데 부활하였습니다. 왜 예수의 육체가 흙으로 돌아가지 않고 부활한 이유는 그는 죄가 없는 육체입니다. 그러므로 흙으로 돌아가지 않고 살아나셔야 했습니다. 예수의 영혼이 다시 육체에 들어와 살림을 얻은 것입니다.
예수의 영혼이 인성이냐? 혹은 신성으로 논하는 것 자체가 무리라고 봅니다. 예수가 사람일 때는 신성과 인성을 논할 수 있지만 영혼만을 가지고 논하는 것은 글쎄요. 저의 입장을 대충 설명하겠습니다. 예수의 영은 신성의 본질입니다. 그러나 예수의 혼은 신성의 본질인 영이 혼을 가지고 있다고 보는 것이 옳다고 봅니다. 혼만을 가지고 말한다면 영과 혼을 분리시킬 위험이 있기에 조심하려고 합니다.
예수의 육체는 흙의 요소입니다. 당연히 인성으로 말하겠죠. 그리고 예수의 혼도 우리와 같은 혼입니다. 당연히 인성으로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의 영은 하나님이 영이듯이 본질적으로 하나님과 같은 본질적 영입니다.
이는 창세전에도 영으로 있었고 요한은 로고스로 설명합니다. 이렇게 예수의 영은 창세전이나 육체를 입고 온 지금이나 같은 신성의 본질입니다. 하나님의 유일한 아들이 될 수 있는 것은 그가 하나님과 같은 본질적인 영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혼과 육은 그 본질과 달리 세상에 올 때에 취한 것입니다. 피곤함을 느끼는 혼과 육은 이렇게 세상에서 취한 것으로 봅니다.
신성은 죽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예수의 육체는 고통을 받았습니다. 우리와 같은 육체라는 것입니다. 사람이 되기 위해서 말씀이 육신을 입고 세상에 온 것입니다. 그 말씀이 마리아의 육신을 빌려서 취한 것입니다. 영혼의 문제도 그렇게 저는 이해합니다.
저는 예수를 사람이 아니라고 말한 적이 없습니다. 사람이 되신 예수입니다. 동시에 영이 있기에 하나님이 되십니다. 그러나 성경은 보통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말합니다. 신성을 말하고 영을 가리키면서 사람인 예수를 부르는 호칭으로 보는 것입니다.
예수의 영혼이 죽었다는 것은 글쎄요, 내 영혼을 받아주시라고 기도한 예수의 호소는 영혼을 아버지 집으로 가는 것을 말한다고 봅니다. 특히 오른편 강도와 같이 간 것으로 봅니다. 강도가 죽으면 영혼이 낙원에 이르는 것은 신약성경이 명백히 증거 합니다. 그런데 이런 것을 어떻게 영혼이 죽는다고 말씀하시는지,?? 글쎄요??.
영은 죽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강도가 낙원에 영혼으로 올라갔고 예수도 함께 올라갔습니다. 그리고 성경은 하늘에 있는 성도들을 가리켜서 명백하게도. 영혼으로 있는 존재로 말합니다. 물론 그들은 세상을 떠난 자들이며 잔다고 성경은 표현합니다. 예수의 영혼이 죽었다는 이야기는 제가 여기에서 처음 들어봅니다. 그래서 충격입니다. 홀리죠이님과 양무리 마을의 생각이 같으신지요.(부흥과 개혁) 혹시나 해서...??
[독자의 반론]
이러한 000님의 주장은, 000님이 얼마나 신학적 토론의 기초도 알지 못하고 있는 지를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000님께서는 "예수의 영혼은 죽지 않았다"고 하면, 그것은 "예수의 영도 죽지 않았고, 예수의 혼도 죽지 않았다"고 주장한 것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예수의 영"은 도대체 무엇입니까? 혹은 누구입니까? 혹시 '예수의 영"을 '성령'이라고 둘러대고 싶으십니까? 그렇다면, "예수의 영혼은 죽지 않았다"는 맥락에서, "예수의 영"과 "예수의 혼"을 구분하고, 그래서, "예수의 영"을 '성령"이라고 주장하게 된다면, 그래서,"예수의 영은 신성의 본질"이고, 나아가서 그래서, "예수의 영은 죽지 않았다"는 식이라면, 예수와 성령을 혼동하
[김인찬 반론 계속]
holyjoy님께서 예수가 영혼까지 죽었다는 견해가 개혁주의 신학의 입장인지요. 그것이 궁금하구요? 또 한 가지는 이런 주장에 대해서 앞으로 책임지실 수 있다고 확실히 답변을 할 수 있는지요. 그냥 질문입니다.
저는 하나님의 본질은 영적인 것으로 봅니다. 성부도 영이시고 성령도 영이십니다. 그리고 요한이 말한 로고스도 영이입니다. 이렇게 영이 본질입니다. 왜 이런 것이 이상하다고 보시는 지요. 성부도 영이심을 성경이 증거하고 있고 성령은 영이라는 것은 우리가 익히 알고 있습니다. 당연히 세상에 오시기전 말씀도 영으로 존재한 것입니다. 아버지의 품속에 있었던 영입니다. 아버지라는 영 안에 말씀이 있었다면 영으로 존재한 것이지 다른 방도가 있는지요.
말씀이 육신을 입고 오셨습니다. 마리아의 몸을 빌렸고 마리아의 몸에서 자랐습니다. 마리아와 혈핵형도 같습니다. 이것이 정상적인 생각으로 저는 사료됩니다. 그의 육신이 신성이라면 결코 죽지 않았어야 했으며 피곤함을 느끼지 못해야 합니다. 성부의 영과 성령의 영과 같은 신성의 본질은 그렇다는 것입니다.(추가: 예수의 부활체는 지금의 육체와는 전혀 다른 완전한 육체이다. 그리고 그 본질에 대해서는 정확히 어떻다고 본인은 말할 수 없다)
삼위일체 사상에 너무 강하게 집착하면 관계적인 것이 약화됩니다. 다음에 기회가 있으면 글을 올리려고 합니다. 제가 이 글을 올려서 이단으로 정죄한 곳이 한군데도 없었습니다. 죄송하지만 거의 한국에서는 최초의 시도라고 볼 수 있습니다. 다음에 허락하시면 올리지요,
저는 신성과 인성 혹은 삼위일체 등등 이런 모든 신학들도 성경에서 조명되고 발전해야 된다고 믿습니다. 예수의 영혼에서 혼은 신성이 아닌 신성이 취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 혼은 우리와 같은 혼입니다. 그 육은 우리와 같은 육을 세상에서 얻었습니다. 다른 것은 죄가 없다는 것입니다.(설명필요). 그러나 그 영은 우리와 같은 영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그 영은 하나님(영)의 품속에 있었던 말씀인 영입니다.
육체가 죽은 것입니다. 즉 영혼이 떠나면 육체는 죽었다고 말합니다.
흔히 혼이 떠났다고 말하는데 혼(영혼)이 죽었다고 말하지 않는 이유를 생각해보세요.
예수의 영혼은 분리되지 않았습니다. 우리와 같은 혼입니다. 그러나 영혼이 육체와는 분리되었습니다. 그리고 어떤 자들은 영과 혼과 육이 분리되었다고 주장하는 자들도 있습니다. 물론 삼분설적인 입장입니다. 저는 이분설을 채택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과학적으로 보이지 않는 영혼의 구조와 그 기능을 정확히 밝혀낼 수 없습니다. 이것이 인간의 한계입니다. 분명한 것은 예수는 영혼이 있다는 것이며 그 영혼에서 신성을 저는 영으로 봅니다. 천사도 영적인 존재입니다. 하늘의 세계는 이렇게 근본 영적인 것입니다. 혼은 영적인 것이 아닙니다. 육체를 살리는 생명으로 표현됩니다.
예수를 인성과 신성이 있다고 정통신학에서도 말하고 있습니다. 그럼 예수의 본질에서도 인성과 신성의 요소가 있다고 보아야 합니다. 이렇게 서로 형평성 있게 다루는 것이 옳다고 봅니다. 예수의 요소 중에 신성은 영이며 예수의 요소 중에 인성적인 요소는 혼과 육이라는 사실입니다. 성경에서도 사람을 두고서 [너희를 신이라고] 표현하는 내용도 있습니다. 물론 하나님과 다른 신적인 존재라고 표현하는 것이지요. 같은 신이면 정말로 이단이 됩니다.
기능적인 성품이 인성과 신성이 있다고 말한다면 본질적 요소도 그렇다는 것입니다. 예수의 신성의 성품은 예수의 영이며 예수의 인성의 성품은 혼과 육입니다. 물론 혼과 육만을 가지고 인성의 완성으로 볼 수 없습니다. 그의 신성적 요소의 영이 사람이 가지고 있는 육신을 입고 있다고 보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인성은 사실상 사람이 가지고 있는 요소를 가지고 있다고 이해하는 것이 옳은 것입니다.
사람이 죽으면 영혼으로만 존재합니다. 영혼과 천사의 영은 또 다릅니다. 천사는 혼적인 요소가 없습니다. 육체를 입고 그 안에 거하려면 혼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동물의 육체 안에 혼이 있습니다. 사람의 영혼과 하나님의 영이 다릅니다. 하나님은 영입니다. 우리는 영이 있으면서 혼적인 요소가 있습니다. 물론 사람의 영과 하나님의 영은 또한 다릅니다. 같은 영적인 존재이지만 창조주와 피조물의 영이 같다고 볼 수 없습니다. 이렇게 사람이 죽으면 영혼으로 낙원에 갑니다. 육체가 없는 자들의 사후의 상태는 천사들과 같다고 예수도 말합니다. 그렇다고 천사의 영과 우리의 영혼이 같다는 것은 아닐 것입니다. 상태가 그렇다는 것입니다.
예수는 신성과 인성이 있는 분입니다. 그리고 참 사람입니다. 우리는 인성만 있습니다. 우리도 사람입니다. 예수의 신성은 그의 [영혼육] 통일체에서 찾는 것은 무리입니다. 육이 신성의 요소가 될 수 없습니다. 육은 물질적 요소입니다.(흙) 그리고 혼도 그렇습니다. 천사도 없는 혼입니다. 그리고 혼은 동물에게도 그리고 사람에게도 그리고 혼이라고는 표현하는지는 모르지만 식물들도 생명이 있습니다.
이렇게 혼적인 것은 물질을 살리는 혼입니다. 영은 그 물질을 통제하는 절대적인 기능을 가집니다. 그것은 예수의 영이 바로 신성으로써의 요소라는 증거로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마음, 영의 깊은 생각 등등 영과 영의 기능이 각각 나타납니다.
영만을 가지고도 우리는 한 본질로 인정합니다. 그리고 그 본질의 기능을 말합니다. 천사도 영이며 그 영의 기능이 있습니다. 하나님도 영이시면 그 영의 기능이 있습니다. 이렇게 예수의 영만으로도 신성의 완전한 요소가 됩니다. 아니 더 정확히 말하면 예수의 영은 과거 하나님의 말씀이었습니다. 이렇게 본질이 있고 그 본질의 기능이 있습니다. 말씀이 사람과 같이 되려면 어떻게 해야 됩니까? 그 방법은 육신(혼과 육)을 취하는 것 밖에 없습니다. 그러므로 예수의 영은 마리아를 통해서 혼과 육을 취한 것으로 봅니다. 이렇게 이해됩니다.
동물의 요소를 봅시다. 동물의 요소는 혼과 육입니다. 스스로 행동하고 판단하는 존재보다는 본래 영적인 사람에 의해서 다스려져야 마땅합니다. 그런데 죄가 들어옴으로 동물들의 상태가 달라졌습니다. 포악해졌고 양육강식으로 변한 것입니다. 평화가 깨진 것으로 봅니다..이러한 평화는 사실 재림으로 오게 될 것입니다. 사람이 육신의 정욕을 따르듯이 동물은 스스로 육체를 따라서 본능적으로 행동합니다. 죄의 영향입니다. 동물의 본능이 선한 모습으로 나타나야하는데 육을 가지고 있는 동물들은 육을 따라서 혼으로 움직이게 된 것입니다. 죄의 영향은 모든 육적인 것에 미쳤습니다. 사람의육체가 흙으로 가듯이 동물의 육체도 그렇습니다.
*[중요반론]
예수가 죽기 전이나 혹은 부활 이후에 공히 하나님이 아들로 불려집니다. 그 원인이 어디에 있다고 보시는지요? 마리아의 혈통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마리아의 육신을 통해서 육신을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 육신은 죽는 육체입니다. 즉 피곤하고 늙고 병들 수 잇는 육체입니다. 그는 이렇게 사람의 혈통적인 육체를 먼저 가지셨습니다. 죽는 육체이기에 그는 십자가에서 죽었습니다. 만약에 부활체라면 죽을 수 없습니다.
그리고 그가 부활한 이후에도 하나님의 아들로 불립니다. 그리고 부활체 입니다. 그의 육신은 마리아의 육신과 전혀 다른 육신을 가지셨습니다. 그리고 혈통적으로 마리아와 끝난 것입니다. 이렇게 예수가 죽기 전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불릴 수 있었던 것은 그의 영이 신성의 요소이며 그의 영이 말씀이었다는 것입니다.
즉 연약한 마리아의 육체를 통해서 가지고 온 육신을 입고서도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부를 수 있는 것은 또는 변하지 않는 것은 그의 영이라는 사실입니다. 물론 혼도 변하지 않았지만 육체의 지배를 받게 되는 것도 있습니다.(현재 죄인의 육신의 죄)
사람의 혼이 육체의 죄를 따라서 내 영이 모르게 습관적으로 나타나는 경우입니다. 예수가 이렇게 죽기 전이나 혹은 죽은 다음에도 하나님의 아들로 여전히 불리는 것은 그의 영을 두고서 말하는 것입니다. 육신을 두고 말한다면 죽기 전에는 그의 육신은 연약한 존재였습니다. 그런 육신을 두고 신성이라고 말하는 것 자체가 오류가 됩니다.
완전한 사람이며 완전한 하나님으로 구분하는 것 자체가 성경적이 사상이 아닙니다. 예수는 하나님의 아들로써 사람이라고 표현하는 것이 가장 적합합니다. 우연인지 모르게 김세윤 교수님도 그렇게 표현합니다. 조직신학적 입장과 성경신학적인 입장이 이렇게 다르게 나타나고 있습니다. 즉 교리신학과 성경신학의 차이입니다.
우리는 먼저 성경신학으로 예수를 논한다면 하나님의 아들로써 사람으로 표현하는 것 이상을 넘어가기가 위험하다는 것입니다. 사실상 조직신학에게 경고하는 것이 성경신학입니다. 아시다시피 과거 삼위일체나 양성론이 정립된 시기는 성경신학은 거의 어둠의 상태였습니다. 그런 상태에서 완벽하다는 정의신학이 나왔다는 것은 매우 이상한 일입니다. 요즘 성경신학이 빛을 보게 된 것도 교리에 종속되지 않고 성경에 종속되려는 노력에서 나타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나라와 언약사상 그리고 구속사 등등 성경신학의 비약적인 발전은 교리신학을 향해서 쓴 소리를 내 뱉고 있다는 것입니다. 무엇이 성경을 이토록 열리지 않게 했는가라는 것입니다. 결국 교회가 교리에 종속된 것이 과거의 역사이며 그리고 오늘의 역사입니다. 이제 교회는 교리에 종속되는 것이 아닌 교리를 넘어서서 성경연구로 모든 진보와 보수주의 신학을 통일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더 나은 신학이 나오면 현재의 신학은 과거로 돌아갑니다. 이와 같이 우리는 첨단 21세에 살고 있습니다. 이 시기는 지식의 홍수의 시대입니다. 그 만큼 성경도 활짝 열리고 있다고 보아야 할 것입니다.
tiger님 그럼 저도 질문 드립니다. 예수가 사람의 영과 같은 본질이 있고 하나님과 같은 영이 있는 두 영의 혼합입니까? 또한 신성이 혼과 육을 취했다는 의미를 설명 드리지요. 먼저 제 의도는 신성이 혼과 육신을 취한 것보다는 하나님의 말씀이 육신을 취했다고 보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동물의 육을 취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사람을 구원하기 위해서 예수를 보내셨습니다. 이는 말씀이 사람을 구원하기 위해서 사람의 육신을 취한 것으로 이해해야합니다. 결국 하나님의 말씀이 마리아의 육신 안에서 잉태되었다는 것입니다. 결국 육신을 취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육신과 영으로 구분하는 것이 옳다고 봅니다.
[tiger 의 글]
제가 언급한 하나님의 아들은 독생자로서의 아들과 맏아들로서의 아들입니다. 이는 말씀이 육신이 되시기 전과 육신이 되시어 부활하신 후의 차이입니다..
[김인찬 목사 반론]
저는 지금도 예수가 유일한 아들이시면서 동시에 맏아들이 된다고 봅니다. 유일성은 신성이라는 의미이며 맏아들이라는 것은 사람들 가운데 장자와 같이 먼저 부활한 것으로 취한 것입니다.
[000독자]
육체가 없는 사후의 상태가(영혼) 천사들과 같다고 했습니까? 그런 것이 아니라 사람이 부활할 때 즉 몸을 입을 때 그들의 상태가 천사와 같다고 했지요,,
[김인찬 목사]
글쎄요?? 저는 영혼으로 있는 자들도 마찬가지라고 보는데요. 왜냐하면 사람의 신분이 육체로부터 세상에서 취해지기 때문입니다. 여자의 육체는 여자이며 남자의 육체를 가지면 남자입니다. 그런데 영혼은 동일하다고 봅니다. 영혼이 서로 다르다는 성경의 증거가 없는 것으로 압니다. 물론 님의 의견 존중하면서 배우고자 합니다. 성경구절을 부탁드립니다. 감사
[tiger님]
[부활 때에는 장가도 아니가고 시집도 아니가고 하늘에 있는 천사들과 같으니라 (마22;30) 죽은 영혼이 천사처럼 되는 상태는 아니지 않습니까]..
[김인찬 목사]
맞습니다. 그런데 저의 의도는 부활할 때뿐 아니라 영혼으로 있는 상태도 그렇다고 봅니다. 사실 영혼으로 있는 상태는 그리 큰 문제가 되지 않았기에 질문을 피한 것이지만 부활할 때에 과연 어떻게 되는가가 그들에게 궁금한 것이 된 것이지요. 이 질문을 하려는 의도는 영혼으로 있는 상태는 장가가고 시집가고 하는 것이 없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부활한 후의 상태를 묻는 것으로 저는 이해합니다..그리고 실제로 영혼들이 그렇습니다.
[tiger님]
정확히 말하면 말씀이 육신을 입고 오신 것이 아니라 말씀이 육신이 되었다 입니다,, 마치 옷처럼 입고 벗는 분리가 되는 것이 아닙니다, 잘 구별하시길,,
[김인찬 목사]
성경은 육신을 장막으로 표현하기도 합니다. 육신의 장막입니다. 즉 우리의 영이 거하는 처소입니다. 영혼도 죽고 육체도 죽는다고 생각하는 것은 옳은 것이 아닙니다. 제가 생각하는 죽음은 육체의 죽음을 말합니다. 죽음을 000님들이 말하는 영혼과 육체의 분리로만 설명하는 것은 부족합니다. 그 분리로 육체가 흙으로 간 것입니다. 거기까지 강조해야 정당한 것입니다. 흙으로 돌아가는 것은 죄의 결과입니다. 죄로 말미암아 육체가 깨어진 다는 것입니다. 바울도 겉 사람은 후폐하나 속사람은 새롭다고 말합니다. 겉 사람은 흙으로 갑니다.
영혼 없는 몸이 죽은 것이라고 말합니다. 몸이 죽은 것이지 영혼이 죽은 것이 아닙니다. 영혼이 죽었다는 성경적 근거가 있는지요. 부활도 몸의 부활을 말합니다. 영혼의 부활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당신의 주장이라면 부활도 영혼과 육체의 결합이라고 말하겠네요? 그런데 육체가 살아나는 것이 먼저 이해돼야 합니다. 부활입니다.(육체)
원죄는 육체의 죄입니다..즉 육체 안에 있다는 것입니다...죄를 지으려는 성향을 육체가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아담으로부터 온 것이지요...육체가 죽으면 원죄도 없어집니다...
어떻게 사람이 죽을 때에 영혼이 죽는다고 설명하시는 지요. 성경은 육체가 죽는 다고 말합니다. 죽음은 그렇습니다. 그러나 사망은 다릅니다. 우리는 사망이 아닌 생명입니다..성경은 생명으로 옮겼다고 말합니다. 불신자들은 죽으면 그들은 육체가 죽고 나아가서 영혼이 음부에 갇힙니다. 이것이 사실 첫째 사망입니다. 육체도 죽고 영혼도 망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둘쨰 사망이 있습니다. 이 둘째 사망은 [영혼육]으로 심판됩니다. 영벌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영혼이 먼저 살림을 얻는 첫째부활에 의해서 낙원에 참여되고 나중에 육체를 입는 부활을 얻습니다. 이것이 생명을 얻은 자의 영생입니다.
성경에서 어디 세상에서 죽은 자가 부활하는데 영혼의 부활을 말하는지요? 성경은 영혼의 부활이 아닌 육체의 부활을 말합니다. 당신들은 큰 오류에 빠진 것입니다. 또 성경 어디에 세상에서 죽은 자를 가리켜서 육체의 죽음이 아닌 영혼의 죽음이라고 말하는지요.
사람이 죽으면 육체가 흙으로 갑니다. 영혼이 떠나면 육체가 흙으로 갑니다. 똑같은 말입니다. 이렇게 육체가 죽는 것입니다. 영혼은 죽는 것이 아닌 떠나는 것입니다. 성경도 영혼 없는 몸이 죽은 것 같다고 말합니다. 영혼(영)은 죽지 않고 다른 곳으로 갑니다. 신자는 낙원으로 영혼이 가며 불신자는 음부로 갑니다. 그리고 그 영혼들이 육체로 부활하여 심판을 받습니다. 이것이 육체의 부활입니다. 이렇게 육체의 죽음이 있듯이 육체의 부활이 있는 것입니다.
아담이 범죄 하자 하나님의 죄에 대한 선고는 흙으로 돌아가게 했습니다.
보십시요. 죄에 대한 선고는 육체가 깨어지는 것을 말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죽음입니다. 영혼이 죽으면 사멸입니다. 그러나 영혼은 결코 죽지 않습니다.
성경에서도 몸의 부활을 기다린다고 말합니다. 그 몸은 살아있는 육체를 말합니다. 썩어질 몸이 있으며 썩지 아니할 몸이 있습니다. 신령한 몸이 있다는 것입니다. 부활은 그런 신령한 몸을 얻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먼저 썩어질 몸이 흙으로 가게 되는 죽음을 맛봅니다. 그 후에 우리는 육체의 부활 곧 신령한 몸을 입게 된다는 것입니다.
[홀리죠이님의 질문]
저의 글을 논리적으로 비판해 보십시오. 신성의 영과 인성의 혼과 육이 결합된 것이 님의 예수입니다. 그것이 어떻게 온전히 하나님 되시고 온전히 사람 되시는 예수님을 설명할 수 있습니까? 님의 예수는 귀신이거나 괴물입니다. 07.04.14 20:48
[김인찬 목사 답변]
과연 그럴까요. 일단은 예수의 [영혼육]에서 [영]이 신성이면 신성은 그대로 보존됩니다. 조금도 그의 위치가 달라지지 않고 본질에 있어서도 조금도 손상이 없습니다. 신성에 대해서는 이렇게 풀립니다. 그럼 인성에 대해서 말씀드리죠. 그 영이 사람의 육신을 입고 사람이 된 것입니다. 온전한 사람이라는 것은 [영혼육]이 있는 존재를 말합니다. 모든 세계에서 [영혼육]으로 존재하는 것은 오직 사람밖에 없습니다. 태초에 말씀이었던 영이 육신을 입고 [영혼육]이 된 것이 사람이 아니면 귀신입니까? 귀신은 영입니다. 또한 괴물은 없습니다. 말씀이 사람의 육신을 취한 것이 뭐가 잘못되었다는 것인지요. 성경은 하나님의 형상으로 사람을 지었다고 말합니다.
하나님의 형상인 사람이기에 하나님의 말씀이 사람이 되실 수 있는 것입니다. 천사도 하나님의 형상이 아닙니다. 동물도 그렇습니다. 오직 사람만이 하나님의 형상 곧 하나님을 닮았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말씀이 육신을 입고 사람이 되신 그는 참 사람이 되십니다. 여기에서 말하는 참 사람은 우리와 다른 참 사람을 의미합니다. 우리의 영은 창조로 피조된 것이고 예수의 영은 창조되지 않는 아버지의 품속에서 온 영입니다. 그 차이로 예수만이 완전한 참 사람이 되십니다. 우리는 피조 된 사람입니다. 유일한 하나님의 아들로써 참사람과 우리가 같을 수는 없지요. 그 차이는 영이 신성이냐? 혹은 피조 된 영이냐? 입니다.
하나님도 영이시고 마귀도 영입니다. 그리고 천사도 영입니다. 그리고 우리도 영이 있습니다. 그렇다고 하나님의 영과 같은 영들이 아닙니다. 다르다는 것입니다. 본체적이고 본질적으로 다른 것입니다. 예수의 영이 그렇습니다. 그러나 예수의 육신은 우리와 같습니다. 그 육신이 우리와 같기 때문에 인성(인성적 요소)이 있다고 말합니다.
한 가지 더 말씀드린다면 [영혼육]으로 예수가 존재하기에 우리와 같은 모습이지만 그는 참 사람이신 유일한 하나님의 아들이 되십니다. 그러나 우리는 사람입니다. 참 사람이신 예수와 우리는 근본 출생이 다릅니다. 우리는 땅에서 왔고 예수는 하나님의 품속에서 왔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하나님의 아들이 되지만 참 아들이라는 예수와 달리 우리는 양자로써 하나님의 아들이 됩니다. 친아들과 양자는 다르지요, 하나님은 친아들 예수에게 세상의 기업을 맡기셨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 아들과 함께 그 영광을 얻는 것입니다.
[독자의 질문과 반론]
구체적으로 말씀을 드렸는데도 또 구체적으로 부탁드린다고 하시니 다시 말씀드립니다. 예수님이 육체만 죽었다고 하는 것은 예수님의 영혼이 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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