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 혼례 예식의 모든 것 모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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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라서 생활에 있어 생산력의 발전으로 사유재산이 인정되는 시기가 되자 군혼형태는 지속되기가 힘든 상태가 된다. 이에 따라 재산상속을 위해 순수한 혈통의 작자녀를 바라게 되었는데 구혼형태에서는 이를 가름하기가 불가능했기에 일부일처제의 혼인형태가 자리잡게 되었다고 본다. 혼인의 변천은 문헌에 의하면 부여시대에는 일부일처제였으므로 여자가 투기하거나 간음하면 참형에 처하는 관습이었고, 옥저에서는 여자가 10세가 되면 남편이 될 소년의 집으로 가서 성장한 다음 집으로 돌아와 일정한 값의 재물을 받고 혼인하여 부부가 되는 민며느리 제도가 있었고, 고구려, 신라에서는 혼인이 결정되면 신부집의 뒤란에다 작은 집을 짓고 신랑과 함께 거쳐하였다가 신랑이 신부댁에 노동력도 제공하고 자녀도 자라고 10여년이 흐르면 신부를 데리고 신랑집으로 돌아온다고 하는 모계씨족시대의 유풍이 있었다 한다. 다양한 혼인풍습이 고려시대를 거쳐 조선시대로 오면서 유교에 의한 영향을 받아 가치관과 윤리관에 변혁이 온다. 따라서 유교의 영향이 점차 강화됨에 따라 고려말에는 외가 4촌, 이성재종자매와의 혼인이 금지되고, 조선조에 와서는 동성동본의 금혼은 물론, 모계 및 처족과의 혼인이 법으로 금지되었으며, 배우자의 계급적 제한도 엄격해졌다. 유교의 사상에 의한 혼례가 유가의 예문에 따라 행해졌었다. 그 후 서구의 문명이 들어오면서 사회가 산업화 되어가는 과정에 일부층 사람들이 우리의 토속문화와 미풍양속을 공공연히 외면하고 무시하여, 서양(기독교)식에 의한 예식형태를 행하여 유행되게 되었다. 또한 민족적인 사람들이 우리민속의 "전통혼례식"을 전통적 모습으로 재현하려고 사회운동을 하며 노력하지만 공업사회로써의 정서적인 관계와 사회지도층의 무관심한 관계로 우리의 아름답고 뜻있는 혼례문화가 발전되지 못함에 안타까울 따름입니다. ▣ 혼인이란..
남녀가 서로 짝이 되는 의미로 두 사람의 즐거움 뿐만이 아니라 가정이라는 공동생활을 통해 자연과 사회의 발전에 원동력이며 곧 인륜의 시초라 하여, 예로부터 일생일대의 가장 소중한 경사라 일컬었다. ▣ 혼례란..
남녀간 육체적 정신적 결합을 위한 일정한 의식을 행함으로써 만물에게 알리고 사회적으로 인정받는 것으로, 관혼상제의 4례중에서 가장 경사스럽고 중대한 예라 하였으며, 혼인례는 일륜도덕의 시원이고 만복의 근원이라 하였다. ▣ 남녀가 혼인하는 예(혼례)에 있어 새로운 시작이라는 중요한 의미가 있음으로 주육례로 엄격하게 하였으나 그 후 주자사례로 간소화 되어서 현재까지 다음과 같이 전래되어 오고 있다. * 주육례
· 납체 : 남가에서 혼인할 뜻으로 여가에 알리는 절차
· 문명 : 신부가 될 규수의 어머니가 누구인지 묻는 절차
· 납길 : 남가에서 혼인하면 좋을 것이라는 뜻을 여가에 알리는 절차
· 납징 : 남가에서 혼인의 징표로 물건을 보내는 절차
· 청기 : 남가에서 여가에 혼인날을 정해 달라고 청하는 절차
· 친영 : 남자가 여가에 가서 규수를 데려와 예식을 올리는 절차 -> 규범이 너무 형식적이고 번거로움이 많다고 하여 간소한 "주자사례"의 규범이 제시되었다.
-> 위의 육례는 주나라 때 풍습이며 그 후 송대때 4례로 간소화 되었다. * 주자사례
· 의혼 : 혼인할 것을 의논하는 절차
· 납채 : 며느리로 결정하였음을 알리는 절차
· 납폐 : 남가에서 예물을 보내는 절차
· 친영 : 남자가 여가에 가서 규수를 대려와 예식을 올리는 절차 우리나라도 중국의 영향을 받았으나 우리민속 고유의 혼례형태는 유지됐다고 보이며 큰 차이점은 "신랑이 신부집에서 혼례를 행하고 3일 후에 시댁으로" 돌아온다는 점이 완전히 다르다고 볼 수 있다. * 우리나라의 전통혼례
· 혼담 : 신랑집에서 청혼하여 신부집에서 허혼하는 절차
· 납채 : 신랑의 생년월일을 적은 사주를 신부집에 보내는 절차
· 납기 : 신부집에서 혼례날을 택일해 신랑집에 보내는 절차
· 납폐 : 신랑집에서 신부집에 예물을 보내는 절차
· 대례 : 신랑이 신부집에 가서 혼례를 행하는 절차
· 우귀 : 신부가 신랑을 따라 시댁으로 들어가는 절차 * 우리나라의 혼인 또는 혼례에 관한 요즈음의 풍습
· 의혼(혼담) : 신랑집과 신부집은 중매인을 두어 서로 상대의 인물, 인품, 학식, 가문 등을 알아본다.
· 납채(사주) : 신랑집에서는 신랑의 생년월일과 태어난 시 및 본관을 적어 신부집으로 보낸다.
· 납기(택일) : 신부집에서는 신랑집의 사주를 받으면, 신부의 생리일과 궁합을 본 다음 예식날짜를 정해서 신랑집으로 보낸다.
· 납폐(함) : 신랑집에서는 신부집에서 혼인을 허락해준데 대한 감사의 뜻으로 “예서”와 “예물”을 보내는데, 함 속에는 “혼서”와 “채단”을 넣어 보낸다.
· 대례(친영) : 신랑이 신부집에 가서 혼례식을 치르고 신부를 맞아오는 예로써 신부의 집마당 (요즈음의 예식장)에서 병품을 쳐 놓고 초례상을 남북으로 하고 동서에는 신랑과 신부가 자리하여 큰절과 술로써 서약하고 만인에게 알리는 의식이라 하겠다. 의례행사는 주례(사회자)가 전례에 의한 (홀기)라는 순서에 의해 진행한다.
· 전안례, 교배례, 근배례 : 별도설명
· 우귀(현구례)(신행)(폐백) : 신부가 신랑집에 들어가서 처음으로 시부모님께 정식으로 인사를 드리고 시댁가족에게도 인사를 드리는 의례다.
- 이바지 음식 : 신부집에서 혼례식 때 마련한 음식을 정갈히 하고 편지와 함께 신랑집으로 보냄으로 예의와 범절을 다한다. * 전안례 (1) 主人迎壻于門外(주인영서우문외) : 주인이 문앞으로 나가 신랑을 맞이한다.
(2) 壻揖讓以入(서웁양이입) : 신랑이 읍하고 들어온다.
(3) 侍者執雁以從(시자집안이종) : 侍者(시자)가 나무기러기를 들고 신랑을 자리로 안내한다.
(4) 壻就席(서취석) : 신랑능 자기 자리로 들어선다.
(5) 袍雁于左其首(포안우좌기수) : 신랑이 기러기의 머리를 왼쪽으로 가게 든다.
(6) 北向机(북향궤) : 북쪽에 준비된 상을 향하여 무릎을 꿇고 앉는다.
(7) 免伏興(면복흥) :일어난다.
(8) 小退再拜(소퇴재배) : 약간 뒤로 물러나서 두번 절한다.
(9) 主人侍者受之(주인시자수지) : 주인 시자가 받아 안으로 들어간다. * 교배례, 근배례 (1) 壻至東席(서지동석) : 신랑이 초례청 동편 자리에 들어선다.
(2) 姆導婦出(모도부출) : 신부의 시자가 신부를 부축하여 나오는데 흰 천을 깔아 놓은 바닥을 밝고 나온다.
(3) 壻東婦西(서동부서) : 신랑은 동쪽, 신부는 서쪽에서 초례청 앞에 마주 선다.
(4) 進灌進洗壻灌于南婦灌于北(진관진세서관우남부관우북) : 신랑이 손씩을 물은 남쪽, 신부가 손씻을 물은 북쪽에 놓는다.
(5) 壻婦各洗手拭巾(서부각세수식건) : 신랑 신부는 각자 손을 씻고 수건으로 닦는다.
(6) 婦先再拜(부선재배) : 신부가 먼저 두번 절한다.
(7) 壻答一拜(서답일배) : 신랑이 한번 답례한다.
(8) 婦又再拜(부우재배) : 신부가 다시 두번 절한다.
(9) 壻又答一拜(서우답일배) : 신랑이 다시 한번 절한다.
(10) 壻揖婦各机坐(서읍부각궤좌) : 신랑이 신부에게 읍하고 저마다 무릎을 꿇고 앉는다.
(11) 侍者進饌(시자진찬) : 시자가 술잔을 신랑에게 건넨다.
(12) 侍者各沈酒(시자각침주) : 시자가 잔에 술을 다른다.
(13) 壻揖婦祭酒擧肴(서읍부제주거효) : 신랑은 읍하고 술을 당바닥에 조금 붓고 안주를 젓가락으로 집어 상 위에 놓는다.
(14) 又沈酒(우침주) : 시자가 신랑 신부 술잔에 다시 술을 붓는다.
(15) 壻揖婦擧飮不祭無肴(서읍부거음부제무효) : 신랑은 읍하고 신부가 술을 마시되 안주는 먹지 않는다. 이때는 부제이므로 술을 당바닥에 붓지 않으며, 이상을 교배례라 한다.
(16) 又取근壻婦之前(우취근서부지전) : 표주박을 신랑 신부에게 건넨다.
(17) 恃者各沈酒(시자각침주) : 시자가 표주박에 술을 따른다.
(18) 擧杯相互壻上婦下(거배상호서상부하) : 신랑 신부는 표주박을 서로 바꾸는데 신랑 잔은 위로, 신부 잔은 아래로 하여 바꾼다.
(19) 各擧飮不祭無肴(각거음부제무효) : 서로 바꾼 표주박 잔을 마시는데, 땅바닥에 기울여 쏟지 않으며 안주도 들지 않는다.
(20) 禮畢撤床(예필철상) : 예를 끝내고 상을 치운다.
(21) 各從其所(각종기소) : 신랑 신부 저마다 처소로 돌아간다. ※ 이상으로 초례청에서 초례를 끝냄으로써 혼례식이 끝난다. 한국전통혼례 요즈음의 한국혼례의 모습이 우리들의 일반대중문화에 토착하게된것은 약 300여년전 정도 되었다.
우리의 오랜전통모습이 유일하게 변하지 않고 전해내려오는것은 신랑이 신부집으로가서 혼례를 올리고난 후에 신랑집으로 온다는것과, 혼례청에서 우주철학의 바탕과 음양에 이치를 근본으로 하는 차이다. 1-혼담 양가에서는 혼인의 뜻을 전달할수있는 사람을 중간에 두어 서로 가문과 학식및 인품 등을 파악 해보도록 한다.
서로 호의적인 감정이 오가면 부모들만이 먼저 선을 보게되어 당사자들은 사전에 굴을 보지못하는 경우도 있다. 서로 의혼이 이루어지면 대개는 남자측에서 먼저 "청혼서"를 보낸다.
여자측에서도 혼인의 마음이 있으면 "허혼서"를 보냄으로 의혼이 성립된다. 2-납채 사주 납채문 연길 허혼서 편지나 혼인하고져하는 뜻을 전달받은 신랑집에서는 "납채문"과 "사주"를 써서 홍색보자기에 담아 신부집으로 보낸다.
"사주"를 받은 신부집에서는 혼례를 하게될 신랑과신부의 운세와 생리일을 참고하고 혼례식의 일 시를 "택일"하여 백지에 정갈하게 써서 다시 (연길)신랑집으로 보낸다.
-사주 : 육십갑자에 따른 간지, 즉 생년월일과 출생시간을 기록한 서장이다.
-납채문 : 허혼에 대한 감사의 글과, 택일해줄것에 대한 요청과 인사말이다.
-연길 : 택일요청에 대한 인사말과 혼례식때입을 신랑의복 치수를 알려줄것을 알린다. 3-납폐 채단 혼서지 함 신부집으로부터 편지(연길)를 받은 신랑집에서는 신부가 혼례때 입을 "채단"과 "혼서지" 혼수 함을 보내는데, 그중에 채단은 보통 한달전에 보내며 혼례날 직전에 "폐물"과 "혼서지" 추가채단 "봉채"를 넣어 "물목"과 함께 보내는데 이것을 "함"이라 한다.
혼수와 함께받은 "혼서지"와 "납체"때 받은 "사주"를 신부는 평생 소중히 간직하여 남편에 대한 일편단심 의미로 삶 을 다할때는 관속에 넣어 가지고 간다고 한다.
-채단 : 납폐함에 넣어보내는 예물로서 주로 비단을 넣으므로 채단이라 한다.
-혼서 : 신랑집 혼주가 신랑에 관한 소개글과 인사말이다.
-함 : 혼서와 예단을 넣어 신부집으로 보내는 것으로서 풍습이 지방에 따라 조금씩 다른데, 대부분 납폐혹은 봉채라고도 한다. 4-초자례 (예비신랑)은 혼인을 함에 있어 전통절차에 의해 양가댁에 대한 예절이 시일과 함께 진행이 끝나고, 드디어 혼례식 날이오면, 예비신랑은 아침일찍 일어나 사당이 있다면 그곳이 제일먼저가 되겠지만 그렇지 않을시는 아버님 어머님께 좌정하시도록 부탁을 드린후에 정중히 절을 드린다.
절을 하고난후에는 무릎꿁고 앉아서 "그동안의 노고에 감사드립니다" 또는 새사람을 맞이하여 함께 열심히 잘살겠습니다! 라고 하며 부모님의 은혜에 대한 고마움의 표시를 인사말과 함께 정숙한 모습으로 표현하고 혼례청으로 이동 하도록 한다!
(예비신부)도 결혼식 날 아침에 일찍 부모님을 모시고 절을 드리면서 감사한 마음과 고마움의 표시를 예의를 다하여 인사드리고 난후에 혼례청에 임하도록 한다. 한국전통혼례 5-전안례 신랑은 이제 혼례식을 하기위하여 몸과 마음을 정갈히 한후 집안어른(가족중에 대표)의 안내를 받으며 신부댁을 향하여 (초행걸음) 출발하게된다. "장가간다" 그때 보통은 모두다 걸어서 갔으며 일부 는 신랑을 말 에 태워서 가기도 했다. 신랑이 신부집 대문앞에 당도하면 신부집 대표가 나와서 손님맞이를 하고 집안으로 안내를 한다. 신랑이 대문을 들어서면 마당에 놓여진 "집불"을 넘어오는데 악귀를 쫒는다는 의미가 있다. 신랑은 장모가 계신 안방 문앞에 가지고온 기러기를 상위에 놓고 두번 절을 한다. 이때 장모는 나와서 기러기상을 들고 방으로 들어간다!
** 혼례에 신랑이 기러기를 가지고 오는 이유 **
1- 기러기는 사랑의 약속을 한번하면 영원히 확실히 지킨다. 사는동안 짝을 잃어도 결코 다른짝을 찻지 않으며 홀로 지낸다.
2- 날아갈때도 행렬을 맞추어 상하의 질서를 지키며 앞서가는 무리가 소리내면 뒤따라오는 무리도 화답을 하며 예를 지킨다.
3- 기러기는 왔다는 흔적을 남기는 속성도 있다하여, 이러한 기러기의 참뜻을 본받아 훌륭한 삶의 업적을 남기고 변함없이 다복하게 잘 살겠노라는 뜻으로 기러기를 가지고와 예를 올리는것이다! 6-교배례 신랑은 전안례를 끝내고 나면 신부집의 대청이나 마당에서 미리준비해둔 대례상차림의 혼례청에 동쪽편자리에 서있게된다.
방에서 기다리던 신부는 신랑이 대문을 들어서면 그때부터 머리에 쪽두리를 얹고 얼굴에는 연지곤지를 붙이고 양쪽수모의 도움을 받아 대례청에 나올준비를 한다.
집례자가 "모도부출"이라고 홀기를 소리내어 부르면 그때 신부는 미리깔아 놓은 백포위를 얼굴을 가리고 수모의 도움을 받아 천천히 걸어 나온다. 신랑신부가 초례상을 사이에 두고 마주서면 집례자가 혼례절차에따라 홀기를 선언하면 구경꾼들이 덕담을 재치있는 유머로 한마디씩 건네어 분위기가 화기애애하게 진행된다.
신랑과 신부는 혼인 서약의 의미로 음양의 이치에 따라 서로 절을 하는데 음의 격인 신부가 먼저 절을 네번 하고나면 이어서 신랑이 두번 절을 한다.
신랑은 2배 신부는 4배 를 하는데 요즈음은 절반으로 한다.
** 신랑.신부가 서로 절의 횟수가 다른이유 **
동양철학에 우주관의 음 양 이치에따라 홀수는 양 이고 짝수는 음이므로 신랑은 양이되어 1이되고 신부는 음이므로 2가되어 다르며 특히 "관혼제례"의 대례때는 곱수로 큰절을 한다.
** 연지 곤지의 유래 **
(경면주사)라하여 신부의 양볼에 새빨간색이 나는 광물로 물을 들인 반들반들하고 윤이나는 종이를 붙이는 것으로 경사스러운 날에 아름다운 새신부에게 악귀가 근접하지말라는 의미다. 7-합근례 신랑 신부가 민속전통절차에 의해 서로 예의를 갖추어 절을 하면서 자연에게 감사하는 마음으로 하늘과 땅에도 고수레 하고, 서로는 인연을 맺고 화합을 하겠다는 의미로 술을 나누고 마심으로 부부됨을 약속한다 ..............!
더욱이 이세상에 꼭 하나일수밖에 없는 표주박에 술을 담아 나누어 마심은 둘이 하나됨의 증거며 혼례성사의 상징으로 의미와 뜻을 가진다.
아울러 자연의 천지만물에게 거룩한 인륜지대사인 성혼을 알리면서 혼례식이 끝나고 마을사람들이 한데 어울려 음식과 술을 나누어 먹으면서 흥겨운 잔치의 놀이가 이어진다.
** 표주박 **
신랑신부가 둘로 나눈 표주박 잔에 술을 따라 마시는 의례, 술은 서로 화합과 존중의 의미이며, 표주박에따라 마시는 술은 부부의 인연을 맺는다는 의미가 있다. 표주박은 쪼개지면 이세상에 그짝은 하나뿐이며 그 둘이 합쳐지므로서 온전한 하나를 이루게 된다는 뜻이다.
** 세시풍속 **
양가집 가족들은 신랑신부의 혼인날자를 정해놓으면 남들의 애사는 물론 다른사람의 결혼식에도 참여하지 않는다.
이유는 혹시 나쁜 악귀가 붙어오지않을까 하는 염려와 또는 나의 복운이 달아날까 하는 믿음이었다 한다.
혼인은 그만큼 새로이 시작하는 의미에서 흔히들 "인륜지대사"라하며 중요시하였다. 8-첫날밤 신부집에서 혼례식을 마치고 난후 밤이되면 "신방"을꾸며 신랑신부가 첫날밤을 함께(합방) 보내게 되는데 "신방였보기"라는 풍속이 있다.
신방을 엿보게된 유래는 여러가지가 있는데, 그중 하나를 소개하면 옛날에 후손을 일찍보려는 조혼 풍속으로 평소 신부를 짝사랑하거나 은밀히 정을 통해온 동네청년이 첫날밤에 어린신랑을 해치고 신부를 데리고 도망간후로 신방을 지키게되었다는 설과,또는 "호사다마" 곧 좋은 일에 악귀가 가까이올까 염려하여 망을보는 것이라고도 하나, 공통된 점은 조혼과 관련있는 혼인풍습으로 보인다. 한국전통혼례 9-우귀신행 신부집에서 혼례를 올리고 첫날밤을 지낸후 신랑과 신부는 신혼생활을 하게되는데 아주먼 옛날에는 신부집 뒤뜰에 "서옥"이라는 "별채"에서 신랑은 신부가족과 함께 생활을 하는데 자식을 낳아 성장을 하여 때가되면 신랑집으로 간다...
그것이 해묵이.달묵이.삼일신행.당일신행.으로 이어져 왔다. 그때를 "시집간다"라고 하며 "우귀"또는 신행이라고도 한다.
신행을 갈때 거의모든신부는 가마"사인교를 타고 간다.
가마속에는 "오강"을 넣어주고 겉에는 바가지를 달며 위에는 호랑이 가죽을 쒸우고 가기도 했다. 그때 신랑은 "말"을 타고 가기도 했으며 대개는 걸어서 가야만 했다.
신랑집에 당도하면 사람들이 나와서 콩.팥.목화씨.소금등을 뿌리고 대문안에는 볏집에 짚불을 놓아 신랑신부가 넘어오도록 하여 잡귀를 쫓는 뜻으로 하는데 요즈음도 간혹 볼수있는 풍속이다. 10-폐백례 1-신부집에서 돌아올때 가지고온 음식(이바지)을 놓고 시부모께 인사를 드리며 가족의 촌수와 소개를 받는 절차이다. 신부만이 절을 하는것이며 신랑은 상옆에 서서 절받는 분들에 대한 소개의 말을 신부에게 해준다. 조부모가 계실때는 별도의 상을 차려놓아야하며, 부모께 먼저 인사(절)을 드리고난후 조부모께 인사(절)을 드린다. 다음은 직계 형제부터 인사를 드리고 난후에 삼촌및 집안분들께 인를 드리면서 덕담과 유머로 화기애애한 신랑집에서 축하의 잔치분위기가 이어진다.
** 밤과 대추의 유래 **
신랑집에서 첫날밤을 보낸 새신부는 새벽에 아침일찍 일어나서 시집올때 별도로 가지고온 대추와 밤을 그릇에 정갈히 담아 교자상에 받쳐들고 시부모가 계시는 방문앞에 놓고서 첫문안 인사를 드렸다.
(대추):부지런하고 성실히 다복하게 잘살겠습니다.
( 밤 ) :시댁의 가풍을 존중하고 늘 어긋남이 없도록 잘하겠습니다. 라는 뜻으로 대추와 밤을 사용하였다. 2-시부모님과 시조부모님께 옛날에는 큰절 4배를 드렸으나 요즈음은 흔히 2 배를 드린다. 3-직계형제들과 맞절을 하는데 신부는 평절로서 혼자한다. 4-직계가족을 제외한 사람들께 절을 드리는데 윗분들께는 큰절한번으로 한다. ※ 신랑신부의 혼례의상 * 신부의상
▶ 활옷(闊衣)
원래는 궁중에서 의식이 있을 때에 왕비가 입던 대례복이었으나 후에는 서민의 혼례복으로도 사용되었다. 활옷은 홍색비단에 청색으로 안을 받쳐서 만들었는데 이는 청색(여성)과 홍색(남성)의 화합을 의미하는 것이다. 홍색바탕 천에 숭고함과 부귀와 장수를 상징하는 연꽃 모란꽃 십장생 등을 가득히 수놓아 만든 활옷은 앞길이 짧고 뒷길이 긴 모양이며, 소매끝에는 색동을 대고 흰색 한삼을 덧붙였다.
활옷에는 다홍색 바탕에 모란꽃,연꽃 등과 더불어 장수(長壽)와 길복(吉福)을 의미하는 물결,바위,불로초,어미봉,새끼봉,호랑나비 등의 수외에 '二姓之合','萬福之源','壽如山,富如海'와 같은 글씨를 수놓았으며, 소맷부리에 하남이 달려 있다. 이 활옷은 황색 삼회장 저고리와 다홍 대란치마 위에 입었으며 대대를 띠었다.
수식(首飾)에는 용잠을 꽂고 큰댕기(도투락댕기)와 앞댕기를 드리웠는데, 큰댕기는 뒷댕기로서 주렴이라고도 한다. 이 뒷댕기는 검은 자주 비단으로 만들어 너비 10cm 정도에 길이는 치마 길이보다 약간 짧고 두 갈래로 되어 있는데, 이에는 찬란한 금박을 하고 위에는 석웅황이나 옥판으르 달고 밑에도 밀화나 금패의 매미 다섯 마리 정도를 달아 두 갈래 진 댕기를 연결해 주고 있었다. 큰댕기가 머리 위를 덮어 뒤에 매단 데 비하여 앞댕기는 앞에 드리우는 댕기로서 큰 비녀 양쪽 여유분에 감아 적당한 길이로 맞추어 앞 양 어깨 위로 드리웠다. 앞댕기와 뒷댕기는 혼례복에서는 짝을 이루는 것이었다. 이 앞댕기도 검은 자주색이 원칙으로 금박을 하였고 양끝에는 진주 또는 산호주 등의 장식을 하였다. 머리 위에는 칠보 화관을 썼다.
활옷은 상류계급에서 착용한 것이고 일반인은 활옷 대신에 원삼을 입었다. 원삼도 활옷과 같이 활수의 포의에 대대를 갖춘 조선조 여인의 일반 예복이었는데, 궁중에서는 황후 황원삼, 왕비, 홍원삼, 비빈 자적원삼, 공주/옹주 초록원삼이었고, 반가에서는 초록원삼이었다.
▶ 원삼(圓衫)
고려시대부터 대례복으로 궁중여인들과 신부의 웃옷으로 사용되어 왔다. 황후는 황색, 왕비는 홍색, 비빈은 자색, 공주나 옹주는 녹색원삼을 입었는데, 그 중에서 녹색원삼이 서민층의 혼례식에 사용되었다. 민간 원삼에는 금박을 하지 않았다.
원삼은 각기 그 색에 따라 깃도 같은 색이었으며, 소매에는 다홍과 황색의 양색색동이 달렸고, 소맷부리에는 한삼이 달려 있었다. 거기에 다홍색 대대를 띠었고, 계급에 따라 그 금박 문양이 달랐으니 황원삼에는 용문(龍紋), 홍원삼/자적원삼에는 봉문(鳳紋), 초록원삼에는 화문(花紋)이었다. 이의 수식은 궁중 의식에서는 큰머리, 어여머리로 꾸미기도 하였으나 족두리를 쓰는 것이 항례였다. 이러한 원삼차림은 신랑의 사모관대와 같이 서민층에서 신부용 혼례복으로 그 사용이 허용되었다.
▶ 대대(大帶)
홍색 공단에 심을 넣어 만들어 금박무늬를 찍는다. 활옷이나 원삼을 입은 뒤 앞가슴께에 대대의 중앙이 오도록 대고 양쪽으로 돌려 뒤에서 묶어 늘어뜨린다.
▶ 앞댕기
쪽 찐 비녀에 감아 드리움으로써 족두리나 화관에서 어깨를 거쳐 웃옷까지로 연결시키는 역할을 하는 댕기로 검은 자주색 비단에 꽃무늬를 금박으로 중앙과 양끝에 찍고 끝에는 구슬을 10개 정도 궤어 달았다.
▶ 도투락댕기
활옷이나 원삼을 입을 때에 화관이나 족두리에 맞춰 머리뒤로 늘어뜨리는 큰댕기로 검은 자주색 비단에 자수와 칠보로 화려하게 장식하여 만들었다. 지방에 따라서는 오색실을 붙이기도 하였다.
▶ 스란치마/대란치마
스란치마는 소례복에 입고, 대란치마는 대례복에 입던 치마이다. 금박무늬가 찍힌 천을 덧댄 스란단을 한 층 뭍인 것이 스란치마리고, 두 층 붙인 것이 대란치마이다. 가례나 길례 때는 속에도 남색 스란치마를 입었다.
▶ 족두리
원래 몽고에서 여인들이 외출할 때에 쓰던 일종의 모자였으나, 고려말 우리나라에 들어온 뒤로 모양이 왜소해져 머리장식품으로 변하였다.
영조 때의 가발금지령에 따라 왕비나 세자빈이 칠보족두리를 쓰면서부터 널리 보급되기 시작했는데, 궁중이나 양반집에서 의식용으로 소례복에 족두리를 썼다.
조선조 중엽까지 부녀자의 머리형태는 얹은머리'였는데, 영정조에 이르러 얹은머리의 금지와 더불어 쪽찐머리로 개혁하고 족두리를 쓰게 되었다. 사치를 방지하기 위하여 족두리는 모두 흑색에 장식을 제한하였다.
▶ 당의(唐衣)
왕비나 세자비, 공주 및 외명부 등이 소례복으로 착용하고, 양반집 여인들은 대례복으로 착용하였다. 녹색비단에 홍색 단감을 대거나, 자색비단에 분홍색 안을 대어 만든 겹옷으로 소매가 좁고 겨드랑이 밑에서부터 유연한 곡선으로 트이고 밑도련은 반달 모양을 이루고 있다.
왕실에서는 당의에 금박을 찍어 입었으나 반가에서는 무늬없이 만들었다. 당의를 입을 경우 머리에는 화관을 썼다.
▶ 화관(花冠)
활옷이나 당의를 입을 때에 사용되었고, 일반 서민들은 혼례때만 사용이 허용되었다. 여러 가지 보석으로 장식함으로써 낭비가 매우 컸다. * 신랑의상
신랑은 친영을 위하여 사모관대(紗帽冠帶)로 장속한다. 사모관대란 사모를 쓰고 단령포를 입은 다음 각대를 띠고 목화를 신은 옷차림을 말한다. 사모관대는 조선조 벼슬아치의 관복 중 평상복에 속하는 것으로서 초기에는 당상관에 한했으나 이후 당하관에게도 이의 착용이 허용되었다. 이에 따라 단령포의 색과 혁대의 장식 재료에 의하여 품계를 가리었고, 또한 흉배에도 도안의 구별이 있었다.
이러한 옷차림은 신랑의 나이에 이미 벼슬길에 들기는 어려웠을 것이므로 당시 혼인을 인륜(人倫)의 대사(大事)라 하여 비록 가장 낮은 품계(九品)의 것이긴 하더라도 특별히 배려하여 예우한 것이라 할 수 있다. 따라서 단령은 녹포였고 여기에 단학 흉배를 가식하였으며 흑각대를 띠었다. 이 차림은 서민층 혼례 때에도 허용되었다.
▶ 사모관대
신랑이 입는 옷은 보통 '사모관대'라 일컬어지는 관복 일습인데, 평민 양반의 구별없이 사모,단령,흉배,각대,목화를 착용했다.
▶ 사모
사모는 원래 직품(職品)을 가진 자가 평상복에 착용하던 것이나, 직품을 갖지 않은 자라도 혼례때에는 이를 쓰는 것이 허용되었다. 재료는 검정색 실이며 뒤쪽에 붙은 양쪽 날개에는 구름 무늬를 넣었다.
▶ 단령
단령은 관직자가 평상복으로 입던 옷으로, 직품에 따라 홍색,청색,흑색 등의 비단으로 만들었으며, 혼례 때에 입던 단령은 주로 청색계통이었다.
단령에는 흉배를 다는데, 보통 두 마리의 학이나 구름 등의 모양으로 수를 놓았다. 단령을 입은 뒤 허리에는 각대를, 신발로는 목화를 착용하였다.
▶ 목화
목화는 원래 조선조 때 문무백관이 평상복에 신던 신발인데, 혼례 때에는 서민들이 신었다. ※ 국혼의 절차 혼례의 여섯가지 절차를 의미하는 六禮의 전통적 개념에 있어서 조선시대 궁중에서 거행된 국혼의 내역과는 약간의 차이가 있다. 국혼은 왕비를 맞아 들이는 의식(納妃儀), 세자빈을 맞아 들이는 의식(納嬪儀), 왕자의 혼례의식 , 왕녀의 하가의식(下嫁儀式)의 네가지 경우로 나누었는데, 이는 왕과 세자의 가례와 왕자군과 왕녀의 길례(吉禮)로도 구분되어 진다.
왕비를 맞아들이는 의식에 대해 알아보자.
미리 길일을 골라 사직(社稷)과 종묘(宗廟)에 고하는데 보통 때의 의식과 같이 하며 축문은 당일에 짓는다.
▶ 1. 납채[納采]
마루에 납시어 장차 납채를 행할 것을 명령하고, 교지(敎旨)로 사자(使者)를 명한다.예조에서 명령을 받들어 내외의 궁원에게 그 맡은 바 직책에 따라 준비하도록 명령한다.
- 왕비의 집에서 납채를 받는 의식
빈자(賓者)가 명을 받고 나가서 말씀을 청하면 正使가 말하기를 "예(禮)를 마쳤습니다."라고 한다. 빈자가 들어와서 알리면 주인이 말하기를,"모공(某公)께서 교지를 받들여 某의 집에 오셨는데, 某는 선인의 예에 따라 종자(從子)에게 예하기를 청합니다."라고 한다.
빈자가 들어가서 고하면 주인이 나가서 사자를 맞아 읍양하고 대문밖에 나가서 서쪽을 향해 서면 주인이 문에 나가서 동쪽을 향해 사배하여 보낸 뒤 들어와 사당에 고하기를 의식과 같이 한다. 정사(正使)가 복명(復命)하기를,"교지를 받들여 납채하는 예를 마쳤습니다."하고 전교관과 사자는 물러간다.
- 빈자(賓者) : 관례(冠禮) 때 남자에게는 삼가(三加)의 절차를 맡아 머리에 관을 씌워 주고, 여자에게는 비녀를 꽂아 주는 의식을 맡은 사람. 고대에는 집안의 어른이 빈자를 선택하였으나, 나중에는 남자의 경우는 친구 중에서 어질고 덕행이 뛰어난 사람을, 여자는 친척 가운데서 현숙한 부인을 골라 위촉하였다.
▶ 2. 납징[納徵]
- 왕비의 집에서 납징을 받는 의식
빈자가 명을 받고 나와서 말하기를 청하면, 정사가 말하기를, "某는 교지를 받들어 납징합니다."한다. 빈자기 들어가 고하면 주인이 말하기를, "교지를 받들어 臣에게 중한 예를 내리시니 臣 某는 삼가 전교를 받들겠습니다."라고 한다. 빈자와 사자가 모두 납채의 의식과 같이 하며 복명한다.
▶ 3. 고기[告期]
사자에게 명하기를 납채의 의식과 같이 한다. 교서를 선포하기를, 某宮某의 딸을 맞이하여 왕비로 삼으니 명하여 기일을 고하는 예를 행하게 된다.
정사가 말하기를, "교서로서 某에게 혼인의 기일을 알리라 하셨습니다."라고 한다. 빈자가 들어가서 고하면 주인이 말하기를, "臣 某는 삼가 교서를 받들겠습니다."한다. 빈자가 나가서 고하고 돌아와 주인을 인도하여 나가서 사자 이하를 맞이하여 이하 "예를 마쳤습니다."말하고 빈자와 사자 및 사자의 복명까지는 모두 납채의 의식과 같이 한다.
▶ 4. 책비[冊妃]
- 왕비가 책명을 받는 의식
알자(謁者)가 사자 이하를 인도하여 막차(幕次)에서 나와 자리에 나아가게 하고 주인은 대문안에서 동쪽을 향해 선다.빈자가 명을 받고 문을 나가서 동쪽을 향하여 말하기를, "감히 말씀을 청합니다."한다. 정사가 말하기를, "某는 교서를 받들어 왕비에게 비물전책(備物典冊)을 하여 드립니다."한다.
빈자가 들어가서 고하고 주인을 인도하여 대문밖에 나가서 맞이하여 동쪽을 향하며 자리에 나아가서 사배하게 한다. 알자가 사자를 인도하여 문에 들어오는데 오른쪽으로 들어오며, 교명안(敎命案)과 冊, 보안(寶案)을 든 사람이 따른다. 주인은 문 왼쪽으로 들어가며 중문 밖에 이르러 각각 자리로 나아간다.
왕비가 좌석에서 내려오면 상궁이 앞에서 인도하여 안으로 들어가고, 병조에서 교지를 받들어 의장을 해산시킨다. 그 빈자와 사자 및 사자가 복명하는 것은 고기의 의식과 같이 한다. 다만 복명하는 말에 "교지를 받들어 왕비에게 비물(備物)과 전책(典冊)을 드리는 예를 마쳤습니다."라고 한다.
▶ 5. 명사봉영[命使奉迎]
어좌를 마련하고 어물을 진열하며 막차(幕次)를 마련하는 것은 앞의 의식과 같다.
정사가 말하기를, "某는 교서를 받들어 오늘의 길진(吉辰)에 직책을 다하여 봉영합니다."한다. 빈자기 들어가서 고하면 주인이 고하기를, "臣이 삼가 전교를 받들겠습니다."고 한다.
정사가 말하기를,좋은 달,좋은 날에 某 등은 교서를 받들어 직책을 다하여 봉영합니다."한다. 상전이 전언에게 전하여 고하면 전언이 들어가서 아뢴다. 궁인이 시종(侍從)하고 내시가 도종(道從)하며 의장이 앞에서 인도하기를 평상과 같이 한다.
▶ 6. 동뢰[同牢]
예를 마치면 상궁이 전하를 인도하여 동방에 들어가서 면복을 벗고 상복을 입게 하고 또 상궁이 왕비를 인도하여 악차(握次)에 들어가 적의를 벗게 한다. 상궁이 전하를 인도하여 악차에 들어간다.
왕비가 백궁의 하례를 받는 의식과 전하가 백궁을 회례하는 의식, 왕비가 내명부와 외명부의 조회를 받는 의식이 있다.
왕비가 내명부와 외명부의 조회를 받는 의식의 예는 정한(正韓)와 동지에 한회(韓會)하는 의식과 같다. 다만 치사에 "첩모성(妾某姓)등은 삼가 왕비 전하의 덕이 밝고 도타와 중궁에 정위하시니 모든 신하는 기쁨을 이길 수 없습니다."라고 한다. 회사에는 다만 "삼가 천천세수(天天歲壽)를 올립니다."라고 하는 말을 덧붙인다. ※ 전통혼례와 말 신랑은 신부댁에서 혼례를 올리기 위하여 먼길을 간다.
신랑의 백부님께서 일행을 인솔하는데 그때만은 신랑이 말을 타고 가도록 예우를 해주어 가게된다. 신부댁 부근에 도착하면 이웃집의 사랑방에 짐을 풀고 혼례시간을 기다린다.
낮과 밤이 교차되는 저녁 해질 무렵 신부댁에서는 앞마당에 초례상을 잘 차려놓게되며 시간이 어두워지므로 촛불을 밝히게 된다.
예의를 갖추어... 혼례식을 올린 후에 신랑은 처가에서 첫날밤을 지내게 된다.
처가에서 몇년 또는 몇일을 지낸 후에 신부와 함께 신랑댁으로 오게되는데 신랑은 말을 타고 신부는 가마를 타고 시댁으로 출발을 한다.
백마(말)의 이용에 관하여
각종 축제의 행사에 적당합니다. 이용료는 기본적으로 350,000원입니다. 시외 지역은 운송료가 추가될 수도 있으므로 사전 협의를 원합니다.
이곳의 말은 백마로써 성격이 온순하고 행사장의 경험이 많기 때문에 주변이 복잡한 상황에서도 순순히 잘 응해주는 것이 특징입니다. 말이 그리 크지도 않고 작지도 않은 중간 정도의 종류로서 한국에서도 흔치 않은 귀한 말입니다.
※ 민속예절 1. 남자가 큰절하는 요령 절하는 예절은 공수에서 시작된다.
공수한 자세로 절해야 할 상대앞에 선다.
남자는 왼손을 오른손위에 포개고 엎드리며 공수한 손으로 바닥을 짚는다.
왼쪽 무릎을 먼저 꿇고 오른쪽 무릎을 꿇는다.
왼발이 아래가 되고 오른발이 위로 되도록 하여 발등을 포개고 앉는다.
발 뒤꿈치에 엉덩이가 닿을만큼 내려 앉는다.
팔꿈치를 바닥에 붙이며 이마가 손등에 닿도록 머리를 숙인후 약 1-2 초후에 고개를 들며 팔꿈치를 바닥에서 떼고 오른쪽 무릎을 먼저 일으키고 공수한 손을 바닥에서 떼어 오른쪽 무릎에 대었다가 힘을 주어 일어나서 양발을 가지런히 모으고 바른자세로 섰다가 잠시후 다시 앉는다. 2. 여자가 큰절하는 요령 여자는 오른손을 왼손위에 포개고 공수한 손을 어깨높이에서 수평이 되게 올리고 고개를 숙여 이마의 손등에 댄다.
왼쪽 무릎을 먼저 꿇은후 오른쪽 무릎을 가지런히 꿇어 오른발을 아래로 왼발을 위로 발등을 포개어 무릎을 벌리며 상체를 60도 정도 굽힌후 상체를 서서히 일으키면서 오른쪽 무릎을 먼저 세우며 일어나서 양 발을 모은다.
수평으로 올렸던 공수한 두 손을 내리며 바른자세로 잠시 섰다가 앉는다. 3. 여자가 평절하는 요령 두 손을 양 옆으로 가지런히 내린다음 왼쪽 무릎을 먼저 꿇어 앉는다.
이때 손 끝은 바깥으로 향햐게 하고 윗몸을 앞으로 반쯤 숙이며 두 손바닥은 바닥에 댄다.
잠시 멈추었다가 윗몸을 일으키며 손 바닥을 떼면서 일어나 왼발을 오른발과 모으면서 바르게 선다. 4. 절 할때 남자와 여자의 구분 동양사상에 있어서 낮은 양이요, 밤은 음이고, 남자는 양이고, 여자는 음이며 숫자에 있어서 1(홀수)은 양 이고, 2(짝수)는 음이라 하여, 절을 할 때는 남자와 여자가 절하는 숫자가 그래서 다르며 큰 행사라고 할 때는 곱수로 합니다.
예를 들어 제례 및 대례(혼례식)일 때 남자는 2배 여자는 4배를 하게 됩니다.
또한 여자가 절해야 할 대상이 부모님 항렬일 경우 큰절을 드리게 되고 같은 형제 항렬일 경우 평절로 드리면 됩니다. ※ 우리나라 혼인풍습 * 혼인 절차에는 예전이나 지금이나 풍류를 깃들여 즐겨오는 풍속들이 있다. 갖은 분장으로 골목을 떠들썩하게 하는 "함"팔기는 도시생활로 바뀐 현대 주택가의 골목에 여전히 남아 있어 심심챃게 볼수있다. 어떤 때는 시끄럽고 귀챃게 여겨질 때도 있지만 기본적인 우리의 인심은 왠지 그런 현상들을 애교와 너그러움으로 이해하고 있다. 그것은 남을 배려하고 동질감을 갖는 우리민족의 훈훈한 정서가 아니겠는가... 1. 신부댁에서 신랑메달기(동상례) 신랑이 혼례식을 마치고 신부와 함께 시댁으로 갔다가 약 3일 정도에 다시 신부집으로 돌아온다(재행이라함). 그때 동네 사람들이 신부집에 모여 "신랑달기"를 하는데 "처녀 훔쳐간 도둑의 발크기를 재겠다" 또는 "이 마을 처녀를 춤쳐간 죄가 크다" 며 신랑에 발목을 잡고서 거꾸로 메달고 발바닥을 북어를(꼭 북어가 아닌 빗자루 등을 이용) 사용하여 반대말 잇기 등 신부를 데려오라며 유머스러움과 재치있게 소란을 피우고 장모가 음식과 술을 대접하면 그만두는 의식으로 이웃 사람들과의 친숙한 관계를 만들기 위한 하나의 재치있는 풍습이라 아니할 수 없다.
전통적인 혼례풍습이 구한말 일제하에 서구식 예법으로 강제로 바뀌어가는 과정에서 점차 사라져 갔으나 요즈음도 신부측의 남자분들( 대개 친척들)에 의해 간략하고 비슷하게 행해지고 있는 모습을 간혹 볼 수 있다.
우리 민속에서의 참뜻이 있고 의미가 있는 아름다운 풍습의 "함팔기", "신방엿보기"등이 남아있으나 그런 전래를 행함에 있어 정도가 지나치면 오히려 "예의"에 어긋나는 사례가 되므로 어디까지나 화기애애하고 정감을 나눌 수 있는 정도로만 해야 좋을 것 같다. 2. 신방 엿보기 신방을 엿보게 된 유래는 여러가지가 있다. 옛날에 후손을 일찍 보려는 욕심에서 생긴 조혼풍속으로 신랑은 나이가 어린데 신부는 서너살 위인 경우가 많았는데 동네에서 평소 신부를 짝사랑하거나 은밀히 정을 통해온 자가 첫날밤에 신랑을 해치고 신부를 데리고 도망가는 일이 있은 뒤부터라는 설도 있고, 옛날에 좀 모자라는 아들을 둔 어머니가 혼례를 하는 아들의 첫날밤 일이 걱정되어서 아들에게 "첫날밤에는 신부를 잘 벗겨야 하느니라"라고 가르쳤다. 신부 어머니도 첫날밤을 맞는 어린딸이 걱정되어 말하기를 "첫날밤에는 남자가 벗겨도 참아야 하느니라"라고 일렀다. 마침내 혼례를 치르고 난 첫날밤 신랑은 어머니가 가르쳐준대로 신부를 벗겼다. 옛날의 백정들은 대체로 가죽을 벗기는 것을 "벗긴다" 라고 알고 있었기에 바보 신랑은 신부를 벗겨버린 것이다. 또한 착한 신부도 벗겨도 참아야 한다는 어머니의 말씀대로 참고만 있었다가 그만 죽고 말았다는 설도 있다. 이런 일이 있은 후부터 신방을 엿보는 풍속이 생겼다고도 하며 "호사다마" 곧 좋은 일에 악귀가 가까이 할까 염려하여 망을 보는 것이라고 하기도 한다.
그래서 신방 엿보기를 "신방지킨다", "수직한다", "상직한다"고 말하며, 여러가지 유래담이 있는데 나이 어린 신랑 신부가 걱정이 되어서 지켜봐 준다는 공통된 점이 있어 조혼과 관련있는 혼인풍속으로 보인다. ※ 우리민속의 전통상식 1. 민속의 십이지란... 干支(간지) 는 十干(십간)과 十二支(십이지)로 구별이 되는데 干(간)은 양에 속하며 支(지)는 음에 속한다. 그러므로 干(간)은 天(천)이며 支(지)는 땅으로 통한다. ▶ 십이지(십이지)에 붙인 동물의 이름
子는 쥐·丑은 소·寅은 범·卯는 토끼·辰은 용·巳는 뱀·午는 말·未는 양·申은 원숭이(잔나비)·酉는 닭·戌은 개·亥는 돼지. 2. 십이지와 시간과의 관계 → 子時(자시) : 오후 11시에서 오전 1시까지
→ 丑時(축시) : 오전 1시에서 오전 3시까지
→ 寅時(인시) : 오전 3시에서 오전 5시까지
→ 卯時(묘시) : 오전 5시에서 오전 7시까지
→ 辰時(진시) : 오전 7시에서 오전 9시까지
→ 巳時(사시) : 오전 9시에서 오전 11시까지
→ 午時(오시) : 오전 11시에서 오후 1시까지
→ 未時(미시) : 오후 1시에서 오후 3시까지
→ 申時(신시) : 오후 3시에서 오후 5시까지
→ 酉時(유시) : 오후 5시에서 오후 7시까지
→ 戌時(술시) : 오후 7시에서 오후 9시까지
→ 亥時(해시) : 오후 9시에서 오후 11시까지 ※ 회혼례·금혼례 1. 회혼례
부모님께서 혼인하신지 60년이 되는 해에 자손들이 감사와 축복의 의미로 부모님께 잔치를 마련해 드려서 생에 보람을 느끼시게 하고 새로운 황혼의 청춘을 그려 보시도록 하는 장수잔치 행사로써 자식이 부모에게 보은하는 우리민족의 아름다운 "효"의 행사입니다. 연지곤지 찍고 수줍어 얼굴들지 못하며 시집오던 그날...
조랑말 타고 먼길 마다 않고 장가가든 그때가 어제 같은데...
어허 어느새 60년이 흘렀구나!
천생연분으로 우리 사랑 만났으니 어화 둥둥 내사랑
웃음 반 눈물 반의 삶에 추억이 구름처럼 흘러가고
손자 손녀들의 재롤속에 회혼례를 맞았구나! 낳아주시고 길러주신 우리 부모님, 고운자리 마른자리 마다않고 키워주신 우리 부모님,
그은혜 어찌 다할수 있으리요.
이자리를 빌어 큰 절을 올리오니 옛날의 추억도 그려보시고 부디 만수무강 하시옵소서...
----- 자손일동 2. 금혼례
부모님께서 혼례식을 올리신지 50년이 되는 해에 기념으로 하는 행사로 요즈음은 부모님의 "칠순"잔치를 겸하여 많이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 장소는 자택이나 마을회관이 좋으며, 전문식장이나 호텔연회장 같은 곳도 좋지만 무엇보다도 부모님에 대한 감사의 지극한 정성스런 마음이 더욱 소중하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 혼례식 사진 홀기, 진행자 호텔 실내에서의 준비모습 "오늘같이 좋은 날"
아들과 사위의 무등을 타고 손자 손녀들의 안내를 받으면서 혼례청 자리로 들어옵니다. "오늘같이 좋은 날"
어머님께서도 딸과 며느리의 부축을 받으면서 입장을 합니다. 본 의례에 앞서 몸과 마음까지도 정갈히 하고... 음과 양이라는 자연의 이치에 순응하며 신부님이 먼저 큰절을 드리면, 신랑님이 답례를 드리네요. 혼인의 서약에 의미로 잔을 올리시네요. 두분의 혼례식 성혼으로 축문도 올리네요. "그동안 변함없이 함께해 주셔서 고맙고 감사해요." 라며 서로 맞절도 나누시네요. 부모님 은혜 감사드립니다. 오늘 하루 즐거운 시간 되세요. 새색시 새신랑 함께 한지 어언 50년!
꽃망울처럼 아름다웠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