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례의식과 예배
본문
1. 죽음의 神學的 意味
1) 자연적인 죽음
하나님은 시작과 끝이라 하셨으니 하나님께서 창조한 만물과 人類를 지으신 시작이 있으면 마감하는 떄가 있다. 성경 전도서 1장 9절에 “한 세대가 오고 다른 세대가 다시 온다 할지라도 해 아래는 새 것이 없다”라고 하셨다. 인간의 육체는 흙에서 취하여졌기 때문에 이 세상에서 출생하고 성장하다가 늙어지면 쇠퇴하여, 하나님께서 정하신 수한이 이르면, 종국에는 흙으로 돌아가야 할 人生이다. 인간의 죽음은 하나님의 창조질서요, 섭리이다. 인간의 몸은 죽음을 피할 수 없고(롬6:12) 죽음은 공포의 대상이다 (계6:8)
구약성경에 의하면 히브리인들은 인간의 삶을 고귀하게 보았고, 장수하여 노년의 幸福한 때를 마치면, “그의 선조들 곁으로 ” 돌아가는 것으로 믿었다. (창15:15)
신약성경에는 인간의 죽음을 하나님의 본성인 생명의 반대, 죄와 상반된 것으로서 신앙의 측면에서 이해했다.
2) 성경적 죽음의 기원
성경에 인간의 죽음의 기원은 인류의 시조 아담과 하와의 범죄의 결과에서 왔다고 믿는다(창3:1-9) 죄는 전적으로 하나님의 뜻에 불순종한 인간의 타락이며, 죽음은 그 죄의 결과로서 하나님의 심판이다. 인간의 죽음에 대한 교훈은 하나님은 창조주이요, 인간은 그의 지으신 바 된 피조물이라는 사실이다. 따라서 인간은 결코 신이 될 수 없고 인간으로서 인간일 뿐이다.
죽음의 기원은 인간의 타락과 이에 대한 율법이다.(고전15:56) 율법의 직분은 죽음을 가져다 주는데 있는 것이다. (고후3:7-9) 하나님에 대한 아담의 불순종이 죽음을 가져 왔으며(롬5:12), 이방인은 하나님이 요구하는 바를 알면서도 이를 범하였으므로 하나님의 진노하는 바 되었다.(롬1:31)
그러므로 인간의 영혼은 그 죄의 결과인 죽음을 면할 수가 없는 것이다. 죽음은 “최후의 원수(고전15:26)”이다. 죽음이 종국적으로 파멸이기에 인간에게 구원의 目的이 이루어지게 되는 것이며, 예수 그리스도에 의해서만 사람은 죄와 죽음에서 구원함을 받을 수 있게 됨을 알 수 있다.
3) 죽음의 상태
성경에 죽음을 “잔다”라고 표현하고 있다. 육체적 죽음은 생명의 종말이 아니고, 최후의 심판이 죽음후에 계속하여 오게 된다.(히9:27) 최후 심판에는 모든 죽은자의 부활(요5:28-29)과 믿는 자들의 부활하는것(고전15:22-24)으로 이해되는데, 이 죽음과 심판을 위한 부활 사이의 죽은 자들의 중간상태에 대해서는 신약 성경에는 낙원과 음부로 표현하고 있다.( 눅23:43, 16:23)
인간의 삶가운데 생명속에 죽음이 잠재되어 있고, 죽음 가운데 생명이 잉태되어 있다. 현재의 생명에 있어서의 죽음, 곧 죽음의 힘은 현재의 생명을 지배하고 그 본래의 상태에 있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 히2:15) 따라서 사람은 살아 있으면서도 “죽은 자(마8:22)”, 그의 몸은 “사망의 몸(롬7:25)”, 그의 행실은 “죽은 행실(히9:14)”이라고 한다. 그리스도의 말씀을 믿지 아니하는 자는 죽음에서 생명으로 올 수 없는 것이다.(요5:24-25)
4)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
그리스도의 죽음은 인간의 타락으로 인한 죄의 죽음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대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신 죽음이다.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형상의 본체시오, 영광의 광채시오, 하나님의 生命으로 이 땅에 오신 것이다. 그가 人類의 죄와 저주를 담당하시고 十字架에 달려 피흘려 죽으셨으나 제 3일만에 사망권세를 폐하시고 부활하셨으니 하나님의 생명은 죽음에서 능히 이기는 하나님의 능력이다. 그러므로 주안에 있는 자는 그의 생명의 능력으로 영원히 죽지 않기 때문에 生의 종말이 아니라 영원한 생명의 시작인 것이다.
2.죽음의 준비와 임종
1) 죽음의준비
돌발적인 사고나 급환으로 죽는 것은 할 수 없지만 환자가 죽음을 예상했거나 죽음을 알리는 것이 좋겠다고 판단할 떄 죽음을 맞을 준비를 하게 된다.
①신앙적 준비: 부활신앙과 내세관을 통해 죽음을 긍정적으로 받아 들이게 하고 죽음에 대한 공포를 극복하게 한다. 마지막 순간을 회개와 기도로써 보냄이 바람직하고 하나님의 소망된 약 속의 말씀을 읽어주거나, 소리내어 읽게한다. 그래서 그 영혼을 하나님 품에 위탁하도록 도와야 한다.
②가족의 준비:가사 정리, 최후의 유언과 교훈을 담아두기 위해 유서를 작성하거나 유언을 녹음해 둔다. 그리고 친족들에게 알려 장례 준비를 한다.
③장례를 위한 준비:장례의식과 절차에 대하여, 장례사 교섭, 장지 확보, 수의, 사진 등을 준비한다.
2) 임종
사람의 호흡이 정지되는 것을 운명이라 하고, 한 사람의 운명을 지켜보는 것을 임종이라 한다. 임종은 가족들이 한 자리에 모여 지켜보는 것이 좋고, 소속 교회 교역자가 함께하는 것이 더욱 좋다. 임종 전후 본인이 애창하던 찬송이나 원하는 성귀를 낭송한다.
3) 시신의 처리
교역자의 지도 아래 유족이나 교인이 함께 시신을 처리한다. 그러나 장의사나 전문가의 도움을 받도록 미리 예고한다.
①적당한 높이의 베게로 머리를 바로 잡는다
②눈꺼풀을 쓸어내려 곱게 감긴다.
③솜이나 백지로 턱밑을 고여 입이 열리지 않도록 하고, 머리를 빗으로 손질한다.
④귀, 코. 입 등을 솜이나 백지로 막는다.
⑤시신이 굳기전에 팔과 다리의 관절을 가볍게 주물러 펴고 오그라 들지 않게하여 전신을 곧 게 편다.
⑥백지나 붕대로 무릎과 두발을 함께 당겨 메고 팔과 두손을 모아 배 위에 자연스럽게 얹어 놓고 흘러내리지 않도록 백지나 붕대로 서로 얽어 맨다.
⑦시체를 나무 판자 위에 안치 한다.
⑧깨끗한 홀이불이나 흰천으로 시체를 덮고(머리까지) 병풍으로 가리운다.
⑨시체를 모신 방에 덮거나 습하지 않도록 시신 보전에 신경을 쓰고 소독을하여 위생에 유의 하도록 한다.
3. 장례식에 지켜야 할 예의
1) 유족들에게
기독교인들은 모든 절차를 간소화하고, 의미없는 세상 풍습을 쫓아 의식을 거행하는 것이 아님을 납득시켜 장례 절차에 협조케 한다. 장례는 3일장을 원칙으로 하고 발인식이 주일이 되지 않도록 2일장, 4일장으로 조정한다. 고인의 유품에 정중히 헌화하고, 하나님께 유족 가정에 축복을 위해 기도하고, 상주와는 예의를 지켜 맞절을 한다. 그리고 뒷 걸음으로 2-3보 퇴장한다.
2) 용어에 대하여
삼가해야 할 용어:영면(永眠), 영결(永訣), 명복(冥福), 유족들에 위로와 소망이 넘치는 간결한 인사말을 나눈다.
예) 얼마나 망극하십니까? (부모상인 경우: 주안에서 다시 만날 수 있다는 약속을 갖고 새힘을 얻읍시다)
얼마나 마음 아프시겠습니까?(손아래 상인 경우)
3) 용모 복장(교역자)
소망에 차 생동감이 넘치는 용모와 머리에 기름을 바르고 곱게 빗어 이마를 훤출하게 보인다. 검정양말, 검정양복, 검정 넥타이, 흰 와이셔츠, 용모복장을 항상 점검한다. 큰 소리를 내거나 잡담을 금하고 웃어서는 안된다. 유족과 함께 슬픔을 나눌 수 있는 교역자의 심령이 되어야 한다.
4) 수시와 염습(殮襲)에 대하여
고인의 유품이 하나님의 창조섭리의 손길이 담겨져 있다는 생명에 대한 신성함과 존귀함에 대하여, 그리고 고인의 삶의 경륜과 발자취가 남겨진 일생의 희로애락과, 삶 전체를 대변하고 있다는 생각에서 엄숙한 마음으로 임해야 한다.
4. 성도의 죽음에 대한 의미
1) 성도의 죽음은 출생하는 날보다 나은 죽음이다. (전7:1-4)
2) 성도의 죽음은 여호와께서 귀중히 보시는 죽음이다. (시116:12-16)
3) 성도의 죽음은 주안에서 죽는 죽음으로 복된 죽음이다. (계14:13)
4) 성도의 죽음은 수고를 그치고 편히 쉬는 죽음이다. (계14:13)
5) 성도의 죽음은 의인의 죽음으로 소망이 있는 죽음이다. (벧전1:3-4)
6) 성도의 죽음은 영원한 생명으로 다시 살기 위한 죽음이다.(요11:25-26)
7) 성도의 죽음은 주로 말미암아 승리하는 죽음이다. (고전15:54-58)
8) 성도의 죽음은 새몸으로 덧입기 위한 죽음이다. (고후5:1-4)
9) 성도의 죽음은 주님이 깨우실 때까지 자는 죽음이다. (살전4:13-18)
10) 성도의 죽음은 저희 행한 모든 일이 따르는 죽음이다. (계14:13)
5. 장례의식과 절차
1) 장례식은 정중하고 엄숙하게 진행해야 한다.
2) 운구위원은 가급적 교인으로 하고 운구 행렬순서는 집례자, 영정, 영구, 상제, 친족, 문상객으로 한다.
3) 운상시에는 인위적인 울음이나 곡을 삼가고 찬송 부르며 행진한다.
4) 검은 리본을 준비해서 조문객에게 부착함이 좋다.
5) 상여를 사용할 때는 간결하게 꽃으로 장식한다.
*유의사항 : ①招魂行爲禁止 ②향대신 헌화
③절하지 않는다 ④퇴관시 준비사항
⑤장례 집행권(교회에서 주관하도록 협의)
6. 장례식 순서
1) 개식사:(예배전:지금으로부터 고ㅇㅇ씨의 ㅇㅇ예배를 하나님께 드리겠습니다.
지금으로부터 고ㅇㅇ씨의 장례식을 거행하겠습니다)
성도님과 조객 여러분은 정중한 조의와 엄숙한 마음으로 이 식에 임해주시기 바랍니다.
2) 찬송
3) 기도:애사인 만큼 여기서는 “기쁘다”는 말이나 “감사하다”는 말을 삼가고 예배와 유족과 식전과 집례자를 위하여 간단히 기도할 것
4) 약력소개:교인외 선후배 가운데서 정한다. (유명인사인 경우) 그렇지 못한 경우 생략한다. 생전 에 고인의 허물을 들추는 이야기는 하지 않는다.
5) 찬양(弔歌)
6) 성경봉독
7) 설교 : 설교는 위로와 내세의 소망이 넘치는 믿음의 말씀을 증거하되 간결하게 해야한다. (10분 정도)
8) 기도 : 유족들을 위로하며 남은 순서를 주께 의탁하는 뜻으로 기도한다.
9) 찬송 : 횡대를 덮고 집례자와 상주, 친지 순으로 흙을 조금씩 취하여 횡대위에 부분적으로 조심 스럽게 뿌리고 이때 하나님이 말씀하신대로 “육체는 흙에서 왔으니 흙으로 돌아간다”는 것을 선포하고 취토를 하는 동안에 찬송을 성도와 함께 부른다.
10)축도
7. 장례설교 유형
1) 임종예배
찬송 : 290장, 289장, 474장
본문 : 시90, 히9:27, 사57:1~2, 창3:19, 요14:1~6
요약:하나님께서 사람을 창조하시되 육체와 영혼을 지으셨다.
創造主 被造物과의 關係/生命과 死亡/목숨과 生命
①형벌이 아니고 하나님의 약속하신 祝福이다.(계14:13) 주안에서 죽는자는 복되다.
육신/땅을 기업, 영혼/하늘에 신령한 복으로 기업을 누린다.
②생의 완성을 위한 한과정(관문)(하나님의 영원성과 인간의 유한성)/성도의 죽음은 더 완전하 고 영원한 존재로 변하기 위하여 하나님께서 정하신 삶의 한과정이고, 완성이다.
하나님의 뜻, 섭리로 계획하신 생의 완성이다.
③하늘나라로 영혼에 거처를 옮겨가는 것이다.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이란? / 사람의 형상이란 예수 그리스도의 형상을 본받아 모형으로 창조된 것임.
인간의 실존적 존재가 육체가 아니라 영혼임을 다시금 각성케 한다. 육체란 질그릇 같아서 잘못 다루면 깨어지는 것과 같이 연약한 존재이다. 그리고 육체란 영원한 것이 아니요, 잠시잠간의 하나님께서 정하여 주신 수한이다. 그러므로 육체를 신뢰하면 육체와 함께 멸망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육체가 있기에 은혜와 진리로 거듭나 하나님을 경외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인 만큼 육체가 있을 동안 영혼을 준비해야 한다. 내영혼이 하나님과 사귐을 갖고 하나님이 기억하시는 사람이 되자. 이를위해서 예수께서 피흘려 화목케 하신 것이다.
예수께서 자신의 죽음에 대하여 내가 아버지께로 간다고 하셨으니 성도의 죽음은 하나님의 품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불신자의 가족에게는 하나님의 심판이 있음을 강조한다(히9:27)
예) 불신자는 한 번 태어나고 두 번 심판 받으나
믿는자는 두 번 태어나고 한 번 심판 받는다
2) 입관예배
찬송 : 203, 223, 291, 295, 544
본문 : 고후5:1-10, 계14:12-13, 시84:10~11, 계19:8
요약:이스라엘 백성은 출애굽하여 황량한 광야에서 장막생활을 했다. 그들의 장막이 생존권을 보호하고 그들이 삶에 유익을 제공함같이, 육체를 장막으로 비유하고 있다. 인간이 흙에서 태어났기에 흙으로 돌아가 육신이 묻히는 것은 인생의 한 과정이다. 육신은 무거운 짐, 괴로운 짐을 벗어 버리고 흙으로 돌아갔지만 그의 영혼은 주인되신 하나님을 찾아 영원한 처소인 하늘나라에 가 평안과 안식에 이르른 것이다. 땅에 있는 장막집은 육체를 가리킨 말로 괴로운 집이요, 탄식의 집이다. 영원한 집은 부활의 몸을 가리킨 말로 소망의 집이요, 기쁨의 집이다. 영원한 집은 하나님이 지으신 집이요, 하늘의 처소이다. 그러므로 영원한 집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만 갈 수 있는 집이다.
3) 발인예배
찬송 : 221, 224, 230, 231, 233, 290, 293, 534, 541, 542,
본문 : 히11:13-16, 벧전1:13-25, 벧전2:11~12, 계21:1~4, 요17:9~13, 요19~30.
요약 : 인생은 나그네의 길이다. 누구든지 이 세상에서 출생한 자라면 한 번은 세상을 떠나야 하는 나그네이다. 그래서 이세상에서 생활도 일정한 삶의 정착지가 없어 이고 저곳으로 거처를 옮겨 산다, 그리고 목숨이 다하면 자기가 출생한 고향으로 돌아간다. 이는 육신이 흙에서 낳기 때문이다.(신토불이) 그런데 나를 낳아주고 길러주신 사랑하는 부모님이라 할지라도 이 세상을 떠날 때 그 시신을 5일 이상 집안에 모실 수 없다. 다시 만날 수 없는 기약없이 그동안 정들었던 가정, 사랑하는 가족 곁을 떠나야만 하는 안타까움과 괴로움이 유족을 슬프게 한다. 그러므로 인간들의 만남이란 완전하지 못하다.
그러나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영원하신 분이시다. 이를 위하여 하나님께서 독생자를 보내셨으니 그리스도와의 만남을 통하여 영원한 관계를 갖게 되며 주님과의 만남을 가진 자는 주 안에서 믿음을 가진 모든 성도들과 다시는 헤어짐이 없는 영원한 만남을 갖게 된다.
고인이 유품을 흙으로 돌아가기 위해 비록 정든 집을 떠나지만 그 영혼은 다시 죽음이 없는 영원한 생명을 얻기 위해 하늘나라의 본향을 향해 출발하는 복된 발걸음이다. 그러나 그러나 돌아갈 처소가 예비되어 있지 않아 갈곳 없는 영혼은 불행한 자이다.
사랑하는 자들아 행인과 나그네와 같은 너희를 위하여 권하노니 영혼을 거스려 싸우는 육체의 정욕을 제어하라(벧전2:11)
4) 하관예배
찬송 : 188, 228, 226
본문 : 고전15:35-49, 15:50-58, 요 11:25-27, 불신자/눅16:29-31
요약 : 주님께서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라 (요11:25-26)고 말씀하심으로 사람이 육체의 죽음이 끝나는 것이 아니라 몸의 부활이 있음을 말씀하셨다.
그런데 불신자들은 하나님의 실존과 그들의 영혼이 있음을 인정하려 하지 않고 있다. 그러나 사람에게는 부활이 있기에 영원한 삶이 있는 것이다.(자연의 섭리:계절,누에의 일생)
주님께서 부활의 첫 열매가 되셨으니 그리스도안에 잠자는 자들 모두 주님 다시 오실 떄 홀연히 변화되어 신령한 몸을 힘입을 것이다. 주님의 부활의 사건은 신학적으로 역사성, 사실성, 미래성을 의미한다.
기독교의 구속사의 최고의 절정은 부활이다. 성도의 부활의 소망과 기대야말로 어떠한 환란과 역경에서도 능히 승리할 수 있는 믿음의 능력을 소유케 한다.
썩을 것을 심고(육체) 썩지 아니할 것을 거둔다(부활)
5) 위로예배
찬송 : 399, 460, 455, 539, 493
본문 : 딤후4:7~8, 고후1:3~7, 빌3:13-17, 요삼2-4, 고전10:14-22, 시23편, 시73:28, 시103:15-18,
사41:10, 호6:1~3
요약 : 하나님께서 인류에게 이땅에서의 복을 주셨는데 자손의 번성함이다. 이는 자손을 통하여 생명을 연장시키기 위함이다. 부모가 있으므로 자손이 있는 것처럼 영의 아버지 되신 하나님이 영원전부터 계시다.
지금까지 하나님을 섬기지 못함으로 가정에 어려움과 고통이 있었으나 이후로 생명을 약속하신 주님을 나의 구주로 믿고 예수 안에서 신령한 복으로 살자. 신앙생활은 복과 생명을 명하신 하나님께로 돌아가는 것이요, 교회는 하나님이 계시는 집이요, 하나님 아버지 품과 같다. 그리고 부모를 공경하고 형제우애에 힘써 빛의 자녀다운 생활을 하도록 한다.
돌아가신 고인에게 효를 다하지 못한 회한이 있더라도 마음을 가다듬어 생업에 힘쓰도록 권한다. 제사를 하지 않도록... 고인을 공경하는 것이 아니다. 부모 공경은 살아계실때에 기회이다.
고인의 믿음과 훌륭한 정신을 자손들의 마음속에 담아 생활한다면 고인과 함께 생활하는 것이다.
8. 화장에 대한 예
성경에서의 나타난 입장은 매장과 화장의 예가 있다. 특히 화장의 예는 구약에서 찾아볼 수 있다(레21:9, 수7:25, 삼상31:12, 암6:10) 성경에서 화장을 금한 예는 찾아볼 수 없으며, 화장의 예식이 비 성서적이거나 기독교교리에 어긋나는 것이라고 볼수 없다. 왜냐하면 부활의 날이 이를때에 주 안에서 죽은 성도들은 하늘에 속한자의 형상을 따라 신령한 몸으로 부활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매장의 경우에도 시간의 경과에 따라 시신이 부패, 원형을 상실한다(고전15:50) 성경말씀에 “혈과 육은 하나님 나라를 유업으로 받을 수 없고, 또한 썩은 것은 썩지아니할 것을 유업으로 받지 못하느니라” 기록하고 있다. 부활의 영광은 고인의 생전의 영적상태에 좌우된다는 사실을 암시하고 있다.
9. 기도예문
부활의 소망되신 하나님 아버지
인생과 만물에 생명을 부여하시고 축복하시는 하나님께 존귀와 영광을 돌립니다. 이땅에서 사랑하는 가족들과 함께 생활하다가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아 앞서간 고ㅇㅇ성도의 ㅇㅇ예배를 하나님께 드리오니 받아 주시옵소서. 말씀을 증거하는 목사님께 영감을 주셔서 신령한 하나님의 말씀을 통하여 풍족한 은혜를 채워 주시며, 하나님의 살아계심과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신 그 크신 사랑을 깨달아 하나님의 사랑안에 거하게 하옵소서. 그리하여 우리 모두 말씀 가운데서 하나님의 진정한 뜻을 발견하고, 말씀대로 살아갈 능력을 주셔서 썩어 없어질 소망없는 것들과 하나님의 약속없는 삶을 떠나, 영혼을 위하여 영생을 예비하는 복된 삶을 살기로 작정하게 하시고, 주님 다시 오실 때 고인의 아름다운 모습으로 다시는 죽음이 없는 천국에서 다시 만날 소망을 갖게 하옵소서. 잠시 헤어짐에 아쉬움과 슬픔을 갖는 유족들을 위로하시고, 고인의 생전에 믿던 믿음을 유업으로 삼게 하옵시고, 더 좋은 믿음으로 하나님께 영광 돌려 일생을 주안에서 형통된 삶으로 보장받게 하옵소서. 거룩하신 예수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임종:생사화복을 주관하시는 하나님, 입관:살아계신 하나님 아버지
발인:영원하신 하나님, 하관:부활의 소망되신 하나님, 위로:복의근원되시는 하나님
10. 추도예배
찬송:493, 444, 455, 460, 470
본문:유1:20-22, 계21:1-7, 고전10:14-22, 요삼2-4, 고전11:25, 시84:5~7, 시84:10~11
요약:신앙생활이란 계약적인 관계인데 하나님의 약속과 성도의 믿음의 조화이다.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 구원을 얻으리라는 약속을 믿음으로 영생을 보장받게 된 것이다. 믿음이란 처음과 끝이 동일한 것인데 중간에 믿음을 포기하는 것이 배도요, 영적인 타락이며, 하나님의 심판을 불신자들이 면치 못하는 것이다.
그리스도인들은 육체가 있는 동안 오직 믿음으로 살다가 믿음으로 죽을 소망을 가진 자들이다. 그래서 믿음이 있다는 것은 어떠한 상황에서도 좌절하지 않는 용기와 담력을 갖게한 다. 하나님의 응답의 약속을 영혼에 가득 채우고 인내하여 성령의 인도를 받으면, 반드시 윤택함과 풍요가 모든 삶에 넘칠 것이다.
고인이 이 땅에 소망보다 하늘에 소망을 두고 주님께 영혼을 부탁하여 낙원에 이른 것처럼, 조상이 자손들 영혼을 감당하지 못한다. 고인의 믿음을 지켜 더 귀한 믿음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 자손 천대에 이르는 축복을 받자.
11. 사례별 연구
1) 아동사/삼하12:18~23.
부모와 자식과의 관계는 한계성이 있다. 우리의 목숨이 있을 때 부자관계이지 목숨이 떠나면 혈육의 관계는 모두 끊어지고 바로 靈, 우리 靈이 하늘나라 갔을 때는 성도의 입장에서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지 부모자식관계가 될 수 없는 것이다. 그러니까 가정에 가족관계는 육체가 있을 동안에 보장된 것이며 하나님 아버지와 우리와의 관계는 영원한 관계로서 진정한 부자의 관계이다. 주 예수께서 “너희는 이 땅에 아비를 아버지라 하지 말라 아버지는 오직 하늘에 계신 한 분 뿐이시다”라고 말씀 하셨다. 혈육에 속한 부모는 하나님께 위탁받은 관리자요, 청지기일 뿐이다. 생사화복 만큼은 하나님께서 주관하신다. 그러기에 주신 자도 하나님이시오, 취하신 자도 하나님이시다.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선하신 뜻대로 이루어진다. 부모로서 자녀를 잃은 아픔과 고통이 있듯이 하나님께서도 독생자를 보내서 인류를 구원하기 위해 아들의 죽음에 아픔을 당하셨으나 부활의 영광으로 변화시킨 것처럼 모든 것에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하나님의 성품을 믿고 결과적으로 좋게 인도하시는 하나님의 절대 주권을 인정하고 믿음으로 인내하고 신앙을 지키자.
과거에 마음 아픈 일로 착념하지 말고 뒤에 것은 잊어 버리도록 힘쓰라. 심신이 연약하여 악한 영들의 훼방을 받지 않도록 하고 생업에 힘써 가정이 정상적으로 유지되도록 회복하자.
2) 自殺/요10:17~18
믿음을 가지고 신앙생활하다가 시련과 역경, 좌절, 복잡한 삶의 혼란과 갈등속에 비관하여, 자살한 고인에 관하여 직접적이고 충격적인 언동으로(그 영혼이 지옥 갔다) 유족에게 부덕을 끼쳐서는 안된다. 가족과 친족들은 불의의 사고를 당해 심리적 갈등과 불안, 좌절감등 착잡한 심정을 헤아릴 수 없는 태임으로 고인의 허물을 들추는 것보다는 유족들에게 위로해 줄수 있는 믿음의 지혜가 필요하다.
인간은 하나님처럼 심판자가 아니다는 점을 명심하여 판단하는 태도를 취하지 말아야 한다. 판단하고 심판하시는 절대주권자는 오직 하나님 한 분 이시다. 본인의 믿음의 생활을 생각하고 모든 것을 하나님께 맡기자. 그리고 이후로 생명을 주관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신 고로 유족 모두 하나님의 뜻에서 벗어나 임의로 살지 말도록 하고 더 이상의 불행한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믿음으로 살자고 당부한다.
기독교 신앙은 하나님이 주신 고귀한 삶을 스스로 포기하고 자신의 생명을 끊는다는 것은 선한 행위가 아니라고 보고 있다. 자기 목숨을 끊는 것은 자신의 삶의 문제를 해결하는 궁극적인 방법이 아니고, 선하고 아름다운 방법도 되지 못하는 까닭이다.
성경에서는 인간의 모든 소욕중에 죄의 소원이 있다고 진단했다. 그러나 죄의 소원이 마음속에 있지만 이를 다스리라고 하나님께서 말씀하셨다.
3) 무신론자, 타종교인/요14:1~6, 전12:1, 12:7~8, 시146:1~4.
세상사람들은 죽음을 진리라고 말합니다. 진리란 변하지 않는 영원한 것이다. 창세이후로 만물도 변하고 문화도 변하여 갔다. 그러나 성경은 죽음이 진리가 아니라 부활을 진리라고 가리키고 있다. 성도란 죽음을 믿는자가 아니라 부활을 믿는 자들이다. 왜냐하면 죽음이란 것은 그리스도 앞에 왔을 때 바로 그것은 부활로서 대체되는 것이다.
사망의 쏘는 것은 죄인데, 죄가 해결되고, 사망은 생명의 이김의 삼킨바 되어 부활로 변하기 때문에 죽음도 변해 버려 진리가 될 수 없다. 진리란 하늘에서 계시된 참되고 영원한 것이다.
예수안에 거하는 성도란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으로 사망을 이기고 승리하여 영생케 될 것이다. 이 세상에 있는 모든 종교나 철학, 그리고 인간의 사상은 죽음을 종점으로 삼고 있다. 죽음이 마지막이요, 그 마지막 종점은 죽음이다. 그러하기에 그들은 오열하고 통곡하는 것이다. 인간의 생로병사... 결국 인간은 죽게 마련이다.
인간은 죽음 앞에 속수무책이다. 하나님이 정하신 섭리를 거역할 수 조차도 없다. 무기력하게 받아들이는 것은 운명이라 한다. 그렇기 때문에 죽음 넘어 있는 다른 세계를 볼 수 없기 때문에 결국은 허무주의요, 니힐리즘이다.
그러나 성경은 죽음은 마지막이 아니라 오히려 우리의 생명의 시작이라고 말씀하고 있다. 비록 육체에 속한 목숨은 끝나지만 영혼에 속한 생명은 영원하기 때문이다.
4) 病死/사57:1~2, 시73:1~28.
하나님은 성도의 고난 중에도 변함없이 하나님을 사랑하고 믿음을 지속하여 영혼을 보존하는 자를 기뻐하신다. 신앙생활이란 영혼과 하나님과의 직접적인 관계를 맺는 일로 축복과 생명을 명하신 하나님께 돌아가는 것이다. 주님이 자기 희생의 사랑으로 우리를 구하시고 생명을 주셨으니 투병 생활일지라도 중간에 주님의 생명을 포기할 권리는 인간에게는 없다.
주님은 하나님 아버지의 계명으로 죽을 권리를 사용하신 것이다. 믿음을 포기하는 것이 죄요, 영적인 타락이다. 육체의 질고 가운데서 그 믿음을 지키신 고인의 믿음을 본받자. 하나님께서 그 믿음을 열납하시고 영혼을 부르신 것은 더 이상 고통이 없는 쉼을 주시려는 하나님의 은총이다.
자손들의 심정은 더욱 고인의 생존에 대한 미련과 아쉬움이 있겠지만 그러나 질고와 고통중에 생명의 연장은 저주일 수도 있다. 하늘로부터 오는 평안과 위로로 힘을 얻자.
성도의 죽음은 죄와 사망의 몸에서 영원한 해방이다. 다시금 죽음이 없는 영원한 치료이다.
5) 중병 환자 관리
(병원에서도 치료 불가능한 절망적 상태의 고난을 당하는 성도들에게 이 사실에 대한 고지 여부와 적절한 시기, 신앙적인 면에서 도움을 주어야 할 구체적인 제언)
이 세상이 어떤 철학이나 종교도 죽음 이후의 세계에 대하여 논할 수 없기 때문에 회의적이고 결국 인생을 허무라고 결론을 짓습니다. 죽음 자체로서 생의 단절이요, 종말이라고 탄식합니다. 그러나 기독교 신앙은 죽음이 진리가 아니라 부활이 진리인 것입니다. 사망의 쏘는 것은 죄인데
죄의 문제를 주님이 해결하셨고, 사망은 주님의 생명으로 이김의 삼킨바 되어 죽음은 부활로 대체되어 버린 것입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인들은 현실적인 죽음보다 장래 소망있는 부활을 믿는 것입니다. 중병을 앓고 있는 환자에게 이러한 인생관, 생사관이 분명하게 정리되어 영혼 구원 목적을 우선하여 믿음을 갖도록 힘쓰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육체적 죽음은 생명의 종말이 아니라 사망과 정욕의 몸에서 해방되어 영원한 생명을 소유하기 위한 삶의 한 과정일 뿐입니다. 인간의 생과 사란 하나님의 경륜 가운데 계획된 창조 질서입니다. 이 사실을 겸허하게 수용할 때 두려움은 사라지고 주님을 신뢰하고 의지하는 마음속에 주님이 주시는 평강 안에서 안위함을 누릴 것입니다.
중환자가 신앙이 전혀 없고 의지가 약하며 병명을 알게 되면 견뎌내지 못하고 공포심으로 좌절할 경우 병명을 알리는 것이 적절치 못한 때입니다. 반면에 구원의 확신과 믿음이 견고한 경우 병을 치료하는데 환자의 협조가 필요한 경우, 아직 젊고 정리해야야 할 일이 많이 남아 있을 때 환자에게 알리는 편이 유익합니다. 주님께서 치료해 주시겠다는 말씀은 변하지 않는 말씀으로 우리와 맺은 언약은 영원한 약속이 되기 때문에 믿음의 증표가 되며, 환자에게 마음이 요동하지 않도록 믿음을 굳게 하고 지속한다면 치료함을 받을 것입니다.
* 장기적인 투병으로 심신이 지치지 않도록 간병하는 가족이 노력하고 성도들은 지속적인 심방과 예배로써 신앙이 성장케하고 연약한 마음으로 자신의 삶을 자포자기 하지 않도록 예방과 함께 믿음을 충족시켜줘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