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척초기 김학중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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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희 교회를 소개하는 전도지 3만장을 동네 방네 붙이고 사람들에게 나눠주기도 하면서 교회를 알리기 위해 땀을 흘렸지요.
그리고 한달이 지나 첫 번째 예배를 드리는 주일이 됐습니다. 아직도 기억에 생생한 그날은 93년도 12월 첫째 주일이었습니다.
저는 예배에 앞서 마음속으로 하나님께 이렇게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3만장의 전도지를 저 혼자 뿌렸습니다. 300명의 신도들이 올 수 있도록 도와주세요.’
하지만 시간이 조금 지나니 불안해지기 시작했습니다.
저희 교회 규모가 크지 않았기 때문에 신도들이 많이 와도 다 들어올 수 없다면... 스스로 합리화하기 시작한 것이지요.
‘하나님, 아닙니다. 첫 주니까 30명만 보내주세요.’
그것도 시간이 더 지나니 불안해졌습니다.
30명도 자신이 없었던 거죠 .
하나님 그래요 30명도 많습니다. 3명만 보내주세요
3만장의 전도지를 나누어줬으니 최소 3명은 오지 않겠냐고 생각하며, 준비한 설교를 외웠습니다.
‘이런 상황에서는 이런 식으로 이야기 하고 제스처는 이렇게 취해야지’라고 하나 하나 머릿속에 그려가며 제가 보기에도 완벽할 정도로 설교 준비를 했습니다.
아내는 피아노 앞에서 반주를 준비했지요.
하지만 예배 시작 시간인 11시가 되어도 예배당에 들어온 사람은 한 명도 없었고 한동안 아내와 저는 적막감이 감도는 예배당에서 썰렁하게 굳어 있을 수 밖에 없었습니다.
‘사람들이 좀 늦게 오려나보다’라고 스스로를 위로하며 30분을 기다렸지만 , 역시 마찬가지였습니다.
할 수 없이 그날은 아내와 저 둘이서 예배를 드렸습니다.
예배시간 내내 절망감이 들었습니다.
아내를 앞에 앉혀 놓고 설교를 하는데, 너무 떨려서 아내의 얼굴을 쳐다 볼 수 없었습니다.
가끔 눈이라도 마주치면 얼마나 창피하고 어색한지... 그저 설교 원고에 얼굴을 파묻고 쉬지 않고 읽기만 했습니다.
두 번째, 세 번째 주에도 같은 일이 반복됐습니다.
전도지 3만장을 뿌렸는데 신도 3명만 보내달라고 기도해도 안 보내주시는 하나님, 자신감은 점차 떨어지고 절망만이 가득차 올랐습니다.
여전히 신도들은 오지 않았지만 교회를 개척한 뒤 네 번째 주일을 맞이했습니다.
그런데 그날은 앞에서 한참 설교하고 있는 저는 아랑곳하지 않고 아내가 가방에서 뭔가를 꺼내기 시작했습니다.
처음에는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거슬리는 정도였지만 신경이 자꾸 쓰이고 생각해보니 화가 나기 시작했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둘밖에 없는 예배당에서 설교를 하는 남편 앞에서 부스럭 대다니요 ,
저는 아내가 예배시간에 새우깡을 먹는 줄 알았습니다. 사실 어떤 날은 하루에 다서 봉지를 먹을 정도로 아내와 연애하면서 가장 많이 먹고 좋아했던 게 새우깡이었기 때문이죠!
‘그래도 그렇지 ...’ 정말 죽고 싶은 심정이었습니다.
결국 화가나서 아내를 째려보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아내가 가방에서 꺼낸 것은 새우깡이 아니라, 일회용 티슈였습니다. 티슈의 비닐봉지를 뜯는데, 그 소리가 새우깡 봉지 뜯는 소리로 들렸던 거죠
아내는 설교 도중 연신 티슈로 눈가를 닦이 시작했습니다.
제가 바보가 아닌 이상 아내의 그런 울음의 의미를 모를리 없지요
‘나만 믿으라고’ 큰 소리 쳐서 낯선 안산에 데리고 왔는데, 몇 주씩이나 둘이 앉아서 예배를 드리니, 아내도 설움이 북받쳤던 거죠.
그때는 마침 12월 마지막 주 , 예수님의 탄생을 축하하는 성탄절 주일이었습니다.
아내의 눈물을 보며 저도 눈물을 참기 위해 이를 꽉 깨물었습니다.
하지만 제 눈에서 눈물은 걷잡을 수 없이 흘러내렸고, 결국 예배를 잇지 못하고 우리 부부는 부둥켜 앉아 대성 통곡을 했습니다.
성탄절 주일에 얼마나 울었는지 모릅니다.
그렇게 울면서 힘들게 예배를 마치고 강대상에 꿇어 앉아 하나님께 기도를 했습니다.
‘하나님, 이게 뭡니까? 너무 가혹하십니다. 저보고 어떻게 하라는 말씀인가요 ’
설움은 폭발하고 , 눈물 콧물을 흘리며, 하나님께 감정을 쏟아내기 시작했습니다.
이제는 목회를 하지 않을 거라며 하나님께 삿대질도 했습니다.
그러다 혼자 지쳐서 잠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꿈 속에서 하나님께서는 환상을 보여주셨습니다.
교회 빈 자리에 천사들이 가득 앉아 있는 모습을 말이지요
현실에서는 신도들이 자리 잡지 않은 썰렁한 빈 자리마다 빛나는 광채가 가득했습니다.
그리고 어디선가 ‘아들아 , 나는 너를 사랑한다. 너와 항상 함께 하고 있단다 ’라는 음성이 들렸습니다.
정말 선명한 꿈을 꾸고 일어나니 가슴이 뛰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나에게 주는 메시지구나’라는 생각에, 다시 감사의 마음을 갖고 새 힘을 얻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다섯 번째 주일을 맞았습니다.
네 번째 주일에 하나님의 사랑을 체험하고 나니 저에게는 용기가 생겼지요 .
평소라면 11시 반에나 설교를 시작하던 저였지만 그날부터는 용기를 내서 11시 정각에 예배를 시작했습니다.
여전히 아내를 제외하고는 아무도 없지만 큰 소리로 “다 같이 머리 숙여 기도합시다.” 라고 외쳤습니다.
찬송도 있는 힘껏 온 마음을 다해 크게 불렀지요
그리고 설교를 시작하기 전 오른 손을 들고 “할렐루야!” 라고 인사했습니다.
실제 제 눈에 보이는 것은 수많은 빈자리와 아내뿐이었지만 저에게는 보이지 않는 수많은 천사와 예수님이 함께 하신다는 믿음이 생겼습니다.
그런 저의 이상한 모습에 아내는 뒤를 보고 앞을 보며 의심 많은 도마처럼 이상한 눈으로 저를 쳐다봤습니다.
그런 아내에게 저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여보 괜찮아 , 주님이 함께 하시잖아.”
그리고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개척한 지 5주만에 교회 본당 문이 열린 것입니다.
그런데 열린 문 사이로 보이는 그 반가운 신도는 안으로 들어오지 않고 목만 빼꼼이 내밀고 예배당을 쳐다만 보는 것입니다.
그러다 예배를 드리는 사람이 제 아내 한명 뿐이니까 실망하고 슬그머니 물러났습니다.
제가 그것은 본 시간은 단 2초 정도 밖에 되지 않았지만 모든 과정이 슬로우 비디오처럼 선명했지요 .
저는 그 사람을 놓칠세라 외쳤습니다.
“주께서 오라하신다. ”
그러자 그 사람이 나가다 말고 멈추는 듯했습니다.
그렇게 5초 동안 밖에서 고민을 하다가 그는 머리를 긁적이면서 들어왔습니다.
그 사람과 함께 아내인 듯 보이는 여성분도 들어오셨습니다. 부부였지요 사람이 얼마나 그리웠던지, 저는 그 부부의 눈을 보면서 설교를 하고 싶었지만, 그들은 하필이면 기둥 뒤에 앉아 제 눈을 피했습니다.
설교 도중 몇 번이나 제 눈을 피하자 , 저는 '관둬라, 관둬'라 하면서 씁쓸한 마음으로 설교를 마쳤습니다.
그렇게 설교를 끝내고 아쉬운 마음으로 기도를 하는데 , ’등록을 희망합니다‘라는 쪽지가 저에게 전해졌지요 .
그날 오셨던 분 중 남자분이 훗날 저에게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전도사도 새파랗게 젊고, 이런 개척교회에 오면 고생스러우니까 예배 끝나면 빨리 도망가자고 말했어요. 그런데 목사님의 설교가 어찌나 제 마음에 와 닿는지 , 설교 중간에 마음이 바뀌고 말았던 거죠.”
자랑은 아니지만 그런 시간을 견딘 저희 교회의 출석 교인은 4천명이 넘습니다. 만일 제가 그 때 그 빈 공간을 바라보고 절망했다면 , 예배당을 찾는 사람의 수만 헤아리고 절망했다면 지금의 저는 절대 존재하지 않았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