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뜻을 찾는 법
본문
하나님의 뜻을 찾는 방법
서론
주님께서는 하나님 아버지의 뜻을 따라 십자가를 지시고 돌아 가셔서 우리들의 모든 죄를 용서하시고 하나님 아버지의 뜻을 따라 부활하시므로 죄인들을 구원해 주셨다.
세상에는 그 어떤 것에도 하나님의 뜻이 없는 것은 한가지도 없다. 물론 성도의 신앙 생활, 일반적인 생활 전반에도 하나님의 뜻이 있다. 여러 목사님들의 목회에도 반드시 하나님의 뜻이 있다.
하나님의 뜻은 우리들의 신앙 생활의 요소인 기도, 교회 생활, 전도, 헌신과 사랑, 입고 먹고 마시는 것, 자고 깨는 것, 일하고 쉬는 것, 부부 사이, 자녀들 양육, 건강, 현재와 과거의 미래, 정치, 경제, 사회, 예술, 문화, 낳고, 살고, 죽는 일, 인간의 희노애락, 자연, 세상과 지옥과 천국의 모든 것들에도 있다. 그래서 이사야 선지자는 "(사 34:16) 너희는 여호와의 책을 자세히 읽어 보라 이것들이 하나도 빠진 것이 없고 하나도 그 짝이 없는 것이 없으리니 이는 여호와의 입이 이를 명하셨고 그의 신이 이것들을 모으셨음이라"라고 하셨다.
성도들의 신앙 생활은 하나님의 뜻대로 해야 하며 목사들의 목회도 하나님의 뜻대로 해야 한다. 성도들이 열심을 내서 교회를 봉사해도 하나님의 뜻에 맞지 아니하는 경우가 있다. 기도를 해도 그렇고 헌신을 해도 하나님의 뜻과 일치하지 않는 일들이 있다. 하나님의 뜻은 신앙 생활의 핵심적 요소이며, 모든 신앙 행위를 올바르게 이끌어 가는 원리 원칙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뜻을 분별한다는 것은 대단히 중요하다.
하나님의 뜻이란 우리가 하나님을 믿는데 가장 중요한 일이다. 우리의 모든 믿음의 생각과 행동이 한가지도 하나님의 뜻과 일치하지 않고서 하나님의 은혜를 받을 수 없다. 하나님의 뜻대로 기도하고, 하나님의 뜻대로 믿고, 하나님의 뜻대로 순종하고, 하나님의 뜻대로 헌신해야 한다.
그런데 많은 성도들이 하나님의 뜻을 분별할 줄을 모른다. 어떤 경우에 자신의 간절한 소망을 하나님의 뜻으로 착각하기도 하고, 반복되는 자기 암시 같은 것을 하나님의 뜻으로 착각한다.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찾는 것은 그렇게 쉽지 않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의 뜻을 찾기 위한 공부가 필요해진다.
1. 우선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지 못하는 것은 이유를 알아보자.
1) 자기의 욕심 때문이다.
"(약1:14-15) 오직 각 사람이 시험을 받는 것은 자기 욕심에 끌려 미혹됨이니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라고 하셨다.
세속적인 욕심, 탐욕, 거룩한 욕망들이 하나님의 뜻을 모르게 한다.
2) 하나님의 말씀에 무지하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뜻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모두 계시되어 있는데 하나님의 말씀을 모르니 어떻게 하나님의 뜻을 분별할 수가 있을 것인가?
3) 속이는 자들이 있다.
세상이 속이고 마귀가 속이고 자신이 자신을 속인다. 세상에서 우리를 가장 많이 속이는 자들은 멀리 있는 사람이 아니라 자기 자신이며 가장 가까운 사람들이며, 성도라 해도 믿음이 없고 기도 생활을 하지 않는 사람들이다. 그들은 대게 어떤 일이 생길 때 하나님의 뜻을 찾은 것이 아니라, 자신의 경험으로 모든 것을 판단하는 오류에 빠져 진심으로 충고를 한다 해도 하나님의 뜻에 위배되는 충고를 한다. 주님께서는 "(마10:36) 사람의 원수가 자기 집안 식구리라"라고 하셨고 "(롬8:7)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나니 이는 하나님의 법에 굴복치 아니할 뿐 아니라 할 수도 없음이라"라고 하셨다.
4) 교만하면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지 못한다.
하나님의 생각 보다 자기 생각을 앞세우고 자기의 결절 사항을 하나님께 통보하면서 기도를 응답해 달라고 하면 그 기도는 응답하시지 않으신다. 하나님은 우리들의 요구를 들어주시기 위해 동분서주하시는 우리들의 종이 아니시다. 하나님의 뜻대로 우리들을 처 복종시켜 나가는 것이 겸손한 하나님의 백성들이 해야 할 마땅한 도리다.
노아가 홍수에 목적지를 정해 놓고 배를 저어 가지 않고 바람이 인도하는 데로 맡겨 두었던 것처럼 우리들의 모든 결정 사항을 미루고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따라 가도록 마음을 비우지 않으면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지 못한다.
2. 그러면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1) 하나님의 뜻은 하나님의 말씀에 계시된다.
하나님의 말씀에는 "부모를 공경하며 순종하라",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주일을 거룩하게 지키라", " 오늘 편 빰을 치는 사람에게 왼편 빰을 돌리라" 라고 하신 모든 마땅히 지켜야할 도리들이다. 그리고 이 마땅한 도리들은 "하라"는 말씀과 "하지 말라"와 "기다리라"는 말씀으로 되어 있다. 우리가 "하라"는 것을 하고 "하지 말라"는 것을 안 하고 "기다리라"하셨으니 기다리는 것이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이며 여기에 하나님의 축복의 원칙이 있다.
그런데 어떤 사람들은 하나님의 말씀이 가르치는 하나님의 뜻에는 일반적인 것도 있고 특별한 것도 있다고 한다. 그들은 흔히 일반적이고 보편적인 말씀, 즉 모든 사람들이 순종해야 하는 말씀을 '로고스'라고 하고 내게 해당되는 특별한 말씀을 '레마'라고 해석한다. 예를 들면 십계명은 '로고스'에 해당하고 하나님께서 모세를 불러 "(출3:10) 이제 내가 너를 바로에게 보내어 너로 내 백성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게 하리라"하신 말씀은 '레마'에 해당한다. 주님께서 베드로와 다른 사도들을 부르실 때 "(마4:19) 말씀하시되 나를 따라 오너라. 내가 너희로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라고 하신 말씀은 '레마'에 해당된다고 한다.
그리고 오늘에 사는 우리들에게도 이 '레마'가 있다고 주장한다. 그들의 주장으로 인해 어리석은 성도들 가운데 어떤 성도들은 이 '레마'를 알아듣기 위해 어떤 특별한 행동을 해서 하나님께서 특정한 사람에게 주시는 쪽 집게 식의 지정된 말씀으로 오해를 하는 것이다. 즉 '아이들의 학습 능력을 향상시키기 위해 어느 학원을 다녀라' 또는 '이번에는 어느 대학 어느 과에 원서를 넣으면 틀림없이 합격하도록 해 준다'라는 식으로 하나님의 말씀과 지시를 받으려고 하는 것을 말한다. 사업을 해야겠는데 '어디 가서 어떤 장사를 하면 축복을 해 주마'하는 식으로 하나님의 말씀의 지시를 받으려고 하는 것이다. 이런 말씀을 받으려는 사람은 하나님을 미신적인 하나님, 점쟁이들의 귀신쯤으로 격하시키는 엄중한 범죄를 저지르는 것임을 알아야 할 것이다.
이런 생각을 가진 사람들에게 주신 하나님의 말씀이 있다. "(약4:13-17) 들으라 너희 중에 말하기를 오늘이나 내일이나 우리가 아무 도시에 가서 거기서 일 년을 유하며 장사하여 이를 보리라 하는 자들아! 내일 일을 너희가 알지 못하는 도다 너희 생명이 무엇이뇨 너희는 잠깐 보이다가 없어지는 안개니라. 너희가 도리어 말하기를 주의 뜻이면 우리가 살기도 하고 이것저것을 하리라 할 것이거늘 이제 너희가 허탄한 자랑을 자랑하니 이러한 자랑은 다 악한 것이라. 이러므로 사람이 선을 행할 줄 알고도 행치 아니하면 죄니라"하셨다.
하나님의 말씀은 그런 식으로 임하시지는 않는다. 원칙적인 축복의 말씀으로 임하시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가 하나님의 축복을 받을 수 있는 조건은 이미 계시된 말씀에 모두 포함되어 있으니 다른 복음이나 계시를 찾지 말라. 바울은 "(갈1:7-9) 다른 복음은 없나니 다만 어떤 사람들이 너희를 요란케 하여 그리스도의 복음을 변하려 함이라. 그러나 우리나 혹 하늘로부터 온 천사라도 우리가 너희에게 전한 복음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지어다. 우리가 전에 말하였거니와 내가 지금 다시 말하노니 만일 누구든지 너희의 받은 것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지어다"라고 하셔서 엄격히 경계를 하셨다.
'레마'라는 단어는 번역하기를 '말하기. 발언. 연설. 언사'(Saying)라는 말인데, 마태복음에 쓰여지기를 '선지자로 말씀하신 바' (마3:3; 4:4; 8:17; 13:35; 27:9; 2:17)로 말씀되어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다. 말씀을 말씀하다'라는 뜻으로 쓰인다. 그러므로 이 '레마'라는 말을 어떤 특정한 사람에게 특정한 일로 주시는 하나님의 특별한 계시라고 해석해서는 안 된다. 목사가 하나님의 말씀을 손포 할 때 그 선포된 말씀(설교)이 곧 '레마'가 되는 것이다. 즉 '하나님의 말씀이 하나님의 종들을 통해서 세상에 말해졌다'는 의미에서 그렇다.
"(신30:11) 내가 오늘날 네게 명한 이 명령은 네게 어려운 것도 아니오 먼 것도 아니라."라는 말씀이 있다.
이 말씀은 이스라엘 민족 전체에게 주신 말씀도 되지만 이스라엘 민족의 개개인에게 주신 말씀이 되기도 한다. 즉 이스라엘 사람 한 사람 한 사람에게 개별적으로 주신 약속의 말씀이라는 말이다. 그리고 이 말씀은 바로 '로고스'다. 우리는 본문 말씀을 이스라엘 민족이나 어떤 집단에게 주신 약속으로 생각하지 말고, 오늘날 나에게 개인적으로 언약하신 말씀으로 믿고 받아 들여야 한다.
어떤 사람들은 이 성경 말씀을 나에게 개인적으로 하신 언약의 말씀으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자꾸 곁길로 간다. 성경에 보면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과 언약을 맺기 전에 먼저 개인과 약속하셨다. 이를테면 아브라함을 가나안 땅에 보내면서 그로 하여금 선택받은 민족의 조상이 되게 하고 그의 후손은 축복의 백성이 되게 하겠다고 약속하신 것이다. 롬 4:19이하에 보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민족을 위해 아브라함과 약속을 하셨는데, 아브라함은 자기가 100세에 이삭을 낳을 것이라는 말씀을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게 되었다고 했다. 그리고 갈3:14에 "이는 그리스도 안에서 아브라함의 복이 이방인에게 미치게 하고 또 우리로 하여금 믿음으로 말미암아 성경의 약속을 받게 하려 함이니라"고 약속되어 있다. 또 말씀이 육신이 되어 이 땅에 오신 예수님과 나와의 개인적인 관계, 믿음의 관계를 통해서 언약의 말씀이 성취된다고 강조하신 것이 성경의 여러 곳에 잘 나타나 있다. 이로 보건대 하나님의 축복은 하나님의 모든 말씀을 하나님께서 '나에게 주신 축복의 말씀'으로 받아 순종하면 하나님의 약속에 따른 복을 받을 것이다.
그리고 그 말씀들은 "(신30:14) 오직 그 말씀이 네게 심히 가까워서 네 입에 있으며 네 마음에 있은 즉 네가 이를 행할 수 있느니라"라 하셨으니 하나님을 찬양하고 영광 돌리는 입술을 가질 것이요, 하나님을 신실히 믿는 믿음을 가질 것이며,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할 것임을 말씀하셨다.
하나님께서는 성령으로 늘 우리와 함께 계시기 때문에 우리가 좌우로 치우쳐 잘못 가는 일이 없도록 "(사30:21) 너희가 우편으로 치우치든지 좌편으로 치우치든지 네 뒤에서 말소리가 네 귀에 들려 이르기를 이것이 정로니 너희는 이리로 행하라 할 것이며"하시고 "(시18:28) 주께서 나의 등불을 켜심이여 여호와 내 하나님이 내 흑암을 밝히시리이다"하셨으며, 주님께서는 "(요14:26)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시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시리라"라고 하셨다.
하나님께서는 사랑하시는 성도들에게 '로고스'로도 말씀하시고 '레마'로 선포하신다. 듣는 사람이 '로고스'를 '레마'로 들어도 좋고 '레마'를 '로고스'로 들어도 무방하다. 다만 '로고스'던 '레마'던 하나님의 모든 말씀에 최선을 다해 순종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다.
그런데도 우리가 이렇게 세밀히 가르쳐 주시는 주님의 말씀을 알아듣지 못한 이유는 앞에서 설명을 했다. 신령과 진정으로 드리는 예배, 간절한 기도, 거룩한 헌신, 말씀의 경청, 인도하심에 대한 강력한 믿음, 순종에 대한 절대적인 각오, 소망 중에 인내, 하나님의 말씀을 듣기 위한 말씀을 보고 읽고 묵상하는 일을 하면 누구나 언제라도 하나님의 내게 주신 특별하신 축복의 말씀들을 수 있을 것이다.
오늘 이 글을 읽거나 강의를 듣는 사람은 공부하는 학생과 그의 부모들에게 주시는 주님의 '로고스'와 '레마'를 듣고 있다는 것을 명심하라. 주님께서는 공부해야 할 학생들에게 "사람 낚는 어부 되게 하리라"하시지 않으며, 아무 수입이 없는 학생들에게 "(마23:23) 화 잊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가 박하와 회향과 근채의 십일조를 드리되 율법의 더 중한 바 의와 인과 신은 버렸도다. 그러나 이것도 행하고 저것도 버리지 말아야 할지니라"라고 하시지는 않는다.
사람이 몸이 아플 때 한결같이 감기 약만 먹는 것이 아니다. 병에 따라 처방이 다 다르듯 사람에 따라 하나님의 말씀이 다르고 정황에 따라 하나님의 말씀이 다르다. 학생을 기르는 부모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은 "(신6:7) 네 자녀에게 부지런히 가르치며 집에 앉았을 때에든지 길에 행할 때에든지 누웠을 때에든지 일어날 때에든지 이 말씀을 강론할 것이며" 학생들에게는 "(신17:19) 평생에 자기 옆에 (하나님의 말씀) 두고 읽어서 그 하나님 여호와 경외하기를 배우며 이 율법의 모든 말과 이 규례를 지켜 행할 것이라"하신다.
그런데 이 말씀이 선포될 때는 하나님의 말씀을 열심히 공부하면 모든 것이 다 가능했다. 이 주님의 말씀만 배우고 지켜도 하나님의 축복을 충분히 받을 수가 있다. 그러나 대학 입시에는 이 말씀을 시험치는 것이 아니니 하나님의 말씀을 소홀히 해도 된다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시험을 잘 치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야 한다. 물론 하나님의 말씀에 입시에 출제되는 수학이나 영어의 문제나 답을 찾을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눅1:37) 대저 하나님의 모든 말씀은 능치 못하심이 없느니라"하셨고 이 사실을 "(막9:23) 믿는 자에게 또한 능치 못할 일이 없다고 하셨으니" 하나님의 말씀대로만 살면 입시에 필요한 전 과목에 뛰어난 성적을 올릴 수 있도록 지혜롭고 총명한 두뇌와 인내와 열심 있는 마음을 주실 것이다.
그리고 "(마11:29)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러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하셨으니 예수님을 열심히 배워 귀중한 지식을 올바르게 쓸 수 있도록 되어야 할 것이다.
만일 어떤 일에 자기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알 수가 없거든, 자기가 다니고 있는 교회의 목사에게 물어 보라. 십일조를 잘 하지 아니하는 성도나, 성수 주일을 잘하지 않고 기도하지 않는 성도들에게 물어 보면 자기 식으로 그릇 가르쳐 주는 일이 있어 일생 동안의 신앙 생활을 그르치게 되는 경우가 있다. 공부 못하는 학생이 공부 잘하는 방법을 물었을 때 과외 잘하는 고액 과외 선생이나 소개해 주는 그런 성도는 가까이 해서는 안되는 귀먹은 성도다.
2) 기도를 하라.
기도를 하되 자기 욕심을 채우기 위한 기도를 해서는 안 된다. 자기 의사를 하나님께 강요하는 기도도 안 된다. 그야말로 마음을 비우고 순수하게 하나님의 뜻을 알고자 하는 기도를 할 것이다. 어떤 소원을 두고 간절히 기도를 하다 보면 자기의 소원이 마치 하나님의 뜻인 양 착각이 되는 경우가 있다. 기도가 일종의 자기 암시적인 작용을 해 버린 것이다.
어떤 사람은 기도를 많이 하면 하나님의 뜻이 변한다는 사람도 있다. 그런 어리석은 말에 속아서는 안 된다. 하나님의 뜻은 변치 아니하신다. 다만 변하는 것처럼 우리가 느낄 뿐이다. 오랜 시간을 두고 보면 하나님의 뜻은 전혀 변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 것이다. "(히6:17-18) 하나님은 약속을 기업으로 받는 자들에게 그 뜻이 변치 아니함을 충분히 나타내시려고 그 일에 맹세로 보증하셨나니 이는 하나님이 거짓말을 하실 수 없는 이 두 가지 변치 못할 사실을 인하여 앞에 있는 소망을 얻으려고 피하여 가는 우리로 큰 안위를 받게 하려 하심이라"라고 하셨다. 물론 이 말씀은 죄인을 선택하여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뜻에 후회함이 없으시다 는 말씀이다.
그러고 상황에 따라 일상 생활에서 벌어지는 우리 개개인의 일에 대한 하나님의 뜻도 변함이 없으시다. 예를 들면 이스라엘 백성이 범죄를 저질렀을 때 "(출32:10) 그런즉 나대로 하게 하라 내가 그들에게 진노하여 그들을 진멸하고 너로 큰 나라가 되게 하리라"하셨으나 "(출32:11) 모세가 그 하나님 여호와께 구하여 가로되 여호와여 어찌하여 그 큰 권능과 강한 손으로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신 주의 백성에게 진노하시나이까"라는 기도를 들으시고 "(출32:14) 여호와께서 뜻을 돌이키사 말씀하신 화를 그 백성에게 내리지 아니하시니라" 하셨다. 이런 일을 보아서 하나님도 성도의 간절한 기도에 응답하셔서 그 뜻을 돌이키시는 일이 있다고 생각하지 말라. 모세의 기도를 들으신 하나님께서는 모세를 사랑하셔서 죄인을 징벌하시는 것을 잠시 보류하셨을 뿐이지 죄인을 살려 두신 것은 아니다.
어떤 사람은 자기가 어떤 일을 이미 결정을 해 놓고 하나님께 결제를 해 달라는 식의 기도를 하는 사람도 있다. 그럴 수도 있을 것이다.
어떤 사람은 이미 하나님께 자기 요구를 강요하는 기도를 하는 사람도 있다. 그럴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어떤 경우에도 마음을 비워야 한다. 즉 자기의 결정 사항과 자기의 소원이 이루어지지 않고 다른 것으로 대신된다고 해도 전혀 섭섭해하거나 기도를 응답하시지 않았다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그런 자기 중심적인 기도에서는 하나님의 뜻을 올바르게 판단할 수 없다. 노아가 방주를 만들어 대 홍수 가운데 띄웠을 때 방주를 젓는 노가 없었다. 하나님께서 바람으로 그 방주를 이끌고 가시는 데로 방치해 두었을 뿐이다. (창7:18; 8:4)
우리가 우리의 삶에 어떤 계획을 세워 기도하는 것은 아주 성경적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응답을 기다리는 자세도 성경적이 되어야 한다. 성경적인 하나님의 응답을 기다리는 자세는 야고보서 아주 잘 말씀을 하셨다. "(약4:13-15) 들으라 너희 중에 말하기를 오늘이나 내일이나 우리가 아무 도시에 가서 거기서 일 년을 유하며 장사하여 이를 보리라 하는 자들아 내일 일을 너희가 알지 못하는 도다 너희 생명이 무엇이뇨 너희는 잠깐 보이다가 없어지는 안개니라 너희가 도리어 말하기를 주의 뜻이면 우리가 살기도 하고 이것저것을 하리라 할 것이거늘"하신 말씀이다.
어떤 목적을 설정해 놓고 기도를 하는 사람은 그 기도가 응답이 되도록 살면서 기도를 계속해야 한다. 즉 목적 설정을 위한 기도가 하나님의 뜻과 합할 경우에 기도에 힘이 붙고 확신이 오며 기도의 빈도 수가 높아지고 열정이 생긴다. 그리고 그 확신 속에서 기도의 응답을 받기 위한 생활이 뒤따르게 된다.
목적을 위한 기도를 하다가 낙심 되여 도중 하차를 한다든지 기도에 힘이 없거나 믿음이 생기거나 기도를 하다가 말다 하거나 기도를 중단하고 잊어버린다면 그 목적 기도는 하나님의 뜻이 아닐 경우가 대부분이다.
3) 하나님의 뜻은 순리 성이 있다.
억지로 하지 말라. 아무리 성경적인 일도 하나님의 뜻이 아닐 경우가 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왕을 달라고 하나님께 기도를 했다. 그들이 그렇게 왕을 달라고 기도를 한 이유는 사무엘은 늙고 그의 아들들은 사무엘의 행위를 따르지 아니하니 열방과 같이 우리에게 왕을 세워 우리를 다스리게 해 달라는 것이었다. (삼상8:5) 그들의 요구를 사무엘도 하나님께서도 기뻐하시지 않으시고 왕을 세웠을 경우에 일어 날 수 있는 여러 가지 폐해를 낱낱이 일러주었다.(삼상8:6-18) 그러나 그 백성들은 "(삼상8:6-19-20) 사무엘의 말 듣기를 거절하여 가로되 아니로소이다. 우리도 우리 왕이 있어야 하리니 우리도 열방과 같이 되어 우리 왕이 우리를 다스리며 우리 앞에 나가서 우리의 싸움을 싸워야 할 것이니이다"라고 하며 하나님의 다스리심을 거절하고 왕을 세워 주실 것을 강요했다. 사무엘은 그렇게 왕을 세울 경우에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이 왕으로 인해 고통을 당할 때도 그 기도를 들어주시지 않을 것이라고 경고를 했다. "(삼상8:18) 그 날에 너희가 너희 택한 왕을 인하여 부르짖되 그 날에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응답치 아니하시리라" 그래도 그들은 왕을 세워 달라고 억지를 썼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사울을 왕으로 세워 주셨는데 이 일에 대하여 호세아 선지자를 통해 "(호13:11) 내가 분노하므로 네게 왕을 주고 진노하므로 폐하였노라"라고 말씀하셨다.
하나님의 뜻에는 순리 성이 있다. 일이 그렇게 되도록 되어지는 것이다.
우리 아이들은 소위 명문 학군이라는 8학군의 신설 학교인 개포 고등학교를 다녔다. 그러나 우리가 8학군에 아이들을 다니게 하기 위해 그곳에 간 것은 아니다. 교회를 개척하게 되였는데 마침 그 때 개포동의 주택 공사에서 지어 입주하기 시작한 아파트 단지의 유치원 3층을 매입하여 교회를 시작했기 때문에 그곳으로 간 것이다. 나는 우리 아이들이 개포 고등학교를 다녔기 때문에 공부를 잘 했다고 생각하지 않으며 기도의 응답을 받았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학구열이 다른 곳 보다 더 뜨거운 학군에 가서 좋은 학생들과 함께 공부하도록 배려해 주신 하나님이시라는 점을 잊지 않는다.
어떤 사람들은 교회 생활을 잘 하다가 아이들을 위해 강남으로 이사를 가는 사람도 있고 심지어 아이들의 학교 문제로 이민을 가는 사람이 있다고 한다. 그러나 아이들의 공부하는 일이 그렇게 학교를 옮겨 다닌다고 잘되는 것이 아니다. 억지로 하지 않아도 하나님의 뜻이 있으시면 일이 잘되게 되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공부하는 환경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대로 해서 하나님의 축복을 받는 것이다.
물이 흐르듯, 바람에 나뭇가지가 흔들리듯 우리들의 세상 삶에 하나님의 선하시고 의로우시면 당신 자녀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뜻이 작용하고 있다. 내 생각을 앞세우고 내 목적 달성을 위해 억지를 써서는 안 된다.
성도들이 억지를 부리면 앞에서 말한 것처럼 하나님께서 그 억지를 들어주시기는 하시지만 결과는 언제나 불행한 일로 끝이 난다는 것을 명심할 것이다. 5병 2어의 떡을 먹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임금 삼으로 했을 때 "(요6:15) 예수께서 저희가 와서 자기를 억지로 잡아 임금 삼으려는 줄을 아시고 다시 혼자 산으로 떠나가시니라"하셨다.
4) 인내하라.
아무리 기도를 하고 성경 말씀을 열심히 보고 목사님의 충고를 듣고 꿈을 꾸어도 하나님의 뜻을 분별 못하는 경우가 있다. 이럴 때 성도는 너무 답답하고 안타까워 견디지를 못하고 자기 생각을 하나님의 뜻으로 착각하는 잘못을 저지르게 된다. 이 때가 정말 조심할 때다. 하나님께서는 99번의 기도에 아무 응답이 없으시다가 100번째 응답을 해 주신 경우가 흔하다. 끝까지 인내를 해야 한다. "(눅8:15) 좋은 땅에 있다는 것은 착하고 좋은 마음으로 말씀을 듣고 지키어 인내로 결실하는 자니라"하셨고, "(눅21:19) 너희의 인내로 너희 영혼을 얻으리라"하셨으며 "(약1:4) 인내를 온전히 이루라 이는 너희로 온전하고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게 하려 함이라"라고 하셨다.
아브라함은 믿음의 조상이다. 모든 성도들은 아브라함의 믿음의 표본으로 삼고 있다.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에도 "(롬4:3)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매 이것이 저에게 의로 여기신 바 되었느니라"라 하셨고 "(롬4:18) 아브라함이 바랄 수 없는 중에 바라고 믿었으니 이는 네 후손이 이 같으리라 하신 말씀대로 많은 민족의 조상이 되게 하려 하심을 인함이라"라고 하셨다.
그러나 그가 아무리 믿음이 좋은 사람일지라도 예수님과 비교될 수 없는 점이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그가 소돔과 고모라를 위해 구원의 기도를 했을 때 처음에는 의인 50명을 찾으셨으나 50명이 45명으로, 45명이 40명으로, 40명이 30명으로, 30명이 20명으로, 20명이 10명으로 줄었다. 이렇게 의인의 숫자가 줄어질 때마다 하나님의 대답은 한결 같으셨다. 즉 "(창18:26)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내가 만일 소돔 성중에서 의인 오십을 찾으면 그들을 위하여 온 지경을 용서하리라"하신 하나님께서는 의인의 숫자가 줄어져도 소돔과 고모라를 멸하시지 않으신다는 것이었다.(창18:29-32)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브라함은 의인 10인으로 그 기도를 마치고 말았다. 그의 기도는 6번 계속이 되고 끝이 나 버린 것이다. 만일 아브라함이 끝까지 기도하기를 의인 한 사람만 있으면 어떻게 하시겠는가를 물었다면 하나님께서는 그 때도 소돔 성을 멸하시지 않으시겠다는 대답을 하셨을 것이다. 그런 하나님의 마음을 잘 말씀하신 선지자의 말씀이 있다. "(렘5:1) 너희는 예루살렘 거리로 빨리 왕래하며 그 넓은 거리에서 찾아보고 알라. 너희가 만일 공의를 행하며 진리를 구하는 자를 한 사람이라도 찾으면 내가 이 성을 사하리라"하셨으니 한 사람의 의인 롯을 인하여 소돔은 망하지 않았을 것이다. 사도 베드로는 롯에 대하여 말씀하시기를 "(벧후2:7-8) 무법한 자의 음란한 행실을 인하여 고통 하는 의로운 롯을 건지셨으니 (이 의인이 저희 중에 거하여 날마다 저 불법한 행실을 보고 들음으로 그 의로운 심령을 상하니라)"하셔서 그가 의인이 였음을 분명히 하셨다.
만일 하나님께서 롯을 의인으로 간주하시지 않았을지라도 소돔과 고모라는 구원 얻을 길이 있었다. 하나님께서는 롯을 구원해 주신 이유를 "(창19:29) 하나님이 들의 성들을 멸하실 때 곧 롯의 거하는 성을 엎으실 때에 아브라함을 생각 하사 롯을 그 엎으시는 중에서 내어 보내셨더라"하셨으니 만일 아브라함이 소돔 성을 구원해 주실 것을 끝까지 간구 하였다면 그 아브라함의 기도를 들으시고 응답하셨을 것이다.
주님은 아브라함과 같지 아니하셨다. 죄인 구원하시는 일에 대하여 끝까지 책임을 지셨으며 "(요13:1) 유월절 전에 예수께서 자기가 세상을 떠나 아버지께로 돌아가실 때가 이른 줄 아시고 세상에 있는 자기 사람들을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시니라"라 하셨으니 제자들만 그렇게 사랑하신 것이 아니오, 모든 하나님의 자녀들을 그렇게 사랑하셨으며 "(마24:13) 그러나 끝까지 견디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하셨고 "(히3:14) 우리가 시작할 때에 확실한 것을 끝까지 견고히 잡으면 그리스도와 함께 참여한 자가 되리라"하셨으니 성도의 인내가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를 알 수 있다.
서둘러 실패하는 사람은 많다. 그러나 인내함으로 실패하는 사람은 없다.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고자 하여 인내를 할 때 견딜 수 없는 고통이 따를 수 있다. 그래도 확실하게 응답이 될 때까지 인내하도록 할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분명히 응답을 하시고 당신의 뜻을 가르쳐 주실 것이다.
5) 신령한 계시가 있다는 주장을 조심하라.
신비주의적인 신앙을 가진 사람은 이런 계시를 대단히 선호한다. 즉 꿈을 꾼다거나 기도를 하는 가운데 어떤 암시를 받는다거나 은혜를 많이 받아 예언을 한다는 사람에게 지시를 받는 사람들을 말한다. 성경에는 이런 사례가 대단히 많이 있다. 특히 구약에서 이런 경우를 많이 보게 되는데 야곱이 '꿈에 사닥다리와 그 위에 계신 하나님을 보았다'든지(창 28:12-17) 에스겔이 '하나님의 형상을 보았다'든지(겔1:1) 같은 것들이다. 사실 구약의 모든 계시는 이런 식으로 하나님께서 직접 선지자들에게 말씀을 하시기도 하시고, 어떤 증조를 가르쳐 주시면서 하나님의 뜻을 사람들에게 알리셨다. 그리고 신약에 와서도 이런 일들이 많이 나타났는데 바울 사도께서 삼층 천의 체험을 하신 것(고후12:2)들을 예로 들 수 있다. 그러나 이런 일들은 아직 하나님의 말씀이 체계적으로 정리되지 못하였을 뿐 아니라, 모든 사람이 쉽게 볼 수 있도록 보급되지 못했을 때 쓰신 하나님의 비상 수단이었을 뿐 어느 시대나 통용되는 일반적인 통신 방법이 아니었다.
하나님은 성경을 통해 모든 하나님의 뜻을 사람들에게 알리신다. 성경은 "(딤후3:16)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라 하셨고, 이 성경은 "(사34:16) 너희는 여호와의 책을 자세히 읽어 보라 이것들이 하나도 빠진 것이 없고 하나도 그 쪽이 없는 것이 없으리니 이는 여호와의 입이 이를 명하셨고 그의 신이 이것들을 모으셨음이라"라 하셨으니 우리들이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는데 어떤 다른 신비한 체험을 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오히려 그런 것을 사모하는 사고 방식은 기독교의 우상화를 초래하는 결과를 가져오게 되고 오늘 날 그런 경향의 신앙 생활이 얼마나 위험한 것인지 많은 목사들이 엄중히 경고하고 있다.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통해 당신의 뜻을 사람들에게 알리시는 것이 부족하여 다른 방법을 사용하신다면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완전하다고 할 수 없을 것이며 성경 말씀이 무오하다고 말할 수가 없다. 그래서 바울 사도는 "(갈1:7-8) 다른 복음은 없나니 다만 어떤 사람들이 너희를 요란케 하여 그리스도의 복음을 변하려 함이라. 그러나 우리나 혹 하늘로부터 온 천사라도 우리가 너희에게 전한 복음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지어다"라고 엄중히 경고를 하셨다.
하나님의 뜻을 분별할 수 있는 더 좋은 방법이 있으면 아래 메모란에 기록해 주시면 모든 분들에게 좋은 참고가 될 것입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