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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교회라야 성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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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한신교회 “별세목회 별세의 삶으로 목회한다.” 이중표 목사 한신대학원, 미국 캘리포니아 신학대학원에서  목회학 박사(D.Min)   교회성장은 진정 멈추었는가?      지금 한국교회는 성장한 뒤안길에서 큰 고민에 빠지게 되었다. 그것은 교회성장을 추구하던 열정이 식어가고 있으며 또한 성장의 결과에 대한 회의를 느끼게 되었기 때문이다. 우리가 섬기는 교회가 주님의 교회라면 그 목표가 주님의 교회라면 그 목표가 주님의 기대와 일치를 이루어야 한다.  만약에 주님의 뜻에 일치하지 못한다면 주님의 교회가 되지 못한다.  목회자가 목표를 세운다는 것은 중요한 일이다. 그러나 주님이 원하시는 목표를 세워야 한다. 예수님은 부활하신 뒤 제자들에게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으라”(마28:19-20)고 하셨다. 그러므로 목회의 최대 목표는 제자를 삼는 데 있어야 한다.   목회를 하면서 한 목표를 세우는 것은 중요하다는 사실이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기도를 들어주시기 때문에 목표를 세우면 세운 대로 이루어지고, 기도하면 기도한 대로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목표를 세우고 그 목표에 도달하기 위해 노력할 때 그 결과가 하나님의 뜻에 맞는 것인가에 스스로 성찰하는 일이다. 필자는 개척하고 3년 되던 해에 이런 목표를 세웠다. “전교인 성령 충만, 출석 교인 천명 돌파, 성전부지 300평” 이 제목을 보던 전도사님께서 필자에게 말하길, “목사님, 없는 것은 마찬가진데 1,000평으로 하시죠”라고 하여 그 말을 듣고 1,000평을 기도했더니, 1,000평을 주셨다.  참 신기했다.  그때 ‘기도라는 것이 참 중요하고 목표를 세우는 것이 중요한 것이로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 곰곰히 생각해 보니까 느끼는 것이 있었다.    목표를 세우고 기도한 대로 주신다는 것이다. 하루는 교인 한 분이 오셔서 필자에게 “목사님은 ‘0’을 치는 대로 잘되니 한번 더 쳐보시죠”라고 말씀하시는 것이었다.  그말에 ‘0’을 한번 더 치면 10,000평이 되는데 자신이 없었다. 그래서 주께 여쭤보았더니 마음대로 하라고 하시는 것이었다. 그후 ‘0’을 하나 더 치고 기도하였는데 놀라운 결과가 나타났다.  분당에 성전 대지 6,500평을 주셨다. 성전 대지 6,500평을 사놓고 자동차로 달려보니 너무 큰 땅이었다. “나도 한을 풀었구나! 이제 큰 교회의 목사가 되는가 보다”라고 생각하는 가슴이 부풀었다. 그리고 평소에 하지 않던 운동을 시작했다. 그런데 바람 불던 어느 날 배드민턴을 치다가 공이 날아가는 것을 쫓다 그만 넘어져 팔이 부러졌다.   그래서 두 달 동안 붕대를 감고 갖은 고생을 하여야 했다. 어느 날 누워서 빌 헐이 쓴 [목회자가 제자 삼아야 교회가 산다]라는 책을 읽다가 충격을 받았다. “그렇다. 너는 지금까지 목표를 세우고 많은 교인들을 모으고 목회를 해서 네 욕망과 꿈을 성취하려고 달려온 것이지 주님께서 세우신 목표에는 전혀 관심이 없었다.” 이런 생각이 들면서 하나님께서 책망하시는 것을 깨달았다. “너는 넘어져야 한다. 지금 네 목표는 넘어져야 한다”라고 말씀하시는 성령의 감동이 전해져 왔다.  “네 목표는 나의 뜻이 아니다. 내가 네 기도대로 교회당을 세울 수 있는 넓은 땅도 준다마는 그것으로는 내 제자가 되지는 못한다.”라고 하시는 것이었다.“ 이상은 이중표 목사가 한 세미나에서 밝힌 간증이다.
먼저가 제자가 되겠다는 심정으로
먼저 목회를 하게 된 동기는 무엇일까? 궁금해서 이를 먼저 살펴보았다. “유교 가정에서 태어나 중학교 3학년 때 톨스토이의 (인생독본)을 처음 읽고 성경을 접근하였으며 고등학교 2학년때 폐결핵 3기로 사경을 헤매다가 부흥회에 참석하고 예수를 영접하여 다시 살게 된 것을 감사하고 빚진 자의 심정으로 민족 복음화에 헌신을 결심, 목사가 되어 복음을 전하는 데 헌신하기로 결심하였다.  한국 민족을 사랑하는 열정이 한국신학대학을 지원케 하였다”.   그렇다면 현재와 같은 사역으로 목회철학을 삼게 된 경우는 무엇일까? “한국신학대학을 졸업하고 전북 정읍군 고부에서 처음 목회를 시작하였다. 신앙적인 가정 배경도 없이 선배의 목회 지도를 받지 못한 채 신학교를 졸업하고 시골교회 전도사로 부임했다. 10여명의 교인들과 함께 시작된 목회였으나 평생 잊을 수 없는 은혜를 받게 되었다.  주님을 사랑하여 날마다 눈에서 눈물이 흘러 내렸다. 밤이면 산에 올라가 이슬에 젖도록 기도했고 구원받지 못한 내 형제들의 영혼을 위하여 통곡하며 울었다. 가난한 형제들의 영혼을 위하여 나의 것은 저들의 것이 되었다. 살아있는 삶 전체가 빚진 자의 심정이었다. 하늘을 보나 땅을 보나 나무 한 그루에 이르기까지 주님의 음성이 나를 사로잡았기에 사는 것 전체가 주님의 사랑에 미친 사람 같았다.   그곳에서의 5년의 목회는 하늘과 땅을 안고 살아가는 감격의 세월이었다. 그러나 아내는 그곳에서 살기가 힘들었기에 아내의 떠나자는 호소에 다른 농촌교회(군산 옥구교회)에서 6년의 행복한 목회가 계속되었다. 전 지역은 나의 교구가 되었고, 불신자 한 사람에게 이르기까지 섬기며 돌보는 대상이었기에 지역 사회로부터 존경과 사랑을 받게 되었다. 작은 교회를 섬기는 목회자보다 지역 사회 전 주민을 사랑하고 섬기는 목민의 목회자가 되려고 했다. 그 후 친구의 간절한 소개로 서울에 올라와 관악구 난곡동의 가난한 달동네에서 1년 3개월동안 교회를 섬기고 사임했다. 이러한 목회 과정속에서 목회 철학은 형성되어갔다.  나의 목회는 다시 사는 심정으로 일관되었다. “나 이제 생명 있음은 주님의 은혜라”는 철저한 신앙고백이었으며 별세를 사는 심정으로 목회하여 별세목회를 추구하게 되었다.“고 밝혔다.   이중표 목사의 목회의 중요 특징은 첫째 민족교회 목회라고 하겠는데, 그의 목회는 한국 민족을 위한 목회자가 되려는 데 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 특징이 있다면 순교자의 심정으로 살아가는 데 있다. 한국 민족을 사랑하게 된 동기는 어린 시절에 받은 영향이 있다고 하였다. 초등학교 시절 국사를 공부하는 시간에 담임 선생이 이 민족의 비극의 역사와 망국의 한을 가르치면서 눈물을 흘리는 것이 자신의 눈물이 되었고 한국은 가슴에 새겨져 그 이름만 들어도 가슴이 설레이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뜻으로 본 한국역사]를 읽으면서 눈물로 몇 번이고 적시어 책을 얼룩지게 했다고 말한다. 그때부터 비록 작은 농촌교회 목회자일지라도 하나님을 사랑하고 민족을 사랑하는 목회자로 순교자의 삶을 살고 싶은 심정으로 살아가게 된 것이다고 하였다. 그리하여 한국신학대에 입학하게 된 동기는 단 한가지였는데.  한국 민족을 사랑하는 마음 때문에 한국신학대학을 지망했다는 것이다. 한신교회를 개척할 때 그 이름도 ‘한국 민족을 신자화한다’는 뜻으로 ‘한신교회’라 이름을 지었다고 밝혔다.   이중표 목사의 목회철학은 한 마디로 공동체 교회로서 나눔의 목회를 지향하는 것이다. 이에 대해 “나는 한 교회의 성장에는 큰 의미를 두지 않는다.  주님의 교회가 함께 성장하는 것이 소원이다.  그러므로 내 교회가 성장한 것을 자랑하고 싶은 마음이 없다.  오히려 내 교회 하나의 성장으로 많은 작은 교회가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사실에 주님의 마음에서 아픔을 느끼기 때문이다.  내 교회가 성장하기 위하여 많은 다른 교회의 교인들이 이동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나는 한신교회를 개척한 후 42개 교회를 개척하여 지원했다.    우리 교회는 값비싼 올갠 하나가 없다. 그러나 필요한 자의 요청이 있을 때는 거절할 수 없다.  주님의 것을 함께 나누는 것이 주님의 기쁨이기 때문이다. 저 달동네에서 가난한 사람들과 함께 살기 위해 가난해진 후배 목사들이 많이 있다. 이들을 민중 교회 목회자라 부른다.  이들은 넥타이를 메지 않고 노동자들처럼 옷을 입고 다닌다. 우리는 큰 교회가 되어 물질을 나누어줄 수는 있다. 그러나 스스로 가난하여져서 가난하게 산다는 것을 어려운 일이다.  가난을 자원하여 함께 살아가는 민중 목회자들과 마음을 같이하고 싶다.”고 소감을 밝혔다.
몸을 드리는 성전 목회, 곧 별세목회
또 두 번째 목회철학은 몸을 드리는 성전목회이라고 하였다. “나의 일생의 목회는 나의 몸을 성전으로 삼고 목회하는 것이다.  많은 목회가 교회당을 성전으로 삼고 이루어지며 그 안에서 예배하는 인원, 공부하고 있는 사람 수, 새벽기도에 참석하는 사람으로 목회를 하려고 한다.  그러나 나는 나 자신을 최대의 목회 사역의 대상으로 삼고 있다. 예수님이 인류를 대표하여 별세하심으로 구원을 완성시키듯 교회를 대표하고 있는 목사 자신이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의 사건을 일어나게 하는 데 최선을 다하여야 한다.   한국교회 목회는 지금도 자기 몸을 성전으로 삼은 주기철, 손양원 목사와 같은 순교자에게서 계속되고 있다는 데 있다.  그러므로 나는 나 자신이 순교자의 영성으로 목회하려는데 그 특징이 있다고 할 수 있다. 빚진 자의 목회, 나눔의 목회, 순교자의 목회로 일관한다. 하나님의 은혜를 받고 살기에 전 삶을 빚진 자의 심정으로 나에게 있는 것을 필요한 자에게 나누어 주며 별세한 자의 심정으로 순교하신 신앙의 선배를 본받아 살려고 노력한다.”하였다. 이는 듣기만 하여도 가슴이 설레고 뜨거워지는 말씀이다.   이중표 목사는 다른 목회자가 자신의 목회를 분석한 목회의 장단점에 대해서는 이렇게 요약한다. 장점이라면 철저한 소명감과 헌신에서 오직 목회에만 열정을 쏟는 점과 개교회를 위한 목회가 아니라 교단과 한국교회 전체와 민족을 위한 심정으로 목회하려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단점이라면 목회행정과 교인 조직관리가 허술한 점을 단점으로 지적한다는 것이다.   목회의 최대 목표는 제자양육이다. 다음은 이중표 목사가 밝히는 목회관이다. “목회자는 목표가 분명해야 한다. 교회는 구제사업을 하여야 한다. 예배도 드려야 한다.  선교도 하여야 한다.  그러나 목표는 분명하다. 제자삼는 데 있어야 한다. 목회자는 목회의 목표가 있어야 한다. 교인들을 제자삼는 목표를 세우는 일을 중요시해야 한다. 예수님이 공생애 기간에 병든 자들을 고쳐주셨으나 몇 명을 고치시겠다는 목표는 세우지 않으셨다. 구제했으나 그것은 형편에 따랐을 뿐이요, 목표는 세우지 않으셨다. 그러나 두 가지 목표는 분명하였다.  예수께서는 십자가에 죽는 일과 그리고 제자들을 가르치는 일에 분명한 목표가 있었다. 필자는 오랫동안 목회하면서 전도하는 목표를 세웠다. 총동원 목표를 세우고 수십년 동안 목회를 했다. 그러나 제자를 삼겠다는 목표를 세운 일은 없었다. 우리 주께서 원하시는 그 숭고한 목표는 전혀 세우지 않고 열심을 다하였다. 참으로 부끄러운 목회를 하였다. 우리는 지금까지의 자기 목회를 반성해야 한다.    빌 헐은 이런 사람을 “교회교를 믿는 사람”이라고 말하고 있다.  일생동안 기독교를 믿는 것이 아니고 교회교를 믿고 있는 사람들로 교회는 붐비고 있다고 탄식했다. 우리는 천국에 가서 내 교인을 몇 명이나 만나게 될까? 둘째는 과업지향에서 인격지향적 목회로의 반성이다. 목회에는 두 종류가 있다. 과업지향적 목회와 인격지향적 목회다. 과업지향적 목회는 사업에 목표를 정하고 모임을 갖는 것이다.  당회를 하고 제직회, 여전도회 등 교회의 거의 모든 조직이 과업지향적이며 총회와 교회연합운동이 과업을 위해 있는 것이다. 여기에는 사람들의 모임이 있으나 결국 과업을 위한 조직관계에만 있을 뿐이다.  일반 목회는 대부분 과업지향적 목회라는 데 문제가 있다.  과업을 위해 모여있기 때문에 그 과업의 진행을 위해 기도와 회의로 대부분의 정력을 소모하고 있다. 과업지향적인 교회들은 상업주의와 세속주의에 빠져 초대 교회의 신앙정신을 타락시키고 있다.   셋째는 청중에서 제자목회로의 반성이다. 목회자는 청중을 모으는데 관심을 기울인다. 편리한 시설과 그들의 기호에 맞는 예배순서를 통하여 교회롤 불러 모은다. 그래서 결국 교회는 청중을 모은 집합소가 되고 회개 없는 교인으로 전락시켜, 생명 없는 교회로 변하고 있다.  이제는 세상에서 빠져나가는 교인들을 속수무책으로 바라볼 수밖에 없게 되었다. 한국교회는 지금 청중이 모여들 때를 교회성장의 전성기로 여기며, 그때를 흠모하고 있다. 청중은 오직 설교에만 의존하고 있다. 그러나 교회의 예배는 그리스도와의 인격적인 만남, 거룩한 하나님과의 교제가 이루어지지 못함으로 말미암아 설교에 심혈을 기울이기는 하지만 설교로는 예수께서 원하시는 제자를 만드는 데는 역부족이다.  여기에 고민이 있는 것이다. 이제 교회는 교인을 제자삼는데로 목회의 목표를 전환해야 한다“    그러므로 제자화 훈련목회로 전환해야 한다고 그는 힘주어 역설한다. 제자화 목회는 훈련목회이다. 한국교회가 어느 정도는 훈련목회를 하고 있다. 그러나 그 훈련은 관리자의 훈력이요, 조직훈련에 그치고 있다.  교인들을 보호하고 관리하는 구역 조직은 있으나 인격성숙을 위한 훈련은 거의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이를 수정하지 않으면 소망이 없다고 단호히 말하는 그의 소신에서 우리는 아직도 한국교회의 살아있는 미래를 본다.
이중표목사의 설교를 분석
첫째 설교를 원고에 기록하는 타입이다. 처음 목회할 때부터 노트에 원고를 일일이 쓰기 시작했다는데. 여기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고 한다. 신학교를 졸업하였으나 성경을 너무 몰랐기에 쓰지 않으면 전혀 할 말이 없으므로 써야 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교회를 다닌 기간이 짧았기에 설교를 들은 잠재된 실력이 없었으므로 더욱 그러했다고 말한다. 그보다 더 큰 이유로 나는 천부적으로 말의 표현이 비교적 순조롭지 못했다고 겸손하게 말한다. 쓰지 않으면 전혀 할 말이 없으므로 일일이 써야만 되는 운명적인 목사가 되었다는 것이다. 목회를 시작한 이래 지금까지 30년동안 설교 전체를, 심지어 예화까지 전부를 써야만 했다는데.  토요일은 아침부터 온종일 써야만 한다고 한다.   연약한 체력 때문에 토요일에 설교를 쓰느라 고심하노라면 그날의 내 얼굴은 평소의 내 얼굴이 아니다고 말하기도 한다. 환자처럼 눈이 들어가고 혈색이 파리한 모습을 보고 스스로 놀란다는 것이다. 그러나 원고를 씀으로 은혜로운 설교를 창작할 수 있었다고 한다. 이런 힘든 설교를 함으로 결국 많은 은혜를 받게 된 것을 감사한다고 했다. 그것은 설교를 쓸 때 성령의 감동으로 평소에는 상상할 수 없는 내용을 문자화시킨 것이다. 만약에 하루종일 기록하지 않았다면 영영 생각해볼 수 없는 신비한 성경적 영감과 엄청난 보화를 어찌 얻을 수 있었겠는가. 세월이 지나서 이런 생각을 한다면서. ‘하나님은 이 종을 너무 사랑하시기에 이렇게 사로잡아 당신의 비밀을 알려주시고 깨닫게 하신다.’고 말했다. 설교를 쓰다가 너무 눈물이 나고 감격하여 펜을 적신 시간이 헤아릴 수 없이 많았다고 한다.   설교를 씀으로 많은 실력을 양성케 했다는 것은 새겨들을 말이라고 생각된다. 또 하나 이중표 목사에게서 배울 점은 유명한 설교집을 다독한다는 것이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분들의 성경의 영감과 설교자의 내용들을 읽고 기록함으로 결국 나의 실력이 된 것이다. 나는 전도사 시절에 유명한 스펄전 목사의 설교를 거의 나의 것처럼 내용을 만들어 기록했다. 그것을 기록할 때 자연적으로 나의 설교가 되는 것을 실감했다. 이렇게 하여 목회 초년부터 어는 곳이든 어떤 대상이든 거기에 맞는 은혜스러운 설교를 할 수 있었다.  이것은 나만이 가지고 있는 비밀이었다.”고 말한다. 그리하여 기록함으로 결국 설교집 출판이 순조로웠다고 말한다. 강단에서 선포되는 전 내용을 기록하고 기록하므로 고통도 많지만 결과적으로 설교집 출판이 순조롭게 된 것이라고 한다.
성장포인트
한 잡지에 실린 한신교회의 성장 평가를 엿보자. 여기서 이 목사는 이렇게 말한다. “한신교회는 1977년 6월 5일 신반포 어린이 놀이터에서 창립을 선언했다. 나는 100만원을 빌려 아파트 보증금으로 걸고 아파트 32평 방에서 예배를 드렸다. 1977년 12월에 상가 18평을 임대하여 들어갔다. 이때 교인은 100명이 되었다. 그리고 아파트 단지마다 아파트를 월세로 빌료 예배 처소를 네 곳에 두어 각각 모이게 하였고, 2년 반이 지난 후(80년 3월) 유치원 건물 150평을 임대하여 한 곳으로 모이니 그때 교인이 1,000명이 되었다.  그리고 2년 후 이 지역에 성전부지 700평은 구입하였으나 건축할 수 없었다.  그 후 6년이 지난 뒤 유치원 건물(대지 570, 건평 300평)을 매입하여 좁은 공간에서 주일이면 혼잡을 이루며 살아가고 있다”고 밝히고 있다. 개척한 지 17년이 지난 지금 재적교인 5000여명이요, 출석교인은 2,500여명에 이른다. 교회가 기대에 비해 크게 성장하지 못한 원인은 여러 가지가 있다고 말한다.   “첫째, 교회성장에 따른 건물 공간이 비례하여 확장되어야 한다. 그러나 우리 교회는 성장과 함께 건물 확장이 따르지 못했다.  그러므로 초창기 몇 년 동안은 주변의 교회들과 성장이 거의 비슷했으나 교회당 건축이 지연되면서부터 상상할 수 없는 격차를 가져오게 되었다. 여기에서 교회성장의 한계를 절감했다. 둘째, 교파 신학의 차이점에서 한계를 느꼈다. 개 교회가 성장을 추구해도 교단의 신학이 하나님의 선교신학(Missio Dei)이므로, 교단 선교정책의 영향으로 한계를 느끼게 되었다. 그리고 한국의 보수적인 성향의 교회들이 기장교회를 비판하므로 일반 교인들의 전입이 어려웠고, 80년대의 군사 독재시대에 교단의 사회 참여와 민주화, 민족 통일운동으로 인한 정치적, 사회적인 압력이 성장을 더욱 어렵게 했다.   셋째, 목회자 개인적으로 아쉬운 점이 있다면 이 지역에 맞는 교육 프로그램과 평신도 지도자 양성에 힘썼으면 조금은 더 성장할 수 있었으리라는 것이다.   이상의 성장의 어려움 속에서 오늘 이 성장을 이루어놓은 것은 다음과 같은 몇 가지 장점으로 이루어진 결과라 할 수 있다. 첫째는 감동적인 설교에서 찾을 수 있다.  30년 가까운 사역기간 중 농촌에서 11년, 서울에서 19년 동안 거의 나의 목회는 설교로 이루어지고 있다. 둘째는 목회에 헌신적인 열정을 쏟고 있다는 것이다. 거의 대부분의 시간을 교회에서 살고 있다. 대외적인 일로 시간을 사용하는 일은 적다. 셋째는 교회 위치가 주거지역이라는 장점이 있다. 인구가 밀집된 아파트 지역에 교회가 있다는 것이다.”고 밝혔다. 성장 포인트의 세 번째는 교인들을 별세시키는 것이다. 별세가 예수 그리스도의 최대의 선교사역이라면 교인들을 별세시키는 것은 목회자의 최대의 과제라고 본다는 것이다. 많은 형제들이 그리스도를 나의 구주로 영접하였다 할지라도 별세신앙을 확립하여 주지 않으면 죽은 뒤에 천국을 약속 받고 현실에서 탄식하는 나그네에 불과하다고 강조하는 그의 목회철학은 처음부터 끝까지 별세이다.   성경에서 흐르고 있는 맥이 별세의 진리라고 한 마디로 말한다. 요한복음 5장 39절에 “너희가 성경에서 영생을 얻는 줄 생각하고 성경을 상고하거니와 이 성경이 내게 대하여 증거한 것이라” 하였다.  그러므로 성서를 연구하고 암송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성경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별세의 신비를 알 때 변화를 체험하게 된다고 한 그것이 주효 한 것이다. 그러므로 ‘별세’는 최고의 신학 공부요 예수님은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하셨다. ‘나의 멍에’는 십자가요, 십자가를 배우는 것이 예수를 배우는 것이다.     ‘나는 예수로 죽은 몸이다. 이제 예수로 산다’ 할 때 최고의 신학 공부가 된다. 별세 공부 못하는 성경 연구는 콘 변화가 없다. 그 공부는 인격의 변화도 없고, 행복도 없다. 이런 공부는 하면 할수록 교인들의 지성만 개발하여 바리새인이 되기 시작한다. 성도는 별세의 신앙으로 살아야 한다.  별세는 자기 죽음을 이미 선언한 별세의 신앙고백이며, 별세의 영성은 순교자의 삶으로 이루어지는 것이다. 별세한 신앙은 천국을 사모하게 된다.  현세에서 별세한 사람만이 천국을 사모하며 살고 있다‘ 하는데에 성도들이 올바르게 자라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한신교회의 성장은 결국 예수를 따라 죽은 결과로 얻어진 것이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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